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은영은 코를 들이마셨다.“이러면 좀 덜 아파요.”말은 덜 아프다고 했지만 사실 고통을 분산하는 게 목표였을 뿐이다.배가 너무 아파서 팔을 꼬집으며 자신의 주의력을 분산하고 있었다.배준우는 꼬집어서 빨갛게 된 그녀의 팔을 보며 마음이 너무 아팠다.이게 도대체 무슨 일일까? 아이를 낳으면서 본인의 온몸에 상처를 남겨야 하는 걸까.“안 낳으면 안 돼?”너무 다급함에 배준우는 모두가 경악할 만한 말을 뱉어냈다.병실 안에 있던 의사는 할 말을 잃었다.‘이건 아이를 낳는 건데 아이를 낳지 않겠다고 낳지 않을 수 있는 건가?’너무 어처구니가 없는 말이었지만 아무도 배준우에게 뭐라고 하는 사람은 없었다.라 집사가 그 순간 다급하게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대표님. 너무 다급해하지 마세요. 아이는 당연히 낳아야죠.”그 말에 배준우는 이마를 짚었다.그는 지금 후회하고 있었다.그날 밤 왜 정신을 제대로 차리지 않았던 걸까? 그가 조금만 이성을 갖고 있었더라면 고은영이 이렇게 아이를 낳는 고통을 느낄 필요는 없었을 것이다.고희주의 옆을 지키고 있던 고은지는 배준우가 고은영을 데리고 간 줄 알고 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졌는지 하나도 신경 쓰지 않았다.고은지는 병실에서 나왔을 때 청소하시는 분들이 바닥에 있는 물기를 닦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 두 아주머니는 청소하며 수다를 떨고 있었다.“다들 젊어서 경험이 없으니까 아이를 낳을 때 정말 웃긴 일이 다 일어나지. 분명 양수가 터진 건데 바지에 오줌을 싼 줄 알았나 봐.”“그러게. 내가 첫 아이를 임신했을 때를 생각하면 5개월이 지났는데도 임신한 줄 몰랐어. 배가 점점 커지는 걸 보고 다른 병에 걸린 줄 알았지 뭐야. 배 속에 암 덩어리라도 생긴 줄 알았어.”“하하하. 나도 그랬어. 가슴이 답답해서 심장병에 걸린 줄 알았지.”“방금 원장까지 내려오던데. 젊은 아가씨 신분이 대단한 사람인가 봐.”“그러게 성이 배 씨라고 했던 것 같은데.”다른 사람이 생각하다가 대답했다.고은지는 배 씨라는 말에 순간
강성으로 돌아온 뒤 며칠 동안 량천옥은 매일 고은영을 찾아갈 방법에 대해 생각했다.하지만 동시에 량천옥은 고은영을 만나는 것이 무서웠다.매번 고은영을 찾으러 갔을 때마다 그녀가 자기를 보고 겁을 먹는 모습이 량천옥의 마음속에 늘 떠올랐다.이때 량천옥은 고은영이 이미 병원에서 곧 아이를 낳는다는 소식을 듣고 더욱 불안해져 어찌할 바를 몰랐다.량일은 량천옥이 무엇을 고민하고 두려워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고민하다가 말했다.“그래도 가서 봐야지.”병실에 들어가지 못한다고 해도 밖에서 지키고 있는 것만 해도 안심할 수 있었기 때문이다.량천옥은 고개를 끄덕이며 얼른 도우미에게 아이를 이해 준비한 물건과 산모 용품을 챙기라고 했다.아이에게 입힐 배냇저고리는 사 오자마자 따로 소독을 마쳤다.입힐 수 있을지 몰라도 량천옥은 준비한 것들을 챙겨 떠났다.량일과 함께 병원에 도착했을 때 고은영은 이미 분만실로 옮겨져 있었다.배준우와 란완 리조트에서 온 사람들이 분만실 앞을 지키고 있었다.배준우는 함께 들어가서 옆에서 지키고 싶었지만 의사와 집사는 그를 들어가지 못하게 했다.집사는 경험이 풍부했기에 남자와 여자 사이에 첫 번째 위기가 바로 여자가 아이를 낳는 순간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대신 혜나에게 재빨리 함께 들어가라고 했고 배준우는 문 앞을 지킬 수밖에 없었다.문 너머로 고은영의 비명이 희미하게 들려 더욱 불안해졌다.“빨리 문 열어줘요. 내가 들어가야 해요.”“대표님.”집사는 머리가 아팠다.배준우는 그렇게 많은 걸 신경 쓸 여유가 없었다. 그는 손을 뻗어 문을 열려고 했지만 문은 안에서 꽉 잠겨 있었다.병실에서 이곳까지 따라온 진정훈은 배준우가 안절부절못하고 서성이는 것을 보고 화를 내며 말했다.“아이를 낳는 것뿐인데 이렇게 생이별이라도 하는 것처럼 호들갑 떨지 말고 좀 조용히 해줄래요?”그제야 배준우는 진정훈이 아직도 이곳에 있다는 것을 깨달았다.량천옥도 진씨 가문의 사람이 아직도 있는 것이 놀라웠다.그리고 배준우는 진정훈이 ‘아이를
이제 그들은 그녀의 딸에게 손을 뻗으려고 했다. 량천옥은 자신의 목숨을 걸고서라도 이 사람들을 찢어버릴 것이다.진정훈은 숨을 크게 쉬었다.‘미쳤어. 미쳤어. 배씨 가문은 도대체 무슨 상황인 거야?’배준우를 바라보자 배준우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아직도 안 가?”‘하. 그래 이제 아주 두 모자께서 장단이 잘 맞는다는 거지? 이렇게 사이가 좋은 모습을 보니 도대체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겠네?’“난 안 가요.”그렇게 말한 뒤 진정훈은 벤치에 앉았다.모두 할 말을 잃었다.저런 꼴을 당하고도 안 간다고?아니 도대체 이 일이 저 사람과 무슨 상관이 있는 걸까?진정훈은 사실 고은영이 걱정되었다. 비록 아직 확실한 건 없었지만 그는 직감적으로 고은영 목덜미에 있는 상처가 그의 어머니가 말한 상처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하지만 지금 진정훈이 생각지도 못한 것은 그가 걱정되어 떠나지 않는 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얼마나 막무가내로 보이는지였다.그리고 사람들은 진정훈이 도대체 배준우와 이렇게 억지를 부려 얻고 싶은 것이 무엇인지 몰랐다.분만실에서 고은영의 목소리가 들려왔고 사람들은 더 이상 진정훈에게 관심을 기울일 여유가 없었다.분만실 안.고은영은 수중에서 출산하고 있었다. 혜나와 고은지는 모두 그녀의 곁에서 끊임없이 그녀를 진정시키고 있었다.그러나 엄청난 고통이 고은영을 덮쳤고 그녀는 너무 아파서 기절할 뻔했다.“안 돼. 너무 아파. 아.”혜나는 고은영이 너무 아파하는 것을 보고 마음이 아팠다.계속 고은영의 땀을 닦아주며 말했다.“거의 다 됐어요 사모님. 교수님이 이미 7마디나 열렸다가 말씀하셨잖아요.”“그래 은영아. 7마디면 거의 다 됐어.”고은지도 순산으로 희주를 낳았기에 이미 경험이 있었다.그리고 의사도 검사를 통해 태아의 생태를 확인했고 고은영의 상황에서 순산이 가장 좋다는 판단을 내렸다.제왕 절개를 하면 결국 수술 후에 더 힘들다.“근데 나 너무 아파.”고은영은 끊임없이 눈물을 흘렸고 그 모습에 고은지와 혜나는
량천옥은 항상 강한 사람이었고 원수가 기뻐할 일을 하는 사람이 절대로 아니었다. 그렇기에 그녀가 우는 것을 몇 년 동안 아무도 보지 못했다.간호사는 물건을 가지고 다시 분만실로 들어갔다. 량천옥은 기분 나쁜 표정을 짓고 있는 배준우를 바라보며 마침내 입을 열었다.“고마워.”그동안 량천옥은 계속 어떻게 하면 만회할 수 있을지 고민했다.끊임없이 고민했지만 결국 고은영을 만날 용기도 나지 않았다. 오늘 이렇게 고은영이 아이를 낳을 때 그녀가 외할머니로서 직접 준비한 옷을 아기가 입어주는 것만으로도 그녀는 만족했다.배준우는 그녀를 신경 쓰지 않고 여전히 굳게 닫힌 분만실의 문을 바라보았다.진정훈은 그 장면을 보고 더욱 이해되지 않았다.‘정말 해가 서쪽에서 뜬 건가? 량천옥이라는 여자가 배준우의 와이프가 아이를 낳는데 아기용품을 준비해? 량천옥이 정말 배준우와 화해하고 싶어서 미친 건가?’그때 일어난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배준우와 량천옥은 절대 화해를 할 수 없는 사이라는 걸 알 것이다.분만실 안.수많은 진통을 겪은 끝에 고은영은 마침내 온몸에 힘이 풀리는 느낌이 들었고 혜나는 아이가 나오는 것을 보고 찌푸리고 있던 얼굴을 펴며 환호했다.“사모님 됐어요.”고은영은 온몸에 힘이 하나도 없어 물속에 누운 채 완전히 의식을 잃었다.분만실 밖.아기의 울음소리가 들리는 순간 모두 긴장한 얼굴을 하고 있었다.금방 아기가 나올 줄 알았는데 분만실 문이 열리는 데 겨의 20분 정도 걸렸다.간호사가 아이를 품에 안고 나왔지만 배준우는 아이를 쳐다보지도 않고 바로 분만실로 들어갔다.웃는 얼굴로 좋은 소식을 알리려던 간호사는 순간 깜짝 놀랐다.량천옥은 앞으로 나와 간호사의 품에 안겨 있는 귀여운 아기를 바라보았다. 량천옥이 몇 번이고 씻은 작은 배냇저고리를 입고 있는 아기를 본 순간 그녀의 마음은 더욱 부드러워졌다.그녀는 부드럽게 말했다.“이리 주세요.”량천옥이 아기를 안으려고 하자 간호사가 여전히 입가에 미소를 지은 채 말했다.“죄송합니
그럼 진정훈은? 진유경에게 줄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온 것일까?고은영이 아들을 낳았는지 딸을 낳았는지 확인해서, 배씨 가문에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보려고 온 것일까?하지만 그녀는 이미 소식을 들었었다. 요즘 진유경은 계속 유청에게 접근하고 있는데 무슨 꿍꿍이인지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안색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더니 진정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더욱 차가워졌다.“제가 설명을 해드려야 할 필요가 있나요?”“당연히 필요 없죠. 하지만 진유경에게 전하세요, 배씨 가문에 고은영이 있든 없든 진유경의 자리는 없다고. 그러니 쓸데없는 노력은 하지 말라고요.”진정훈은 량천옥이 미친 여자라고 생각했다.진유경을 하늘처럼 떠받들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무슨 짓인 걸까?‘아무리 이용 가치가 없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밟아댈 필요가 있나? 이 사람도 참...’이 순간, 진정훈과 량천옥 모두는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량천옥은 진유경이 배준우에게 접근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진정훈은 량천옥이 진유경의 험담을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그래서 둘은 분만실 문 앞에서 서로 물고 뜯으며 싸우기 시작했다.한편, 분만실 안.배준우가 들어왔을 때, 혜나는 이미 고은영을 도와 옷을 갈아입힌 뒤 머리를 정리 해주고 있었다.이것은 분만실에 들어오기 전 집사가 혜나에게 당부했던 것이다.배준우는 고은영이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보자 목이 메었다.곧 그는 다가가서 고은영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그러자 고은영은 희미하게 눈을 뜨더니 흐느끼며 중얼거렸다.“준우 씨 나 너무 아파요.”“응, 미안해. 이제 다시는 아프게 하지 않을게.”배준우는 마음이 아팠다.조금 전 들어왔을 때 의료진은 그때까지도 마지막 피를 닦고 있었다!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그래서 가장 좋은 의사를 찾았지만 그럼에도 고은영이 세 시간 동안이나 고통을 겪게 했다.고은영은 코를 훌쩍였다. 아까의 상황을 떠올리니 또다시
량천옥은 배준우에게 많은 말을 했다.하지만 그녀는 결국 당장이라도 병실에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량일과 함께 떠났다.엘리베이터 안에서 량일은 앞에 서 있는 량천옥의 뒷모습을 보며 갑자기 마음이 아파졌다.“왜 들어가서 안 봐?’량천옥이 말했다.“들어가서 뭐라고 말할까요? 준우랑 화해하고 싶으니 잘 좀 말해달라고요?”외부인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울 때 가끔 동물적인 감각이 발휘될 때가 있다.때문에 그녀는 고은영이 문득 무언가를 눈치챌까 봐 두려웠다.량일이 말했다.“만약 정말 원한다면 사실...”“엄마, 전 그 아이를 죽일 뻔했어요!”그 말에 량일은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사실? 사실 뭐? 사실 내가 은영이랑 만날 수 있다는 거? 내가 거의 죽일 뻔했는데... 어떻게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겠어?’안지영은 고은영이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일을 제쳐두고 병원으로 달려갔다.그러다 병원 복도에서 그녀는 진정훈을 보게 되었다.그가 여기 있는 것을 보고 안지영도 충격을 받았다.이윽고 그녀가 다가가서 진정훈을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도련님은 여기서 뭐 하세요?”진정훈은 그녀의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고 물었다.“그쪽은 여기 뭐 하러 오셨는데요?”“저는 은영이 보러 왔죠!”“저도 마찬가지입니다!”“정말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요?”안지영은 무례하게 말했다.‘진유경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게 아니어야 할 텐데...’고은영의 머리카락을 얻어가야 했던 진정훈은 떠날 수 없었다.하지만 조금 전 분만실에 들어갔을 때, 모든 것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어 그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도둑 보듯 경계하고 있었다.그는 단지 몇 가닥의 머리카락을 원하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아이를 훔치려고 하는 줄 알았다.진정훈이 물었다.“하늘 그룹 일은 다 처리했나 봐요? 다른 사람 일 신경 쓸 시간도 있고 말이죠.”그
“됐어, 이제 뚝. 그래서 여자아이야, 남자아이야?”“남자아이야, 내가 말해줬잖아.”남자아이라고 하자 안지영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자아이 좋지, 하하하!”하지만 그 말을 들은 고은영의 입가가 떨렸다.“왜 나를 그렇게 쳐다봐?”“너도 아들이 더 좋아?”“음... 뭐 그럴지도!”곧 안지영도 고은영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깨달았다.그녀는 자신 역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신이 혐오스러워졌다.“남자아이면 좋지. 너희 언니도 그때 만약 아들을 낳았다면 조씨 가문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고생했을까? 안 그래?”때로는 남아선호사상이 환경에 의해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고희주의 상황을 생각하며 고은영은 침묵했다.“남아선호사상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난 그냥 네 삶이 좀 더 나아지길 바라서 그러는 거야.”현재 배씨 가문의 상황을 안지영은 다 알고 있었다.배준우가 아무리 고은영을 보호해 준다 해도 다른 사람들의 태도는 좋지 않았었다.하지만 이제 그녀가 아들을 낳았으니 안지영이 보기에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것 같았다.“그래서 오늘 왜 갑자기 아이를 낳게 된 건데? 출산 예정일이 아직 며칠 남았다고 하지 않았어?”안지영은 해야 할 일들을 일찍 처리하고 고은영과 함께 출산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러나 들려온 소식은 뜻밖에도 고은영이 이미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었다.갑작스러운 물음에 고은영의 얼굴이 새빨개졌고 그 모습을 본 고은영이 또다시 물었다.“왜 그래? 넘어지기라도 했어?”임산부는 뜻밖의 사고가 나지 않게 늘 조심해야 했다.그렇기 때문에 장선명의 협박을 받았을 때 그녀는 뜻밖의 사고가 나는 게 두려워 고은영의 행방을 말했던 것이다. 고은영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안 넘어졌어.”“그럼 어떻게 된 거야?”“그게, 그게 그러니까...”당시 상황을 떠올리자 고은영도 퍽 난감해졌고 많이 부끄러웠다.“말해보라니까?”이런 그녀의 모습은 안지영은 고은영이 무슨 억울한 일을 당했다
안지영도 웃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이 그 정도로 어리석은 걸 생각하면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배준우는 라 집사에게 고은영을 란완리조트로 데려가라고 했다.라 집사도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춘 병원이라 해도 제한이 있기는 마련이니 말이다.란완리조트 쪽은 의료팀이든 의료 장비든 다 준비가 되어 있었다.점심때 고은영에게 음식을 먹이고 나서, 라 집사는 차를 준비해서 데려가려고 했다.안지영도 따라가고 싶었지만, 병원에서 출발도 하기 전에 회사에서 전화가 오는 바람에 갈 수 없었다.“은영아, 나 지금 회사에 가야 해. 저녁에 다시 올게.”겨우 안지영이 떠난다는 생각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저녁에 또 온다는 말에 배준우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떠나기 전에, 안지영은 무언가 생각난 듯 고은영에게 말했다.“맞다, 너한테 2천만 원 송금했어. 먹고 싶은 거, 마시고 싶은 거 다 사 먹어.”이 말에 배준우는 더욱 화가 났다.‘장선명은 대체 뭐 하는 거야? 자기 여자 하나 관리하지 못하고. 내 여자한테 왜 자기가 돈을 줘?’배준우가 어두운 얼굴로 서 있었지만, 안지영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급히 떠났다.곧 고은영의 핸드폰에 송금을 받았다는 알림이 울렸다.그러자 배준우는 고은영을 안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더니 참고 참다 결국 말했다.“그 돈 돌려줘.”“...”고은영은 애초에 안지영의 돈을 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조금 전 하도 급히 떠나는 바람에 미처 말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설마 또 화가 난 거야?’그때, 배준우가 다시 물었다.“알아들었어?”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배준우는 목소리를 높였다.그러나 여전히 고은영은 묵묵부답이었고 배준우는 더욱더 화가 치밀어올랐다.이윽고 그가 고개를 숙여보니 고은영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자신을 보고 있는 게 보였다.배준우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왜 그래?”‘왜 또 울려고 하는 거야!’고은영의 빨개진 작은 코가
안지영은 오후 두 시에 중요한 회의가 있었다. 하지만 안열은 사무실에서 안지영을 발견하지 못했다.‘설마 내가 한눈판 사이에 두 분이 나간 건가?’1시 30분이 되었지만 여전히 사람이 보이지 않았다. 안열은 급한 마음에 얼른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하지만 전화를 받은 건 장선명이었다.“무슨 일이야.”그 말에서 안열은 이미 장선명의 짜증을 읽어냈다.안열은 약간 놀랐다.“선, 선명 도련님? 30분 뒤 안 대표님이 참석하셔야 하는 중요한 회의가 있습니다. 지금 안 대표님은 어디에...”휴게실에 있는 장선명은 고개를 숙이고 품에서 자고 있는 안지영을 쳐다보았다.오전에 너무 과했던 탓일까, 안지영은 계속 쭉 자고 있었다.“그냥 회의를 취소해.”“네? 그건...”“무슨 문제라도 있어?”“아, 아니요. 오늘 회의는 부승호도 참석하는 회의라... 알잖습니까.”부승호는 바로 하늘 그룹을 배신한 사람이다. 그러니 이번 회의가 얼마나 중요한지 장선명은 바로 알 수 있었다.장선명이 차가운 눈빛으로 얘기했다.“부승호한테 얘기해. 오늘 저녁 날 만나러 오라고.”“직접 나서서 안 대표님을 대신하실 생각입니까?”안열이 놀라서 물었다.예전에는 안지영이 성장할 수 있게 혼자 내버려두지 않았던가.그래서 안열과 장선명 다 안지영의 뒤에서 묵묵히 안지영의 성장을 지켜보고 있었다.그동안 안지영은 많은 일을 혼자서 해결했다.부승호와 마주하는 것도 안지영에게 있어서는 그동안의 실력을 검증할 가장 좋은 기회다.“무슨 문제라도 있어?”그 말에 안열은 바로 입을 다물었다.“아닙니다!”안열은 여전히 장선명의 의도를 알 수 없었다. 그래서 그저 장선명이 원하는 대로 움직이기로 했다.안열은 얼른 눈치껏 전화를 끊었다. 장선명은 전화가 끊긴 것을 확인하고 바로 폰을 꺼버렸다.안지영은 이미 그들의 목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장선명은 안지영의 머리를 부드럽게 쓰다듬어 주었다.“지금 몇 시예요?”“피곤하면 그냥 자.”장선명이 부드러운 목소리로 얘기했다.안지영은 눈
테이블에는 다른 사진이 더욱 많았다.나태웅은 정말 이를 갈고 해외로 간 것이 틀림없었다.이것까지 다 알아내다니...이건 장선명의 가장 어두운 과거이자 다시는 들추고 싶지 않은 일들이다.하지만 그 일들이 지금은 나태웅 때문에 다시 밝혀지게 되었다.그동안 장선명이 마주하고 싶지 않았던, 마주할 수 없었던 과거들이었지만, 안지영이 건네준 사진을 보면서 장선명은 어느새 그 일에 대한 스트레스를 내려놓았다는 것을 발견했다.지금 와서 과거의 일을 돌이켜보니 아무런 감정도 없었다.“그 여자가 누구인지 얘기하라고요!”안지영이 화가 난 목소리로 얘기했다. 그러면서 장선명의 품에서 나오려고 안간힘을 썼다.하지만 장선명은 여전히 안지영을 꾹 잡고 도망치지 못하게 했다.그리고 라이터를 꺼내 불을 붙이더니 안지영의 앞에서 사진을 바로 불태워버렸다.“뭐, 뭐 하는 거예요!”안지영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장선명은 불에 탄 사진을 그대로 재떨이 속으로 던져버렸다.담배를 피우는 장선명을 위해 안열이 준비해 둔 재떨이였다.안지영 앞에서는 담배를 피우지 않아 그동안은 쓸모가 없었지만 지금은 아주 유용했다.테이블 위의 사진은 다 재떨이 안으로 들어가 활활 타올랐다.안지영은 멍해서 물었다.“그렇게 변명도 하고 싶지 않다는 거예요?”“변명? 이건 다 지나간 일일 뿐이야. 너무 오래전 일이라서 다 잊었고. 뭐 어떻게 변명해야 할지 생각도 안 나네.”“...잊었다고요?”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안열이 그러지 않았던가.장선명에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었다고.사진 속의 여자들이 모두 비슷하게 생긴 걸 보면 장선명은 정말 그 여자를 아주 사랑한 것 같았다.그런데 그걸 잊다니.안지영은 믿을 수 없었다.그런 안지영의 모습을 본 장선명은 환하게 웃으면서 안지영의 머리를 쓰다듬더니 또 입술을 맞췄다.“읍... 아니, 읍...”‘미남계를 쓰겠다는 거야?’안지영은 약간 화가 났다. 원래 이런 건 그냥 두면 찝찝한 편이다. 사실을 알지 못하면 마음에 걸리니까 말이다.
사무실에 들어간 장선명은 안지영이 그를 등지고 의자에 앉아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이미 뒷모습에서부터 안지영의 화난 모습이 보였다.앞으로 다가가 의자를 돌린 장선명이 두 손으로 의자의 손잡이를 잡았다.그리고 웃는 눈으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안지영이 화가 나서 씩씩 대는 모습을 보았을 때도 더욱 환하게 웃었다.하지만 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을 보면서 더욱 화가 났다.“웃겨요?”“질투하는 거야?”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입을 열었다.안지영은 장선명의 말을 듣고 약간 놀랐다.“화 안 났어요. 난 화를 잘 안 내는 사람이에요.”“그래?”“...”질투냐고?안지영은 질투가 뭔지 몰랐다.하지만 눈앞의 이 남자가 다른 여자를 위해서 목숨을 걸었다는 것을 떠올리면 속이 좋지 않았다.생각에 잠겨있을 때 갑자기 안지영이 놀라서 소리를 질렀다.장선명이 안지영을 번쩍 안아 들고 의자에 앉은 것이었다.장선명은 웃음기 가득한 시선으로 안지영을 바라보고 있었다.안지영은 놀라서 허둥대면서 얘기했다.“이거 놔요!”하지만 장선명은 움직이는 안지영을 놔주지 않고 그대로 입술을 가져갔다.안지영이 버둥댈수록 장선명은 더욱 깊게 안지영의 입술을 머금었다.안지영은 그런 장선명에게서 벗어날 수가 없었다.결국 안지영이 숨을 쉬지 못하자 장선명이 안지영을 풀어주었다.안지영이 손을 들어 장선명의 뺨을 치려고 할 때, 장선명이 안지영의 손목을 잡고 웃으면서 물었다.“화났어?”“흥.”안지영은 화가 났다.그것도 단단히 화가 났다.안지영은 장선명이 점심 전에 도착한 것이 분명 그 일 때문이라고 생각했다.안열이 알려줬을 테니까 말이다.그런데 와서 아무 해명도 하지 않고 입술부터 들이미니, 너무 미웠다.장선명은 그런 안지영을 보면서 짜증스러운 기색을 내비치지 않았다.오히려 속 편히 웃으면서 안지영을 바라보았다.그리고 마지막에는 한숨까지 푹 내쉬었다.“그렇게 화가 난 거야?”말을 마치고는 안지영의 이마에 가볍게 키스했다.안지영은 이제 더는 참을 수 없었다.“오자
“네? 그게 무슨 뜻이에요?”안지영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안열을 바라봤다. 안열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말했다.“어휴, 됐어요. 더 얘기해 봤자 짜증만 나요.”더 말했다간 정말 참지 못하고 화를 낼 것 같았다.나태웅에 대해 할 욕은 이틀 밤을 새워도 모자랄 정도였다.“...”사람을 화나게 만드는 법은 두 가지가 있다. 하나는 말을 하다가 마는 것이고...안지영은 뾰로통해진 채로 안열의 상처를 치료해 주었다.안열은 휙 돌아서 사무실을 나갔다.지금 안열의 머릿속에는 나태웅에 대한 욕뿐이었다.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감히 또 안지영을 찾아오다니.도대체 무슨 낯짝으로 온 건지......사무실에 홀로 남겨진 안지영은 아까 안열이 한 말을 떠올렸다.그게 도대체 무슨 뜻이지?평소에는 똑 부러지고 영리한 안지영이지만, 이번만큼은 안열의 말에 머릿속이 복잡해졌다.뻔뻔하다는 뜻이라면... 나태웅은 원래부터 그렇게 뻔뻔했다.하지만 이번은...안열은 복잡한 생각에 머리를 휙 털었다.그리고 사무실을 나오자마자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었다.원래는 장선면은 점심쯤에 안지영을 데리러 올 예정이었지만, 안지영의 전화를 받고 바로 달려왔다.안지영의 사무실에 들어가기 전, 장선명은 안열이 자리에 앉아 아이스팩을 발 위에 올려놓은 것을 발견했다.“다리는 왜 그래?”갑작스러운 목소리에 안열은 깜짝 놀라 손에 쥔 아이스팩을 떨어뜨릴 뻔했다.장선명을 보자, 안열은 얼른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읏...!”하지만 고통을 참지 못하고 신음을 흘리고 말았다.“어떻게 된 거야?” 그렇게 묻는 장선명의 목소리는 차가웠다.안열을 이렇게 만든 사람이 있다는 것 자체가 믿기 힘들었다.안열은 고개를 숙였다. 차마 나태웅 때문이라는 말은 꺼내지 못해 그저 둘러댔다.“그냥... 실수로 넘어진 거예요.” “어떻게 넘어졌길래 거기만 그렇게 다치는 거야?” 장선명의 시선은 예리했다.보통 넘어진다면 무릎이 먼저 다치기 마련인데 안열은 무릎은 멀쩡하
나태웅은 믿을 구석 하나 없는 사람이긴 하지만 나태웅이 가져온 정보 때문에 안지영은 더욱 속이 복잡해졌다.안열은 결국 고통을 참지 못하고 얘기했다.“약 좀 바르고 올게요.”그 말에 안지영은 생각이 끊겨버렸다.정신을 차린 안지영은 안열의 발등이 부어올랐다는 것을 발견했다. 장선명이 사랑하는 사람...하지만 그 생각도 잠시, 안열은 본 안지영은 결국 또 나태웅에게 화가 났다.“왜 이렇게 된 거예요. 정말 나태웅을 못 이기는 거예요?”아무리 그렇다고 해도 일방적으로 맞을 것 같지는 않은데 말이다.밖에서 싸우는 소리도 듣지 못했는데 이런 일이 일어나다니.안열은 아파서 제대로 걷지도 못했다.“제가 만약 나태웅과 싸워서 이길 수 있었다면 진작 죽여버렸을 겁니다.”“...”진작 죽여버린다니.그 ‘진작’은 과연 언제일까?다시 생각해도 나태웅은 정말 독설만 퍼붓는 사람이었다. 안열을 볼 때마다 개라고 욕하니까 말이다.그래도 전에 동영 그룹에서 출근할 때는 이렇지 않았던 것 같은데 말이다.안지영은 우물쭈물하면서 안열에게 물었다.“두 사람, 전에도 안 좋은 사이였어요?”안열과 나태웅이 만날 때마다 안열은 대수롭지 않아 했고 나태웅은 화를 냈었다.그러니 두 사람 사이에 아무 일도 없었다는 건 말이 안 되었다.그렇게 물으면서 안지영이 구급상자를 가져와 상처를 처리해 주었다.안열이 거의 소리를 지르면서 얘기했다.“앗... 아파요... 아파...”“...”안열은 평소에 고통에도 끄떡없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이렇게 아파하는 것을 보니 나태웅이 얼마나 아프게 때린 것인지 알 수 있었다.“제가 무슨 원한이 있겠어요! 한 것도 없는데...”“...”“굳이 꼽자면... 안 대표님 일로 원한이 있는 거죠.”“나요?”“네. 저는 안 대표님이 선명 도련님과 결혼하기를 바랐으니까요. 아마도 그것 때문에 저를 싫어하는 게 아닐까요?”안열을 말을 들은 안지영은 약간 마음이 복잡했지만 또 본인의 선택이 틀린 건 아니라고 생각했다.안열은 장선명의 부하로
“난 대체 누구의 대용품이었어요?”안지영이 바로 물었다.안열은 장선명과 오랜 시간 함께 했으니 사진 속의 사람이 누구인지 다 알 것이다. 그러니 장선명이 진짜 사랑하는 사람이 누구인지도 알 것이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표정이 그대로 굳어버렸다.“그건...”“두 사람은 왜 헤어진 거예요?”안지영이 또 물었다.“...”안열을 그 어느 질문에도 대답할 수 없었다.안열은 이 분위기가 심상치 않다는 것을 느꼈다.안지영이 얼마나 칼 같은 사람인지, 안열은 잘 알았다.물론 안지영과 장성명의 사이가 안지영 때문에 시작한 것이라고 하지만 장선명에게 설레지 않았다면 안지영은 장선명과 결혼하지 않았을 것이다.안열은 결국 또 속으로 나태웅을 욕했다.“그렇게 생각하지 말아요. 선명 도련님이 안 대표님과 결혼하려는 건 안 대표님을 사랑해서지, 다른 사람의 대용품으로 생각하는 게 아니니까요.”“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직도 연락해요?”“절대 아닙니다. 제가 맹세할게요!”안열이 진지하게 얘기했다. 안지영이 괜히 장선명을 이상하게 생각할까 봐 무서웠기 때문이다.안지영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안열을 쳐다보았다. 안열은 그런 눈빛을 마주하고 약간 긴장했다.“진짜예요. 사진 속의 여자들과 아무 사이도 아닙니다. 선명 도련님이 얼마나 칼 같은 분인지 잘 알잖아요.”“하긴, 안열 씨는 선명 씨 사람이니까 그편을 들겠죠.”“아니요, 전 안 대표님 편입니다. 같은 여자로서요.”“나도 그 어떤 여자의 대용품이었겠죠.”“그건 다른 거죠! 그 사람은 이미 죽었으니까요. 나태웅이 왜 갑자기 이 일을 들춘 건지는 모르겠지만... 죽은 사람까지 들먹일 줄은 몰랐어요!”안열은 정말 나태웅을 죽여버리고 싶었다.요즘 나씨 가문에 생긴 일을 보면 나씨 가문 사람들은 다 하나같이 쓰레기였다.“죽었다고요?”안지영이 깜짝 놀라서 물었다.안열이 고개를 끄덕였다.“하지만 다들 모르는 일이잖아요!”안지영이 놀라서 얘기했다.장씨 가문 남자들은 하나같이 차갑고 냉정하다는 소문을
안지영은 약간 생각하더니 얘기했다.“그런데 그렇게 욕한 게 오늘이 처음인 건 아니지 않아요?”“...”안지영이 그렇게 얘기하자 안열은 더욱 화가 났다.“저를 볼 때마다 저한테 개라고 욕해요. 개자식... 개같은 건 본인이면서! 나씨 가문 전체가 그냥 다 개예요!”안지영은 이마를 짚으면서 그 말을 들었다.“안열 씨를 그렇게 욕하고서도 잘 살아있다니... 신기할 정도네요.”안열이 얼마나 성격이 더러운지, 이제는 안지영도 잘 알았다.하지만 나태웅은 번마다 안열을 욕하면서 멀쩡히 살아있으니, 안지영은 약간 놀라웠다.“못 이긴다니까요!”“...”도대체 나태웅의 실력이 얼마나 좋기에 안열도 상대할 수 없는 걸까.“됐어요. 나태웅 얘기하면 기분이 잡치니까 그만 해요.”나태웅은 그런 존재다.언급만으로도 눈살이 찌푸려지게 하는 사람이다.“그건 맞아요. 짜증 나는 사람이죠.”안지영은 나태웅이 정말 너무 싫었다.“그러니까 무조건 승소해요!”너무 화가 나니 아무리 나태웅 얘기를 꺼내지 말자고 해도 결국 나태웅 얘기를 꺼내게 된다.안지영은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분명 승소할 겁니다!”안지영이 두 주먹을 꼭 쥐었다.안열뿐만이 아니라 안지영도 화가 난 상태다.안지영은 머릿속이 너무 복잡했다. 너무 화가 나서 이 화를 전부 나태웅에게 쏟아버리고 싶었다.안열은 안지영의 말을 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걱정하지 마요. 꼭 이기게 해줄게요!”나태웅을 고소하려던 건 안지영이었다.하지만 지금은 든든한 아군이 생겼다.그 뜻인즉슨 나태웅은 여태껏 살아오면서 많은 사람들을 건드렸다는 것이다.안열은 안지영 앞에 있는 사진을 슬쩍 보았다. 안에는 장선명도 있는 것 같았다.“뭘 보는 거예요?”그렇게 물으면서 사진을 확인하려던 때, 안지영이 빠르게 사진을 가져가려고 했다.하지만 안열이 그 중 한 장을 손에 넣었다.사진을 본 안열은 놀라서 입을 다물지 못했다.안지영의 표정도 그대로 굳어버렸다.안 그래도 아까 일 때문에 화가 났는데, 나태웅이 이
안열은 본능적으로 나태웅의 얼굴을 발로 차버리려고 했다.하지만 발을 드는 순간 갑자기 느껴지는 고통에 안열은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그리고 다리를 껴안을 수밖에 없었다.“너 이 새끼...”나태웅에게 욕을 퍼부어주려는데 나태웅은 이미 엘리베이터에 타 있었다.나태웅은 아까 안열의 발을 부숴버리려고 했다.화가 치밀어오른 안열이 나태웅을 잡으려고 했지만 결국 발에서 느껴지는 고통 때문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발등은 지방이 적어서 아주 취약한 부분이다. 나태웅은 바로 그 부분을 노린 것이다.확인해보니 발등에는 이미 퍼렇게 멍이 들어있었다.안열은 표정이 어두워져서 안지영의 사무실로 들어가 얘기했다.“나태웅은 정말 악질이에요. 반드시 고소해서 승소하고 감옥에 처넣으세요!”안열이 씩씩대면서 얘기했지만 안지영은 아무 말도 할 수가 없었다.이상함을 눈치챈 안열이 안지영을 쳐다보았다. 안지영은 테이블 위에 놓인 무언가를 멍하니 쳐다보고 있었다.“왜 그래요?”안열이 다가가서 물었다.안지영은 정신을 차리고 미간을 찌푸린 채 안열을 바라보았다.그러다가 안열의 발등이 퍼렇게 멍든 것을 보고 깜짝 놀랐다.“이게 무슨 일이에요? 누가 때렸어요?”“나태웅이요! 그 개같은 자식...”안열이 울분에 받쳐서 얘기했다.안지영은 약간 놀랐다.“나태웅이 때렸다고요? 안열 씨, 나태웅이랑 싸우면 못 이겨요?”“못 이겨요.”안지영은 갑자기 이상한 생각이 들었다.저번에도 비슷한 대답을 들었던 것 같은데 무슨 일이었는지 잘 기억이 나지 않았다.“반드시 나태범을 감옥에 넣어주세요.”안열이 이를 꽉 깨물었다.안지영은 눈꺼풀이 파르르 떨렸다.기분이 좋지 않았지만 이런 모습의 안열을 보니 조금 귀엽다는 생각이 들었다.“나태웅을 감옥에 넣으라고요?”“네! 살인미수잖아요. 꼭 승소하고 콩밥을 먹게 해야 해요!”안열은 여전히 화가 나서 씩씩거렸다. 마치 지금 당장 나태웅을 끌고 교도소에 갈 사람 같았다.“...”나태웅을 감옥에 보낸다니.그것보다 더 좋은 결말은 없을
마주한 시선 속에서 안지영은 나태웅에게서 위험을 느꼈다.숨을 깊게 들이쉰 안지영이 시선을 돌리고 얘기했다.“난 너랑 죽도록 싸우고 싶지 않았어. 하지만 너도 그렇고, 너희 가문도 그렇고, 정말 선을 넘었어.”그 말에 분위기가 점점 차가워졌다.나태범이 한 짓들은 자꾸만 안지영을 화나게 했다.나태웅은 차갑게 코웃음을 쳤다.“내가 알려줬던 거 같은데. 장선명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고. 장선명이 왜 너랑 결혼하려고 하는 것 같아?”“이유는 중요하지 않아. 중요한 건 곧 결혼한다는 사실이야.”안지영은 나태웅 같은 사람 앞에서 더욱 굳건해졌다.안지영은 애매모호한 사람이 아니었다. 완벽하게 한쪽에 올인하는 쪽이다.그러니 지금 본인이 누구를 원하고 누구를 좋아하는지 아주 잘 알았다. 장선명을 두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건 상상도 못 할 일이다.그리고 성격상으로도 동시에 두 남자를 만날 수 있는 사람이 아니었다.그래서 처음부터 장선명과 비즈니스 관계로 시작했고 선을 넘지 않고 거리를 잘 유지했다.하지만 지금은 상황이 달랐다. 안지영은 장선명과 정말 한 쌍의 부부가 될 것이다.차가운 안지영의 태도에 나태웅이 차갑게 웃었다.“하, 정말 중요하지 않다고 생각해?”“도대체 뭐라는 거야.”안지영은 본인의 말을 이해하지 못하는 나태웅이 너무 싫었다. 분명 중요하지 않다고 몇 번이나 얘기했는데 또 물으니 말이다.나태웅은 가방에서 사진을 꺼내 사무실 위에 올려놓더니 안지영을 향해 비웃음을 날렸다.안지영은 눈썹을 찌푸리고 물었다.“이게 뭔데...”“직접 확인해봐.”“...”“잘 확인해. 네가 사랑하는 그 남자가 정말 너만의 것인지.”“...”안지영은 호흡마저 거칠어졌다.“지금 이간질하려는 거야? 하지만 이제 쓸모없어!”“두려워?”나태웅이 눈썹을 까딱이면서 물었다.안지영은 나태웅을 당장이라 씹어먹을 듯한 눈빛으로 나태웅을 노려보았다.나태웅은 미간을 찌푸리고 사진을 향해 눈짓했다. 안지영은 이를 꽉 깨물고 사진을 들어 확인했다.그 사진은 모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