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처럼 강유리의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들이 있었다.안아달라고, 6천만 월급 날로 먹지 말라고 했던 말.그리고 씻겨달라고 징징거렸던 모습…그녀는 안으로 들어오려는 그에게 싸늘하게 말했다.“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할게.”그녀는 결국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육시준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문을 닫고 나갔다.강유리는 간단하게 씻은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줌마가 호박죽이랑 야채샐러드를 준비해 주었다. 어제 만취해서 육시준에게 안겨서 집으로 돌아온 모습을 아줌마도 보았기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식탁에 마주 앉은 강유리는 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아줌마가 물었다.“입맛에 안 맞으신가요?”강유리는 대답 대신 싸늘한 말투로 질문을 던졌다.“아주머니는 여기서 얼마나 일하셨어요? 제가 갑자기 나타나서 고용주랑 서먹한 것처럼 연기하려니 많이 힘드시죠?”아줌마가 어깨를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그녀는 육시준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육시준도 그 말을 듣고 당황해서 다가왔다. 그는 아줌마에게 잠시 나가 있으라고 손짓한 뒤, 그녀의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일단 밥부터 먹고 얘기 좀 해.”강유리는 그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숟가락으로 죽을 휘저으며 대꾸했다.“존귀하신 육 대표님이 나랑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을까?”육시준은 얇은 입술을 꾹 깨물며 말했다.“그 얘기 하면 되겠네. 나랑 클럽의 어린 선수들 중에 누가 몸매가 더 좋은지.”강유리가 캑캑거리며 얼굴을 붉혔다.커다란 손이 다가오더니 그녀에게 티슈 한 장을 건넸다.강유리는 어색한 표정으로 입가를 닦았다.왜 소안영에게 전화했는지 후회만 남았다.어차피 기억하지 못할 거면 상황을 궁금해하지도 말걸. 그러면 지금보다는 당당하게 나올 수 있었을 텐데!“좋아. 당신 친구가 어젯밤 얘기해 줬나 본데. 내가 다시 설명해 줄 필요가 없어서 귀찮은 일 하나 덜었군.”그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강유리는 불쾌한 기분을 가라앉히고 정색해서 말했다.“우리 사이의 문제는 집
내가 김치녀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거짓말했다고?그렇다면 좋아한다고 했던 말도 진심이 아니었다는 거잖아?신분을 숨기기 위해 그런 거짓말까지 불사했다는 건가?육시준은 그녀의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내 할 얘기는 여기서 끝이야. 이제 당신은 뭐 할 말 없어?”그러니까 나는 사과했으니 이번엔 네 차례라는 의미였다.강유리는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저 뻔뻔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당장이라도 죽 그릇을 그의 얼굴에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이 남자의 진짜 신분을 알게 된 뒤로 그의 주변 공기마저 더욱 무게감 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언뜻 보이는 행동 하나하나에서 집권자의 강력한 카리스마가 보였다. 그녀는 더 이상 예전처럼 그의 앞에서 성격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그녀는 숟가락을 꽉 잡으며 소안영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원하는 게 뭔지 잘 고민해 보라고 했던 말.결국 그녀는 딱딱한 말투로 부루퉁하게 말했다.“미안해. 클럽 가서 선수 부른 건 잘못했어! 애들 몸매는 괜찮았어. 얼굴도 봐줄만했고 목소리도 매력 있고. 하지만 어쨌든 애들 부른 건 내 잘못이 맞아!”육시준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당신은 아직도 근본적인 잘못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것 같은데?”“그럼 당신은 알아?”“내가 또 뭘 잘못했는데?”솔직히 말하면 거짓말을 제외하고 그가 딱히 잘못한 건 없었다.계약부부였고 그녀는 처음부터 원하는 게 많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개인적인 비밀을 만들면 안 된다는 조항도 계약에 없었다.그리고 그녀 자신에게도 비밀이 있었기에 그가 신분을 숨긴 건 넘어가 줄 수 있었다.하지만 자신에 대한 그의 평가가 기분 나빴다.그래도 잘해준다고 용돈도 주고 반지까지 사줬는데, 심지어 빚이 있다고 생각해서 빚까지 탕감해 줄 생각이었는데 어떻게 김치녀 취급을 했을까?가장 화가 나는 건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었다.강유리는 생각할수록 화가 났지만 딱히 화풀이할 곳이 없어서 그를 향해 눈만 부릅떴다.“
하석훈은 유강 엔터에 대한 투자 계획안이 아직 HZ 내부에서 최종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계약을 제안한 건 손 사장의 자작극이었다.“어제 그 사건이 있은 후로 HZ 내부 감사팀에서 손 사장의 다른 비리를 밝혀냈습니다. 아마 곧 해고가 될 겁니다. 그리고 빚더미에 파묻히겠죠. 하지만 계약서가 유효할지는 아직 확신할 수가 없군요.”“그 인간은 임천강이랑 도대체 뭘 꾸민 거죠?”강유리는 갑자기 과정이 궁금해졌다. 어제 급하게 떠나느라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한 게 한이었다.만약 계약할 마음이 없었다면 그녀를 거기로 불러내서 뭘 하려고 했을까?임천강은 또 무슨 수로 손 사장을 구워삶은 거지?하석훈이 굳은 표정으로 보고했다.“임천강은 손 사장에게 대표님과 육경서 씨랑 아주 친밀한 관계라면서 접근했습니다. 말 그대로 대표님을 붙잡고 육경서 씨 쪽을 협박해서 LK와 계약을 따내려는 수작이었죠.”강유리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쓰레기 같은 놈이 이런 짓까지 꾸몄을 줄이야!그래도 손 사장을 이용해서 그녀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려 시도한 건 꽤 의외였다.물론 실패했지만.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여한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그래서 대표님은 육경서 씨와 무슨 관계인가요?”하석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강유리는 입을 다물었다.“정말 친한 사이라면 HZ 투자건은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텐데요. 어쨌든 같은 식구 아닙니까!”여한영이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강유리의 착잡한 표정을 보지 못했다.그녀는 이익 앞에 얼굴이 활짝 핀 여한영을 보면서 거울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예전에 육시준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저런 표정이었던 것 같았다.그래서 신분을 숨기고 경계했던 거겠지.“아무 사이도 아니에요!”그녀는 짜증스럽게 대꾸했다.“LK 쪽 도움이 없으면 우리 유강이 무너지기라도 하나요?”여한영이 움찔하며 고개를 흔들었다.“그건 아니지만 그러면 상장이 좀 지체되겠죠.”강유리가 버럭 화를 냈다.“상장이 그렇게 중요
강유리는 오후 내내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퇴근시간이 다 되어서야 소지석에게 연락해서 해명해 주기로 약속했던 것이 기억났다.전화를 걸었는데 상대가 받지를 않았다.아마 촬영 중일 거라 짐작한 그녀는 집에 가봐야 기분이 나쁜데 현장에 나가 보기로 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소지석이 촬영을 마무리하고 잠깐 쉬고 있었다.그녀의 얘기를 들은 그가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아까 피어싱 사장님한테 연락이 왔었어. 누군가 홈서비스를 주문했는데 주소를 착각했다고 하던데?”강유리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주소를 착각해?”소지석이 되물었다.“맞아. 설마 내가 모르는 뭔가가 또 있어?”강유리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아니. 주소를 착각했다면 설명이 되네. 안영이처럼 순진한 애가 그렇게 담대한 짓을 벌였을 리 없지.”‘오해를 풀어줬으면 그랬다고 말이라도 좀 해주지! 괜히 왔잖아!’강 감독이 다음 촬영을 재촉하고 있었기에 소지석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떠나기 전, 그는 진지한 얼굴로 경고하듯이 말했다.“유리야, 서울은 해외랑 달라. 내 능력에도 한계가 있어. 매번 너희들 사고 친 거 수습해 줄 수 없다고. 절대 LK 쪽 사람들은 건드리지 마!”그녀와 소지석은 해외에서 처음 만났다.비슷한 직종의 일을 하고 있었기에 빠르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나중에 그와 소안영이 남매라는 것을 알고 그녀도 그를 오빠처럼 편하게 대했다.그는 그녀를 위해 많은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었다. 그래서 그의 말이라면 강유리도 거의 따르는 편이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달랐다.이미 저질러 버렸으니…소지석이 촬영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녀도 자리를 뜨려다가 마침 대기실에서 나오는 육경서와 마주쳤다.그가 반가운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왔다.“형…”주변 사람을 의식한 그가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누나, 저 데리러 오신 거예요? 저 너무 행복해요! 아줌마가 해주신 맛있는 집밥을 또 먹을 수 있겠네요!”한껏 들뜬 목소리였다.“똥이나 먹어!”강유리는 제 발로 걸어 들어
LK 그룹에 출근한 육시준은 오후 내내 정신이 다른 곳에 팔려 있었다. 그는 오 씨 아주머니 말에 일리가 있는 것 같았다. 아주머니 말처럼, 강유리는 아무 이유 없이 억지를 부리는 사람은 아니었다.그런데 자기가 대체 무슨 잘못을 저지른 것인지 감이 오지 않았다.이런저런 생각을 하던 그때, 테이블에 놓인 핸드폰이 울렸고 발신자를 확인해 보니 육경서였다.육시준은 눈살을 살짝 찌푸리며 전화를 받았다.“무슨 일이야?”“형수님이 다 알게 된 거지?”전화기 너머 육경서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렸다.“그래, 알게 됐어. 근데 왜?”말도 안 되게 담담한 육시준의 목소리에 육경서가 흠칫 놀랐다.‘왜라고 묻다니?’“목소리가 하나도 다급하지 않아 보이네? 형수님이 화를 안 냈어? 그냥 덤덤하게 받아들인 거야?”자기는 욕까지 먹었는데 아무일이 없는 것 같은 육서준을 보자 너무 불공평했다.육시준이 아무런 대꾸도 하지 않자 육경서는 그제야 말을 이어갔다.“형수님도 화를 냈네, 맞지? 아니, 잘못을 저질렀는데 왜 이렇게 태연해?”“나도 사과를 했어, 그런데 그 사람이 안 받아준 거야.”육시준은 어쩔 수 없다는 듯이 말했다.“사과만 한 거야? 다른 건 안 했어?”“다른 거, 뭐?”육경서는 답답하게 행복하는 육시준 때문에 어이가 없었다. 어쩌면 형수님은 형에게 내지 못한 화를 그에게 해소한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 육경서는 자신이 너무 불쌍했다.어쩔 수 없이 참을성을 가지고 형을 타이르기로 했다.“선물이라도 주면서 성의 있게 사과를 해야지! 형이 이 일을 숨기는 바람에 형수님이 얼마나 큰 피해를 입었는데! 돈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형수님이 집이랑 결혼반지까지 사주면서 형 체면을 제대로 세워줬잖아. 형을 위해 최선을 다한 거잖아. 그런데 형은? 형수님의 재산을 빼돌려 놓고, 가볍게 사과 한 마디로 끝낸다고?”동생의 말을 들은 육시준은 그제야 강유리가 아직도 화를 내는 이유가 납득되었다.강유리가 돈을 밝히는 걸 잘 알고 있었기에 그녀에게 적
”이게 지금 몇 번째예요? 일부러 저 골탕 먹이는 건가요? 전에 대본도 좋았는데 왜 수정했어요? 메인 작가라는 거 이렇게 티내는 거예요?”표정이 확 굳은 오예라가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꾸했고 서민우가 언짢은 듯 눈살을 찌푸렸다.“그래서 수정한 대본을 확인하지 않으셨다는 말인가요?”오예라가 살짝 흠칫하다가 재빨리 대답했다.“대본을 수정하든 안 하든 전 이렇게 연기할 거예요! 이 역할 자체가 이렇게 연기를 해야만 하는 거예요! 감독님이 지금 저한테 괜히 억지를 부리는 거잖아요! 제가 너무 피곤해서 그러는데 오늘은 여기까지 찍을게요!”말을 끝낸 오예라가 손에 들고 있던 촬영 도구를 버린 채 촬영장을 벗어나려고 하자 매니저가 다급히 그녀에게 커피를 건네며 화를 식히라고 부채질까지 했다.‘화를 식히긴 무슨? 화가 나는 건 되려 스텝들인데!’이 장면을 촬영하기 위해 이미 이틀을 허비했다. NG가 몇십 번이나 났는데도 연기자는 개선할 여지가 보이지 않았고 어제도 이렇게 흐지부지 끝났었다.게다가 촬영 현장에는 신인들 밖에 없었고 오예라의 인지도가 꽤 높았기에 아무도 그녀에게 감히 뭐라고 할 수 있는 사람이 없었다. 카리스마 있게 행동하던 서민우도 오예라의 오기를 꺾지 못했다.서민우는 어떻게든 잘 설득하려고 안간힘을 썼다.“오예라 씨, 우희나 씨가 일정이 빠듯해서 오늘 이 장면을 무조건 완벽하게 찍어야 합니다. 조금만 더 촬영에 집중해주시면 고맙겠습니다.”강유리가 밀고 있는 우희나는 연기자 수준도 높았을 뿐만 아니라 다른 스케줄로 꽉 차 있었다. 그녀는 촬영이 끝나자마자 이 드라마에 합류하게 되었고 중간에는 광고 촬영과 모델 활동도 틈틈이 끼어 있었다.만약 이번 촬영 때문에 뒤에 있던 스케줄에 차질이 생기기라도 하면 서민우는 절대 감당하지 못할 것이다.“우희나 씨만 바쁘고, 저는 한가해 보여요? 우희나 씨가 주인공이라고 모든 사람이 우희나 씨 스케줄에 맞춰야 해요? 지금 감독이라고 눈에 뵈는 게 없는 거 같은데, 이 바닥도 룰이라는 게
우희나는 오예라의 호통에 아무 말도 못한 채, 억울해서 입술만 꽉 깨물었다.오후 촬영에서 그녀가 대사를 까먹은 것 때문에 NG를 한 번 낸 적이 있는 건 사실이었지만 촬영당시, 오예라의 눈빛이 이상해서 흠칫 놀라서 NG를 낸 것이다.하지만 감독님은 컷을 외치지 않았고 우희나가 대사를 이어가려던 순간, 오예라가 갑자기 그녀에게 욕설을 퍼부었다.대꾸조차 하지 못하는 우희나를 보자 오예라가 의기양양한 표정으로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고개를 돌려 이번에는 서민우를 공격했다.“그리고 당신! 기본적인 스케줄 조율도 안 되면서 무슨 자격으로 다른 사람에게 이런저런 요구를 하는 거예요? 전 처음부터 이 드라마가 마음에 들지 않았어요. 강 감독님 체면을 봐서 출연을 결심한 거라고요! 그런데 이렇게 촬영 현장에 와보니 역시나 너무 실망스럽네요!”오예라의 말이 끝나자마자 매니저도 얼른 말을 보탰다.“맞아요! 우리 예라 같은 대스타가 당신들과 합작하는 건 당신들의 영광이라고요! 그런데 이런 태도를 보이시면 저희도 더 이상 같이 일을 못합니다! 오늘 강 대표님이 계신 자리에서 저희도 털어놓고 얘기할게요! 지금 당장 사과하지 않으면 저희는 더 이상 촬영에 임하지 않겠습니다!”오예라는 고고한 자태를 뽐내며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곁에 서서 서민우와 우희나가 사과하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녀는 이런 상황을 한두 번 겪어본 게 아니었다. 스텝들 대부분은 모른 척 가만히 있을 것이고 그녀보다 인지도가 낮은 연기자들은 묵묵히 참고 견딜 것이다. 겁이 많고 이 바닥에서 힘이 없었던 서민우와 우희나는 어떻게든 조용하게 이 일을 처리하려고 할 것이다.조용하게 처리하고 싶으면 사과를 하는 방법밖에 없다.오늘 강유리만 대충 속이고 넘어가면 오예라는 기분이 좋아져서 이 사람들의 장단에 조금 더 맞춰줄 생각이었다.조용히 의자에 앉아 오예라와 그녀의 매니저가 하는 말을 듣고 있던 강유리가 고개를 돌려 서민우에게 물었다.“사실이 맞나요?”입술을 꽉 깨물고 있던 서민우는 착잡한 눈빛으로
강유리의 대사들은 서민우가조금 전에 했던 말과 똑같았지만 단지 전달한 방식과 말투가 달랐다.서민우는 배우들에게 재촬영에 대해 부드럽게 설명했지만, 강유리는 단순 명료하게 반드시 다시 찍어야 한다고 전했으며 상대방에게 훈수까지 두었다.또한 서민우는 촬영장 분위기가 어순해지면 조금만 집중해 달라고 부탁했으나 강유리는 촬영이 끝나기 전까지 아무도 못 간다고 명령을 내렸다.그리고 강유리는 투자자를 언급하면서 배우의 눈치따위를 보려고 해당 배우를 캐스팅한 게 아니라고 강조했다. 이 촬영장에서 벌어지는 일 중 그녀가 모르는 일은 없다는 것을 경고했다.그녀는 오예라가 했던 헛소리를 추호도 믿지 않았다.사람들은 강유리의 말에 마음이 뻥 뚫리는 듯 너무도 통쾌했다.사실 오예라는 지금까지 보여주기 식으로 강덕준과 작가가 있을 때만 열심히 하는 척했고 그들이 현장에 없으면 자신의 신분을 과시하듯 어떻게든 꼬투리를 잡아서 촬영에 태클을 걸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무도 감히 그녀에게 불만을 표시하지 못했으며 얼리고 달래서 촬영하느라 바빴는데 드디어 그녀를 다스릴 수 있는 사람이 나타난 것이다.마음속으로 만세를 부르는 사람들과는 달리 서민우는 등골에 소름이 돋아 식은땀까지 흘렸다.강유리가 들어오자마자 오예라의 거짓말을 까발리지 않은 건, 서민우의 반응을 확인하려는 의도가 분명했다. 만약 그가 이 일을 조용히 넘어가기 위해 사과를 했다면 강유리는 그에게 철저하게 실망했을 것이다.아무도 자신이 선택한 사람이 나약한 모습을 보이는 건 원치 않을 것이다.다행히 서민우는 그 순간, 잘못된 선택을 하지 않았다.“대표님, 지금 이게 뭐 하는 거죠?”화가 잔뜩 난 오예라가 파랗게 질린 얼굴로 소리를 질렀고 강유리는 그제야 고개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뭐 하자는 건지 아직도 모르겠어요?”오예라도 강유리의 뜻을 잘 알고 있었지만 이렇게 많은 사람들 앞에서 그녀에게 창피를 줄 줄은 상상도 못했기에 처지가 너무 난처했다.눈치를 살피던 매니저가 분위기를 풀어보려고 말을 꺼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