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훈이 세윤에게 눈치를 주었다. 그제야 세윤은 마음의 흥분을 가라앉히고, 까만 눈동자로 지연을 얌전히 쳐다보았다.지연은 조금 더 착잡한 마음이 들었다.지연은 눈치가 빠른 편이었다. 하지만 강씨 가족 사람들의 진짜 의도가 뭔지 알아차릴 수가 없었다.“지연 이모랑 병원 다녀올 게. 너희들은 얌전히 집에 있어.”현석이 몸을 일으켜 세우며 덤덤하게 말했다.“네? 지연 이모 어디 아파요?”수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아니야, 괜찮아.”지연이 대수롭지 않다는 듯 말했다.“병원에서 검진받아보려고, 걱정하지 않아도 돼.”현석은 팔짱을 끼고 지연의 옆에 서서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세훈아, 동생들 잘 챙기고, 우린 이만 가볼게.”“네, 아빠!”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차가 저택에서 사라질 때까지 아이들은 지켜보다가 아쉬운 표정으로 돌아섰다.“하, 언제쯤 엄마를 엄마라고 당당하게 불러도 될까?”세윤이 한숨을 내쉬었다.제훈이 말을 이었다.“아빠는 다시 엄마랑 잘해볼 생각인 것 같아.”그 말에 세훈이 고개를 끄덕였다.“엄마는 비록 기억을 잃었지만, 우리에 대한 마음은 남아있어.”“아빠가 할 수 있을까?”수아가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물었다.“엄마는 조금 부담스러워하는 것 같은데, 우리가 아빠를 도와야 하지 않을까?”세윤이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우리가 돕지 않는다면 아빠는 최소 한 달은 걸릴 거야.”“한 달?”제훈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넌 아빠를 너무 높게 봤어. 난 최소 반년은 걸린다고 봐.”“반년은 너무 길어.”세훈이 고개를 저었다.“우린 엄마랑 4년이나 떨어져 지냈어. 더는 못 기다려.”“그러면 이렇게 하는 게 어때?”제훈이 손을 저어 아이들을 한곳으로 모았다……차는 안전하게 도로를 달렸다. 봄날의 따스한 햇살이 차 안을 비췄다.차는 너무 빠르게 달리지 않았으나, 창문으로 시원한 바람이 머리카락을 간지럽혔다.“강현석 씨, 병원 말고 앞 거리에 세워주세요.”지연이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현석은 운전대를
검진은 총 네 시간을 거쳐 끝이 났다.그중 여러 검진 결과는 며칠 뒤에 받을 수 있었고, 지연은 모든 결과를 함께 받기로 했다.어느새 저녁노을이 서쪽 하늘에 나타나고, 거리의 네온 등이 켜졌다.병원 입구는 언제나 사람들로 북적였다.지연은 고개를 돌려 현석에게 말했다.“강현석 씨, 오늘은 고마웠어요.”강씨 그룹의 대표, 한 시간 몸값이 몇 백억은 되는 사람이 자신의 검진을 함께 했다니, 지연은 마음 한구석이 말랑해지는 걸 느꼈다.비록 다른 꿍꿍이가 있는 듯싶지만, 평범한 여자였다면 이런 그의 보살핌에 마음이 설레 왔을 것이다.하지만 지연은 평범한 여자가 아니었다.“시간이 많이 늦었으니, 저는 이만 돌아가 보겠습니다. 다음에 뵙죠, 강현석 씨.”“그게 고마워하는 사람 태도인가요?”현석이 작게 입술을 달싹였다.“하루 종일 돌아다녔더니 배가 고파졌어요.”“…….”검사를 하기 위해 검진 줄을 서고, 여러 수속을 위해 현석은 온 병원을 누비고 다녔다. 정말 많이 애를 쓰긴 했다.입꼬리를 올린 지연이 말했다.“뭐 드시고 싶으신 거 있으세요? 제가 살게요.”“지연 씨는 뭐 먹고 싶은데요?”현석이 부드러운 눈빛으로 지연을 바라보았다.“병원 근처에 유명한 한식 관이 있는데, 가실래요?”“그래요, 가요.”한식 관은 멀지 않은 곳에 있었고, 둘은 도보로 갔다.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깜깜한 하늘에 별빛이 반짝였다.현석과 나란히 거리를 걸으며 지연은 그동안 한 번도 느껴본 적 없는 감정을 느꼈다. 그녀는 이 길이 끝이 없이 계속 이어지길 바랐다.현석과 알고 지낸 지 겨우 며칠이 지났다고, 이런 생각을 하는 건지, 지연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조심해요!”스쿠터가 지연의 옆으로 날아 지나갔고, 현석이 빠르게 지연의 허리를 감싸 쥐었다.그 힘에 지연은 현석의 품 안으로 안겨 버렸다.그의 가슴에 얼굴을 기대자, 쿵쿵대는 심장 소리가 들렸다.지연이 살며시 고개를 들자, 마침 고개를 숙여 지연을 바라보던 현석의 시선과 마주쳤다. 두 사람의
10여 가지 요리가 식탁에 차려지자, 테이블이 꽉 찼다.“지수야, 아래로 내려가서 맥주 좀 사와.”지연이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왜 내가 가서 사요? 언니가 가요.”지수는 눈앞의 진수성찬에 눈이 돌아갈 지경이었다.“술 마시고 싶다고 한 건 너였잖아.”지연이 지수를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저녁은 내가 시켰으니, 네가 술을 사는 건 과분한 거 아니잖아.”지연의 기세에 눌린 지수는 어쩔 수 없이 외투를 걸치고 맥주를 사러 갔다.한 박스의 맥주가 테이블 옆에 놓이고, 두 사람은 저녁을 먹기 시작했다.지수는 맥주를 따고, 단번에 절반을 비웠다. 눈을 깜빡인 지수는 수도꼭지처럼 눈물을 쏟아냈다.“언니, 이젠 나 실컷 비웃어요.”지수는 랍스타를 한 입 넣으며 엉엉 울었다.“장명훈은 쓰레기에요. 날 유혹할 땐 언제고, 아주 차갑게 날 버렸어요. 내가 그렇게 쉬워요?”지연이 인상을 찌푸렸다.“장명훈 씨가 뭘 어떻게 했는데?”오늘 아침만 해도 꽁냥거리 더니, 갑자기 급전개가 일어난 모양이었다.“그, 그 사람이 지금까지 나한테 준 선물은 사실 나한테 주려는 게 아니었대요! 엉엉엉!”지수가 눈물 콧물을 쏟아냈다.“하지만 이미 나한테 준 선물은 사죄의 의미로 나 준 대요. 누가 선물 갖고 싶다고 했나요? 엉엉, 언니, 나한테 왜 이런 일이 생긴 걸까요? 세상에 어떻게 이런 쓰레기 같은 남자가 다 있어요?”지연은 조금 표정을 굳히고 티슈를 건넸다.“좀 닦아. 너무 못생겼어.”“그 사람이 여기에 없는데, 못생기면 뭐 어때요?”지수는 신세 한탄하듯 말했다.“나한테 첫눈에 반한 줄 알았는데, 다른 사람으로 착각한 거라니. 장명훈이 너무 미워요!”지연이 밥을 먹으며 물었다.“그럼, 원래 선물하려는 사람이 누구인지는 물어 봤어?”“알려주지 않았어요!”지수가 이를 악물었다.“내가 그 여자를 찾아가 해코지할까 그런가 봐요.”지연이 말했다.“그 사람이 너한테 선물한 것만 해도 돈으로 따지면 100억이 넘어. 다시 돌려 달라고 하지 않을 것만
지연이 입꼬리를 매만졌다.“아직 한 주일이나 남았어. 안 급해.”지수는 손에 쥔 물건을 꽉 잡았다.명훈이 왜 갑자기 연락을 끊었는지 이유를 알지 못했으니, 지수는 절대 포기하지 않을 것이다.명훈이 좋아하는 여자가 누구인지를 알아내야만 순순히 포기할 수 있을 것 같았다.지연은 샤워를 마치고 성남시 시 중심의 부동산을 찾았다.그녀는 천천히 회사를 성남시로 옮길 계획이었다. 그러니 성남시에 작은 건물을 사야 했다.회사는 3년 동안 차근차근 성장해, 규모가 너무 크지는 않아도 어느덧 직원만 200명이 넘는 회사로 되었다. 사무실은 최소 2,000평은 소요되었다.“여지연 씨, 오셨네요.”직원이 공손하게 말했다.이런 그녀의 태도에 지연은 인상을 찌푸렸다.전에 통화했을 때, 직원의 태도는 절대 좋지 않았었다.“여지연 씨, 마침 잘 오셨어요. 마침 건물이 좋은 가격으로 나오게 되었어요. 10% 할인이 아니라 50% 할인으로 해드릴 게요. 할인 후 가격이 60억 정도에요. 60억으로 2,000여 평방의 건물을 구매하실 수 있으세요.”지연의 표정이 경악으로 변했다.“60억이요? 사기 아니에요?”지연은 전부터 성남시 집값에 많은 관심을 가졌었다. 주택 가격이 하늘을 치솟고 있고, 상업 건물의 가격도 껑충 오르고 있었다.전부터 마음에 든 건물은 교외에 위치해 나름 싼 가격이었다. 10% 할인이라고 해도 많은 할인이었지만, 오늘은 무려 50% 할인이라고 했다.‘그렇게 건물을 팔면 남는 게 있나?’하지만 직원의 진지한 표정에 지연은 할말을 잃었다. 직원은 지연이 빠르게 돈을 지급하고 건물을 구매하길 기대하는 표정이었다.마치 이 값에 팔아도 남는 장사다, 라는 표정이었다.비록 부동산에 관심이 없는 지연이라고 해도, 50% 할인의 건물이라면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았다.‘설마 건물에 문제가 생겨서 빨리 넘기려는 걸까?’지연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조금 더 고민해 보겠습니다.”“여지연 씨, 최대 할인가 에요. 뭘 더 고민할 필요가 있어요? 풍수지리
지연이 아이들이 있는 쪽으로 걸음을 옮겼다.네 아이는 숨어도 소용없다는 걸 깨닫고 얌전히 걸어왔다.세 남자아이는 회색 츄리닝에 캡 모자를 착용해 얼굴을 반쯤 가렸다.여자아이는 멜빵바지를 입었고, 검은색 앞머리 아래 두 눈이 반짝였다.“너희들이 왜 여기에 있어?”지연이 고개를 숙여 물었다.세 남자아이는 키가 빨리 컸는지, 거의 150cm는 넘어 보였다. 또래에 비해서도 키가 큰 편일 것이다.여자아이는 그들보다 한 뼘 작아, 140cm 초반대로 보였다.네 아이가 나란히 지연의 눈앞에 서자 사람들의 이목을 끌기 시작했다.“그게…….”세훈은 거짓말을 하고 싶지 않았다. 다만 합리한 변명을 찾다가 결국 말을 잇지 못했다.지연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건물이 갑자기 50% 할인을 한다는데, 너희들이 그런 거야?”“지연 이모, 우리는 그냥 선물해 주고 싶어서 그랬어요.”세윤이 눈을 반짝이며 말했다.제훈이 입술을 매만지며 말했다.“강씨 그룹은 돈이 많아요.”제훈이 조사해 보니 여씨 그룹의 주가는 겨우 200억이 채 되지 않았다. 100억이 넘는 건물을 구매하는 건 무리가 있을 것이라고 아이는 판단했다.그래서 엄마의 부담을 줄여주려고 한 것인데.“강씨 그룹에 돈이 많아도 이렇게 함부로 돈을 써서는 안 되는 거야.”지연이 마지못해 말했다.“이모도 돈 많아. 건물 살 돈은 있으니까, 너희들의 마음만 받을 게.”수아가 손가락을 꼼지락거리며 말했다.“우린 지연 이모가 마음에 들어요. 그러니까 우리 말 대로 하면 안 돼요?”수아의 큰 눈망울을 보고 있으면 절로 마음이 약해졌다.“선물은 받아도, 건물은 안돼.”지연이 잠시 뜸을 들이다가 물었다.“너희 네 명 모두 내가 마음에 들어?”세윤이 고개를 세게 끄덕였다.“네, 지연 이모가 완전 좋아요!”수아는 큰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당연하죠, 너무너무 좋아요.”제훈이 말했다.“좋아하는 게 아니라, 사랑해요.”“우리 모두 지연 이모가 좋아요.”세훈이 마무리했다.“첫 만남부터 좋았어
현석의 등장에 모든 상황이 반전되었다. 손님은 물론, 직원들마저 모두 그림자를 감췄다.지연은 심장이 또 쿵쿵대기 시작했다.‘심장에 정말 문제가 생긴 거 아니야? 왜 심장이 이렇게 멋대로 뛰는 거야!’“여긴 강씨 그룹 소유의 건물이에요.”현석의 목소리가 ‘웅웅’ 울렸다.“이 건물도 선물로 줄 수 있어요.”“…….”지연이 경악스러운 표정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늘 침착하고 차갑던 남자가 이렇게 충동적인 말을 할 줄은 몰랐다.‘한 층에 100억이 넘는데, 총 30층이니 3,000억이 넘는 건물을 어떻게 말 한마디로 선물할 수 있겠어?’현석이 손을 들자, 매니저가 황급히 달려왔다.“대표님.”“소유권 변경 서류는 가지고 왔나요?”현석이 덤덤하게 물었다.매니저가 바로 한 뭉텅이의 문서를 건넸다.“네, 모두 준비를 마쳤습니다. 지금 여지연 씨가 사인만 하면 됩니다.”그리고 매니저가 공손히 지연에게 펜을 건넸다.지연의 표정이 한층 더 굳었다.“지금 뭘 하려는 거예요?”현석이 조금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이 건물 소유권 변경 계약서예요.”지연이 고개를 숙여 소유권이 자신으로 된 문서를 확인했다.[여지연.] 세 글자가 ‘떡’하니 첫 줄에 쓰여 있었다.지연은 심장이 쿵쿵대기 시작했다.“강현석 씨, 지, 지금.”“사인해요.”현석이 침착한 얼굴로 말했다.“착하죠? 거절 말고 사인해요.”지연은 머리가 어질어질했다.억지로 지연의 손에 펜을 쥐여준 현석은 지연이 여전히 아무 행동을 취하지 않자, 직접 손을 잡고 계약서에 사인을 했다.“자, 이제 이 건물은 여지연 씨 건물이 되었습니다.”매니저가 공손하게 말했다.“앞으로 건물에 관한 일은 직접 여지연 씨에게 말하면 될까요?”현석이 덤덤하게 말했다.“당분간만 예전의 시스템대로 움직이세요.”매니저는 고개를 끄덕이고 문서를 챙겨 떠났다.어리벙벙 해하던 지연이 정신을 차리고 물었다.“강현석 씨, 지금 대체 뭘 했는지 아세요?”“내가 뭘 했는지는 내가 제일 잘 알아요. 그러는 여지연
현석이 지연을 안아들고 휴게실 소파로 걸어갔다.현석은 지연의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아, 그녀의 구두를 벗겼다. 이어 그의 표정이 굳었다.“발뒤꿈치가 까졌어요.”새로 산 구두의 첫 개시였다. 새 구두는 좀 딱딱해 뒤꿈치가 까지는 건 거의 당연한 일이었다.괜찮다고 하려는 데 지연은 바로 말을 바꿨다.“그러게요, 조금 아프네요. 반창고라도 사줄래요?”어둡던 현석의 얼굴이 조금 밝아졌다.늘 거절만 하던 지연이 무언가를 사달라고 처음으로 부탁했다. 이건 그녀와의 거리가 조금 가까워졌 음을 의미했다.“그래요, 잠시 기다려요. 바로 다녀올게요.”현석이 몸을 일으켜 건물을 벗어나자, 지연은 드디어 한숨을 돌렸다.다시 구두를 신은 그녀는 가방만 챙겨 옆문으로 도망쳤다.도망, 결국 또 도망이었다.만약 지금 도망가지 않는다면 앞으로 도망갈 기회가 없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현석은 정말 마약처럼 그녀의 온몸을 파고들고, 자신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만들었다.지연은 이런 본인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택시를 탄 지연이 빠르게 건물을 떠났다.다른 한편, 현석은 근처 약방에 도착했다.그의 등장에 약방 안의 손님과 약사 모두 입을 다물고 몰래 그를 훔쳐보았다.“혹시 반창고 있어요?”현석의 차가운 목소리에 약사가 정신을 번뜩 차렸다.“네, 있어요!”약사가 빠르게 반창고를 꺼내 보였다.“이건 항염 작용이 있는 반창고, 이건 방수 반창고이고요, 이건 좀 가격이 싸요.”현석이 입술을 매만지며 물었다.“여성이 구두를 신어 발뒤꿈치가 까졌을 땐 어느 반창고가 낫나요?”그 말에 약방에 작은 탄성이 나왔다.[저렇게 잘생긴 남자에게 여자 친구가 있다니 마음이 아프네.][잘생긴 남자가 여자 친구를 위해 반창고를 사러 오다니. 왜 내 남자 친구는 저렇게 다정하지 않은 거야.][어, 저 사람 어딘가 조금 낯익지 않아?][나도 그런 느낌이 들어. TV에서 봤었나?][혹시 연예인?][연예인이었다면 내가 모를 리가 없어. 연예인은 아닐 거야.][몰라, 일단 사진부터
지연의 핸드폰이 진동했다. 현석이 전화를 건 것이었다.받고 싶지 않았으나, 작별 인사 없이 떠나는 건 실례라고 생각되었다.통화 버튼을 누르고 지연이 먼저 입을 열었다.“강현석 씨, 오빠가 갑자기 전화를 걸어와 집에 일이 생겼다고 하네요. 먼저 가볼게요.”그리고 말 한마디를 보탰다.“다시 날 찾아오지 마세요. 정말 만날 시간 없어요.”내일이면 지연은 성수시로 돌아갔다. 오늘은 돌아가 짐 정리를 해야 했으니, 현석을 만날 시간이 없었다.“그래요, 조심해요.”현석은 더 이상 매달리지 않고, 지연의 말을 묵묵히 들어주었다.지연은 창문에 머리를 기대고 말없이 한숨을 내쉬었다.택시는 빠르게 아파트 앞에 멈춰 섰고, 지연은 빠르게 방안으로 돌아가 문을 닫았다.어제 술에 잔뜩 취해 마음을 정리하려고 했으나, 사실은 점점 더 깊게 빠져들고 있었다.현석 혼자라면 몰라도, 네 아이까지 그녀를 유혹하자, 지연은 정말 속수무책으로 당할 수밖에 없었다.‘강현석은 왜 나한테 잘해주는 걸까?’‘왜 네 아이들은 날 이렇게 좋아해 주는 걸까?’성수시에서 3년을 지내며 이렇게 아무 이유 없는 호감을 받아 본 적은 없었다.지연은 애써 감정을 짓누르며 짐 정리를 시작했다.옷을 정리하고 있는데 여민우가 문을 두드렸다.민우가 진지한 표정으로 들어섰다.“지연아, 오늘 오전에 어디 갔었어?”“부동산 갔었어요. 왜요?”지연이 짐 정리하며 대답했다.“강씨 그룹 부동산?”“오빠가 어떻게 알아요?”지연이 당황한 표정으로 물었다.“기사 떴어.”민우가 핸드폰을 꺼냈다.“지금 성남시 헤드라인이 바로 너와 강현석 씨야.”지연이 깜짝 놀라며 핸드폰을 받아 쥐었다.부동산에서 현석이지연을 안아 드는 찰나 외부인이 사진을 찍었다. 심지어 동영상도 있었다.[강씨 그룹 대표 강현석, 베일에 감춘 여인과 부동산에서 스킨십.]기사는 성남시 헤드라인을 장식했다.댓글은 순식간에 10만을 달성했다.[강씨 그룹 대표가 정말 이혼하긴 했구나. 새 연인인 건가?][저 여자가 너무 부
온라인 댓글 창에도 사실을 받아들일 수 없는 네티즌들이 댓글을 쏟아냈다.빠르게 정신을 차린 진행자가 술렁이는 사람들의 반응에 말을 보탰다.“다들 잊으셨나요? 강연 님께서 또 좋은 소식도 전하겠다고 하셨습니다.”그 말에 사람들이 다시 집중했다.이어 사람들은 숨소리를 가다듬었고 강연의 목소리가 유난히 크게 들렸다.“저와 전서안 씨는 멀지 않아 곧 결혼할 예정입니다!”“!!!”[와아아아! 이날만을 기다렸다고!][엉엉 우리 강전 커플이 드디어 결혼하는구나! 정말 눈물이 앞을 가려. 두 사람이 걸어온 길을 모두 지켜보고 있었다고.][행복하세요! 두 사람 꼭 평생 행복해야 해요!]무대 아래 환호 소리가 이어지고 어느새 시상식 전체가 떠들썩하게 들려왔다.강연은 이 광경에 고개를 돌려 무대 뒤의 서안과 시선을 마주했다.드디어 결혼....9월 8일, 결혼에 적합한 어느 날.사회부, 경제부 기자는 물론 연예 기자까지 총출동했다.각종 포털에서 수아와 안택, 그리고 강연과 서안의 성대한 결혼식에 대한 기사를 앞다투어 보도했다.최고 재벌가인 강씨 가문의 두 공주님이 결혼하는 날, 더구나 결혼 상대 역시 만만치 않은 대단한 청년. 한국에 있어 수백 년 가도 한번 볼까 말까 한 성대한 구경거리였다.커다란 식장에 손님들로 붐비고 컬러 풍선이 이곳저곳에 날아다녔다. 꽃으로 뒤덮인 예식장과 레드카펫은 식장 처음부터 끝까지 펼쳐졌다.강씨 가문, 전씨 가문, 그리고 안택의 가족 모두 유명한 가문이었으므로 상업게, 정치계의 유명 인사들이 대거 출동했다.그렇다 보니 경찰 인력도 많이 투입되어 치안을 유지했다.이번 결혼식에는 그 어떤 매체도 초대하지 않았고, 다만 직접 온라인 생중계로 진행했다. 그리고 주요 매체들과 협력해 다들 생중계를 퍼 나를 수 있도록 했다.그렇게 만인의 주목 아래 결혼식은 성대하게 치러졌다.수아와 강연의 드레스는 F 국왕실 전용 재단사가 시간과 심혈을 기울여 한땀 한땀 수놓은 것이었다.두 사람이 개인 헬기에서 내리고 결혼식장에 모습을
강씨 가문은 또 한 번 침묵에 빠졌다.세 언니 중 나이란은 이미 감정에 북받쳐 눈물을 흘리고 있었고, 청아와 예은은 애써 눈물을 참고 있었다.그러자 감동에 젖어있던 강씨 세 형제의 표정이 순식간에 굳었다.‘지금 다른 남자 때문에 우는 거야? 날 앞에 두고?’그러나 세 형제가 화를 낼 차례는 주어지지 않았다. 강현석이 몸을 일으켰기 때문이었다.강현석은 앞으로 다가가 훌륭한 두 청년의 어깨를 두드렸다. 몇 년 사이 조금 늙어버린 강현석은 어느새 상권을 주름잡던 그 모습이 사라졌다.“앞으로, 내 보배 딸을 잘 부탁하네.”안택과 서안의 얼굴에 기쁨이 번졌다.두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강현석은 이미 자리를 벗어났고, 어느새 도예나가 강현석의 옆자리를 지켰다.도예나는 고개를 돌려 어느새 다 큰 자식들과, 대단한 두 사위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축하하네.”그리고 도예나는 강현석의 손을 잡고 거실을 벗어나 자리를 비켜줬다.거실은 잠시 침묵하다가 격동의 비명이 들려왔다.“아아아 드디어 성공했어!”“축하해! 드디어 결혼하네.”“두 공주님이 왕자님을 찾아가는 것 같아 너무 보기 좋아.”강씨 가문에는 웃음소리가 이어졌다.2층 베란다에서.강현석은 집 밖의 풍경을 바라보다가 고개를 돌려 도예나와 시선을 마주했다. 서로를 바라보는 얼굴에는 미소가 가득했다.“우리 아이들이 이제 다 컸네요.”...그리고 시상식은 예정대로 거행되었다.강연의 “아기” 사건으로 대부분의 매체가 시상식 앞을 채웠다. 게다가 인원을 계속 보충해 이 파격 소식을 맞을 준비를 했다.무대 위 강연이 트로피를 들고 수상소감을 전했다.“그리고, 아주 중요한 좋은 소식을 전해드리려고 합니다.”그 말이 들리고 인터넷은 아예 서버가 막혀버렸다.무대 아래 모든 배우와 매체, 그리고 팬들은 자리에서 일어나 그 소식을 들으려고 했다.“강연 님! 드디어 전서안 씨와의 결혼 사식을 밝히려는 겁니까?”무대에서 가장 가까운 위치의 기자가 앞으로 달려가지 못해 안달인 듯 외쳤다.“다들 급해
“아버님, 안녕하세요!”안택과 전서안이 이구동성으로 말했다.나이가 많은 안택이 먼저 한 발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아버님, 이건 제가 3년 전부터 준비해 온 겁니다. 제 명하의 모든 재산, 가족 기업 주식, 부동산, 땅, 주식 등 모든 걸 수아의 이름으로 전환했습니다. 과거, 현재, 미래에서 제가 가진 모든 것, 제 목숨을 포함한 모든 것은 수아의 소유입니다.”그 말을 들은 수아가 깜짝 놀라 입을 딱 벌렸다.모든 재산을 본인의 이름으로 돌리다니. 안택은 수아에게 단 한 번도 이 사실을 밝힌 적이 없었다. 다만 묵묵히 행동으로 움직였다.“아버지...”수아가 강현석을 바라보는 눈빛은 어느새 촉촉해졌고 어쩔 줄 몰라 하는 기색이 역력했다.가족을 제외하고 수아를 위해 이렇게 모든 걸 희생할 수 있는 사람은 아마 오직 안택일 것이다.묵묵히, 그리고 뜨겁게. 겉이 아닌 깊숙이까지 수아를 사랑했다.세훈은 안택이 건넨 문서를 읽더니 다시 강현석에게 넘겼다.강현석은 몇 장 넘기다가 깊은 고민에 잠겼다.그리고 아무 말없이 수아를 다독이다가 안택을 향해 말했다.“물어보고 싶은 게 세 가지가 있다네.”안택이 바로 대답했다.“편하게 말씀하세요.”“선택의 갈림길에 섰을 때, 자네의 사업과 내 딸을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질문을 들은 안택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더니 고민하지도 않고 답했다.“제 사업이 아니라, 제 목숨으로 수아의 목숨을 구한다고 해도 수아를 선택할 겁니다.”“그렇다면 자네 가문과 내 딸 중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강현석이 계속해서 물었다.“그래도 수아를 선택하겠습니다. 제 가문은 이미 수백 년의 역사가 있습니다. 충분히 많은 우수한 자녀가 가문을 이어받을 수 있고 제가 굳이 나설 일은 없습니다.”안택이 대답했다.“그렇다면, 자네 부모님과 가족은?”강현석이 안택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천천히 물었다.“자네 부모, 가족들과 수아 사이에서 선택해야 한다면 어떻게 하겠는가?”그 물음에 안택이 잠시 침묵했다.진
동시에 제훈도 수아에게 문자를 보냈다.[아버지와 어머니가 계신 건 바로 옆 동네야. 2시간도 안 되는 거리에 계셨던거야.]...‘역시!’차가운 인상의 수아가 살기를 드러냈다.‘그래요, 아버지. 이번에는 어디로 숨을 수 있을지 두고 보자고요!’스타일링을 마친 강연이 시간을 확인하자 시상식과 2 시간 정도 여유가 있었다.아버지가 집으로 돌아오는 시간은 30분 정도 남겼다.그리고 수아는 몰래 서안과 안택을 불러 아버지 강현석이 들어오기만을 호시탐탐 노리고 있었다.그 옆에는 흥미진진해 보이는 얼굴을 하는 세훈 부부, 세윤 부부, 그리고 제훈 부부가 있었다.강씨 두 자매의 노력 아래 세 언니는 이미 제 편으로 만들었고 두 사람의 결혼을 응원했다.이어 세 언니를 편에 끌어들이고 나니 세 오빠도 한 편으로 되었다.강씨 자매는 정말 아버지가 돌아오기만을 손꼽아 기다렸다.그러자 강현석과 도예나가 대문을 넘어서는 즉시 “포위” 당해버렸다.세 언니는 도예나를 이끌고 거실로 들어갔고, 강현석은 두 딸에 의해 양팔이 포위당한 채로 소파에 앉았다.세 아들은 각각 다른 퇴로를 맡고 강현석이 도망갈 수 없게 했다.이어지는 건 두 자매의 맹공격!“아버지! 우리 이제 다 컸으니 제발 각자의 행복을 찾을 수 있게 해주세요!”“그래요. 아버지! 우리가 보아 같은 귀여운 아이를 낳아 아이들이 외할아버지라고 부르는 걸 듣고 싶지 않으세요?”“아버지, 계속 미루다가는 보배 딸들 다 늙어요!”두 딸의 이어지는 애교 세례에 강현석은 정신이 혼미해졌다.“잠, 잠깐만!”아직 상황 파악이 되지 않은 강현석이 물었다.“송이가 임신해 아기가 있다는 말은 대체 뭐냐?”수아와 강연이 눈을 마주했고 강연이 머리를 쳐들며 말했다.“지금은 없지만, 원하면 언제든지 생길 거예요!”강현석은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 말을 꺼낸 강현석이 기침을 연신 해댔다.“아버지, 너무 걱정하지 마세요.”수아는 미소를 지으며 위로했다.“이건 시작일뿐이에요. 동생에게 생길 거면 나도
직원의 목소리는 생방송을 타고 큰 파동을 일으켰다.[강연 여신님에게 아기가?][전서안이 아버지가 되는 거야?][거봐, 내 말이 맞잖아. 두 사람이 몰래 결혼했다니까?][두 사람의 결혼을 왜 생방송으로 틀지 않은 거야!!!]생방송 댓글이 뒤집어지고 있는 걸 강연은 전혀 알지 못했다.“우리 집 보배 아기니까 잘 부탁드려요.”댓글은 더 난리가 벌어졌다.[????][!!!!]각종 의문 기호가 화면을 가득 채우고 강연과의 통화가 끝난 뒤에도 댓글은 끝나지 않았다.네티즌들은 감동에 북받쳐했다.시상식 관계자가 이 사실을 알아차렸을 때는 이미 늦어버렸다. 이미 실시간 검색어가 초고속도로 상승 중이었다.클릭하면 팬들이 꺅 꺅-하며 환호하는 댓글이 넘쳤다.두 사람이 이렇게 오랜 시간 동안 좋은 감정을 이어가자, 처음에는 받아들이지 못했던 팬들도 서서히 인정했다.그사이 강연의 성장은 아주 놀라웠다. “그 시절, 우리는” 드라마를 통해 여자 신인상을 받더니 “스파이”를 통해 여우주연상까지 차지했다.그 이후로 찍었던 영화도 모두 훌륭한 성적을 받아냈다.오늘 밤 시상식에서도 그중 한 영화로 상을 받기로 되어있었다.서안과 강연은 이제 신분이면 신분, 외모면 외모, 인품이면 인품, 경력이면 경력, 모든 게 어울리는 한 쌍이 되었다.두 사람의 성장을 지켜보고 과거 이야기까지 전해 들은 후로는 두 커플을 응원하는 사람들이 과반수를 이뤘다.그러니 오늘 이 깜짝 뉴스에 다들 격한 마음을 숨기지 못하는 것이었다.유독 전서안 본인과 강씨 가문 사람들은 어리둥절한 심정이었다.수아 때문에 도피 중이었던 강현석이 가장 먼저 가족 톡방에 모습을 드러내며 질문을 쏟아냈다. 강현석도 적지 않게 놀란 모습이었다.[그 자식이 내 보배 딸을 임신시켜?][정말 하늘이 두 쪽 나도 불가능한 일이지!]스타일링을 받던 강연은 미처 소식을 전해 받지 못했고 수아가 답장했다.[아빠, 휴가 중 아니었어요? 신호가 나빠서 연락
강현석은 여자는 안정된 직장이 있거나, 든든한 가족이 있다면 한평생 행복할 것이다, 라는 말을 자주 했다.더구나 강현석은 절대 자신의 아이디가 아닌 아내 도예나의 핸드폰으로 그러한 글을 남겼다.그래서 초반에는 강씨 형제들이 어머니마저 결혼을 반대하는 게 아닐까 싶어 두려움에 떨었었다.하지만 제훈이 아버지의 계정을 해킹해 글을 어머니의 아이디에 옮겨 전송한 것임을 알아냈다. 그제야 강씨 형제는 안심했다.장인어른이 사위를 어려워하는 건 당연했다. 그건 시어머니와 며느리와 같은 이치였다.하지만, 이 집안에서는 아버지와 딸들의 투쟁으로 조금 바뀌었다.두 사람의 투쟁은 어느새 3년 가까이 이어졌다.눈 깜짝할 사이에 18살 소녀 강연은 21살 아리따운 여인이 되었다.아버지와의 오랜 투쟁 끝에 강연과 서안은 약혼식을 마쳤고 연예계 공식 커플이 되었다.그리고 세훈, 세윤, 제훈은 모두 결혼을 마쳤고 단란한 가정을 차렸다.세훈에게는 두 살배기 귀여운 아기도 생겼다.나이란도 임신했다. 어느새 막달에 진입한 나이란은 동그랗게 나온 배를 안고 여기저기 돌아다니기 좋아했고 세윤이 깜짝 놀라며 옆에 바짝 붙어 곁을 지켰다.제훈과 예은은 신혼여행을 떠났다. 예은은 아이보다는 사업에 더 비중을 둘 생각이었다. 제훈도 아기 욕심이 급하지 않았으므로 두 사람은 다행히 의견 차이 없이 합의를 보았다.이제 수아만 남겨졌는데, 매일 오빠들과 동생을 보는 눈빛에 큰 원망이 담겨있었다.세 오빠는 결혼하고 동생도 약혼식을 올렸는데, 안택과 저만 덩그러니 남겨져 버렸다. 가장 빨리 청혼하고 모든 사람들이 두 사람의 관계를 알았으나 결혼 소식은 들리지 않았다.수아도 강연처럼 투쟁을 거쳐 약혼하려고 했으나 한번 당한 강현석이 또 당할 리가 없었다. 어머니와 함께 다시 세계 여행을 떠난 뒤로 종적을 찾을 수가 없었다.그래서 매번 오늘 같은 순간이 찾아오면 연주회 준비 때문에 제대로 추진하지 못한 자신을 원망했다.“괜찮아요. 전 늘 여기 있을 거예요.”안택이 수아를 다독였다. 수
이연수의 미소는 진심을 담았다.강연을 돕기로 마음먹었던 건, 강연이 실제로 좋은 사람이었던 이유가 있었고, 오디션 현장에서 자신의 실력으로 배역을 따내겠다는 그 모습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았기 때문이었다.자신이 건넨 도움이 기회가 되어 돌아와 이연수는 기쁘기도 놀랍기도 했다.이연수의 말을 들은 강연도 마음이 따뜻해졌다.다들 연예계는 신경전이라 모두 힘들게 살아간다고 생각할 것이다.하지만 이곳에는 꿈을 좇는 이를 응원하는 사람이 더 많았다.결국 모든 건 사람이 하기 나름이며 사람이 있는 곳에는 따뜻함과 진심이 있기 마련이었다.강연은 차근차근 촬영을 해나갔다.강씨 형제들의 연애도 순항 중이었다.세훈은 입이 귀에 걸린 채로 결혼을 준비하고 있었고 송청아 역시 적극적으로 자기 뜻을 보이며 함께 상의하며 결정했다.둘의 공통된 의견은 결혼식은 성대할 필요가 없으며 따뜻하고 오래 기억에 남아야 한다는 것이었다.둘째 세윤은 아직 결혼할 “자격”이 없었으므로 조급해할 필요가 없었다.그래서 요즘 새로운 취미인 맛집 탐방을 시작했다.나이란 역시 먹짱이었는데 세윤이 앞서 맛집을 개발하면 나이란과 함께 찾아 음식을 먹었다. 그러다 보니 짧은 보름 안에 살이 3킬로나 쪄버리고 말았다.그러자 강연과 통화를 하거나 만날 때면 나이란은 항상 30분 동안 찡찡거렸다.“강연아!! 나 3킬로가 쪘다고! 다이어트 할 거야. 다시 안 먹어! 엉엉!”강연은 나이란의 다부진 몸매를 보며 웃음을 참았다.“아니야 어디 뺄 데가 있다고 그래? 우리 세윤 오빠는 딱 너 같은 여자를 좋아한다고.”“정말?”나이란이 의심 가득한 눈초리를 드러냈고 잠시 고민에 잠겼다.그렇게 강연은 드디어 조용한 대기실을 되찾을 수 있었고 대본을 읽으며 다음 촬영을 준비할 수 있었다.셋째 제훈은 열애 중이었다. 하루가 멀다고 송예은을 찾아 데이트했다.송예은이 촬영이 있는 날이면 촬영 장소를 찾아갔고, 선남선녀가 나란히 있는 모습은 시선을 끌었다.그러자 평소 모습을 잘 드러내지 않기로 유명한 제
안티 팬들의 예상과는 달리 신인 배우 강연의 연기는 정말 그 캐릭터 본연의 매력을 연출했다. 자본을 쏟아부어 배역을 따내는 연기가 아닌 캐릭터 스스로가 된 듯한 연기였다.초반에는 학생들과 두루 어울리는 부드럽지만 강인한 소녀였지만, 적군에게 잡혀 처형장으로 나갈 때의 강렬한 정신과 격앙된 태도는 반전을 자아냈다. 백연주의 경험과 강연의 연기는 수많은 애국열사를 대표했다.강연은 선인들의 정신을 캐릭터에 쏟아부어 어리지만 용감하게 나라를 위해 희생하는 연기를 녹여냈다.처형장으로 가는 길에 떠오르는 태양을 보며 옅게 지어내는 미소... 그리고 총소리가 들리고 누군가 쓰러져도 여전히 높은 위치에서 자리를 지키는 태양.그 장면 속 강연의 미소는 많은 사람들의 감동을 자아냈다.예고편을 모두 보고 나서야 사람들은 이 대단한 “백연주” 역을 강씨 가문 “공주님”인 강연이 맡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처음에는 경악하다가 이어 찬사가 이어졌다.강연은 정말 실력이 있는 배우였다. 이연수를 비롯한 배우들의 글도 모두 사실이었다.그들은 그제야 안티팬들의 선동에 넘어갔던 걸 깨달았다.진실이 드러나고 사람들은 강연에게 미안한 마음도 들고 호감도 생겼다.[언니 연기는 정말 대단해요. 영원히 함께할게요!][언니 힘내세요! 차세대 연기 대상은 언니꺼에요!]...강연을 향한 찬사 목소리가 높아지고 송 감독은 때를 놓치지 않고 마지막 한 발을 발사했다.“스파이” 공식 홈페이지에 오디션에서 “이가을” 연기한 강연의 촬영분이 공개되었다.이 오디션 영상의 공개는 온라인을 또 한 번 들끓게 했다.“백연주”를 통해 강연의 연기 재능을 미리 맛볼 수 있었는데 “이가을”처럼 복잡한 캐릭터에 대한 연기도 완벽하게 소화를 하자 네티즌들은 두손 두발을 모두 들게 되었다.[정말 무서운 연기 괴물이야!][역시 연기의 신 전서안이 마음에 둔 여자는 달라도 달라.]그렇게 온라인 소동은 막을 내렸다. 강연은 사람들의 호감도 사고 차세대 연기의 신으로 자리를 잡게 되었다.강연은 빠르게 “스파
“뭔데? 무슨 반전?”송 감독이 재빠르게 물었다.“우리에게 편이 생겼어요!”“무슨 편? 지금이 언젠데 아직도 네 편 내 편을 나눌 여유가 있는 거야?”송 감독이 눈을 부라리며 물었다.“아니요! 이걸 좀 보세요! 사람들이 직접 나서서 강연 씨를 위해 해명하고 있어요! 우리가 섭외한 것도 아닌데 먼저 나선 거라고요!”“뭐라고?”송 감독이 바로 몸을 일으켰다.“줘 봐.”그러자 스태프가 빠르게 핸드폰을 건넸고 홈페이지의 댓글이 순식간에 늘어나고 있었다.[배우 이연수: 저는 강연 씨와 함께 촬영했었습니다. 강연 씨는 정말 착하고 다정한 사람이에요. 절대 갑질한 적도 없으며 연기를 묵묵히 소화해 내는 천생 배우였어요. 이런 재능을 저희는 아주 부러워했는걸요.]그리고 이연수는 짧은 동영상을 함께 게재했는데 “그 시절, 우리는” 작품에서 강연의 촬영분이었다.“감독님, 이 여배우는 ‘그 시절, 우리는’ 작품의 배우인데요, 강연 씨와 사이가 좋은가 봐요. 이분이 직접 나서자 적지 않은 배우들이 함께 참여했어요. 조연 배우들이라 주연 배우들만큼 임팩트가 큰 건 아니지만 오히려 더 진실성 있게 다가간 것 같아요.”그건 사실이었다.요즘 사람들은 여론에 빨라 어느 유명한 배우가 이런 글을 남겼다면, 오히려 소속사에서 지시한 것이겠니 하고 생각했다.하지만 조연 배우, 스태프, 그리고 촬영 알바생들과 같은 사람들이 남긴 글은 진정성이 넘쳤다.더 중요한 건 그들이 던진 작은 돌멩이는 잔잔한 파도에 티 나지 않는 파울을 남겼고, 이는 사람들의 반감을 사지 않았다.배우가 네티즌들의 호감을 어느 정도 산 다음, 이제 주연 배우와 촬영팀이 나서야 할 때가 되었다.모든 건 걸쳐야 할 과정이 있는 법이었다.빠르게 읽어 내려간 송 감독의 표정이 밝아졌다.“휴, 드디어 목숨은 유지할 수 있게 되었어. 전서안 그 자식이 두려워서 어디 살 수 있겠나, 참.”“송 감독님 그게 무슨 말씀이세요?”이해가 되지 않은 스태프가 되물었으나 송 감독은 수염을 내리쓰며 덤덤하게 말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