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편 안지영은 이미 차에 타 회사로 돌아가는 도중, 다이아로부터 갑자기 연락이 왔다. 계약을 체결하는 과정에서 고객이 갑자기 무슨 문제가 생겼다면서 서명하지 않겠다고 말했다는 것이다."뭐라고? 안하겠다고? 이게 대체 무슨 소리야?"농담이겠지? 간만에 낚은 대어인데 이렇게 놓치는건 말이 안돼지!안지영은 놀란 마음을 진정시킬 수가 없었다.한편 다이아도 자신의 억울함을 토로했다."이번 계약이 체결되면 나한테 팁을 나눠주겠다고 했잖아. 근데 이젠 팁은 커녕 도리어 매니저한테 엄청나게 욕만 먹게 생겼어.”안지영이 여태 잘 이끌어온 계약이었는데 다이아에게로 넘어가면서 물거품이 되어버렸다. 두 vip 고객이 순식간에 눈 앞에서 사라졌다는 사실에 안지영은 세상이 무너지는 듯 했다. 다이아뿐만 아니라, 자신도 이젠 도망갈 수가 없다는 상황에 그녀는 좌절감을 느꼈다."그래, 일단 알겠어." 안지영을 곧바로 전화를 끊었고, 머리가 미친듯이 아파지기 시작했다.사실 이번 두 고객은 우연으로 찾아온게 아닌 전에 나태웅과도 연락이 있었던 고객들이었다.즉, 이번 일은 나태웅과도 연관이 있다는 뜻이다. 중요한 계약이 물 건너 간 이상, 나태웅이 분명 자신을 괴롭히고 해고할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안지영은 아무리 생각해도 납득이 되지가 않았다. 전에도 이런 방식으로 해왔었는데 한번도 문제가 된 적이 없었다. 고객들이 요구하는대로 다 해주었는데 대체 뭐가 불만이었던거지?곧이어, 안지영은 조마조마한 마음으로 회사로 돌아가 이연을 따라 사무실로 들어갔다.그러자 수많은 직원들이 모두 귀를 쫑긋 세우고는 사무실의 상황을 살폈다.안지영이 오기 전까지만 해도 부서에는 괜찮은 직원들이 몇 명이나 있었는데, 그녀가 나타난 후 그들은 전부 해고되었기에 사실 많은 사람들이 안지영의 비웃음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동안 이연이 줄곧 안지영만을 이뻐했기에 직원들은 불만이 가득한 상태였다. 언젠가는 그녀가 나락으로 가길 바랬다. 한편 사무실에서 이연은 매서운 눈빛으로 안지영을 노려보
한편 오후가 된 시각,량일이 갑자기 고은영에게 전화를 걸어 아래층에서 만나 같이 얘기를 나누자고 했다.사실 고은영은 그녀를 만나고 싶지 않았다. 하지만 괜히 거절했다가 그 성질머리가 가만 있지 않을 것 같아 어쩔 수 없었다. 고은영이 방에서 걸어나오는 순간, 마침 회의실에서 나오는 배진우랑 마주쳤다. "량일이 저랑 할 얘기가 있다고 해서요. 잠시 나갔다 올게요."그녀는 솔직하게 털어놓았다.량일이 갑자기 고은영을 찾자 배진우는 기분이 뭔가 찝찝했다."가지 마."배진우는 량일이 고은영을 괴롭히려 한다고 생각했다.지금 천의 쪽에서는 량천옥이 갖은 수단을 써가면서 배진우에게 뒤쳐지지 않으려고 애를 쓰고 있었다. 배항준의 협박에도 뻔뻔한 태도를 보이는 량천옥이었다."알겠어요, 안 갈게요. 그 여자가 이따가 올라와서 소란 피워도 내 탓하지 마요."어차피 만나고 싶지 않던 상황에 더 잘 됐다고 생각했다.새침한 표정을 짓는 고은영의 모습을 본 배진우는 귀엽다는 듯이 가볍게 웃으며 그녀를 안고는 소파에 앉았다.그러고는 고은영을 꽈악 끌어안고는 쉴새없이 뽀뽀를 해댔다. 이젠 이러한 스킨십이 너무나 익숙해진 나머지 처음만큼의 설레임은 느껴지지 않았다.하지만 배진우는 여전히 그녀의 체온, 그리고 그녀의 향기가 너무나도 좋았다. “무슨 생각해?”배진우는 눈을 낮추고는 아무 말도 않는 고은영을 흘겨보았다.고은영은 갑자기 코를 훌쩍거리며 눈물을 글썽였다.할머니가 돌아가신 후부터는 그녀는 평생 그 누구에게도 가족의 정을 느껴본 적이 없었기에 지금, 눈 앞의 배진우가 가족처럼 느껴지기 시작했다. 그러나 두 사람 사이를 가로막는 현실의 차이를 생각하게 되면 그녀는 마음이 쓰라렸다."앞으로 평생 당신 곁에 있어도 될까요?" 고은영이 힘겹게 입을 열었다.그러자 배진우의 표정이 점점 풀렸다.그러고는 고은영을 자신의 다리에 앉혀놓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쓰다듬으며 물었다. "평생 같이 하고 싶다고? 왜?"배진우의 역질문에 크게 당황한 고은영은 말을 더듬었
갑작스레 발끈 화 내는 량일의 모습에 량천옥을 당황했다."지금 대체 뭐 하는 거야?"이미 배항준한테서도 허락까지 받은 상황이기에 량천옥은 이 기회에 반드시 제대로 해결하고 싶었다.그리고 그들은 이미 배진우가 고은영에 대한 마음이 진지하다는 것 또한 느꼈다.누가 봐도 진심이었다.그러므로 고은영이 없어야만 그들은 번거로움을 좀 덜 수가 있었다."말해봐, 도대체 누구를 죽이려는 거야?" 량일은 그만 흥분을 가라앉히지를 못했고, 이해할 수 없는 그녀의 태도에 량천옥은 어이가 없었다."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거야?""팍!" 순간 량일은 량천옥의 얼굴에 따귀를 내리쳤다. 강한 따귀 소리와 함께 분위기는 싸해져 버렸다. 여태 그 어떤 일이 있어도 량일은 량천옥을 혼내긴 했지만 한번도 손을 댄 적은 없었다.그런데 세상에 이럴 수가!량일 또한 저도 모르게 내리친 따귀에 스스로 놀라 자신의 손바닥을 바라보았다. 량천옥은 원망 가득한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봤다. "엄마... 방금 나 때렸어? 고작 고은영 때문에?"량일은 순간 이성을 잃고 저질러버린 사고가 믿겨지지가 않았다. 내가 대체 왜 이런거지? 왜 이렇게 멍청하게 군거지?"청옥아, 난...!""왜 고은영을 감싸고 있는데? 대체 왜?" 량천옥은 울먹이는 말투로 따졌다.그녀의 머릿속에서는 그동안 량일한테로부터 당했던 수모들이 스쳐 지나갔기에 너무 속상한 나머지 그녀는 눈물을 뚝뚝 훌렸다. 이때 밖에서 엿듣고 있던 누군가의 인기척을 발견한 량일은 량천옥의 손을 덥석 잡았다."일단 방에 가서 마저 얘기해."그렇게 둘은 조용히 방으로 향했다.곧이어 "쾅!" 하는 소리와 함께 방 문이 굳게 닫혔다.량일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진정해."한평생 이렇게 크게 화를 내본 적 없던 량일은 차마 뭐라 변명할지 생각이 나지가 않았다.너무 답답한 나머지 그저 량천옥을 바라보며 눈물을 뚝뚝 흘렸다."대체 왜 그러는건지 말해보라니까!" 량천옥은 더이상 참기가 싫었다. "그 여자한테 그렇게
량천옥이 그녀의 과한 반응을 보며 눈썹을 찌푸리며 따졌다. “엄마 제정신이에요? 그 계집애를 왜 싸고도는 거냐고요!"요 며칠 배준우와의 일 때문에 정신이 없어서 알아채지 못했는데, 이제 보니 량일의 반응은 명확히 고은영을 감싸는 듯했다. 량천옥의 입장에서야 황당하고 이해가 안 갈 수밖에 없었다. 량일은 고통스러운 듯 고개를 숙였다.“천옥아, 제발 우리 더 이상 사람을 해치지 말자꾸나. 그게 다 우리에게 돌아올 거야.”“전 그런 거 안 믿어요!”인과응보? 돌아온다고?그런 미신 같은 말 따위에 흔들릴 량천옥이 아니었다.량일이 더 이상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인내심을 잃어버린 량천옥은 벌떡 일어나서 뒤돌아섰다.“천옥아!”“됐어요! 이 일은 배항준이 뒤에서 받쳐주고 있다는데 뭐 어쩌겠어요?! 제가 두려워할 건 아무것도 없어요!”그전에 고은영을 건들지 못 했던 건 아무래도 배준우의 보복이 두려워 서라지만, 이번에는 하늘이 무너지더라도 천의만큼은 지켜야 했다.고은영이 없었다면 배준우도 배항준에게 들이밀 명분이 없어질 것이다. 게다가 지금 배항준이 그녀에게 허락의 사인을 준 이상, 더 이상 그녀에게 망설일 이유 같은 건 남아있지 않았다.량일은 무정하게 돌아서는 딸의 옷자락을 잡아챘다.“안돼, 정말 그러면 안 된다!”“엄마!”량천옥도 이미 한계였다. 제 어머니가 저 못된 계집애를 감싸고돌다니? 량일의 마음이 요동쳤다. 그녀의 눈에서는 그전보다도 더한 광기가 보이고 있었다. 배항준이 눈감아 줄 거라는 그 믿음 아래, 이번에야말로 딸이 고은영에게 무슨 짓이든 할 거라는 사실이 명명백백히 느껴지는 것이었다.피눈물을 흘리는 마음으로, 약간은 갈라진 목소리가 결국 입을 연 량일에게서 흘러나왔다.“걔, 그 애는 … 네 딸이란 말이다…!”공기가 순식간에 싸해졌다. 결국 그녀는 이 일을 꺼내고 말았다. 량일이 여태껏 이 일을 량천옥에게 말하지 않은 것은 결국 제 딸이 배윤을 낳고서도 그 아이를 마음속에 품고 있다는 것을 알고 있기 때문이었다. 량천옥
이런 것이 하늘이 내린 벌이 아니라면 대체 무엇이란 말인가?무너지듯 소파에 주저앉은 량천옥의 얼굴색이 희게 질려있었다.그녀는 바들바들 떨며 어머니를 바라봤다.“거짓말이죠?... 지금 절 속이시는 거죠?”물론 량천옥도 잘 알고 있었다. 자기를 속일 이유가 있을까? 그런 것 따위 없다는 것쯤은 그녀도 너무나도 알고 있었지만, 지금은 지푸라기라도 잡아 보는 심정이였기에 묻지 않을 수가 없었다. “내가 대체… 널 왜 속이겠니.”일생을 자식에게 바친 어머니에게 자식을 속일 이유는 없었다. 1초, 1분… 시간은 계속 흘러갔고, 둘 사이에는 죽음과 같은 정적이 흐르고 있었다. 거의 1시간 동안 그 정적은 깨지지 않았다.그렇게 긴 시간이 지나고 나서야, 창백하게 질려 있는 량천옥이 천천히 깊은 한숨을 내뱉었다.아마 그 누구도 그 1시간 동안 그녀의 마음속에서 어떠한 고통과 고뇌가 있었을지 상상할 수 없을 것이다. 그렇게나 오랜 시간 동안 그리워하며 마음속으로만 품어 왔던 아이의 존재가 이런 상황에서 이렇게 그녀에게 나타날 줄이야!“그래, 엄마 말이 맞아요. 인과응보네요. 이렇게 제게 돌아오고 말았네요!”량천옥이 절망적으로 중얼거렸다.이것이 바로 인과응보인 것이다. 그들이 한 모든 짓들에 대한 대가처럼 돌아온 것이었다.량일은 어느새 눈물을 흘리고 있었다.“그 애를 제발 해치지 말렴…”해친다고? 이제 와서 어떻게 해친단 말인가!량천옥은 그제야 오늘 전화를 걸었던 사람이 고은영을 노리고 있을 거라는 것을 생각해 내고, 떨리는 손으로 전화기를 들어 전화를 걸었다.“사모님!”다행히 상대는 빠르게 전화를 받았다.“이쪽에서는 약간 계획에 변동이 있을 것 같으니, 당분간 다른 행동은 하지 말아 주세요.”그녀는 상대가 자신의 상태를 알지 못하도록, 평정심을 찾으려 노력하며 입을 뗐다.그러나 량천옥 본인이 어떠한 절망을 안고 있는지 그녀 본인은 너무나도 뼈저리게 알고 있었다.옆에 초조하게 서있던 량일도 량천옥의 입에서 계획을 취소한단 말이 나오자
한편 배준우는 얼굴이 발그레하게 달아오른 고은영을 끌고 퇴근길에 올랐다.졸졸 따라오는 그녀는 아직 모든 상황이 익숙하지 않은 듯 보였기에 그는 일부러 고은영의 손을 잡고 걸었다.차에 탄 고은영은 샤인머스캣을 한 송이 무릎에 얹어두고 먹었다. 배준우가 그녀 쪽을 슬쩍 돌아봐 물었다. “맛있어?”“네! 맛있어요!”진청아가 사다 준 샤인머스캣을 먹고 있었다. 예전에는 한 송이 사는 것도 아까워서 못 샀던 것이었다.마트에서 과일 코너를 지나다 보면 예쁘게 포장된 것이 먹음직스럽고 보기 좋아서 항상 먹고 싶다고 생각했지만 결국 비싼 가격에 참기만 했었다.“오후에도 먹어 놓고. 또 배고픈 거야?”“그러게요, 진짜 계속 배가 고프네요.”아마 뱃속의 아기가 영양분을 잘 흡수하고 있는 탓인지, 요 며칠 그녀는 예전보다 꽤나 자주 배가 고프다고 느꼈다.란완리조트로 돌아온 그들은 노 집사가 준비해둔 저녁상을 받았다.“저녁은 사모님이 좋아하시는 만둣국으로 준비해 두었습니다.”노 집사의 말에 고은영의 눈이 반짝 빛났다.“진짜요?!”“그럼요, 오후 내내 주방에서 빚고 있었는걸요!”혜나가 옆에서 거들었다.고은영은 정말로 신이 났다.어릴 때 할머니와 자라면서 식습관이 굳어져서인지 그녀는 만두라면 사족을 못 썼다. 만두 소리에 어린애처럼 기쁜 게 얼굴로 다 티 나는 그녀를 내려다보는 배준우의 입꼬리도 슬쩍 올라갔다.식탁에서 그녀는 한 번에 만두를 20여 개나 해치웠다.“만두 맛있었어?”“네! 내일은 버섯 들어간 만두가 먹고 싶어요.”“먹고싶으면 먹어야지.”배준우를 따라서 식탁 한편에 서있던 노 집사도 고개를 끄덕였다.사모님이 드시고 싶은 건 바로바로 준비해야지!이제 고은영도 슬슬 그의 곁에 있는 게 싫지 않아졌다. 예전의 공포심이 없어지니 같이 있는 게 좋았고 이제는 아무 걱정도 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행복했다. 고은영이라는 사람 자체가 원래부터 그렇게 매사에 계산적이거나 머리 굴리는 사람이 아니기도 했다.그때, 배준우의 핸드폰이 울렸다.고
“진짜로 거래처 두 곳에서 나 대표님 전화를 받았다고 했다고요?”이연이 참지 못하고 묻자 안지영이 고개를 끄덕댔다.“그렇다니까요!”“그럼… 차라리 가서 여쭤보는 건 어떤가요?”이연은 무슨 일이 생기든 앞뒤는 알아야 된다는 주의였다.오늘 오후에 안지영이 들었다던 그 전화의 이야기도 사실 구슬리고 또 구슬려서 간신히 들어낸 것이었다. 그것 말고는 도무지 더 이상 다른 얘기가 나올 기미가 없었다. 게다가 나 대표님조차 말을 안 하니, 그들도 입장이 난처해졌다. 가서 여쭤보는 게 어떠냐는 말에 안지영은 계속 거절하고 싶은 마음이 들었지만, 그녀도 궁금하긴 매한가지였다.“… 뭐, 물어보기는 해야 될 것 같아요.”이렇게 된 이상 가서 물어보는 것 말고는 방법이 없었다.“그럼 얼른 대표님 사무실로 가 봐요!”어차피 이미 지하철도 끊긴 시간이었다.“네, 이 팀장님 먼저 퇴근하세요. 전 여쭤 보고 갈게요.”이렇게 일이 커진 데다가 팀장님한테까지 민폐를 끼쳤다는 생각을 하니 그녀는 계속 마음이 불편했다. 사건이 해결되면 커피라도 사서 드려야지하고 다짐할 수밖에 없었다. 그녀가 나태웅의 사무실에 도착했을 때 마침 그도 회의를 마치고 돌아오는 길이었는데, 하필 낫빛이 별로 좋아 보이지 않았다.게다가 안지영과 딱 마주치자마자, 그 안색이 더 나빠지는 걸 그녀는 보고야 말았다.“대표님, 회의 끝나셨나요?”“응.”나태웅은 곧바로 안지영 곁을 지나쳤다. 싸한 민트 향과 섞인 담배 냄새가 뒤를 따랐지만 싫지는 않은 냄새였다.그녀는 약간 초조하게 컵을 집어 드는 나태웅을 바라봤다. “저… 오늘 일은 정말 죄송합니다!”먼저 사과부터 해야지!그러나 뒤따라오는 말은 사과와는 거리가 멀었다. “그런데 저도 오늘 이래저래 알아보았는데요…. 모두들 계약서에 사인하기 전에 나 대표님의 전화를 받았다는 말만 하셔서… 혹시 대표님이 전화하신 걸까요?”만약에 정말로 그가 전화를 걸었다면, 대체 뭔 전화였길래 사인하고 날인만 하면 끝날 계약이 이렇게나 갑작스럽게 파투가
그렇지만 내일 오전까지 계약을 어떻게든 따 내라는 말은 오늘 밤에 기획안을 만들어 내라는 말과 같았다.지금 벌써 이 시간인데, 그럼 퇴근을 아예 못한단 말이잖아!안지영이 입술을 깨물다가, 간신히 한마디를 쥐어짰다.“정… 정말 급한 일인가요?”“업체에서 내일 오후에 다른 회사와 미팅을 잡았어.”그러니까 오늘 밤에는 꼭 나와야 된다는 말이였다. 이 두 개의 중요한 업체를 남에게 넘겨줄 수는 없다는 생각에, 안지영도 헐레벌떡 자기 사무실로 갔다. 그리고 장선명에게 전화를 걸어 오늘 밤 퇴근하기는 글렀으니 기다리지 말라고 전해두는 것도 잊지 않았다.나태웅은 회사에 열두시 조금 넘어서까지 있다가, 판매부 사무실 쪽으로 슬쩍 넘어갔다.그런데 웬걸, 판매부 사무실 문 안에서 웬 남자와 여자의 목소리가 같이 들리는 것이었다!자세히 들으니, 바로 안지영과 장선명이었다.“뭐라도 좀 먹어.”“감사합니다…”안지영은 정말로 배가 고팠다.큰일이 터졌기에 그녀는 저녁도 못 먹고 하루 종일 쫄쫄 굶은 상태였다. 사무실 문을 벌컥 열고 들어선 나태웅의 눈에 장선명이 포장해온 김치찜이 들어왔다.“대표님!”태웅의 등장에 벌떡 일어선 안지영과는 달리, 장선명은 그녀 옆쪽의 사무실 의자에 기대앉아 있었는데, 아주 붙어 있던 건 아니지만 그 거리도 나태웅을 묘하게 기분 나쁘게 했다.“넷째 도련님은 정말 사람을 잘 챙기시네요. 근데 이 야밤에 매운 걸 먹어도 별로 좋지는 않을 것 같습니다만.”첫마디는 칭찬인데, 뒷말은 완전히 비꼬는 기색을 숨기지도 않은 말이었다.사람 챙길 줄을 모르니 아무렇게나 막 챙기지! 한편 안지영도 그 말에 가시가 박힌 게 느꼈기에 허겁지겁 장선명을 감싼답시고 끼어들었다.“제가! 제가 매운 게 먹고 싶다고 했어요!”그러자 나태웅이 또 한껏 그녀를 째려보는 통에 그녀는 바로 입을 다물었다.또 내가 뭔 말을 잘못한 거지?“같이 가실까요?”장선명은 바로 무슨 상황인지 파악이 됐다. 다만 장선명이라는 인간 자체가 반골 기질에, 그와 안지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