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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그는 나를 버렸다
그날, 그는 나를 버렸다
Author: 나이트 송

제1화

Author: 나이트 송
last update Last Updated: 2024-12-25 18:57:45
내 죽음은 처참했다. 두 다리는 살점이 모두 도려내져 하얀 뼈에 핏덩이만 몇 가닥 걸려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베테랑 형사마저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훔쳤다.

“살아서 능지처참당했다니... 얼마나 아팠을까? 얼굴에 난 상처만 봐도 범인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알겠어. 그 와중에 숨이 끊어질 때까지 어린 동생을 지키려 했다는 거야? 세상에...”

죽기 직전, 너무나도 끔찍한 고통을 겪었기 때문일까? 나와 강민혁의 영혼은 저승으로 가지 못한 채 ‘남편’ 강민호의 곁을 떠돌았다.

그는 지금 첫사랑 임연수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는 진료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 의사의 가운을 움켜쥐며 울부짖었다.

“당장 연수를 살려주세요! 제발요! 연수는 발레리나예요. 발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고요! 알겠어요?”

강민호의 눈에는 절박함과 광기가 뒤섞여 있었다. 그동안 내가 본 적 없는 애틋함과 간절함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

의사가 임연수의 발목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며 응급처치를 마치고 나서야 그는 안도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이어 비서에게 고급 병실을 예약하라고 지시하며 덧붙였다.

“연수가 회복할 때까지 아무 문제 없도록 신경 써.”

비서는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말했다.

“대표님... 연수 씨는 구하셨지만, 사모님과 작은 도련님은 아직 납치범에게 잡혀 있습니다. 혹시...”

비서는 경찰에게 신고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강민호는 짜증스럽게 말을 잘랐다.

“유정이가 민혁이를 데리고 벌인 연극일 뿐이야. 이미 4천만 원이나 쥐여줬는데 그걸로 모자란다고? 연수가 지금 힘들어하는 게 안 보여? 미친 여자의 이름은 당분간 입에 올리지 마.”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갈 곳 없이 떠다니던 민혁의 귀를 막았다.

아이의 초점 없는 눈동자와 슬픔 어린 표정을 보며 나는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마치 끝없는 지옥으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

‘그래... 강민호는 늘 나를 계략만 꾸미고 다른 사람을 속이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지. 민혁이를 망친 사람도 나라고 여긴 거겠지... 그런 사람이 우리를 구하러 올 리가 없었잖아...’

우리가 이미 죽었다는 사실을 강민호는 알 리가 없었다. 그가 임연수의 발을 주무르며 안심하고 있을 때, 우리는 범인의 칼에 찔려 죽었다.

죽기 직전, 나는 마지막으로 그에게 전화를 걸어 애원했었다.

“민호 씨... 제발... 우리 좀 구해줘. 진짜 죽일 것 같아...”

통화가 연결되는 순간, 나는 희미하게나마 희망의 빛을 본 줄 알았다. 하지만 3년간 나의 남편이었던 강민호는 오히려 눈살을 찌푸리며 차갑게 말했다.

“안유정, 또 쇼야? 연수가 얼마나 무서워했을지 알기나 해? 네가 감히 이딴 짓까지 벌이고, 내 동생 민혁이까지 끌어들여? 네가 이렇게 비열한 줄은 몰랐어!”

나는 떨리는 손으로 마지막 숨마저 끊겨가는 민혁이를 품에 안았다. 피투성이가 된 민혁이의 얼굴을 보여주려 했지만, 강민호는 내 말을 들을 생각조차 없었다.

대신 냉담하게 쏘아붙였다.

“네가 오늘 벌인 짓... 두고 봐. 나중에 제대로 따져 물을 거야.”

그러고는 상처투성이가 된 나를 완전히 무시한 채 전화를 끊었다.

끊기기 직전, 나는 임연수의 애교 섞인 목소리가 어렴풋이 들려왔다.

임연수는 그저 발목을 삐었을 뿐이었다. 하지만 강민호는 병실에서 사흘 밤낮을 지새우며 그녀 곁을 떠나지 않았다. 마치 깨지기 쉬운 도자기를 다루듯, 임연수를 조심스럽게 품에 안고 온 마음을 쏟아부었다.

강민호는 그릇 속의 죽을 조심스레 불어 식힌 뒤, 천천히 임연수의 입가에 가져다 대며 그녀를 위로하려 애쓰고 있었다

“다행히 크게 다치지 않았대... 발 삔 거 보고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어...”

임연수는 눈물을 뚝뚝 흘리면서도 억지로 미소를 지으며 강민호에게 애교를 부렸다.

“민호 오빠... 유정 언니랑 민혁이가 날 그 폐공장으로 데려갔을 땐, 정말 이렇게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어. 오빠가 날 구해줘서 다행이야. 오빠가 없었으면 난...”

‘말도 안 돼! 나랑 민혁이는 임연수 때문에 납치된 건데, 어쩜 이렇게 눈 한번 깜빡하지 않고 거짓말을 할 수 있는 거지?’

임연수는 입술을 깨물며 눈물을 닦아내더니, 감사하다는 표정으로 강민호를 바라보며 말했다.

“민호 오빠, 오빠는 내 생명의 은인이야. 이제부터 난 오빠의 여자야.”

강민혁은 슬픈 눈으로 두 사람의 따뜻한 모습을 가만히 지켜보다가 개를 숙이고 조용히 말했다.

“형... 형수님이랑 나보다 연수 누나가 더 중요했던 거지?”

하지만 강민호는 그의 말이 들리지 않는 듯, 다정하게 임연수의 머리를 쓰다듬었다. 그러고는 비서에게서 건네받은 초대장을 임연수의 손에 꼭 쥐여주며 말했다.

“모스크바 발레단의 수석 자리야. 네가 그동안 얼마나 힘들었는지 알고 있어. 이건 내가 너에게 주는 작은 위로야. 빨리 회복해서 멋진 무대를 보여줘. 내가 안심할 수 있도록...”

초대장에는 화려한 금박 문양이 새겨져 있었다. 모스크바 발레단은 모든 발레리나의 꿈과도 같은 예술의 성지였다. 나도 그 자리를 꿈꿨었다.

임연수는 초대장을 매만지며 천진난만하게 웃었다.

“민호 오빠, 왜 이렇게 잘해줘? 정말 고마워...”

그러면서 몸을 움츠리며 망설이는 듯한 목소리로 덧붙였다.

“근데... 이 자리 유정 언니 거 아니었어? 언니가 알면, 또 민혁이를 시켜서 나를 혼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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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민호는 우리와 함께했던 영상을 반복해서 봤다.영상 속 추억에 웃음을 터뜨리기도 하고, 어느 순간에는 갑자기 무너져 울음을 참지 못하기도 했다.밤이 되면 그는 곰 인형을 품에 안고 영상 속 우리의 목소리를 들으며 그대로 잠들었다. 그렇게 하지 않으면 그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것 같았다.그는 점점 변해갔다. 예전에는 손도 대지 않던 부엌에 들어가 요리를 배우기 시작했다.갈비찜, 토마토 새우, 간장 닭찜... 내가 좋아하던 음식, 강민혁이 좋아하던 음식들을 그의 상처투성이 손끝에서 만들어냈다.그는 식탁에 앉아 마치 우리가 눈앞에 있는 것처럼 술잔에 술을 채우며 말했다.“유정아, 민혁아, 봐봐. 내가 만든 음식 어때? 정말 맛있어 보이지?”“이제 나 요리도 할 줄 알고, 그림도 배웠으니까 우리 앞으로는 더 많은 이야기를 나누며 행복하게 살 수 있겠지? 그렇지?”그의 얼굴은 창백했지만, 마치 행복에 겨운 사람처럼 미소를 띠고 있었다.강민혁은 방 한쪽 구석에 숨어 형을 외면한 채 고개를 돌렸다.그는 더 이상 이 형과 어떤 감정도 나누고 싶지 않았다.나는 조용히 강민호를 지켜보았다. 그러나 그의 몰락에서 복수의 쾌감도, 연민도 느낄 수 없었다. 그저 그가 너무나도 비참해 보였다.강민호는 점점 더 극단적인 행동을 하기 시작했다.회사를 등지고 주식을 팔아 치운 뒤, 그는 온갖 사찰을 찾아다니며 신에게 빌었다.크고 작은 절을 수백 곳 찾아다니던 그는, 마침내 전설처럼 신통하다고 소문난 옥령산의 천년 고찰로 향했다. 거기서 그는 3천 계단을 한 걸음씩 절하며 올랐다.땀이 그의 눈을 따갑게 만들었지만 그는 아랑곳하지 않고, 불타는 눈빛으로 스님을 향해 외쳤다.“제 아내와 동생이 사라졌습니다... 스님이 정말 신통하다면 제발 그들을 돌아오게 해주세요. 그조차도 안된다면... 마지막으로 한 번만 그들을 볼 수 있게 해주세요...”스님은 그의 어깨 너머를 바라보며, 나와 강민혁을 발견했다.강민혁은 귀를 막고 바닥에 웅크려 몸을 작게 만들었다.나는 손을

  • 그날, 그는 나를 버렸다   제8화

    강민호는 우리 셋이 함께 그렸던 그림을 품에 안고, 웃는 건지 우는 건지 알 수 없는 표정으로 마치 세상에서 가장 귀한 보물을 품은 사람처럼 꼭 끌어안고 있었다.그러던 중, 빛나는 무언가가 그의 시선을 사로잡았다. 그는 허겁지겁 기어가 책장 밑에서 작은 USB를 주워 들었다. 그것은 내가 강민호와 함께한 사랑의 순간들을 기록한 영상이었다.영상의 시작은 우리가 처음 만난 날이었다.5년 전, 나는 침대 위에서 여유롭게 누워 담요 속에서 들뜬 목소리로 말했다.“오늘 정원에서 정말 예쁜 꼬마를 만났어! 그리고 그 애의 형이 데리러 왔는데 문득 귀에서 종소리가 들렸어. 아마도... 첫눈에 반했나 봐.”4시간에 이르는 영상은 우리가 함께한 모든 순간을 담고 있었다.함께 본 영화, 강민혁과 함께 그렸던 그림들, 강민호가 우리를 위해 준비했던 작은 선물들... 모든 것이 담겨 있었다. 하지만 시간이 흐를수록, 영상 속의 내 얼굴은 점점 피곤해 보였다.영상 후반부에 갈수록, 나는 자주 눈물을 보였다.“오늘 무용실 근처에서 변태를 만났어. 언니들이 달려와서 구해줬는데, 정말 무서워서 입술이 하얗게 질렸어. 그래도 민호 씨는 요즘 너무 바쁘니까 이런 사소한 일로 귀찮게 하면 안 되겠지...”“아버님이 임연수가 민혁이를 괴롭혔던 영상을 보여주셨는데, 보시면서 눈물을 흘리셨어. 나도 가슴이 아팠어. 민혁이를 지키고, 이 가족을 보호하려면 임연수가 더 이상 끼어들지 못하게 해야겠어...”“오늘 민혁이가 가족사진 속 민호 씨를 보며 형이라고 불렀어! 민혁이가 정말 좋아지고 있어! 민호 씨가 퇴근하면 바로 이 좋은 소식을 알려주고 싶어. 그런데... 민호 씨는 언제쯤 집에 올까?”“생리가 며칠째 늦어졌어. 조금 걱정되면서도, 설레기도 해. 그래도 이번 여행이 끝나고 나서 민호 씨한테 말할까 싶어. 요즘 정말 피곤하네...”강민호는 처음에는 평온한 얼굴로 영상을 보았다. 그러나 내가 남겼던 외로움의 순간들을 하나둘씩 알게 될 때마다, 그는 울음을 터뜨리며 무너졌다.그

  • 그날, 그는 나를 버렸다   제7화

    “유정 언니, 두 사람 사이에 문제가 생긴 건 두 사람한테서 원인을 찾아야 하는 거 아니에요?”갑작스러운 임연수의 말에 나는 멍해졌다. 하지만 아무 맥락도 없는 비난에 화가 치밀었다.아직 말을 꺼내기도 전에, 그녀는 갑자기 비명을 지르며 계단에서 일부러 발을 헛디뎠다.“아야! 발목이 너무 아파요... 유정 언니, 잘못했어요. 다시는 민호 오빠의 근처에도 안 갈게요. 제발 살려주세요...”나는 그녀의 연기를 냉정한 눈으로 지켜봤다. 그녀는 몇 번이고 반복해서 상황을 연출한 끝에, 결국 납치범들과 가장 폭력적으로 보이는 영상을 골라 강민호에게 전송했다.나는 그녀가 단순히 연극을 꾸며, 또다시 나를 강민호 앞에서 모함하려는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비웃음이 새어 나왔다.“임연수 씨, 민호 씨는 당신만큼은 아니더라도 정상적인 판단력을 가진 성인 남자예요. 이런 수작이 계속 통할 거라고 생각해요?”내 옆에서 겁먹은 표정을 짓고 있던 강민혁도 두려움을 참으며 목에 힘을 주고 그녀를 노려보았다.“형은 날 제일 사랑해! 이번에는 당신의 진짜 모습을 반드시 알아챌 거야. 우리를 다시는 못 다치게 할 거라고!”우리의 반응에 당황한 듯 보였던 임연수는 곧 화가 치밀어 오른 표정으로 다가오더니, 손에 든 칼로 내 다리를 깊게 베었다.나는 통증에 신음을 내뱉으며 놀란 눈으로 그녀를 바라봤다.“그래요? 그런데 왜 난 유정 씨 말이 아니라, 무조건 내 말만 믿을 것 같죠?”그녀는 냉소적으로 웃으며 덧붙였다.“한번 기다려보자고요.”내가 고통에 몸을 떨고 있을 때, 임연수는 납치범의 리더와 시간을 맞추며 뭔가를 상의했다.그러고는 미소를 지으며 천천히 자기 옷을 찢기 시작했다.나는 그녀의 허술한 계획이 강민호에게 통하지 않으리라 믿었다.사업가로서 수많은 상황을 판단해 온 강민호라면 분명 이 엉성한 연극을 꿰뚫어 볼 거라고 생각했다.하지만 아니었다. 그가 본 것은 먼지투성이의 임연수가 절박한 표정으로 몇 마디를 하고 그대로 실신한 모습뿐이었다.강민호는 내 몸

  • 그날, 그는 나를 버렸다   제6화

    강준모는 분노를 참지 못하고 가슴을 부여잡으며 소리쳤다.“네 아내랑 동생을 죽인 진짜 범인은 아직도 못 잡았는데, 넌 여기서 저 여자의 편만 들고 있어? 내가 너 같은 놈을 낳았을 줄 알았다면, 태어나자마자 그냥 목을 졸라 죽였을 거야!”그의 얼굴은 붉게 달아오르고 숨소리는 점점 가빠졌다. 그러다 결국 비틀거리며 쓰러질 것처럼 보이자, 급히 달려온 이혜자와 경찰들이 그를 부축해 진정시켰다.그러나 강민호는 여전히 임연수를 끌어안고 경찰서를 떠나려 했다. 그 모습을 본 이혜자는 끝내 참지 못하고 흐느끼며 외쳤다.“아들아, 대체 왜 아직도 임연수의 진짜 모습을 못 알아보는 거니! 네가 임연수랑 사귀기 시작한 후, 민혁이가 자폐증을 앓기 시작했잖아. 그래서 우리가 몰래 임연수를 추적했던 거야. 우리가 너희를 반대했던 이유는 임연수가 민혁이를 해치려는 걸 직접 봤기 때문이야!”강민호는 어머니의 고백에 멈칫했다. 이혜자는 한숨을 내쉬며 눈물을 쏟았다.“임연수는 네 앞에서는 착한 척했지만, 민혁이 피아노에 커터 칼날을 끼워놓고, 민혁이 우유에 접착제를 넣기도 했어. 그 이유는 네 부인이 된 후 더 많은 재산을 물려받으려고 했던 거였어! 임연수가 더 이상 민혁이를 해치지 못하게 하려고 우리가 몰래 해외로 내보낸 거였어. 하지만 넌 아무것도 모르고 우리가 너희를 억지로 떼어놓으려 했다고 믿으면서 우리를 원망했지...”이혜자는 끝내 흐느낌을 멈추지 못하며 말했다. 그동안 숨겨왔던 이야기를 꺼내는 그녀의 목소리에는 깊은 상처와 슬픔이 배어 있었다.그 순간, 강민혁이 작고 투명한 손으로 이혜자의 눈물을 닦아주려 했다. 그러나 그의 손이 어머니의 얼굴을 통과하는 순간, 민혁은 얼굴이 하얗게 질려 내 품에 안겨 울음을 터뜨렸다.“형수님... 어머니를 안아주고 싶었는데... 이젠 못하나 봐...”그의 슬픔에 나 역시 마음이 찢어질 것 같았다. 민혁과 함께 흐느끼는 어머니의 모습을 보며, 나는 그들의 고통이 내 것이 된 듯 가슴이 저렸다.강민호는 어머니를 붉어진 눈으로

  • 그날, 그는 나를 버렸다   제5화

    강민호는 바닥에 멍하니 몇 초간 앉아 있더니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고함을 질렀다.“안유정이 대체 너희한테 무슨 수를 쓴 거야? 어떻게 일을 이렇게까지 키울 수 있냐고! 이제는 죽었다고 날 도덕적으로 압박하려고 하는 거야? 진짜 역겨울 지경이야!”그 순간, 강준모가 한 걸음 앞으로 다가오더니 그의 가슴팍을 세게 걷어차 바닥에 넘어뜨렸다. 이어 그는 강민호의 뺨을 몇 번이고 세게 내려쳤다.“그만 좀 해라! 안으로 들어가서 네가 지금까지 무시하고 넘겼던 일들이 누구를 죽게 했는지 똑똑히 봐!”강민호는 고개를 흔들며 필사적으로 저항했다.“싫어요! 저건 다 거짓말이에요!”결국 강준모와 경찰들이 그를 거의 억지로 끌고 안치실로 밀어 넣었다. 차가운 공기가 방 안을 가득 메웠고, 강민호는 어깨를 움츠리며 이를 악물었다. 그러나 입에서는 여전히 비난의 말이 흘러나왔다.“이렇게 세트장을 꾸며 놓고 겁줄 생각이었던 거야? 안유정이랑 민혁이는 지금 휴양지에서 잘 놀고 있을 텐데, 대체 무슨 소리를 하는 거야?”강준모는 마지막 남은 인내심마저 잃었다. 그는 강민호의 머리를 잡아 눌러 강제로 시신 쪽으로 얼굴을 돌렸다.그러자 내 얼굴, 고문과 상처로 뒤덮인 참혹한 모습이 그의 눈에 들어왔다.강민호는 말문이 막힌 듯 그대로 얼어붙었다.그 순간, 내 곁에서 고통을 참으며 서 있던 엄마가 냉소적으로 웃으며 말했다.“눈 똑바로 뜨고 봐라. 네가 마지막까지 내팽개친 사람들의 모습이니까...”엄마는 그의 턱을 움켜쥐고 억지로 돌렸다.이번엔 민혁이었다. 작은 몸이 안치대에 조용히 누워 있었고, 한때 그가 초상화를 그렸던 손은 흔적도 없이 사라진 상태였다.나는 민혁의 눈을 두 손으로 가렸다. 아직 어린 그가 이런 끔찍한 장면을 보게 둘 수 없었다. 자기 시신 앞에서 가족들이 서로를 비난하며 몸싸움을 벌이는 모습을 볼 이유도 없었다.강민호는 두 시신을 몇 분간 멍하니 바라보다가 갑자기 벌떡 일어나 강준모를 뿌리치고 소리를 질렀다.“안유정, 그만해! 너 진짜 이번

  • 그날, 그는 나를 버렸다   제4화

    강준모의 분노는 점점 고조되었고, 그 분위기를 감지한 임연수도 얼굴이 하얗게 질려 물었다.“유정 언니... 진짜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 제가 같이 가서 확인할까?”강민호는 애써 태연한 척하며 말끝을 흐렸다.“아니야. 뭐... 설마... 그런 일이야 없겠지.”그러면서도 강준모에게는 아무렇지 않게 농담을 던지려 했지만, 돌아온 것은 냉담한 한마디였다.“지금 당장 경찰서로 와!”강준모가 전화를 끊자, 강민호는 멍하니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다. 그저 손가락으로 테이블을 두드리기 시작했다.나는 그가 무언가를 고민할 때마다 항상 이러는 걸 알고 있었다.임연수가 그의 곁으로 다가가 살며시 몸을 기대며 그를 안았다.“우리도 경찰서로 가볼까? 유정 언니가 죽었을 리는 없겠지만... 혹시 다쳤을 수도 있잖아. 아버님, 어머님께서 원래 유정 언니를 좋아하셨으니까 오히려 두 분이 오빠랑 유정 언니 사이를 좀 더 좋게 만들려고 그러신 걸지도 모르지...”임연수의 말에 강민호는 조금 안도한 듯한 표정을 지었다. 그는 그녀의 어깨를 손가락으로 천천히 쓰다듬으며 말했다.“네 말이 맞는 것 같아. 안유정은 원래 어른들 앞에서 잘하는 척하고 약한 척하잖아. 우리 부모님도 노인네라서 그런 걸 못 알아채고 넘어갔겠지. 민혁이랑 둘이 함께 꾸민 쇼니까 기껏해야 살짝 다쳤을 거야. 걔가 진짜 죽을 리가 있겠어?”그 말을 듣고 있던 강민혁은 소파 구석으로 숨어들며 실망감에 어깨를 떨었다. 나는 그를 위로하고 싶었지만, 강민혁이 먼저 힘겹게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형수님... 형은 우리를 버렸어요. 지금 이렇게 된 이상, 나도 더는 형을 가족으로 여기지 않을 거예요...”그의 미소에 담긴 쓰라린 감정을 보며 나는 한숨을 내쉴 수밖에 없었다.강민혁은 강민호보다 17살 어렸다. 그러니 강민호가 키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형제간의 우애가 깊었다.한때 강민호는 회사 일정을 미루면서까지 민혁을 병원에 데려가고, 그림을 그리게 하며 놀이공원에도 함께 갔었다. 그래서 민혁에게

  • 그날, 그는 나를 버렸다   제3화

    임연수는 강민호 앞에서 온갖 힌트를 남기며 모든 일을 내가 꾸민 것처럼 강민호에게 말하더니, 이제 와서는 또다시 착한 척을 하고 있었다.“유정 언니랑 민혁이는 일부러 저를 데려간 게 아닐 거야. 아마 다들 너무 급해서 그런 거겠지... 그래도 유정 언니는 오빠의 아내이고, 민혁이는 오빠 친동생인데, 한 번쯤은 신경 써주는 게 좋지 않을까?”강민호의 얼굴에는 연수에 대한 연민이 가득했다.“연수야, 넌 어쩜 이렇게 마음이 넓어?”그러면서도 그의 표정은 점점 짜증스러워졌다.“안유정 그 여자는 너를 다치게 했던 사람이야! 넌 다리가 그렇게 심하게 다친 상황에서도 뻔뻔하게 나더러 무릎 꿇고 사과하라고 했다니까. 진짜 한 번 혼쭐이 나야 정신 차릴 거야!”임연수는 다시금 고개를 숙이며 미안한 척 말했다.“유정 언니도 오빠를 너무 사랑해서 그런 거겠죠. 저는 민혁이도, 유정 언니도 전혀 원망하지 않아요.”“네가 그렇게 자꾸 봐주니까 걔가 널 우습게 보는 거야! 민혁이까지 끌어들여 널 괴롭히는 거라고! 진짜 더는 못 참겠어!”그들의 대화를 들으며 나는 억울함에 몸부림쳤지만, 이미 죽은 내가 무슨 말을 한들 들릴 리 없었다. 무력하게 손만 축 늘어뜨렸다.나는 처음부터 임연수가 마음에 들지 않았었다. 예전에 무용실 근처에 변태가 출몰했을 때도, 내가 강민호를 걱정시키고 싶지 않아 친구와 함께 있다고 말했지만, 임연수는 한밤중에 민호에게 전화를 걸어 혼자라며 하소연했다.강민혁이 심리 상담을 받으러 갈 때도, 임연수는 병원 밖에서 우연을 가장해 몇 시간씩 대화를 나누며 시간을 함께 보내게 상황을 만들었었다.처음에는 그녀와 대화를 시도해 보려 했지만 임연수는 나를 비웃으며 무례한 말까지 했었다.“너 같은 늙은 여자에다 멍청한 민혁이가 나랑 비교가 된다고 생각해? 민호 오빠한테 부탁하면 널 죽이는 것도 문제없어.”그러면서 우리가 함께 산 작은 곰 인형들을 가위로 조각조각 잘라버렸다. 화를 참지 못한 민혁이 그녀를 밀쳐냈고, 마침 그 순간 강민호가 들어왔다.그

  • 그날, 그는 나를 버렸다   제2화

    임연수가 내 이름을 꺼내는 순간, 강민호의 얼굴에 드리웠던 미소가 순식간에 사라졌다.“걔 얘긴 왜 꺼내? 돈이 없으면 없다고 말했어야지. 배우까지 고용해서 납치극까지 벌이고 날 속여 돈을 가져갔으면 됐잖아. 그런데 너까지 이렇게 힘들게 만들었잖아! 이 수석 자리? 원래 네 자리였어. 네가 받을 자리를 뺏으려고 했던 거야. 앞으로 우리 집에서 지내. 내가 걔랑 민혁이 불러다 무릎 꿇고 사과하게 할 거야. 네가 겪었던 만큼 꼭 돌려줄 테니까 지켜봐.”그는 임연수를 품에 안으며 부드럽게 달래기 시작했다.“걱정하지 마. 네가 이렇게 억울한 일 겪은 거 내가 반드시 다 갚아줄 거야.”그렇게 말하며 강민호는 임연수를 데리고 집으로 돌아갔다. 하지만 집안은 텅 비어 있었다. 그는 불만스러운 표정으로 중얼거렸다.“자기들이 한 짓에 책임질 자신도 없었던 거야? 이제는 집에도 안 들어와?”그 순간 전화벨이 울렸고, 그의 분노는 더 끊어 올랐다.수화기 너머로 들려온 건 나의 엄마, 김경은의 떨리는 목소리였다.“민호야, 뉴스 보니까... 휴양지에서 살인사건이 났다던데, 거기 피해자의 인상착의가 글쎄... 유정이가 떠날 때 입고 있던 옷과 같더라... 유정이가 사흘째 연락이 안 되던데... 혹시 무슨 일이 난 건 아니겠지?”엄마는 조심스럽게 물었다. 그러나 원래부터 장모님의 말에는 참을성이 없던 강민호는 대뜸 짜증을 냈다.“어머님 따님같이 악독한 여자가 무슨 일을 당했겠어요? 죽은 피해자가 누가 됐든 안유정은 절대 아니에요!”그러고 나서 강민호는 뭔가 떠오른 듯 두 눈을 번뜩이며 물었다.“설마 유정이한테서 정보를 캐오라는 사주를 받은 거예요?”엄마는 잠시 당황하다가 아니라고 하려고 했지만, 그는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엄마를 차단해 버렸다.분노에 찬 그는 집 안을 이리저리 서성였다. 그런 그의 뒤를 조용히 따르던 임연수가 그의 소매를 살짝 잡아당기며 말했다.“민호 오빠... 혹시 나만 데리고 온 거에 화가 나서, 유정 언니랑 민혁이가 이모님께 도움을 요청한

  • 그날, 그는 나를 버렸다   제1화

    내 죽음은 처참했다. 두 다리는 살점이 모두 도려내져 하얀 뼈에 핏덩이만 몇 가닥 걸려 있었다. 그런 내 모습을 본 베테랑 형사마저 고개를 돌리고 눈물을 훔쳤다.“살아서 능지처참당했다니... 얼마나 아팠을까? 얼굴에 난 상처만 봐도 범인이 얼마나 악랄했는지 알겠어. 그 와중에 숨이 끊어질 때까지 어린 동생을 지키려 했다는 거야? 세상에...”죽기 직전, 너무나도 끔찍한 고통을 겪었기 때문일까? 나와 강민혁의 영혼은 저승으로 가지 못한 채 ‘남편’ 강민호의 곁을 떠돌았다.그는 지금 첫사랑 임연수를 안고 병원으로 뛰어 들어갔다. 그는 진료실 문을 발로 차고 들어가 의사의 가운을 움켜쥐며 울부짖었다.“당장 연수를 살려주세요! 제발요! 연수는 발레리나예요. 발에 문제가 생기면 안 된다고요! 알겠어요?”강민호의 눈에는 절박함과 광기가 뒤섞여 있었다. 그동안 내가 본 적 없는 애틋함과 간절함이 얼굴에 고스란히 드러났다.의사가 임연수의 발목에 약을 바르고 붕대를 감아주며 응급처치를 마치고 나서야 그는 안도하며 눈물을 쏟아냈다. 이어 비서에게 고급 병실을 예약하라고 지시하며 덧붙였다.“연수가 회복할 때까지 아무 문제 없도록 신경 써.”비서는 잠시 머뭇거리다 조심스럽게 말했다.“대표님... 연수 씨는 구하셨지만, 사모님과 작은 도련님은 아직 납치범에게 잡혀 있습니다. 혹시...”비서는 경찰에게 신고하라고 말하고 싶었지만, 강민호는 짜증스럽게 말을 잘랐다.“유정이가 민혁이를 데리고 벌인 연극일 뿐이야. 이미 4천만 원이나 쥐여줬는데 그걸로 모자란다고? 연수가 지금 힘들어하는 게 안 보여? 미친 여자의 이름은 당분간 입에 올리지 마.”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갈 곳 없이 떠다니던 민혁의 귀를 막았다.아이의 초점 없는 눈동자와 슬픔 어린 표정을 보며 나는 가슴이 ‘쿵’하고 내려앉는 것 같았다. 마치 끝없는 지옥으로 추락하는 기분이었다.‘그래... 강민호는 늘 나를 계략만 꾸미고 다른 사람을 속이는 사람이라고만 생각했지. 민혁이를 망친 사람도 나라고 여긴 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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