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주가 기산으로 갔으니 마씨 가문은 정리됐겠지?”국주는 나직이 물었다.“예, 전하. 구주왕께서 마씨 가문을 뿌리 뽑으셨습니다. 한 놈도 남기지 않고 말이옵니다!”한진모가 웃으며 아뢰었다.“잘했군!”“그럼 다른 제자백가들은 어떤가? 움직임이 있나?”국주가 다시 물었다.“아직 별다른 동향은 없습니다.”“하하하! 과연 구주는 내 기대를 저버리지 않았어!”국주는 통쾌하게 웃음을 터뜨렸다.“다만, 짐이 가장 우려하는 건...”국주는 말끝을 흐렸다.오랜 세월 국주를 섬겨온 한진모가 어찌 국주의 걱정을 모르겠는가. 그가 입을 열었다.“혹시 전하께서는 지금껏 모습을 드러내지 않고 있는 종문 서열을 염려하시는 겁니까?”“그래!”국주는 말을 마치고 건장한 몸을 일으켰다.“너도 알다시피, 화진의 무도 3대 서열 중 종문이 으뜸이요, 세가와 문벌은 그저 말류에 불과하지 않느냐! 우리 화진은 무로써 나라를 세우고 육합을 정벌하였거늘, 이제 문벌과 세가가 들고 일어나니 구주가 홀로 그들을 억누르고 있지 않느냐! 그래서 짐은 종문에서 누군가 나설까 봐 심히 우려스럽다!”한진모는 고개를 조아리며 아뢰었다.“전하께서 염려하시는바, 옳은 말씀이옵니다. 허나 노복은 구주왕을 믿사옵니다! 더욱이 그 뒤에 있는 곤륜 구역을 믿사옵니다! 하옵건대, 우리 구주왕께서는 곤륜 구역의...”여기까지 아뢰던 한진모는 말을 멈추었다. 이 비밀은 지금까지 아는 자가 극히 드물었기 때문이다.국주는 이 말을 듣고 모처럼 웃음을 보였다.“네 말이 맞다. 그 녀석은 과연 짐이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비범하구나... 에휴! 십육 년 전에 저지른 과오가 아니었다면, 지금처럼 그 녀석과 사이가 멀어지지는 않았을 텐데...”한진모가 아뢰었다.“전하, 너무 마음 쓰지 마십시오! 노복은 구주왕께서 전하를 결코 원망치 않으시리라 믿사옵니다!”“그러길 바라야지...”국주는 길게 한숨을 내쉬셨다.그 말이 끝나기 무섭게 한진모는 금란 대전 바깥에서 엄청난 기운이 몰려오는 것을 감지하였다.
“윤씨 일가 윤신우, 전하께 배알 드리옵니다!”윤신우는 금란 대전에 이르러 한쪽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신우야, 어찌 이리 격식을 차리는 게냐! 짐이 전에도 말하지 않았느냐, 너와 짐은 형제와 같으니 이런 큰 예는 필요 없다. 어서 일어나거라!”아무도 예상치 못한 일이었다. 국주는 용상에서 내려와 직접 윤신우를 부축하려 했다.그러나 국주가 윤신우에게 손을 내미는 순간, 윤신우는 몸을 뒤로 물러섰다.“국주님, 이러시면 안 됩니다. 저는 미천한 백성일 뿐, 국주님의 은혜를 감당할 수 없습니다.”냉정한 말투에 국주는 내밀었던 손을 거두었다.차가운 표정의 윤신우를 보며 국주는 씁쓸하게 웃었다. 그리고는 몸을 일으켜 세웠다.“십육 년이 지났는데 아직도 짐을 용서하지 않았구나!”윤신우가 말했다.“감히 그럴 리가 있겠습니까? 전하께서는 천자이시온데 소인이 어찌 감히 전하를 원망하겠습니까?”윤신우의 말에 국주는 다시 씁쓸한 미소를 지었다.그는 이내 한숨을 내쉬며 한진모에게 말했다.“잠시 물러가 있거라. 신우와 단둘이 이야기를 나누고 싶구나.”한진모는 놀란 눈으로 윤신우를 흘끗 보며 무언가 말하려 했다.하지만 국주는 손을 내저었다.“물러나라.”한진모는 어명을 거스를 수 없었다.“그럼 노복은 이만 물러가겠습니다.”말을 마치고 한진모는 금란 대전을 나섰다.넓은 대전 안에는 이제 국주와 윤신우만 남았다. 한진모가 나가자 곤룡포를 입은 국주는 윤신우를 바라보며 말했다.“십육 년이란 시간이 흘렀어! 시간이 참 빠르구나!”감회에 젖은 국주는 금란 대전 계단에 털썩 주저앉았다.그리고 윤신우에게 옆자리를 가리켰다.윤신우도 별다른 생각 없이 다가가 국주 옆에 나란히 앉았다.“신우야, 기억하는가? 짐이 아직 태자였을 때 우리는 이렇게 어깨를 나란히 하고 장난도 치고 천하 대사를 논하기도 했었지...”국주는 옛 추억을 떠올리며 모처럼 밝은 미소를 지었다.“기억하고 있사옵니다.”윤신우가 조용히 대답했다.“어휴, 세월이 쏜살같구나. 어느새
세상 어느 아비가 자식의 행복과 평안을 바라지 않겠는가?윤신우 또한 그랬다.그래서 그는 윤구주가 더 이상 조정의 암투에 휘말리는 것을 원치 않았고 지금 눈앞에 있는 국주의 손아귀에 칼이 되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이미 윤구주는 문벌과 세가를 억누르고 있었다.만약 앞으로 종문까지 나선다면 윤신우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화진 무도의 정점에 있는 종문이었으니 제자백가나 문벌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윤신우의 말을 들은 국주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신우야, 지나치게 염려하는 것이 아니냐? 너와 짐은 막역한 사이가 아니더냐. 네 아들은 곧 과인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러니 과인이 어찌 구주를 해칠 수 있겠느냐?”윤신우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정말입니까?”이 말에 국주는 순간 어색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짐이 어찌 모르겠느냐. 네가 십육 년 전 일을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실은 짐 또한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메인다. 허나 구주를 향한 짐의 마음은 네가 익히 알고 있을 터. 이번 3대 서열의 난에 이 나라를 바로 세울 자는 구주뿐이니라! 그러하매 짐이 구주에게 제왕검을 내린 것이다. 신우야, 짐의 깊은 뜻을 헤아려 주길 바란다.”그의 말에 윤신우가 말했다.“소인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전하의 뜻은 결국 소자에게 팔방을 정벌하고 천하를 평정하여 전하를 대신해 화진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국주는 멋쩍게 웃었으나 반박하지는 않았다.윤신우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전하께서 이미 결정하셨다면 소인 또한 전하께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소자는 화진을 위해, 백성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허나 한 가지, 누구든 감히 소자를 해하려 한다면 소인 윤신우는 이 목숨을 걸고, 윤씨 일가의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그 원통함을 풀어줄 것입니다.”차갑게 말을 마친 윤신우는 국주에게 공손히
“신우 삼촌, 오늘 황성에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제 기억엔 삼촌은 황성에 오신 지 정말 오래되신 것 같은데!”이홍연은 예쁜 눈을 깜빡이며 윤신우를 쳐다보며 물었다.윤신우는 이홍연을 친자식처럼 아꼈기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오늘 전하를 뵈러 왔습니다.”“아, 그러셨군요.”“공주 전하, 소인은 이만 가봐야겠습니다.”윤신우가 말했다.그가 자리를 뜨려 하자, 이홍연이 급히 말했다.“삼촌, 잠시만요!”윤신우는 뒤돌아보며 물었다 “공주 전하,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이홍연은 치맛자락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삼촌, 그 사람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그 사람이라는 말에 윤신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윤씨 일가의 가주인 그가 화진의 공주가 자기 아들을 묻는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구주 말씀이신지요?”이홍연은 얼굴이 발그레해져서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구주는 먼 길을 떠났는데 아직 서울로 돌아오지 않았어요.”윤신우는 솔직하게 말했다.“어? 어디 갔는데요? 왜 내게 말 안 했어요?”이홍연이 서둘러 물었다.노룡산에서의 싸움 이후, 이홍연은 윤구주를 다시 보지 못했다.마씨 가문과 손잡았던 일은 이미 사과했지만 윤구주가 그 유명 배우 은설아와 껴안고 있던 장면이 자꾸만 눈에 밟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래서 이홍연은 황성에 머물며 윤구주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윤구주는 나타나지 않았다.그러니 윤구주가 서울을 떠난 지 며칠이나 됐다는 말에 이홍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솔직히 공주 전하, 구주는 지금 기산에 있습니다.”기산?이홍연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기산엔 왜 갔는데요?”“죄송하지만 공주 전하. 지금은 이유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안심하세요. 구주는 곧 돌아올 겁니다.”윤신우가 말했다.윤구주가 기산에 간 이유를 말해주지 않자 이홍연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그래요. 그럼 돌아오면 삼촌께서 꼭 알려주세요.”“알겠습니다.”
윤씨 성을 듣자 주도는 순간 상황을 파악했다. 공주가 이렇게 묻는 건 윤구주 그 괴짜 녀석 때문이라는 걸 말이다.“영감, 마씨 가문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 빨리 말해 봐요.”이홍연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세력으로 말하자면 수천 년 이어진 마씨 가문의 기관술은 정말 엄청나게 강합니다. 게다가 최고 고수인 시조들도 세 명이나 있어요.”주도의 말을 들은 이홍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럼 그 녀석 혼자 마씨 가문에 갔으니 위험한 거 아니에요?”“어? 딴 놈이 가면 위험천만하겠지만 구주 그 괴물이라면 공주님께선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 녀석 실력이 어마무시하잖아요!”노룡산 싸움을 떠올리면 주도는 아직도 등골이 오싹했다.특히 마지막에 윤구주가 펼친 봉왕팔기의 적선술은 너무 놀라웠다.“영감, 정말 그럴까요?”이홍연이 다급하게 물었다.“당연하죠. 노룡산에서 홀로 오십여 명의 세가 절정 고수들을 몰살시킬 수 있는 자는 종문의 조상들 말고 이 늙은이는 평생 본 적이 없거든요!”주도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그의 자신만만한 말에 이홍연은 웃음을 지었다.“윤 바보만 무사하면 됐어요. 그거면 충분해요!”눈앞의 육공주는 완전히 연애에 빠진 여인의 모습이었다.그녀에게 윤구주만 안전하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다.한참 기분이 좋아하던 이홍연이 갑자기 걱정스레 물었다.“영감, 그 바보가 지난번 노룡산 일 때문에 나를 멀리하지 않을까요?”주객은 헝클어진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음... 그럴 리야 없겠지요.”“왜요?”“공주님은 미모도 훌륭하시고 게다가 귀한 황족이신데 누가 공주님을 마다하겠습니까?”주도는 솔직하게 말했다.“히히! 그 말은 맘에 드네요. 근데 그 바보는 그렇게 생각 안 할 거예요. 걔는 다른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르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둘이 지금처럼 될 수도 없었겠지요.”이홍연은 말을 하다가 슬픔에 잠겼다.“공주님께서는 그 사람의 그런 점을 좋아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주도가 문득 말했다.이홍연은 감개무량한 듯 말했
주도의 말에 이홍연은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고 목까지 붉게 달아올랐다.하지만 주객은 멈추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공주님, 제 말은 경험에서 나온 겁니다. 이 방법은 틀림없이 효과가 있을 테니 믿어 보십시오!”주도가 쉴 새 없이 떠들어 대자 이홍연이 바로 소리쳤다.“입 다물어요. 이 늙은 변태 영감!”말을 마친 이홍연은 돌아서서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영문을 모르는 주도는 헝클어진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왜? 내가 왜 변태야? 내 말은 백번 옳은 말인데.”방 안에서. 방으로 뛰어 들어온 이홍연은 여전히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특히 방금 주도가 꺼냈던 잠자리 얘기가 자꾸 떠오르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의 말도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았다.윤구주처럼 뛰어난 사람에게 주위에 예쁜 여자가 없을 리가 있겠는가?그 미녀 배우나 다른 여인들처럼 말이다.이런 생각에 이홍연은 점점 더 마음이 답답해졌다.“아니, 정말로 그 영감탱이 말대로 그 녀석과 그런 짓을...?”부끄러움에 이홍연의 얼굴은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안 돼! 내 사내를 이 세상 누구에게도 빼앗길 순 없어!”이홍연은 사랑도 미움도 분명히 표현하는 사람이었다.그녀는 결정을 내리자마자 행동으로 옮겼다.“그 바보가 지금 기산에 있다지? 마침 기산에도 가본 적 없는데! 헤헤, 놀러 가는 김에 그놈도 만나고 오면 되겠다!”생각이 정리되자 이홍연은 곧바로 짐을 꾸려 기산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그녀는 윤구주를 만나러 갈 것이다....기산, 마궁한때 웅장함의 극치를 보여주던 마궁의 전각들은 이제 반이나 무너진 채 폐허로 변해 있었다.그 중앙에 우뚝 솟은 웅장한 궁궐 안에서는 놀라운 기운들이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기운이 하늘을 찢을 듯 솟구칠 때마다 사방이 진동했고 주변 산맥의 천지원기까지 궁궐로 빨려 들어갔다.머우! 머우!거침없는 기운 속에서 코끼리의 울음소리 같은 기이한 소리가 궁궐 안에서 울려 퍼졌다.자세
“역시 만상지력이군! 구음은 힘, 구양은 기!구음 구양, 용상합체! 이것이 바로 두 개의 구주령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이었어!”윤구주는 금빛으로 빛나는 눈으로 자신의 두 손을 흥분하며 바라보았다.구음만상결을 수련하기 시작한 이후, 윤구주는 이 기묘한 무공이 자신의 구양진룡결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깨달았다.그의 말처럼 구양은 기, 구음은 힘이었다!만상의 거대한 힘과 구양진기가 합쳐진 윤구주의 공력은 이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경계에 이르렀다.다만 구음만상결을 수련하려면 막대한 양의 천지원기를 흡수해야 했다.지금 기산 주변 백 리 안의 천지원기는 이미 모두 윤구주가 흡수했기에 구음만상결을 완성하려면 더 많은 천지원기가 필요했다.윤구주는 고개를 들고 몸을 일으켜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이곳의 원기는 이제 없다. 더 강력한 원기를 찾아 떠나야겠어!”윤구주가 중얼거렸다.그가 말하는 순간, 마가 궁전 뒤편에서 콰직하는 굉음과 함께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뒤돌아보니 궁궐 바닥에 팔뚝만 한 균열이 생기면서 그 아래 숨겨져 있던 문 하나가 드러났다.“어? 비밀통로인가?”윤구주의 눈이 번뜩이며 갈라진 틈 사이로 드러난 문을 예의주시했다. 아마도 조금 전 구음만상결의 강력한 힘 때문에 지하의 거대한 문이 모습을 드러낸 듯했다. “마씨 가문에 비밀통로가 있었다니.”윤구주가 신념을 펼쳐 살펴보니 그곳에는 거대한 공간이 숨겨져 있었다.잠시 생각에 잠긴 윤구주는 오른손으로 검결을 맺어 비밀통로를 향해 휘둘렀다.슥!절묘한 기검이 허공을 가르며 문을 강타했다.쾅!굉음과 함께 문이 산산이 조각나며 폭발했다.윤구주는 소매를 휘둘러 먼지와 돌 부스러기를 날려 버렸다.그러자 거대한 지하 보물 창고가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곧장 보물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지하 보물 창고는 거대했고 발을 들여놓는 순간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가 느껴졌다. 마치 얼음 동굴에 들어온 것 같았다.보물 창고 안에는 기이한
윤구주의 머릿속에 끔찍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화진은 무력으로 세운 나라였고 제자백가 중 하나인 마씨 가문은 화진의 무도 3대 서열 중 하나였다.어떤 이유에서든 마씨 가문에 설국의 물건이 있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차가운 눈빛으로 거대한 상자들을 노려보던 윤구주는 손을 휘둘렀다.콰직!그의 앞에 있던 거대한 상자 하나가 순식간에 부서졌다.상자가 부서지자 무기, 병장, 그리고 무공 비급 사본들이 쏟아져 나왔다.윤구주가 손을 들어 한 움큼 잡은 순간 무공 비급의 사본들이 모두 그의 손안에 떨어졌다. 고개를 숙여 보니 이 비급들 속에는 화진의 무공 비급들이 가득했다.팔극문, 응조문, 철도문, 오랑팔괘곤, 양가창 등등 온갖 무공 비급들이 다 있었다.정리된 무공 비급들과 상자 안의 무기들을 보자 윤구주의 몸에서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마씨 가문 이놈들이 감히 설국과 내통하다니! 감히 화진의 무학을 몰래 설국으로 빼돌려!!”윤구주의 몸에서 분노와 살기가 폭발했다. 전에는 마씨 가문을 멸하는 것이 너무 잔인한 일이 아닐까 생각했었다.하지만 화진의 수천 년 역사의 무학 정수를 설국과 거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 화진의 진국 전신으로서 그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적국과 내통하다니, 이는 죽어 마땅한 죄를 넘어 구족을 멸해야 할 죄악이었다.차가운 눈빛으로 거대한 상자들을 훑어보니 모든 상자에 설국 황실의 표식이 찍혀 있었다.마씨 가문과 설국의 내통은 이제 명백한 사실이었다.이 모든 것을 바라보며 윤구주의 얼굴에는 살기가 점점 짙어졌다.십 국 전쟁 당시, 얼마나 많은 화진의 용사들이 전장에서 쓰러져 뼈조차 찾지 못했던가!그런데 무도 세가인 마씨 가문은 감히 적국과 내통한 것도 모자라 화진의 무학 정수까지 설국에 넘기다니.이는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었다.윤구주의 눈에서 분노의 화련이 피어났다.“불태워라!”화련금안이 나타나 거대한 상자들에 닿는 순간, 마씨 가문의 지하 창고는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설국으로 보내질
바로 그때, 검은 그림자가 움직였다. “이제야 반응했나? 늦었어. 완전히 죽진 않더라도 반쯤은 죽을 거야.” 호천신은 크게 웃으며 말했다. ‘쿵!’ 검은 그림자는 별다른 고급 기술을 사용하지 않았다. 한 걸음 내디디며 얼음을 깨뜨리고 주먹으로 얼음을 강타했다. 전성기의 진동왕도 죽일 수 있는 술법이 그의 주먹 한 방에 산산조각이 났다. ‘뭐?’ 호천신의 눈알은 툭 튀어나올 뻔했다. ‘단순히 체질과 괴력으로 내 신술을 깨뜨렸다고? 이 자식의 몸이 도대체 얼마나 강한 거야.’ 검은 그림자는 얼음을 깨뜨린 후 세 걸음으로 산을 넘어 십만 대군의 눈앞에서 마치 순간이동이라도 한 듯 눈 깜짝할 사이에 공간을 가로질러 호천신 앞에 나타났다. 후자의 등장이 너무 갑작스러워 호천신조차도 압도당했다. 그는 본능적으로 뒤로 날아가며 거리를 벌렸다. ‘휙!’ 검은 그림자는 바로 뒤따라갔고 이번에는 거의 호천신과 얼굴을 맞대고 마주 보았다. “네가 가짜 신이라고 한 건 바로 그 때문이야! 하류의 잡것이 감히 우리 왕에게 실례를 범하다니.’ 검은 그림자는 한 발의 정통 발차기로 호천신의 복부를 강하게 찼다. 이 한 방에 호천신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그는 뒤로 날아가 땅에 처박히며 먼지를 일으켰다. 이때 십만 대군이 그 검은 그림자를 알아보았다. 그는 바로 화진 남부를 지키는 총사령관이자 구주왕 통솔하에 있는 4대 군신 중 한 명인 현모였다. “현모 장군!” 십만 전사들은 극도로 흥분했다. 그들은 현모가 있는 방향을 향해 일제히 무릎을 꿇었다. “현모 장군을 뵙습니다!” ‘쿵!’ 십만 대군의 진기가 더욱 짙어졌다. 새로 탄생한 국운도 순식간에 한 단계 올라갔다. 그에게 무릎을 꿇은 십만 전사들을 향해 현모는 냉담하게 반응했다. 그는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 “너희 모두 귀가 먹었나? 진동왕이 방금 너희에게 군령을 내렸다. 귀신족 하나라도 놓치면 군법으로 처벌한다.” 이 광경을 다른 사람이 보면 이놈의 현모는 너무 냉정하고 무정하다고 할 것이다
“이 전투는 위태롭구나!” “곤륜 구역의 수련자들은 원래 구주 오방의 무인들보다 한 수 위인데 지금 이 자식의 수련이 나보다 훨씬 높으니 내가 열 번의 공격을 버틸 수 있을지 모르겠어.” 아직 싸우지도 않았는데 진동왕 임성진은 벌써 기가 죽어 있었다. 기세에서 완전히 패배한 상태였다. “음? 임성진, 보아하니 너는 전혀 각오가 되어 있지 않구나. 하지만 상관없지. 각오가 있든 없든 너는 내 상대가 되지 못해. 세 번, 세 번의 공격 안에 너를 죽이지 못하면 난 신이라 부를 자격이 없다!” 호천신은 두 손가락을 세우고 금빛 번개와 붉은 불꽃 두 가지 술법을 하나로 합쳐 아래의 진동왕을 향해 날렸다. “왔다!” 진동왕은 크게 외치며 임씨 가문의 기술을 펼치는 동시에 몸에 지닌 모든 법기를 꺼냈다. 진동왕이 방어를 마친 순간, 호천신의 술법이 코앞까지 다가왔다. 무서운 위력이 사방을 압도했다. 진동왕은 그 기세에 거의 무너질 뻔했다. “막아내!” 진동왕은 필사적으로 외치며 온 힘을 다해 막아냈다. ‘쿵!’ 눈 부신 빛이 천옥의 모든 색을 압도하며 하늘의 절반을 환하게 비추었다. 번개가 미친 듯이 내리치고 붉은 불꽃은 거센 파도처럼 휘몰아쳤다. 산이 흔들리고 땅이 진동하며 폭발음이 사방을 울렸다. 이 천지를 뒤흔드는 소리는 마치 세상을 멸망시키려는 듯했다. 평정을 되찾은 후, 진동왕이 원래 있던 자리는 완전히 초토화되었다. 발 아래 수백 미터의 땅이 유리처럼 녹아 있었다. 몸이 찢어지고 심한 화상을 입은 진동왕은 비틀거리며 거의 쓰러질 뻔했다. 단 한 방에 진동왕은 중상을 입었고 법기는 모두 부서졌다. 법기가 없었다면 그는 그 자리에서 목숨을 잃었을 것이다. “음, 법기를 이용해 내 일격을 막아냈구나. 너의 실력은 인간계의 다른 구오 지존들보다는 한 수 위지만 그뿐이야. 다음 공격으로 너의 목숨을 거두겠다.” 호천신은 허공을 움켜잡았고 천지의 영기가 그의 손바닥으로 모여들었다. 영기가 실체화되어 얼음으로 변했다. 아래의 진동왕은
“소자, 그 말은 잘못되었네. 너희 신들도 결국 사람이잖아? 단지 수련 기술이 좀 더 높을 뿐이지. 게다가 내가 곤륜 구역의 힘으로 구오 지존에 올랐다는 것은 전혀 사실이 아니야. 구주왕이 나를 도와 정상에 오르게 한 거야. 곤륜 구역과는 아무런 상관이 없어. 그리고 곤륜 구역을 공격했다고? 나에게 함부로 죄를 뒤집어씌우지 마! 세상 사람들 모두 알고 있듯이 천옥은 이미 곤륜 구역에서 제명되었어. 우리가 여기에 온 목적은 너희 스스로에게 물어봐야 할 문제야. 너희는 우리 선대 국주와 약속을 했었지. 귀신족은 너희가 직접 처리해야 해. 지금 너희가 움직이지 않으니 우리가 대신 그 약속을 이행하려는 거야.” 진동왕의 말은 모두 일리가 있었지만 천신의 귀에는 단지 웃음거리로 들릴 뿐이었다. “말주변이 좋군. 말은 잘하지만 소용없다. 신도는 죄가 없어. 예나 지금이나 마찬가지야.” 호천신은 냉랭하게 말했다. 진동왕은 욕하고 싶었다. 신도는 죄가 없다. 그것은 봉신방 이후에 정해진 첫 번째 신규였다. 쉽게 말해 모든 해석권은 신계에 있다는 것이다. 신계가 무슨 일을 하든 다른 사람은 간섭할 권리가 없다. 한 마디로 신을 거역하는 자는 용서 없이 죽인다. “임성진, 널 난처하게 하지 않을게. 너희는 귀신족을 죽일 수 없어. 약속에 관해서는 임세현을 불러와. 그의 체면을 봐서라도 나는 그에게 이유를 만들어줄 수 있어. 하지만 너는 그럴 자격이 없어. 너는 육체를 버리고 나를 따라 신계로 돌아가. 표현이 좋다면 전주께서 너의 목숨을 살려줄지도 모르지. 그리고 이 십만 명은 말이지, 하늘은 생명을 소중히 여겨. 벌레의 목숨도 목숨이니까. 하지만 신규가 있으니 신이 규칙을 어기면 벌을 받아야 하고 인간은 더욱 천지 신도를 지켜야 해! 십만 명은 너희 스스로 처리해. 마지막으로 죽는 만 명은 천옥을 떠날 수 있어. 물론 너희는 거절할 권리가 있어. 거절의 결과는 내가 더 설명할 필요가 없겠지?” 호천신은 조용히 아래의 십만 명을 바라보았다. 십만 명이 놀라움에서
‘쿵!’ 현모는 천옥을 뚫고 나와 산을 들이받으며 전장으로 향했다. 천옥 전법 안에서 수옥인이 분노했다. “구주왕! 저 자식이 감히 나를 협박한 거야?” 윤구주는 놀랐다. ‘이 겁쟁이에게도 성격이 있네?’ “오! 진흙으로 만든 사람도 화를 낸다더니, 하물며 당신 같은 ‘신'은 말할 것도 없겠지!” 윤구주는 놀리듯 말했다. “뭐? 무슨 소리야. 내가 말하고 싶은 건 당신 부하인 그 전신이 한 손가락만 까딱해도 나를 죽일 수 있다는 거야. 그런데 그가 나보고 당신을 보호하라고 하다니? 당신이 문제 생기면 나를 죽이겠다니? 이게 무슨 말도 안 되는 소리야! 이건 사람 잡는 짓이야! 당신이 나 대신 결정을 내려야 해!” 수옥인은 화를 내며 말했다. ‘젠장!’ 윤구주는 어이없다는 듯이 고개를 저었다. 수옥인은 더욱 기세를 올렸다. “조상님! 당신 부하 머리에 구멍이 뚫린 거 아니야? 그들이 진짜 당신을 죽일 수 있다면 내가 무사할 수 있을까? 말하기 전에 머리 좀 쓰지!” 수옥인은 억울하다는 듯이 말했다. “저리 가! 나한테 말 걸지 마!” 윤구주는 이 쓰레기 같은 놈을 상대하기 싫었다. 귀산에는 검은 안개가 자욱하고 검은 연기가 대지를 뒤덮었다. 번개가 치고 천둥이 울리는 가운데 하나의 신의 형상이 나타났다. 그 형상은 번개 빛에 의해 무한히 길게 늘어져 땅에 비친 그림자가 산보다 더 높았다. 십만 전사들은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무슨 요괴나 귀신이 오든 간에 그저 죽이면 그만이었다. 진동왕의 표정이 변했다. 그의 얼굴은 심각해졌다. 무지한 자는 두려움이 없다. 전사들을 무지하다고 표현하는 것은 듣기 좋지 않지만 현재 상황에서 전사들이 두려워하지 않는 것은 이번에 온 ‘신'이 얼마나 강한지 모르기 때문이었다. “이 기운은 이미 절정에 달했어. 안 되겠어. 이번에 온 건 구오 지존 대원만의 신경이야!” “이 한 걸음을 넘어서면 그는 극전 신경이 될 거야!” 진동왕은 얼마 전에야 구오 지존 신경에 진급했다. 그것도 윤
희미한 노인의 모습이 투영되었다. “윤구주, 시간이 없으니 간단히 말하겠다! 내가 누군지 묻지 마. 너는 단지 곤륜 구역의 한 대신전에서 구오 지존 대원만 경지의 천신을 보내 너를 막으려 한다는 것만 알면 돼. 그의 목적은 너를 죽이는 것이 아니라 단지 상황을 어지럽히려는 것이야. 어떻게 결정할지는 네가 정해. 우리 쪽에서는 이미 너를 위해 많은 것을 얻어냈다. 그렇지 않으면 온 것이 구오 경지가 아니었을 거야.” 투영은 급하게 왔다가 수옥인이 인사할 틈도 없이 빠르게 사라졌다. “신전이 너의 계획을 방해하려 해. 이것은 이미 누군가가 너를 위해 얻어낸 결과야. 원래 그들은 너를 죽이려 했었어. 아마 오려는 자는 극전 신경, 황자였을 거야.” 수옥인은 또다시 놀라움을 금치 못했다. 윤구주의 반응은 평범했다. 그는 수옥인의 겁에 질린 모습을 보며 경멸하는 듯 말했다. “고작 신전 하나에 겁먹었어? 너도 여섯 신전 중 하나에서 나왔다는 걸 잊지 마! 또한, 극전 신경은 하나의 경계고 황자는 또 다른 경계야. 모든 극전 신경이 황자라 불릴 수 있는 것은 아니야.” 이 둘의 관계는 진동왕이 왕이지만 왕이라 불릴 만한 자격이 충분하지 않은 것과 같다. 화전에서 현재 인정받는 왕은 윤구주 단 한 명뿐이다. 국주 임정설은 무계에서의 영향력이 부족해 겨우 절반 정도로 간주된다. “비록 그렇다고 해도 상대는 기세가 등등하니 가볍게 볼 수 없어. 내가 그 사람이었으면 너를 찾지 않고 네 부하 전사들을 노렸을 거야.” 수옥인은 분석했다. 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수옥인이 비록 겁이 많지만 머리는 좋다고 생각했다. “그들은 내가 지금 너를 도와 전법을 안정시키고 있다는 것까지 계산했어. 그 천술이 아직 사라지지 않았고 곤륜 구역의 그 자식이 여길 계속 주시하고 있어. 내가 나가면 그 사람은 전법을 조작할 거야. 그들이 현모가 아직 살아있다는 것을 계산했는지는 모르겠네.” 윤구주는 눈을 가늘게 뜨고 서 있는 현모를 바라보았다. 말이 이 정도까지 나왔는데도
전쟁은 순조롭게 진행되고 있었다. 하지만 이럴 때일수록 윤구주는 의심이 들었다. ‘곤륜 구역이 정말 내 뜻대로 움직인다고? 귀신족을 노예로 여기고 귀신족의 음기를 받드는 ‘신’들이 귀신족이 자신에 의해 멸망하는 것을 가만히 보고만 있을까?’ “왜 그래, 조상님? 문제라도 있어? 왜 그렇게 표정이 심각하신 거야?” 분위기가 이상함을 느낀 수옥인은 의아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무 일도 아니야. 너는 저쪽 전장을 잘 지켜보고 어떤 움직임이라도 있으면 즉시 나에게 알려.” 윤구주는 고개를 저으며 정신을 집중해 다시 전법을 수리하기 시작했다. 천옥, 끝없는 산악 지대 깊은 곳에 음침하고 죽음의 기운이 감도는 어두운 산이 있었다. 하늘에서 보면 그 산은 마치 해골처럼 무섭게 보였다. 이 ‘해골' 모양의 산은 바로 귀신족의 대영이었고 이 종족의 마지막 거주지인 귀산이었다. “죽여라!” 산 위에서는 함성이 귀를 찢을 듯했다. 십만 대군이 각기 전장을 이끌며 산을 공격해 귀신족을 상대로 마지막 전투를 벌이고 있었다. 이는 귀신족 수련자들을 깜짝 놀라게 했다. 인간 전사들이 감히 신계로 들어왔다는 것, 특히 단독 군대가 이렇게나 강한 기세를 보인다는 것이었다. 수옥인의 투영이 바로 이 귀산에 있었다. 그는 수백 미터 상공에 떠서 전장 전체를 내려다보고 있었다. 특히 이 인간 대군이 지닌 군대의 살벌한 기운은 그를 놀라게 했다. “천옥은 비록 곤륜 구역에서 벗어났지만 여전히 신계로 간주한다. 이곳은 인간계가 아니다. 신조차도 인간계에 가면 적응하기 어려울 텐데 이들은 어떻게 천지의 영기에 영향을 받지 않는 걸까?” 수옥인은 이곳의 격렬한 천지의 영기가 생명체가 살기에 적합하지 않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극도로 불안정한 영기는 쉽게 사람의 정신을 붕괴시킬 수 있었다. ‘하지만 도대체 어떤 훈련을 통해 이 군대가 이렇게 무적의 의지를 갖게 된 것일까?’ 수옥인은 이 순간 앞에 진정한 무서운 아수라 지옥이 있다고 해도 이 인간 전사들은 두려움 없이
“할아버지, 이건 제가 자초한 거예요. 설령 오빠가 제가 오빠를 배신한 걸 신경 쓰지 않는다 해도 제가 오빠의 부하 장군과 병사들을 억울하게 해쳤다는 것만으로도 오빠는 저를 용서할 수 없을 거예요. 이런 말은 소용없어요. 지난 일은 지나간 일이에요. 가끔 추억하는 것도 좋지만 그 추억에만 매달려서는 안 돼요. 오빠는 이미 천옥에 들어갔을 거예요. 이제쯤이면 선우진웅을 처단했겠죠. 잘됐네요. 선우진웅이 임세현을 죽였고 윤구주가 선우진웅을 죽였으니 임세현의 원수를 갚은 셈이에요. 이 화진을 어지럽힌 대적을 처단했으니 임세현도 죽어서 눈을 감을 수 있을 거예요.” 문아름의 눈에는 음흉한 눈빛이 번뜩였다. 모든 것이 그녀의 완벽한 계획 속에 있었다. 문창정은 할 말을 잃었다. ‘또 윤구주가 영웅이 되게 했구나.’ “얘야, 지금 귀신족은 진동왕 하나도 막기 힘들어하고 있어. 그 십만 대군은 귀신족을 개죽이듯 죽이고 있지. 설령 곤륜 구역에서 강자를 보낸다 해도 곤륜 구역의 성격상 칼이 목에 닿기 전에는 절대 상황이 얼마나 급박한지 깨닫지 못해. 보낸 사람은 윤구주에게 밥이 될 뿐일 거야.” 문창정이 말했다. 이 말을 들은 문아름은 차가운 미소를 지었다. “그래서 제가 다른 계획을 준비했어요. 이미 한 명의 사사를 보냈어요. 이번에는 윤구주를 죽이지 못하더라도 천옥에 가둘 거예요. 일 년만 가두면 오빠가 나왔을 때는 이미 모든 게 늦은 뒤일 거예요.” “오? 만약 가두지 못한다면? 만약 윤구주가 무슨 수를 써서라도 나온다면?” 문창정은 눈을 가늘게 뜨며 물었다. “그럼 더 좋아요. 나오려면 윤구주는 정원을 희생해야 할 거예요. 한 사람의 힘으로 천재를 이겨내야 하죠. 나와도 거의 폐인이 될 거예요. 그때 제가 다시 계획을 세워 오빠를 천인 오쇠로 만들고 종문 동맹이 나서 오빠를 몰락시키면 되죠! 저는 오빠가 몰락하는 장면을 기록해 모든 화진 사람에게 영웅이 되는 것의 결말이 어떤 건지 보여주겠어요!” 이 말을 들은 문창정은 손녀의 계획을 짐작했다. 윤
화진의 국경에는 광활한 산맥 끝없이 펼쳐져 있다. 추운 겨울이 찾아왔고 눈이 산을 뒤덮었다. 문아름은 산꼭대기에 앉아 고대의 거문고를 어루만졌다. 그녀의 마음은 어느새 옛날로 돌아갔다. 화진 제일의 교활한 여자라 불리며 음흉하고 독한 성격으로 유명한 그녀였지만 지금 그녀의 눈에는 따스함이 가득했다. 문창정이 눈길을 밟으며 다가와 문아름에게 순백의 겉옷을 걸쳐주었다. “날이 추워졌으니 몸을 따뜻하게 해.” 문창정은 걱정스럽게 말했다. 문아름이 반응이 없자 그녀의 정신이 이곳에 있지 않음을 알았다. 그는 거문고를 한 번 보고는 모든 것을 깨달았다. “또 그 사람을 생각하는구나. 아직도 그 사람을 잊지 못했어.” 문창정은 한숨을 쉬며 말했다. 이 말을 듣고 문아름은 정신을 차렸다. “이 거문고는 그 사람이 저에게 준 거예요. 그때 저는 국방부 참모로 남부 왜구의 난을 담당했고 국주를 위해 계책을 내놓곤 했죠. 그 사람도 그때 막 중령으로 진급했을 때였어요. 고작 한 명의 단장에 불과했죠. 할아버지가 직접 그 사람에게 전화를 걸어 우리 문씨 가문의 딸을 얻으려면 최소한 장군은 되어야 한다고 말했던 것도 기억나요. 그 후, 그 사람은 혼자 왜적의 대영으로 쳐들어가 화진 남부를 어지럽히던 왜적의 수뇌부를 전멸시켰어요. 그 공로로 소장으로 진급했고 화진에서 가장 젊은 장군이 되었죠. 하지만 할아버지, 그거 알아요? 그 사람이 장군이 된 후에도 국주가 준비한 경축 연회에 참석하지 않고 밤새도록 서울로 날아가 재상부에 잠입해 육도진의 가보인 이 거문고를 훔쳐 와 저를 만났어요.” 이 말을 하며 문아름은 입을 가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육도진은 화가 단단히 났어요. 그 늙은이도 고집이 세서 구주 오빠를 처벌하려고 했어요. 구주 오빠는 어떤 사람인데요. 저를 위해 훔치고 빼앗아도 이치에 맞지 않음을 알면서도 육 우상을 쳐다보지 않았어. 이 일이 너무 커져 결국 국주가 직접 나서서 중재했죠.” 이 말을 듣고 문창정은 고개를 저었다. “국주가 나선 건 겉보
“그래, 내 부하인 네 명의 군신 중에서 현모가 왕실과 가장 가까운 관계야. 임세현 선배가 현모를 구한 것도 예상했던 일이지. 만약 사해에서의 전투에서 내가 정말로 죽었다면 왕실은 다른 세 명의 군신을 움직일 수 없어서 현모를 대장으로 삼아 국주를 보필했을 거야.” 윤구주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그래, 말하자면 네 부하인 현모는 정말 운이 좋은 놈이야. 행운은 불행을 따라오는 법이지. 임세현이 현모를 가르쳐 구오 지존 경지에 이르게 했고 이 천옥에서 평생의 철학을 전수했어. 그 노인은 자신의 경험과 깨달음까지 전해주어서 현모가 구오 지존 경지에 이를 수 있었던 거야!” 수옥인은 입맛을 다시며 말했다. 말을 나누는 사이에 천옥의 전법 중심에 도착했다. 전법은 수백 개의 법기로 구성되어 있다. 수만 개의 부적이 연결되어 대진을 이루고 있었다. 수옥인은 중심에 앉아 전법을 안정시키기 위해 애쓰고 있었다. 윤구주는 도착하자마자 진기의 흐름이 이상하다는 것을 알아차렸다. 사악한 기운이 침투한 것이 분명했다. 잠시 관찰한 후 대략적인 상황을 파악했다. “결국 문씨 가문이 무력으로 전법을 깨뜨려서 전법이 손상된 거로군. 곤륜 구역의 이 자식들, 이렇게 큰 전법을 만들어 놓고는 전법의 비밀을 철저히 감추고 있어. 같은 곤륜 구역 출신인데도 이렇게 경계하는 걸 보니 대체 무슨 비밀이 있는 거지?” 윤구주는 불쾌한 표정을 지었다. “조상님, 그런 건 나도 잘 모르겠어. 내 위치에서는 그런 걸 알 자격도 없어. 어쨌든 곤륜 구역은 예전부터 그랬지. 아무도 진정으로 곤륜 구역을 통일할 수 없었어. 잠시 딴소리를 하자면 예전에 일이 너무 커졌었어. 천술을 남용하고 천지의 기운이 혼란에 빠져 모두가 고통받는 것을 막기 위해 봉신방을 만들어 인간계와 신계를 나눈 거야.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까지 이 세상이 얼마나 혼란스러웠을지 상상이 안 가.” 수옥인은 고개를 저으며 한숨을 쉬었다. 윤구주는 이 말을 듣고 더욱 불쾌해졌다. 진실은 전혀 그렇지 않았지만 수옥인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