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 안에서 소천홍은 이리저리 서성이며 소청하 부부를 초조하게 기다렸다.“아버지, 걱정하지 마세요. 그 계집애는 반드시 돌아올 거예요.”소진이 한쪽에서 말하자 소천홍은 흥 콧방귀를 뀌고는, 옆에 있던 담배를 집어 힘껏 두 모금 빨았다.“정말 이상하단 말이야! DH그룹에서 우리 SK를 인수하려 하는데 왜 꼭 그 계집애가 사인해야 하지? 난 정말 이해할 수가 없어!”“솔직히 저도 답답하고 의아하긴 합니다. 도리대로라면 그 계집애는 주세호 같은 대갑부는 물론 남자친구라던 주 회장 수양아들도 만날 수 없을 텐데 말이죠.”“그러게 말이다. 근데 왜 무려 두 번이나 그년 때문에 DH그룹에서 찾아온 거지?”그러자 소진이 턱을 어루만지며 말했다.“아버지, 혹시 그 주세호가 채은이한테 눈독을 들인 건 아닐까요?”“뭐? 주 회장이?”소천홍은 순간 얼어버리고 말았다.“그래요! 제가 듣기로 돈 많은 거물들이 가장 좋아하는 게 아름답고 청순한 어린 아가씨를 사냥하는 거래요. 특히 그 계집애처럼 멍청하고 귀여운 스타일 말이에요, 심지어 걔는 어리잖아요!”소진이 이렇게 말하자, 소천홍의 눈빛이 번뜩 밝아졌다.“네 말도 일리가 있는 것 같구나!”“아마 그럴 겁니다! 비록 그 계집애 성격은 별로지만, 몸매랑 외모로 봤을 때 확실히 견줄 사람이 없거든요. 그래서 제 추측은 주 회장님이 채은이한테 눈독을 들였다는 겁니다.”“주세호가 그 계집애에게 눈독을 들이고 있든 없든 상관없다. 이번에 우리 SK를 순조롭게 인수할 수만 있다면 나는 그걸로 만족해!”“맞는 말이에요.”...한 시간 후. 소청하는 소채은을 데리고 저택에 돌아왔다.그녀는 자신의 미니 승용차를 몰고 소씨 저택 주차장에 주차하고 나서는 곁에 있는 윤구주를 향해 말했다.“구주야, 이번에는 무서워할 필요가 없어! 내가 있으면 아무도 감히 너를 건드리지 못할 테니까.”그러자 윤구주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알겠어, 이제 내리자.”곧이어 두 사람은 마스티프 까망이를 끌고 차에서 내렸다.소채은이 윤구주를
소천홍이 연락하자 아니나 다를까 DH그룹 사람들은 그날 오후에 다시 소씨 저택으로 왔다.온 사람들은 여전히 표태훈과 재무 총책임자, 그리고 8명의 경호원이었다.멀리서 그들을 본 소천홍은 서둘러 모든 가족들을 데리고 마중 나갔다.소채은도 그 뒤를 따랐다.표태훈은 그녀를 보자 얼굴에 미소를 띠며 말했다.“채은 양, 우리 또 만났네요!”소채은도 인상 좋은 그에게 웃으며 답했다.“어르신, 안녕하세요!”이윽고 옆에 있던 소천홍이 서둘러 말을 이었다.“표 집사님, 채은이가 돌아왔으니 이제 그전에 얘기했던 인수 협의에 사인할 수 있을까요?”표태훈도리어 고개를 끄덕였다.“그럼요!”말을 마치고 나서, 그는 뒤에 있는 DH 그룹의 재무 총책임자를 향해 손을 흔들었다.그러자 그는 준비된 인수 서류를 들고 소채은의 앞으로 다가왔다.그러고는 펜 한 자루를 쥐여주며 이렇게 말했다.“채은 양, 채은 양이 여기에 사인하기만 하면 우리의 인수 협의는 즉시 효력이 발생합니다!”소채은은 펜을 받아 인수 협의서를 보기 시작했다.“채은아, 어서 사인해!”소천홍은 한쪽에서 재촉했고, 소진의 눈빛도 이글이글 불타올랐다.뒤에 있는 소청하 부부 모두 눈이 빠지도록 소채은을 바라보고 있었다.SK제약이 200억의 높은 가격에 인수될 거라고는 그들도 정말 생각지 못했다!게다가 현재 소채은이 살짝 손가락을 움직이기만 하면, 파산 직전의 SK제약을 서둘러 팔아치울 수 있을 뿐만 아니라, 심지어는 큰돈을 벌 수도 있다!그래서 모두들 그녀의 사인을 손꼽아 기다렸다.하지만 소채은은 펜을 들고 먼저 사인하지 않았고, 도리어 아름다운 얼굴을 들어 표태훈을 바라보았다.“어르신, 사인하기 전에 질문 하나 해도 될까요?”그러자 표태훈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물론이죠, 무엇이든 물어보세요!”“저는 어르신네 DH그룹 회장님을 알지 못하는데, 왜 그분은 저한테 이렇게 잘해주시는 거죠?”소채은은 마음속에 존재하던 의문을 가볍게 물었다.그러자 표태훈은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도무지 떠
“네? 또 있다고요?”소채은은 발걸음을 멈칫했다.곁에 있던 가족들도 모두 긴장하기 시작했다.DH그룹이 이 인수 건을 번복할까 봐서 말이다.곧이어 안경을 쓴 재무 총책임자가 미소를 지으며 말을 꺼냈다.“이 계약은 채은 양이 SK제약을 인수한다는 계약입니다!”이 말이 나오자 온 장내가 어리둥절해졌다.소천홍 부자도, 소청하 부부도 모두 DH그룹 재무 총책임자의 말을 듣고 멍하니 서 있었다.심지어 소채은 본인조차 이해가 되지 않아 물었다.“네?... 방금 뭐라고 말씀하셨어요?”“채은 양이 SK제약을 인수하시라고요!”“제... 제가요?”놀란 소채은이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그러나 DH그룹의 재무 총책임자는 그저 미소를 지을 뿐이었다.“네! 회장님께서 말씀하시길 SK제약을 매수한 이유는 전적으로 채은 양 때문이라고 합니다! 그러니 당연히 SK제약은 채은 양이 관리해야죠!”이 말이 나오자, 소천홍 부자는 물론 소청하 부부도 소리를 지르고 말았다!‘이게 무슨 상황이야? DH그룹이 기껏 인수한 SK제약을 소채은한테 양도한다고?’소채은이 아무리 어리석다 해도, 이렇게까지 말한 이상 그녀 역시 DH그룹의 뜻을 알아차렸을 것이다.그녀는 눈을 부릅뜨고 다시 물었다.“에이, 농담하지 마세요! DH그룹이 SK제약을 인수하고는 지금 저한테 주신다고요?”“맞아요, 채은 양 말 그대로입니다!”재무 총책임자가 빙긋 미소를 지었다.쿵! 소채은은 머리가 곧 터질 것만 같았고, 눈을 휘둥그레 뜨며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채은 양, 이것은 지분 법인 인증서입니다. 채은 양이 이 위에 사인만 하면, 지금부터 SK제약은 채은 양의 것이 됩니다!”재무 총책임자는 다시 한 장의 계약서를 꺼내어 그녀에게 건넸다!하지만 그 계약서를 바라보며 소채은은 얼른 손사래를 쳤다.“아뇨, 아뇨! 이 계약서에 저는 사인할 수 없습니다!”“왜죠?”“왜냐하면, 저는 그쪽 주 회장님에 대해 모르니까요...”이때, 표태훈이 입을 열었다.“지금 몰라도 괜찮습니다,
“채은아, 뭐 해? 얼른 사인하지 않고. 빨리 DH그룹에게 고맙다고 해야지!”소청하는 쿵쾅거리는 심장을 애써 달래며 소채은에게 말했다.천희수도 소채은을 재촉하였다.“채은아! 사인해 얼른. 사인!”소천홍 부자는 질투심에 배가 아플 지경이었다.DH그룹이 이런 생각지도 못한 행동을 할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다.하지만 소채은은 사인하지 않고 멍하니 손에 들고 펜을 들고 주식 법인 양도서만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이 모든 게 다 진짜일까!’‘왜 꿈을 꾸는 것 같지!’어리둥절해진 소채은은 어떻게 이 일을 처리해야 할지 망설이고 있었다.소채은이 펜을 들고 사인을 하지 않자 소청하와 천희수는 조급한 마음을 숨길 방법이 없었다.소채은이 얼른 사인을 마치고 SK제약을 다시 소씨 가문 손에 넣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그리고 앞으로 DH그룹의 전폭적인 지지도 받을 수 있으니 말이다!누구라도 얼른 사인을 하고 싶은 유혹적인 제안들이었다.모든 사람들이 소채은이 사인하기를 기다리고 있는 와중에 소채은은 저도 모르게 윤구주를 바라보며 도움의 눈길을 청했다.“구주야...”소채은도 왜 이 순간 윤구주가 생각나는지 모른다.이름을 불린 윤구주는 소채은 쪽으로 걸어왔다.“구주야. 이 사인을 어떻게 해야 돼?”소채은이 묻자 소청하와 천희수는 덜컥 화를 냈다.“바보야, 네가 사인하는 건데 왜 쟤한테 물어봐? 쟤는 그냥 외부인인데.”소청하가 이렇게 말하자 천희수도 한마디 덧 붙였다.“그래 채은아. 쟤가 뭔데? 물어볼게 뭐 있다고?”하지만 소채은은 부모님의 충고를 귓등으로 듣고 여전히 맑은 눈으로 윤구주를 바라봤다.이유는 정확히 모르겠지만 소채은은 윤구주의 말을 더 믿고 싶었다.윤구주가 부드러운 시선으로 소채은을 바라보면서 말했다.“사인해!”윤구주의 말을 듣자 소채은은 끝내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았어. 네 말대로 사인할게!”그리고 소채은은 펜을 들어 빠른 속도로 자기 이름을 사인했다!사인을 마친 후 표태훈이 말했다.“자, 그러면 지금부터
이번 일로 인해 SK제약은 많은 돈을 벌었지만 앞으로 1000억이라는 투자액을 받을 생각과 DH그룹 와의 장기간 협업을 생각하면 이 정도는 소꿉놀이 같았다.하지만 그들이 질투한다고 해도 아무 소용이 없다.SK제약은 지금 소채은의 이름으로 되어있기 때문이다.“둘째, 축하해!”“네 딸이 DH그룹 대표랑 이런 사이인 줄도 몰랐어!”소천홍은 겉으로 축하하는 척했지만 속으로는 이를 갈고 있었다.소청하도 자기 형님의 성격을 알고 있었기에 너무 기뻐하는 티를 내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축하는 무슨. 그저 앞으로 우리 소씨 가문이 다시 일어서기를 기대하는 바입니다!”그리고 소청하는 소천홍을 더 대꾸하지 않고 천희수에게 물었다.“여보, 우리 채은이는?”“채은이랑 걔는 아직도 방에 있어요!”천희수가 귀띔했다.“참! 눈치도 없네. 멍청하게 아직도 쟤랑 같이 놀고 있으면 어떡해? 제정신이야!”“여보, 우리 채은이 찾으러 가자!” ...세련된 인테리어의 거실.소씨 가문 사람들이 모두 경축하고 있을 때 소채은은 혼자 시무룩해 있었다.소채은은 지금 방 안에서 걱정이 가득한 얼굴로 아름다운 턱을 괴고 맑은 눈으로 앞을 바라면서 멍을 때리고 있다.그녀의 옆에는 윤구주와 까망이도 있었다.그렇게 한참을 멍 때리다가 소채은은 “아이고”하면서 한숨을 쉬였다.윤구주는 그런 소채은을 보면서 물었다.“기분이 안 좋아?”“DH그룹 주세호가 갑자기 나한테 이렇게 잘해주고 심지어 SK제약까지 내 이름으로 넘겨주면서 나를 부자로 만들어줬는데, 내가 기쁠 수 있겠어?”소채은이 이렇게 말하자 윤구주는 이해가 안 된다는 식으로 물었다.“그러니깐 이건 좋은 일이잖아.”“좋은 일 맞긴 하지만 나한테는 아니야!”“왜?”윤주구가 물었다.“한번 생각해 봐. 세상에 공짜는 없어. 강성 제일 갑부가 아무 이유도 없이 나한테 이렇게 큰 선물을 주는 게 수상해도 너무 수상하지 않아?”윤구주는 지나치게 의심을 하는 소채은을 달래면서 말했다.“네가 생각을 너무 많이 하는 건 아니
서재에 들어서자 소청하는 방문을 잠갔다.“채은아, 자 여기 앉아. 아빠랑 얘기 좀 하자.”소청하는 다정스럽게 소채은의 손을 잡고 말했다.소채은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소청하 곁에 앉았다.“채은아, 아빠랑 제대로 말해봐. 강성 제일 갑부인 주세호랑은 어떻게 아는 사이야?”소청하는 의자를 소채은 쪽으로 당기면서 물었다.“저는 주세호랑 만난 적도 없어요!”소채은은 솔직하게 대답했다.“주세호를 모른다고? 그럴 수가! 채은아, 아빠를 속이지 말고 말해. 아빠는 네가 어떻게 DH그룹이랑 인사를 주고받는 사이인지 궁금해서 그래.”소청하는 소채은의 대답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아빠, 저는 진짜 DH그룹에 대해서 일도 모르고 주세호랑도 모르는 사이예요!”“진짜?”“진짜!”소청하는 무척 당황했다.“모르는 사이인데 왜 DH그룹에서 너한테 이렇게 잘해주지? SK제약을 네 이름으로 넘겨주기까지 하다니. 네가 뭘 잘 모르는 것 같은데 이건 무려 몇백억 값어치가 되는 기업이야!”소채은은 머리를 저으면서 말했다.“사실 저도 어리둥절해요!”소청하는 소채은이 거짓말을 하는 것 같지 않으니 더 말문이 막혔다.높은 가격으로 SK제약을 인수하고 또 그걸 다시 소채은에게 넘겨준다!DH그룹은 돈이 넘쳐나서 미친 짓을 하는 게 아닌지 싶었다.곰곰이 생각을 하다가 소청하는 입을 열었다.“어찌 되었든 우리 소씨 가문은 다시 살아난 것과 마찬가지야! 이건 다 채은이 네 덕분이야!”“앞으로 네가 바로 SK그룹 대표야!”“네 큰 아버지도 함부로 너한테 뭐라고 못할 거야!”소청하는 웃으면서 말했다.이 말을 듣자 소채은은 안도의 한숨을 쉬면서 말했다.“아빠, SK제약도 이젠 제 이름으로 되었는데. 그럼 조성훈과의 약혼은 없던 일도 하시는 거죠?”“그럼, 그럼!”“강성 제일 갑부인 DH그룹이랑 협업하는 사이인데 고작 중해그룹 따위가 이젠 우리 눈에 들어오겠어?”“채은아, 걱정하지 마! 약혼을 취소하는 일은 아빠한테 맡겨!”소청하는 가슴에 손을 얹고 맹세하였다.이
하지만 소채은은 고집을 꺾지 않았다.“아빠! 제가 한 번만 더 말할게요. 제가 누굴 좋아하던 사랑하던 제발 간섭하지들 하지 마세요! 만약에 예전처럼 저를 대할 거면 아빠한테는 미안하지만 지금 당장이라도 구주를 데리고 떠날 거예요!”소채은이 화를 낼까 봐 두려웠던 소청하는 얼른 달래기 시작했다.“채은아, 화 좀 내지 마! 아빠도 널 위해 하는 말이잖아!”소채은이 기분이 풀린 것 같지 않자 소청하는 계속 말했다.“알았어! 알았으니깐. 네가 걔를 챙기든 말든 아빠는 너를 다 이해하고 응원할게! 하지만 쟤가 진짜 누군지 알기 전까지는 둘의 사이가 더 가까워지는 건 아빠가 허락 못해! 알겠지?”“네!”“그래!”이렇게 윤구주에 대해서 두 사람은 잠시 합의를 봤다.“채은아, 이젠 네가 SK제약을 책임질 테니깐 내일 나랑 같이 회사 좀 다녀오자!”“우리 직원들을 달래기도 할 겸!”소청하의 말을 듣고 소채은은 머리를 끄덕이면서 말했다.“네!” ...이날밤, 윤구주는 소씨 저택에 머물렀다.소채은은 자기 안방이랑 가까운 방으로 윤구주와 까망이를 배치했다.“구주야, 편하게 잘 자! 내가 옆방에 있으니깐 무슨 일이 있으면 나를 부르면 돼 걱정하지 마!”소채은은 아름다운 눈을 깜빡이면서 윤구주에게 말하고는 방으로 들어갔다.윤구주는 인사를 하면서 팔을 들었더니 방문이 쾅하면서 자동으로 닫혔다.조용한 방안에는 윤구주와 까망이만 있다.윤구주는 창가 쪽으로 걸어가 밖의 야경을 바라보면서 중얼거렸다.“채은의 일은 이젠 거의 마무리가 됐군. 나도 빨리 내 몸을 회복해야겠어.”이렇게 말하고 윤구주는 양반다리를 하고 땅에 앉았다.10개국 간의 전쟁.윤구주는 비록 강자에게 포위되었지만 제일 치명적인 상처는 바로 체내에 있는 기린화독였다.윤구주가 윗옷을 벗더니 가슴 쪽에 빨간색 상처가 눈에 띄였다. 그 상처는 꽤나 깊었고 곧 분출하려는 화산의 자주색 암장과도 같았다. 스며든 독은 거미줄을 친 듯 마냥 몸속 곳곳으로 범위를 넓혀갔다.상처를 바라보는 윤구주의
다음날.소채은은 깨여난 후 방 안의 온도가 너무 춥다며 혼잣말을 했다.“헐. 지금 10월인데 왜 이렇게 춥지?”소채은은 목을 움츠리고 겨우 침대에서 일어났다.집 밖의 날씨는 화창하지만 소채은방의 창가에는 얇은 서리가 내렸다.“날씨가 이상해도 너무 이상해!”소채은은 중얼거리였지만 크게 신경을 쓰지 않았다.그리고 윤구주의 방문 앞에서 와서 똑똑똑 문을 두드렸다. 인기척이 들리지 않자 소채은은 웃으면서 말했다.“기억상실증 윤구주씨, 꿀잠을 자고 있네.”윤구주를 깨우지 않고 소채은은 돌아가서 세수하고 옷을 갈아입었다.소채은 부모님과 소청홍부자는 일찍부터 나와 거실에서 소채은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녀가 걸어오자 소청하가 달려가면서 말했다.“채은아. 드디어 깨어났네! 우리 모두 너를 기다리고 있었어!”“다들 이렇게 빨리 일어나서 왜 저를 기다리는 거죠?”소채은이 물었다.“바보야. 까먹었어? 오늘은 네가 SK제약 대표로 출근하는 첫날이잖아. 그래서 우리가 너를 데리고 회사구경이나 시켜주려고.”“아~”“시간도 다 됐는데 우리 얼른 출발할까?”소청하가 물었다.소채은은 윤구주랑 같이 떠나고 싶었지만 윤구주가 아직도 깨어나지 않은 것 같아서 그냥 소청하와 같이 가기로 했다.“네!”“우리 조카 채은아!”소천홍이 갑자기 입을 열었다.나쁜 마음을 품은 게 뻔한 소천홍을 바라보면서 소채은의 얼굴색은 어두워졌다.“채은아! 이젠 SK그룹이 네 이름으로 되었지만 네가 회사경영에 대해서는 아무것도 모르잖아. 너를 위해서 오늘 우리 아들 소진이가 너랑 같이 회사에 다녀올까 하는데. 그리고 네가 회사를 경영하기 귀찮다면 큰 아버지한테 계속 맡겨도 돼!”이 말을 듣자 소채은은 콧방기를 뀌였다.소진웅이 건강할 때 소청하에게 SK그룹을 맡기려고 했지만 할아버지가 아프기 시작하면서 소천홍은 소청하의 자리를 비겁하게 빼앗아 갔다.그런데 지금 소천홍이 이렇게 말하자 소채은은 어이가 없는 듯 대답했다.“SK그룹일은 제가 알아서 할게요. 큰 아버지는 쉬고 있으세요
말을 마친 천희수가 서둘러 휴대폰을 꺼내 소채은에게 전화했지만, 소채은의 휴대폰은 꺼져있었다.“얘가 왜 휴대폰은 끈 거야?”몇 번 전화를 더 해봐도 휴대폰은 여전히 꺼져있었다.천희수가 답답해하자, 그녀 옆에 있던 소청하가 상황 수습에 나섰다.“구주야, 걱정하지 마. 채은이 네가 너무 그리워서 산책하러 나갔나 보다. 아마 곧 돌아올 거야.”소채은이 보이지 않는 것을 본 윤구주는 조금 서운했지만 내색하지는 않았다.…강성의 스카이가든, 이곳은 소채은이 소씨 가문에서 쫓겨 난 후 소채은과 윤구주가 함께 살았던 곳이었다.소채은과 그녀의 곁에 고분고분하게 누워있는 까망이가 지금 이곳에 있었다.윤구주가 혼자서 설국을 상대로 싸워 설국 전체를 화진의 속국으로 만들었다는 소식을 박창용한테서 들은 후부터 그녀는 기쁘기도 했지만, 한편으로는 약간 쓸쓸하기도 했다.기뻤던 것은 자신이 좋아하는 남자가 이 세상의 위대한 영웅이라는 사실이었고, 쓸쓸했던 것은 자신이 윤구주와 어울리지 않는다는 사실이었다.우두커니 소파에 앉아 있던 그녀는 하얀 다리를 껴안은 채 옆에 있던 까망이에게 물었다.“까망아, 그가 이제는 돌아오지 않겠지? 하긴 나같이 평범한 사람이 천하를 뒤흔든 구주왕의 배필로 전혀 어울리지 않긴 해. 사실, 나도 그가 평범한 사람이었으면 좋겠어. 그러면 평생 그와 함께 할 수 있을 텐데…”말하다 말고 눈물이 왈칵 쏟아졌다.소채은은 다른 여자들과 달리 부귀영화를 좋아하지 않았다.순수한 마음을 가진 그녀의 바람은 단지 자신이 사랑하는 남자와 오손도손 함께 살아가는 것이었다.그러나 윤구주가 평범한 사람이 아닌지라 당연히 그녀의 바람대로 흘러가지 않았다.그녀가 혼자서 흐느끼며 울고 있을 때 갑자기 ‘똑똑’하는 노크 소리가 들려왔다.소채은은 어리둥절했다.그녀의 옆에 있던 까망이도 극도로 흥분하여 문을 향해 멍멍 짖었다.“누구세요?”소채은은 조심스럽게 물었다.이 스카이가든은 그녀만의 사적인 공간이어서 부모를 제외하고는 아는 사람이 거의 없었다.그런
고함과 함께 살기 가득한 눈빛을 한 백경재는 즉시 공격 태세를 갖췄다.“백 선생, 날 죽이려고?”익숙한 목소리가 백경재의 귓가에 들려옴과 동시에 윤구주의 모습이 그의 눈앞에 나타났다.“이 늙은이가 꿈꾸고 있는 건가? 저하?”갑자기 나타난 예구주를 보더니 백경재는 눈이 휘둥그레진 채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윤구주가 미소를 지으며 백경재에게 다가갔다.“뭐야? 고작 반년 못 봤는데 날 잊은 거야?”“제가 어찌 저하를 잊을 수 있겠습니까!”백경재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저하가 정말로 강성으로 돌아왔다고요?”백경재는 여전히 자신의 두 눈을 의심했다.“당연하지. 나 윤구주 맞아.”윤구주가 싱긋 웃자, 백경재는 자기 얼굴을 꼬집었다.통증이 느껴지고서야 그는 비로소 꿈이 아니라는 것을 알아챘다.“맙소사! 저하가 돌아오다니! 저하가 정말로 돌아왔네요!”용인 빌리지의 내부를 향해 백경재는 흥분한 목소리로 소리쳤다.“주 회장님, 채은 씨, 규비 여신님, 어서 나와들 보세요. 저하가 돌아왔어요!”백경재의 말에 서둘러 뛰쳐나온 주세호, 연규비, 소청하 부부, 그리고 박창용은 북받쳐 오르는 감정을 참지 못했다.“저하!”“내 사위가 정말로 돌아왔다고?”“저하가 돌아왔어!”익숙한 사람들을 바라보던 윤구주의 얼굴에는 행복한 미소가 번졌다.“그래. 나야. 이 윤구주가 왔어.”윤구주가 이렇게 갑자기 올 줄을 전혀 예상하지 못한 이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우리 사위가 드디어 돌아왔네. 보고 싶어 미치는 줄 알았어.”윤구주를 보자마자 소청하는 감격의 눈물을 쏟아냈다.“네가 너무 보고 싶었어.”천희수도 눈시울이 붉어졌다.물론 다른 사람들도 기뻐서 어쩔 줄 몰랐다.“잠깐, 천후 맞지? 수천도 있네. 너희들이 왜 저하 옆에 있어?”윤구주 뒤에 박천후와 염수천이 있는 것을 박창용은 발견했다.“하하하! 당연히 저하와 함께 창용 씨를 뵈러 왔죠. 그나저나 너무 한 거 아니에요? 저하의 소식을 가장 먼저 알았으면서도 왜 우리에게 알리지 않았어요?”박
박창용이 말했다.“저도 잘 몰라요. 북방군과 황성 금위군이 흑여산맥에서 철수했다는 사실 외에 저하에 대해서 저도 아는 것이 없어요. 지금까지 감가 무소식이에요.”대청마루에 있던 모든 사람의 얼굴에 실망이 가득했다.모두 윤구주를 만나고 싶었지만, 박창용처럼 높은 지위에 있는 사람조차도 윤구주의 행방을 모르니 어찌할 도리가 없었다.“어휴. 언제면 저하를 만날 수 있을는지.”백경재가 탄식했다.다른 사람들도 비록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허탈한 표정만큼은 감추지 못했다.…이때, 강성의 숨겨진 공항에 군용 헬기가 천천히 착륙하더니 군인들이 공항 외곽을 철저히 봉쇄하기 시작했다.그리고 공항 활주로에는 수십 명의 중무장한 군인들로 채워졌다.헬기의 문이 열리자, 3명의 영웅인 박천후, 염수천, 그리고 윤구주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박 총사령관님! 염 통령님!”소령으로 보이는 한 장교가 박천후와 염수천이 걸어 내려오는 것을 보더니 즉시 차려 자세를 취했다.하지만, 이 장교는 윤구주를 알아보지 못했다.박천후가 이 장교를 힐끗 쳐다보며 손을 흔들었다.“너희들은 이만 가봐.”“네!”그러자 두 줄의 군인들이 물러났다.“저하, 강성에 도착했어요.”윤구주를 향해 고개를 돌린 박천후가 공손하게 말했다.윤구주는 자리에 멈춰선 후, 강성의 하늘을 바라보며 심호흡을 한 번 했다.“드디어 그녀를 만나게 되는가? 용인 빌리지로 갈 테니 차 준비해.”“네!”차를 준비하라고 박천후가 서둘러 부하들에게 명령했다.박천후와 염수천을 데리고 용인 빌리지로 향하는 도중에 윤구주는 소채은과의 기이한 만남에 대한 에피소드와 강성에서 보냈던 날들을 두 사람에게 말했다.그러자 박천후가 감격에 찬 어조로 말했다.“저하의 얘기를 들어보니 채은 씨는 엄청 착하신 분이네. 그녀를 만난다면 감사 인사를 제대로 드려야겠어.”“그래. 나도 그렇게 해야겠다.”염수천도 찬성했다.윤구주는 창밖의 익숙한 풍경을 바라보며 소채은을 처음 만났던 때를 떠올릴 뿐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이에 대해 알 리 없는 사람들은 박창용의 말에 놀랄 수밖에 없었다.“설국의 선대 국주가 갑자기 붕어한 탓에 다른 새 국주를 임명했다고 들었어요. 그리고 새 국주가 여성이라던데.”주세호가 말했다.“주 회장의 말이 맞아. 그렇다면 설국의 젊은 국주가 왜 갑자기 붕어했는지는 알고 있나?”박창용이 또 묻자, 주세호가 이번에는 고개를 가로저었다.주세호는 사업가인지라 국정에 대해 알 리 없었다.“참수당했어!”박창용은 큰 소리로 말했다.“네? 설국의 선대 국주가 참수당했다고요?”그 말을 들은 사람들은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네. 10국의 성원이었던 설국의 야심은 하늘을 찔렀어요. 특히 요 몇 년 동안에 우리 화진의 국경을 밥 먹듯이 침범한 탓에 그 대가를 치른 셈이죠. 이뿐만이 아니에요. 설국은 군신, 광명 신전 등 거물급 인사들까지 잃었어요. 당연히 이 모든 것은 한 화진 사람의 소행이고요.”이 말을 내뱉는 박창용의 목소리는 격앙된 상태였다.“그것이 정녕 사실이란 말인가요? 그렇다면 대체 누구의 소행이에요?”소청하가 믿지 못하겠다는 표정을 지었다.화진 사람 한 명이 설국을 상대로 싸워 설국의 국주를 참수했다는 소식을 들었으니 그럴 만도 했다.소청하의 질문에 박창용은 오히려 껄껄 웃으며 사람들에게 되물었다.“하하! 누가 이렇게 대단한 능력을 갖췄는지 여러분은 짐작이 가시나요?”“박 사령관님, 혹시 구주를 말씀하시는 건가요?”총명한 연규비가 물었다.“네? 저하라고요?”백경재가 외치자, 소채은은 물론 그 자리에 있던 주세호와 다른 사람들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 박창용을 바라보았다.“저하를 잘 아는 사람은 역시 규비 여신님밖에 없네요. 맞아요. 설국의 국주를 참수하고 설국을 백 년 동안 우리 화진에게 굴복시키게 한 인물이 바로 저하에요.”박창용이 진실을 말하자, 현장에 있던 모든 사람은 깜짝 놀라 그 자리에 얼어붙었다.“홀로 한 나라와 맞선 데다 설국 국주의 목까지 베었다니!”“그보다 더 놀라운 것은 그가 설국을 백 년 동안 우리 화진의
박창용이 용인 빌리지에 온다는 소식이 퍼지자, 그가 윤구주의 소식을 가지고 왔을 것으로 생각한 백경재, 주세호, 그리고 소청하 부부는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모두가 앉아 있는 대청마루에 연규비가 들어왔다.“규비 여신님, 박 사령관이 무슨 소식을 가지고 온대요? 저하에 관한 소식인가요?”백경재가 흥분에 가득 찬 목소리로 연규비에게 묻자, 연규비가 답했다.“자세한 건 잘 모르겠습니다만 박 사령관의 말투로 보아 그런 것 같아요.”“하하! 이런 경사가 또 어디 있을까. 우리 저하의 소식이라니요.”감격에 겨운 듯 백경재의 눈가는 촉촉이 젖었다.물론 다른 사람들도 흥분을 가라앉히지 못했다.서울로 떠난 반년이란 시간 동안에 윤구주는 문벌과 세가와 싸우느라 강성에 있는 식구들을 신경 쓰지 못했지만 하늘이 무너져도 이들을 버릴 생각은 전혀 없었다.“저하가 저희를 버리지 않았다고 제가 말했잖아요.”주세호가 득의양양하게 말했다.모두가 대청마루에서 창용 부대의 총사령관인 박창용을 기다리고 있었다.한 시간이 흐른 뒤, 용인 빌리지의 아래에 3대의 지프 군용차가 나타났다.차 문이 열리자, 가장 먼저 차에서 내려온 사람들은 군복을 입고 실탄 장착한 총을 지니고 있던 경비병들이었다.그러고 나서 우람한 체구를 갖춘 박창용이 차에서 내렸다.“사령관님, 도착했습니다.”경비병의 말에 박창용이 고개 들어 용인 빌리지를 올려다보았다.“저하가 떠난 이후로 한 번도 오지 않았으니 꽤 오랜만이네. 다들 저하를 그리워하고 있겠지?”말을 마친 후, 박창용은 성큼성큼 발걸음을 옮겼다.“이제 올라가 보자꾸나.”그는 경비병 몇 명과 함께 용인 빌리지 입구를 향해 걸어갔다.박창용과 경비병들이 용인 빌리지의 입구에 모습을 드러낸 순간, 입구에서 이들을 기다리고 있던 백경재가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박 사령관님, 이제야 오셨군요. 기다리고 있었습니다.”말하면서 자신에게 다가오는 백경재를 바라보던 박창용은 하하거리며 웃었다.“백 대사님, 오랜만입니다.”“제가 얼마나 눈이 빠지게
“얘야, 이 어미도 네 아빠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해. 그가 너를 좋아한다고 하지만 서울이 우리 화진의 수도란 사실을 너도 잘 알잖아. 그런 대도시에는 아름다운 여성들이 길가에 즐비했어. 다른 여자들이 구주를 채가지 않게 신경 좀 써야 할 거야.”천희수도 입을 열었다.이들의 재촉에도 소채은은 차분함을 잃지 않았다.“아빠, 엄마, 너무 멀리 갔어요. 저와 인연이라면 어떻게 해보겠지만 만약 그게 아니라면 너무 연연하지 않겠어요. 그러니 구주와 저 사이의 문제를 두 분이 걱정하지 않았으면 좋겠네요.”“부모로서 어떻게 자식 걱정을 하지 않을 수가 있겠니? 그를 바다에서 구해준 사람은 너야. 어찌 이리도 배은망덕할 수 있단 말이냐.”소청하가 말했다.“네 아빠 말이 맞아. 무슨 일이 있어도 널 버리면 안 되지.”부모의 말에 소채은은 머리가 아파지기 시작했다.“회사 갈 거니까 저와 구주의 문제에 대해서는 신경 쓰지 마세요.”소채은은 말을 마치고 자리를 떴다.“채은아!”“채은아!”소청하와 천희수가 큰 소리로 외쳤지만, 소채은은 뒤돌아보지 않았다.방에서 빠져나온 후에도 머리는 여전히 윙윙거렸다.사실 그녀도 윤구주를 원했지만, 명성이 자자한 윤구주가 강성과 같은 소도시에 자리를 잡을 리 만무하다고 소채은은 생각했다.“내가 그의 배필로 자격이 없을지도 몰라.”혼잣말을 중얼거리던 소채은의 눈에는 이슬이 맺혔다.이때, 갑자기 그녀의 뒤에 검은 그림자가 나타났다.“채은 씨, 오늘에 일찍 퇴근하셨네요.”그녀가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려보니 우아한 각선미와 옥 같은 얼굴을 한 연규비가 보였다.길고 몸에 착 감긴 듯한 치마는 그녀의 S라인 몸매를 더욱 도드라져 보이게 했다.연규비의 목소리에 소채은은 재빨리 눈가에 맺힌 눈물을 닦고 고개를 돌렸다.“일이 바쁘지 않아 일찍 돌아왔어요.”“아. 정말요?”연규비는 소채은의 눈이 퉁퉁 부은 것을 발견했다.소채은은 재빨리 고개를 숙였다.“채은 씨, 또 구주를 생각한 거예요?”연규비는 소채은에게 다가가
따르릉!이때, 소채은의 가방 안쪽에서 휴대폰 벨 소리가 울렸다.그녀가 휴대폰을 꺼내 수신 버튼을 누르자, 휴대폰 너머에서는 천희수의 불안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채은아, 너 어디야?”“밖에 있는데 무슨 일이세요?”소채은이 물었다.“네 아빠가 조금 전 쓰러져서 빨리 집으로 와야겠다.”“뭐라고요? 아빠가 쓰러지셨다고? 알았어요. 지금 당장 갈게요.”전화를 끊은 후, 소채은은 까망이와 함께 서둘러 자리를 떴다.“까망아, 어서 집에 가자.”…용인 빌리지, 회사에서 돌아온 소채은이 잰걸음으로 정원에 있던 천희수에게 다가가 물었다.“아빠가 쓰러졌다면서요? 지금 어디 있나요?”소청하가 쓰러졌다고 말했던 것은 소채은을 집으로 불러들이기 위해 이들 부부가 꾸민 자작극이었다.딸의 물음에 천희수가 답했다.“점심에 무슨 일이 있었는지 글쎄 갑자기 정신을 잃고 쓰러졌어.”“심각한가요? 아빠는 지금 어디 있는데요?”소채은은 다급히 물었다.“지금 침대에 누워있으니까 얼른 가보자꾸나.”그녀들이 소청하를 보러 안방에 갔더니 소청하는 꾀병을 부리며 침대에 누워있었다.“아빠! 괜찮으세요?”누워 있는 소청하를 본 소채은은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채은이 왔구나. 난 괜찮으니 걱정 안 해도 돼.”소청하가 말했다.“쓰러졌는데 괜찮다니요. 제가 부축할 테니 지금 당장 병원 가요.”소채은은 소청하를 병원에 데려가려 했다.“그럴 필요 없어. 나 정말로 괜찮아.”아프지 않으니 당연히 병원 갈 이유가 없었다.“하지만 쓰러지셨다면서요?”소채은이 말했다.“얘도 참, 내가 쓰러진 이유는 구주와 네 일 때문이야.”소청하는 한숨을 내쉬었다.“저랑 구주요?”소채은은 의문스러운 표정을 지었다.“그래. 이 바보야. 생각 좀 해 봐. 구주가 서울에 간지 이렇게 오랜 시간이 흘렀는데 네 아비인 내가 어찌 걱정 안 할 수가 있냐?”소청하의 말에 소채은은 그제야 그가 꾀병 부린 이유를 알 것 같았다.“채은아, 네 생각을 아빠한테 말해줄 수 있어?”소청하가 소채은
“뭐가 아니라는 거야? 잘 생각해 봐. 구주는 화진의 왕이지만 우리는 무명 가문이야. 뭐가 부족하다고 우리랑 엮이려 들겠어. 게다가 구주 주변의 사람들도 다 돈과 권력을 가지고 있어. 연씨 성을 가진 여자도 TV에 나오는 톱스타보다 예쁘잖아. 구주가 구주왕이라는 신분을 등에 업고 있으니, 여자들이 줄을 선거지.”소청하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한 천희수는 걱정이 앞섰다.‘천하무적 화진의 구주왕과 강성의 무명 가문이라… 천지 차이네.’이런 생각 하며 천희수가 입을 열었다.“그러면 이제 어떡하면 될까요?”소청하가 잠시 생각한 뒤 말을 꺼냈다.“이 일은 그와 인연을 맺은 사람이 풀어야 해. 우리 딸이 나서야 한다는 말이야.”“채은이가요?”천희수는 어리둥절했다.“그래. 구주를 구한 건 우리 딸이니까 무슨 일이 있어도 우리 딸을 버리면 안 되지. 그나저나 지금 당장 채은에게 전화해서 오라 해!”“하지만 채은이 회사 일 때문에 바쁘잖아요?”“당신 바보야? 회사 일보다 구주의 일이 더 중요해. 그가 우리 화진의 구주왕이자 나라를 구한 영웅이라는 걸 잊은 건 아니겠지? 구주가 우리 소씨 가문의 사위가 된다면 우리 가문을 빛내는 일인데 뭔 얼어 죽을 회사야!”천희수는 소청하의 말이 일리가 있다고 생각했다.“알았어요. 그러면 지금 채은에게 전화해서 오라고 할게요.”천희수는 말하면서 휴대폰을 꺼내 들었다.“전화해서 당장 오라 해. 만약 오지 못하겠다면 서울로 가서 구주를 찾으라고 하고. 하늘이 두 쪽 나도 구주가 우리 딸을 버리면 안 돼.”소청하가 말했다.…강성의 해변, 한 여자가 해변에 홀로 앉아 있었다.바닷바람이 그녀의 검은 머리카락을 스치자, 휘날리는 머리카락 사이로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이 드러났다.그 여자는 바로 이른 아침에 회의를 마치고 홀로 해변에 온 소채은이었다.이 해변은 그녀와 윤구주가 처음 만난 곳이기도 했다.그 당시 그녀가 이 자리에 앉아 있다가 해변에 떠 있는 윤구주를 발견했던 것이었다.그때의 생각에 눈시울이 약간 붉어
주세호가 경호원들과 함께 들어오는 것을 보자, 소청하는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주 회장님이 오셨네요. 어서 안으로 드세요.”주세호가 웃으며 말했다.“아니야. 마침 이 앞을 지나다가 들른 거야.”주세호가 말하면서 손을 휘젓자, 그의 뒤에 있던 경호원들이 선물 박스와 고급 영양제들을 꺼냈다.“뭘 또 이런 걸. 지난번에 보내주신 것들도 아직 남았는데.”말은 그렇게 해도 소청하는 주세호가 준 비싼 물품들을 챙기기에 급급했다.“제 사위가 서울로 떠난 이후로 우리 가족을 돌봐주셔서 너무 감사합니다. 주 회장님.”소청하는 감격을 금치 못했다.그는 윤구주를 외부인 취급하지 않고 사위라 불렀다.“별말을 다 하고 그래. 난 그저 내 할 일을 했을 뿐이야.”주세호가 말했다.“어쨌든 감사합니다. 아! 맞다. 주 회장님, 최근에 제 사위에 대한 소식은 없나요?”소청하가 물었다.윤구주가 서울로 간 후부터 소청하는 윤구주의 소식을 눈이 빠지게 기다렸다.윤구주가 돌아오지 않는다면 자신의 모든 노력이 헛수고가 되기 때문이었다.‘윤구주는 화진의 구주왕이야. 이렇게 좋은 신분을 가진 그를 소씨 가문의 사위로 삼는다면 우리 가문에 날개를 단 셈이지. 게다가 몇 대에 걸쳐 부귀영화도 누릴 수 있을 거야.’소청하는 일생에 단 한 번뿐인 이 기회를 놓치고 싶지 않았다.윤구주의 소식을 묻는 그의 질문에 주세호는 쓴웃음을 지으며 답했다.“미안해. 나도 통 연락이 안 되네.”“그럴 리가요. 주 회장님, 구주가 서울에 간 이유가 뭐라고 생각하시나요? 왜 여태 안 돌아오는 걸까요? 주 회장님은 친구도 많고 인맥도 넓으니까 제 사위가 서울에서 무엇을 하고 있는지를 사업하는 친구들에게 물어봐 줄 수 있나요?”“조급해하지 마. 난 저하를 믿어. 그가 일을 마치고 나면 반드시 너희들을 보러 올 거야.”소청하의 성격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던 주세호는 더 이상 머물고 싶지 않았다.“회사 쪽에 일이 있으니 먼저 갈게.”주세호가 핑계를 대고 떠난 후, 초조한 마음을 감추지 못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