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어느 아비가 자식의 행복과 평안을 바라지 않겠는가?윤신우 또한 그랬다.그래서 그는 윤구주가 더 이상 조정의 암투에 휘말리는 것을 원치 않았고 지금 눈앞에 있는 국주의 손아귀에 칼이 되는 것도 바라지 않았다.이미 윤구주는 문벌과 세가를 억누르고 있었다.만약 앞으로 종문까지 나선다면 윤신우는 걱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수천 년 동안 이어져 온 화진 무도의 정점에 있는 종문이었으니 제자백가나 문벌과는 비교도 할 수 없는 존재였기 때문이다.윤신우의 말을 들은 국주는 옅은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신우야, 지나치게 염려하는 것이 아니냐? 너와 짐은 막역한 사이가 아니더냐. 네 아들은 곧 과인의 아들이기도 하다. 그러니 과인이 어찌 구주를 해칠 수 있겠느냐?”윤신우는 차가운 미소를 지으며 되물었다.“정말입니까?”이 말에 국주는 순간 어색한 기색을 감추지 못하고 한숨을 쉬었다.“짐이 어찌 모르겠느냐. 네가 십육 년 전 일을 아직도 마음에 담아두고 있다는 것을 말이다! 실은 짐 또한 그 일을 생각할 때마다 가슴이 메인다. 허나 구주를 향한 짐의 마음은 네가 익히 알고 있을 터. 이번 3대 서열의 난에 이 나라를 바로 세울 자는 구주뿐이니라! 그러하매 짐이 구주에게 제왕검을 내린 것이다. 신우야, 짐의 깊은 뜻을 헤아려 주길 바란다.”그의 말에 윤신우가 말했다.“소인이 어찌 모르겠습니까. 전하의 뜻은 결국 소자에게 팔방을 정벌하고 천하를 평정하여 전하를 대신해 화진을 지키라는 것이 아니겠습니까!”국주는 멋쩍게 웃었으나 반박하지는 않았다.윤신우는 갑자기 자리에서 일어나 우렁찬 목소리로 말했다.“전하께서 이미 결정하셨다면 소인 또한 전하께 한 말씀 올리겠습니다! 소자는 화진을 위해, 백성을 위해 무엇이든 할 수 있습니다. 목숨까지도 아끼지 않을 것입니다! 허나 한 가지, 누구든 감히 소자를 해하려 한다면 소인 윤신우는 이 목숨을 걸고, 윤씨 일가의 모든 것을 걸고서라도 반드시 그 원통함을 풀어줄 것입니다.”차갑게 말을 마친 윤신우는 국주에게 공손히
“신우 삼촌, 오늘 황성에는 무슨 일로 오셨어요? 제 기억엔 삼촌은 황성에 오신 지 정말 오래되신 것 같은데!”이홍연은 예쁜 눈을 깜빡이며 윤신우를 쳐다보며 물었다.윤신우는 이홍연을 친자식처럼 아꼈기에 온화한 미소를 지으며 답했다.“오늘 전하를 뵈러 왔습니다.”“아, 그러셨군요.”“공주 전하, 소인은 이만 가봐야겠습니다.”윤신우가 말했다.그가 자리를 뜨려 하자, 이홍연이 급히 말했다.“삼촌, 잠시만요!”윤신우는 뒤돌아보며 물었다 “공주 전하, 더 하실 말씀이라도 있으십니까?”이홍연은 치맛자락을 만지작거리며 잠시 생각하다 말했다.“삼촌, 그 사람은... 요즘 어떻게 지내세요?”그 사람이라는 말에 윤신우의 입가에 미소가 걸렸다. 윤씨 일가의 가주인 그가 화진의 공주가 자기 아들을 묻는다는 것을 모를 리 없었다.“구주 말씀이신지요?”이홍연은 얼굴이 발그레해져서 부정도 긍정도 하지 않았다.“구주는 먼 길을 떠났는데 아직 서울로 돌아오지 않았어요.”윤신우는 솔직하게 말했다.“어? 어디 갔는데요? 왜 내게 말 안 했어요?”이홍연이 서둘러 물었다.노룡산에서의 싸움 이후, 이홍연은 윤구주를 다시 보지 못했다.마씨 가문과 손잡았던 일은 이미 사과했지만 윤구주가 그 유명 배우 은설아와 껴안고 있던 장면이 자꾸만 눈에 밟혀 마음이 편치 않았다.그래서 이홍연은 황성에 머물며 윤구주가 찾아오기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런데 이렇게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도 윤구주는 나타나지 않았다.그러니 윤구주가 서울을 떠난 지 며칠이나 됐다는 말에 이홍연은 놀랄 수밖에 없었다.“솔직히 공주 전하, 구주는 지금 기산에 있습니다.”기산?이홍연은 깜짝 놀라며 물었다.“기산엔 왜 갔는데요?”“죄송하지만 공주 전하. 지금은 이유를 말씀드릴 수 없습니다. 하지만 안심하세요. 구주는 곧 돌아올 겁니다.”윤신우가 말했다.윤구주가 기산에 간 이유를 말해주지 않자 이홍연은 잠시 생각한 뒤 말했다.“그래요. 그럼 돌아오면 삼촌께서 꼭 알려주세요.”“알겠습니다.”
윤씨 성을 듣자 주도는 순간 상황을 파악했다. 공주가 이렇게 묻는 건 윤구주 그 괴짜 녀석 때문이라는 걸 말이다.“영감, 마씨 가문 세력이 얼마나 강한지 빨리 말해 봐요.”이홍연이 걱정스럽게 물었다.“세력으로 말하자면 수천 년 이어진 마씨 가문의 기관술은 정말 엄청나게 강합니다. 게다가 최고 고수인 시조들도 세 명이나 있어요.”주도의 말을 들은 이홍연의 얼굴이 하얗게 질렸다.“그럼 그 녀석 혼자 마씨 가문에 갔으니 위험한 거 아니에요?”“어? 딴 놈이 가면 위험천만하겠지만 구주 그 괴물이라면 공주님께선 걱정 안 하셔도 됩니다. 그 녀석 실력이 어마무시하잖아요!”노룡산 싸움을 떠올리면 주도는 아직도 등골이 오싹했다.특히 마지막에 윤구주가 펼친 봉왕팔기의 적선술은 너무 놀라웠다.“영감, 정말 그럴까요?”이홍연이 다급하게 물었다.“당연하죠. 노룡산에서 홀로 오십여 명의 세가 절정 고수들을 몰살시킬 수 있는 자는 종문의 조상들 말고 이 늙은이는 평생 본 적이 없거든요!”주도는 입을 삐죽거리며 말했다.그의 자신만만한 말에 이홍연은 웃음을 지었다.“윤 바보만 무사하면 됐어요. 그거면 충분해요!”눈앞의 육공주는 완전히 연애에 빠진 여인의 모습이었다.그녀에게 윤구주만 안전하다면 다른 건 아무래도 좋았다.한참 기분이 좋아하던 이홍연이 갑자기 걱정스레 물었다.“영감, 그 바보가 지난번 노룡산 일 때문에 나를 멀리하지 않을까요?”주객은 헝클어진 머리를 긁적이며 대답했다.“음... 그럴 리야 없겠지요.”“왜요?”“공주님은 미모도 훌륭하시고 게다가 귀한 황족이신데 누가 공주님을 마다하겠습니까?”주도는 솔직하게 말했다.“히히! 그 말은 맘에 드네요. 근데 그 바보는 그렇게 생각 안 할 거예요. 걔는 다른 사람들과는 완전히 다르니까. 그렇지 않았다면 우리 둘이 지금처럼 될 수도 없었겠지요.”이홍연은 말을 하다가 슬픔에 잠겼다.“공주님께서는 그 사람의 그런 점을 좋아하시는 것 아니겠습니까?”주도가 문득 말했다.이홍연은 감개무량한 듯 말했
주도의 말에 이홍연은 얼굴이 홍당무처럼 빨개졌고 목까지 붉게 달아올랐다.하지만 주객은 멈추지 않고 계속 말을 이었다.“공주님, 제 말은 경험에서 나온 겁니다. 이 방법은 틀림없이 효과가 있을 테니 믿어 보십시오!”주도가 쉴 새 없이 떠들어 대자 이홍연이 바로 소리쳤다.“입 다물어요. 이 늙은 변태 영감!”말을 마친 이홍연은 돌아서서 방으로 뛰어 들어갔다.영문을 모르는 주도는 헝클어진 머리를 긁적이며 중얼거렸다.“왜? 내가 왜 변태야? 내 말은 백번 옳은 말인데.”방 안에서. 방으로 뛰어 들어온 이홍연은 여전히 얼굴이 붉게 달아올라 있었다.특히 방금 주도가 꺼냈던 잠자리 얘기가 자꾸 떠오르면서 아무리 생각해도 말이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다시 생각해 보니, 그의 말도 어느 정도 맞는 것 같았다.윤구주처럼 뛰어난 사람에게 주위에 예쁜 여자가 없을 리가 있겠는가?그 미녀 배우나 다른 여인들처럼 말이다.이런 생각에 이홍연은 점점 더 마음이 답답해졌다.“아니, 정말로 그 영감탱이 말대로 그 녀석과 그런 짓을...?”부끄러움에 이홍연의 얼굴은 더욱 붉게 달아올랐다.“안 돼! 내 사내를 이 세상 누구에게도 빼앗길 순 없어!”이홍연은 사랑도 미움도 분명히 표현하는 사람이었다.그녀는 결정을 내리자마자 행동으로 옮겼다.“그 바보가 지금 기산에 있다지? 마침 기산에도 가본 적 없는데! 헤헤, 놀러 가는 김에 그놈도 만나고 오면 되겠다!”생각이 정리되자 이홍연은 곧바로 짐을 꾸려 기산으로 떠날 채비를 했다.그녀는 윤구주를 만나러 갈 것이다....기산, 마궁한때 웅장함의 극치를 보여주던 마궁의 전각들은 이제 반이나 무너진 채 폐허로 변해 있었다.그 중앙에 우뚝 솟은 웅장한 궁궐 안에서는 놀라운 기운들이 하늘로 치솟고 있었다.기운이 하늘을 찢을 듯 솟구칠 때마다 사방이 진동했고 주변 산맥의 천지원기까지 궁궐로 빨려 들어갔다.머우! 머우!거침없는 기운 속에서 코끼리의 울음소리 같은 기이한 소리가 궁궐 안에서 울려 퍼졌다.자세
“역시 만상지력이군! 구음은 힘, 구양은 기!구음 구양, 용상합체! 이것이 바로 두 개의 구주령에 숨겨진 놀라운 비밀이었어!”윤구주는 금빛으로 빛나는 눈으로 자신의 두 손을 흥분하며 바라보았다.구음만상결을 수련하기 시작한 이후, 윤구주는 이 기묘한 무공이 자신의 구양진룡결과 완벽하게 조화를 이룬다는 것을 깨달았다.그의 말처럼 구양은 기, 구음은 힘이었다!만상의 거대한 힘과 구양진기가 합쳐진 윤구주의 공력은 이제 이전과는 비교도 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경계에 이르렀다.다만 구음만상결을 수련하려면 막대한 양의 천지원기를 흡수해야 했다.지금 기산 주변 백 리 안의 천지원기는 이미 모두 윤구주가 흡수했기에 구음만상결을 완성하려면 더 많은 천지원기가 필요했다.윤구주는 고개를 들고 몸을 일으켜 날카로운 눈빛으로 사방을 둘러보았다.“이곳의 원기는 이제 없다. 더 강력한 원기를 찾아 떠나야겠어!”윤구주가 중얼거렸다.그가 말하는 순간, 마가 궁전 뒤편에서 콰직하는 굉음과 함께 무언가 갈라지는 소리가 들렸다.뒤돌아보니 궁궐 바닥에 팔뚝만 한 균열이 생기면서 그 아래 숨겨져 있던 문 하나가 드러났다.“어? 비밀통로인가?”윤구주의 눈이 번뜩이며 갈라진 틈 사이로 드러난 문을 예의주시했다. 아마도 조금 전 구음만상결의 강력한 힘 때문에 지하의 거대한 문이 모습을 드러낸 듯했다. “마씨 가문에 비밀통로가 있었다니.”윤구주가 신념을 펼쳐 살펴보니 그곳에는 거대한 공간이 숨겨져 있었다.잠시 생각에 잠긴 윤구주는 오른손으로 검결을 맺어 비밀통로를 향해 휘둘렀다.슥!절묘한 기검이 허공을 가르며 문을 강타했다.쾅!굉음과 함께 문이 산산이 조각나며 폭발했다.윤구주는 소매를 휘둘러 먼지와 돌 부스러기를 날려 버렸다.그러자 거대한 지하 보물 창고가 그의 눈앞에 모습을 드러냈다. 그는 곧장 보물 창고 안으로 들어갔다.지하 보물 창고는 거대했고 발을 들여놓는 순간 뼛속까지 파고드는 냉기가 느껴졌다. 마치 얼음 동굴에 들어온 것 같았다.보물 창고 안에는 기이한
윤구주의 머릿속에 끔찍한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화진은 무력으로 세운 나라였고 제자백가 중 하나인 마씨 가문은 화진의 무도 3대 서열 중 하나였다.어떤 이유에서든 마씨 가문에 설국의 물건이 있다는 것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차가운 눈빛으로 거대한 상자들을 노려보던 윤구주는 손을 휘둘렀다.콰직!그의 앞에 있던 거대한 상자 하나가 순식간에 부서졌다.상자가 부서지자 무기, 병장, 그리고 무공 비급 사본들이 쏟아져 나왔다.윤구주가 손을 들어 한 움큼 잡은 순간 무공 비급의 사본들이 모두 그의 손안에 떨어졌다. 고개를 숙여 보니 이 비급들 속에는 화진의 무공 비급들이 가득했다.팔극문, 응조문, 철도문, 오랑팔괘곤, 양가창 등등 온갖 무공 비급들이 다 있었다.정리된 무공 비급들과 상자 안의 무기들을 보자 윤구주의 몸에서 엄청난 살기가 뿜어져 나왔다.“마씨 가문 이놈들이 감히 설국과 내통하다니! 감히 화진의 무학을 몰래 설국으로 빼돌려!!”윤구주의 몸에서 분노와 살기가 폭발했다. 전에는 마씨 가문을 멸하는 것이 너무 잔인한 일이 아닐까 생각했었다.하지만 화진의 수천 년 역사의 무학 정수를 설국과 거래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지금, 화진의 진국 전신으로서 그는 도저히 참을 수 없었다.적국과 내통하다니, 이는 죽어 마땅한 죄를 넘어 구족을 멸해야 할 죄악이었다.차가운 눈빛으로 거대한 상자들을 훑어보니 모든 상자에 설국 황실의 표식이 찍혀 있었다.마씨 가문과 설국의 내통은 이제 명백한 사실이었다.이 모든 것을 바라보며 윤구주의 얼굴에는 살기가 점점 짙어졌다.십 국 전쟁 당시, 얼마나 많은 화진의 용사들이 전장에서 쓰러져 뼈조차 찾지 못했던가!그런데 무도 세가인 마씨 가문은 감히 적국과 내통한 것도 모자라 화진의 무학 정수까지 설국에 넘기다니.이는 용서받지 못할 죄악이었다.윤구주의 눈에서 분노의 화련이 피어났다.“불태워라!”화련금안이 나타나 거대한 상자들에 닿는 순간, 마씨 가문의 지하 창고는 순식간에 불바다로 변했다.설국으로 보내질
설국은 감히 화진을 범했던 십 국 중 하나였다.비록 윤구주가 흑여 산맥에서 백만 정예를 도륙하였지만 화진의 용사 또한 수만 명이 목숨을 잃었다.바로 그 전쟁 때문에 윤구주는 분노에 차 홀로 설국 황성에 뛰어들어 설국의 선왕을 베어버린 것이다.그 후로 설국은 삼만 리를 물러나 항복하였고 설국의 왕실 수천 명이 윤구주에게 목숨을 구걸했다.그런데 십 국 전쟁이 끝난 지 6년이 지난 오늘, 그 보잘것없는 나라가 감히 다시 화진을 넘보다니.이 어찌 윤구주의 분노를 사지 않을 수 있겠는가.화진의 구주왕으로서 윤구주는 사사로운 안위는 돌보지 않을지언정 이 땅의 백성을 외면할 수는 없었다.이를테면 이번 마씨 가문은 감히 국보와 같은 무학의 정수를 몰래 설국으로 빼돌려 설국 놈들에게 전수하였다.이것은 무엇을 의미하는가?이것은 설국 군사들은 화진의 무공을 익혀 전장에 나서서 우리 백성을 도륙할 것이라는 뜻이다.그러니 윤구주가 어찌 좌시할 수 있겠는가.“설국, 네놈들은 내 손에 다시 한번 멸망의 쓴맛을 보게 될 것이다!”윤구주가 얼음장 같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는 이미 폐허가 된 마궁을 냉정한 눈빛으로 훑어보며 말했다.“마씨 가문은 멸문당해 마땅하다! 다만 감히 적국과 내통하다니 그 죄 만 번 죽어도 부족할 것이다!”말이 끝나기 무섭게 그의 몸에서 웅장한 천지의 기운이 폭발하듯 뿜어져 나왔다.곧이어 윤구주는 차갑게 코웃음을 치며 외쳤다“술현지, 반산!”그가 두 손을 맞잡는 순간 천지가 변색하더니 보이지 않는 거대한 손이 마궁의 대지를 찢는 듯 굉음을 내며 거대한 균열이 마궁 한가운데를 갈라놓았다. 균열은 순식간에 십 장, 오십 장으로 뻗어 나가 마침내 백 장에 이르렀고 그 틈으로 마궁 건물들이 와르르 무너져 내렸다.“술현지, 진해!”윤구주가 다시 한번 손을 크게 휘두르자 주변 산봉우리에서 무수한 바위들이 무너져 내려 백 장이나 벌어진 균열 속으로 쏟아져 들어갔다.그렇게 천 년이나 버틴 제자백가 마씨 가문은 윤구주의 술현지 한 방에 흔적도 없이
“지진이야?”“정말 땅이 흔들렸어!”“모두 얼른 도망가요!”요성 시민들은 진동을 감지하자마자 즉시 사방으로 흩어져 숨기 시작했다.다행히 진동은 오래가지 않았고 일 분 정도 지나자 완전히 잠잠해졌다.“지진이 멈춘 건가?”거리에서 웅크리고 있던 행인들은 진동이 사라진 것을 보고 하나같이 놀란 표정을 지었다.“빌어먹을! 왜 갑자기 지진이 난 거야? 기상청은 왜 아무 경고도 안 했지?”“그러게! 이게 도대체 어떻게 된 일이야? 우리 기산에서는 지진이 난 적이 없는데, 방금 어떻게 지진이 났지?”여진이 사라지자 시민들은 참지 못하고 거리로 나와 서로 말들을 주고받기 시작했다.요성은 기산 바로 옆에 있는 도시이지만 그들의 말처럼 이곳에서는 한 번도 지진이 난 적이 없었다.그런데 오늘 대체 무슨 이유로 지진이 난 걸까?“뭔가 이상해!”“이 진동, 기산 쪽에서 온 것 같은데!”귀가 밝은 몇몇 시민들이 멀리 기산 쪽을 바라보며 말했다.“설마. 기산이라고? 기산에 지진이 날 수가 있나?”“나도 잘 모르겠지만 이 여진의 진동은 분명 기산 쪽에서 온 게 확실해!”그 말이 나오자 시민들은 일제히 고개를 들어 기산 방향을 바라보기 시작했다.하지만 기산에서 왜 이렇게 큰 진동이 발생한 것인지는 아무도 그 이유를 알지 못했다.모든 시민이 놀란 얼굴로 기산을 바라보는 그 순간, 왼쪽 도로에 세 명의 커다란 그림자가 차갑게 서 있었다.그들은 모두 건장한 체격과 하얀 피부를 지녔는데 옷차림을 보아 화진 사람은 아닌듯했다.또한 그들의 몸에서는 강렬한 무도 기운이 스며 나왔다.이 괴이한 세 사람은 기산 쪽에서 전해오는 진동을 감지한 뒤, 차가운 표정으로 그 자리에 서 있었다.“아저씨, 아저씨! 우리 엄마 좀 찾아주세요!”그때, 길가에서 일여덟 살쯤 되어 보이는 어린 소녀가 세 사람에게 다가와 물었다. 소녀는 아마도 방금 학교를 마치고 집으로 가던 길이었을 것이다.하지만 아까 여진의 충격으로 엄마와 떨어지게 된 소녀는 겁에 질린 눈으로 애처롭게 세 사람을
‘헐, 대박.’진동왕이 하늘을 우러러보며 윤구주를 신처럼 떠받들었다.‘이게 진짜 신이지. 곤륜에 있는 그 자식들은 모두 가짜 신들이었어. 허위적이기 그지없지.’오늘 밤 그는 여러 강자의 싸움을 직접 목격하고 강자에 대한 인식이 바뀌었다. 문경우도 아주 강했지만 윤구주가 나타나자 문경우는 도망조차 제대로 치지 못하고 영혼마저 산산조각이 났다. 윤구주의 술법에 의해 영혼도 남기지 못하고 진정한 죽음을 맞이했다.승리는 결국 화진에게 돌아갔다. 화진을 무너뜨리려는 역적들은 모두 비참한 최후를 맞이할 것이다. 윤구주는 자신의 힘으로 화진의 막강한 실력을 전 세계에 알렸다.문경우를 처단한 윤구주는 즉시 임정설의 치료에 돌입했다.“짐은 별일 없으니 먼저 왕숙과 네 친구를 치료해줘라.”임정설이 임성진과 청해를 가리키며 말했다.청해는 이미 정신을 차렸다. 비록 상처가 심해 반쯤 죽은 상태였지만 화진 국주에게 인정받은 첫 순간이었다. 묘한 영예감이 그의 마음을 꽉 채우며 날아갈 듯 기뻤다.“이 두 사람 모두 목숨이 위태로운 상황은 아닙니다. 오히려 국주님이 더 위험하십니다. 경지를 무리하게 넘어서셨고 섭혼번 아래서 정기를 너무 많이 잃으셨습니다. 지금 국주님의 기운이 안정하지 않으니 제 도움이 없다면 폭주 할수도 있어요. 그때가 되면 저도 방법이 없습니다.”윤구주가 무거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임정설은 결국 윤구주의 말을 들을 수밖에 없었다. 사실 그도 자신의 몸 상태를 알고 있었다. 윤구주의 치료를 거부한 이유는 목숨을 내던질 각오가 되어 있었기 때문이다.황자급 경지에 오르긴 했지만 예전보다 죽음에 대한 집착이 강해져 있었다. 윤구주는 임정설에게 풀지 못한 원한이 있음을 눈치채고 치료를 해주며 화진으로 압박했다.“국주님께서 직접 해결해야 할 일이 남아있다는 걸 저도 알고 있습니다. 하지만 지금의 화진에게는 국주님이 필요합니다. 국주님은 30년 동안 화진을 지켜오셨잖아요. 지금 승부가 달린 이 중요한 시점에서 사적인 감정에 휘둘리시면 안 됩니다.”임정설
서울 삼천만 명의 목숨을 제물로 바치고 섭혼번이 작동되면 화진의 국운은 영원히 봉인될 것이다.“우리 문씨 가문은 예전부터 지금까지 쇠퇴하지 않았으니 마땅히 화진의 주인이다. 감히 누가 복종하지 않겠느냐?”문경우는 하늘을 향해 큰소리로 웃어댔다.이때 하늘에서 천둥이 울리며 공간이 갈라지더니 한 남자가 시체 한 구를 밟고 서울에 강림했다.“웃기고 있네. 문씨 가문이 화진의 주인이 되겠다고? 문씨 가문 따위가 어디 감히 그런 꿈을 꾸는 것이냐? 나 윤구주가 용납하지 않겠다.”우르릉.우렁찬 목소리가 사방으로 퍼지자 문경우의 표정이 그대로 굳어졌다. 윤구주의 기운이 섭혼번 아래에 나타나며 음의 기운을 찢어버렸다.거대한 섭혼번이 관통당하자 전법이 무너지고 문경우는 피를 토해냈다.고개를 돌리니 윤구주가 허공에 우뚝 서 있었고 그의 발아래에는 아사 신전의 신주 오딘의 시체가 보라색 번개에 휩싸여 있었다.“이게 무슨? 네가 신왕 오딘을 죽였다고?”문경우는 오딘의 시체를 바라보며 벌벌 떨었다.“이 개 같은 자들이 여러 번 화진을 범했으니 죽이는 게 당연하지. 나는 오딘뿐만 아니라 아사 신족 전체를 멸했다. 이제 곤륜에 아사 신족은 존재하지 않는다.”윤구주가 공중에 우뚝 서서 음양의 기를 손아귀에 감아쥐었다. 그의 머리 위 갈라진 공간 너머로 아사 신전의 폐허가 보였다. 수만 신령이 죽어 아사 신족이 멸족한다는 종말이 예언이 현실이 된 것이다.문경우의 눈에 비친 윤구주는 무적의 화신이었다. 그는 윤구주와 싸울 용기도 내지 못하고 뒤돌아 도망치려 했다.“너희들이 내가 없을 틈을 타 화진의 기운을 봉인하려 했다고? 문씨 가문은 정말 개수작만 부리는군. 예전에는 나를 죽이려 온갖 더러운 수작을 다 부렸잖아. 내가 없는 틈만 노리는 걸 보니 이젠 내가 무서웠나 보지?”“팔기지, 술자결.”윤구주가 손짓하자 삼천만 생령이 국운 속으로 모여들었다. 백성들은 새 국운에 각자의 고마운 마음을 담아 보냈고 모두의 영혼이 육체로 돌아가며 위기가 해소되었다.“팔기지, 어
태양으로 변한 그 부적은 사악하기 그지없었다. 독한 태양 빛이 대지를 지지며 수많은 건물을 녹여버렸고 그 안에 있던 평민들도 산 채로 타죽고 말았다.“그만해. 화진의 백성들을 건드리지 마라!”임정설이 분노에 차 외쳤다.“너와 나는 모두 화진의 절정 수련자인데 어찌 무고한 자들을 끌어들이느냐?”“하하! 무고하다니? 임정설, 현실을 직시하지. 이 하등한 것들은 개미나 다름없어. 한 무리를 죽여도 금방 다시 번식할 테니. 게다가 내가 여기에 온 목적은 삼천만 백성의 목숨으로 화진의 새 국운을 봉인하는 거라네. 우리 문씨 가문이 얻지 못하는 것은 부숴버려도 남에게 주지 않을 거야.”문경우가 이를 악물며 소리쳤다. 그는 윤구주가 문씨 가문의 뜻을 거역하는 것에 화가 났다.만약 윤구주가 그들에게 순종했다면 지금쯤 화진의 주인이 되었을 텐데 말이다. 천추만대가 지나도 윤구주는 여전히 화진 최고의 명군으로 남았을 것이다.“저 빌어먹을 윤구주. 역사는 승자가 쓴다는 걸 모르나? 역사를 조작한 왕조가 그렇게나 많은데 유독 그놈만 고집을 부리잖아. 화진의 재난은 모두 윤구주 때문이야. 명군이 되길 거부한다면 영원한 역적으로 만들 거야. 윤구주는 역사의 수치주에 못 박혀 천년만년을 욕먹을 것이다.”“닥치거라! 구주는 우리 화진의 영웅이다. 너 같은 쓰레기가 어찌 감히 구주를 함부로 논하는 것이냐?”그의 말에 단단히 열 받은 임정설은 양혼을 불살라 목숨을 걸려 했다. 그러나 문경우가 이미 임정설의 기를 봉쇄하고 제삼의 전법으로 그의 영혼까지 잠가버렸다.“임정설, 내 앞에서 자살조차 못 하는 주제에 어디서 목숨을 걸겠다고 떠드는 건가?”문경우는 기고만장했다. 임정설이 황자가 되면 뭐하나? 어차피 문씨 가문의 손아귀를 벗어나지 못하는데.“오늘이 바로 화진 황제의 멸망일이라네. 섭섭해하지 말게. 윤구주도 곧 자네 뒤를 따를 거니까. 하하!”그가 양손을 내리자 백 미터 크기의 사악한 검은 기발이 구름을 뚫고 서울 상공에 나타났다.“이, 이것은 섭혼번이군!”그 거대
말이 지경에 이르렀으니 더 이상 쓸모없는 대화는 필요 없었다.임정설은 황제의 의지를 칼로 삼았다. 황자의 기세가 모여 금빛 칼날을 형성하더니 국운을 상징하는 그 칼로 문경우를 향해 내리쳤다.우르르.음과 양이 맞부딪치며 터져 나온 충격파가 반경 수 킬로미터를 휩쓸었다. 사령부 빌딩과 인근 건물들의 유리가 모조리 산산조각이 났다.두 사람은 빌딩 꼭대기에서 결투를 시작했다. 칼 빛이 번뜩이며 천지의 영기를 뒤흔들었고 광풍과 폭우가 몰아쳤다. 산해가 울부짖으며 서울은 보라색 번개와 금빛 불길에 휩싸였다.그들은 각각 화진 최강의 무도를 대표하고 있었다. 이는 단순히 정의와 사악의 대결이 아니라 임씨 가문과 문씨 가문의 결전이었다.서울 상공에서는 용의 형상이 구름 사이를 휘저으며 흉수와 피 묻은 싸움을 벌이고 있었다.“이게 바로 황자의 힘인가. 정말 굉장하군.”진동왕마저 넋을 잃은 채 두 사람을 바라보고 있었다.이때 다른 도시의 지원병들이 서울에 도착해 진동왕과 연락을 취했고 이 소식을 해외에 있는 현모와 주작에게 즉시 전했다.“국주께서 문경우와 결전을 벌이고 계신다고?”“국주께서 황자급 경지에 오르셨다니.”이는 분명히 좋은 소식이었다. 비록 한 산에 두 호랑이가 살 수 없다는 말이 있었지만 윤구주와 임정설의 관계는 남달랐다. 임정설은 윤구주의 스승이자 아버지 같은 존재였다.“너무 기뻐하지 마라. 저 문경우는 보통 사람이 아니다. 곤륜에서 오랫동안 잠적하며 수많은 신전의 공법을 익혔어. 저놈이 서울로 온 목적은 바로 임정설을 죽이기 위함일 것이야.”옆에 있던 황보웅이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주작과 현모는 아무것도 할 수 없었다. 오직 화진이 무사하고 임정설이 문경우를 물리치길 기원할 수밖에 없었다.한창 싸우고 있던 두 강자는 공중에서 다시 한번 맞붙었다. 두 사람의 손짓 하나에 산이 뒤집히고 천지가 진동했으며 그들의 기세는 수백 리 밖까지 영향을 미쳤다.임정설은 기세를 최고조로 끌어올려 거침없이 공격을 퍼부었다. 임정설은 문경우가 극 신
“아직 끝나지 않았다. 이 전법이 발동되면 서울 수천만 사람들이 참혹한 죽음을 맞이할 것이야. 비록 이길 자신은 없지만 내 목숨을 걸어서라도 화진의 백성을 위해 싸우겠다. 구주군과 금위군의 여러 장수들은 듣거라. 짐이 전사하면 너희들이 나라를 지킬 책임을 지고 계속해서 적들을 섬멸하라.”임정설은 장군들에게 명령을 내리고 나서 고개도 돌리지 않은 채 홀로 서울 사령부로 날아갔다.서울 사령부는 진동왕과 수비영이 도착하기 훨씬 전에 함락된 상태였다. 주둔지는 죽음의 적막에 휩싸여 있었고 눈에 들어오는 것은 말라붙은 백골들이 널브러진 참혹한 장면뿐이었다.당시 강적의 침입을 받은 주둔지의 병사들은 한 명도 물러서지 않고 전원이 전사할 때까지 적들과 맞서 싸웠을 것이다.이 생각에 임정설의 살기가 더욱 짙어졌다.“이곳에 있는 자들은 모두 우리 화진의 자랑이다. 저 요망한 것들이 화진을 어지럽힌 지 얼마나 되었느냐? 이 빚을 짐이 갚아 내지 못하더라도 화진 자손들이 반드시 값나낼 것이다.”그는 절대 화진의 혼란에 맞선 마지막 황제가 되지 않을 것이다. 수많은 선인이 걸어온 길을 밟으며 그의 발걸음은 더욱 확고해졌다.이 순간 황운이 임정설의 몸에 서리더니 새로운 국운이 움직이기 시작했다. 이 순간부터 그는 특정된 누군가의 왕이 아닌 천하 만민이 우러러보는 황제가 되어 있었다.황도가 더해지자 임정설의 기세는 한층 더 강해졌다. 그는 사령부 빌딩 최상층에서 서울을 어지럽힌 장본인을 마주했다.검은 도포를 걸친 그 자는 사악한 부적으로 몸을 감싼 채 요기가 하늘을 찌르고 있었다. 바로 그가 전법으로 서울을 뒤덮고 있었다.“참으로 예상치 못했어. 화진에 또 한 명의 황자가 나타나다니. 윤구주는 정말 신기하다니까. 자신의 기운으로 국운을 바꾸고 자네의 운명까지 바꿔놓았군. 하지만 내가 충고 하나 해주지. 임정설 자네가 황자가 된 이상 사흘을 넘기지 못할 것이야. 넌 사흘 안에 목숨을 거둘 것이란 말이지.”검은 도포를 입은 사람은 임정설이 죽음을 각오하고 온 것을 알아
국주 임정설은 해청현의 음기를 제거한 후, 그를 보호하던 기운까지 걷어내 양기로 해청현을 완전히 눌러 버렸다.이게 바로 미친 스님이 말했던 진정한 자제력이었다.“해청현은 수법만 닦고 수도는 하지 않았으며 몸만 수련할 뿐, 마음은 단련하지 않았지. 그러다 보니 결국 다 헛것이 되어버린 거야.”미친 스님은 고개를 저으며 탄식했다. 하느님은 누구에게나 공평했다. 그는 해청현에게 타고난 수도의 체질을 주었지만 그에 걸맞은 의지를 주지 않았다. 그렇게 해청현은 더는 감당하지 못하고 되려 휘말려버린 것이었다.임정설의 머리 위엔 성스러운 빛이 맴돌았고 온몸엔 천지를 뒤덮을 만큼의 정기가 흘러넘쳤다. 해청현은 결국 싸움에서 져버렸다. 하지만 그는 끝까지 자신도 임정설처럼 황자급 경지였다면 이겼을 거라고 생각했다. 정작 두 사람의 경지가 같았다 해도 여전히 자신이 완전히 압도당했을 거라는 걸 꿈에도 모른 채 말이다.임정설은 손바닥을 휙 내리치더니 끝까지 미련을 품던 해청현을 그 자리에서 즉사시켰다. 그는 영혼조차 남지 않은 채 완전히 소멸당했다. 이것이 바로 겉보기엔 수련했을지 몰라도 한 번도 진정한 수도의 길에 들어서지 않았다는 증거였다.“국주님이 이렇게까지 강했다고?”공수이는 멍하니 중얼거렸다.“그러게 말이야. 어떻게 이렇게까지 강해졌지?”진동왕은 부러움과 질투, 그리고 복잡한 감정을 동시에 느꼈다. 예전에는 그가 임정설보다 더 강했었고 임정설은 국운 덕에 간신히 그를 이길 정도였으니 말이다.하지만 이젠 내공 차이가 너무 벌어져서 더 이상 비교조차 할 수 없게 되었다.그제야 깨어난 백호는 조금 전 자신이 국주를 진왕으로 착각하고 있었다는 걸 알아차렸다.“백호, 널 속인 건 어쩔 수 없는 일이었어. 그렇게라도 하지 않으면 넌 내가 올 때까지 버티지 못했을 테니까...”임정설은 양기를 끌어내어 백호의 몸속에 주입했고 그의 정기를 빠르게 회복시켰다. 이렇게 되면 백호도 얼마 지나지 않아 완전히 회복할 것이었다.그 모습을 본 공수이와 진동왕은 또다시 멍해
“뭐? 저게 누구지? 지금 화진에 저런 강자가 또 있었다고? 설마... 저자가 바로 구주왕이란 말인가?”청현이 더는 버티지 못하고 당황스레 외쳤다.누가 알았겠는가, 이 결정적인 순간에 고수가 나타나다니!“젠장... 네가 누구든 상관없다!”“나는 반드시 백호를 죽인다!”청현은 더는 여유가 없었다.상대의 기세는 너무나도 강력했고, 이미 백호와 싸우면서 중상을 입은 상태에서 그와 맞붙는 건 목숨만 붙어 있을 뿐 이기는 건 불가능한 일이었다.청현은 그저 백호부터 처리하려 했다.“이런 건방진 것! 우리 화진의 전쟁 신이 너 같은 흉수에게 쓰러질 수는 없다!”하늘에서 울려 퍼지는 활기찬 천 음 소리!금빛 실루엣이 구름을 뚫고 내려오더니 손바닥으로 청현을 튕겨냈다!눈앞의 인물을 본 청현은 잠시 얼어붙었다. 모르는 인물이다.하지만 이 압도적인 기운은 분명 고위자일 것이다.화진에서 구주왕 말고는 누가 이런 존재감을 뿜어낼 수 있겠는가?기절해 있던 진북왕은 익숙한 기운에 눈을 번쩍 떴다.그리고 그 실루엣을 본 순간 기절할 뻔했다.“이런! 임정설! 너 황자가 된 거야!”“흠? 왕숙께서 실망하셨나 보네요??”금빛 그림자가 사라지며 실체가 드러났고, 그 모습은 바로 용맥에 들어가 수련하던 화진의 현직 왕 임정설이었다.“폐하 만세!”구주군 장병들은 격동된 마음으로 일제히 무릎 꿇고 경례하며 외쳤다.자신들의 왕이 서울로 화진의 백성을 구하러 온 것이다!“임정설?! 그게 어떻게 가능해! 아무리 강해도 극한신경 정도일 텐데!”청현의 얼굴이 찌그러질 대로 찌그러졌다.극한신경과 황자 사이에는 넘을 수 없는 벽이 존재한다.황자 한 명이면 수십 명의 극한신경을 상대할 수 있다!서울에 황자가 주둔해 있다면, 곤륜영역조차 쉽게 움직이지 못할 것이다!이런 상황에서 설령 청현이 아무리 천재고 강하더라도 황자와의 싸움은 불가능했다.자칭 수요산 제일검이라던 청현은 위축됐다.그 모습을 본 임정설은 냉소하며 말했다.“이게 바로 검객이란 말인가? 검객의 마음은
진황은 외공만으로 도에 이른 황자였다.어떠한 술법도 수련하지 않았다.그런데 지금 백호가 중얼거리며 ‘진황신공!’을 외치고 있으니 이건 누가 봐도 미친 소리였다.“미쳐야 도를 이루는 법이다. 백호는 앞날이 창창하구먼.” 미친 스님이 아미타불을 외치며 말했다.“미쳤어, 미쳤어! 전부 다 미쳐버렸다고!” 진북왕이 고함을 지르다가 숨도 제대로 못 쉬고 기절해버렸다.그 사이 백호의 기세는 끝없이 치솟고 있었다!정신은 나갔지만, 힘은 점점 더 강해지고 있었다!청현은 문득 깨달았다. 백호가 저토록 광폭한 이유—바로 그놈의 몸속에 흐르는 성수의 피였다.“이 썩을 놈... 성수 피가 아니었으면 네가 뭔데 날 상대로 이러는 거냐!”청현은 음기를 뿜으며 맹렬하게 연속으로 공격을 퍼부었다.그 음산한 기세에도 불구하고 백호는 오히려 직선 돌진했다.공격은 완전 예측 불가였다.수요산 검종은 온갖 검술과 전법에 능했지만, 다음 공격이 뭔지도 모르는 미친놈을 상대로는 청현도 당해낼 재간이 없었다.결국, 또 한바탕 두들겨 맞고 땅바닥을 굴러다니던 중 놀랍게도 백호가 자신의 음신사체를 흡수하고 있는 것을 발견했다!“내 음기를 집어삼키다니?! 이 괴물 같은 놈!”“음기여 무한하라! 흑검이여, 사악을 베어라!!!”시커먼 흑검이 다시 응집되자, 수백 개의 검날이 연속으로 쏟아졌다.백호의 온몸은 피투성이가 되어 검은 피를 흘렸지만——그는 눈 하나 깜빡이지 않고, 죽음을 두려워하지 않으며 그대로 돌진했다!“개자식... 음기야! 나에게 힘을 줘!!”청현은 검을 땅속 깊숙이 꽂았다.지맥에서 미친 듯이 영기를 빨아들이자, 머리 위에 떠 오른 음기 마기의 형상은 산만큼 거대해졌다!그 압도적인 힘으로 청현은 백호를 단숨에 쓰러뜨렸다.이건 이미 백호가 감당할 수 없는 한계치를 훨씬 초과한 위력이었다.쿵!!백호는 그대로 땅에 쓰러졌지만, 그런데도 그는 의식을 잃지 않았다.다만 입에서 나오는 건 누가 들어도 미친 소리였다.“황이 온다... 황... 황이 온다....
“우리 스승 말이야, 진짜 고집쟁이에다 구닥다리야. 정의와 사악은 절대 함께할 수 없다고 믿고 목숨 걸고 몇백 년 동안 싸우고 피 흘렸지만 무슨 소용이 있어? 인마 좀 없앤 거 빼고는...?”“스승께서 날 산에서 내려가 속세의 삶을 보라고 하신 건, 결국 수련을 위한 경험이었겠지. 하지만 세상을 직접 겪고 나서야 똑똑히 알게 됐어. 이 세상은 결국, 강한 자가 무적이고 이긴 자가 왕이 되는 법이야...”“세상에는 애초에 정의와 악, 흑과 백 따윈 존재하지 않아. 선악의 기준이란 결국 입만 살은 자들이 지껄이는 헛소리일 뿐이지. 역사가 진실이라고 믿어? 예로부터 어느 왕조의 흥망이 피바다와 시체더미 없이 이루어진 적이 있었나?”“무릇 장수가 공을 세운다는 건, 수만의 백골 위에 선다는 뜻이지. 그 윤구주가 '구주왕'이라 불리는 것도, 결국은 피로 쟁취한 자리 아니겠어?”“주먹이 곧 진리다. 내가 황위에 오르는 날, 선악이든 흑백이든 모두 내 기준으로 정의된다!”“백호, 이제 죽어라.”청현이 공격하려던 찰나 하늘 위의 백호가 먼저 움직였다. 다시 성수인을 발동하더니, 성수의 허상이 실체로 변해 거대한 기운을 모은 주먹을 뻗었다.그 주먹은 하늘을 가르고 청현을 향해 날아갔다.그러나 청현은 당황하지 않았다. 차가운 음기와 사기 담은 손으로 그 주먹을 받아내고 동시에 백 자 길이의 흑검을 형성해 단칼에 성수의 허상을 두 토막 내버렸다.그 검이 날아간 자리에는 구름이 쪼개졌고, 서울 상공을 덮고 있던 먹구름은 그 검기의 파도에 휩쓸려 모두 흩어졌다.먹구름이 사라졌지만, 서울 상공에는 여전히 짙은 요기가 하늘을 뒤덮고 있었다. 마치 태양조차 삼키려는 어둠의 장막처럼.“진법까지 있었어?! 대체 어느 놈이, 언제 이따위 대형 진법을 몰래 깔아놓은 거야?!”진북왕은 혈압이 오르다 못해 피까지 토할 지경이었다.이건 곧 청현이 최종 보스가 아니라는 뜻이다!백호가 청현을 이긴다 해도 그보다 더 강한 놈이 있다는 얘기다.하지만 지금 상황에선, 백호가 청현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