“저긴 LK그룹 소유잖아. 다 아는 사실인데 정말 몰랐어?”육시준은 뭔가 알아내려는 듯한 날카로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는 그녀가 지금도 자신의 신분을 모른다는 걸 믿지 않았다.3년 전에 그가 귀국했을 때, 그녀 역시 비슷한 시간에 귀국했기에 소문을 못 들었다는 건 이해할 수 있었다.하지만 육경서가 유강으로 갔고 어젯밤 일도 있는데 정말 아무것도 못 느꼈을까? 아니면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걸까?강유리는 눈을 깜빡이며 그에게 물었다.“그 남자만 좋아한다는 갑부?”육시준은 당황한 표정을 금할 수 없었다.“아쉽네!”그 갑부의 손에서 건물을 빼앗아 온다는 건 불가능한 얘기였다.강유리는 망원경을 내려놓고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는 침실로 갔다. 마치 오랜 기대가 무너진 것처럼 쓸쓸하고 처량한 뒷모습이었다.육시준만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그 자리에 그대로 얼어 있었다.왜 그에 대한 그녀의 평가는 남자를 좋아하거나 그 방면에 문제가 있다는 게 전부인 걸까?강유리는 다시 침실로 돌아가서 잠을 청했다. 그렇게 단잠을 자던 그녀는 전화 벨소리에 잠에서 깼다.수화기 너머로 성홍주의 분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내가 너 대신 기소 포기 각서 썼어. 천강이도 일을 크게 만들고 싶지는 않다고 했으니까 경찰서에 있었던 일도 더 얘기하고 싶지 않아.”“자경원 아파트는 네 엄마 거니까 양도하기 싫은 거 이해해. 하지만 신영이랑 천강이 곧 결혼하는데 신혼집을 군림 별장에 구매하기로 했거든? 돈이 좀 부족하니 결혼선물이라고 생각하고 120억 입금해.”“네 남편 육가 놈이라며? 그러면 돈도 많을 텐데 그 정도 돈은 줄 수 있겠지?”사실 마지막 말이 성홍주의 목적이었다.경찰서에서 있었던 일을 전해들은 그는 크게 분노하며 인맥을 총동원했지만 경찰서에서는 사람을 풀어주지 않았다. 결국 그는 보호자 신분으로 출석해서 강유리 대신 합의하고 겨우 임천강을 경찰서에서 데리고 나왔다.그런데 임천강이 한 말이 충격이었다.한국 재계 순위 1위, LK그룹 대표가 강유리의 남편이라
그는 다급히 다가가서 그녀를 위로했다.“신영아, 미안해. 어젯밤 그 말은 진심이 아니었어! 오해하지 마.”성신영은 입술을 질끈 깨물고 말없이 눈물만 흘렸다.“그때는 어떻게든 육경서와 계약해야겠다는 마음뿐이었어. 그게 아니었으면 그런 성격파탄자를 내가 왜 만나!”그는 그녀의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주었다.성신영은 얼굴을 그의 품에 파묻고 서럽게 울었다.사실 어젯밤 이성을 되찾은 뒤에는 그가 왜 그랬는지 이해할 수 있었다. 임천강은 사실 강유리가 곧 유강 엔터를 되살릴 수도 있다고 암시하고 있었다.하지만 질투에 이성을 잃은 그녀는 정상적인 사고를 할 수 없었고 그 말이 그냥 듣기 싫었다.강유리는 화려한 이목구비를 소유하고 있었다. 한번 보면 절대 잊을 수 없는 그런 미모였다. 그리고 능력도 좋아서 유강 엔터를 맡게 되면서 세간의 주목을 끌었다.사람들은 모두가 그녀를 칭찬했다.성신영은 질투가 나서 미칠 것 같았다.신분부터 자신과는 비교도 안 되는 그녀를 질투했고 아름다운 외모를 가진 그녀를 질투했으며 남자를 자유자재로 다룰 수 있는 그녀의 매력을 질투했다.“사실 처음부터 언니가 나보다 낫다고 생각한 거 아니야?”그녀가 훌쩍이며 물었다.“그럴 리 가! 넌 강유리보다 착하고 온순하잖아. 난 네가 대단한 사람이기를 바라지 않아. 내가 어차피 너 지켜줄 테니까.”임천강은 그녀가 울기만 하자 가슴이 아파서 부드러운 목소리로 계속 위로했다.“여자가 아무리 대단해도 어차피 우리 결혼식을 준비해 줘야 할 입장이잖아. 장인어른이 그러셨어. 그 여자한테 결혼 선물로 큰 거 하나 받겠다고. 우린 성대한 결혼식을 치르게 될 거고 모두가 우릴 부러워할 거야.”성신영이 원했던 말이었다.그녀는 이내 부정적인 감정에서 벗어나 심정을 추스르고 이렇게 물었다.“하지만 언니한테 그렇게 큰 돈이 있을까?”임천강은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사실 그녀가 돈이 없다고 하면 차라리 편할 것 같았다.그렇다는 건 어젯밤 변호사가 사람을 잘못 봤다는 걸 증명할 수 있었다.그가
120억을 결혼선물로 내놓으라니.정말 강도가 따로 없었다.그리고 새신랑과 같이 밥 먹으러 오라니….강유리는 호박죽을 숟가락으로 저으며 생각에 잠겼다.그녀를 아무리 쥐어짜도 돈이 나오지 않으니 주의를 그녀의 남편에게 돌린 것 같았다.떠오르는 스타 성신영과 대영그룹 막내아들이 약혼한 다는 소식은 조용히 인터넷에서 퍼지고 있었다.연예계도 떠들썩했다.성신영은 예쁜 외모에 훌륭한 배경을 가진 것으로 유명한데 약혼자가 재력가 집안이라니 더욱 주목을 끌었다.그것에 비하면 강유리가 거의 무너져 가는 엔터테인먼트를 인수한 소식은 그리 화려하지는 않았다.토요일 저녁.성홍주는 본가에 친척과 지인들을 초대했다.강유리는 집에서 여유롭게 화장을 하고 있었다.성홍주의 비서가 사전에 연락해서 약속 시간을 꼭 지켜야 한다고 주의를 주었다.강유리는 핸드폰을 옆에 내려놓고 눈을 가늘게 뜨고 아이라인을 그리는데 집중하고 있었다. 어차피 갈 생각이면 지각은 하지 말자는 게 그녀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물론 결혼 선물도 준비했다.화장을 마치고 나오자 소파에 익숙한 그림자가 보였다.“왜 벌써 왔어?”최근 같이 생활하면서 그녀는 육시준의 출퇴근 시간을 대략 파악하게 되었다.그는 아침 아홉 시에 나가서 저녁 여섯 시에 집에 돌아온다.늦게 돌아올 때는 있지만 일찍 들어올 때는 없었다.그런데 오늘은 퇴근 시간 전에 집에 돌아왔다.육시준은 고개를 들고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몸매를 강조한 검은색 이브닝 드레스에 허리까지 오는 긴 생머리, 작고 청초한 얼굴. 동작 하나하나가 우아하고 매혹적이었다.“같이 본가에 가야지.”남자가 담담한 목소리로 자리에서 일어서며 말했다.강유리는 그제야 그가 정장을 입고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 늠름하고 준수한 모습이었다.“같이 가려고?”강유리가 조심스럽게 물었다.“당연한 거 아니야? 원래 나랑 같이 가려던 거 아니었어?”“그럴 것까지는 없는데?”그녀는 어차피 약혼식 깽판 부리러 가는데 짐짝은 필요 없었다.하지만 아무런 거리낌도 없는
참 미련한 여자였다.다른 여자들은 어떻게든 그와 엮이려고 안간힘을 쓰는데 그녀는 자꾸만 그를 밀어냈다.오늘은 그의 부모님이 귀국하는 날이었다. 두 분은 귀국하면서 오늘 본가에 밥 먹으러 오라고 지시했다.강유리는 약혼식에 참석한다고 나갔으니 그도 어쩔 수 없이 혼자 본가로 향했다.검은색 벤틀리가 정통식 저택의 정원에 들어섰다.집안으로 들어선 육시준은 육경서가 과장된 표정으로 형수가 돈도 많고 젊은 사업가이며 예쁜데 속물도 아니라며 자랑하는 소리를 들었다.육경서는 그를 보자 놀라서 화들짝 놀라며 그에게 물었다.“형은 왜 왔어?”육시준은 먼저 부모님께 인사를 드린 뒤 담담한 표정으로 대꾸했다.“밥 먹으러 왔지.”육경서는 어색한 표정으로 입만 뻐금거렸다.육시준의 어머니가 가장 먼저 입을 열었다.“네가 밥을 왜 먹어? 네 마누라 오늘 그 불쾌한 파티에 갔다는데 넌 밥이 넘어가니? 잠깐만, 경서 너 이 자식 우리한테 거짓말한 거 아니지?”부모님이 돌아오자마자 육경서는 대박 사건이라며 육시준의 결혼 소식을 부모님께 전했다.부모님은 신부에게 감사하다고 말했다.그들은 능력, 배경 이런 거 다 떠나서 정상적인 여자면 된다고 했다.하지만 그날 그 사건이 있은 뒤로 육시준은 여자와의 모든 접촉을 차단했다.곧 서른이 되어 가는 아들이 연애도 못해서 어쩌나 걱정하고 있는 상황에 희소식이 들려온 것이다.육경서는 두 손 들고 장담했다.“제 말 사실이에요! 처음 만나고 이튿날 바로 혼인신고 했고 바로 독립해서 나갔어요!”그의 말이 끝나기 바쁘게 옆에서 날카로운 시선이 느껴졌다.육시준이 음산한 눈빛으로 쳐다보자 육경서는 다급히 말을 돌렸다.“걱정하지 마. 누군지 얘기는 안 했어. 공개하고 싶을 때 공개해! 아니다, 그냥 형수님이 공개하고 싶을 때 공개해!”부모님은 두 형제의 대화를 들으며 안도의 숨을 내쉬었다.하지만 한편으로는 황당하기도 했다.“우릴 능가하는 대단한 집안이야? 왜 공개하기 싫대?”아버지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아들에게 물었다. 사
한편, 성가네.성신영은 약혼식은 꼭 본가에서 하고 싶다고 고집을 부렸다. 자기가 이 집의 아가씨라는 신분을 강조하기 좋은 곳이었다. 파티에는 상류사회 인사들과 연예계에서 사이가 각별한 친구들만 초대했다.물론 이렇게 화려한 약혼식에 언론 매체가 빠질 수 없었다.강유리는 10분 늦게 도착했다.그녀가 현장에 도착했을 때는 메뉴가 이미 올라온 뒤였다.아무도 그녀에게 관심을 주지 않았기에 그녀는 알아서 구석진 곳을 찾아 음식을 먹었다.“언니는 왜 혼자 있어? 형부는?”이때 애교스러운 목소리가 그녀의 조용한 식사를 방해하고 들어왔다.고개를 돌리자 임천강의 팔짱을 끼고 이쪽으로 다가오는 성신영이 보였다. 하얀색 A라인 드레스에 우아함을 강조하려고 목선을 드러냈지만 얼굴은 약간 부어 있었다.지난번 클럽에서 그녀는 약혼식장에 멍든 얼굴로 나오게 하려고 일부러 더 세게 때렸다.그래도 메이크업아티스트가 워낙 실력이 좋은지 멍은 완벽히 가려졌고 전체적으로 핑크톤을 많이 써서 사랑스러움을 강조했다.성신영은 강유리가 자신의 얼굴을 빤히 바라보자 갑자기 얼굴에서 통증이 느껴졌다. 솔직히 강유리의 화려한 아름다움에 비해 자신은 미운 오리새끼가 된 것 같아서 기분이 더 좋지 않았다.짓밟힌 자존감은 참을 수 없는 질투와 분노로 바뀌었다. 그녀는 굳은 표정으로 강유리에게 물었다.“언니, 왜 그렇게 빤히 쳐다봐? 못 알아보겠어?”강유리는 시선을 거두고 담담한 목소리로 대꾸했다.“며칠 안 본 사이에 더 못생겨졌네.”성신영의 얼굴이 흉하게 일그러졌다.그녀는 애써 분노를 수습하고 서러운 눈빛으로 임천강을 바라보았다.그런데 임천강은 강유리에게서 취한 듯 시선을 떼지 못하고 있었다.그녀는 저도 모르게 팔짱을 낀 손에 힘을 주며 언성을 높였다.“오빠!”임천강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녀의 손을 다독이며 강유리에게 물었다.“유리야, 장인어른은 네 남편도 같이 데려오라고 하셨다던데 왜 혼자 왔어?”그는 인상을 쓰며 그녀를 빤히 바라보았다.강유리는 눈을 가늘게 뜨며 되
성신영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잔뜩 긴장한 눈빛으로 임천강을 바라보았다.임천강은 의기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었다.‘역시, 이 여자는 아직 날 잊지 못 했어.’그는 성신영에게 안심하라는 눈빛을 보내고는 거만한 태도로 말했다.“내가 좋아하는 사람은 신영이 뿐이야. 난 너한테 기회를 줬어. 네가 그걸 거절한 거고.”그가 말한 기회는 바람 피운 것을 들킨 날에 그가 너랑 결혼은 할 수 있다고 말한 것이었다.강유리는 그와 입씨름을 하기도 귀찮아서 자리에서 일어섰다. 성신영이 그녀의 팔목을 잡으며 말했다.“언니, 우리 얘기 좀 해.”말을 마친 그녀는 임천강에게 애교스러운 목소리로 좋게 대화로 풀겠다고 말했다.임천강도 더 이상 대화를 이어갈 분위기가 아니었기에 인상을 쓰며 자리를 떠났다.어차피 강유리가 자신을 잊지 못했다는 걸 확인한 걸로도 충분했다.임천강이 떠나자 성신영은 부드러운 미소를 싹 지우고 경멸에 찬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언니, 들었지? 천강 오빠는 나만 사랑해!”“그래. 평생 둘이 행복하게 살아.”강유리는 살짝 손을 빼며 말했다.성신영은 그녀의 차가운 태도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말했다.“천강 오빠가 정말 언니를 걱정해서 그런 말을 한 것 같아? 오빠는 그냥 육경서랑 계약하고 싶은 거뿐이라니까? 그러니까 우리 천강 오빠한테서 멀리 떨어져! 평생 언니는 나한테 상대가 안 되니까!”성신영은 아무리 연기라도 임천강이 강유리에게 잘해주는 게 기분 나빴다.임청강은 그녀의 남자였고 가문의 재산도 모두 그녀의 것이어야만 한다.육경서? 안중에도 두지 않았다.“언니가 아무리 능력이 뛰어나도 천강 오빠는 나를 선택했잖아? 그리고 언니는 나한테 결혼 선물을 해줘야 하는 입장이고!”의미심장한 말을 마친 성신영은 미련없이 뒤돌아섰다.강유리는 인상을 쓰며 그녀의 뒷모습을 쏘아보았다.약혼식이 정식으로 시작되었다.성홍주는 무대 위에서 감개무량한 얼굴로 축사를 말한 뒤, 가족을 사랑하는 장녀가 동생을 위해 큰 선물을 준비했다면서 그녀를 무대로
분위기가 순간 이상해졌다.박수 소리도 뜸해졌다.성신영 모녀가 어디 출신인지 아는 사람은 별로 없었기 때문이다. 그들은 그냥 원래 이 집 안주인인 강민영이 세상을 떠나고 이들 모녀가 나타났다는 것만 기억했다.지금의 사모님은 성홍주의 첫사랑이었기에 사람들은 그녀가 도시에서 자랐다고 생각했다.아무도 그들의 출신에 대해 이야기하지 않았다.그런데 강유리가 수많은 사람들을 상대로 고의인 건지는 모르지만….성홍주의 안색이 파랗게 질렸다. 강유리가 이렇게까지 가문의 체면은 안중에도 없이 사람들 앞에서 망신줄 줄 몰랐다. 하지만 그가 무대에 초대한 거라 당장 내려가라고 할 수도 없었다.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이번 시즌 수익이 얼마나 되는데?”이렇게 된 이상 어떻게든 강유리 손에서 돈이라도 받아와야 했다.“제가 유강 엔터를 물려받기 전에는 아버지가 경영하셨죠? 시즌 실수익이 어느 정도인지는 아버지가 가장 잘 아시겠죠.”강유리는 눈썹을 살짝 치켜올리며 담담하게 대꾸했다.성홍주도 침착한 목소리로 응대했다.“유강 그룹에 소속된 기업이 얼마나 많은데 언제 잘 나가지도 않는 엔터 사업을 신경 쓰겠어?”강유리는 그가 드디어 엔터 사업이 불황이라는 것을 인정하자 의기양양한 미소를 지었다.성홍주는 순간 불길한 느낌이 들었다.“그래요? 그럼 제가 돌아가서 장부 잘 정리해서 공개할까요?”여자는 눈을 깜빡이며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성홍주의 동공이 순식간에 확장되었다.유강엔터는 사실 매년 적자였다. 다른 기업에서 돈을 끌어다 쓰기 때문에 겉보기에는 흑자로 보여도 사실 모든 게 가짜였다.가짜 장부가 세상에 공개되면 그는 엄중한 처벌을 받게 될 것이다.“강유리!”“그래야 신뢰를 줄 수 있죠. 안 그러면 제가 돈을 빼돌렸다고 생각하면 어떡해요?”그녀는 순진무구한 미소를 지으며 성홍주를 바라보았다.하지만 이건 공공연한 도전장이었다.성홍주는 주먹을 불끈 쥐었다. 다리에서 힘이 풀리고 식은땀이 났다.옆에 있던 왕소영은 다급히 그를 부축하며 비서에게 쫓아내라
‘한가족답네. 뻔뻔한 모습이 아주 꼭 닮았어. 그러니까 어떻게든 나한테서 돈을 뜯어내야겠다는 거지?’추악한 가족들의 얼굴을 쭉 훑어보던 강유리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오늘은 돈 때문에 온 거 맞아요.”강유리의 말에 성홍주를 비롯한 세 사람이 동시에 고개를 돌렸다.“유강엔터의 재정상황이 좋지 않다는 건 아빠도 알고 계셨죠? 하루, 이틀만에 이렇게 된 건 아닐 테고... 그런데 놀랍게도 회계 장부는 해마다 흑자를 올리고 있는 것으로 기록이 되어 있더군요...”“너 그게 지금...”성홍주의 낯빛이 급격하게 어두워졌다.“일단 아버지께 만회할 기회를 드릴까 해요. 3개월 안에 회계 장부 상태 그대로 돈 채워넣으세요. 안 그럼 회사 대표로서 이 사실을 이사들에게 알릴 수박에 없으니까요.”말을 마친 강유리가 우아하게 돌아서려던 그때, 성홍주가 성한일에게 눈치를 주었다.이에 바로 문을 닫은 성한일이 차가운 얼굴로 강유리를 노려보았다.“누나, 우리 가족끼리 이러지 말자. 웬만하면 좋게 말로 해결하는 게 좋지 않겠어?”강유리가 반박하려던 그때, 성홍주의 근엄한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내가 그 동안 널 너무 오냐오냐 한 것 같구나. 한일아, 무릎 꿇려.”한편, 검은색 벤틀리.조수석에 앉은 육경서가 태블릿 PC로 업무를 처리하고 있는 육시준을 자꾸만 힐끔힐끔 돌아보고 있다.뭐 마려운 강아지처럼 분주한 육경서의 모습에 참다 못한 육시준이 미간을 찌푸렸다.“할 말 있으면 그냥 해.”“형, 정말 거기 형수님 혼자 보내도 돼? 우리 형수님 괴롭힘이라도 받으면 어쩌려고.”어느새 강유리와 친해진 육경서가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어보였다.하지만 육시준은 고개도 들지 않은 채 대답했다.“그럴 리가 없어.”“뭐야? 왜 그렇게 확신해. 형은 와이프 걱정도 안 돼? 형수님은 도대체 왜 형이랑 결혼한 거야.”“잘생겨서.”“뭐?”이 무슨 왕자병 말기 환자가 내뱉을만한 대사란 말인가.육경서가 멍하니 그를 바라보던 그때, 육시준은 드디어 태블릿 PC에서 눈을 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