육시준은 입을 꾹 다물고 여자를 지그시 바라봤다.그런데 웬걸, 그녀는 이미 잠들어 있었다.차가 JL 빌라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자정이 넘은 시각이었다.임강준이 차 문을 열었다.“대표님.”그는 잠든 강유리를 보자 소리를 죽였다.육시준은 음침한 얼굴로 차에서 내려 반대쪽 차 문을 열고 손을 뻗었다. 그 순간 강유리가 눈을 번쩍 떴다.그는 움찔하며 손을 내리고는 싸늘하게 말했다.“깼으면 내려. 도착했어.”평생 높은 위치에서 대접만 받으며 살아온 육시준에게 이 정도로 무례하게 대한 사람은 강유리가 처음이었다.그가 먼저 잘못한 게 맞다고 해도 항상 그녀를 배려하고 신경 써줬는데 너무하는 게 아닌가 싶었다.클럽에서 선수 부른 것도 모자라 그에게 쓰레기라고 인신공격까지 퍼붓다니.“안아줘.”강유리가 손을 뻗으며 나긋한 목소리로 말했다.육시준의 표정이 살짝 흔들렸다.자다 깨서 그런지 목소리에 본능적으로 애교가 묻어 있었다.같이 지낸지도 꽤 시간이 흘렀기에 그는 그녀가 어떨 때 애교를 부리는지 잘 파악하고 있었다.지금 잘못을 인식하고 용서를 구하는 걸까?육시준은 고개를 돌렸다.그는 그녀가 먼저 사과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강유리는 여전히 나긋나긋한 목소리로 충격적인 말을 뱉어냈다.“한 달에 6천만 원씩이나 받으면서 날로 먹을 거야? 당신이 얼마나 대단한 부자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내 돈 받았으면 할 일을 해야지!”육시준이 어이를 상실한 표정으로 멍하니 그녀를 바라보았다.“서비스 태도가 불량이면 언제든 사람 교체할 수 있어! 거기 잘생긴 임 비서님, 지금 날 안아서 침실까지 데려다주면 6천만 원 드릴게요!”강유리는 고개를 돌리고 옆에 있는 임강준에게 말을 걸었다.임강준은 다리에 힘이 풀려 주저앉고 싶었다.상사의 싸늘한 시선이 날아오자 그는 급급히 뒤로 뒷걸음질 쳤다.“저… 저는 집이 가까워서 걸어서 갈게요! 대표님, 저 퇴근합니다!”말을 마친 임강준은 걸음아 나 살려라 미친 듯이 달렸다.하지만 대문을 나선 그는 지도에 표시된 30
그녀는 비틀거리며 욕실로 향했다. 어지럼증이 심해서 직선으로 걷지 못하고 결국 문에 부딪혔다.커다란 손이 그녀를 잡아당겨 품에 안았다.“나한테 씻겨달라고 했잖아? 왜 또 마음이 바뀐 거야? 기다리는 건 재미없어. 돈을 받았으니 내가 할 일을 해야지.”속삭이듯 귀를 간지럽히는 그 목소리에 강유리는 눈앞이 어지러웠다.그녀가 다시 정신을 차렸을 때는 이미 욕실에 들어와 있었다.그녀는 다급히 옷깃을 여미며 고개를 저었다.“아… 필요 없어. 안 할래.”“그럴 수는 없어.”육시준은 그녀에게 도망칠 기회를 주지 않았다.그는 한 손으로 그녀의 뒤통수를 잡고 입술을 덮쳤다. 그리고 다른 한 손은 이미 그녀의 옷을 벗기고 있었다.욕조에 들어간 강유리는 버둥거리다가 연신 물을 삼키고 쿨럭거렸다.머리에서 물기가 뚝뚝 흐르고 얼굴까지 새빨개져서 기침하는 모습은 조금 안쓰럽기까지 했다.육시준은 조금 마음이 약해졌지만 굳은 표정으로 그녀의 손을 잡아당겼다.강유리는 구석으로 도망가서 양팔로 무릎을 끌어안고 경계 어린 눈빛으로 그를 노려보았다.육시준은 젖은 옷을 벗어던지고 욕조에 들어섰다. 길고 매끈한 다리 위로 올라가니…시각적 충격에 강유리는 넋이 나가 버렸다.‘임천강이 정말 작은 거였구나.’그가 자신을 다시 품으로 잡아당겼을 때에야 그녀는 정신을 차리고 바둥거렸다.“움직이지 마! 안 그러면 나도 무슨 짓 할지 모르겠으니까!”그 말에 놀란 그녀가 움직임을 멈추었다.등 뒤에서 그의 매끈한 살결이 느껴지자 강유리는 온몸에 열기가 올라왔다.다행히 그도 양심은 있는지 별다른 동작 없이 조용히 씻겨주는 데만 집중했다.욕실 공기가 점점 뜨거워지고 있었다.술기운 때문인지 강유리는 점점 눈꺼풀이 내려왔다.결국 그녀는 단단한 그의 팔에 기댄 채, 잠들어 버렸다.육시준은 들끓는 욕망을 겨우 참고 있었다. 그런데 고개를 숙여 보니 이 양심도 없는 여자는 이미 쿨쿨 자고 있었다.그는 혼란스러웠다.그렇게 다사다난했던 밤이 지나가고 있었다.한편, 자선 파티 현장.
듣기에는 주최측의 강한 책임감으로 들렸지만 사실 그의 말은 많은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이런 일은 어차피 비서나 호텔 매니저들에게 시키면 된다.그가 주동적으로 도움을 주겠다고 청한 것은 너는 각별하다는 의미였다.재밌네.성신영은 나긋한 목소리로 감사 인사를 하고 연락처를 남겼다.그녀가 떠나자 옆에 있던 비서가 차 문을 열며 말했다.“유강 그룹의 둘째 따님이십니다. 예전에 유강 엔터의 전임 대표와 약혼했다가 최근에 파혼했다고 합니다.”육경원이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유강 그룹 둘째 따님이 왜 성 씨야?”비서는 유강 그룹의 가족 사항을 간단하게 요약해서 대답했다.설명을 다 들은 육경원이 웃으며 말했다.“어쩐지 들러붙는 솜씨가 보통이 아니더라니. 그 엄마가 가르친 거겠군.”“실장님, 그 여자가 다른 의도가 있다는 걸 뻔히 아시면서….”하지만 날아온 싸늘한 시선에 비서는 입을 다물었다.육경원은 핸드폰에 있는 연락처를 보고 대수롭지 않게 말했다.“요즘 짜증 나는 일도 많은데 제 발로 걸어 들어온 장난감을 내칠 수는 없지.”사람들은 육경민을 바람둥이로 알고 있었지만 넷째인 육경원이 더 변태스러운 인간이라는 건 아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지난번 브랜드사에서 보내온 선물 있지? 여자들이 좋아할 만한 거 없어?”그가 무심한 듯 물었다.“별로 많지는 않습니다만 성연 주얼리에서 보내온 목걸이가 있기는 합니다. 그런데 로열 측 고아연 씨가 이벤트 때 한번 착용한 적 있지요. 지금은 그냥 방치해 둔 상태입니다.”“그럼 그거로 하자.”육경원이 눈을 감으며 말했다.“성신영 씨한테 어울리는 물건이군.”숙취와 극심한 스트레스에 강유리는 오후가 되어서야 잠에서 깼다.머리가 깨질 것 같았다.침대 머리에 꿀물 한 잔이 놓여 있었다. 그녀는 허겁지겁 그것을 마셨다.흐릿한 기억이 머릿속으로 흘러 들어왔다.어젯밤에 머리가 혼란스러워서 소안영의 가게를 찾아 술을 마신 기억이 났다. 친구들은 그녀에게 어차피 계약 결혼이니 아무 문제가 없다고 말했다.그녀에게
강유리의 표정이 점점 하얗게 질려갔다. 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소안영에게 말했다.“나 좀 말리지 그랬어?”소안영이 코웃음 치더니 말했다.“어떻게 말려? 내가 네 앞을 가로막고 서 있었는데 네가 손을 뻗어서 그 사람 근육을 만지고 있고! 내가 얼마나 수치스러웠는지 알아?”강유리는 할 말을 잃었다.그녀는 차라리 전화하지 말걸 후회했다.그 상황을 머리에 상상하니 소름이 돋고 손발이 오그라들었다.그녀는 애써 감정을 추스르고 조심스럽게 물었다.“그래서 그 사람 그때 표정은 어땠어?”“당연히 기분 나빠하지.”마누라가 술집에서 선수 불러서 노는데 좋아할 남자가 어디 있을까?강유리도 괜한 질문을 했다고 후회했다.“그 사람이 집에 남자를 보냈다는 건 무슨 말이야?”문자를 떠올린 강유리가 물었다.그 얘기가 나오자 소안영은 다시 분노가 치밀었다.“나랑 조보희 네 친구잖아! 그래서 너 구해준다고 우리가 선수 불렀다고 했거든! 그런데 네 남편이 자기가 운영하는 클럽 선수들을 우리 집에 보낸 거야! 그것도 본가에!”강유리는 그 장면을 생각하니 갑자기 숨이 막혔다.얼마나 수치스럽고 곤란했을까?선수 불렀다가 남편에 들킨 강유리나 부모님이 같이 사는 집에 선수가 찾아온 친구들 중 누가 더 창피할까?“미친놈이네! 애먼 너희들한테 홰 화풀이하고 그래!”강유리도 기분이 나빠졌다.“그러니까! 우리가 무슨 죄가 있다고! 너한테 차마 화를 내지 못해서 우리한테 내는 것 같았는데? 그런데 넌 지금 깬 거야? 어제 무슨 일이 있었는지 전혀 기억 안 나?”강유리는 곰곰이 기억을 되짚어 보았다. 욕실에서 그의 벗은 몸을 본 것 같기도 한데…순간 그녀의 얼굴이 확 붉어졌다.이런 변태가!“뭐 생각난 거 있어?”소안영이 재촉하듯 물었다.강유리는 혹시라도 속마음을 들킬까 봐 허둥지둥 전화를 끊었다.그래도 미안했는지 다시 소은영에게 문자를 보냈다.[너희 오빠한테는 내가 해명할게. 나 때문에 너까지 곤란해져서 미안해. 클럽 영업 정지로 인한 손실은 내가 배상할게.][
영화처럼 강유리의 머릿속을 스치는 장면들이 있었다.안아달라고, 6천만 월급 날로 먹지 말라고 했던 말.그리고 씻겨달라고 징징거렸던 모습…그녀는 안으로 들어오려는 그에게 싸늘하게 말했다.“필요 없어. 내가 알아서 할게.”그녀는 결국 뻔뻔하게 나가기로 했다.육시준은 잠시 그녀를 바라보다가 문을 닫고 나갔다.강유리는 간단하게 씻은 뒤, 아래층으로 내려갔다. 아줌마가 호박죽이랑 야채샐러드를 준비해 주었다. 어제 만취해서 육시준에게 안겨서 집으로 돌아온 모습을 아줌마도 보았기에 걱정스러운 표정을 짓고 있었다.식탁에 마주 앉은 강유리는 죽을 멍하니 바라보았다.아줌마가 물었다.“입맛에 안 맞으신가요?”강유리는 대답 대신 싸늘한 말투로 질문을 던졌다.“아주머니는 여기서 얼마나 일하셨어요? 제가 갑자기 나타나서 고용주랑 서먹한 것처럼 연기하려니 많이 힘드시죠?”아줌마가 어깨를 움찔하는 것이 보였다.그녀는 육시준에게 구원의 눈빛을 보냈다.거실에서 신문을 보고 있던 육시준도 그 말을 듣고 당황해서 다가왔다. 그는 아줌마에게 잠시 나가 있으라고 손짓한 뒤, 그녀의 맞은편에 가서 앉았다.“일단 밥부터 먹고 얘기 좀 해.”강유리는 그에게 시선도 주지 않고 숟가락으로 죽을 휘저으며 대꾸했다.“존귀하신 육 대표님이 나랑 무슨 얘기가 하고 싶을까?”육시준은 얇은 입술을 꾹 깨물며 말했다.“그 얘기 하면 되겠네. 나랑 클럽의 어린 선수들 중에 누가 몸매가 더 좋은지.”강유리가 캑캑거리며 얼굴을 붉혔다.커다란 손이 다가오더니 그녀에게 티슈 한 장을 건넸다.강유리는 어색한 표정으로 입가를 닦았다.왜 소안영에게 전화했는지 후회만 남았다.어차피 기억하지 못할 거면 상황을 궁금해하지도 말걸. 그러면 지금보다는 당당하게 나올 수 있었을 텐데!“좋아. 당신 친구가 어젯밤 얘기해 줬나 본데. 내가 다시 설명해 줄 필요가 없어서 귀찮은 일 하나 덜었군.”그가 싸늘한 목소리로 말했다.강유리는 불쾌한 기분을 가라앉히고 정색해서 말했다.“우리 사이의 문제는 집
내가 김치녀라고 생각해서 일부러 거짓말했다고?그렇다면 좋아한다고 했던 말도 진심이 아니었다는 거잖아?신분을 숨기기 위해 그런 거짓말까지 불사했다는 건가?육시준은 그녀의 눈동자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을 이었다.“내 할 얘기는 여기서 끝이야. 이제 당신은 뭐 할 말 없어?”그러니까 나는 사과했으니 이번엔 네 차례라는 의미였다.강유리는 눈을 부릅뜨고 그를 노려보았다. 저 뻔뻔한 표정을 보고 있자니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았다.당장이라도 죽 그릇을 그의 얼굴에 던지고 싶은 심정이었다.이 남자의 진짜 신분을 알게 된 뒤로 그의 주변 공기마저 더욱 무게감 있게 느껴졌다. 그리고 언뜻 보이는 행동 하나하나에서 집권자의 강력한 카리스마가 보였다. 그녀는 더 이상 예전처럼 그의 앞에서 성격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그녀는 숟가락을 꽉 잡으며 소안영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원하는 게 뭔지 잘 고민해 보라고 했던 말.결국 그녀는 딱딱한 말투로 부루퉁하게 말했다.“미안해. 클럽 가서 선수 부른 건 잘못했어! 애들 몸매는 괜찮았어. 얼굴도 봐줄만했고 목소리도 매력 있고. 하지만 어쨌든 애들 부른 건 내 잘못이 맞아!”육시준이 인상을 확 찌푸렸다.“당신은 아직도 근본적인 잘못이 어디 있는지 모르는 것 같은데?”“그럼 당신은 알아?”“내가 또 뭘 잘못했는데?”솔직히 말하면 거짓말을 제외하고 그가 딱히 잘못한 건 없었다.계약부부였고 그녀는 처음부터 원하는 게 많지 않았다. 거짓말을 하지 말아야 한다거나 개인적인 비밀을 만들면 안 된다는 조항도 계약에 없었다.그리고 그녀 자신에게도 비밀이 있었기에 그가 신분을 숨긴 건 넘어가 줄 수 있었다.하지만 자신에 대한 그의 평가가 기분 나빴다.그래도 잘해준다고 용돈도 주고 반지까지 사줬는데, 심지어 빚이 있다고 생각해서 빚까지 탕감해 줄 생각이었는데 어떻게 김치녀 취급을 했을까?가장 화가 나는 건 그가 거짓말을 했다는 사실이었다.강유리는 생각할수록 화가 났지만 딱히 화풀이할 곳이 없어서 그를 향해 눈만 부릅떴다.“
하석훈은 유강 엔터에 대한 투자 계획안이 아직 HZ 내부에서 최종 결론이 나오지 않았다고 했다.계약을 제안한 건 손 사장의 자작극이었다.“어제 그 사건이 있은 후로 HZ 내부 감사팀에서 손 사장의 다른 비리를 밝혀냈습니다. 아마 곧 해고가 될 겁니다. 그리고 빚더미에 파묻히겠죠. 하지만 계약서가 유효할지는 아직 확신할 수가 없군요.”“그 인간은 임천강이랑 도대체 뭘 꾸민 거죠?”강유리는 갑자기 과정이 궁금해졌다. 어제 급하게 떠나느라 제대로 물어보지도 못한 게 한이었다.만약 계약할 마음이 없었다면 그녀를 거기로 불러내서 뭘 하려고 했을까?임천강은 또 무슨 수로 손 사장을 구워삶은 거지?하석훈이 굳은 표정으로 보고했다.“임천강은 손 사장에게 대표님과 육경서 씨랑 아주 친밀한 관계라면서 접근했습니다. 말 그대로 대표님을 붙잡고 육경서 씨 쪽을 협박해서 LK와 계약을 따내려는 수작이었죠.”강유리는 알겠다는 듯이 고개를 끄덕였다. 쓰레기 같은 놈이 이런 짓까지 꾸몄을 줄이야!그래도 손 사장을 이용해서 그녀의 이미지를 추락시키려 시도한 건 꽤 의외였다.물론 실패했지만.그들의 대화를 듣고 있던 여한영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그래서 대표님은 육경서 씨와 무슨 관계인가요?”하석훈이 진지한 표정으로 물었다.강유리는 입을 다물었다.“정말 친한 사이라면 HZ 투자건은 아주 쉽게 해결할 수 있을 텐데요. 어쨌든 같은 식구 아닙니까!”여한영이 흥분한 얼굴로 말했다.하지만 그들은 아무도 강유리의 착잡한 표정을 보지 못했다.그녀는 이익 앞에 얼굴이 활짝 핀 여한영을 보면서 거울을 본 것 같은 느낌이었다.예전에 육시준에게 도움을 요청할 때 저런 표정이었던 것 같았다.그래서 신분을 숨기고 경계했던 거겠지.“아무 사이도 아니에요!”그녀는 짜증스럽게 대꾸했다.“LK 쪽 도움이 없으면 우리 유강이 무너지기라도 하나요?”여한영이 움찔하며 고개를 흔들었다.“그건 아니지만 그러면 상장이 좀 지체되겠죠.”강유리가 버럭 화를 냈다.“상장이 그렇게 중요
강유리는 오후 내내 업무에 집중할 수 없었다.퇴근시간이 다 되어서야 소지석에게 연락해서 해명해 주기로 약속했던 것이 기억났다.전화를 걸었는데 상대가 받지를 않았다.아마 촬영 중일 거라 짐작한 그녀는 집에 가봐야 기분이 나쁜데 현장에 나가 보기로 했다. 현장에 도착하니 소지석이 촬영을 마무리하고 잠깐 쉬고 있었다.그녀의 얘기를 들은 그가 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아까 피어싱 사장님한테 연락이 왔었어. 누군가 홈서비스를 주문했는데 주소를 착각했다고 하던데?”강유리가 의아한 목소리로 물었다.“주소를 착각해?”소지석이 되물었다.“맞아. 설마 내가 모르는 뭔가가 또 있어?”강유리는 재빨리 고개를 저었다.“아니. 주소를 착각했다면 설명이 되네. 안영이처럼 순진한 애가 그렇게 담대한 짓을 벌였을 리 없지.”‘오해를 풀어줬으면 그랬다고 말이라도 좀 해주지! 괜히 왔잖아!’강 감독이 다음 촬영을 재촉하고 있었기에 소지석은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섰다.떠나기 전, 그는 진지한 얼굴로 경고하듯이 말했다.“유리야, 서울은 해외랑 달라. 내 능력에도 한계가 있어. 매번 너희들 사고 친 거 수습해 줄 수 없다고. 절대 LK 쪽 사람들은 건드리지 마!”그녀와 소지석은 해외에서 처음 만났다.비슷한 직종의 일을 하고 있었기에 빠르게 친구가 될 수 있었다. 나중에 그와 소안영이 남매라는 것을 알고 그녀도 그를 오빠처럼 편하게 대했다.그는 그녀를 위해 많은 골칫거리를 해결해 주었다. 그래서 그의 말이라면 강유리도 거의 따르는 편이었다.하지만 이번에는 상황이 좀 달랐다.이미 저질러 버렸으니…소지석이 촬영에 들어가는 것을 보고 그녀도 자리를 뜨려다가 마침 대기실에서 나오는 육경서와 마주쳤다.그가 반가운 얼굴로 그녀에게 다가왔다.“형…”주변 사람을 의식한 그가 재빨리 말을 바꾸었다.“누나, 저 데리러 오신 거예요? 저 너무 행복해요! 아줌마가 해주신 맛있는 집밥을 또 먹을 수 있겠네요!”한껏 들뜬 목소리였다.“똥이나 먹어!”강유리는 제 발로 걸어 들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