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럼 진정훈은? 진유경에게 줄 정보를 알아보기 위해 온 것일까?고은영이 아들을 낳았는지 딸을 낳았는지 확인해서, 배씨 가문에서 자리 잡을 수 있을지 보려고 온 것일까?하지만 그녀는 이미 소식을 들었었다. 요즘 진유경은 계속 유청에게 접근하고 있는데 무슨 꿍꿍이인지 그녀가 모를 리 없었다.안색이 붉으락푸르락 해지더니 진정훈이 다시 입을 열었다. 목소리는 더욱 차가워졌다.“제가 설명을 해드려야 할 필요가 있나요?”“당연히 필요 없죠. 하지만 진유경에게 전하세요, 배씨 가문에 고은영이 있든 없든 진유경의 자리는 없다고. 그러니 쓸데없는 노력은 하지 말라고요.”진정훈은 량천옥이 미친 여자라고 생각했다.진유경을 하늘처럼 떠받들 때는 언제고 인제 와서 무슨 짓인 걸까?‘아무리 이용 가치가 없다고 해도 그렇지 이렇게까지 밟아댈 필요가 있나? 이 사람도 참...’이 순간, 진정훈과 량천옥 모두는 서로가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몰랐다.량천옥은 진유경이 배준우에게 접근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고, 진정훈은 량천옥이 진유경의 험담을 하는 것을 참을 수 없었다.그래서 둘은 분만실 문 앞에서 서로 물고 뜯으며 싸우기 시작했다.한편, 분만실 안.배준우가 들어왔을 때, 혜나는 이미 고은영을 도와 옷을 갈아입힌 뒤 머리를 정리 해주고 있었다.이것은 분만실에 들어오기 전 집사가 혜나에게 당부했던 것이다.배준우는 고은영이 창백한 얼굴로 침대에 누워 있는 것을 보자 목이 메었다.곧 그는 다가가서 고은영의 이마에 입을 맞췄다.그러자 고은영은 희미하게 눈을 뜨더니 흐느끼며 중얼거렸다.“준우 씨 나 너무 아파요.”“응, 미안해. 이제 다시는 아프게 하지 않을게.”배준우는 마음이 아팠다.조금 전 들어왔을 때 의료진은 그때까지도 마지막 피를 닦고 있었다!여자가 아이를 낳는 것이 쉬운 일이 아니라는 것을 그도 알고 있었다.그래서 가장 좋은 의사를 찾았지만 그럼에도 고은영이 세 시간 동안이나 고통을 겪게 했다.고은영은 코를 훌쩍였다. 아까의 상황을 떠올리니 또다시
량천옥은 배준우에게 많은 말을 했다.하지만 그녀는 결국 당장이라도 병실에 들어가고 싶은 충동을 억누르며 량일과 함께 떠났다.엘리베이터 안에서 량일은 앞에 서 있는 량천옥의 뒷모습을 보며 갑자기 마음이 아파졌다.“왜 들어가서 안 봐?’량천옥이 말했다.“들어가서 뭐라고 말할까요? 준우랑 화해하고 싶으니 잘 좀 말해달라고요?”외부인들은 이해하지 못할 수 있다.하지만 사람과 사람 사이의 거리가 가까울 때 가끔 동물적인 감각이 발휘될 때가 있다.때문에 그녀는 고은영이 문득 무언가를 눈치챌까 봐 두려웠다.량일이 말했다.“만약 정말 원한다면 사실...”“엄마, 전 그 아이를 죽일 뻔했어요!”그 말에 량일은 순간 숨이 멎는 것 같았다.‘사실? 사실 뭐? 사실 내가 은영이랑 만날 수 있다는 거? 내가 거의 죽일 뻔했는데... 어떻게 사실을 털어놓을 수 있겠어?’안지영은 고은영이 아이를 낳았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일을 제쳐두고 병원으로 달려갔다.그러다 병원 복도에서 그녀는 진정훈을 보게 되었다.그가 여기 있는 것을 보고 안지영도 충격을 받았다.이윽고 그녀가 다가가서 진정훈을 힐끗 바라보며 물었다.“도련님은 여기서 뭐 하세요?”진정훈은 그녀의 질문에 직접 답하지 않고 물었다.“그쪽은 여기 뭐 하러 오셨는데요?”“저는 은영이 보러 왔죠!”“저도 마찬가지입니다!”“정말요? 전혀 그럴 필요가 없는 것 같은데요?”안지영은 무례하게 말했다.‘진유경이 무슨 꿍꿍이를 꾸미고 있는 게 아니어야 할 텐데...’고은영의 머리카락을 얻어가야 했던 진정훈은 떠날 수 없었다.하지만 조금 전 분만실에 들어갔을 때, 모든 것이 깨끗하게 청소되어 있어 그는 아무것도 찾지 못했다!지금이 가장 좋은 기회지만 주변에 있는 사람들이 그를 도둑 보듯 경계하고 있었다.그는 단지 몇 가닥의 머리카락을 원하는 것이었지만 사람들은 그가 아이를 훔치려고 하는 줄 알았다.진정훈이 물었다.“하늘 그룹 일은 다 처리했나 봐요? 다른 사람 일 신경 쓸 시간도 있고 말이죠.”그
“됐어, 이제 뚝. 그래서 여자아이야, 남자아이야?”“남자아이야, 내가 말해줬잖아.”남자아이라고 하자 안지영은 입을 다물지 못하고 웃음을 터뜨렸다.“남자아이 좋지, 하하하!”하지만 그 말을 들은 고은영의 입가가 떨렸다.“왜 나를 그렇게 쳐다봐?”“너도 아들이 더 좋아?”“음... 뭐 그럴지도!”곧 안지영도 고은영이 아들을 낳았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자신이 얼마나 기뻐했는지 깨달았다.그녀는 자신 역시 이런 생각을 하고 있다는 사실에 자신이 혐오스러워졌다.“남자아이면 좋지. 너희 언니도 그때 만약 아들을 낳았다면 조씨 가문에서 이렇게 오랫동안 고생했을까? 안 그래?”때로는 남아선호사상이 환경에 의해 생겨난 것일 수도 있다.고희주의 상황을 생각하며 고은영은 침묵했다.“남아선호사상을 갖고 있는 게 아니라 난 그냥 네 삶이 좀 더 나아지길 바라서 그러는 거야.”현재 배씨 가문의 상황을 안지영은 다 알고 있었다.배준우가 아무리 고은영을 보호해 준다 해도 다른 사람들의 태도는 좋지 않았었다.하지만 이제 그녀가 아들을 낳았으니 안지영이 보기에 상황은 완전히 달라질 것 같았다.“그래서 오늘 왜 갑자기 아이를 낳게 된 건데? 출산 예정일이 아직 며칠 남았다고 하지 않았어?”안지영은 해야 할 일들을 일찍 처리하고 고은영과 함께 출산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러나 들려온 소식은 뜻밖에도 고은영이 이미 아이를 낳았다는 것이었다.갑작스러운 물음에 고은영의 얼굴이 새빨개졌고 그 모습을 본 고은영이 또다시 물었다.“왜 그래? 넘어지기라도 했어?”임산부는 뜻밖의 사고가 나지 않게 늘 조심해야 했다.그렇기 때문에 장선명의 협박을 받았을 때 그녀는 뜻밖의 사고가 나는 게 두려워 고은영의 행방을 말했던 것이다. 고은영은 고개를 저었다.“아니, 안 넘어졌어.”“그럼 어떻게 된 거야?”“그게, 그게 그러니까...”당시 상황을 떠올리자 고은영도 퍽 난감해졌고 많이 부끄러웠다.“말해보라니까?”이런 그녀의 모습은 안지영은 고은영이 무슨 억울한 일을 당했다
안지영도 웃으면 안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지만 두 사람이 그 정도로 어리석은 걸 생각하면 도저히 웃음을 참을 수 없었다.배준우는 라 집사에게 고은영을 란완리조트로 데려가라고 했다.라 집사도 그게 맞다고 생각했다. 아무리 좋은 조건을 갖춘 병원이라 해도 제한이 있기는 마련이니 말이다.란완리조트 쪽은 의료팀이든 의료 장비든 다 준비가 되어 있었다.점심때 고은영에게 음식을 먹이고 나서, 라 집사는 차를 준비해서 데려가려고 했다.안지영도 따라가고 싶었지만, 병원에서 출발도 하기 전에 회사에서 전화가 오는 바람에 갈 수 없었다.“은영아, 나 지금 회사에 가야 해. 저녁에 다시 올게.”겨우 안지영이 떠난다는 생각에 기뻐하는 것도 잠시 저녁에 또 온다는 말에 배준우의 얼굴이 순간 어두워졌다.떠나기 전에, 안지영은 무언가 생각난 듯 고은영에게 말했다.“맞다, 너한테 2천만 원 송금했어. 먹고 싶은 거, 마시고 싶은 거 다 사 먹어.”이 말에 배준우는 더욱 화가 났다.‘장선명은 대체 뭐 하는 거야? 자기 여자 하나 관리하지 못하고. 내 여자한테 왜 자기가 돈을 줘?’배준우가 어두운 얼굴로 서 있었지만, 안지영은 자신이 잘못했다는 것을 전혀 깨닫지 못하고 급히 떠났다.곧 고은영의 핸드폰에 송금을 받았다는 알림이 울렸다.그러자 배준우는 고은영을 안고 엘리베이터에 들어가더니 참고 참다 결국 말했다.“그 돈 돌려줘.”“...”고은영은 애초에 안지영의 돈을 쓸 생각이 없었다. 하지만 그녀가 조금 전 하도 급히 떠나는 바람에 미처 말할 기회가 없었던 것이다.‘설마 또 화가 난 거야?’그때, 배준우가 다시 물었다.“알아들었어?”그녀가 아무 말도 하지 않자 배준우는 목소리를 높였다.그러나 여전히 고은영은 묵묵부답이었고 배준우는 더욱더 화가 치밀어올랐다.이윽고 그가 고개를 숙여보니 고은영이 눈에 눈물이 그렁그렁 맺힌 채 자신을 보고 있는 게 보였다.배준우는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왜 그래?”‘왜 또 울려고 하는 거야!’고은영의 빨개진 작은 코가
아무리 대단한 남자라도 자신이 좋아하는 여자 앞에서는 부드러워지기 마련이다.문을 나설 때, 배준우는 고은영이 혹여 찬바람이라도 맞을까 걱정스러웠다. 모두 출산한 여자는 특히 주의해야 한다고 했으니 말이다.하지만 오늘 너무 갑작스럽게 출산하는 바람에 그들은 아무런 준비도 되어 있지 않았었다!그 순간 배준우는 자신의 외투로 고은영을 감싸서 그 작은 머리까지 폭 덮어버렸다.하지만 고은영의 키 때문에 그의 외투로는 그녀를 전부 감쌀 수 없었다.그래서 그는 어쩔 수 없이 차에 있는 담요를 가져오게 해서 고은영을 감싸고 차에 올랐다.차에 오를 때, 고은영은 자기 자신을 안고 있는 배준우의 이마에 땀이 송골송골 맺힌 것을 발견했다.“저 많이 무겁죠?”“키가 있으니 아무리 날씬해도 가볍지는 않지.”배준우가 말했다.이는 사실이었다.고은영의 키는 거의 170cm로 보였기에 아무리 말라도 50kg 이하로 내려가지는 않을 것이다.물론 배준우는 그런 뼈만 남은 앙상한 몸매보다 고은영의 건강하고 활기찬 모습을 좋아했다.한편, 도저히 견딜 수 없었던 진정훈은 뭐라도 먹기 위해 밖으로 나갔다.하지만 출산했으니 적어도 병원에 3일은 있겠거니 여겼던 진정훈의 생각과는 달리 돌아와 보니 고은영의 모습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있었다.병실도 깔끔하게 청소되어 먼지 한 점 없이 깨끗했다. 머리카락은 말할 것도 없었고 말이다.“여기 있던 사람은 어디 갔나요?”그는 서둘러 간호사를 붙잡고 물었다.그러자 간호사가 병실 번호를 보더니 말했다.“이 산모분 퇴원했어요.”“퇴원이요? 방금 아이를 낳았는데 퇴원이라뇨?!”진정훈은 순간 화가 치밀었다.‘배준우 정말 미친 거 아니야? 아이 낳은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퇴원을 시켜? 병원비가 부족했나?’진정훈은 속이 부글부글 끓어올랐고 여기에 와서 고은영이 자신의 여동생인지 아닌지 확인하려고 했던 목적도 완전히 잊어버리고 말았다.배준우가 이렇게 빨리 그녀를 병원 밖으로 데리고 나갔다 생각하니 진정훈은 그녀가 학대를 당한 것처럼
진정훈은 본인이 지금 저지른 일들이 얼마나 어처구니가 없는지 깨닫지 못했다.심지어 너무 어처구니가 없어서 다른 사람들의 오해를 불러일으킬 정도였다.그동안 진정훈은 진씨 가문 사람들 마음속에서 진윤에게는 없는 진중함과 성숙함을 갖고 있었다. 그는 남동생도 챙기고 여동생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어 주었다.하지만 지금 고은영의 일에서는 아무리 봐도 조금 미쳐있는 것 같았다.이것이 바로 배준우가 먼저 진윤에게 전화해서 동생 관리를 똑바로 하라고 한 이유다.“정훈아 국내는 해외하고 달라. 말도 안 되는 자유를 여기서 누르려고 하지 마.”“형이 지금 내가 그 계집애한테 다른 마음이 있다고 오해한 거야.”진정훈은 그제야 깨달았다.배준우의 아내라고 말했을 때 진정훈은 미처 반응하지 못했지만 지금 결혼과 자유라는 분명한 암시는 바보라도 상대가 무슨 뜻으로 하는 말인지 알 것이다.‘도대체 지금 날 뭐로 생각하는 거야?’진윤이 말했다.“네가 그런 뜻이든 아니든 지금 당장 란완리조티에서 떠나.”“아니 형. 형은 왜.”“아니면 내가 사람 보내서 널 끌고 오라 할까?”진정훈의 말이 끝나기도 전에 진윤이 그의 말을 막았고 진정훈의 해명을 듣지도 않았다.진정훈은 결국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이게 도대체 무슨 일이야?”귀국 후 그는 아직 큰 형과 제대로 대화도 나눠보지 못했다.진윤은 오랫동안 진씨 가문에 돌아오지 않았다. 진정훈은 심지어 진윤이 왜 그렇게 진유경을 혐오하는지 이유를 몰랐다.두 사람은 이미 몇 년 동안 얼굴도 보지 못했는데 오랜만에 한 전화의 내용이 결국 이런 문제라니.‘배준우는 정말 머리가 어떻게 된 거 아니야? 어떻게 된 사람이 큰형에게 전화한 거야?’진윤이 말했다.“1분 줄 테니까 당장 떠나.”그는 말을 마친 뒤 바로 전화를 끊었다.전화에서 들려오는 뚜뚜 소리에 진정훈의 얼굴이 더욱 어두워졌다.란완리조트.배준우는 마음이 불쾌했지만 고은영의 앞에서 티를 내지는 않았다.아이를 낳은 고은영은 온몸으로 자랑스러운 모성애를 뿜어내고
고은영의 말을 들은 배준우는 눈썹을 찌푸렸다.‘설마 진정훈이 고은영에게 첫눈에 반한 건 아니겠지? 배가 남산만 하게 부른 임산부에게 첫눈에 반한다고? 진정훈이?’“앞으로 다시 만나지 마.”고민을 하던 배준우는 마침내 건조하게 한마디를 뱉어냈다.그 말에 고은영은 멈칫했다. 그녀는 조금 당황한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았다.“내가 볼 일도 없는 데 왜 진정훈을 만나요?”그 말에서 고은영이 진정훈을 얼마나 보기 싫어하는지 알 수 있었다.‘잠깐만. 오전에 병원에서 잠깐 진정훈을 마주쳤다고 지금 준우 씨가 이러는 건가?나와 진정훈 사이에 뭔가 있다고 오해한 거야? 어떻게 이런 생각을 할 수 있어?’이 순간 고은영은 진정훈이 줄곧 분만실 밖에서 그녀를 기다렸다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심지어 병실을 떠나지도 않았고 지금은 란완리조트까지 쫓아왔다는 사실을 전혀 몰랐다.배준우는 더 이상 말할 수 없어 한마디를 툭졌다.“별거 아니야. 마저 먹어.”고은영은 흥하며 코웃음을 쳤다.“난 준우 씨가 생각하는 그런 여자 아니니까 그런 눈빛으로 날 바라보지 마요.”배준우는 눈썹을 추켜세웠다.‘도대체 누가 이 계집애를 바보라고 한 거야? 이렇게 똑똑한데. 아주 모르는 게 없어.’“내가 뭘 그런 눈빛으로 널 봤다고 그래. 난 널 믿어.”이 말은 진심이었다.배준우는 육명호든 아니면 진정훈이든 이성 문제에 있어 고은영을 믿었다.이것이 바로 고은영이 육명호와 만하고성에서 며칠을 함께 있었지만 배준우가 따지지 않는 이유였다.하지만 진정훈의 행동을 지금 배준우는 이해할 수가 없었다.진정훈은 화가 나서 집으로 돌아왔다.차에서 금방 내렸을 때 진유경의 차도 밖에서 돌아왔다.진유경이 쇼핑백들을 갖고 차에서 내리는 것을 보고 진정훈 마음속의 분노는 더욱 커졌다.진유경은 그를 보는 순간 작은 얼굴에 미소를 지었다.“둘째 오빠 왔어? 나 이것 좀 들어줘.”그녀는 아주 자연스럽게 그에게 도움을 청했다.진정훈은 앞으로 다가가 바닥에 놓여 있는 쇼핑백들을 쳐다보았다. 중
진정훈의 낮은 으르렁거림에 진유경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 심지어 표정이 그녀도 모르게 굳어있었다.‘예전에는 날 아껴주느라 이런 말은 하지도 않았었는데 도대체 왜 이러지? 만하고성에 다녀온 뒤로 왜 갑자기 변한 거지?’진유경은 울면서 화를 내고 있었다.“예전에 오빠 이러지 않았잖아. 내가 갖고 싶어 하는 거 내가 원하는 거 오빠는 무슨 방법을 쓰든 다 해줬잖아? 지금은 도대체 왜 이러는 건데?”“기억해. 배준우는 안 돼.”진정훈의 한마디에는 경고의 뜻이 가득 담겨 있었다.사실 진유경과 배준우의 일에 대해 진정훈은 계속 반대했었다.배준우가 진유경을 좋아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비록 진유경은 진씨 가문의 친딸이 아니었지만 그들에게 사랑을 듬뿍 받고 자랐고 다들 진유경을 소중하게 생각했다.그들은 진유경도 좋아하고 동시에 그녀를 좋아해 주는 남자를 만나 평생을 함께하길 바랐다.하지만 배준우의 태도는 처음부터 이 혼인을 강력하게 거절했다.심지어 아주 과격한 조치로 진씨 가문 사람들의 바람을 차단했지만 왜 진유경은 이해를 못 하는 걸까?진정훈의 경고를 듣고 진유경은 더 서럽게 울었고 성질을 내며 더욱 고집을 부렸다.“난 그런 거 상관 안 해. 배준우을 꼭 가져야겠어.”그렇게 소리를 지른 뒤 배준우 엄마에게 줄 물건을 끌어안고 집으로 들어갔다.진정훈도 많이 화가 났다.집사가 다가왔을 때 진정훈은 불쾌한 표정을 하고 있었다.“도련님. 아버님께서 서재로 부르십니다.”진정훈은 볼쾌한 눈빛을 거두고 바로 메인 하우스로 걸어갔다.진씨 가문은 강성에서 두 번째로 큰 재벌가인 만큼 저택도 아주 컸기에 그 크기는 말로 설명할 수 없었다.모두 6채가 되는 건물로 이루어져 있었고 그중에서 한 채를 진유경이 사용하고 진정훈도 따로 한 채를 사용했다. 진호영과 큰형도 각자 한 채씩 사용했다.남은 한 채는 아이들에게 남겨줬고 안에는 모두 아이들의 물건들로 채워져 있었다.아버지와 할머니는 메인 하우스에서 생활했고 식사를 할 때면 모두 메인 하
하지만 진성택은 다르다. 결국 그녀와 혈연관계가 있기 때문에 배준우가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반 시간 후, 배준우는 고은영을 밀크티 가게에 데려다주었다. “내가 같이 들어갈까?” 배준우가 물었다. “준우 씨는 그냥 기다려요. 당신을 보면 아마 바로 저세상으로 갈지도 몰라요.” ‘이 녀석 입이 참!’ 하지만 고은영이 말이 맞았다. 예전에 진성택과 량천옥 사이의 관계를 생각하면 진성택은 항상 배준우에게 진유경을 미래의 아내로 삼으라고 했었고 그때 배준우는 모두의 반대에도 불구하고 굳이 고은영과 결혼했다. 지금 두 사람이 함께 있으면 진성택이 무슨 말을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는 운명의 미묘함을 탄식할 것인가? 아니면 진유경 때문에 속상해할 것인가? 고은영은 가게 안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한눈에 보였다. 작은 원탁 옆에 앉아 있는 진성택이. 그는 손에 밀크티를 들고 있었다. 고은영이 두 걸음 내딛자마자 진성택도 그녀를 보았다. “왔니?” 그는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 오랜만에 본 그의 얼굴은 확실히 더 노화되어 보였고 얼굴색도 그다지 좋지 않았다. 특히나 얼굴이 누렇게 변했고 예전만큼 눈빛도 밝지 않았다. 고은영은 이제 막 기운이 다 빠진 사람을 본 적이 있었다. 진성택은 확실히 지금 당장이라도 세상을 떠날 듯한 느낌이었다. 그가 말한 대로 아마 이번이 마지막 만남일 수도 있을 것이다. 고은영은 깊게 숨을 들이쉬며 복잡한 감정을 느꼈다. 자리에 앉자마자 물었다. “이거 마실 수 있어요?” 진성택은 손에 들고 있던 밀크티를 문득 깨닫고 곧바로 그녀에게 건넸다. “너를 위해 샀어. 여자애들은 다 밀크티 좋아하잖아. 너도 좋아하지?” 그녀는 잠시 멈칫했다. 밀크티는 그녀의 가장 좋아하는 음료였다. 그런데 배준우와 결혼한 이후로 배준우는 그녀가 밀크티가 몸에 안 좋다며 못 마시게 했다. 진성택은 그녀가 음료를 마시지 않자 눈시울이 붉어졌다. “생각해 보면 나는 사실 유경이에게 이런 걸 사준 적이 없었어. 진씨 가문의
전화 너머의 진성택은 고은영의 말을 듣고 당황해서 말문이 막힌 듯했다. “정말 미안해. 미안하다. 전에는 네 감정을 고려하지 못했어.” 그 순간, 진성택은 자신이 고은영에게 대했던 태도가 문제였음을 인정했다. 고은영이 말하기도 전에 그는 다시 말을 이었다. “하지만 은영아, 내가 너를 사랑하지 않아서 그런 게 아니야. 큰일이 생기면 사람들은 반응이 무뎌지는 법이잖아. 나는 그동안 계속 너를 찾고 있었어. 그런데 네 소식을 듣고 나서 어떻게 너를 마주해야 할지 모르겠더라. 네가 이런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거란 건 알지만 나도 그런 감정이 싫다.” 감정과 이해라. 처음에는 자신의 존재를 알게 되어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몰랐다고 쳐도 그럼 그 후에는? 오랜 시간이 지난 지금, 이런 말을 꺼내는 게 진짜 아이러니했다. 진성택은 고은영의 답을 기다리지 않고 계속 말을 이어갔다. “하지만 오늘 내가 너를 찾은 건 정말 중요한 일이 있어.” “그게 진유경의 일 때문인가요?” 고은영은 본능적으로 날카롭게 반문했다. 무슨 일이든 그가 지금까지의 태도를 어떻게 설명하든 고은영은 더 이상 듣고 싶지 않았다. 그저 지금 그가 자신을 찾은 이유가 무엇인지 알고 싶었을 뿐이었다. “아니, 네 어머니 때문이야.” 이 말은 그가 어쩔 수 없이 털어놓은 듯한 느낌이었다. 전화상에서도 고은영은 그의 얼굴에서 느껴지는 죄책감을 감지할 수 있었다. 그렇게 될수록 그녀는 더 비웃었다. “내가 이 시간 동안 살 수 있는 건 모두 하늘이 준 기회야. 빼앗은 기회라고 해도 될 정도로. 내가 너를 만날 기회도 얼마 안 남았지.” 그는 매우 허약해 보였다. 고은영은 눈썹을 찌푸렸고 이 느낌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녀는 진성택이 마치 도덕적으로 자신을 억지로 끌어들여서 그가 이렇게까지 말했는데 자신이 그를 만나지 않으면 너무 냉정한 사람처럼 보일 것 같다는 느낌을 받았다. “어디예요?” “병원 맞은편의 밀크티 가게에 있어.” 그는 지금 병원에 입원 중이었고 의사들이
고은영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배준우를 바라보며 물었다. “나태현 씨는 량천옥이 언니의 생모라는 사실을 알고 있을까요?” “당연히 알고 있지.” 이 일은 병원에서도 크게 떠들썩하게 된 사건이라 나태현 쪽에서는 이미 알고 있을 것이다. 배준우는 고은영을 쳐다보며 이어서 말했다. “네가 말한 대로 나태현과 고은지의 거래가 량천옥과 관련이 있을 가능성이 크다는 거지?” “맞아요. 언니가 천락 그룹으로 돌아간다고 말할 때 량천옥이 아직도 밖에서 돌아다니고 있는 것에 불만을 토로했었는데 그 말투에 분노가 가득했어요.” 고은영은 고은지의 분노에 대해 말을 꺼내면서 마음속이 더욱더 쥐어짜이는 것 같았다. 나태현이 그 사실을 알고 있다면 지금 상황이 도대체 무엇인지 알 수 없었다. 고은영은 머릿속이 완전히 엉켜버렸다. 그녀가 이렇게 혼란스러워하는 것처럼 배준우도 지금은 완전히 혼란스러워하고 있었다. “준우 씨가 나태현 씨에게 언니와 한 거래가 무엇인지 물어봐 줄 수 있어요? 그리고 희주가 본인 딸인 걸 알고 지신혜 씨와 약혼도 할 건데 왜 언니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하려고 하는지도 물어봐 줘요.” 이런 생각들을 하면서 고은영은 공포감을 느꼈다. 그녀는 고은지에게 얘기를 해야 할 것 같았다. 적어도 이 시점에서 그녀가 선택할 수 있는 권리를 줘야 한다고 생각했다. 비록 지금은 량천옥에 대해 강한 증오를 느끼고 있더라도 말이다. “내가 나태현 형에게 물어볼게. 너는 지금은 아무것도 하지 말고 기다려.” “언니에게 말하고 싶어요.” “지금은 안 돼. 내가 먼저 나태현이랑 얘기하고 나서 말해.”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후 대답했다. 고은영이 말한 대로 지금은 최소한 나태현이 고은지를 천락 그룹으로 돌아가게 만든 계기가 무엇인지 알아야 했다. “그럼 빨리 물어봐요.” “응, 알았어.” 배준우는 고개를 끄덕였다. 고은영은 여전히 마음이 불안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는 사람으로서 지금 그녀는 거대한 음모가 고은지를 둘러싸고 있는 것처럼 느껴졌다
진윤은 밖에서 시간을 확인했고 배준우가 10분 내로 나오지 않으면 떠날 생각이었다. 그런데 담배를 반쯤 피웠을 때 문득 고은영이 대문 쪽에서 들어오는 모습을 봤다. 급하게 뛰어오는 모습에 거리가 꽤 있었음에도 진윤은 그녀의 이마에 맺힌 땀을 보고 그녀가 얼마나 급하게 뛰어왔는지 알 수 있었다. 고은영이 가까워졌고 그녀는 진윤을 발견하고 잠시 멈칫했다. “큰오빠.” ‘큰오빠’라는 단 한 마디에 진윤의 마음은 순식간에 부드러워졌다. 그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준우 찾으러 온 거야?” 고은영은 너무 오랫동안 뛰어왔는지 호흡이 가빠졌고 깊은숨을 내쉬며 말했다. “네, 안에 있어요?” “응, 안에 있어. 지금은 들어가지 마.” “왜요?” 고은영은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 진윤은 조용히 말했다. “지금 나태웅이랑 얘기 중이야.” “네? 나태웅이요?” 그 이름이 나오자 고은영의 말투도 달라졌다. 그녀는 전에 나태웅과의 영상에서 있었던 일들을 떠올리며 그에게 상당히 불만을 품고 있었다. 그가 최근 동안 안지영을 괴롭힌 일이 떠올랐다. 고은영과 안지영의 관계를 고려할 때 당연히 말할 필요도 없이 안지영이 화가 나면 고은영도 같이 화를 내주었다. 진윤은 그녀가 나태웅을 언급할 때의 그 표정을 보고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왜? 나태웅을 싫어해?” “싫어해요!” 고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어떻게 좋아할 수 있겠어?’ 전에 그녀가 배준우와의 일에 그렇게 괴로워했던 건 대부분 나태웅 탓이었다. 정말 그땐 너무 힘들었다. 지금 다시 떠올리기만 해도 고은영은 그 당시 어떻게 버텼는지 생각조차 하고 싶지 않았다. 두 사람이 이야기하는 사이 배준우는 이미 안에서 나왔다. 고은영을 보고 잠시 멈칫한 뒤 그녀에게 다가가 물었다. “왜 바로 왔어?” “준우 씨 찾으려고요. 급한 일이 있는데 전화도 안 받았잖아요.” 고은영은 불만을 섞어 말했다. 배준우는 그녀의 부드러운 머리를 쓰다듬으며 진윤을 한번 쳐다보았다. 그것을 본
나태웅이 혼자 남았을 때 그의 세계는 조용해졌다. 하지만 지금의 그에게 고요함은 더 큰 괴로움이 되었다. 그는 전화를 꺼내어 안지영에게 전화를 걸었다. 예상대로 전화는 바로 차단되었다. 그는 다시 안열에게 전화를 걸었다. 그 시각, 사무실에서 안열은 겨우 안지영을 달래놓은 상태였다. 전화의 진동에 안열은 황급히 휴대폰을 꺼내 확인했다. 그리고 안지영도 전화를 확인하고 또다시 통제불능이 되었다. 안열은 안지영이 또 움직일 것 같아 황급히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 “너무 흥분하지 마요. 바로 차단할게요.” “받아요. 이 미친놈이 뭐라는지 봐야겠어요.” 안지영은 이를 갈며 말했다. 안열은 입꼬리를 떨구며 말했다. “그냥 받지 말죠?” 안지영은 단호하게 대답했다. “받아요!” ‘이 사람은 진짜 자신이 무슨 말을 들을지 걱정하지 않는 건가?’ 하지만 안지영의 말에 그녀는 전화를 받을 수밖에 없었다. 안열은 안지영을 한 번 쳐다보고 전화를 받았다. “여보세요.” “안지영 지금 옆에 있나요?” “없어요!” ‘없어요’라는 말이 끝나기도 전에 안지영은 나태웅의 차가운 목소리를 듣고 전화를 뺏으려 했다. 그녀는 그를 욕하고 나씨 가문이 망하길 저주했다. 하지만 손을 뻗자마자 안열이 그녀의 손목을 꽉 붙잡았다. “한 마디만 전해줘요.” “말하세요.” “안지영은 두 가지 선택이 있어요. 첫 번째는 오늘 밤 킹덤 타운을 떠나는 것이고 두 번째는 오늘 밤 하주원에게 사과를 하는 겁니다.” “이틀이라고 하지 않았어요?” 안열은 이를 악물며 말했다. “마음을 바뀌었어요.” 안열은 더 이상 말할 필요를 느끼지 못했다. 안지영은 분노에 가득 찼고 자신의 입을 막고 있던 안열의 손을 떼며 전화를 향해 목소리를 높였다. “나태웅, 너 이 미친놈! 꿈도 꾸지 마!” “그래, 그럼 하늘 그룹이 네 손에서 얼마나 있을지 지켜보자고!” “너 이 자식, 내가 너의 조상을 건드렸나 보다! 그래서 나한테 복수하는 거네!” 안열은 안지영의 욕설을 듣
‘지금 무슨 말을 하는 거지? 하주원에게 손을 대지 말았어야 했다고?’ 배준우는 순간 머리가 멍해졌다. “아니, 너 지금 이 상황이 도대체 뭐냐고?” 항상 사고가 명확하던 배준우가 지금은 나태웅을 전혀 이해할 수 없었다. 그와 오랫동안 함께한 나태웅인데 지금 그를 보니 마치 처음 보는 사람처럼 느껴졌다. 지금 이 순간, 안지영이 하주원에게 손을 댄 문제를 신경 써야 하는 걸까? 그와 안지영은 이렇게 긴 시간 동안 여러 가지 일들을 아직 명확히 풀리지 않은 것 같았다. 나태웅은 대답하지 않고 담배를 달라고만 말했다. 배준우는 담배 한 개비를 던져주었다. 지금 이 상황에서 나태웅은 자신도 무엇을 해야 할지 모르겠다는 듯했다. 그는 아직까지 안지영과 어떻게 이렇게까지 사이가 틀어졌는지 이해할 수 없었다. ‘그 어리석은 여자...!’ 만약 그때, 그녀가 자신에게 도와달라고 말을 했다면 그는 결코 그녀가 배준우 앞에서 창피를 당하게 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그녀는 그럴 생각을 하지 않았다. 오히려 배준우의 사람들에게 의지하려 했었다. 배준우는 잠시 생각한 뒤 물었다. “너는 안지영과 장선명이 결혼하지 않기를 바란다고 했지만 하주원 문제에서는 하주원을 도와주고 있잖아?” 그가 잠시 고심한 끝에 결국 핵심을 짚어냈다. “그건 전혀 다른 얘기지!” 그는 단호하게 말했다. 목소리에는 날카로운 기운이 맴돌았다. 배준우는 그 말을 듣고 깜짝 놀랐다. ‘다르다고?’ 원래는 명확하게 사고하는 배준우였지만 나태웅의 말에 혼란스러워졌다. 나태웅은 다시 한번 입을 열었다. “우리가 어떤 관계인지는 중요하지 않아. 하주원 문제에서 안지영이 반드시 사과해야 해.” 이 말을 듣고 배준우는 머리가 아팠다. 나태웅은 이 상황이 어떤 결과를 초래할지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결국, 배준우는 담배를 다 피운 후 천천히 말했다. “너는 이걸 두 가지 일이 아니라고 생각하지만 여자들 세계에서는 이것은 분명히 한 가지 문제야.” “안지영은 도
방금 안열이 장선명더러 처리하라고 했을 때의 그 걱정은 이제 안지영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그녀는 더 이상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았다. 문제가 생기든 말든 지금은 나태웅을 찾아서 해결하지 않으면 진짜 미칠 것 같았다. 한편, 캘리포니아 반도의 한 장소에서는 배준우와 나태웅이 함께 있었고 진윤과 육범수도 그 자리에 있었다. 몇 달 만에 다시 모인 이들이 장선명이 아닌 나태웅을 부른 이유는 사실 그들 모두 나태웅이 미친 것 같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나태웅을 불러내 대화를 나누어 보기로 했다. 육범수가 패를 내자 나태웅은 손에 들고 있던 패를 툭 치며 말했다. “난 끝났어.” 배준우는 그의 얼굴을 보고 찡그리며 물었다. “방금 그 전화, 안지영이었지?” 방금 나태웅은 나가서 전화를 했다. 그리고 들어오자마자 다시 전화가 걸려온 것은 안지영이었다. 배준우는 그녀의 목소리를 들었다. “응.” “너 또 안지영 건드린 거야?” 사실 오늘 배준우가 여기 온 이유는 장선명의 부탁 때문이었다. 생각해 보니 장선명은 나태웅과 장씨 가문과의 관계가 더 나빠지는 걸 원하지 않았다. 하지만 나태웅이 이렇게 계속 안지영을 괴롭힌다면 일이 커질 것이다. 장선명은 본래 도리를 따지지 않는 사람이다. 그렇지만 나태웅의 이 일에 대해서는 배준우를 생각해서 한 번 더 기회를 주는 게 맞다고 판단한 것이다. 특히 지금 하주원의 문제도 있고 나태웅의 행동이 점점 더 미쳐 가는 상황이라 걱정이 컸다. 나태웅은 아무 대답을 하지 않고 육범수에게 말했다. “너 나한테 만 이천 원 줘야 돼.” 배준우는 말문이 막혔다. 육범수도 나태웅이 안지영에 대해선 더 이상 이야기하고 싶지 않다는 걸 눈치챘다. 진윤은 본래 남의 일을 지나치게 간섭하지 않는 성격이다. 본인의 가문 일도 충분히 골치 아팠기에 그동안 말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둘째 형이 얘기하잖아. 말 좀 해봐. 대체 안지영에 대해 어떻게 할 생각이야?” 하지만 육범수는 달랐다. 그는 직설적인 성격이기에
안지영은 화가 나서 전화를 부수고는 바로 사무실 밖으로 달려 나갔다. 안열은 그녀의 모습을 보고 다급하게 앞으로 나가서 잡았다. “어디 가시는 거예요?” “나태웅을 죽여야겠어요!” ‘아, 진짜 더는 참을 수 없어.’ 나태웅은 정말 죽어 마땅하다. 지금 당장이라도 손으로 그를 찢어 버리고 싶었다. “하지만 대표님은 아직 근육도 제대로 안 키우셨잖아요. 나태웅을 찢어낼 힘이 있을까요?” 원래도 화가 치밀어 올랐는데 안열의 말에 더 화가 나버렸다. ‘하지만 이제 어떻게 해야 하지? 정말 더는 못 참겠어!’ 안열은 안지영이 방향을 잃고 분노만 가득한 상태를 보고 바로 말했다. “이건 결국 넷째 도련님께 말씀드려야 할 문제예요.” “또 장선명 씨더러 처리하라고요?” 장선명의 수법은 이미 잘 봤다. 그는 가장 잔인한 방법을 써서 그녀조차도 반응할 틈 없이 모든 것을 정리해버린다. 그래서 만약 이 문제를 장선명이 처리하면 또다시 피비린내 나는 일들이 벌어질 게 뻔하다. “그건, 안돼요!” 안지영은 손을 휙휙 내저었다. 장선명은 그렇게 깊이 생각하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기 위해 무조건 밀어붙일 것이다. 그건 안 된다. “왜요?” “그거 기억 안 나요? 지난번에 장선명 씨가 그렇게 처리했을 때 그 몇 억을 가지고 나태웅을 미쳐버리게 만들었잖아요. 이제 나태웅은 진짜 미친 사람이에요.” 특히 지금 그의 행동들은 안지영 마음속에 그가 정말로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는 확신을 더욱 굳게 만들었다. ‘정신적으로 문제가 있다라, 이 이유가 참 적합하네.’ 안열이 말을 꺼내기도 전에 안지영이 계속해서 말했다. “이번에도 강하게 나가면 그 사람은 진짜 미칠거예요. 그럼 우리 모두 큰일 난다니까요!” “혹시 대표님은 무서운 건가요?” “무섭지 않아요. 그런 문제는 제가 감당하고 싶지 않아서 그래요!” 안지영은 화가 나서 말투가 거칠어졌다. 아까는 아무것도 신경 쓰지 않고 나태웅의 집안까지 욕을 해버렸다. 하지만 그녀는 매우 잘 알고 있었다.
심장이 미친 듯이 뛰었고 이미 화가 나서 말을 할 수가 없었다. “말해봐, 정말이야?” 다시 입을 열었고 그의 말투에는 위험한 기운이 감돌았다. 전화가 아니라 만약 눈앞에 있었다면 안지영은 나태웅이 자신을 바로 목 졸라 죽일 것 같았다. “그래서 뭐 어쩌라는 거야?” “안지영!” “난 장선명 씨와 약혼한 상태야. 네가 무슨 상관이야? 너는 네 사촌 걱정이나 해. 내가 너희 나씨 가문을 너무 가볍게 생각했나 보네. 여자는 불여우처럼 순수한 척, 남자는 정신병자에 하나도 좋은 게 없어. 그 뿌리가 다 썩었어!” 그녀는 작은 입술로 욕을 퍼부었다. 안열은 그 모습을 보며 입술이 저절로 떨렸다. 아까는 화가 나서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모르더니 지금은 완전히 미친 듯이 말하고 있었다. 안지영은 정말로 미친 듯이 화가 난 상태였다. “사과하라고? 대체 누가 누구한테 사과해야 하는 건데! 내 아버지는 아직 병원에 누워 있고 네 사촌은 와서 날 때렸는데 나더러 사과하라고? 너희 나씨 가문 집안 교육이 이 모양이야? 다 멍청이들이야?” 이제는 나태웅의 조상까지 욕을 먹었다. 안지영의 이 폭발적인 성격에 안열은 이제야 제대로 실감했다. 안지영은 욕하는 건 진짜 잘했다. 이제는 나씨 가문이나 하씨 가문, 심지어 그들의 조상까지도 욕을 먹었다. 그녀의 거침없는 욕설을 들으며 나태웅의 얼굴은 차갑게 굳어갔다. 그리고 안지영의 입은 더 이상 멈출 수 없는 폭풍처럼 계속 퍼부어졌다. 한참 동안 욕을 쏟아내고 겨우 숨을 골랐다. “더 욕할 거야?” 그의 말투는 안지영의 폭발적인 분노와는 대조적으로 매우 차갑고 차분했다. “하, 왜? 더 듣고 싶은 거야? 너...” “더 욕할 거 없으면 내일 병원에 같이 가자.” 그의 말투는 그 어느 때보다 단호하고 냉랭했다. ‘젠장, 이 사람은 정말 사람 말을 못 알아듣나?’ “나더러 사과하라고? 생각도 하지 마! 꿈도 꾸지 마!” 꿈속에서도 사과할 일 없을 것이다. “그럼, 한 가지 말할 게 있어.” “뭔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