염구준이 혐오스러운 눈빛으로 현충을 바라보며 말했다.“네가 정성스레 키운 애완동물이 무용지물이 되어버렸네? 그냥 직접 나서지 그래?”“이 쓸모없는 것!”현충이 분노하며 쌍두성사를 걷어찼다. 하지만 이 정도로는 쌍두성사에게 어떠한 아픔도 주지 못했다. 뱀은 오히려 토라진 듯 몸을 웅크릴 뿐이었다.이때, 뱀 지팡이 자매 중 동생 사목이 입을 열었다. “현충, 차라리 우리와 손잡고 저 놈을 해치우는 게 어때?”“손잡자고? 그럼 저놈 손에 있는 옥패를 어떻게 나눌 건데?”현충은 흔들렸지만, 득과 실이 확실하지 않은 이상 움직일 수는 없었다.“저놈을 죽이고 나서 다시 각자 실력대로 가져가면 되지, 안 그래?”사목이 능숙하게 그를 설득했다. 반대편에 당당히 서 있는 염구준을 바라보던 현충이 고개를 끄덕여 보였다. “좋아, 받아들이지.”얼마 전까지 치열하게 서로의 목숨을 노리며 싸우던 적이 한순간에 아군이 되는 순간이었다. 이익 앞에선 역시나 영원한 적도 아군도 없었다.뱀섬과 천무산이 임시 동맹을 맺었다. 거기에 무적에 가까운 방어력을 갖춘 쌍두성사까지, 염구준은 이들 모두를 홀로 상대해야 하는 상황에 놓였다. “놈을 죽여라!”서로 눈빛을 주고받은 현충과 자매가 동시에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 우선 직접적으로 맞붙기 전에 힘을 빼놓을 생각이었다.“죽이자!”양쪽 세력 모두 전투의 열기가 가시기 전이었고, 살기등등한 기세를 내뿜으며 염구준을 향해 달려갔다. 그 전력이 족히 천 명 가까이 되었다. 이들은 결코 오합지졸들이 아니었다. 모두 각 세력의 실력자들만 모은 정예 부대였다. “흥, 숫자로 몰아붙이려 들다니, 날 너무 무르게 봤군.”하지만 염구준은 한치의 물러남도 없이 당당히 자신을 향해 달려오고 있는 이들을 바라봤다. 쿠웅!그런데 이때, 파도처럼 밀려오던 인원들과 염구준 사이에 폭발음이 들리면서 커다란 구덩이가 생겼다. 그 여파에 모두 놀라 자리에서 멈춰 서고 말았다.휘이잉!모두 고개를 들어보니, 하늘에 전투기 두 대가 아주 낮
“하, 그 과정에 환자가 겪을 고통은 어쩌려고?”염구준이 냉소를 지으며 현충이 일부러 말하지 않은 부분을 콕 집었다. “하하, 상상하시는 만큼 고통스럽지는 않을 겁니다.”현충이 어색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하지만 속으론 매우 놀란 상태였다. 아직 말을 꺼내지도 않았는데, 시간을 끌면 치료 과정이 고통스러워진다는 걸 상대는 어떻게 알았을까?“헛소리 집어치워. 길게 시간을 들여 이 독을 해결할 거였으면 이곳에 오지도 않았어. 당장 영단을 내놔.”염구준이 현충의 기대를 확실히 끊어내며 못을 박았다.“정말로 협상할 여지 조금도 없습니까?”현충의 얼굴이 딱딱하게 굳었다.“협상 같은 소리하고 있네!”염구준의 인내심은 이미 바닥난 상태였고, 더 이상 말씨름에 시간 낭비하고 싶지 않았다. 그는 곧장 고개를 돌려 청용에게 명령했다. “목표는 천무산 정상, 나를 중심으로 십 미터 밖, 모두 폭파하라고 알려.”더 이상 협상의 여지는 없었고, 무력을 사용해서라도 반드시 쌍두성사의 영단을 빼앗을 것이다. 그는 행동으로 현충에게 자신의 의사를 명백히 밝혔다. 바로 앞에 있던 현충도 부하들에게 명령을 내렸다.“돌격하라! 오늘 이 자리에 있는 자는 전부 몰살한다!”영단은 절대로 넘길 수 없었다. “몰살이다!”약 천 명 가까이 되는 인원이 다시 염구준을 향해 돌진하기 시작했다. “전주님께 아룁니다. 공중 전투 1팀, 2팀, 준비 완료했습니다. 언제든지 명령하시면 바로 공격하겠습니다.”청용은 명령을 전달한 뒤, 곧바로 염구준에게 보고를 올렸다. “그럼 공격해!”염구준이 구름 떼처럼 몰려오는 사람들을 바라보며 냉정하게 말했다.‘나를 죽이려 한다면, 본인들도 죽음을 각오해야 할 거야!’쿠구구궁!전투기 두 대가 급하강하며 수많은 폭탄을 인간 구름 떼 위로 떨어뜨렸다. 오직 염구준과 그 주변만 제외한 채, 천무산 정상은 순식간에 연기와 화약 냄새로 뒤덮였다. “하하, 전신전과 맞서려 하다니, 꼴 좋다, 이 잡것들아!”청용이 크게 웃으며 말했다. 이
오랜만에 만나는 강력한 적이었다. “쌍두성사, 넌 정면으로 공격해! 우리 셋은 측면에서 공격할 테니!”현충이 빠르게 작전 지시를 내렸다. 쌍두성사는 정면으로 공격을 몸으로 막고 나머지는 측면에서 공격하는 전술, 과연 전투 경험이 많은 베테랑다웠다. “쉑쉑!”쌍두성사가 서툰 목소리로 대답하며 거대한 몸을 이끌고 앞으로 나섰다.반보천인이 넷이 동시에 공격하는 상황에 아무리 염구준이라도 약점이 생기기 마련일 테니까, 현충은 그것을 노리고 있었다. 펑, 퍼벙!염구준의 무자비하게 주먹으로 쌍두성사를 두들겨 팼다. 그러나 쌍두성사는 뒤로 밀리긴 했지만, 몸이 너무 단단해 비늘이 좀 긁혔을 뿐이었다.“이익, 내 비늘이!”쌍두성사의 말은 서툴렀으나, 그 안에 담긴 분노는 확실했다.뱀은 자기 외모를 꽤 신경 쓰는 편인지, 비늘에 긁힌 자국이 난 것을 못 참는 듯했다. 하지만 염구준은 아랑곳하지 않고 쌍두성사가 주춤대는 틈을 타, 현충과 자매의 공격에 맞섰다. 이들의 나이를 모두 합치면 못해도 300세, 쌓아온 세월이 세월인 만큼 무식하게 힘만 센 쌍두성사와는 완전히 격이 달랐다. 염구준이 일반 반보천인과 다르지만, 주먹 두 개로 여섯을 상대하기는 벅찼다. 그는 점점 궁지에 몰리기 시작했다. “좋아, 이대로 공격 유지해. 놈을 지치게 해야 해!”전술이 통하고 있다는 것을 느낀 현충이 기뻐하며 계속해서 지시를 내렸다. “전주님!”“오라버니!”상황이 염구준에게 불리하게 돌아가고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수안과 전신전 사람들이 손을 보태고자 앞으로 나섰다. 하지만 반보천인들의 결투, 결코 범인이 끼어들 수 있는 자리가 아니었다. 결국 이들은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타격을 입고 다시 뒤로 물러섰다. “물어뜯는다!”쌍두성사가 다시 정신을 차리고 분노를 담아 염구준에게 달려들려던 찰나였다. 비늘이 손상 입은 것이 상당이 화가 난 듯했다. 그러나 현충이 앞으로 나서 쌍두성사의 행동을 저지했다. “넌 물러서. 굳이 여기서 너까지 나설 필요 없어.”
세 사람은 염구준의 변화를 이해할 수 없다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궁지에 몰리니 잠시 정신이 이상해진 것일지도 모른다는 생각마저 들었다. 그런데 이때, 염구준의 몸이 진동하듯이 떨려오더니, 무시무시한 기운을 사목을 향해 내뿜었다. 그는 차례차례 한 명씩 제거해 나갈 생각이었다. 이 전술은 염구준이 전투를 시작하기 전부터 계획했던 것이었다.“빨리, 저 놈을 막아!”몸이 저렇게 엉망이 된 상황에도 아직 이런 폭발적인 기운을 내뿜다니, 그 누구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두 사람은 뒤늦게 막으려 했지만, 에너지만 소모하고 별다른 소득을 보지 못했다. “이 비열한 놈!”상황이 역전되자 현충은 비장의 카드를 소환할 수밖에 없었다.“쌍두성사, 너도 와서 도와!”명령을 거부할 수 없었던 뱀은 빠르게 전투 현장을 향해 몸을 움직였다. 청용과 다른 일행들도 앞으로 나서며 뱀의 움직임을 저지하려 했으나, 이번에도 소용없었다. ‘빠르게, 더 빠르게!’염구준은 가까이 오는 쌍두성사의 모습을 보고 점점 공격에 속력을 올렸다. 생사를 가르는 싸움에서 주어진 기회를 놓치지 않고 활용하는 것만큼 중요한 것은 없었다. 어렵게 얻어낸 방심, 그는 반드시 이번 공격을 성공시켜야 했다. 곧이어 텅, 텅… 맑은 금속이 두 동강 나, 바닥에 떨어지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매 중, 동생 사목이 결국 염구준의 맹렬한 주먹 공격에 이기지 못하고 피를 토하며 나가 떨어졌다.드디어 넷 중 한 명이 제거되는 순간이었다. 쌍두성사가 뒤늦게 염구준에게 공격을 날렸지만, 염구준이 몸을 비틀며 피해 버리는 바람에 현충과 사우만 움직임이 꼬이고 말았다. “멍청한 놈!”결국 현충이 참지 못하고 쌍두성사에게 욕설을 퍼부었다. 자신이 기른 생물이긴 하지만, 몸만 키우고 머리를 키우지 못한 것이 뼈저리게 후회됐다. 쌍두성사도 실수를 알아차리고 조용히 몸을 움츠렸다. “다시 덤벼!”반면, 염구준은 여전히 불타오르고 있었다. 그는 혼란한 틈을 타 다시 공격을 넣기 시작했다. 오늘 웃을 수 있는
드디어 염희주의 독을 치료할 방법이 생겼다. 이제 안심이었다.염구준이 안도가 섞인 미소를 지으며 조심스레 무지개 빛을 띄는 쌍두성사의 영단을 품에 넣었다. 반면, 영단을 빼앗긴 쌍두성사는 고통에 몸부림치면서 바닥을 굴렀다. 영단은 영물의 생명과도 같은 것이었다.“염구준, 이 개 자식!”현충이 크게 표효하며 사우와 함께 공격을 날리며 급히 쌍두성사에게 달려갔다. “아프다, 아파!”쌍두성사가 인간의 말을 내뱉으며 흐느꼈다. 영단이 뽑힌 곳에서부터 끊임없이 피와 함께 내력도 새어 나갔다. 동시에 몸도 바람 빠진 풍선처럼 점점 작아졌다.“괜찮아, 내가 고통스럽지 않게 해 줄게.”현충이 안타까운 눈빛으로 쌍두성사를 바라보다 영단이 제거된 복부를 향해 손을 가져다 댔다. “몇 년만 있었다면 천인의 경지에 이를 수 있었을 생물인데, 네가 모든 것을 망쳤어!”이 말과 함께 그는 뱀의 몸에서 나오는 에너지를 흡수하기 시작했다. 남은 쌍두성사의 힘을 빌어 천인의 경지에 도달하려는 의도였다.“주인님, 안 돼요!”영단을 빼앗길 때보다 더 한 고통을 느낀 쌍두성사가 애원했다.“닥쳐, 내가 널 어떻게 키웠는데, 남는 게 있어야지.”하지만 현충은 조금도 머뭇거리지 않고 계속해서 흘러나오는 에너지를 흡수해 나갔다. 쌍두성사는 그의 손아귀에서 벗어나려 몸부림쳤지만, 이미 약해지고 작아진 몸으로는 역부족었다. 한편, 현충의 기운은 겉잡을 수 없이 커지기 시작했다. “비열한 자식, 뱀은 너를 부모처럼 따랐을 텐데, 이런 뒤통수를 치다니!”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던 수안이 분노의 목소리로 외쳤다. 주술사들은 보통 자신이 직접 키우게 된 벌레나 파충류를 자식처럼, 또는 가족처럼 여기곤 했다. 그랬기에 그녀는 도무지 현충의 행동을 받아들일 수 없었다. 하지만 수안과 달리 염구준은 현충을 나름 기대 어린 눈빛으로 바라봤다. 인간이 천인이 되는 과정을 직접 눈으로 목격하게 될지도 모르는 순간이었다. 그리고 강한 상대는 더욱 그를 즐겁게 한다.“후… 됐어! 이제 난 천
정통으로 맞은 공격, 염구준은 팔에 저릿한 고통과 함께 뒤로 몇 발자국 밀렸다.‘이제 천인의 경지에 들어서게 되면 갖게 되는 힘인가? 하지만 천인지력은 쓸 줄 모르는군.’“하하, 한방도 못 견디는 놈이, 잘난 척은!”일격을 성공시킨 현충이 의기양양하게 웃으며 계속해서 공격을 퍼부었다.“검을 가져와!”염구준이 입가의 피를 닦아내며 주작에게 외쳤다. 이 정도 실력이라면 검을 뽑아도 될 것 같았다.“전주님, 검 받으세요!”주작이 서둘러 검이 담긴 상자를 열더니, 안에 들어있던 검을 염구준 쪽으로 던졌다.“흥! 소용없다!”하지만 현충은 대수롭지 않게 생각했다. 검을 든다고 해서 천인의 경지에 이른 그의 힘을 감당해낼 수 없을 거라 확신했기 때문이다. ‘어차피 공격 두어 번 막으면 부러질 쇳덩어리!’그런데 그의 예상과 달리 염구준이 검을 받들어 꺼낸 순간, 갑자기 기세가 바뀌었다. 검에서 푸른 검기가 일어나며, 맨몸으로 공격할 때와는 완전히 다른 날카로움이 뿜어져 나왔다.우웅!염구준이 이전과 비교할 수 없는 속도로 현충을 향해 검을 휘둘렀다. 현충은 피할 수 없어 재빨리 방어막을 둘렀으나, 이대로 계속된다면 뚫릴 게 분명했다.“말도 안 돼. 나는 천인이다. 무적이라고!”현충이 헝클어진 머리로 미친 사람처럼 외쳤다. “천인? 아니, 넌 어설픈 천인의 흉내를 내는 가짜일 뿐이야.”염구준이 낮게 깔린 목소리로 말했다. 힘은 강해진 건 사실이지만, 천인지력을 다룰 줄 모르는 천인이라니, 있을 수 없었다.“아니야, 난 천인이야!”현충은 무시당하자, 분노하며 자신도 허리춤에 있던 검을 꺼내 들었다. 하지만 염구준이 들고 있던 것은 평범한 검이 아닌, 세상에 둘도 없는 구자검이었다. 결국 여러 번 부딪힌 끝에 현충의 검은 처참히 부러지고 말았다. 어쩔 수 없이 현충은 쌍두성사에게 물려받은 비늘을 강화해 싸움을 이어갔다. 하지만 염구준은 이번에 검기에 천인지력의 힘까지 담아 불꽃을 피워냈다. 날이 저물어가고 있었다. 하지만 두 사람의 전투는 지속
검에서 빛이 번쩍였다. 말로 표현하기 힘든, 엄청난 기운이 뿜어져 나와 현충의 어깨를 베어냈다.‘천인의 경지란 이런 건가?’그는 순간 자신이 천인의 경지에 도달했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지만, 이내 다시 원래대로 돌아오며 착각이었다는 것을 깨달었다.역시 천인의 경지란, 이리 쉽게 도달할 리 없었다.“끄윽!”중상을 입은 현충이 숨이 넘어갈 듯한 목소리로 외쳤다.“저주한다! 평생 네가 불행하길 저주한다!”현충은 이 말을 끝으로 눈을 뒤집으며 숨을 다했다.무리안을 휘어잡았던 전설적인 인물이 그렇게 염구준의 손에 저물었다. 하지만 이 모든 것은 그가 자초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먼저 염구준을 건드리지 않았더라면 일어나지 않았을 일었으니까.“후….”염구준이 깊게 한숨을 내쉬며 자리에 털썩 주저앉은 채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전주님!”그 모습을 본 사람들이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달려왔다.“걱정할 것 없어. 좀 지친 것뿐이지, 잠깐 쉬면 괜찮아질 거야.”염구준이 그들을 향해 손을 들어올리며 다가오는 것을 제지했다. 지금 몸 주변에 이상한 기운이 느껴졌기 때문이다. 정체가 명확해지기 전까진, 홀로 있는 편이 나았다. 처음 이 기운을 감지했던 게 현충이 죽기 직전 저주를 퍼부었을 때였으니까.“저주의 힘!”주술사였던 수안이 상황을 알아차리곤 먼저 입을 열었다.“음? 너는 뭔가 알고 있는 것 같네. 설명해봐.”염구준은 흥미로웠다.“쌍두성사, 사실 이 뱀에겐 또다른 별칭이 있습니다. 불운의 뱀, 그래서 대부분 다가가는 것조차 꺼려합니다. 어쩌면 현충이 쌍두성사의 힘을 흡수하면서 이것도 물려받았을 가능성이 있어요.”수안은 솔직하게 자신이 아는 것을 숨김없이 털어놓았다.“구체적으로 무슨 일이 발생할 수 있는데?”염구준이 물었다.“불운이 따라다니며, 계속해서 상상할 수 없는 재앙이 일어나게 된다고 알고 있습니다. 덩달아 주변인들에게도 영향을 미치고요.”수안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저주의 힘이 어디까지 영향을 미칠지는 그녀도 정확히 알지
“오라버니, 거긴 절대로 가면 안 됩니다. 삼색꽃은 무리안에서 성물이라 불리고 있긴 하지만, 수백 년 동안 그 누구도 성공적으로 손에 넣었다는 기록이 없을 정도면 말 다했죠.”수안의 표정은 좀 전에 현충과 전투를 치를 때보다 더 긴장되어 보였다. 흑풍존주는 염구준을 함정에 빠뜨렸다. 알고서도 피할 수 없는 함정, 지금 그에겐 달리 해결책이 없었기 때문이다. “그래서, 삼색꽃이 저주를 풀 수 있긴 해?”염구준에게 지금 중요한 것은 이 정보의 신뢰성이었다. 잠시 갈등하던 수안이 표정을 굳히며 사실대로 말했다.“이론적으론 그렇죠. 저주를 푸는데 가장 효과적인 물건이라 알려져 있으니까요.”그녀는 염구준이 위험속으로 뛰어드는 것을 막고 싶었지만, 거짓말할 수는 없었다.“그렇다면 됐어. 흑충곡 지도 가지고 와봐.”염구준은 이미 결심한 듯 보였다. 그리고 그는 한번 결정한 일을 절대로 번복하는 사람이 아니었다. 이런 불운을 안고 사랑하는 가족 곁으로, 또는 지인들 곁으로 돌아갈 수는 없었다. “청용, 이 두 상자, 이제마에게 전해. 어떻게 해야 할지는 말하지 않아도 잘 알 거야.”“알겠습니다, 전주님.”청용이 조심스레 상자를 받아들이며 공손히 대답했다. 상자 안엔 천형의 해독제와 쌍두성사의 영단이 들어 있었다. 이어서 염구준이 다시 지시를 내렸다. “백호, 일단 여기서 살아남은 사람들, 죽이지 말고 데려가 치료해줘. 그리고 다 나으면 화장실 청소를 시키던, 나무를 가꾸게 하든, 알아서 잔일거리 시켜.”“네, 알겠습니다!”명령을 받은 백호는 곧바로 부하들을 데리고 남은 사람들을 수송하기 시작했다. 살아남은 이들 대부분 전신전의 무서움을 직접 경험한 터라 그 누구도 반항하지 않았다. 이제 남은 것은 죽어가는 쌍두성사 뿐이었는데, 염구준은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저한테 맞겨주세요. 제가 치료할 수 있습니다.”옆에 있던 수안이 쌍두성사를 들어올리며 염구준을 향해 기대 어린 눈빛을 보냈다. 사실 처음 쌍두성사를 본 순간부터 그녀는 이 생물이 마
같은 시각에 설씨 가문 주둔지는 모닥불 파티를 연 탓에 매우 떠들썩했다.이 자리에서 가장 인기 있는 사람은 당연히 설씨 가문의 은인인 주작과 백호였다."이 술을 빌어 은인님들께 정말 감사하다고 인사드리고 싶습니다. 여러분들 덕분에 청목의 앞잡이들을 물리칠 수 있었어요.""이건 남극 빙원의 특산물인 크릴새우입니다. 한번 드셔보세요.""설웅이 여러분들같은 고수를 만난 건 저희 가문의 복입니다."설씨 가문 사람들도 매우 맛나게 먹었다. 이 음식들은 평소에 감독관들이나 먹는 것들이었다.사람들은 불을 에워싸고 춤을 추며 오랫동안 억눌려왔던 감정을 풀고 한껏 웃었다.설씨 가문 사람들의 열정에 주작과 백호는 적응이 되지 않아 염구준에게 도움을 청하는 눈길을 보냈으나 염구준은 웃으며 술잔을 들었을 뿐, 딱히 다른 행동을 하지는 않았다. 그는 지금 속으로 앞으로의 계획을 세우고 있었다.어떤 일들은 조급해하지 말고 천천히 해야한다는 것을 그도 잘 알고있었다. 너무 성급하게 굴었다간 허점이 많아지게 될 테고 그럼 신분이 들키게 될 테니까 말이다.'그쪽에서 놀라서 도망치면 이 모든게 헛수고가 되버리니까 천천히 해야 해.'모두가 기뻐하고 있을 때, 오직 설씨 가문의 장로, 설구만이 염구준과 얼마 떨어지지 않은 곳에 앉아 슬픈 눈빛을 하고서 눈썹을 찌푸리고 있었다."장로님, 나쁜 녀석들이 도망갔는데 왜 안 기뻐하세요?" 그의 이상함을 눈치 챈 설웅이 그의 옆으로 다가가서 물었다."에휴, 다시 돌아올 겁니다.""청목존주를 처리하지 않는 이상 다시 돌아올 거예요. 무엇보다 청목존주는 반보천인의 강자입니다. 누가 이길 수 있겠어요?"설구는 장로답게 다른 사람들보다 안목이 더 좋고 생각이 더 깊었다."가문 전체가 남극 빙원이 아닌 바깥으로 옮기는 건 어떨까요?" 그의 말을 들은 설웅은 공손한 태도로 물었다."바깥으로 갈 수 있었다면 이미 이사를 갔을 겁니다. 하지만 외부에는 강적이 있어요. 만나면 죽을 수밖에 없다는 얘기죠."상대방의 질문에 설구는 천천히
사람들이 옆에서 관전하고 있기 때문에 주작은 더 빠르게 공격해 몇 분만에 개조 로봇을 부숴버렸다.이런 공격이 몸에 부담이 크다는 걸 알면서도 말이다."괜찮아?"한편, 설웅은 감정을 더 이상 억제하지 못하고 자신의 가족들에게로 달려갔다."도련님, 저희를 구하러 오신 겁니까?"설씨 가문의 사람들은 설웅을 본 후 감동에 겨워 그를 에워싸고는 기쁨의 눈물을 흘렸다.설웅이 자신들을 도와줄 사람들을 데려온 걸 보니 그들은 최근에 고생한 게 모두 보람차게만 느껴졌다.곧바로 그는 가문의 사람들에게 주작과 백호를 소개해주었고, 설씨 가문의 사람들은 소개를 다 들은 후 진심으로 고마워했다.염구준 등은 자신의 신분을 밝히지 않고 그저 탐험가라고 하며 이곳에 머물러야 할 것 같다고 한 뒤 설씨 가문의 주둔지에 머물렀다.진실한 신분을 밝히지 않은 이유는 설씨 가문의 사람들 중 혹여나 스톡홀름 증후군 환자가 고자질을 할까봐서였다. 오랫동안 예속되어 왔으니 그런 사람이 있는 것도 놀라운 일은 아니었다.한편, 눈밭에서 풀려난 감독관은 다른 광산까지 미친듯이 달려갔다. "너희 우두머리를 만나야겠으니 빨리 소식을 알려!""백어, 뭘 이렇게 급해해? 도망온 사람처럼 말이야."그를 본 이곳의 감독관이 농담하듯 말했다. 두 광산은 멀리 떨어져 있지 않아 평소에 서로 왔다갔다하며 잘 알고 지냈다."백씨 가문의 주둔지에 있던 광산이 침략 당해서 보고해야 해. 너희 우두머리는 어디있지?" 백어는 벌벌 떨면서 큰 소리로 물었다.청목 조직은 등급이 삼엄해서 그의 신분으로는 본부와 연락할 수가 없었다."뭐라고?"이 말을 들은 몇몇 감독관들은 입꼬리가 내려가더니 크게 놀라했다.남극 빙원에서 감히 청목 조직과 맞서는 사람은 아주 적었다. 조직의 사람들을 죽이는 건 더더욱 상상치도 못할 일이었다."얼른 따라와!" 이곳의 감독관은 더 이상 질질 끌지 않고 서둘러 길을 안내했다.이렇게 큰 일을 지체해서는 안되었다.그 후 백어는 우두머리에게 보고했고, 우두머리는 본부에 보고했
펑! 펑!전신지상 고수의 공격은 강력했다.주작은 마치 썩어빠진 나무를 자르듯 개조 로봇들을 하나씩 물리쳤다.이 실력이라면 고철덩어리도 자를 것 같았다.상대방의 실력을 보고 담당자가 인상을 찌푸리더니 옆에서 대기하고 있는 개조 로봇에게 명령을 내렸다.“꺽다리. 저년을 죽여!”꺽다리는 최고 병기였다.“접수.”개조 로봇은 무뚝뚝하게 대답하고 주작과 주먹다짐을 벌였다.쿵!쌍방의 실력은 비슷해서 한 번 치고 뒤로 물러났다.전신지상의 개조 로봇이었다.개조 로봇은 잠시 부품들을 재정비하더니 다시 공격을 퍼부었다.목표가 죽을 때까지 멈추지 않을 기세였다.매서운 공격이 다가올 때마다 주작은 피할 수 없어서 끝까지 맞서는 수밖에 없었다.한동안 쌍방은 치고 박고 해도 승부를 가리지 못했다.“뭐 하는 거야? 가서 설웅을 죽여.”담당자가 다시 명령을 내렸다.개조 로봇은 맷집이 세고 마모에 강하며 보험도 들어줄 필요가 없어서 좋았지만 딱 한 가지 단점 융통성이 없었다.탁탁!명령이 떨어지자 나머지 개조 로봇들이 설웅을 향해 돌진했다.한 켠에서 주작이 우세를 차지했지만 그를 보호할 여력이 없었다.부릉부릉!위급한 순간, 마침 스노우모빌의 요란한 소리가 울리며 백호가 현장에 나타났다.그는 스노우모빌을 세우기 전에 몸을 날려 개조 로봇을 폐철로 만들었다.또 전신지상의 고수가 나타나자 담당자는 골치가 아팠다.조직에서 전신지상인 로봇을 한 대만 주어서 어떻게 막아내야 할지 속수무책이었다.5분도 안 되어서 개조 로봇들이 모두 부품이 되어 바닥에 흩어졌다.“이봐. 나랑 좀 놀자.”백호가 담당자에게 말을 건넸다.단진 무성의 실력이라면 어느 정도 싸울만했다.“다들 뛰어!”담장자가 말하는 동시에 부하들이 바로 도망쳤다.“컥!”그런데 얼마 뛰지 못하고 가슴에서 통증이 느껴지고 눈앞이 아찔했다.고개를 숙여 보았더니 가슴에 피가 묻은 손바닥이 뚫고 나온 것이다.백호는 손칼 하나로 그를 황천길로 보냈다.휙!그는 손에 묻은 피를 휙휙 털어내고는 다
이번에 가족을 구하지 않으면 여기서 죽어야 할 것이다.“우리 목적지 근처에 도착했어요.”주작이 보고했다.“알았어. 먼저 상황을 살펴보고 있어. 우리도 곧 도착해.”뒤에서 염구준이 지시를 내리고 위치를 파악했다.10 킬로미터도 안 되는 거리를 전속으로 달린다면 금방이면 도착한다.“일단 가서 보자.”주작도 스노우모빌에서 내렸다.두 사람은 눈 위에 엎드려 포복으로 가장 높은 곳으로 기어갔다.그리고 고개를 쏙 내밀어 전방을 살펴봤다.설웅이 말한 주둔지는 사람 사는 곳이 아니라 광산 같았다.그가 집이 맞다고 우기지 않았다면 잘못 왔다고 착각했을 것이다.광활한 광산에서 욕소리가 유난히 똑똑히 들렸다.퍽!“당장 일어나, 아니면 때려죽인다.”“흑흑. 제발 그만하세요. 할아버지가 버티지 못해요.”한 소녀가 노인을 보호하며 애원했다.바닥에 엎드린 노인은 얼마나 많은 피를 흘렸는지 방한복이 피에 흠뻑 젖었다.“차라리 잘 됐지. 버티지 못하면 바로 뒷산에 던져.”현장 감독 담당자가 채찍을 흔들며 쏘아붙였다.그들은 사람이 죽어도 신경 쓰지 않았다.“안 돼요. 제발 그러지 마세요.”소녀는 흐느끼면서 애원했다.퍽!“하하하. 꺼져! 일하는 데 방해하지 마.”담당자는 소녀에게 채찍을 휘두르며 미친듯이 웃었다.그래도 소녀는 노인을 꼭 잡고 놓아주지 않았다.멀리서 그 장면을 보던 설웅이 이를 갈며 눈물을 글썽이더니 벌떡 일어서서 소리질렀다.“때리지 마! 나한테 덤벼!”얻어 맞던 소녀는 바로 설웅의 친여동생이었다.갑작스러운 상황에 주작은 욕을 퍼붓고 싶은 걸 가까스로 참았다.“우리 들통났어요. 전방에서 몰려오고 있는데 어떡할까요?”주작이 바로 보고했다.“그럼 싸우는 수밖에 없지.”염구준이 지시를 내렸다.“백호 가서 지원해. 나머지는 나한테로 와.”전신지상 고수 두 명이 나서면 충분하니 반천인 고수가 나설 필요가 없었다.염구준은 일찍 정체가 드러나는 게 싫어서 모든 사람에게 지시를 내리지 않았다.“설씨 가문 개똥에도 쓸모없는 도련
“…”우두머리는 너무 아파 소리도 못내고 두 손으로 소중이를 감쌌다. 어엿한 무성지상 고수가 이렇게 망가지다니 정말 안타깝지 그지없었다.그것도 여자에게 홀려서 소중이까지 망가져버렸다.“저년을 쳐라!”나머지 부하들은 그제야 반응하고 우르르 쓸어왔다.방심한 탓에 이런 꼴을 당한 것이다.“하. 다 쓸어와도 소용없어.”주작은 가볍게 웃음을 치며 전력으로 맞섰다.“젠장, 저년 실력을 감추고 있었어. 적어도 전신 경지야. 얼른 튀어!”누가 소리를 지르자 일행들은 바로 몸을 돌려 도망치려 했다.하지만 이미 늦었다.주작은 그들이 뿔뿔이 흩어지기 전에 전부 쓰러트렸다.염구준이 한 놈이라도 살려두라고 하지 않았더라면 전부 죽였을 것이다.“말해. 누가 너희들을 보냈어? 본거지는 어디야?”주작은 단도직입적으로 묻지 않고 은밀하게 말을 돌렸다.첫 번째 질문은 가짜이고 두 번째가 진짜 목적이었다.“청…”펑펑!잔뜩 겁을 먹은 부하가 말하려고 할 때 머리에 총을 맞고 즉사했다.총소리가 연달아 울리더니 미행하던 일행이 전부 죽었다.주작은 경계심을 놓치지 않고 설웅 곁으로 다가가 전신 영역으로 총알을 받아냈다.이 정도 공격으로 그녀의 방어를 뚫을 수 없었다.“저격수가 1킬로미터 밖에 있습니다.”설웅을 보호해야 해서 그녀는 움직일 수 없었다.“도착했어.”마침 염구준이 저격수 뒤에 나타났다.첫 총성을 들었을 때 상대방의 위치를 파악하고 그곳에 간 것이다.“언제 왔어?”저격수는 뒤에서 말소리를 듣고 화들짝 놀랐다.퍽!염구준은 기운으로 저격수를 밀쳐내고 평가를 내렸다.“방금 도착했지. 사격은 봐줄만했는데 자아 보호 실력은 엉망이네.”“아악!”저격수는 중상을 입고 피를 토하더니 비틀거리면서 비수를 꺼냈다.“넌 뭐야?”염구준이 사악하게 웃으면서 천천히 다가갔다.“협조하지 않으면 바로 네 목숨을 앗아갈 사람이지.”“꿈 깨!”저격수는 비수를 들고 죽을 각오로 공격했다.“죽고 싶어서 환장했네.”염구준은 허공에 주먹을 날려 그 자리에서
“고객님, 안목이 있으시네. 우리 가게에서 성능이 최고로 좋은 놈이라 1억만 주세요.”사장은 두 손바닥을 비비며 교활하게 웃었다.‘돈에 환장했나.’염구준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사장이 계속 설명했다.“비싸다고 생각하지 마세요. 저희들도 여기까지 끌고 오느라 운비만 해도 꽤 돈이 들었어요. 우리 집 물건은 이 바닥에서 제일 싼 편이라고 장담할 수 있어요.”염구준은 개떡 같은 이유를 듣지 않고 스노우모빌에 올라타 연료 탱크를 점검했다.그리고 아무런 표정도 없이 한마디 던졌다.“이체할게요.”휘발유는 그래도 얼지 않는 것으로 사용했다.“네.”거래가 성사되자 사장은 해맑은 미소를 지으며 은행 계좌를 알려줬다.이것만 팔아도 이번 달은 장사를 접어도 되었다.염구준은 추가로 휘발유 두 통을 샀다.“고객님, 어디 멀리 가십니까?”사장은 염구준이 산 물건들을 보며 물었다.휘발유 두 통에 연료 탱크에 있는 휘발유까지 하면 수백 킬로는 족히 달릴 수 있다.“여행하러 왔으니 멀리는 못 가고 주변만 돌아보려고요.”염구준은 그럴싸하게 대답했다.사장의 손등에 있는 나뭇잎 문신을 보고 이미 신분을 알아챈 것이다.정말 감탄하지 않을 수가 없었다.남극 빙원에서 청목 조직의 세력은 각 업계로 뻗은 것 같았다.“그렇군요.”사장은 고개를 끄덕이며 더는 묻지 않았다.그때 이어폰에서 주작의 목소리가 들렸다.“부두 3시 방향 설산 뒤에서 미행자들이 공격할 것 같습니다.”염구준은 고개를 돌려 5킬로미터 떨어진 곳을 바라봤다.잡것들이 고새를 참지 못하고 움직인 것이다.부릉부릉!염구준은 스노우모빌 시동을 걸고 주작이 알려준 방향으로 달렸다.부두를 나서며 그가 주작에게 지시를 내렸다.“한 명 정도는 살려둬, 물어볼 게 있어.”남은 일행도 스노우모빌을 사고 각자 출발했다.부두 근처에는 워낙 스노우모밀을 대여하는 유람객들이 많아서 이상한 티가 나지 않았다.설산 반대편에서 주작과 설웅은 각자 스노우모빌을 타고 천천히 달렸다.그때 뒤에서 모터가 몇 대 따라오
“알았어. 함께 청목을 처단하자.”“작전에 참여한 걸 환영해. 그럼 너와 청목 사이의 원한과 그놈의 행방을 말해 봐.”염구준이 이어폰을 하나 건넸다.이번 작전에서 조력자 한 명이 늘었다.설웅은 유골을 품에 안고 가족들의 사연을 떠올리며 이야기를 시작했다.“우리 설씨 가문은 적을 피하려고 남극 빙원에 도피했어. 그곳에서 일찍 정착한 편이었어. 빙원에서 생활은 무료했지만 가족들은 서로 아끼고 보살펴서 그럭저럭 살만했는데 청목이 나타난 거야. 우리를 자신의 노예로 삼겠다고 해서 아버지가 따르지 않자 바로 주먹을 휘두르더라고. 참지 못한 사람들은 반항하다가 죽고 나머지 가족과 노비들은 끌려가서 생체실험을 당했어. 그놈은 완전히 미친놈이야!”설웅은 서러움에 북받쳐 마지막에 고함을 질렀다.“청목의 전력과 부하들의 실력, 그리고 본거지가 어딘지 알아?”설웅이 고개를 가로저었다.“몰라. 아버지는 전신 경지에 도달한 고수지만 한 주먹도 받아내지 못했어.”반천인 경지는 전신 경지 고수를 한 주먹에 죽일 수 있지만 반대로 전신 경지는 그럴 수 없다.“됐어. 쉬고 있어. 함부로 밖에 나가지 마.”염구준은 본인들 객실로 돌아가 짧게 회의를 열었다.지금 흑풍이 청목과 손을 잡아 반천인 경지 고수가 두 명이나 되어서 상황이 낙관적이지 않았다.그동안 염구준이 옥패의 무술비법을 베껴서 전신전의 부하들에게 보여준 덕에 전체적으로 실력이 눈에 띄게 향상했다.백호, 주작, 현무는 전신지상 경지에 도달하고 나머지 전왕들은 전신 경지에 도달해 반천인 경지에 도달하려면 아직 갈 길이 멀었다.이어서 며칠은 의외의 사고가 발생하지 않고 무사히 목적지에 도착했다.유람선을 내릴 때 설웅은 주작과 한 팀으로 움직이고 나머지 일행은 신분을 감추려고 캐리어를 든 유람객으로 분장했다.주작은 여자라 염구준을 연상시키지 못하게 일부러 안배한 것이다.“존경하는 유람객들 주의하십시오. 남극 빙원에 도착했으니 여기서 이틀 정착하겠습니다. 이곳의 치안이 복잡하여 가이드가 없거나 강력한 실력이
“깨어났네.”그때 청년의 손가락이 움직였다.방금 그를 구할 때 반항할까 봐 염구준이 손으로 기절시켰다.“윽!”청년은 몸을 비틀며 일어서더니 뒷목을 문지르며 눈을 떴다.“당신들 뭐야?”정신이 들자마자 일행을 본 그는 두 눈을 동그랗게 뜨고 경계했다.오랫동안 도피 생활을 해서 신경질적으로 예민해졌다.“널 구한 사람이다.”염구준이 담담하게 대답했다.청년은 아무리 생각해도 이런 얼굴을 본 기억이 없었다.“왜 나를 구했어?”“난 청목의 적이니까. 아까 보니까 너도 청목한테 원한이 있는 거 같은데 우리 손을 잡는 게 어때?”“그런 당신은 무슨 원한이 있지?”그 말에 염구준은 인상을 찌푸렸다.“뭐가 그렇게 궁금한 게 많아?”질문이 끊기지 않아 짜증이 밀려왔다.“알았어. 묻지 않을게.”청년은 흠칫 놀랐다.그가 묻지 않으니 이번에 염구준이 질문했다.“이름이 뭐야?”“설웅이야. 남극 빙원 설씨 가문의 소주다.”설웅은 자신의 정체를 밝혔다.하지만 염구준이 원하는 정보는 아니었다.“난 청목을 죽이려고 남극에 가는 중이야. 나랑 같이 가지 않겠나?”만약 상대방이 원하지 않으면 다른 얘기를 해도 의미가 없었다.“그건…”설웅은 망설이며 말을 잇지 못했다.솔직하게 말해서 꿈에서도 청목을 죽이고 싶었지만 만만한 상대가 아니었다.염구준의 말에 구미가 당겼지만 현실적이지 못해서 허풍이라 여겼다.“참, 아저씨는 어디 있어?”설웅이 흥분하며 물었다.사람은 죽었지만 여태 그를 돌보았으니 제사라도 치러주고 싶었다.“책상 위 함에 있어. 내가 이미 화장하고 유골을 유골함에 넣었어.”염구준이 대답했다.사람도 구했는데 시신을 거두는 것은 어렵지 않았다.“고마워. 이 은혜는 죽지 않는 한 꼭 갚을게.”설웅은 유골함을 끌어안고 슬픈 표정으로 객실에서 나갔다.그동안 온갖 고초를 겪었더니 사람을 쉽게 믿지 못했다.“이 문을 나서면 더는 널 도와주지 않겠다. 너도 곧 죽음을 당하겠지.”염구준은 의자에 앉으면서 말했다.그는 착한 사람이 아니었다
잔뜩 겁에 질린 매니저는 찍 소리도 못하고 부랴부랴 도망쳤다.지금 이 순간만큼은 사람이 죽은 것이 그렇게 중요하지 않았다.그때 청년이 일어서서 버럭 소리를 질렀다.“너희들 저주할 거야. 청목 존주도 저주할 것이다.”청목 존주의 적이라는 것을 확인한 염구준은 가슴이 벌렁거리고 뇌가 빠르게 돌아가더니 계략을 짜기 시작했다.친구의 친구는 반드시 친구가 될 수 없지만 적의 적은 또 말이 달랐다.염구준 일행은 남극 빙원에 있는 청목의 행적을 모르고 있으니 안내자가 있다면 일이 수월하게 될 것이다.그가 작은 소리로 부하들에게 임무를 맡겼다.“시간 됐다. 죽어!”우두머리는 1초도 지체하지 않고 칼을 높이 들었다.바로 그때 모든 전등이 꺼졌다.갑자기 어두워지자 홀에 비명이 쏟아지고 서로 밀치고 도망치느라 난장판이 되었다.“도망쳐! 살인이야!”누가 고함을 지르자 현장은 더 혼란스러워졌다.“아아악!”여러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들리더니 바로 피바다에 쓰러졌다.그들은 죽을 때까지 누가 자신을 죽였는지 몰랐다.옆 사람들도 모두 자신을 보호하느라 정신없어서 누가 죽었는지 신경도 쓰지 않았다.염구준 일행은 야간 투시경을 끼고 혼란스러운 틈을 타 홀에서 나왔다.계획은 차질 없이 순조롭게 진행되었다.백호는 어깨에 청년을 메고 도망쳤다.“CCTV를 피해서 객실로 돌아가자.”염구준이 지시를 내렸다.사람을 구한 것을 반드시 비밀로 해야 했다.아니면 저들이 쫓아오는 날에 일이 더 귀찮아질 것이다.“네.”백호는 혹시나 들통날까 봐 커다란 캐리어를 찾아 젊은이를 집어넣었다.객실에 돌아온 후, 염구준은 잠든 청년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이 녀석이 있으면 남극 빙원에서 길을 헤매고 다니지 않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