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지만 윤구주의 의도에 대해 불만을 품을 수 없었다.모든 문제는 결국 북라국 국주에게서 비롯된 것이었다.만약 상층 귀족들이 무도하지 않았다면 만약 그가 이미 귀족들에게 깊은 불만을 품지 않았다면 그리고 또 만약 그 국주가 정말 죽어 마땅한 자가 아니었다면 이 많은 경우가 다 아니었다면 데이로도 또 어떻게 윤구주의 꾀에 넘어갈 수 있으리.데이로는 복잡하게 얽힌 생각들을 떨쳐내려 애쓰며 무거운 마음으로 다가올 운명을 받아들이기로 했다.마음을 다잡은 데이로는 윤구주가 건넨 양다리를 받아 들고 짐승처럼 크게 베어 물었다. 척박한 현실 속에서 잊고 지냈던 따뜻한 음식의 온기가 그의 메마른 감정을 조금씩 녹이는 듯했다.이를 지켜보던 현무가 우렁찬 목소리로 외쳤다.“식사 시작!”드디어 기다리고 기다리던 맛있는 음식이 쏟아져 나오고 커다란 나무통에 담긴 술이 병사들 앞에 놓였다.삼천 명의 병사들은 굶주린 맹수처럼 음식으로 달려들어 미친 듯이 먹기 시작했다. 며칠을 굶주린 듯 허겁지겁 음식을 입에 쑤셔 넣는 모습은 처절하기까지 했다.그들의 헝클어진 머리 사이로 보이는 눈은 퀭했지만 고기를 씹는 입가에는 어느새 뜨거운 눈물이 섞여 흘러내려 그 짠맛을 더했다.단순히 맛있는 음식 때문만은 아니었다.그들은 북라국의 정예병이었지만 쉴 새 없이 이어지는 전투와 굶주림에 지쳐있었다.전쟁이 시작된 이후 지금까지 이렇게 풍성하고 따뜻한 음식을 먹어본 적이 또 언제었더라… … 척박한 땅에서 희망 없이 싸워온 그들에게 이 식사는 단순한 포만감을 넘어선 잊고 지냈던 인간적인 존중과 따뜻함을 느끼게 해주는 한 줄기 희망과도 같았다.그 어디 병사들뿐이랴 북라국의 총사령관인 데이로마저 기나긴 시간 동안 이런 따뜻한 대우를 받아본 적이 없었다.그는 묵묵히 고기를 씹으며 북받쳐 오르는 뜨거운 감정을 애써 삼켰다.그때 윤구주가 갑자기 입을 열었다.차분한 목소리였지만 그 속에는 날카로운 칼날이 숨겨져 있는 듯했다.“데이로 네가 국경에 주둔할 때 우리 진동왕과 여러 차례 전투를 벌
그 말인즉 혹시 몇 년 뒤 북라국이 다시 전쟁을 일으키면 윤구주는 북라국을 철저히 역사 속으로 보내 버리겠다는 뜻이었다.데이로는 이내 간담이 서늘해졌다.구주왕은 결코 자신이 뱉은 말에 전혀 에누리를 두지 않을 게 분명했다.“하늘을 무너뜨린대도 이 남자가 말하면 믿을 수밖에......”데이로는 그 말에 의심을 표할 용기조차 없었다.“이 데이로가 북라국의 국주가 되겠습니다! 구주왕 님께 맹세컨대 제가 즉위한 후 절대 화진을 선제 공격하지 않겠습니다!”데이로는 더 이상 명장이라는 연연함에서 벗어나 푯말에 매달리지 않았다. 자칫 망설이기라도 하면 기회가 사라질 것을 본능적으로 알았다.“좋아 한번 믿는다.”“나도 약속하노라. 북라국이 본분을 지키는 한 화진은 영원히 너희와 전쟁하지 않겠다.”곧바로 준비된 금색 책봉 문서 위에 윤구주가 주술 부적으로 데이로의 이름을 새겨 넣었다.“너를 북라국 친왕으로 책봉하는 바 왕의 예법으로 왕정을 세우고 오조용포를 입을 권한을 준다!”헉!졸지에 데이로는 큰 들숨과 함께 두 눈이 을방울처럼 켜졌다.북라국과 화진은 완전히 다른 문명을 가졌는 바 전혀 신룡의 도를 믿은 적이 없었다.“이제 막 맹세해 놓고 이내 후회하는 거야? 금인은 이미 찍혔어. 만약 지금 명을 거부하려고 한다면......”풍덩!윤구주의 눈초리가 날아가자 데이로는 순간 주저앉으며 무릎을 꿇었다.“감히 그럴 생각 없습니다. 화진의 책봉은 제 영광입니다.”“... 그러지. 이 앞으로 두 나라가 평화롭게 지내길 바라노라.”“이미 진동왕한테 북역 1개 주의 군량 조달을 지시했으니 곧 북라국에 도착할 것이며 동시에 무역 관문을 개방해 시장가보다 낮은 가격으로 북라국으로 생필품을 공급하겠다.”“새 나라를 세울 테니 왕정의 장수 임명은 네가 결정하라. 친왕 작위는 세습 가능하지만, 부하에게 작위를 수여하는 권한은 없어. 북라국에 새로운 귀족이 태어나선 안 된다!”윤구주의 목소리에 위엄이 깃들었다.이 조건에 데이로는 기쁜 마음으로 수락했다. 그
”감옥에?” 천해가 잠시 놀라더니, 이내 억제할 수 없는 기쁨에 휩싸였다.윤구주가 목숨만 살려준다면 다른 죄목 따윈 문제되지 않았다.극 신급 절정 중기의 실력자라면 화진에서 윤구주 다음 가는 존재였다. 주인이 괴롭히지만 않는다면 감히 그를 건드릴 자가 누구랴?백호만 찾아낸다면 그의 지위는 확고해질 터였다.“주인님께 솔직히 고하자면 당시 저희는 주인님이 사해에서 돌아가셨다는 소식을 듣자마자 사대 군신을 노렸습니다.”“문아름이 청룡을 함정에 빠뜨려 관외의 제신법진으로 유인해 혼백을 빼앗고 나머지 셋 한테도 차례로 손을 댈 계획이었습니다.”윤구주를 제외한 문씨 가문이 가장 두려워한상대는 바로 청룡이었다.당시 청룡은 화진의 형법을 완전히 틀어쥐고 오직 윤구주만을 향해 머리를 숙였다.국주 임정설조차 그에게 명령 한 줄 내리지 못할 정도였다.이 때문에 청룡을 말리는 것조차 불가능했던 것이다.“국주 임정설은 문씨 가문이 청룡을 공격할 때 현모와 주작은 보호했지만 백호는 우리 빙신전이 직접 손을 대 지켜내지 못했습니다.”윤구주의 눈썹이 살짝 올라갔다.“내가 들은 바에선 청룡이 내 사해 사건을 알고 혼자 관외로 뛰쳐나가 열 국에게 복수했다더라. 그게 문아름의 계략이었단 말이냐?”천해가 고개를 끄덕이며 입을 열었다.“네. 문씨 가문이 열 국의 고수를 모아 청룡을 공격하게 했지요. 결국 청룡과 열 국이 모두 부상을 입었고 문씨 가문이 그 틈을 타 청룡의 혼을 빼앗아 열 국의 국운을 무너뜨렸습니다.”“문씨 가문이 열 국의 국운을 무너뜨린 이유는 모르겠으나 문아름의 왕위 계승을 위한 발판이었을 겁니다. 큰 그림으론 문씨 가문이 이씨를 대신해 국주가 되는 것도 나쁘지 않을...”“헛소리 말아라! 내가 어린애로 보이느냐?”“문씨 가문은 곤륜의 꼭두각시다!”“그들이 권력을 잡으면 종맹이 화진을 갈가리 찢으려 든다는 계획이 성공할 거 아닌가!”주작이 칼날 같은 목소리로 쏘아붙였다.천해가 손사래를 치며 얼굴이 창백해졌다.“주작 님! 저는 단지 객관적인
일찍 윤구주는 이런 명령을 내린 적이 있었다:화진에 위기가 닥쳤을 때 자신이 다른 일에 잡혀 있다면 사대군신이 수신령을 합체시켜 그 인물을 출동하게 하라!현모와 주작은 윤구주의 눈빛에서 깊은 의도를 읽어내듯 서로를 바라보았다.“저하, 혹시 저하의 생각은...”주작이 목소리를 낮추어 물었다.“난 무사하지 않았느냐. 그는 내 손의 밑천 중 하나야, 일단 청룡부터 찾고 보자.”“청해, 백호는 지금 어떻게 되었나?”윤구주가 팔짱을 끼며 이어 물었다.“사람은 무사합니다만... 저희 빙신전 세자에게 감금당한 상태입니다.”청해가 말을 중간에 끊으며 고개를 숙였다.“계속 말해.”“성자는 바로 우리 빙신전의 후계자이자... 황자의 제자입니다.”“황자?!”현모와 주작은 그 단어에 얼굴이 굳었다. 눈썹이 경련하듯 떨렸다.황자는 왕 급이다. 이론상 구오지존 신급에 도달하면 모두 왕 급으로 칭할 수 있으나 현실에서 인정받는 왕의 인물로 가능한 자는 손가락에 꼽을 정도였다. 극 신급 절정 역시 마찬가지. 황자의 이름은 피로 쓴 칭호였다.지금 백호는 목숨은 건졌으나 황자의 제자에게 옭매인 상태.다른 이라면 주저앉을 상황이었지만 윤구주의 얼굴엔 오히려 흥분이 어렸다.“황자라... 좋아! 그럼 먼저 황자의 제자부터 만나봐야겠네!”군용기가 구변산 기지로 접근하는 동안, 곤륜역 아사신전 영역에서는 신들이 봉인술을 깨트리기 위해 집결했다.봉인이 해제되자 신들은 사자를 곤륜역 밖으로 내보내 정황을 탐색 시켰다.첫눈에 들어온 건 종말산의 모습이었다.얼음으로 뒤덮인 산을 바라보던 아사 신전 신들의 얼굴에는 경악이 스쳤다.“개자식들! 빙신전이 감히 윤구주와 손잡고 우리를 농락하다니!”“문씨 가문의 간계일지도 모른다. 그 늙은이가 귀환한 뒤 빙신전을 끌어들여 우리를 공격하려는 건 아닐까...”신들은 분노로 몸을 떨었으나 이성을 잃지 않았고 일단 문창정에게 연락을 시도했다.결국 아사 신전의 최고신 오딘까지 나섰으나 역시 문창정과의 연락에 실패했고, 이는 그들로
아래에 있던 소장과 여러 교위들은 몸을 더욱 곧게 펴고 서 있었다. 그들의 시선은 모두 기내에 고정되어 있었다. 모두 윤구주가 나타나기를 기다리고 있었다. “알겠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아사 신전은 감히 우리 구주군에게 손을 대지 못할 거예요. 마치 문씨 가문이 저를 제거하기 전에는 감히 제 통솔하에 있는 4대 군신에게 손을 대지 못하는 것처럼요. 제가 시킨 대로 처리하세요. 다른 일은 신경 쓸 필요 없어요.” 윤구주는 모두의 시선을 받으며 기내에서 걸어 나왔다. 그는 진동왕과 통화 중이었다. 진동왕은 아사 신전의 신식을 감지할 수 있었다. 갑자기 이렇게 많은 강대한 기운이 나타나자 당황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래서 그는 즉시 윤구주에게 연락을 취한 것이다. 윤구주의 몇 마디 말은 위로의 의미도 있었다. 어쩔 수 없는 일이었다. 진동왕과 현모, 주작 그리고 다른 장군들은 달랐다. 장군들은 윤구주를 무조건 믿고 명령만 내리면 그대로 따르지만 진동왕 같은 영리한 사람은 달랐다. 그를 달래야 했다. 통화를 마친 윤구주는 군용기에서 내렸다. 소장을 필두로 한 교위들은 일제히 윤구주에게 경례하며 국주를 뵙기 위한 큰절을 올리려 했다. “여기는 군영이다. 군부에서는 군례를 해야지! 이 기본 규칙까지 내가 다시 가르쳐야겠어?” 윤구주가 꾸짖었다. 교위들은 다급하게 군례를 했다. 소장 한 명만 보이자 윤구주는 눈살을 찌푸렸다. 그 이유는 간단했다. 그의 계급이 낮아서 일부 군사 정보를 알지 못했다. 이를 본 소장이 다급하게 말했다. “왕, 흥주에서 긴급 상황이 발생했습니다. 흥주 사령관이 제게 왕을 접대하라고 지시했습니다.” “긴급 상황?” 이때 윤구주는 한 특수 부대가 수송기에 올라 긴급히 이륙하여 구변산 산맥으로 향하는 것을 발견했다. 이상했다. ‘지금 진동왕은 삼주 시장인데 이 일을 왜 나에게 보고하지 않았지?’ 갑작스러운 상황이 발생했을 때 흥주 사령관은 상황을 처리할 권한이 있다. 하지만 단 한 가지, 외적이 국토를 침범했을 때만
윤구주는 기지에 도착했다. 그 소장은 그제야 흥주에서 발생한 일을 보고했다. “조양국이 기회를 노리고 있습니다. 그들은 우리 화진의 규조를 대놓고 훔쳐 가고 우리 흥주도 그들의 국토라고 주장하며 우리가 그들의 땅을 침범했다고 합니다. 지금 군사를 일으켜 흥주를 노리고 있습니다.” 소장이 보고했다. 흥주 사령관은 이 일을 처리하러 갔다. 흥주 전역이 경계 상태에 들어가고 군대는 모두 분계선으로 이동하여 구변산에 집결했다. 외적을 분계선 밖에서 막기 위해서였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이미 일부 적군이 분계선을 넘어온 상태였다. “조양국? 남북 두 나라 모두 소란을 피우려는 건가?” 현모가 물었다. “그렇지는 않습니다. 주로 북양국이고 남양국은 견해를 밝히지 않았습니다. 하지만 그들이 어떤 행동을 할지 알 수 없습니다.” 소장이 대답했다. “걱정하지 마. 조양국은 그런 배짱이 없어. 그냥 어중이떠중이들이 무슨 큰 일을 할 수 있겠어? 역사를 따지면 남북 두 나라는 원래 우리 화진의 속국이었다.” 윤구주는 차갑게 비웃었다. 전에 그가 왕으로 책봉될 때 두 나라는 아첨하며 비위를 맞추기에 바빴다. “왕의 뜻은 뒤에 다른 지시자가 있다는 건가요?” 이때 청해가 나서서 분석했다. “아마도 빙신전이 뒤에서 지시한 것 같습니다. 아뇨, 곤륜 구역에는 신격이 인간 세계에 나라를 세우는 것을 금지했어요. 하지만 성자는 황제의 제자로서 아직 신위를 받지 못했으니 엄밀히 따지면 곤륜 구역의 사람이 아니에요.” 비록 청해는 빙빙 돌려 말했지만 모두가 이해했다. 성자가 나라를 세우려 한다는 것이다. 흥주가 바로 그 국토다. 그리고 신이 직접 인간 세상을 간섭하지 못하게 하는 신규는 사실 인간 세상을 위한 것이 아니라 곤륜 구역의 세력을 제한하기 위한 것이었다. 만약 신들이 모두 나와서 나라를 세우면 세상은 혼란에 빠질 것이다. 질서가 무너지면 이미 배분된 이익이 영향을 받을 것이다. “왕, 제가 나설까요?” 현모의 눈에서 살기가 번뜩였다. 그는 조양국을
문씨 가문의 사람들을 매수한 적이 있고 또 육도진과 관계를 맺었기에 후에 윤구주가 새로운 국주가 될 것이라는 소문이 돌고 이에 따라 윤구주가 흥주에 오자 주승진은 감히 구주왕을 만나지 못했다. 구주왕의 심기를 건드려 목숨을 잃을까 봐 두려웠다. 마침 남조국이 문제를 일으키자 그는 구변산에 숨어 국사를 빌미로 윤구주의 반응을 탐색했다. 하지만 군령이 전해지자 주승진은 즉시 이 군령의 숨은 뜻을 이해했다. 한 마디로 국가에 충성하고 국가를 위해 일한다면 다른 일은 원칙을 어기지만 않으면 구주왕이 일일이 따지지 않는다는 것이다. 주승진은 무릎을 꿇고 윤구주가 있는 방향으로 머리를 조아리며 감탄했다. “역시 구주왕이네. 내가 소인배였어.” 곧이어 주승진은 일어났다. 평소 교활하던 그가 지금은 매우 엄숙한 표정을 지으며 명령을 내렸다. “군령은 절대적이다! 우리 화진 분계선에 들어온 자들은 모두 적으로 간주하여 즉시 처형하라!” “네!” 장군들은 일제히 대답했다. 구변산 방어선은 전면 경계 상태에 들어갔다. 이 긴장된 분위기 속에서 화진 군부에 속하지 않은 한 부대가 구변산 방어선에 들어왔고 지금은 구변산맥의 태백산 아래에 도착했다. 이는 태백산 순찰대가 이들을 발견하고서야 주승진에게 소식을 전한 것이었다. 이때, 한 통의 편지가 주승진의 부장에 의해 군영으로 전달되었다. 주승진은 이미 그들이 누구인지 짐작하고 있었다. 편지에 크게 쓴 남궁 가문이라는 네 글자를 보자 그의 동공이 흔들렸다. 남궁 세가는 화진의 오래된 세가로 현재 입장은 불분명하지만 남궁 세가의 후계자이자 화진 제일의 어린 검술자 남궁서준은 구주왕과 각별한 친분이 있다. 주승진은 곧바로 편지를 뜯었다. 편지는 남궁 세가의 가주인 남궁인이 직접 쓴 것이었다. [화사령, 조양의 두 나라가 꿈틀거리며 최근 우리 화진을 자주 도발하고 우리 화진 분계선을 침범하려는 의도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지만 당신도 알다시피 이 두 작은 나라는 자신들의 일도 제대로 처리하지 못하는데 감히 우리
주승진은 마침내 기운을 차렸다. 한편, 윤구주는 주승진이 전해준 편지를 받았다. “남궁 가문이 태백산으로 갔어!” 윤구주는 더 이상 침착할 수 없었다. 남궁 가문은 그의 계획을 알지 못했다. 남궁 가문은 단지 구주왕이 곤륜 구역의 두 대신전을 동시에 상대해야 하는 압박감을 느끼고 있어 흥주를 돌볼 여유가 없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윤구주가 이미 흥주에 도착했다는 사실을 몰랐다. “주인님, 남궁 세가 말인가요? 그 가문에는 남궁서준만이 그래도 좀 쓸 만하죠. 하지만 그 녀석은 아직 어린데 뭘 하러 갔대요? 목숨을 바치러 갔어요?” 옆에 있던 청해는 입을 쩝쩝거리며 말했다. 말은 거칠지만 현실을 완벽하게 파악하고 있었다. 이번 사건은 남궁 가문 하나가 목숨을 내놓는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었다. 윤구주는 이전 청관 전투에서 남궁 가문이 왜 사람을 보내지 않았는지 궁금했는데 이제야 알았다. 그들은 흥주 전투 상황을 주시하고 있었다. “이제 보니 미리 출발해야겠군.” 윤구주는 즉시 현모를 데리고 태백산으로 향했다. 정보가 부족했지만 이제는 더 이상 시간을 낭비할 수 없었다. 남궁서준은 화진의 큰 인재다. 비범한 인재이자 왕실에서 봉한 어린 후작이다. 화진 무술의 미래를 이끌 인물이며 윤구주가 친동생처럼 여기는 동료다. 그는 절대 위험에 빠져서는 안 된다. 흥주 군무는 주승진에게 맡긴 윤구주는 곧바로 현모와 함께 출발했다. 원래 청해도 따라가려 했지만 윤구주는 그를 흥주에 남겨 두고 지키게 했다. 이것은 청해에게는 좋은 소식이었다. 그가 쓸모가 있다는 뜻이었다. 이용당하는 것은 두렵지 않지만 이용당할 가치조차 없는 것이 더 두려운 것이다. 태백산은 구변산의 최고봉으로 산의 절반은 조양국에 속해 있다. 따라서 조양국이 원한다면 곤륜 구역의 사람들이 여기서 수련해도 화진은 간섭할 수 없다. 이 눈 덮인 산은 빙신전의 황자 제자가 수련하고 은둔하는 곳이다. 하얀 도포를 입고 검을 메고 있는 한 무리의 검객들이 산을 오르고 있었다. 그들은 곤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