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희주의 심리적인 문제로 인해 고은지의 삶에도 많은 변화를 겪게 되었다.그녀는 엄청난 압박감과 고통에 시달렸지만 이를 악물고 버틸 수밖에 없었다.고은영이 오전에 왔을 때 고은지가 희주를 품에 안은 채 울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어젯밤 그녀가 왔을 때 희주는 잠 들어 있었지만 지금은 깨어 있었다. 두 눈에 가득 찬 눈물을 본 고은영은 마음이 아팠다.그녀는 앞으로 다가가며 말했다.“왜 또 울고 있어?”고은영의 목소리를 들은 고은지와 희주는 몸을 떨어트렸다.고은지는 고은영의 큰 배를 보고 걱정하며 말했다.“혼자 왔어?”“아니”고은영은 고개를 저었다.배준우는 회사에 가 봐야 했지만 고은영은 걱정이 되어 꼭 병원에 가보겠다고 했다.배준우는 고은영을 혼자 보내면 안심할 수 없었기에 그녀와 함께 왔다가 다시 회사에 가기로 했다.고은지는 고개를 끄덕였다.“우리 괜찮아. 너 괜히 고생하지 마. 곧 아이도 낳아야 하는데.”고은영은 고개를 끄덕이고서는 눈가가 빨갛게 달아오른 채 침대에 앉아 있는 희주를 바라보았다. 그녀는 가방에서 인형을 하나 꺼내 희주에게 건넸다.“희주야 이모가 주는 선물이야.”희주는 인형을 좋아했고 갖고 있는 모든 인형은 고은영이 사준 것이었다.이 순간 고은지는 고은영의 손에 들려 있는 인형을 보고 더욱 마음이 아팠다.지난 몇 년간 조씨 가문에서 좋은 생활은 하지 못했다. 고은지는 항상 주부였고 매달 조영수가 주는 돈을 받아서 써야 했다.그래서 그녀는 희주를 위해 인형을 살 수 없었다.지금 생각해 보면 가슴이 유난히 아팠다.“고마워 이모.”희주는 작은 인형을 품에 안고서는 가라앉은 목소리로 말했다.고은영은 희주의 손목에 두껍게 감겨 있는 붕대를 보고 가슴이 아팠다. 그녀는 희주의 작은 머리를 쓰다듬으며 부드럽게 말했다.“또 뭐 갖고 싶은 거 있으면 이모한테 다 말해. 알겠지?”“응”희주는 작은 머리를 끄덕이고서는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이렇게 큰일을 겪고 나서 고은영은 희주에게 일어난 작은 변화를 느꼈다
배준우는 고은영이 화장실에 가고 싶다는 말을 듣고 별다른 생각이 없었다. 마침 그에게 전화가 와 그는 그녀의 손을 놓아주며 말했다.“다녀 와.”고은영의 이상함을 눈치채지 못한 채 그는 돌아서서 핸드폰을 집어 들었다.고은영은 숨을 쉬며 고개를 숙였는데 바지는 이미 젖어 있었고 심지어 바닥까지 흘러내린 것을 발견했다.그녀는 머릿속이 윙윙 울리는 것 같았다. 온 힘을 다해 참으려고 했지만 참을 수 없었다.결국 바닥에 주르륵 떨어지고 말았다.너무 당황스러워 그녀는 쥐구멍이라도 찾아서 기어들어 가고 싶었다.고은영이 그 자리에 얼어붙어 있을 때 배준우는 빠르게 통화를 끝낸 뒤 전화를 끊고서는 고개를 돌렸다. 그는 고은영이 아직도 그 자리에 서 있는 것을 보고 가벼운 목소리로 물었다.“왜 안 가고 그대로 서 있어?”고은영은 부끄러워하며 빨갛게 달아오른 눈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말했다.“나 오줌 쌌어요.”울먹거리는 그녀의 모습에 원래도 놀랐던 배준우는 그녀의 말에 무의식적으로 그녀의 하체를 바라보았다. 그는 바닥에 떨어진 수많은 물을 보고 가슴이 철렁 내려앉는 것 같았다.다음 순간 그는 앞으로 다가가 재빨리 재킷을 벗어 그녀에게 둘러주었다.그는 부드럽게 그녀의 머리를 품에 안으며 그녀의 등을 쓸어내리며 위로했다.“괜찮아. 걱정하지 마. 우리 먼저 가자.”축축하게 젖은 하반신이 배준우의 옷으로 가려지자 고은영은 마음속으로 조금 안정을 되찾았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그녀는 지금 너무 창피해서 빨리 도망치고 싶었다.엘리베이터 입구에 도착했을 때 그녀는 또 걸음을 멈췄다.배준우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또 왜?”고은영은 바로 눈물을 뚝뚝 흘리며 말했다.“나. 나 참을 수가 없어요.”배준우는 할 말을 잃었다. 물은 이미 그녀의 바지를 타고 바닥을 적셨고 그녀는 절망에 빠졌다.진정훈은 지인의 병문안을 위해 병원에 왔다가 엘리베이터가 열리자마자 보이는 장면에 깜짝 놀랐다.고은영은 너무 창피해서 숨이 막힐 정도로 울고 있었다
고은영이 말했다.“별로 아프지는 않아요.”책에 나온 것처럼 그렇게 죽을 정도로 아프진 않았다. 설마 그녀는 아프지 않고 아이를 낳을 수 있을까?곧 의사가 들어와 그녀를 다시 확인했다.의사는 자궁 경부가 손가락 두 마디 정도 열렸다고 말하며 아직 아픈 시기는 되지 않았다고 말했다.배준우가 이에 물었다.“아프지 않게 할 수 있는 방법은 있나요?”배준우는 전에 책과 영상에서 봤기에 고은영이 그런 고생은 하지 않길 바랐다.그의 말에 의사는 머리가 아팠다.“하나도 아프지 않게 할 수는 없지만 저희가 최대한 사모님의 고통을 줄여드리겠습니다.”“바로 제왕 절개하면 안 되나요?”배준우는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며칠 전에 그는 자세히 비교해 보며 고은영이 순산의 고통은 분명 견딜 수 없을 것이라고 생각했다.특히 지금 이 순간 붉어진 그녀의 눈을 바라보면 정말 분만실에 가서 죽을 정도로 아픈 고통을 견뎌낼 수가 없을 것 같았다.의사가 말했다.“바로 제왕 절개를 하면 수술 뒤에 사모님께서 더 고통스러우실 겁니다.”사실 아이를 낳아본 사람이라면 알겠지만 제왕 절개는 과정은 아프지 않지만 수술 뒤 마취가 풀리면 고통이 시작된다.배준우가 고은영에게 물었다.“어떻게 낳고 싶어?”“안 아팠으면 좋겠어요.”고은영은 울먹이며 말했다.배준우가 의사를 바라보았고 의사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이건 너무 막무가내인데?’하지만 의사는 이런 말을 할 수가 없었다. 그저 인내심을 갖고 순산과 제왕 절개의 차이점에 관해 설명했다.순산의 과정은 정말 아팠지만 아이를 낳고 나면 제왕 절개에 비해 아주 쉬웠다.많은 임산부가 제왕 절개를 한 뒤에 자궁 수축 때문에 얼마나 큰 고통을 겪는지 알고 있을까?“사모님 조금 진정하세요. 아이를 낳으실 때 수중에서 나으시면 통증이 심하지 않습니다.”“근데 하나도 안 아픈 건 아니잖아요?”고은영은 불쌍한 표정으로 말했다.의사는 순간 어이가 없었다.‘이건 말도 안 되는 소리 아니야? 이미 말했잖아. 고통을 줄일 수 있다고 했
결과적으로 진정훈은 자신의 행동이 너무 이상하다는 것을 예상하지 못했다.원래도 진씨 가문을 좋게 보지 않았던 배준우는 진정훈이 고은영에게 단 한 걸음이라도 가까워지는 것을 용납하지 않았다.진정훈은 배준우의 날카롭고 경계심이 가득한 눈빛을 바라보며 겨우 한마디 했다.“난 그쪽을 도우려고 하는 거예요. 혼자서 감당하지 못할까 봐.”그리고 이 말을 하는 진정훈도 조금 우스꽝스럽다고 생각했다.배준우는 차갑게 비웃으며 말했다.“나는 왜 몰랐죠? 그쪽하고 내가 이렇게 사이가 좋은지?”‘내가 혼자서 바쁠까 봐 걱정됐다고? 진씨 가문이 이렇게 다른 사람의 일에 오지랖이 넓었나. 그것도 진정훈이?’진정훈은 등골이 서늘해졌다. 그도 어서 빨리 고은영의 신분을 제대로 알고 싶었다.이 시간 동안 진정훈 아버지의 건강은 점점 더 나빠졌고 하루라도 빨리 잃어버린 아이를 찾고 싶다는 얘기를 계속했다.고은영이 비명을 지르자 배준우의 얼굴은 완전히 어두워졌고 바로 소리를 질렀다.“얼른 나가. 아니면 가만두지 않을 거야.”그 말을 끝으로 배준우는 몸을 돌려 병실로 들어갔다.그는 심지어 병실의 문을 진정훈의 코 앞에서 쾅 하고 닫았다.진정훈은 할 말을 잃었다.‘배준우는 정말 성격이 왜 저 모양이야? 저러고도 아빠가 될 자격이 있어? 아이와 와이프가 겁먹고 도망가지 않으면 다행이지.’이미 병실로 들어간 배준우는 진정훈의 이상함을 생각할 겨를도 없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얼음처럼 차가운 고은영의 손을 잡았다.“많이 아파?”“아파요, 너무 아파요.”아픈 것은 고은영이었지만 배준우의 이마에 식은땀이 가득 흐르고 있었다. 그는 왜 아이가 바로 나오지 않는지 원망했다.그는 고은영의 이마에 가득 흐르고 있는 땀을 닦아주었다.고은영은 지금 진통의 간격이 점점 짧아지고 있었다. 통증이 느껴졌다가 또 괜찮기를 반복적으로 겪고 있었다.그녀는 아플 때는 소리를 질렀고 아프지 않을 때는 눈물을 흘렸다.그 모습에 배준우의 마음은 더욱 조급해졌다.이 급박한 상황에 마침내 란완리조트
고은영은 코를 들이마셨다.“이러면 좀 덜 아파요.”말은 덜 아프다고 했지만 사실 고통을 분산하는 게 목표였을 뿐이다.배가 너무 아파서 팔을 꼬집으며 자신의 주의력을 분산하고 있었다.배준우는 꼬집어서 빨갛게 된 그녀의 팔을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아이를 낳으면서 본인의 온몸에 상처를 남겨야 하는 걸까.“안 낳으면 안 돼?”너무 다급함에 배준우는 모두가 경악할 만한 말을 뱉어냈다.병실 안에 있던 의사는 할 말을 잃었다.‘이건 아이를 낳는 건데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낳지 않을 수 있는 건가?’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었지만 아무도 배준우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라 집사가 그 순간 다급하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대표님. 너무 다급해하지 마세요. 아이는 당연히 낳아야죠.”그 말에 배준우는 이마를 짚었다.그는 지금 후회하고 있었다.그날 밤 왜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았던 걸까? 그가 조금만 이성을 갖고 있었더라면 고은영이 이렇게 아이를 낳는 고통을 느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고희주의 옆을 지키고 있던 고은지는 배준우가 고은영을 데리고 간 줄 알고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고은지는 병실에서 나왔을 때 청소하시는 분들이 바닥에 있는 물기를 닦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두 아주머니는 청소하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다들 젊어서 경험이 없으니까 아이를 낳을 때 정말 웃긴 일이 다 일어나지. 분명 양수가 터진 건데 바지에 오줌을 싼 줄 알았나 봐.”“그러게. 내가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를 생각하면 5개월이 지났는데도 임신한 줄 몰랐어. 배가 점점 커지는 걸 보고 다른 병에 걸린 줄 알았지 뭐야. 배 속에 암 덩어리라도 생긴 줄 알았어.”“하하하. 나도 그랬어. 가슴이 답답해서 심장병에 걸린 줄 알았지.”“방금 원장까지 내려오던데. 젊은 아가씨 신분이 대단한 사람인가 봐.”“그러게 성이 배 씨라고 했던 것 같은데.”다른 사람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고은지는 배 씨라는 말에 순간
강성으로 돌아온 뒤 며칠 동안 량천옥은 매일 고은영을 찾아갈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하지만 동시에 량천옥은 고은영을 만나는 것이 무서웠다.매번 고은영을 찾으러 갔을 때마다 그녀가 자기를 보고 겁을 먹는 모습이 량천옥의 마음속에 늘 떠올랐다.이때 량천옥은 고은영이 이미 병원에서 곧 아이를 낳는다는 소식을 듣고 더욱 불안해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량일은 량천옥이 무엇을 고민하고 두려워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고민하다가 말했다.“그래도 가서 봐야지.”병실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도 밖에서 지키고 있는 것만 해도 안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량천옥은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도우미에게 아이를 이해 준비한 물건과 산모 용품을 챙기라고 했다.아이에게 입힐 배냇저고리는 사 오자마자 따로 소독을 마쳤다.입힐 수 있을지 몰라도 량천옥은 준비한 것들을 챙겨 떠났다.량일과 함께 병원에 도착했을 때 고은영은 이미 분만실로 옮겨져 있었다.배준우와 란완 리조트에서 온 사람들이 분만실 앞을 지키고 있었다.배준우는 함께 들어가서 옆에서 지키고 싶었지만 의사와 집사는 그를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집사는 경험이 풍부했기에 남자와 여자 사이에 첫 번째 위기가 바로 여자가 아이를 낳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대신 혜나에게 재빨리 함께 들어가라고 했고 배준우는 문 앞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문 너머로 고은영의 비명이 희미하게 들려 더욱 불안해졌다.“빨리 문 열어줘요. 내가 들어가야 해요.”“대표님.”집사는 머리가 아팠다.배준우는 그렇게 많은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는 손을 뻗어 문을 열려고 했지만 문은 안에서 꽉 잠겨 있었다.병실에서 이곳까지 따라온 진정훈은 배준우가 안절부절못하고 서성이는 것을 보고 화를 내며 말했다.“아이를 낳는 것뿐인데 이렇게 생이별이라도 하는 것처럼 호들갑 떨지 말고 좀 조용히 해줄래요?”그제야 배준우는 진정훈이 아직도 이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량천옥도 진씨 가문의 사람이 아직도 있는 것이 놀라웠다.그리고 배준우는 진정훈이 ‘아이를
이제 그들은 그녀의 딸에게 손을 뻗으려고 했다. 량천옥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 사람들을 찢어버릴 것이다.진정훈은 숨을 크게 쉬었다.‘미쳤어. 미쳤어. 배씨 가문은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거야?’배준우를 바라보자 배준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직도 안 가?”‘하. 그래 이제 아주 두 모자께서 장단이 잘 맞는다는 거지? 이렇게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보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난 안 가요.”그렇게 말한 뒤 진정훈은 벤치에 앉았다.모두 할 말을 잃었다.저런 꼴을 당하고도 안 간다고?아니 도대체 이 일이 저 사람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진정훈은 사실 고은영이 걱정되었다. 비록 아직 확실한 건 없었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고은영 목덜미에 있는 상처가 그의 어머니가 말한 상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진정훈이 생각지도 못한 것은 그가 걱정되어 떠나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얼마나 막무가내로 보이는지였다.그리고 사람들은 진정훈이 도대체 배준우와 이렇게 억지를 부려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분만실에서 고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사람들은 더 이상 진정훈에게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분만실 안.고은영은 수중에서 출산하고 있었다. 혜나와 고은지는 모두 그녀의 곁에서 끊임없이 그녀를 진정시키고 있었다.그러나 엄청난 고통이 고은영을 덮쳤고 그녀는 너무 아파서 기절할 뻔했다.“안 돼. 너무 아파. 아.”혜나는 고은영이 너무 아파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계속 고은영의 땀을 닦아주며 말했다.“거의 다 됐어요 사모님. 교수님이 이미 7마디나 열렸다가 말씀하셨잖아요.”“그래 은영아. 7마디면 거의 다 됐어.”고은지도 순산으로 희주를 낳았기에 이미 경험이 있었다.그리고 의사도 검사를 통해 태아의 생태를 확인했고 고은영의 상황에서 순산이 가장 좋다는 판단을 내렸다.제왕 절개를 하면 결국 수술 후에 더 힘들다.“근데 나 너무 아파.”고은영은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고 그 모습에 고은지와 혜나는
량천옥은 항상 강한 사람이었고 원수가 기뻐할 일을 하는 사람이 절대로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우는 것을 몇 년 동안 아무도 보지 못했다.간호사는 물건을 가지고 다시 분만실로 들어갔다. 량천옥은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있는 배준우를 바라보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고마워.”그동안 량천옥은 계속 어떻게 하면 만회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끊임없이 고민했지만 결국 고은영을 만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오늘 이렇게 고은영이 아이를 낳을 때 그녀가 외할머니로서 직접 준비한 옷을 아기가 입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만족했다.배준우는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여전히 굳게 닫힌 분만실의 문을 바라보았다.진정훈은 그 장면을 보고 더욱 이해되지 않았다.‘정말 해가 서쪽에서 뜬 건가? 량천옥이라는 여자가 배준우의 와이프가 아이를 낳는데 아기용품을 준비해? 량천옥이 정말 배준우와 화해하고 싶어서 미친 건가?’그때 일어난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배준우와 량천옥은 절대 화해를 할 수 없는 사이라는 걸 알 것이다.분만실 안.수많은 진통을 겪은 끝에 고은영은 마침내 온몸에 힘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고 혜나는 아이가 나오는 것을 보고 찌푸리고 있던 얼굴을 펴며 환호했다.“사모님 됐어요.”고은영은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물속에 누운 채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분만실 밖.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순간 모두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금방 아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분만실 문이 열리는 데 겨의 20분 정도 걸렸다.간호사가 아이를 품에 안고 나왔지만 배준우는 아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분만실로 들어갔다.웃는 얼굴로 좋은 소식을 알리려던 간호사는 순간 깜짝 놀랐다.량천옥은 앞으로 나와 간호사의 품에 안겨 있는 귀여운 아기를 바라보았다. 량천옥이 몇 번이고 씻은 작은 배냇저고리를 입고 있는 아기를 본 순간 그녀의 마음은 더욱 부드러워졌다.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이리 주세요.”량천옥이 아기를 안으려고 하자 간호사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죄송합니
하지만 진성택은 다르다. 결국 그녀와 혈연관계가 있기 때문에 배준우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 시간 후, 배준우는 고은영을 밀크티 가게에 데려다주었다. “내가 같이 들어갈까?” 배준우가 물었다. “준우 씨는 그냥 기다려요. 당신을 보면 아마 바로 저세상으로 갈지도 몰라요.” ‘이 녀석 입이 참!’ 하지만 고은영이 말이 맞았다. 예전에 진성택과 량천옥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면 진성택은 항상 배준우에게 진유경을 미래의 아내로 삼으라고 했었고 그때 배준우는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은영과 결혼했다.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진성택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운명의 미묘함을 탄식할 것인가? 아니면 진유경 때문에 속상해할 것인가? 고은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눈에 보였다. 작은 원탁 옆에 앉아 있는 진성택이. 그는 손에 밀크티를 들고 있었다. 고은영이 두 걸음 내딛자마자 진성택도 그녀를 보았다. “왔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은 확실히 더 노화되어 보였고 얼굴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나 얼굴이 누렇게 변했고 예전만큼 눈빛도 밝지 않았다. 고은영은 이제 막 기운이 다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진성택은 확실히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날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아마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은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이거 마실 수 있어요?” 진성택은 손에 들고 있던 밀크티를 문득 깨닫고 곧바로 그녀에게 건넸다. “너를 위해 샀어. 여자애들은 다 밀크티 좋아하잖아. 너도 좋아하지?”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밀크티는 그녀의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다. 그런데 배준우와 결혼한 이후로 배준우는 그녀가 밀크티가 몸에 안 좋다며 못 마시게 했다. 진성택은 그녀가 음료를 마시지 않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실 유경이에게 이런 걸 사준 적이 없었어. 진씨 가문의
전화 너머의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을 듣고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 전에는 네 감정을 고려하지 못했어.” 그 순간, 진성택은 자신이 고은영에게 대했던 태도가 문제였음을 인정했다. 고은영이 말하기도 전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은영아,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야. 큰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반응이 무뎌지는 법이잖아. 나는 그동안 계속 너를 찾고 있었어. 그런데 네 소식을 듣고 나서 어떻게 너를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네가 이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거란 건 알지만 나도 그런 감정이 싫다.” 감정과 이해라. 처음에는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고 쳐도 그럼 그 후에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진짜 아이러니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늘 내가 너를 찾은 건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 “그게 진유경의 일 때문인가요?” 고은영은 본능적으로 날카롭게 반문했다. 무슨 일이든 그가 지금까지의 태도를 어떻게 설명하든 고은영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지금 그가 자신을 찾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니, 네 어머니 때문이야.” 이 말은 그가 어쩔 수 없이 털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전화상에서도 고은영은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죄책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될수록 그녀는 더 비웃었다. “내가 이 시간 동안 살 수 있는 건 모두 하늘이 준 기회야. 빼앗은 기회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내가 너를 만날 기회도 얼마 안 남았지.” 그는 매우 허약해 보였다. 고은영은 눈썹을 찌푸렸고 이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진성택이 마치 도덕적으로 자신을 억지로 끌어들여서 그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자신이 그를 만나지 않으면 너무 냉정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예요?” “병원 맞은편의 밀크티 가게에 있어.” 그는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의사들이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
안지영은 화가 나서 전화를 부수고는 바로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안열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앞으로 나가서 잡았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태웅을 죽여야겠어요!” ‘아, 진짜 더는 참을 수 없어.’ 나태웅은 정말 죽어 마땅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으로 그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님은 아직 근육도 제대로 안 키우셨잖아요. 나태웅을 찢어낼 힘이 있을까요?” 원래도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안열의 말에 더 화가 나버렸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더는 못 참겠어!’ 안열은 안지영이 방향을 잃고 분노만 가득한 상태를 보고 바로 말했다. “이건 결국 넷째 도련님께 말씀드려야 할 문제예요.” “또 장선명 씨더러 처리하라고요?” 장선명의 수법은 이미 잘 봤다. 그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써서 그녀조차도 반응할 틈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해버린다. 그래서 만약 이 문제를 장선명이 처리하면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건, 안돼요!” 안지영은 손을 휙휙 내저었다. 장선명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밀어붙일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왜요?” “그거 기억 안 나요? 지난번에 장선명 씨가 그렇게 처리했을 때 그 몇 억을 가지고 나태웅을 미쳐버리게 만들었잖아요. 이제 나태웅은 진짜 미친 사람이에요.” 특히 지금 그의 행동들은 안지영 마음속에 그가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라, 이 이유가 참 적합하네.’ 안열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에도 강하게 나가면 그 사람은 진짜 미칠거예요. 그럼 우리 모두 큰일 난다니까요!” “혹시 대표님은 무서운 건가요?” “무섭지 않아요. 그런 문제는 제가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투가 거칠어졌다. 아까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태웅의 집안까지 욕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이미 화가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해봐, 정말이야?” 다시 입을 열었고 그의 말투에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전화가 아니라 만약 눈앞에 있었다면 안지영은 나태웅이 자신을 바로 목 졸라 죽일 것 같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안지영!” “난 장선명 씨와 약혼한 상태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너는 네 사촌 걱정이나 해. 내가 너희 나씨 가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보네. 여자는 불여우처럼 순수한 척, 남자는 정신병자에 하나도 좋은 게 없어. 그 뿌리가 다 썩었어!” 그녀는 작은 입술로 욕을 퍼부었다. 안열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이 저절로 떨렸다. 아까는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더니 지금은 완전히 미친 듯이 말하고 있었다. 안지영은 정말로 미친 듯이 화가 난 상태였다. “사과하라고?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사과해야 하는 건데! 내 아버지는 아직 병원에 누워 있고 네 사촌은 와서 날 때렸는데 나더러 사과하라고? 너희 나씨 가문 집안 교육이 이 모양이야? 다 멍청이들이야?” 이제는 나태웅의 조상까지 욕을 먹었다. 안지영의 이 폭발적인 성격에 안열은 이제야 제대로 실감했다. 안지영은 욕하는 건 진짜 잘했다. 이제는 나씨 가문이나 하씨 가문, 심지어 그들의 조상까지도 욕을 먹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욕설을 들으며 나태웅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갔다. 그리고 안지영의 입은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폭풍처럼 계속 퍼부어졌다. 한참 동안 욕을 쏟아내고 겨우 숨을 골랐다. “더 욕할 거야?” 그의 말투는 안지영의 폭발적인 분노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차갑고 차분했다. “하, 왜? 더 듣고 싶은 거야? 너...” “더 욕할 거 없으면 내일 병원에 같이 가자.” 그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냉랭했다. ‘젠장, 이 사람은 정말 사람 말을 못 알아듣나?’ “나더러 사과하라고? 생각도 하지 마! 꿈도 꾸지 마!” 꿈속에서도 사과할 일 없을 것이다. “그럼, 한 가지 말할 게 있어.”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