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러다 부성국 순찰함이 공격을 해왔죠.”은설아는 윤구주를 바라보며 물었다.“그런데 그 사건은 갑자기 왜 묻는 거예요?”윤구주는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확인할 게 있어서요.”“확인할 거요? 그게 뭔데요?”은설아는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물었다.“혹시 구주왕이라고 아세요?”구주왕.이 세글자가 들려오자 은설아는 몸을 흠칫하더니 눈을 동그랗게 뜨고 윤구주를 바라보았다.“갑자기 그건... 왜 물어보시는데요?”윤구주는 여전히 미소만 지은 채 별일 아니라는 표정을 지었다.“별건 아니고 그냥 궁금할 뿐이에요. 대답하고 싶지 않으면 못 들은 거로 해요.”은설아는 잠깐 침묵하더니 천천히 입을 열었다.“그분의 명성은 어릴 적부터 잘 알고 있었어요. 그리고 전 그분을 숭배하고 또 존경해요.”“그래요? 실제로 만난 적은 없는 거죠? 그런데 어떻게 존경하게 된 거예요?”“네, 실제로 만난 적은 없어요. 존경하게 된 계기는 그분이 저희 부모님을 구해주셨거든요. 우리 엄마 아빠뿐만 아니라 남경 연해의 모든 어민들과 백성들에게 그분은 구세주나 다름없어요. 그래서 남자로 태어나면 군에 입대해 화진을 지키는 삶을 살며 여자로 태어나면 구주왕에게 시집 가 은혜를 갚는다는 말도 있을 정도예요.”은설아의 진지한 말에 윤구주는 사레가 들려 기침을 해댔다.세상에, 이건 또 무슨 소리라는 말인가!“진짜예요. 저희 쪽 사람들은 그분께 정말 많이 감사하고 있어요. 물로 저도 그중 하나고요.”구주왕의 얘기를 하는 은설아의 눈은 반짝반짝 빛이 났다. 아마 마음속 깊이 존경심을 품고 있기에 가능한 모습일 것이다.“그리고 저는 그분 사진도 간직하고 있어요. 지금도 지니고 있고요. 혹시 보실래요?”자신은 진심이라는 것을 어필하듯 은설아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말했다.윤구주는 그녀의 말에 조금 놀란 듯 두 눈을 동그랗게 떴다.“구주왕의 사진을 가지고 있다고요?”“네!”“하지만 제가 알기론 그분은 사진 같은 거 안 찍는 거로 아는데요? 그런데 어떻게 사진이 있을 수 있죠?”
그녀의 말을 들은 윤구주는 조금 신기한 얼굴로 그녀를 바라보았다.고작 이 사진 하나 갖겠다고 그런 거액을 쓸 필요가 있었을까?은설아는 사진을 바라보며 감성에 젖은 얼굴로 말했다.“이 사진을 손에 넣고 난 뒤로는 항상 몸에 지니고 다녔어요.”윤구주는 씩 웃으며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녀는 지금 사진의 주인공을 바로 앞에 두고 사진 속 남자만 그리워하고 있다.게다가 얼굴이 나온 사진도 아니고 고작 뒷모습만으로도 이렇게나 애틋해 하고 있다.물론 그는 자신이 바로 구주왕이라는 사실을 밝힐 생각은 없다.윤구주는 고개를 들어 은설아를 가만히 바라보았다. 이렇게나 자신을 좋아하는 그녀를 보고 있자니 어쩐지 측은지심이 들었다.“그분의 얘기를 꺼내시는 건 혹시 은인님도 저처럼 그분을 존경하고 있기 때문인가요?”은설아는 예쁜 눈을 깜빡이며 물었다.이에 윤구주는 소리 내 웃었다.“뭐 그렇죠.”“역시 은인님처럼 좋은 분이라면 그분을 존경하실 줄 알았어요. 그리고 은인님도 그분 못지않은 히어로세요.”윤구주는 그 말에 또다시 하하 웃었다.“저기 은인님...”은설아가 뭐라 얘기하려는 그때 윤구주가 갑자기 그녀의 말을 끊었다.“은인님 말고 이름으로 불러주세요. 저는 윤구주예요.”“그럼 앞으로 구주 씨라고 부르면 될까요?”“네.”그는 얼굴이 환하게 밝아진 그녀를 보며 미소를 지었다.그때 은설아의 휴대폰 벨 소리가 요란하게 울렸다.발신자를 확인한 은설아의 얼굴이 금세 굳어버렸다.그녀에게 전화를 건 사람은 그녀가 속해있는 매니지먼트 회사 사장인 장철민이었다.“저 잠깐 전화 좀 받고 올게요.”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였다.은설아는 소파에서 일어나 옆에 있는 방으로 들어갔다.“네, 사장님.”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전화기 너머로 한 남자의 우렁찬 목소리가 들려왔다.“은설아, 너 미쳤어? 좀 뜨고 나더니 눈에 뵈는 게 없어진 거야? 어떻게 감히 천음 엔터와 척을 질 수 있어?! 게다가 사람까지 고용해서 탁시현 사장을 죽였다며?! 빌어먹을, 너 때문에 우
말을 마친 윤구주는 소파에서 몸을 일으켰다.“이만 가볼게요. 쉬세요.”그는 뒤돌아서 은설아의 방을 나갔다.은설아는 멀어져가는 그의 뒷모습을 보며 갑자기 심장이 두근거렸다.“저 뒷모습, 어디서 많이 봤는데... 그래 사진!”그녀는 자신의 손에 들린 오래된 사진을 바라보았다.윤구주의 뒷모습과 사진 속 남자의 뒷모습은 같은 사람이라고 해도 될 만큼 너무나도 닮아 있었다.“비슷해... 왜 비슷하지...?”은설아는 두 남자를 겹쳐보며 심장이 아까보다 더 거세게 뛰는 것이 느껴졌다.“설마 구주 씨가...”그녀는 혹시 하는 생각이 들었다가 이내 머리를 세차게 저었다.“아니야. 그럴 리가 없어. 그분은 이미 죽었잖아. 말도 안 되는 소리 하지 마, 은설아!”은설아는 숨을 한번 깊게 들이켜며 쓸데없는 생각을 지우려고 애썼다.“하지만 구주 씨도 나에게는 히어로잖아...”그녀는 윤구주의 뒷모습을 떠올리며 낮은 목소리로 중얼거렸다....누군가의 개인 별장.큰 부지를 차지하고 있는 해당 별장은 입이 떡 벌어질 정도로 무척이나 화려한 외관을 가졌다.별장 마당에는 개인 전용기가 세워져 있고 별장 주위에는 검은색 양복을 입은 경호원들이 질서정연하게 서 있다.그리고 별장 안 메인 거실에서는 누군가의 비명이 울려 퍼지고 있다.온몸이 피범벅이 된 남자 한 명이 바닥에 무릎 꿇은 채 누군가에게 빌고 있다.“회장님, 살려주세요!! 도련님의 죽음은 정말 저와는 무관한 일입니다. 은설아는 그저 저희 회사 소속 연예인일 뿐이고 그 여자가 밖에서 무슨 짓을 하고 다니는지 저는 정말 아무것도 몰라요!”남자는 겁에 질린 얼굴로 몸을 덜덜 떨며 맞은 편에 있는 남자를 향해 머리를 조아렸다.맞은 편에 앉은, 마치 호랑이 같은 아우라를 내뿜고 있는 남자는 바로 천음 엔터의 회장이자 탁시현의 아버지인 탁천수였다.그는 연예계를 자기 손안에 쥐고 입맛대로 휘두르는 그런 남자였다.그리고 그런 남자의 유일한 아들이 서남에게 죽임을 당했다.아들 바보라 불리는 그가 이에 분노하지
명재경의 가슴팍에는 아직 그때의 상처가 남아있었다.그는 탁천수에게 예의를 갖춰 허리를 숙였다.“내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 말해봐.”“도련님은 서남의 한 놈이 쓴 술법에 당한 겁니다.”“서남?”“네, 회장님.”명재경은 그날 미향각에서 있었던 일들을 하나도 빠짐없이 전부 다 보고했다.윤구주가 탁시현의 무릎을 꿇리게 한 것도 모자라 화염을 일으키는 술법으로 온몸을 불타오르게 해 탁시현이 재 한 줌도 남기지 않고 사라져버렸다는 것을 들은 탁천수는 바로 앞에 있는 테이블 위에 주먹을 내리꽂았다.그러자 견고해 보였던 테이블이 단번에 산산조각이 나버렸다.“그놈 정체가 뭐야?”명재경은 침을 한번 꼴깍 삼키고는 다시 입을 열었다.“그놈은 상당한 실력자이고 무예와 법술을 모두 익힌 대가의 경지에까지 오른 놈입니다. 저도 그놈의 상대가 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이런 상처까지 얻은 거고요.”탁천수는 명재경이 향문에서 온 법사라는 것과 탁시현이 거금을 들여 데려온 사람이라는 것을 잘 알고 있다.그런 그의 입에서 이런 말이 나오니 심기가 뒤틀려버렸다.“그래서 내 아들이 죽은 게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그런 뜻인가?”“아니요. 절대 그렇지 않습니다. 제 말은 그놈을 처리하려면 저보다 더 강한 제 사부님 정도의 고수가 와야 한다는 것입니다. 그러니 부디 제가 지금 당장 향문으로 떠날 수 있게 허락해 주십시오. 제가 바로 저희 사부님을 모셔오겠습니다. 사부님이라면 그놈 따위 한 방에 처리할 수 있을 겁니다.”명재경의 다급한 말에 탁천수는 분노를 조금 가라앉히고 말했다.“그래. 향문에 다녀오는 것을 허락하지. 그리고 나는 나대로 그놈을 처리하겠다. 이 탁천수가 처리하지 못하는 놈은 없어.”탁천수는 뒤에 있는 경호원을 향해 말했다.“지금 당장 다크 사이트에 수배령을 내려. 내 아들을 죽인 그놈과 은설아라는 계집을 잡아 오면 현상금으로 2천억 달러를 주겠다고 해.”2천억 달러!난생처음 들어보는 듯한 숫자에 자리에 있는 모두가 입을 다물지 못했다. 명재경조차
2m가 족히 넘는 듯한 거대한 몸뚱어리를 지닌 이 남자는 소리가 들리는 곳으로 고개를 쳐들었다. 그러자 신비롭고도 영롱한 파란색 눈동자가 드러났다.몇 분 후, 시끄럽게 울리던 헬기가 착륙을 마치고 전신무장한 4명의 외국인 용병들이 밖으로 나왔다.그들은 영어로 인사를 건넸다.“쿠카, 오랜만이야.”쿠카는 그들을 보더니 피식 웃었다.“오스틴, 내가 여기 있는 건 어떻게 알았어?”“정보국 사람들을 매수했어. 몇 초도 안 돼서 바로 네 위치를 술술 불던데?”이에 쿠카는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그렇게까지 해서 나를 찾은 목적은?”“너한테 딱 맞는 일이 있는데, 들어볼래?”오스틴이 고개를 까딱하며 그를 향해 물었다.“뭔데?”“직접 봐.”오스틴은 옆에 있는 용병이 들고 있는 가방에서 태블릿을 꺼내 쿠카에게 던졌다.쿠카는 그걸 가볍게 받아 들고는 이미 켜진 상태의 화면을 바라보았다. 그건 다크 사이트 수배 페이지였고 제일 위에 있는 의뢰의 현상금 액수 항에는 2천억 달러가 적혀 있었다.액수를 확인한 쿠카는 두 눈을 반짝이며 잔뜩 격앙된 목소리로 외쳤다.“2천억 달러라고?! 오스틴, 이 의뢰 어디서 온 거야?”한껏 흥분한 그를 보며 오스틴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화진.”“쉣, 왜 하필 화진인 건데?”화진이라는 말에 쿠카가 단번에 미간을 찌푸렸다.“왜, 파멸자라고 불리는 너라도 화진으로 가는 건 겁이 나나 보지?”“당연한 거 아니야? 화진은 용병들의 무덤이라고도 불리는 곳이라고. 그런데 어떻게 안 무서울 수 있겠어?”쿠카는 잠깐 머뭇거리는 듯하더니 갑자기 흥미로운 표정을 지으며 사악하게 웃었다.“하지만 이런 액수라면 리스크를 감당할 만하겠어.”“그 말은 의뢰를 받겠다는 소리야?”“그래.”쿠카의 확답에 용병들은 미소를 지었다.“좋아. 그러면 우리 다섯이서 한번 잘 해보자고. 일이 끝나면 한 사람당 4백억 달러씩 가져가는 거로, 오케이?”쿠카는 웃으며 그들 곁으로 다가왔다.“응, 그래.”하지만 말을 마치자마자 그의 눈빛이 갑자
유라비아, 라티본.이곳은 매년 수많은 남성 여행객들이 모여드는 일명 ‘남자들의 천국’이라고 불리는 곳이다.많은 여행 스팟이 있지만 그중에서도 여행객들의 발걸음이 가장 많이 향하는 곳은 단연 스트립 클럽이었다.후미진 골목을 지나 보이는 어느 한 스트립 클럽, 별 볼 일 없는 외관과는 달리 안으로 들어가면 네온사인이 화려하게 반짝거리는 무대 위에 섹시한 몸매의 여성들이 폴을 집은 채 스트립쇼를 선보이고 있다.세계 각지에서 모여든 여행객들은 무대 바로 앞 테이블에 모여들어 위스키를 마시며 쇼를 즐기고 있고 그중에서는 여성들의 손에 현금다발을 쥐여주는 사람들도 있다.클럽 제일 중앙, 사람들의 이목을 가장 많이 받는 곳에 한 갈색 머리의 여성이 있는데 이 여성이 움직이는 순간 클럽이 떠나갈 듯한 함성이 들려왔다.그녀의 아름다운 몸매와 외모도 물론 한몫했지만 그보다 더 열광하는 건 그녀의 손에 감겨있는 검은색의 독사였다.이 독사는 그 유명한 살모사였다.살모사는 그녀의 움직임에 따라 부드럽게 피부를 미끄러지며 독을 뿜어냈다.사람들의 열렬한 환호 속에서 여성은 육감적인 몸매와 야릇한 춤을 과감하게 선보이고 있다.그때, 띠띠띠 하는 소리가 그녀가 차고 있던 시계에서 흘러나왔다.그 소리를 들은 여자는 움직임을 멈추고 팔을 치켜든 채 시계를 보았다. 그녀가 차고 있는 건 단순 시계가 아니라 마이크로컴퓨터였다.다크 사이트의 메인 화면을 클릭하자 거기에는 2천억 달러라는 상금이 달린 의뢰가 있었다.그걸 본 여자는 빨갛게 칠한 입술을 위로 말아 올리더니 미련 없이 무대에서 내려와 클럽 출구 쪽으로 걸어갔다.손님들은 갑자기 자리를 떠버리는 그녀를 향해 야유와 욕을 퍼부었다. 하지만 그런 것 따위 아무래도 좋다는 듯 여자는 가벼운 발걸음으로 걸어갔다.“2천억 달러라, 좋네, 좋아.”여자는 다시 한번 금액을 확인하고는 자신의 가방을 들고 밖으로 나와버렸다.그녀가 밖으로 나가자 뱃살이 출렁거리는 3명의 취객이 앞을 막아섰다.“이봐 세실, 이대로 가면 어떡해?”
말을 마친 뒤 그녀는 다시 한번 입을 열었고 초록색 독이 두 남자의 목에 각기 흩뿌려졌다.“으아악!!”달빛 아래, 남자 두 명의 머리는 서서히 사라져갔고 이윽고 세 명 모두 백골 사체가 된 채로 바닥에 굴러다녔다.살모사 아리나, 그녀는 다크 사이트 세계 랭킹 3위 킬러다.남자들을 처리한 여자는 기다란 머리를 뒤로 넘겼다. 그러자 분명히 갈색이었던 머리가 단숨에 금색으로 변해버렸다.마치 탈피라도 한 듯 눈부신 금색 머리카락이 바람에 휘날렸다.아리나는 가방을 들고 다시 걸어가려다 뭔가 생각난 듯 다시 자리에 멈춰 섰다.“나 좀 봐, 가격에 눈이 멀어서 어디서 온 의뢰인지 체크를 안 했네?”그녀는 손목에 있는 마이크로컴퓨터를 켜고 다크 사이크를 열었다.스크롤을 내려 의뢰가 화진이라는 것을 본 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왜 하필 화진이야?”그녀는 쿠카처럼 잠시 고민하는가 싶더니 곧바로 예쁘게 웃었다.“오랜만에 스릴 좀 즐겨볼까? 화진은 남자들이 너무 매력적이란 말이야.”아리나는 엉덩이를 씰룩거리며 골목의 그림자 속으로 걸어 들어갔다....부성국의 어느 한 울창한 숲속에 자리 잡은 신사.이 신사의 이름은 ‘기타가와 신사’로 이곳에 지어진 지 어언 수천 년이 되어간다. 소문으로는 이곳이 바로 부성국에 지어진 첫 번째 신사라고 한다.기타가와 신사가 유명해진 데는 그들만의 독창적인 [기타가와 참격] 이라는 도법이 있었기 때문이다.고요한 신사 내부.사람을 찢어 바를 듯한 날카로운 이빨이 돋보이는 오니 가면을 쓴 남자가 아무런 움직임도 없이 무릎을 꿇고 앉아 있다.그의 허리춤에는 3자루의 카타나가 있는데 매자루마다 피를 잔뜩 머금은 듯한 시퍼런 기운을 내뿜고 있다.얼마나 지났을까, 드디어 신사 제일 안쪽의 문이 열리고 세 명의 노인이 걸어 나왔다. 그들 모두 부성국 특유의 옷을 입고 있었고 가슴팍에는 그들이 이곳에서 제일 지위가 높은 사람이라는 것을 드러내는 문양이 박혀있었다.세 노인 중 한 명이 오니 가면의 사무라이를 보며 말했다.“돌아
“그렇군요.”무사시는 그 이상 묻지 않았다.“2천억 달러라는 거금도 물론 큰 유혹이지만 기타가와 님은 네가 화진으로 가 활약하고 오기를 바라신다. 무사시 너도 알다시피 10개국의 전쟁 이후 우리 부성국은 줄곧 화진의 눈치를 봐왔다. 연해 분계선 쪽의 순찰함도 이제는 화진의 허락을 받는 것이 당연하게 되어버렸지. 그러니 이번 의뢰로 상금을 가져오는 것은 물론이고 동시에 화진 것들에게 우리 부성국을 만만하게 보면 안 된다는 인상을 단단히 심어주고 와라.”노인의 진지한 말에 무사시는 근엄하게 고개를 숙였다.“뜻을 받들어 이번 의뢰 무사히 마치고 돌아오겠습니다.”말을 마친 무사시는 천천히 몸을 일으켜 세 명의 노인에게 다시 한번 인사를 건넨 뒤 조용하고 은밀하게 사라져버렸다.그가 떠난 걸 확인한 후 오른쪽 노인이 말했다.“이번 의뢰 말일세. 듣기로는 세계적인 킬러들이 다 노린다고 하던데.”“그래, 그 금액을 보고 가만히 있을 놈들이 아니니까.”“자네들은 어떻게 보는가. 다른 나라 놈들이 무사시를 방해하지는 않겠지?”오른쪽에 있던 노인이 걱정 어린 말투로 물었다.“방해한다고 한들 또 어떤가. 무사시를 믿게나. 그 애는 기타가와 님이 인정한 유일한 제자로 기타가와 참격을 완벽히 전수 받았어.”“그래. 그리고 무사시는 다크 사이트 랭킹 1위 킬러이지 않나. 걱정은 넣어두시게.”왼쪽 노인의 말에 세 노인은 수염을 쓸어내리며 허허 웃었다....화진, 서남, 백화궁.윤구주는 지난번 은설아와의 대화로 그녀가 자신을 존경하고 숭배한다는 걸 확실히 알게 되었다. 게다가 그녀는 단순 존경심에서 그치지 않았고 자신을 열렬히 애정하고 있었다.은설아는 아마 꿈에도 생각 못 할 것이다. 줄곧 그리워하고 좋아하던 구주왕이 바로 그녀 근처에 있다는 것을 말이다.물론 윤구주는 이 사실을 그녀에게 털어놓을 생각이 없다.평화로운 오전.윤구주이 소채은과 함께 시간을 보내고 있는 그때, 정태웅이 갑자기 쳐들어왔다.“저하, 급히 보고드릴 일이 있습니다!”윤구주는 이에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