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자리에는 호락호락한 바보, 착하기만 한 사람은 없었다.그들은 눈에는 눈, 이에는 이, 제대로 복수를 해야만 하는 신조를 지녔다.“서둘러야 해요. 아니 지금부터 움직이시지요.”세훈이 셔츠 소매를 우아하게 걷었고 눈에는 살기가 넘쳐 흘렀다.“저희 강씨 가문 사람들도 모두 총출동하여 아래쪽 세계를 파보겠습니다. 강씨 그룹은 전 세계에 자회사가 있으니 작은 힘이라도 보탤 수 있을 겁니다. 정치 쪽이든, 비즈니스 쪽이든 반드시 꼬리를 찾아 찾아내겠습니다.”“칩의 개조는 저한테 맡기시죠. 우리 실험실에 일이 떨어진 지 좀 되었고 제가 관심이 많은 내용이라서요.”세윤의 얼굴에는 어두운 그림자가 지었다.제훈도 입을 열었다.“저는 전씨 저택에 남겠습니다. 컴퓨터 하나만 챙겨주시면 그 어떤 작은 증거라도 샅샅이 뒤져낼게요.”강씨 가문 사람들이 각자 할 일을 밝히고 전서훈은 인사를 빼먹지 않았다.“이 은혜를 절대 잊지 않겠습니다. 이 일이 끝나면 강씨 저택으로 찾아뵈어 제대로 된 사례를 하겠습니다.”서훈은 이 말을 끝으로 부하들에게 명령을 전달했다.여긴 전씨 가문 구역이었으므로 강씨 가문 못지않은 권력을 발동할 수 있었다.오빠들의 계획을 들으며 강연은 한마디 말도 거역하지 않았다.아무도 강연이 악독하다 손가락질하지 못할 것이다.이렇게까지 된 이상 전정해를 조종하고 서안을 지킬 수 있다면 강연은 절대 약해지지 않을 것이다.“전 대표님. 실례가 안 된다면 문 좀 열어줄 수 있을까요?”강연이 낮은 소리로 서훈에게 부탁했다.“제가 옆을 지키고 싶어요.”서훈은 강연의 부탁을 거절하지 않았다.직접 열쇠를 꺼내든 서훈이 문을 열려 걸어갔다.“서안이 스스로 제어하지 못할까, 걱정이 되어 저한테 문을 잠가 달라고 부탁했어요. 이 문은 밖에서만 열 수 있고 안에서는 절대 열리지 않아요.”강연은 이해한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철문이 “삐걱” 소리를 내며 무겁게 열렸다.강연은 내부를 확인하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히 지하실은 이미 개조를 마친 뒤였
침대 위에 누워 있는 익숙한 모습은 전서안이었다.조용히 눈을 감고 있는 서안의 얼굴이 창백했다. 잠든 그 모습이 너무 평온하고 얌전해 마음이 이상했다.팔다리는 침대 네 쪽에 비단으로 꽁꽁 묶여있었다.강연은 마음이 아파 눈물이 나올 것만 같았다.이건 서안이 스스로 요구한 것이라는 걸 강연은 알고 있었다. 서안은 행여나 자신이 조종당해 사람을 다치게 하는 것을 방지하고 싶었을 것이다.늘 오만하고 천하 무인이던 서안이 범죄자처럼 이곳에 손발이 묶여 자유를 잃게 된다니.이런 상황이 얼마나 더 지속될지 예상이 되지 않았다.강연은 전정해가 점점 더 원망스러웠다.자신의 집념에 대체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다치고 아파하는가?서안의 부모님을 죽이고, 서안의 어린 시절을 망쳐버리고, 서훈이 홀로 모든 짐을 짊어지게 했다.이런 화를 부른 전정해는 반드시 가장 가혹한 처벌을 받아야 한다!강연은 창가에 앉아 젖은 물수건으로 천천히 서안의 얼굴을 닦았다.늘 깔끔하던 서안이 이런 환경에서 이렇게 지낸다는 건 지옥과 다름없을 것이다.서안이 무슨 마음가짐으로 버텼을지를 생각하면 강연은 눈물이 흘렀다. 서안의 손목을 조심스레 닦는데 누군가 강연의 손목을 잡았다.“서안 오빠?”잠에서 깬 남자는 강연을 확인하고 잠시 당황해하다 눈시울을 붉혔다.“깼어요? 어디 불편한 데는 없어요?”서안은 강연의 얼굴을 바라만 보아도 만족한다는 표정으로 바라보다 고개를 저었다.“난 괜찮으니까 울지마.”서안의 목소리는 잠긴 듯 갈라졌다.강연은 빠르게 옆 텀블러의 따뜻한 물을 따라 서안이 물을 넘길 수 있도록 도왔다.야윈 서안의 얼굴을 보며 강연은 할 말이 많았지만, 한마디도 쉽게 꺼내지 못했다.그러나 서안은 이런 강연을 보며 낮게 웃음을 터뜨렸다.“뭘 웃어요?”강연은 어이없어 되물었다.“이 방에 아기 고양이가 몰래 들어온 것 같아서.”“...”강연은 서안을 살짝 노려보며 말했다.“지금 이 몰골을 하고도 웃음이 나와요?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우릴 걱정하고 있는지 알기나
“그렇다면 서안 도련님의 안전을 위해서라도 제 동생을 이만 불러내야겠네요.”“그만하시지요.”티격태격하던 서훈과 제훈이 어느새 싸움으로 번지려던 참이었다.옆을 지키던 전씨 가문 부하들은 감히 말리지도 못하고 난처해했다.각자의 위치에서 크게 한몫하는 남정네들이 유치하게 다투는 모습이 참 볼품없었다.점점 싸움이 커지려는데 지하실 문이 안에서 벌컥 열리고 강연이 걸어 나왔다.“셋째 오빠, 서안 오빠가 들어오래요!”강연은 천천히 눈앞의 두 사람의 상태를 살피며 고개를 갸우뚱하며 물었다.“지금... 두 사람 뭐 하는 거예요?”제훈이 바로 몸을 바로 세우고 허리를 꼿꼿이 폈다.주먹 쥔 손으로 입을 가리고 마른기침을 연신 해대던 제훈이 말했다.“서안 씨가 잠에서 깬 거야? 나를 찾는다고?”마찬가지로 정상적인 모습을 되찾은 서훈이 물었다.“강연 씨, 서안이가 저를 찾는 게 아니라요?”‘내가 친형인데?’“큼큼... 제훈 오빠를 찾는 게 맞아요.”서훈의 얼굴이 확연하게 굳어졌다.제훈은 더 당당하고 오만하게 고개를 쳐들었다.“강연아, 넌 밖에 있어. 내가 안으로 들어가 볼게.”그리고 제훈은 뒷짐을 척지고 안으로 들어갔다. 그 모습이 마치 싸움에서 이긴 어린아이 같았다.강연은 이런 제훈을 부러워하는 눈빛으로 바라보는 서훈을 보며 작게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 제훈을 따라 안으로 들어갔다.그렇게 문은 다시 닫혔다.서훈의 얼굴은 정말 볼품없이 구겨졌다.부하들은 아예 몸을 돌렸고 감히 그곳을 바라보지 못했다. 이어 서훈은 벽을 향해 주먹을 세게 내리쳤다.“젠장.”부하들은 몰래 몸을 부르르 떨었다.‘우리가 대표님의 이런 모습을 봤다고 우릴 혼내지는 않겠지?’하지만 빠르게 이성을 되찾은 서훈은 주먹을 빠르게 내리고 다시 오만한 자태로 돌아왔다. 어느새 대가문 가주의 모습으로 회복한 듯싶었다.아까 욕을 뱉은 사람은 자신이 아니라는 듯 모른 척 행동했다.그리고 다시 지하실 안에서.침대에 사지가 묶인 서안은 여전히 평온한 모습이었고 제훈은 눈썹
제훈의 눈빛은 차갑고 위험했지만, 서안은 여전히 침착하고 덤덤했다.서안이 천천히 말을 이었다.“죄송합니다. 강씨 가문의 비밀을 염탐할 의도는 없었습니다. 하지만 강연이 어린 시절 가문 밖에서 지낸 사유를 찾다 보니 무심코 알게 되었습니다.”“전정해가 제 몸에 칩을 심었다는 걸 알아차리고 바로 사모님의 사건이 떠올랐습니다. 그러니 저희 두 가문은 모두 피해자이지요. 저뿐만 아니라, 강연이 어머님, 그리고 앞으로 또다시 이러한 피해자가 생기지 않기 위해서라도 우린 손잡고 뿌리째로 뽑아내야만 합니다.”제훈은 한참을 서안을 노려보다가 천천히 경계를 풀었다.“조사를 한지는 꽤 된 것 같은데 새롭게 얻은 단서는 있는가?”“네!”서안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전정해가 제 몸을 조종하려 시도할 때 배후 사람들과 연락하던 단서를 찾아냈습니다.”“그런 단서들을 찾아냈다면 스스로 조사를 할 것이지, 아니 전 대표한테 부탁해도 될 텐데 왜 굳이 강씨 가문과 손을 잡으려고 하는가?”제훈이 다시 차갑게 말을 뱉었다.“의도가 뭔가?”제훈이 이토록 경계 태세인 건 대가문의 비밀은 절대 밖으로 새어 나갈 수 없기 때문이었다.다른 외부인이 알게 된 지금 서안을 의심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의심을 거두지 못한 제훈을 보며 서안은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이 정보는 이틀 전에 알아낸 겁니다. 제훈 도련님은 알고 계시겠지만 상대는 제가 뭘 찾아냈는지 곧 눈치채게 됩니다. 조사를 마치고 형에게 말하기도 전에 잠에 들어버렸죠.”“지금 강연과 도련님을 만난 이 시간은 제가 하루 중 얼마되지 않은 맨정신인 순간입니다.”그 말에 제훈의 얼굴이 조금 풀어졌고 마음이 동요한 게 느껴졌다.제훈은 늘 서안을 강력한 라이벌로 생각했었다. 강하고 교활한 사람이라 생각했지만, 서안 역시 칩의 피해자였다. 칩의 피해자는 자신을 제대로 조종할 수 없다는 사실을 간과했다.의지가 강했던 어머니가 조종당하던 모습이 아직도 눈을 감으면 선했다. 그렇게 강하던 아버지도 속수무책이었다.그러니 고작 스
‘망했다, 망했어. 설마 제훈 오빠 단단히 화가 난 거야?’강연이 고개를 돌리자 잔망스러운 서안과 마주쳤다. 서안은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나 잘했어?”강연은 어쩔 수 없다는 듯 어깨를 으쓱하며 말했다.“제훈 오빠가 서안 오빠를 미워할 거예요.”불필요한 동정은 오히려 화를 부른다.‘내가 왜 서안 오빠가 참 바른 사람이라고 생각했었지?’두 사람은 그 후에도 한참 동안 얘기를 주고받았으나 갑자기 서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자기야, 이만 나가줄래? 너무 피곤해서 좀 쉬어야겠어.”“피곤해요? 어디 아픈 데는 없고요?”강연이 긴장한 얼굴로 말했다.“괜찮아.”서안이 고개를 저으며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자기야, 이만 나가줘. 우리 형이랑 제훈 도련님이 아직도 싸우는지도 확인해 봐. 우리 형 다치지는 않았겠지?”“알겠어요.”강연이 서안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어디 불편한 데 있으면 바로 날 불러요. 옆에 있어 줄게요.”“그래, 알겠어.”강연이 방을 나서는 순간까지 미소를 잃지 않았으나 문이 닫히는 순간 표정을 굳혔다.다른 사람이 의식하기도 전에 강연은 다시 몸을 돌려 철문에 몸을 붙였다. 강연의 얼굴에는 걱정이 가득했다.늘 웃는 얼굴의 서안이었지만 단 한 순간 긴장을 풀지 않는다는 걸 눈치챌 수 있었다.서안의 팔다리를 잡고 있던 비단이 어느새 팽팽해졌다.서안은 온 힘을 다해 참고 있었다.두꺼운 철문 뒤로 강연도 서안의 헐떡이는 숨소리를 들을 수 있었다.강연은 조급해졌다. 그래서 전씨 가문 경호원들을 향해 빠르게 말했다.“전 대표님은요? 빨리 전 대표님과 제훈 오빠를 불러오세요!”경호원도 사태의 심각성을 눈치채고 빠르게 움직였다.다른 경호원이 옆의 철문을 확인하고 얼굴을 굳혔다.“강연 씨, 전정해가 깨어났습니다.”강연의 얼굴이 창백해졌다.‘역시 이럴 줄 알았어!’‘전정해! 이 개 같은 자식!’강연이 얼굴을 굳히고 전정해의 철문 앞으로 걸어가 말했다.“문 열어요.”“하지만...”경호원이 머뭇거리자, 강연이 다
“아이야, 난 네가 이곳에 올 줄 알았단다.”전정해는 강연을 보며 큰소리로 웃음을 터뜨렸다. 온몸의 상처가 당겨진 건지 더 기괴해진 얼굴의 전정해가 고통에 몸부림쳤다.소름 돋는 움직임 소리가 텅 빈 지하실에 울렸다.강연은 차갑게 전정해를 바라보다 물었다.“다 웃었어요?”“그럴 리가! 난 끝까지 웃을 거야!”전정해는 음습한 눈빛으로 강연을 주시했다.“네가 사랑하는 사람이 마음 아파 날 찾아온 거지? 그런데 어쩌나? 그 아이의 목숨은 나한테 달렸고 내가 죽으라고 하면 바로 죽어버릴 수도 있지. 그러니 나한테 비는 게 좋을 거야. 기분 좋아지면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할 수도 있고. 아니면 그냥 죽여버릴지도 모르지.”그 말을 듣고 있는 강연은 옷소매 속에서 주먹을 꽉 쥐었다.강연은 애써 평정심을 유지했다. 지금 전정해는 감금되었고 자신을 절대 다치게 할 수 없었다.길게 숨을 들이켠 강연이 코웃음 쳤다.“지금 배후의 사람을 너무 철석같이 믿고 있는 게 아닌가요? 아직도 칩을 뺄 방법이 있다는 걸 모르나 보군요.”“그럴 리가? 날 속일 생각 마!”“왜 그럴 리가 없다고 생각하나요? 제 어머니도 칩의 조종을 받았으나 얼마 뒤 칩을 빼내는 데 성공했고 지금도 아주 건강하게 아버지랑 여행을 다니고 계세요.”강연이 무표정으로 말하다가 전정해를 동정한다는 말투로 말했다.“내가 여기까지 찾아와 당신한테 구걸한다고 생각했나 보네요. 정말 딱하기도 해라. 난 진실을 말해주러 온 것뿐인데.”“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거짓말인 게 분명해!”전정해가 기괴한 웃음소리를 터뜨렸다.“야 꼬마야, 네 연기가 완벽하다고 생각해? 어떻게 칩을 빼낼 수 있겠어, 말도 안 되지. 제 어미를 저주하다니 전서안 그 녀석한테 참 지독하게 빠졌나 보구나. 날 풀어준다면 그 사랑에 감동한 내가 너희를 응원해 줄게. 어때?”“우리는 당신의 응원 따위 필요 없어요. 아직도 내 말을 믿지 못한다니 정말 불쌍한 사람이군요.”강연이 차갑게 조소했다.“불쌍한 사람. 하지만 절대 용서나
강연은 바로 눈시울이 붉어졌다. 서안이 혀를 깨물 수 있다는 건 전혀 예상하지 못했었다.마음속으로 후회가 밀려왔다. 자기 행동에 서안이 잘못되기라도 했다면 어떻게 해야 할지 그제야 무서워졌다.빠르게 수건을 건네받은 서훈이 강제로 서안의 입을 벌렸다. 벌써 피가 새어 나오고 있었다.“서안아, 수건을 물어!”서훈이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서안은 여전히 발버둥만 칠뿐 아무것도 하지 못했다.“서안 오빠! 서안 오빠!”강연이 급한 마음에 서안의 두 뺨을 내리쳐 정신을 차리도록 했다.“서안 오빠 말 들어요. 무서워하지 말고 수건을 물어요! 금방 지나갈 거예요.”강연의 말은 어느 정도 효과가 있었다.이성을 잃은 상황에서도 서안이 조금 입을 벌리는 게 보였다.서훈이 빠르게 수건을 입안으로 넣었다.강연이 안도하며 기쁨에 눈물을 흘렸다.제훈은 이 광경에 마음이 복잡했다.조종당한 사람에게는 조금의 이성이라도 존재할 수 없었다.‘그러니 당시의 어머니가 칼을 들고 세윤의 침대 앞에 서 있었겠지.’하지만 현재 서안은 강연의 말을 듣고 있었다.서안이 송이를 향한 마음이 얼마나 큰지 감히 쉽게 상상할 수 없었다.제훈은 몰래 방을 나와 어디론가 전화를 걸었다.“아버지, 아버지의 도움이 필요해요.”그리고 지구 반대편에서 아들의 전화를 받은 강현석이 의아하다는 듯 눈썹을 찡그렸다. 이에 도예나도 그쪽으로 주의를 돌렸다.“무슨 일이에요?”예나가 조심스레 물었다.“제훈이 도움을 요청하고 있어.”현석이 낮은 소리로 예나의 물음에 답했다.예나는 더 깜짝 놀랐다.어릴 때부터 진중하고 성숙했던 제훈은 단 한 번도 부모님에게 도움을 구한 적이 없었다.그런데 제훈이 스스로 전화를 걸어오다니.태양이 서쪽에서 뜬 건가?현석이 스피커로 전환했다.제훈의 말을 듣던 두 사람의 얼굴이 점점 굳어졌다.통화 종료 후 예나가 현석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말했다.“여보, 우리 한국으로 돌아가요. 이 일은 우리가 나서야 할 것 같아요.”현석이 고개를 끄덕이며 예나를 품에 안
전정해가 혼수상태에 빠져야만 서안도 당분간 편안해질 수 있었다.“전정해를 따라 잠에 들게 하면 안 돼요.”제훈이 낮은 소리로 말했다.“서안이 맨정신으로 멀쩡하게 전정해를 만나게 해야 해요.”전정해에게 칩은 사실 거짓이라는 걸 믿게 해야만 심리적 방어선을 완전히 무너뜨리고 배후를 파헤칠 수 있었다.그렇지 않으면 서안은 앞으로도 얼마나 많은 고통을 견뎌야 할지 모른다.그 말에 서훈과 강연 모두 침묵했다.침대에 몸이 묶이기 전부터 서안은 이미 많이 피폐해졌다. 그런데 어떻게 아무렇지도 않게 전정해의 앞에 나타날 수 있겠는가?이건 불가능했다.“천천히 해요. 일단은 두고 보도록 하죠.”서훈은 마음 아파하며 말했다.“서안은 두 날 동안 너무 힘들어했어요. 그런데 서안을 또 몰아세울 수는 없어요.”그리고 몰아세운다고 가능한 일도 아니었다.조종을 받는 사람은 이성을 유지하기도 어려웠는데 연기를 하는 건 더 불가능했다.“서안의 컴퓨터는 어디 있나요?”제훈이 물었다.“단서를 찾았다고 했는데 아직 전 대표에게 말하지 못했다고 했어요.”그 말에 잠시 고민하던 서훈이 말했다.“무슨 자료인지 알 것 같아요. 서안이 저한테 보냈었는데 설명하기도 전에 쓰러져버렸거든요. 하지만 자료에 걸린 비밀번호를 아직 풀지 못한 상태입니다. 유명한 해커에게 의뢰했지만, 아직 풀지 못했어요.”“내가 해볼게요.”제훈이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난 할 수 있어요.”서훈은 그제야 제훈의 직업을 떠올리고 눈을 반짝였다.“그래요! 왜 이 사실을 잊어버렸지! 기다리세요. 바로 가져다드릴게요.”“나랑 같이 가요.”제훈이 강연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송이야... 넌 여기에서 서안의 옆을 지켜. 방금까지 많은 고생을 했으니 잠시 쉴 수 있게 해.”오빠의 응원과 이해의 눈빛을 읽은 강연의 눈가가 촉촉해졌다.“제훈 오빠 고마워요.”제훈이 고개를 끄덕이고 별말 없이 서훈과 방을 나섰다.방을 나선 서훈이 바로 제훈을 향해 비꼬듯 말했다.“인간 세상의 고통을 전혀 이해 못