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동왕은 해결할 방법이 없어 윤구주를 찾아가 이 일을 알렸다.“그러면 이렇게 합시다. 북라국과 화진의 접경한 국경 주변에 도시 몇 개를 건설합시다. 우리 북역 삼주는 모두 곡물 생산이 많은 지역이라 백만 명을 공급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입니다. 우선 그들이 무사히 겨울을 나게 도와줘야겠네요. 북라국 국경 쪽은 광물이 많죠? 도시를 건설하면 공업을 발전시킬 수 있잖아요. 저는 몇 년 안에 국경이 번영해질 거라고 믿습니다. 국경 무역만으로도 북라국 경제를 이끌 수 있을 것이에요.”윤구주가 말했다.진동왕은 윤구주의 말을 듣고 그가 북라국과 연합하려 한다는 것을 눈치챘다.진동왕이 윤구주의 결정을 반대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북라국 경제를 일으켰다가 나중에 배신당할까 봐 걱정이었다. 북방 여러 나라들이 모두 배은망덕한 놈들이었기에 그런 걱정을 할 수밖에 없었다.“나쁜 것은 사람 마음이죠. 하지만 고통받는 것은 백성들 뿐입니다. 백성들이 전쟁을 원한다고 생각합니까? 전쟁의 목적은 더 나은 삶을 위한 것입니다. 제가 북라국 귀족들을 완전히 없애고 은혜를 아는 군주를 북라국의 국주로 세우면 미래에 북라국은 우리 화진 최고의 협력자가 될 것입니다. 아저씨 걱정도 이해할 수 있어요. 하지만 곡물은 모두 우리 화진에 있으니 화진이 흥하면 북라국도 흥할 수 밖에 없죠. 두 나라의 이익이 하나가 되면 앉아서 돈을 벌 수 있고 그들을 괴롭히는 귀족들도 사라졌는데 누가 자신의 밥그릇을 깨려 하겠습니까?”윤구주가 웃으며 말했다.“그래 좋아. 그럼 모든 것을 네 명령대로 할게. 지금 바로 우리 화진 북역 삼주에서 곡물을 운반하고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서 함께 기초 시설을 건설해야겠어.”진동왕이 중얼거렸다.진동왕이 신뢰할 수 있는 사람을 찾아야 한다는 말에 윤구주는 누군가를 떠올렸다.“상인을 찾아야 한다는 말입니까? 강성의 주세호를 불러오세요. 제 사람이니 믿고 쓸 수 있어요.”“주세호? 어디서 들어본 것 같은데. 주 회장님인가? 이 둘이 같은 사람이었어?.”진동왕이
북라국 잔여병력은 주작의 손에 모조리 정리됐다.30여 명의 봉지 귀족들의 피범벅이 된 머리가 암부를 통해 데이로가 진을 친 설원으로 배달되었다.피투성이 머리 더미 앞에서 데이로와 3천 병사들은 심경이 착잡하기만 했다.오랜 억울함이 단번에 풀리는 듯한 후련함과 함께 이들의 원한을 대신 풀어준 이가 화진의 사람들이라는 사실이 드러났다.윤구주의 의도는 불 보듯 뻔했다.데이로가 노골적인 회유를 눈치채지 못할 리 없었다.데이로는 3천 부하들의 의견을 물을 수밖에 없었다.“전투든 항복이든 사령관 님의 결정을 따르겠습니다.”단호한 답변만이 돌아왔다.데이로가 고민하던 중 황천관에 파견된 정찰병이 돌아왔다.화진 군이 포로 학살을 하지 않을 거란 사실은 알았으나 정찰병의 직접 보고를 듣자 병영 전체가 침묵에 휩싸였다.화진 군이 북라국 국경에 난민들을 위한 성채를 건설 중이며 포로들에게까지 식량을 지원하고 있다는 소식을 전해들은 뒤였다.허무한 굴복은 원치 않았으나 부하들의 눈빛에서 이미 전의가 사라진 것을 느낄 수 있었다.데이로가 갈등 속에서 침묵하던 그때 군영 중심에 윤구주의 모습이 홀연히 드러났다.구주왕!쿠궁!3천 병사들이 동시에 일어났다.경계와 경의가 뒤섞인 반응이었다.비록 적이지만 평민을 구한 자에 대한 존경이었다.“적이라 해도 약자를 보호하는 자는 존경받을 만할 터, 구주왕은 진정한 전사십니다.”데이로가 허리를 90도로 굽혔다.“구주왕 님을 뵙겠습니다.”“항복한 병사들을 살려둔 것에 감사를 표하는 건가?”“그런 이유라면 필요 없지.”“그들은 대부분 강제 징집된 평민일 뿐 화진의 어떤 장군이라도 같은 선택을 했을 거야.”윤구주는 북라국 병사들 한가운데로 걸어가 모닥불 옆에 주저앉았다.그의 손짓에 화진군이 줄을 지어 식자재를 운반해 왔다.구수한 고기냄새가 3천 병사들의 배고픈 창자를 두들겼고 침 삼키는 소리가 우레처럼 울렸다.모든 시선은 기름이 뚝뚝 떨어지는 양갈비로 향했지만 움직이는 자는 없었다.“뭐 독이라도 탔을지 두려
하지만 윤구주의 의도에 대해 불만을 품을 수 없었다.모든 문제는 결국 북라국 국주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만약 상층 귀족들이 무도하지 않았다면 만약 그가 이미 귀족들에게 깊은 불만을 품지 않았다면 그리고 또 만약 그 국주가 정말 죽어 마땅한 자가 아니었다면 이 많은 경우가 다 아니었다면 데이로도 또 어떻게 윤구주의 꾀에 넘어갈 수 있으리.데이로는 복잡하게 얽힌 생각들을 떨쳐내려 애쓰며 무거운 마음으로 다가올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마음을 다잡은 데이로는 윤구주가 건넨 양다리를 받아 들고 짐승처럼 크게 베어 물었다. 척박한 현실 속에서 잊고 지냈던 따뜻한 음식의 온기가 그의 메마른 감정을 조금씩 녹이는 듯했다.이를 지켜보던 현무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식사 시작!”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맛있는 음식이 쏟아져 나오고 커다란 나무통에 담긴 술이 병사들 앞에 놓였다.삼천 명의 병사들은 굶주린 맹수처럼 음식으로 달려들어 미친 듯이 먹기 시작했다. 며칠을 굶주린 듯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쑤셔 넣는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했다.그들의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보이는 눈은 퀭했지만 고기를 씹는 입가에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섞여 흘러내려 그 짠맛을 더했다.단순히 맛있는 음식 때문만은 아니었다.그들은 북라국의 정예병이었지만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전투와 굶주림에 지쳐있었다.전쟁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이렇게 풍성하고 따뜻한 음식을 먹어본 적이 또 언제었더라… … 척박한 땅에서 희망 없이 싸워온 그들에게 이 식사는 단순한 포만감을 넘어선 잊고 지냈던 인간적인 존중과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한 줄기 희망과도 같았다.그 어디 병사들뿐이랴 북라국의 총사령관인 데이로마저 기나긴 시간 동안 이런 따뜻한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그는 묵묵히 고기를 씹으며 북받쳐 오르는 뜨거운 감정을 애써 삼켰다.그때 윤구주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차분한 목소리였지만 그 속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숨겨져 있는 듯했다.“데이로 네가 국경에 주둔할 때 우리 진동왕과 여러 차례 전투를 벌
그 말인즉 혹시 몇 년 뒤 북라국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면 윤구주는 북라국을 철저히 역사 속으로 보내 버리겠다는 뜻이었다.데이로는 이내 간담이 서늘해졌다.구주왕은 결코 자신이 뱉은 말에 전혀 에누리를 두지 않을 게 분명했다.“하늘을 무너뜨린대도 이 남자가 말하면 믿을 수밖에......”데이로는 그 말에 의심을 표할 용기조차 없었다.“이 데이로가 북라국의 국주가 되겠습니다! 구주왕 님께 맹세컨대 제가 즉위한 후 절대 화진을 선제 공격하지 않겠습니다!”데이로는 더 이상 명장이라는 연연함에서 벗어나 푯말에 매달리지 않았다. 자칫 망설이기라도 하면 기회가 사라질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좋아 한번 믿는다.”“나도 약속하노라. 북라국이 본분을 지키는 한 화진은 영원히 너희와 전쟁하지 않겠다.”곧바로 준비된 금색 책봉 문서 위에 윤구주가 주술 부적으로 데이로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너를 북라국 친왕으로 책봉하는 바 왕의 예법으로 왕정을 세우고 오조용포를 입을 권한을 준다!”헉!졸지에 데이로는 큰 들숨과 함께 두 눈이 을방울처럼 켜졌다.북라국과 화진은 완전히 다른 문명을 가졌는 바 전혀 신룡의 도를 믿은 적이 없었다.“이제 막 맹세해 놓고 이내 후회하는 거야? 금인은 이미 찍혔어. 만약 지금 명을 거부하려고 한다면......”풍덩!윤구주의 눈초리가 날아가자 데이로는 순간 주저앉으며 무릎을 꿇었다.“감히 그럴 생각 없습니다. 화진의 책봉은 제 영광입니다.”“... 그러지. 이 앞으로 두 나라가 평화롭게 지내길 바라노라.”“이미 진동왕한테 북역 1개 주의 군량 조달을 지시했으니 곧 북라국에 도착할 것이며 동시에 무역 관문을 개방해 시장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북라국으로 생필품을 공급하겠다.”“새 나라를 세울 테니 왕정의 장수 임명은 네가 결정하라. 친왕 작위는 세습 가능하지만, 부하에게 작위를 수여하는 권한은 없어. 북라국에 새로운 귀족이 태어나선 안 된다!”윤구주의 목소리에 위엄이 깃들었다.이 조건에 데이로는 기쁜 마음으로 수락했다. 그
”감옥에?” 천해가 잠시 놀라더니, 이내 억제할 수 없는 기쁨에 휩싸였다.윤구주가 목숨만 살려준다면 다른 죄목 따윈 문제되지 않았다.극 신급 절정 중기의 실력자라면 화진에서 윤구주 다음 가는 존재였다. 주인이 괴롭히지만 않는다면 감히 그를 건드릴 자가 누구랴?백호만 찾아낸다면 그의 지위는 확고해질 터였다.“주인님께 솔직히 고하자면 당시 저희는 주인님이 사해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사대 군신을 노렸습니다.”“문아름이 청룡을 함정에 빠뜨려 관외의 제신법진으로 유인해 혼백을 빼앗고 나머지 셋 한테도 차례로 손을 댈 계획이었습니다.”윤구주를 제외한 문씨 가문이 가장 두려워한상대는 바로 청룡이었다.당시 청룡은 화진의 형법을 완전히 틀어쥐고 오직 윤구주만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국주 임정설조차 그에게 명령 한 줄 내리지 못할 정도였다.이 때문에 청룡을 말리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것이다.“국주 임정설은 문씨 가문이 청룡을 공격할 때 현모와 주작은 보호했지만 백호는 우리 빙신전이 직접 손을 대 지켜내지 못했습니다.”윤구주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내가 들은 바에선 청룡이 내 사해 사건을 알고 혼자 관외로 뛰쳐나가 열 국에게 복수했다더라. 그게 문아름의 계략이었단 말이냐?”천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네. 문씨 가문이 열 국의 고수를 모아 청룡을 공격하게 했지요. 결국 청룡과 열 국이 모두 부상을 입었고 문씨 가문이 그 틈을 타 청룡의 혼을 빼앗아 열 국의 국운을 무너뜨렸습니다.”“문씨 가문이 열 국의 국운을 무너뜨린 이유는 모르겠으나 문아름의 왕위 계승을 위한 발판이었을 겁니다. 큰 그림으론 문씨 가문이 이씨를 대신해 국주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헛소리 말아라! 내가 어린애로 보이느냐?”“문씨 가문은 곤륜의 꼭두각시다!”“그들이 권력을 잡으면 종맹이 화진을 갈가리 찢으려 든다는 계획이 성공할 거 아닌가!”주작이 칼날 같은 목소리로 쏘아붙였다.천해가 손사래를 치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주작 님! 저는 단지 객관적인
일찍 윤구주는 이런 명령을 내린 적이 있었다:화진에 위기가 닥쳤을 때 자신이 다른 일에 잡혀 있다면 사대군신이 수신령을 합체시켜 그 인물을 출동하게 하라!현모와 주작은 윤구주의 눈빛에서 깊은 의도를 읽어내듯 서로를 바라보았다.“저하, 혹시 저하의 생각은...”주작이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난 무사하지 않았느냐. 그는 내 손의 밑천 중 하나야, 일단 청룡부터 찾고 보자.”“청해, 백호는 지금 어떻게 되었나?”윤구주가 팔짱을 끼며 이어 물었다.“사람은 무사합니다만... 저희 빙신전 세자에게 감금당한 상태입니다.”청해가 말을 중간에 끊으며 고개를 숙였다.“계속 말해.”“성자는 바로 우리 빙신전의 후계자이자... 황자의 제자입니다.”“황자?!”현모와 주작은 그 단어에 얼굴이 굳었다. 눈썹이 경련하듯 떨렸다.황자는 왕 급이다. 이론상 구오지존 신급에 도달하면 모두 왕 급으로 칭할 수 있으나 현실에서 인정받는 왕의 인물로 가능한 자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극 신급 절정 역시 마찬가지. 황자의 이름은 피로 쓴 칭호였다.지금 백호는 목숨은 건졌으나 황자의 제자에게 옭매인 상태.다른 이라면 주저앉을 상황이었지만 윤구주의 얼굴엔 오히려 흥분이 어렸다.“황자라... 좋아! 그럼 먼저 황자의 제자부터 만나봐야겠네!”군용기가 구변산 기지로 접근하는 동안, 곤륜역 아사신전 영역에서는 신들이 봉인술을 깨트리기 위해 집결했다.봉인이 해제되자 신들은 사자를 곤륜역 밖으로 내보내 정황을 탐색 시켰다.첫눈에 들어온 건 종말산의 모습이었다.얼음으로 뒤덮인 산을 바라보던 아사 신전 신들의 얼굴에는 경악이 스쳤다.“개자식들! 빙신전이 감히 윤구주와 손잡고 우리를 농락하다니!”“문씨 가문의 간계일지도 모른다. 그 늙은이가 귀환한 뒤 빙신전을 끌어들여 우리를 공격하려는 건 아닐까...”신들은 분노로 몸을 떨었으나 이성을 잃지 않았고 일단 문창정에게 연락을 시도했다.결국 아사 신전의 최고신 오딘까지 나섰으나 역시 문창정과의 연락에 실패했고, 이는 그들로
아래에 있던 소장과 여러 교위들은 몸을 더욱 곧게 펴고 서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기내에 고정되어 있었다. 모두 윤구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사 신전은 감히 우리 구주군에게 손을 대지 못할 거예요. 마치 문씨 가문이 저를 제거하기 전에는 감히 제 통솔하에 있는 4대 군신에게 손을 대지 못하는 것처럼요. 제가 시킨 대로 처리하세요. 다른 일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윤구주는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기내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진동왕과 통화 중이었다. 진동왕은 아사 신전의 신식을 감지할 수 있었다. 갑자기 이렇게 많은 강대한 기운이 나타나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즉시 윤구주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다. 윤구주의 몇 마디 말은 위로의 의미도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진동왕과 현모, 주작 그리고 다른 장군들은 달랐다. 장군들은 윤구주를 무조건 믿고 명령만 내리면 그대로 따르지만 진동왕 같은 영리한 사람은 달랐다. 그를 달래야 했다. 통화를 마친 윤구주는 군용기에서 내렸다. 소장을 필두로 한 교위들은 일제히 윤구주에게 경례하며 국주를 뵙기 위한 큰절을 올리려 했다. “여기는 군영이다. 군부에서는 군례를 해야지! 이 기본 규칙까지 내가 다시 가르쳐야겠어?” 윤구주가 꾸짖었다. 교위들은 다급하게 군례를 했다. 소장 한 명만 보이자 윤구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계급이 낮아서 일부 군사 정보를 알지 못했다. 이를 본 소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왕, 흥주에서 긴급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흥주 사령관이 제게 왕을 접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긴급 상황?” 이때 윤구주는 한 특수 부대가 수송기에 올라 긴급히 이륙하여 구변산 산맥으로 향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상했다. ‘지금 진동왕은 삼주 시장인데 이 일을 왜 나에게 보고하지 않았지?’ 갑작스러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흥주 사령관은 상황을 처리할 권한이 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외적이 국토를 침범했을 때만
윤구주는 기지에 도착했다. 그 소장은 그제야 흥주에서 발생한 일을 보고했다. “조양국이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화진의 규조를 대놓고 훔쳐 가고 우리 흥주도 그들의 국토라고 주장하며 우리가 그들의 땅을 침범했다고 합니다. 지금 군사를 일으켜 흥주를 노리고 있습니다.” 소장이 보고했다. 흥주 사령관은 이 일을 처리하러 갔다. 흥주 전역이 경계 상태에 들어가고 군대는 모두 분계선으로 이동하여 구변산에 집결했다. 외적을 분계선 밖에서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이미 일부 적군이 분계선을 넘어온 상태였다. “조양국? 남북 두 나라 모두 소란을 피우려는 건가?” 현모가 물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로 북양국이고 남양국은 견해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소장이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조양국은 그런 배짱이 없어. 그냥 어중이떠중이들이 무슨 큰 일을 할 수 있겠어? 역사를 따지면 남북 두 나라는 원래 우리 화진의 속국이었다.” 윤구주는 차갑게 비웃었다. 전에 그가 왕으로 책봉될 때 두 나라는 아첨하며 비위를 맞추기에 바빴다. “왕의 뜻은 뒤에 다른 지시자가 있다는 건가요?” 이때 청해가 나서서 분석했다. “아마도 빙신전이 뒤에서 지시한 것 같습니다. 아뇨, 곤륜 구역에는 신격이 인간 세계에 나라를 세우는 것을 금지했어요. 하지만 성자는 황제의 제자로서 아직 신위를 받지 못했으니 엄밀히 따지면 곤륜 구역의 사람이 아니에요.” 비록 청해는 빙빙 돌려 말했지만 모두가 이해했다. 성자가 나라를 세우려 한다는 것이다. 흥주가 바로 그 국토다. 그리고 신이 직접 인간 세상을 간섭하지 못하게 하는 신규는 사실 인간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곤륜 구역의 세력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신들이 모두 나와서 나라를 세우면 세상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질서가 무너지면 이미 배분된 이익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왕, 제가 나설까요?” 현모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그는 조양국을
“주작, 현모, 화진의 군신이라. 하하. 네놈들이 말해봐라. 내가 지금 구주왕을 배신한다 해도 너희들이 나를 막을 수 있겠나? 이전엔 너희 셋이 힘을 합쳐도 백여 합 버티는 게 고작이었지. 지금은 내가 황자급 경지에 올랐고 백호는 얼어붙어 잠든 상태라 너희 둘밖에 없는데 뭘 할수 있겠니? 난 세 방이면 충분히 너희들의 목을 벨 수 있어.”빙신전 전주가 비웃듯 말했다.그 말을 들은 주작은 두 눈을 부릅뜨고 빙신전 전주를 바라보았다. 설령 그렇다 해도 두려울 것 없다. 당장 빙신전과 결전을 벌이려는 순간 현모가 침착하게 그의 팔을 잡았다.“주작, 진정해. 저놈이 배신할 마음이 있다 해도 최소한 저하의 죽음을 눈으로 확인해야만 그런 생각을 할수 있을 거야. 문아름처럼 똑똑한 여자도 실패하지 않았나? 저놈에겐 그럴 배짱이 없을 거다.”막 황자급 경지에 올라 기분이 좋았던 빙신전 전주는 현모의 말에 불쾌해졌다.윤구주를 배신하려면 용기가 필요한 법이다.그는 이미 윤구주에게 정신적 충격을 너무 많이 받은 상태라 생각이 바뀐 지 오래 되였다. 윤구주가 이번 원정에서 실패한다 해도 최소한 생존은 보장될 것이고 윤구주를 따라 황자급 경지에 오를 수도 있었는데 윤구주의 그늘 아래에서 편안히 권력을 누리는 게 얼마나 좋은가? 그리고 그의 현재 실력으로는 결코 4대 군신에게 뒤지지 않을 것이다.“됐어. 장난은 이쯤에서 끝내지. 4대 군신은 정상이 하나도 없구만. 구주왕님이 떠나기 전 내게 전음을 남기셨다. 아사신족의 잔당이 침입하지 못하도록 이 전법을 파괴하라고 말이야. 너희 저하를 지나치게 걱정하지 말라. 그분은 곤륜에서도 학살을 벌인 자야. 신계의 결계쯤이야 가뿐히 넘어설 거다.”이 말을 들은 주작은 어느 정도 흥분을 가라앉혔지만 여전히 빙신전 전주를 경계하는 눈빛이었다.“현모, 구주왕님이 너에게 지휘를 맡기셨다. 내가 최선을 다해 협력할 테니 요구사항이 있으면 말해라. 단 헨드리 문제는 우리 빙신전이 관여하지 않을 것이다. 재권 따위 이젠 눈에 들어오지도 않아.
윤구주가 황인으로 만든 전법이 붕괴 직전에 이르렀다.전법이 사라지면 세 인황과 백 명의 왕, 수만 영령들이 사라질 것이다.마지막 순간, 헨드리에 사는 화진 사람들이 현재 화진의 모습을 담은 영상을 편집해 헨드리의 제일 큰 광장 스크린에 올렸다.화려하게 발전한 화진의 모습을 본 영령들은 감격의 눈물을 흘렸다.세 인황과 왕들은 모두 생각이 깊은 사람이었고 통일된 왕조를 세운 경험이 있는 자들이었기에 왕조를 세우는 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너무 잘 알고 있었다. 또한 왕조가 번성에서 쇠퇴로 기울면 그 순간 화진에 재앙이 밀려온다는 진리를 알고 있었다.하지만 그들은 아무 말도 하지 않고 편집된 영상 속 화진의 아름다운 강산을 바라보며 조용히 마지막을 맞이했다.“선배님들, 화진은 이미 수많은 고비를 딛고 넘어섰습니다. 가장 어려운 시기는 지났으니 안심하십시오. 화진에 저 윤구주가 있으니 마음 놓고 돌아가세요. 저 윤구주는 기대를 져버리지 않고 화진에 재앙을 가져오는 놈들의 뿌리를 뽑아 영원한 태평성대를 만들겠습니다.”전법이 사라지며 영령들은 천지로 흩어졌다. 고인들은 돌아올 수 없지만 그들의 영령은 영원히 존재할 것이다. 천지 영기는 영원히 끊이지 않을 것이다.영령들이 흡수했던 영기는 신들이 소멸할 때 천지에 되돌려졌다. 후손들이 능력만 있다면 화진이 위기에 처했을 때 이분들을 다시 소환할 수 있으니 이것이 바로 화진이 영원히 멸망하지 않는 근본이었다.수백 년, 심지어 천 년이 지난 후 윤구주도 세 인황처럼 선대 인황이 되어 후손들에게 소환될지 모를 일이었다.이 생각에 윤구주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구주군 장수들과 암부 대원들도 뜨거운 눈물을 흘리며 오랫동안 격앙된 마음을 달랠 수 없었다.“문아름, 너의 비뚤어진 마음은 결코 좋은 결말을 맞이하지 못할 것이야. 넌 나를 대적하는 것이 아니라 화진의 선조들을 대적하는 것이다. 죽어도 갚지 못할 빚을 진 채 선조들조차 너를 가만 주지 않을 것이다. 나는 화진에 부끄럽지 않아. 설령 언젠가 죽어 흔적도 없이
“도망칠 생각 말라. 사악한 신이여 목숨을 내놓아라.”세 인황이 돌진하자 백 명의 강자들이 그들을 뒤따르며 도망치려는 타이탄 거신의 영혼을 공중에서 가로막아 산산조각냈다.“우와 대박! 과연 화진의 옛 황제님이시여.”고층 건물 꼭대기에 있던 백호가 세 인황을 향해 외쳤다.진왕이 미간을 찌푸리며 다른 두 인황과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리고 타이탄 신의 잔여 영혼 정수를 모아 강제로 백호에게 주입했다.에너지가 체내로 들어오자 백호는 풍선처럼 부풀어 오르며 악취를 풍기기 시작했고 정신이 혼미해져 폭주 상태에 빠졌다.이 장면을 지켜보고 있던 윤구주가 천주 금술을 발동해 백호의 의식을 봉인했다.휙!세 인황의 의도를 알아챈 빙신전 전주도 술법을 써서 백호를 얼음 속에 가뒀다.“구주왕님의 이 부하는 보통사람이 아닌 듯하군요. 영혼을 삼켜 경지를 올릴 수 있으니 정말 신기한데요. 다른 사람이라면 마인이 되었을 텐데 이 자는 원래부터 미친놈이라 오히려 영향을 받지 않아서 다행이군요.”빙신전 전주가 중얼거렸다.“그건 개소리야. 저놈이 음혼을 삼킬 수 있어서 그런 거다. 양도의 혼이라면 순식간에 타버릴걸.”윤구주가 투덜대자 그 말을 들은 빙신전 전주는 어색하게 웃을 수밖에 없었다. 그들은 지하의 음기로 수련을 했기 때문에 음혼이 될 수밖에 없었다.정확히 윤구주만이 이 폭주하는 백호를 길들일 수 있었다. 다른 이라면 이미 백호의 손에 목숨을 잃었을 것이 분명했다.헨드리 왕도의 위기가 드디어 해결되었다.화려한 도시의 십 분의 일이 폐허가 되었고 수만 명의 사상자가 발생했지만 유라비아 전체를 구한 대가치고는 합당했다.세 인황과 수백 명의 왕, 그리고 수만 영령이 전법 주변에 모였다. 전법아래에는 화진에서 온 장군들과 암부 대원들이 선조들을 존경의 눈빛으로 바라보고 있었다.“미래의 화진을 못 보았으니 참 아쉽구나.”당국의 인황이 한숨을 내쉬었다.세 인황 중 제일 인자했던 그는 백성을 가장 아끼던 존재였다.“그만하세. 우리가 할 일은 다 했다네. 이젠 우리
“세 번째 방법은 바로 천지의 영기와 음양오행을 빌려 황자가 되는 거야. 이 방법으로 황자급 경지에 오른 자는 모든 천지 속성을 흡수해 약점이 없으니 무적이라 불리지.”윤구주의 말에 빙신전 전주가 흥분하며 물었다.“구주왕님, 그럼 제가 가장 강한 황자인가요?”윤구주는 순간 할 말을 잃었다.“내 말은 네놈이 길을 잘못 들었다는 거다. 너는 천령을 내버려 두고 지하 음기를 빨아들였잖아. 전에 내가 박살 낸 빙황보다는 강하지만 그자의 경지가 너보다 높았으니 너희 둘이 싸우면 넌 여전히 졌을 거야.”“네?”빙신전 전주의 얼굴이 축 처졌다. 황자가 되면 윤구주와 어깨를 나란히 할 수 있을 줄 알았는데.빙신전 전주의 경지 돌파에 이어 다른 빙신전 수련자들도 많이 강해졌고 현모, 주작, 백호 세 사람의 경지도 급상승했다. 주작은 구오 대원만 경지, 현모는 구오 후기, 백호는 극 신급 절정 중급에 도달했다.반면 기사들의 성장은 미미했다. 이들은 수련한 적이 없었고 영기를 정화하는 방법만 익혔기 때문에 근육이 더 발달하고 힘만 세졌을 뿐이었다.“참 훌륭하군. 내가 알기로 화진 역사에서 자네와 같은 경지에 오른 자는 먼 고대의 황제뿐이었어.”무제가 부드러운 눈빛으로 윤구주를 바라보며 감탄했다. 다른 두 인황도 흡족한 표정이었다. 화진이 윤구주의 손에서 다시 한번 빛을 발할 것이 확실해 보였다.세 인황은 용기의 가호를 받으며 타이탄 최강의 거신을 협공했고 다른 왕들은 일반 타이탄 신들을 상대했다.그들의 공격에 타이탄 신들이 차례로 쓰러지자 주작과 청해가 법기로 그들의 시신을 수거했다. 이 경지에 오른 수련자의 몸은 귀중한 보물이니 다른 사람의 손에 넘어가게 놓아둘 수 없다.타이탄 거신들이 하나둘씩 쓰러지고 마침내 최후의 타이탄 시조신만 남았다.세 인황이 힘을 합쳐도 시조신을 잠시 억제할 수 밖에 없었다. 술법을 쓰지 않는 상대임에도 쓰러뜨리기 어려웠다.“이봐, 네 전법이 거의 끝나가니 계속 구경만 하지 말고 어서 나서라.”진왕이 윤구주를 향해 소리쳤
황인을 자유자재로 다루는 윤구주의 모습에 빙신전 전주는 강자에 대한 인식을 또 한 번 갈아엎어야 했다.‘인황은 신보다 더 무서운 존재였구나. 고대 화진의 인황이 구주 오방을 통일한 게 당연했어.’화진의 옛 황제들과 왕들이 힘을 발휘하자 공중에 화진의 기운이 모여들었다. 그 기세가 하늘을 뚫고 천지를 뒤흔들었다.힘이 약한 사악한 괴물들은 이미 소멸되었고 강력한 파라오는 무제의 창에 찔려 다시 흙 속으로 돌아갔다. 당국의 왕은 다른 고대 문명의 신을 단칼에 베어 죽였다.사악한 기운마저 이 황제들과 왕들에 의해 정화되고 있었다.이제 헨드리에 남은 적은 타이탄 신뿐이었다.사악한 기운에 빙의된 고대 신들과 달리 타이탄 신은 실체를 가진 수련자들이었다.술법을 쓰지 못하지만 몸을 절정의 경지에 이르게 단련한 그들은 무적에 가까웠다. 황제들과 왕들이 이끄는 영령 군대는 타이탄 신족과의 결전에서 별다른 우세를 점하지 못했다.이 영령들은 문물과 흩어진 영기에 의존해 잠시 소환된 존재들이었기에 발휘할 수 있는 실력이 전성기의 십 분의 일도 되지 않았다. 그래서 실체가 있는 수련자들을 상대하기 힘들 수밖에 없었다.“불길을 더 크게 지펴야겠군.”“구양진용결!”“구음만상결!”“백호, 주작, 현모의 성수여 제자리로 돌아가거라.”아홉 마리 진용이 구름을 뚫고 내려와 왕도 상공에 떠 있었다.황제들과 왕들의 눈빛이 반짝였다. 생전 진용 천자라 불렸던 그들은 용의 기운을 제어할 수 있었기에 그 기운을 마음껏 흡수했다.나머지 영령 전사들은 만상의 힘을 흡수해 한 단계 진화했다.백호, 주작, 현모의 정혈이 윤구주에 의해 움직이기 시작하자 세 성수가 삼각형을 이루며 세 가지 방향에 자리를 잡았다.“청룡이 부족하구나. 청룡의 정혈이 없으니 환영을 만들어낼 수 밖에 없어. 어쩔 수 없지.”윤구주가 청룡 성수의 환영을 소환해 나머지 한쪽을 지키게 했다. 네 성수가 모이자 천지의 영기가 배로 증가하였다.무궁무진한 영기들이 영령들의 몸속으로 스며들었고 동시에 구주군 장군들과
윤구주가 쓴 술법은 서요산의 금술에 구양진용결을 더한 것이고 인황인은 윤구주가 곤륜에서 스승들로부터 미리 전수받은 것이다.인황인을 윤구주에게 전수한 목적은 단순했다. 미래에 윤구주가 인황이 될 수 있다면 천지의 영기를 호령할 수 있도록 도와줄 수 있고 만약 되지 못하면 인황에게 전달하도록 하기 위함이었다.인황인은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술법으로 천술을 넘어 전설 속 성술에 해당하는 경지였다.마치 격렬한 태양과 같은 금빛 인장이 서서히 떠올랐다. 이것이 전설 속 인황인이었다.인황인이 응축되며 천지의 영기가 사방으로 쏟아져 나갔다.이 영기들은 헨드리가 과거 화진에서 약탈해 간 고대 유물들 속으로 스며들었다.개방되지 않은 보물관 한쪽에서 청동 검 하나가 영기를 흡수하더니 진동하기 시작했다.이상을 감지한 박물관 관장이 달려왔다.“이 검은 화진 진왕의 칼인데. 대체 무슨 일어난 거지?”진왕의 검에서 엄청난 위압을 가진 한 사람의 형상이 튀어나왔다.“과인을 깨운 자가 누구냐? 과인의 영혼은 이미 소멸했을 터. 새로운 인황이 천지 영기를 모아 과인의 영혼 잠시 소환한 모양이로군. 시간이 많지 않아서 오래 버티지는 못할 것이다. 좋다. 인황이 부른다면 과인도 황인을 받들어 다시 한번 전장에 나서겠노라. 진국의 병사들이여, 어디 있느냐?”우웅!전시관에 보관된 진국의 문물들에서 눈 부신 빛이 솟아올랐다. 영혼의 형체들이 정신을 되찾으며 하나둘씩 모습을 보였다.순식간에 천 명의 영령 군대가 결집되었다.“폐하를 뵙습니다.”“그래. 짐이 바로 천자다. 여러 장수들은 명을 들어라. 짐을 따라 관문을 나서 사악한 마귀들을 섬멸하라.”진왕이 진국 병사들을 이끌고 전시관을 뛰쳐나오자마자 바로 다른 문명에서 온 고대 사신들과 맞닥뜨려 싸움을 벌였다.지하 보물실에서는 당국의 인황이 병사를 이끌고 지면으로 뛰쳐나와 타이탄 신을 향해 돌진했다. 술법으로 깨어난 무제가 친위대를 거느리고 고대 이집트 미라 군단을 향해 돌격을 개시했다.이들은 화진의 옛 인황들이었다. 왕의
함대 지휘실에서 작전을 지시하던 명필무가 드론으로 전송된 헨드리 왕도의 영상을 확인했다.그 영상을 본 구주군 장군들은 왕도 안의 마물들이 방금 함대가 섬멸한 괴물들보다 훨씬 강하다는 것을 알아챘다.“왕도의 인구가 너무 밀집해 있어서 우리에게 무기가 있어도 함부로 사용할 수가 없네.”명필무가 책상을 내리치며 분노했다.왕도가 함락되고 헨드리 수천만 명의 시민들이 괴물들에게 찢겨 죽는 한이 있더라도 명필무는 사격 명령을 내릴 수 없었다. 일단 포격이 시작되면 그 성질이 완전히 달라지기 때문이었다.방금과 같은 조건에서만 명필무는 공격 명령을 내릴 수 있었다.“사령관님, 저하께서 금방 명령을 내리셨습니다. 이 해역을 잘 지키고 헨드리 왕도의 위기가 해결되면 구조를 위해 왕도 항구 안으로 진입하라는 명령입니다.”구주군의 한 장군이 윤구주로부터 온 전음을 명필무에게 전했다.“오? 그 말은 구주왕께서 이 위기를 막을 수 있다는 거로군.”명필무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는 윤구주가 어떤 방법을 쓸지 알 수 없었지만 화진의 인황인 그에게 반드시 방법이 있을 거라 믿었다.한편, 헨드리 왕도의 빙신전 수련자들은 한창 고전 중이었다.현모는 혼자 성수인을 발동해 수백만 헨드리 민간인들을 보호하고 있었다.성수인으로 형상화된 성수의 금빛은 점점 희미지고 있었는데 이는 현모의 정기가 고갈되어 버티기 힘들어졌음을 의미했다.가장 처참한 이는 빙신전의 전주였다. 그는 정혈을 끌어내어 목숨을 걸고 회의실을 지키고 있었다.“구주왕님, 저는 이미 최선을 다했습니다. 어차피 이 천술대진이 깨지면 저도 죽을 목숨이니 마음대로 하십시오.”빙신전 전주가 큰 소리로 소리쳤다.그가 저항을 포기하려던 순간 회의실 건물 옥상에 있던 윤구주가 드디어 움직이기 시작했다.윤구주가 손에 들고 있던 동화책을 높은 하늘로 던지며 뭐라 외치자 동화책은 화려한 자색 빛을 뿜어냈다.동화책은 한 장씩 풀려나갔고 페이지마다 고대의 신비로운 부호가 가득 새겨져 있었다.“팔기지, 천주금술.”“팔기지, 부자
헨드리는 술법으로 깨어난 괴물들에게 점령당한 듯했다. 전설 속에서만 존재하던 괴물들이 인간 세상을 배회하고 있어 마치 진정한 세계의 종말이 온 듯해 보였다.부활한 고대의 사악한 영혼들이 곳곳에서 난동을 부리고 있었을 뿐만 아니라 타이탄 신들마저 인간 세상에 강림하자 헨드리는 완전히 절망에 휩싸였다.괴물들이 너무 많아 황혼 기사단과 빙신전의 인원들이 전부 동원되었음에도 그들을 막아내지 못하고 있었다.괴물들과 타이탄 신들이 함께 회의실을 향해 미친 듯이 공격을 가하고 있었다.빙신전의 전주가 홀로 현빙전법을 구축하고 여러 가지 법기를 동원해 연이어 금술을 펼쳤다. 그는 정말로 최선을 다했지만 혼자의 힘으로는 어마어마한 수의 괴물들을 막아낼 수 없었다.“구주왕님, 어서 나서 주십시오. 이대로라면 저도 더는 버틸 수 없습니다.”빙신전의 전주가 서둘러 윤구주에게 전음을 보냈다.사실 현재 난동을 부리고 있는 괴물들은 빙신전 전주 같은 강자에게는 위협이 되지 않았다. 그가 원한다면 언제든지 떠날 수 있었지만 윤구주와의 협약이 있었기에 도망갔다가는 참혹한 결과를 맞이할 것이다.“일단 버텨라. 아직 가장 위험한 순간이 아니다.”윤구주가 전음으로 대답했다. 그의 전법이 가장 중요한 순간에 이르렀기에 다른 일에 정신을 팔 수 없었다.웅!헨드리 상공에 세 가지 수력이 연이어 나타났다. 백호, 주작, 현모 세 사람이 성수인을 발동시키자 세 성수의 화신이 세상에 강림했다.현모는 여전히 자신의 자리를 지키며 헨드리의 민간인들을 지키는 데 전력을 다했다.주작은 깃털의 수호신과 하나가 되어 붉은 그림자로 변해 괴물들 사이를 누비며 암살 기술로 수백 마리의 괴물들을 처리했다.그들 중 성격이 제일 괴팍한 백호는 가장 강한 괴물들만 골라 싸웠다.다른 이들에게 이곳은 지옥이었겠지만 싸움을 즐기는 백호에게 괴물들이 가득한 헨드리는 천국이나 다름없었다.슈욱!백호와 한 타이탄 거신이 맞붙었고 두 사람은 고층 건물 사이를 가로지르며 싸우기 시작했다. 수많은 약한 괴물들이 두
그 사령들의 목표는 각 제단 주변의 고대 문물들이었다.하늘에 소용돌이가 나타나자 사방에서 검은 기운이 벽을 이루며 헨드리를 봉쇄했고 순식간에 헨드리와 외부의 연결이 끊겼다.사령이 빙의되며 고대 문명의 신들이 부활했다.지하 동굴에서는 무수한 죽은 자들이 석관을 부수고 나왔다. 괴이한 빛을 내는 해골들이 성전 기사들과 윌리엄이 이끄는 특수 부대를 향해 미친 듯이 달려들었다.더는 설명이 필요 없었다. 성전 기사단장이 앞장서자 다른 기사들도 죽음을 각오하고 해골들과 맞붙었다.윌리엄이 이끄는 특수 부대도 열심히 싸웠지만 열병기로는 해골에게 피해를 주기 어려웠다. 불꽃만 일으킬 뿐 아무런 효과가 없었고 폭발이 가능한 화약만이 미약한 피해를 줄 수 있었다.격전이 시작되었다. 앞장선 기사들은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았지만 이 고대 신들을 막아내기는 턱없이 부족했다. 이 해골들은 무적일 뿐만 아니라 고대 신술까지 사용할 줄 알았다.신술때문에 수많은 성전 기사들이 폭사하거나 중상을 입었다.윌리엄의 특수 부대 역시 엄청난 손실을 보았다.박물관에서는 파라오와 그의 미라 하인들이 부활했는데 가장 무서운 것은 그들의 대제사장이 파라오 본인보다도 더 강력하다는 점이다.“망할! 저 극 신급 절정 후기 대제사장은 황자에 근접한 실력을 갖췄어.”양쪽의 실력 차이가 엄청 낫기에 청해는 미간을 찌푸리고 이겨낼 방법을 찾고 있었다.실력 차이가 어마어마하더라도 어쩔 수 없이 맞서야 했다.차가운 기운이 응집되며 박물관 전체가 얼어붙었지만 얼마 지나지 않아 검은 모래가 얼음을 깨고 사방으로 흘러나왔다.뜨거운 모래는 주변의 차들을 얼음처럼 녹여버렸을 뿐만 아니라 지면까지 녹여버렸다. 미처 대피하지 못한 수많은 기사도 뜨거운 모래에 삼켜져 시체조차 찾을 수 없었다.구주군의 한 장군도 심한 화상을 입었다. 윤구주가 전수한 공법이 없었다면 그도 기사들과 함께 모래 속에 묻혔을 것이다.같은 상황이 헨드리 왕도 곳곳에서 벌어졌다. 헨드리가 세계 각지에서 약탈해온 고대 문물들이 모두 부활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