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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Author: 라오
안시연은 경찰서에 세 시간의 취조를 받고서야 풀려날 수 있었다.

그녀는 피곤한 몸을 이끌고 집에 도착했는데, 이때 주지혁에게서 전화가 왔다.

그녀는 어금니를 깨물다가 바로 전화를 받았다.

“지혁 씨, 우리는 이미 헤어졌어요. 굳이 내 인생을 망칠 생각인가요?”

그 8억은 분명 그가 그녀에게 직접 전화해 빼내라고 한 것이다.

주지혁은 그녀의 분노를 예상했는지 덤덤하게 말했다.

“시연 씨, 나에게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면 안 되었어요.”

“내가 헤어지자는 말을 안 꺼내면 당신이 어떻게 조이현 씨를 안을 수 있겠어요?”

안시연이 비꼬며 말했다.

주지혁은 전혀 미안한 기색이 없이 뻔뻔스럽게 말했다.

“나 다음 달에 이현이와 약혼해요. 하지만 난 이현이를 사랑하지 않아요. 시연 씨, 3년만 기다려요. 3년 뒤면 내가 이혼하고 꼭 시연 씨와 결혼할게요.”

안시연은 헛웃음이 나왔다.

“그럼 3년 동안 나는 어떡하라고요.”

“외국으로 유학 보내줄게요.”

뻔뻔스럽네!

명문 가문 출신인 조이현과 결혼은 해야겠고, 또 그 돈으로 안시연을 ‘내연녀’로 만들게 하다니, 어떻게 이런 염치없는 사람이 존재할 수 있는가?

안시연이 코웃음을 치며 말했다.

“하지만 난 이미 다른 남자와 잤어요.”

주지혁은 한참 침묵을 지키다가 그녀의 말이 믿기지 않는지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

“그런 농담은 하지 마요. 나 화나게 만들면 시연 씨에게 좋을 것 없어요.”

안시연이 심호흡하고는 어금니를 깨물었다.

“도대체 원하는 게 뭐예요?”

“나 찾으러 와요. 내가 시연 씨 외국 보내줄게요.”

“꿈 깨요!”

주지혁이 덤덤하게 말을 이어갔다.

“시연 씨, 만약 내가 고소를 취하하지 않으면 시연 씨는 돈의 행방을 모두 찾아내는 것으로 결백을 증명해야죠. 하지만 그게 쉬운 일인 줄 알아요? 나 마지막으로 경고하는데 8억이면 시연 씨 감옥에서 10년 갇히고도 더 남아요. 시연 씨가 감옥에 들어가면 누가 외할머니를 돌보겠어요?”

안시연에게 힘이 남아돌았다면 진작 그에게 소리를 지르며 욕설을 퍼부었을 것이다.

‘내가 정말 눈이 멀었지.’

“찾아올 때까지 기다릴게요.”

주지혁이 말하고는 전화를 끊었다.

안시연은 몸도 마음도 너무 피곤했다.

이때 휴대폰이 또 울렸다.

주효진이 보낸 문자였다.

[유 대표랑 같이 있던 게 아니었어? 왜 도망간 거야?]

[오늘 밤 일을 오빠에게 말한다면 넌 죽을 줄 알아.]

[어느 남자랑 잔 거야?]

...

연정훈이 너무 괴롭혔는지 안시연은 다음 날 일어났는데도 몸이 시큰거렸다.

하지만 그녀는 쉴 수 없었다.

학우였던 정이슬이 그녀를 위해 식사 자리를 마련했는데 상대는 그들과 같은 학교 출신인 전민준이었다. 아버지가 법조계에 꽤 지위가 있으니, 전민준과 가까이 지내면 돈의 행방을 빨리 알아낼 수도 있다.

레스토랑에서.

안시연은 이미 자리에 한 시간 넘게 앉아 있었다.

하지만 전민준은 이 사건에 관해 얘기하지 않고 그녀가 전혀 기억할 수 없는 캠퍼스 추억들만 끄집어냈다.

안시연은 불만이 있었지만 부탁하는 것만큼 꾹 참고 얘기할 타이밍을 보고 있었다.

속이 바짝바짝 타들어 갈 때, 시선을 들자 다가오는 남자가 눈에 들어왔다.

연정훈은 검은색 양복을 차려입고 그 위에 코트를 걸쳐 점잖고 우아한 분위기를 늘씬 풍겼다.

이목구비가 뚜렷한 잘생긴 그의 얼굴에는 냉기가 감돌아 차갑고도 도도해 보였다.

그의 뒤로는 비서가 몇 명 따라다녔고, 옆에는 엘리트처럼 보이는 남자가 그에게 말을 걸고 있었다.

아무래도 비즈니스를 위한 식사 자리가 있는 모양이다.

안시연은 어젯밤 차 안에 있었던 일을 떠올리며 심장이 벌렁벌렁 뛰기 시작했다.

그녀는 고개를 숙이려고 했지만 연정훈은 이미 그녀의 존재를 눈치챈 것 같았다. 그녀는 그와 눈을 마주치고는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며 눈인사를 건넸다.

연정훈은 그녀의 인사에 그 어떤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그는 곧바로 가장 좋은 창가 자리로 향했다. 주위는 병풍으로 가려져 프라이버시를 보장하기도 했다.

연정훈이 눈에 보이지 않고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연정훈은 창가 자리에 앉았다.

사람들은 그에게 잘 보이려고 애썼는데 그는 그저 선을 그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그의 시선은 우연히 병풍 밖으로 향했다.

어젯밤 그녀와 관계를 가지면서도 워낙 차 안이 어두워 잘 보이지 않았다. 오늘에서야 불빛 아래 비친 그녀의 얼굴을 똑똑히 볼 수 있었다.

원피스를 입은 그녀는 한 줌 개미허리를 가지고 있었다. 빛이 도는 하얀색 옷감은 그녀의 굴곡 있는 몸매가 더 돋보이게 했고 그녀의 긴 생머리에는 비녀 하나만 꽂혀 있었다.

원래도 뚜렷한 이목구비는 부드러움이 더해지며 아련한 분위기를 자아냈다.

맞은편에 앉은 평범한 외모의 남자는 뭔가를 신나게 얘기했었는데 몇 번이나 여자에게 가까이 다가가려고 했다.

연정훈이 한 눈 살펴보고는 곧바로 시선을 거뒀다.

밖에서.

전민준은 한참 떠들다가 안시연의 얼굴이 약간 붉어진 것을 보고는 타이밍이다 싶어 손을 안시연의 손 위에 얹었다.

안시연이 깜짝 놀라 손을 거두며 말했다.

“왜 이래?”

“시연아, 내 여자친구로 되어줘. 나에게 부탁하려고 찾아온 걸 알아. 내가 잘 해결해 줄 테니까 걱정하지 마.”

전민준이 말하고는 손을 뻗어 그녀의 허리를 끌어안으려고 했다.

안시연은 분노가 끓어올랐다.

“미안. 네가 오해한 것 같은데 나는 선보러 나온 게 아니야.”

그녀는 가방을 들고는 자리를 뜨려고 했다.

“계산은 이미 했으니까 천천히 먹고 있어.”

전민준이 그녀의 앞을 가로막으면서 믿을 수 없는 얼굴을 보였다.

“시연아, 감히 나를 거절해?”

그의 행동은 주위의 시선을 끌어 안시연은 난감한 얼굴을 보였다.

전민준이 목소리를 낮추길 바랐지만 전민준은 오히려 큰소리로 화를 냈다.

“어디서 고고한 척이야. 아직도 자기가 학부에서 잘나가는 퀸카인 줄 알아? 주지혁이랑 3년이나 사귀고 차였으면서, 내가 너 싫어하지 않는 걸로도 감지덕지하게 생각해야지.”

안시연의 얼굴이 새하얗게 질렸다.

그녀는 전민준과 더 얽히고 싶지 않아 다른 쪽으로 돌아가려고 했다.

전민준의 손짓은 점점 거칠어져 옆 테이블의 식탁보까지 잡아당겼고 가장자리의 접시가 뒤집히면서 그녀의 원피스 위에 모조리 쏟아졌다.

직원도 깜짝 놀라 달려왔다.

하지만 전민준은 여전히 물러설 생각이 없어 그대로 안시연의 팔을 확 잡았다.

안시연은 그에게서 벗어나려고 노력했다. 몸을 비틀거리다가 뒷걸음질을 쳤는데 뒤에 있던 남자의 단단한 가슴팍에 부딪히고서야 겨우 똑바로 설 수 있었다.

남자는 적절한 힘으로 그녀를 부축했다.

매니저가 다급하게 달려왔는데 연정훈을 발견하고는 두말없이 안시연의 편을 들었다.

전민준은 쫓겨 나갈 때까지도 난리를 부렸다.

안시연은 너무나도 창피했다. 게다가 연정훈의 앞이었으니 말이다.

연정훈이 가볍게 그녀의 팔을 두드리고는 덤덤하게 말했다.

“먼저 올라가서 옷 바꿔입어.”

거절하려고 했지만 주위 사람들이 그들을 지켜보고 있었기에 안시연은 어쩔 수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는 그를 따라나섰다.

레스토랑 위로는 경인시에서 손꼽히는 5성급 호텔이 자리 잡고 있었다.

연정훈은 이 호텔에 자주 묵어 고정된 방이 있었다.

어젯밤에 그런 일이 있었는데 지금 또 그를 따라가고 있으니, 안시연은 심장이 벌렁벌렁 뛰었다.

스위트룸 앞에 도착했는데 그녀는 걸음을 망설였다.

거실에 서 있던 연정훈이 그녀 쪽을 덤덤히 바라봤다.

한참 지나고 나서야 그가 입을 열었다.

“안에 욕실 있으니까 편하게 써.”

음식의 국물이 옷에 배어 몸이 미끈거렸다.

화려하고 정교한 카펫 위에 선 것만으로도 카펫을 더럽히는 것 같았다.

연정훈의 시선이 계속 느껴지자, 그녀는 다급하게 고개를 끄덕이고는 하이힐을 신은 채 욕실 안으로 들어갔다.

문을 닫아 그의 시선이 더 안 느껴지고서야 그녀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하지만 그녀는 곧 거울 속에 비친 자기 모습을 보고 제자리에 얼어붙었다.

아담하고 우아한 느낌을 풍겼던 원피스는 윗부분이 멀쩡했지만 아랫부분이 국물에 흠뻑 젖어 투명해졌고 아랫배에 착 달라붙어 그녀의 몸매가 또렷하게 드러냈다. 언뜻 보면 아무것도 입지 않았나 착각할 정도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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Comments (1)
goodnovel comment avatar
임미경
흥미진진 뒷이야기가 궁금해 지네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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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시연은 소파에 털썩 주저앉았고 얼굴에는 잿빛이 감돌았다. 그렇게 하룻밤을 뜬눈으로 지새운 후, 다음 날 다시 출근했다. 더 이상의 선택지가 없이 막다른 골목에 몰린 셈이었다. 왜냐하면 외할머니의 수술을 더는 미룰 수 없었기 때문이었다.졸업하자마자 주지혁의 회사에 입사했던 안시연은 주지혁이 정한 ‘사내 연애 금지' 규정을 어기지 않기 위해 주지혁의 제안대로 비밀 연애를 승낙했다. 하지만 안시연은 오로지 자기 능력으로 재무팀 주임 자리를 꿰찼다.다시 회사에 돌아왔더니, 주지혁이 일부러 그녀를 재무팀 주임 자리에서 끌어내렸고 재무팀 보조직으로 발령 냈다.같은 사무실에서 근무하던 동료들은 모두 그녀가 주지혁에게 미움을 샀을 것이라고 여겼다. 그 때문에 주지혁이 대놓고 괴롭히지는 못하고 몰래 트집을 잡아 끌어내렸을 것이라고 짐작했다.사흘이 지나자, 안시연은 이미 피곤함에 찌들대로 찌들었다.업무에 시달리다가 이제 막 한숨 돌리려던 때, 사무실 입구가 소란스러워지기 시작했다.안시연은 고개를 들어 힐끔 보고는 이내 외면했다. 다름 아닌 조이현이 회사로 방문한 것이었다.안시연은 기회를 노리다가 화장실에 가는 척 자리를 뜨려고 했다. 그런데 뜻밖에도 조이현이 그녀를 불러세웠다.“저기요, 이리 좀 와보실래요?”사무실에 있던 사람들의 시선이 한곳으로 쏠렸다.안시연은 밖에 있던 주지혁의 뒷모습을 한 번 더 확인하고 나서 감정을 억누르며 앞으로 나섰다.“네, 조이현 씨.”그러자 조이현이 다짜고짜 물었다.“혹시 그쪽이 안시연 씨인가요?”“네, 그렇습니다.”조이현은 안시연의 대답을 듣고 고개를 끄덕이며 손목시계를 내려다보았다.“짐 챙겨서 나오세요. 주 대표님과 저를 따라 외근 좀 다녀오셔야겠어요.”말을 마친 조이현은 안시연이 거절할 틈을 주지 않고 곧장 사무실을 나섰다.이 상황을 지켜보던 같은 사무실 동료들은 각자 어리둥절한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안시연은 어쩔 수 없이 따라 나갔다.클라이언트와 통화를 마치고 뒤돌아선 주지혁은 안시연이 조이현을 따라 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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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안시연은 자기가 너무 예민한 거라고 생각하면서도 연 대표라는 말에 자기도 모르게 그 남자가 떠올랐다.몇 분 지나지 않아 경기장에 있던 사람들이 하프타임으로 들어왔는데, 맨 앞에 선 남자는 바로 연정훈이었다.테니스복 차림의 연정훈은 이승우의 차림새와 다를 바 없었지만, 정장을 입었을 때보다 훨씬 더 젊어 보였다.가뜩이나 더운 날씨라 얼굴이 붉어졌던 안시연은 연정훈을 보자, 얼굴이 더 화끈거렸다.자꾸 떠오르는 그때의 기억을 도저히 억누를 수 없었다.“정훈 오빠!”연정훈이 가까이 다가오자, 조이현은 바로 다가가 인사했고 겸사겸사 주지혁을 소개했다.안시연은 뒤에 서서 주지혁이 순간 벙찌더니 온몸이 굳어진 것을 보고 바로 알아차렸다.얼마 전 주지혁과 성진대학교 동문 모임에 참가했을 때, 연정훈도 자리에 있었던 것이 떠올랐다. 주지혁은 연정훈이 두 사람의 관계를 폭로할까 봐 걱정하고 있던 것이었다.안시연은 한쪽 입꼬리를 씩 올리더니 고개를 살짝 숙였다.연정훈은 안시연을 못 본 듯, 테니스 라켓을 한쪽에 맡기고 물병을 따면서 자리를 잡고 앉았다.연정훈이 경기장에서 돌아오자, 모든 관심이 그에게로 집중됐다.부승원이 물었다.“마지막 공은 어떻게 된 거야?”연정훈이 담담하게 말했다.“실수지 뭐.”이승우가 피식 웃으며 짓궂게 말했다.“실수? 에이, 설마 우리 쪽에서 미녀가 온 걸 보고 잠깐 정신 팔린 거 아니겠지?”연정훈은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야 안시연을 한 번 보았다.안시연은 갑자기 연정훈과 눈을 마주치자,무의식적으로 주먹을 꽉 쥐었다.그사이, 조이현이 안시연을 대신해서 그녀를 소개하고 있었다.“정훈 오빠, 안시연 씨에요. 지혁 씨 회사 직원이에요.”연정훈은 덤덤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그는 물병을 내려놓고, 이승우에게 말했다.“내가 졌어, 기량이 남보다 못한 걸 인정해. 경기에서 진 이유가 장외 풍경이 예뻤던 탓이라고 할 순 없지.”장외 풍경이 예뻤던 탓? 안시연이 예쁘다는 걸 인정하는 건가?연정훈의 최측근이었던 사람들은 모두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0화

    번외 경기가 시작되었고, 장외에서 이승우 등이 관전했다. 조이현은 조금 더 가까이에서 관전했고, 남자들은 뒤에서 앉아 있었다.부승원이 물을 한 모금 마시고 나서 무심코 입을 열었다.“주 대표님은 소프트웨어 개발 관련 사업을 하시는 건가요?”주지혁은 부승원이 소프트웨어 개발에 관심을 보이는 줄 알고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러자 부승원이 몸을 뒤로 기대고 조이현을 보며 말을 이었다.“이현이 같은 여자친구를 뒀으니, 앞으로 주 대표님 사업은 승승장구 할수 있겠네요.”이승우도 두 사람의 대화에 흥미를 느낀 듯 눈썹을 들썩이며 끼어들었다.“예를 들면 어떻게 승승장구할 것 같다는 거지?”“당연히 인맥으로겠지...”이승우가 피식 웃었다.‘풉, 인맥은 무슨, 뇌물 공세겠지...’우연히 만난 척하는 것도 모자라, 예쁜 비서까지 데리고 온 건 다른 뜻이 있어서가 틀림없다는 것을 두 사람도 진작에 알아챘다. 기회를 틈타 예쁜 비서를 그들에게 넘기려는 속셈을 말이다.주지혁의 입꼬리가 약간 굳어졌다. 그는 물론 부승원의 비아냥거리는 어조를 알아들었다. 하지만 할 말이 없었다. 그저 속으로 이렇게 우스운 상황을 만든 조이현의 어리석음을 탓할 수밖에...경기장에서 몇십 번의 라운드가 계속됐지만 좀처럼 승부가 나지 않았다.“탁!”라켓에 공이 부딪히는 소리가 굉장하게 들려왔다. 안시연이 위험한 공을 되받아친 소리였다.장외에서 이승우가 박수갈채를 보냈다.“나이스 샷!”연정훈도 그녀를 바라보고 찬사를 보냈다. 그러다 시선이 안시연의 가슴에 꽂히자, 덤덤한 척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백핸드로 정면 타를 날렸다.구력이 너무 센 데다가 구속도 너무 빨랐기 때문에 어느 각도에서도 받아치기 어려웠다. 한우빈과 그의 파트너, 두 사람 모두 수비에 실패했다.첫 라운드는 안시연과 연정훈의 승리로 끝났다.안시연은 크게 숨을 몰아쉬었다. 점심 식사를 간단하게 했던 안시연은 격렬하게 운동하고 나니 당이 떨어진 듯 무기력해졌다.다음 라운드가 다시 시작될 줄 알고 숨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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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92화

    처음 하는 뽀뽀도 아니었고 양혁수도 이젠 깜짝 놀라지는 않았다. 단지 헛웃음을 내뱉고 시선으로 무언가의 경고를 날릴 뿐이었다.변여름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오빠, 정말 향기로운 냄새가 났단 말이에요.”“...”‘그게 중요해?’양혁수가 혼을 내려고 자세를 고쳐 앉자, 변여름이 먼저 입을 열었다.“그래요. 제가 정신이 나갔나 봐요. 변태라는 거 인정할게요.”그러자 양혁수는 화를 내기는커녕 새어 나오는 웃음을 참아야만 했다.다시 등받이에 몸을 기댄 양혁수는 굳은 얼굴로 물었다.“꼬맹이가 부끄러운 줄도 모르고 말이야.”변여름은 눈을 데굴데굴 굴리며 말했다.“글쎄요.”그리고 소파에 편히 기대앉으며 낮은 소리로 말했다.“나도 오빠 앞에서만 이래요. 정말 무슨 이유인지 모르겠지만 오빠만 보면 달라붙고 싶은 걸 어떡해요.”“그러는 오빤, 내가 다가오면 어떤 기분이에요?”막아서는 사람이 없자 변여름은 점점 겁 없이 질문을 이어갔고 양혁수는 며칠 전 밤이 떠올라 표정 관리가 힘들었다.“별생각 없어.”“정말요?”“그래.”퉁명스러워 보이는 양혁수를 보며 변여름은 피식 웃더니 제 스마트 워치를 벗어 양혁수의 손목에 채우려 했다.“뭐 하는 거야?”“뽀뽀 한 번만 더 하고 오빠 심박수 체크해보면 안 돼요?”양혁수는 바로 손을 빼냈으나 변여름도 절대 물러서지 않았다.체구로 보았을 때 변여름은 당연히 양혁수의 상대가 아니었고, 계속 매달리는 변여름에 양혁수는 양손을 꽉 잡아 포획해 버렸다.“자꾸 까불래?”손목이 잡혔지만, 변여름은 손가락을 살살 움직여 양혁수를 간지럽혔다.양혁수는 새우처럼 파닥거리기 시작했고 변여름은 웃음이 터졌다. 양혁수가 자신을 어떻게 하지 못할 거라는 걸 알고 있었기에 변여름은 점점 더 과하게 움직여 양혁수의 몸을 가로 탔다.참다못한 양혁수는 아예 변여름의 손을 잡아 벽으로 가두었다.“그만해.”양혁수는 숨을 헐떡이고 있었는데 간지러움에 숨이 찬 것도 있었지만 자꾸 기어오르는 변여름에 속수무책이라 그런 것도 있는 것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91화

    양혁수는 지금껏 변여름의 말을 열심히 듣고 있던 자신이 멍청하게 느껴졌다. 변여름은 얼마든지 자신의 제가 했던 말을 뒤엎을 수 있는 사람이었다.“그럼, 네 말대로면 시연이도 현실이 상상보다 더 좋은 사람일 수도 있잖아.”그러자 변여름은 한숨을 푹 내쉬었다.“오빠, 계속 그러면 나 정말 질투할지도 몰라요.”“술 마셔 자제력이 떨어진 오빠를 질투에 눈먼 내가 뭐 어떻게 하려면 어쩌려고 그래요?”“...”변여름의 말을 듣고 있자니 어느새 우울함이 반으로 줄었다.그리고 변여름이 뜨개질 거리를 찾아 다시 양혁수의 옆자리에 얌전히 앉았다.하얀 피부는 투명할 정도였고 가까운 거리에 양혁수는 변여름의 긴 속눈썹까지 보였다.“부모님이 연락이 온 거야?”양혁수의 질문에 변여름이 고개를 끄덕였다.“맞아요.”“빨리 집으로 돌아오라 재촉하진 않으셔?”“아니요. 그것보다 오빠 어디까지 꼬셨는지 궁금해하시던데요.”양혁수는 머리가 지끈거렸고 문득 한 가지 사실이 떠올랐다.“가족들한테 날 좋아하는 사실은 언제 밝힌 거야?”“성인이 되는 날 에요.”그리고 변여름을 한 마디 덧붙였다.“오빠네 나라 법에 따른 성인이던 해에요.”“...”‘뜬금없는 곳에서 꼼꼼하긴.’“몇 해 동안 얼굴 한번 보여주지 않더니 그동안 부모님 사업 돕고 있었어?”변여름은 또 고개를 끄덕였다.“5년 동안 아빠를 위해 일하면 앞으로 가문 사업에 손을 대지 않아도 된다고 약속을 받았거든요.”“그럼 넌 앞으로 뭘 하고 싶은데?”“의학이요.”변여름은 고민도 하지 않고 답했다.양혁수는 나쁘지 않은 계획이라 생각했다. 변여름처럼 똑똑한 사람이 의사가 된다면 더 많은 사람을 살릴 수 있을 것이다.그때, 변여름이 스웨터를 내려두고 말했다.“낮에 교수님이 연락을 하셔서 언제 한강시에 돌아올지 물었어요.”사실, 양혁수는 예전에 변여름한테 지도교수한테 연락하겠다고 겁을 줬지만 정작 아무것도 하지 않았다.변여름이 그걸 은근히 떠보는 말투로 흘리자 양혁수는 못 들은 척하다가 천천히 말했다.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90화

    콩깍지?양혁수의 추억 속 에든베타는 분명히 따듯하고 아름다운 곳이었다. 그러나 오늘 밖을 돌아다니며 느낀 건 에든베타는 사실 흐린 날이 더 많다는 것이었다.술잔을 내려놓은 양혁수가 변여름에게 물었다.“빙 둘러 말하더니 지금 나한테 과거의 아름다운 추억은 사실 내가 꾸며낸 허상이었다고 말하고 싶은 거야?”양혁수는 무표정이었고 기쁨도 슬픔도 읽히지 않았다.이에 변여름은 솔직하게 말했다.“추억은 아름다운 거죠. 근데 그게 왜 허상이겠어요?”“다른 사람 눈에 별로 일 순 있어도 오빠한테 아름다운 거면 아름다운 추억인 거예요.”양혁수는 말없이 변여름을 바라봤고 변여름은 더 차분해진 얼굴로 말을 이었다.“하지만 난 한 여자의 가장 예쁜 순간이 내가 가장 사랑하는 사람 마음속에 제일 아름다운 추억이 되는 건 원치 않아요.”“내가 에든베타의 쓸쓸함을 봤다고 해서 과거의 그 사람이 별로가 되어버리는 건 아니야.”“당연하죠.”변여름이 미소를 지었다.“요즘 시연 언니 만나봤어요?”“뭐, 나이가 든 시연이가 과거와 달라졌을 것 같아?”변여름은 고개를 저었다.“시간이 지나도 달라지지 않는 건 있어요. 시연 언니는 오빠와 4분의 1이 넘는 인생을 같이했고 오빠의 인생에서도 시연 언니는 이미 중요한 사람이 되었겠죠. 그러니 달라진 외모는 오빠한테 큰 타격이 없을 거예요.”양혁수는 자세를 고쳐 앉으며 다 마신 컵을 돌려줬다.“그럼, 네가 원하는 건 뭐야?”“오빠가 과거를 직시하는 거요.”변여름은 옆에 내려둔 인형을 안아 들고 양혁수를 빤히 바라보다가 다시 말을 이었다.“시연 언니가 과거에 예뻤고 지금도 예쁘다고 하지만, 오빠는 아직도 시연 언니만 보면 마음이 불편하잖아요.”양혁수의 표정이 굳어갔다.“그게 왜 그렇겠어요.”양혁수가 대답이 없어도 변여름이 말을 이었다.“과거의 시연 언니가 50점이었다면 지금 더 완벽해진 시연 언니는 거의 80점에 달하겠죠. 하지만 오빠 마음속에 심어진 시연 언니는 추억 속에서 점점 미화가 되어 100점이 아니라 만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89화

    여섯 시가 되고 얼마 지나지 않아 양혁수가 집으로 돌아왔다.주방에 있던 변여름은 인기척에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으며 몰래 입꼬리를 올렸다.그래서 주방에서 빼꼼 고개를 내밀고 양혁수를 불렀다.외투를 벗던 양혁수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에 고개를 돌렸고 표정은 잔뜩 굳어있었다.이것도 변여름이 예상했던 시나리오이긴 했으나 이런 양혁수를 바라보는 건 너무 마음이 아팠다.“오빠, 빨리 와서 앉아요. 밥 다 됐어요.”양혁수는 알겠다고 대답하며 식탁 앞으로 걸어왔다.변여름은 부지런히 반찬 여섯 가지와 국 하나를 완성했다.“우리 두 사람뿐인데 이렇게 많이 할 필요없어.”“많지 않아요.”변여름이 양혁수의 밥 위로 반찬을 올려주며 말했다.“하루 종일 돌아다녔으니 기운이 빠졌을 거예요. 오빠는 양식도 별로 좋아하지 않으니, 밖에서 뭘 사 먹지도 않았을 거잖아요.”그 말에 양혁수는 피식 웃음이 터졌다.“누가 그래? 내가 양식 별로 안 좋아한다고?”“오빠잖아요.”변여름이 수저를 내려놓으며 말했다.“전에 우리 오빠한테 여기 음식이 입에 맞지 않다고 엄청나게 투덜거렸으면서.”“뭐. 그렇게 못 먹을 정도는 아니야.”양혁수는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갓 튀긴 돈가스를 한 점 입에 넣었다.집 안에는 향기로운 음식 향이 가득했고 두 사람의 도란도란 얘기 소리와 이따금 들리는 웃음소리가 집안을 따뜻하게 데웠다.양혁수는 배가 아주 고팠던 건지 밥을 평소보다도 많이 비웠다.낮에 밖에서 겪었던 쓸쓸함은 어느새 변여름의 온기에 녹아서 사라져 버렸다.샤워하고 아래층으로 내려오자, 변여름이 술잔을 세팅하고 있었다.“네가 산 거야?”변여름이 고개를 끄덕였다.“오후에 사람을 시켜서 가지고 오라고 했어요.”양혁수는 변여름이 만들어준 칵테일도 마셔봤기에 변여름의 솜씨를 인정했다.“네 마음대로 한잔 만들어줘.”변여름은 알겠다고 고개를 끄덕이더니 바로 손을 빠르게 움직였다.양혁수는 소파에 나른하게 기대앉아 화려한 손놀림의 변여름을 바라봤고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말했다.“오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88화

    얼떨결에 기차에 탄 양혁수는 왠지 뾰로통했다.이건 양혁수의 추억 여행이었으나 변여름이 양혁수보다도 에든베타에 대해 잘 알고 있는 기분이 들었으며 본인과 양시연 사이의 이야기도 속속히 꿰고 있는 것 같았다.역에 도착하자 마침 눈이 내리고 있었다.양혁수는 추위에 절로 몸이 움츠러지고 옷매무새를 다시 여몄다.그러나 변여름은 그 옆에서 한껏 과장하여 감탄하고 있었다.“여기 너무 예쁜데요?”풍경은 정말 아름다웠다. 에든베타의 눈밭은 양혁수가 다녔던 여행지 중에서 열 손가락 안에 드는 곳이었다.그런데 변여름이 갑자기 뜬금없는 소리를 했다.“그래서 오빠가 이곳에서 시연 언니를 좋아하게 됐나 봐요.”“나였어도 시연 언니한테 반했겠다.”“...”방금까지 센치하던 기분이 또 와장창 깨져버렸다.오늘 일정에도 마중을 온 사람이 있었고 변여름은 아예 지낼 곳을 양혁수와 양시연이 함께 지냈던 마을로 골랐다.“거긴 여행객이 많아서 남은 방이 많지 않을 거야.”양혁수가 넌지시 말하자 변여름은 패드로 남은 방을 확인하며 고개를 끄덕였다.“그러네요. 남은 방이 없긴 하지만 오빠가 그곳을 많이 그리워할 테니 기사더러 빙 둘러대려고 하려고요. 오빠 추억 여행 좀 하게요.”“...”양혁수가 싸늘한 표정으로 변여름을 바라봤다. 이젠 변여름이 일부러 이러는 것이라는 게 확신이 들었다.용산 거리를 지나쳐 눈이 뒤덮인 에든베타 건축물을 보고 있자니 마치 영화 속 한 장면에 들어와 있는 기분이 들었다.변여름은 이 분위기에 알맞은 노래를 틀어 양혁수가 한껏 추억에 잠길 수 있도록 했다.그러나 익숙한 풍경을 보며 양혁수가 든 생각은 오직 하나뿐이었다.‘아, 추워 죽겠네.’그때, 양혁수와 양시연이 함께 지냈던 집을 지나치게 되었고 주변엔 온통 눈이 쌓여 있었으며 여행 온 사람들로 가득했다.양혁수는 눈을 반짝이며 그 풍경을 눈에 담으려 애썼고 왠지 이 집이 몇 년 전보다 많이 낡았고 정원도 생각보다 좁다는 생각이 들었다.기억 속의 집은 늘 해가 잘 들고 넓은 곳이었는데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87화

    밤 열두 시 반.양혁수는 침대 왼쪽 끝에 누웠고 오른쪽엔 변여름이 누워 있었다.아까 변여름은 대화를 하자며 양혁수를 기어코 침대에 데리고 왔다.평소에 말수가 적은 변여름이었지만 대화를 이어가야 할 때에는 그 누구보다도 수다스러울 수 있었다.지금도 변여름은 양혁수에게 최근에 봤던 아재 개그를 알려주고 있었다.“너 예능도 봐?”양혁수가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일반적으로 제 나이 또래 여자아이들이라면 예능 많이 보잖아요.”또 자신을 일반적인 소녀로 묶으려 애쓰는 모양이었다.양혁수는 변여름이 왜 굳이 이런 생각을 하는지는 모르겠지만 변여름의 대화에 꽤 흥미가 생겼기에 잠자코 듣고 있었다.“그래. 무슨 아재 개그인데? 너무 썰렁하면 안 들어줄 거야.”변여름이 목을 가다듬더니 말을 이었다.“딸기가 회사에 잘리면 뭐가 되는지 알아요?”양혁수는 고민하다가 말했다.“백수.”“아니요. 딸기시럽이요.”양혁수는 한참 고민하다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왜?”변여름은 웃음기 가득한 얼굴로 대답했다.“딸기가 실업했으니까 딸기시럽이죠!”“...”양혁수는 썰렁함에 두 눈을 질끈 감았지만, 이상하게 웃음이 새어 나왔다.그 어떤 개그보다도 자신을 웃기려 애쓰는 변여름이 가장 재밌게 느껴졌다.“나 다른 아재 개그도 알아요.”변여름은 은근슬쩍 양혁수에게 다가갔고 거의 딱 붙기 직전이었다.양혁수는 재빨리 이를 발견하며 변여름을 다시 원위치로 밀었다.“자꾸 선 넘으면 네 방으로 확 던져 버리는 수가 있어.”양혁수가 변여름을 향해 진지한 얼굴로 말했다.“대화하자며 데려와 놓고 자꾸 수작 피울래?”변여름은 얼굴 하나 변하지 않고 이불을 고쳐 덮었다.“너무 멀어서 오빠한테 잘 들리지 않을까 봐 그랬죠.”“나 겨우 서른이야. 이 정도 거리에서 듣지 못할 정도 아니거든?”“오빠 귀가 먹는다고 해도 난 오빠 옆에 있을 거예요.”변여름은 시도 때도 없이 플러팅을 했고 양혁수는 거의 무감각해졌다.“그만해.”양혁수는 이불을 쭉 당겨 변여름의 얼굴을 가렸다.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86화

    양혁수도 인정할 수밖에 없는 건, 변여름이 마침 가장 외롭고 힘든 시간에 나타나 줬다는 것이었다.화로의 장작 타는 소리가 들려오는 거실에서 변여름과 실없는 대화를 주고받는 것이 양혁수에게도 큰 위로가 되었다.이렇게 마음을 놓고 지낼 수 있는 기분은 스물다섯이 넘은 뒤로 다시 느낄 수가 없었다.스물다섯 전의 양혁수는 출생의 비밀도 몰랐고, 양시연을 만나지도 못했으며 총으로 제 친어머니를 쏴 죽이는 일도 겪지 않았다.변여름이 자신을 무조건적으로 좋아해 주고 아무 이유 없이 옆을 지켜주는 걸 보며, 어쩌면 변여름이라면 최악의 모습을 들켜도 떠나지 않을지도 모른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리고 이런 생각이 들자 양혁수도 변여름을 향한 자신의 마음이 대체 뭔지 고민하게 되었다.‘내가 정말 여름이를 좋아하는 건가? 아닌데...’결국 양혁수는 본인이 변여름의 아낌없는 사랑에 점점 응석받이가 되고 있다고 결론을 내렸다.시간이 차츰 흐르고 변여름의 뜨개질도 점점 스웨터 모양을 갖추기 시작했다.양혁수는 변여름이 정말 밤을 새우기라도 할까 봐 밤 열한 시가 되자 서둘러 변여름을 제지하며 잠을 잘 시간이라 다독였다.변여름은 아까 호박죽을 끓였고 양혁수를 시켜 가스레인지를 끄고 두 그릇 떠오라고 부탁했다.양혁수가 고분고분 두 그릇을 들고 다시 거실로 돌아왔는데 변여름이 제 방에서 꼬물거리는 게 보였다. 옆방의 변여름 침대에 베개 하나가 사라졌고 그건 양혁수의 침대 위에서 다시 포착되었다.‘쯧. 또 시작이군.’양혁수의 발걸음 소리에 변여름은 조금 긴장한 얼굴로 몸을 돌려 호박죽을 받아쥐었다.그리고 테이블로 걸어가 겉으론 침착한 얼굴을 하고 한 입 떠먹었다.양혁수는 테이블을 손가락으로 똑똑 두드리다가 또 제 침대를 가리켰다.“지금 뭐 하자는 거야?”변여름은 고개도 들지 않고 말했다.“오빠랑 같이 자려고요.”“꿈도 꾸지 마. 얼른 베개 들고 네 방으로 돌아가.”“새벽에 몰래 오빠 방으로 기어들어 오는 건 너무 변태 같잖아요.”그 말에 양혁수는 웃음이 터졌다.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85화

    화로에는 장작이 타는 소리가 타닥타닥 들려오고 거실에는 그 소리를 제외하고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양혁수는 도라미 인형을 베개 삼아 누워 맞은편에서 열심히 뜨개질하고 있는 변여름을 바라봤다.“너 정말 뜨개질할 줄 알아?”변여름이 진지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뜨개질하는 방법 다 익혔고 생각보다 쉬워요.”그리고 고개를 들어 양혁수를 쏘아붙였다.“오빠, 도라미 베개로 쓰지 마요!”양혁수는 상체를 살짝 들며 말했다.“좀 쓴다고 안 망가져.”그러자 변여름이 당장이라도 자리에서 일어날 기세를 보였고 양혁수를 혀를 차며 어쩔 수 없이 인형을 머릿밑에서 빼냈다.변여름은 그제야 다시 자리에 편하게 기대 다시 뜨개질에 집중할 수 있었다.“오늘 밤을 새우면 완성할 수 있을지도 몰라요.”“정말?”양혁수는 믿지 않는 눈치였다.“이건 굵은 실이라 빠르거든요.”꽤 전문가처럼 느껴지는 말투에 양혁수는 긴가민가해졌다.그래서 그 옆에 앉아 모바일 게임을 하며 변여름의 완성품을 기다렸다.변여름은 스웨터 말고 먼저 목도리를 뜨려고 했는데 양혁수는 변여름이 스웨터를 만드는 줄만 알고 이렇게 비아냥거렸다.“이게 스웨터라고? 왜 이렇게 네모난 거야?”“스웨터는 너무 어려워서 담요로 바꾼 건가?”그리고 양혁수는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여름아, 오빠가 하나 조언해 줄까? 차라리 담요 두 장 만들어. 그다음에 가위로 옷 모양으로 자르고 테두리만 꿰매면, 그러면 그게 스웨터잖아.”“...”변여름은 처음으로 양혁수가 말이 많다고 느껴졌다.“담요를 그렇게 자르면 실이 다 풀린다고요!”“본드로 붙이면 되지.”“...”‘정말 못 말려.’양혁수가 말이 많아진 건 꽤 진지해 보이는 변여름의 모습이 조금 웃기게 느껴졌기 때문이었다.변여름은 무언가 집중할 때면 연구 실험을 하듯 한껏 굳은 표정이었는데 뜨개질할 때도 그 표정이 나오는 게 신기했다.그리고 양혁수도 변여름이 목도리를 뜨고 있다는 사실을 모르지는 않았다.회색 실을 보아하니 본인의 몫으로 뜨고 있는 것

  • 교수님의 독점적 사랑   제1184화

    고작 인형 하나 받았다고 변여름의 입이 귀에 걸렸다.양혁수는 변여름이 참 단순하다는 생각이 들었다.양혁수의 옆에 찰싹 달라붙던 변여름은 어느새 인형을 들고 뛰어다니며 평범한 소녀처럼 사진 찍기에 바빴다.양혁수는 변여름이 찍은 사진을 아마 노지혜에게 보내지는 않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사진을 찍고 변여름은 해가 잘 드는 곳을 찾아 도라미를 눕히고 얇은 이불까지 덮어줬다.“오빠, 저녁에 먹고 싶은 거 있어요?”변여름의 관심사가 다시 양혁수로 돌아오고 있었다.양혁수는 베란다에 앉아 국내 회사에서 보내온 보고서를 보고 있었다.양혁수가 변여름의 질문에 대충 대답을 하자 변여름은 바로 위층으로 올라가 옷을 갈아입고 외출 준비를 했다.옷을 든든히 입고 출입문 앞에 선 변여름을 보고 양혁수가 불러세웠다.“어딜 가려고?”“마트요.”“이렇게 추운 날에 가긴 어딜 간다고 그래?”“오빠가 소갈비찜 먹고 싶다면서요. 그건 양파가 꼭 들어가야 하는데 집에 없어요.”양혁수는 아까 일에 정신이 팔려 본인이 무슨 대답을 했는지도 잊었고 소갈비찜에 양파가 들어가든 들어가지 않든 중요하지 않았다.“그렇게 번거롭게 할 필요 없어. 있는 재료로 만들어 먹으면 돼.”“안 번거로워요. 마트가 멀지도 않고요.”고집 피우는 변여름을 보며 양혁수는 어쩔 수 없이 말했다.“나 양파 별로 안 좋아해.”“그러면 빵가루 사와 내일 빵 구워줄게요.”‘쯧. 어떻게든 나가겠다는 생각이군.’양혁수는 성큼성큼 걸어가 변여름의 목도리를 풀어 헤쳤고 고개를 숙인 채로 타이르듯 말했다.“집 밖에선 어른 말 들어야 한다고 네 오빠가 안 가르쳤어?”변여름은 순수 무구한 얼굴로 눈만 깜빡였고 양혁수는 할 말을 잃었다.“심심하면 책 보거나 드라마 봐. 교수님이랑 프로젝트 의논을 하든지. 왜 종일 나 뭐 먹일 건지만 고민하고 있어?”“책이나 드라마, 그리고 프로젝트 의논을 해서는 오빠 마음을 사로잡을 수 없잖아요.”양혁수는 목도리를 아예 훌렁 잡아당겨 소파에 곱게 눕혀진 도라미 위로 던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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