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 교수는 생일 연회를 성대하게 치렀는데, 빈방만 몇십 칸을 잡아두었다.안시연은 연정훈이 어떻게 마침 그녀가 있는 방으로 정확하게 들어왔는지 도무지 알 수가 없었다.룸 안에 자리가 모자라 구혜은이 옆 칸 큰 룸으로 연정훈을 청하려 했지만, 그는 오히려 단호하게 거절했다.“아, 괜찮습니다.”온 방의 사람들은 모두 연정훈을 다른 방으로 보내고 싶지 않았다.그래서 다들 시선을 후에 들어온 안시연과 정이슬에게 주목했다.‘쓸데없는 사람이 왜 아까운 자리를 차지하고 있냐?’그런데 잠깐 사이에 스태프가 도착해서 현장에 자리를 몇 개 추가했다.안시연과 정이슬은 여자 테이블로 초대되었고, 연정훈은 그녀를 등진 자리에 앉았다.연정훈에게 잘 보이려는 사람들이 적지 않았는데, 저마다 감히 무모하게 굴지 못했다.구혜은은 자신이 프로젝트 책임자라는 신분을 믿고 자신을 내세우기에 바빴다.“연 대표님, 저의 스승님 대신에 한 잔 올리겠습니다, 아낌없이 프로젝트 자금을 내주시고 항상 우리의 천문 사업을 지지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장 교수도 입이 귀에 걸리도록 활짝 웃었다.“맞아, 연 대표께 돈을 너무 많이 쓰게 했어.”연정훈은 화려한 차림새 없이 일상적인 수트를 입었고 룸에 들어선 후 다른 남자들과 마찬가지로 정장 외투를 벗고 심플한 흰색 셔츠를 입고 있었다. 하지만 그의 일언일행에서 남들이 쉽게 다가가지 못할 귀티가 배어 있다. 그의 오뚝한 콧날 위에 걸려있는 금테 안경이 원래 감정이 잘 드러나지 않는 몽롱한 눈동자를 가려 더욱 서늘하고 차가운 분위기를 자아냈다.구혜은이 술을 권하자, 그는 고개를 약간 끄덕이며 잔을 들었다.이런 행동이 그에겐 이미 충분히 체면을 세워준 것이었다.정이슬이 귓속말로 말했다.“쟤 얼굴 빨개진 것 좀 봐. 얼마나 흥분했으면 저래?”안시연은 미소를 지을뿐 말하지 않았다.구혜은 뿐만 아니라 이 테이블에 앉은 모든 사람이 연정훈을 주시하고 신경 쓴다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그녀는 핸드폰을 꺼내 열어보니, 그와의 대화 기록은
안시연의 핸드폰이 울리는 순간, 사람들의 시선은 그녀에게로 집중되었다.정이슬도 처음에는 아마 우연의 일치일 것으로 생각했었다.그러나 사람들의 놀란 눈빛 사이로 연정훈이 몸을 돌려 그녀를 향했다.그는 인제야 안시연을 발견한 듯 의아한 표정을 짓더니 이내 허탈하게 웃었다.“왜 이렇게 한참 동안 아무 말도 안 하고 잠자코 있었어?”안시연은 자신을 향한 사람들의 경악한 눈빛을 뚫고 그를 향해 밝게 웃으며 말했다.“교수님과 기분 좋게 얘기 중이니, 방해하고 싶지 않아서요.”“그래도 교수님께 먼저 술을 권해야지. 구석에 숨어 있는 건 예의가 아니잖아.”남자는 꾸짖는 말을 하면서도 안시연을 주시하며 은은하게 반짝이는 눈동자엔 진한 사랑으로 가득했다.안시연은 술잔을 들고 일어섰다.두 테이블 사람은 아직 뇌 정지 상태였다.그래도 장 교수가 제일 먼저 상황 파악이 되었고 안시연이 곁에 걸어 오자 그는 비로소 손바닥으로 이마를 ‘탁’ 치고는 말했다.“이 기억력 좀 봐, 어쩐지 혜은이가 날 욕하더라니. 아까 시연이가 남자 친구를 데려온다고 말했었는데 깜빡했네!”그는 말하면서 다시 안시연을 바라보았다.“이 계집애도 참, 왜 진작 말하지 않았어. 하마터면 웃음거리가 될 뻔했네, 허허. ”안시연의 발그레한 얼굴엔 수줍은 기색이 드러났다.“교수님 오늘 이렇게 바쁘신데 제가 어떻게 저의 일에 신경 써달라고 할 수 있겠어요.”“무슨 신경을 써, 이건 잘된 일이지!”장 교수는 연정훈이 술잔을 내려놓고 안시연에게 자리를 양보하려 하는 것을 보고 옆에 있는 구혜은를 툭툭 치며 다그쳤다.“혜은아, 시연이랑 자리를 바꾸는 건 어떨까? 저렇게 멀리 앉는 것도 불편하잖아.”구혜은의 안색은 똥을 씹은 듯 구겨졌다.그녀는 아직도 정신을 놓은 상태였다.‘안시연이... 연정훈의... 여자 친구라고?!’그녀는 어쩔 수 없이 자리에서 일어났고 시선을 돌리자 마침 안시연이 고개를 숙여 연정훈과 눈빛을 교환하는 것을 보았다. 남자의 그윽한 눈빛에는 그의 차가운 기질과 하나도 어
연정훈이 그 말을 묻고 안시연이 고개를 돌려 보니 구혜은의 얼굴은 겁을 먹은 듯 하얗게 질려 있었다.안시연은 깨 고소하면서도 연정훈이 정말 나쁜 남자라고 다시 한번 뼛속 깊이 느끼게 되었다.그녀가 구혜은과 얼마나 많은 악연이 엮여있는지 구혜은은 스스로 잘 알고 있다. 그런 안시연이 연정훈에게 자기에 관한 말을 꺼냈다니, 뒷담까진 아니더라도 무조건 좋은 말은 아니었다.“후배, 연 대표님께 내 얘기까지 했어?”구혜은은 애써 괜찮은 척하며 말했다.그러자 안시연은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어떤 속셈인지 전혀 알 수 없는 태도로 대답했다.“선배가 대학 다닐 때부터 잘 챙겨줬는데 어떻게 잊을 수 있겠어요.”말을 듣자 구혜은의 안색은 더 나빠졌다.장 교수도 눈치가 빠른 편이라 상황이 더 나빠지기 전에 얼른 수습하러 끼어들었다.“내 학생 중에서도 혜은이와 시연이는 제일 출중한 편이야. 혜은이는 일을 착실하게 잘 처리하고 시연이는 비록 우리 천문과 학생은 아니지만, 학창 시절부터 무엇이든 열심히 하려고 했고 한 사물을 깊게 파고드는 걸 좋아해 남다른 인상을 남겼었어.”안시연은 담담하게 대답했다.“과찬입니다.”그런데 그녀의 얼굴에 드러난 아쉬움은 감출 수 없었다.“학교를 떠난 뒤로는 천문학을 거의 접해본 적이 없네요.”“천문을 연구하는 데는 타고난 재능뿐만 아니라 끈기가 필요해.”연정훈이 그녀를 한 번 쳐다보며 말했다.“역시 넌 여러 전시회를 더 많이 보고 외부의 환경을 넓게 접촉해 보는 게 좋아.”그가 이 말을 꺼내자, 장 교수는 숨겨진 말뜻을 귀신같이 알아들었다.“그럼 마침 잘됐네, 이번 전시회에 혜은이가 시연이를 데리고 여러 군데 돌아보는 게 좋겠어.”구혜은은 어색하게 치켜드는 입꼬리를 억지로 누르며 말했다.“나?”“그래, 네가 이번 전시회를 주최하잖아, 접해 본 것도 많을 테니 네 시연 후배를 데리고 돌아보는 것도 괜찮지.”장 교수가 말했다.구혜은은 머뭇거리다가 결국 입을 열었다.“제가 하기엔 좀...”“선배는 항상 일이 바쁘셔서
안시연은 구혜은의 사람됨 자체가 싫었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녀와 따지고 싶지 않았다.그녀는 원래 바로 이 자리를 떠나려 했는데, 뜻밖에도 구혜은이 먼저 자신을 향해 걸어왔다.“후배, 이건 내 명함이야, 너 요즘 시간 되면 언제든지 연락해.”안시연은 어이가 없어서 가만히 서 있었다.그리고 명함을 받아 쥐고는 두말하지 않고 곧장 밖으로 걸어 나가 연정훈을 찾았다.‘구혜은 같은 사람은 여러 다른 환경에서 쉽게 어울릴 수 있긴 해.’그녀의 핸드폰은 정이슬이 연거푸 보내온 카톡으로 끊임없이 징징 울리고 있었다.“안시연, 너 지금 완전 핫해.”“세상에, 남자 친구가 연정훈이야? 아니, 절친인 나한테 진작 말하지 그랬어!”“난 또 모르고 내 관종 남자 친구를 부를 뻔했잖아!”안시연은 웃음을 금치 못했다.그녀는 정이슬에게 전화를 걸어 진심으로 감사를 표하고는 전화를 끊자마자 복도 모퉁이에서 진수빈을 만났다.“연 대표님은 이미 내려가셨는데 같이 가시겠습니까?”안시연은 연정훈의 일분일초가 매우 소중한 걸 알고 있었으므로 당연히 오래 머물지 않을 것을 예상했다.그녀는 잠시 생각에 잠기더니 말을 꺼냈다.“장 교수님께 인사드리고 바로 내려갈게요.”“알겠습니다.”안시연은 다시 룸으로 돌아왔다.오는 길에서 만난 여러 사람들은 이곳에 금방 왔을 때와는 전혀 다른 모습과 태도로 그녀를 대했다.어떤 사람들은 심지어 모르는 사이지만 친한 척을 하며 다가와 그 자리에서 연락처를 주고받았다.장 교수의 부인마저 친근하게 “우리 시연이”라고 부르며 시간 날 때 집에 놀러 오라고 청했다.그냥 간단히 작별 인사를 하는 것만 해도 30분이 걸려 겨우 룸에서 나와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주차장 한가운데 검은색 벤틀리가 세워져 있었다.그녀는 종종걸음으로 달려가 차 문을 당겼다.연정훈은 좌석에 기대앉아 잠시 눈을 감고 쉬고 있었는데 소리를 듣고 눈을 떴다.그가 몸을 일으키려고 할 때 부 좌석의 여인은 차 문을 닫더니 뜻밖에도 옆에서 그를 꼭 껴안았다.이 심상치 않은 행동
진수빈은 차 밖에서 담배를 피우고 있었다.연정훈 곁에는 여인이 거의 없었고 그는 또 이런 일을 처음 해 봐서 차 쪽을 감히 쳐다보지 못했다.설령 이렇더라도 그는 여전히 차 속 여자가 겁을 먹은 아기 고양이처럼 깜짝 놀라 외친 나른한 비명을 듣고 말았다.“쯧.”그는 차와 좀 더 멀리했다.고개를 들자 멀지 않은 곳에서 걸어오는 한 사람이 그의 눈에 띄었다.그는 속으로 ‘아차’ 했다.양민아도 연회에 참석하러 오던 참이었으나 건물 아래층에서 진수빈을 보게 될 줄은 몰랐다.진수빈이 이곳에 있다면 연정훈도 당연히 이곳에 있을 것이었다.그녀는 웃으며 이쪽을 향해 걸어왔다.차 안, 안시연의 단정했던 옷차림은 어느새 인위적으로 흐트러졌고 그녀의 몸 위에 무겁게 누르고 있는 남자는 반대로 옷차림이 매우 단정했고 머리카락조차 흐트러지지 않았다. 다만 금테 안경 렌즈 뒤 그윽한 눈동자가 이미 한 층의 뜨거운 욕망으로 짙게 물들어 있었다.“교수님...”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나지막이 불렀다.몸이 욕망으로 근질근질했고 그의 뜨거운 손아귀에서 녹아내릴 것만 같았다.정신이 점점 혼미해지고 있는 그때, 갑자기 뒷좌석 창문 유리에 똑똑 하는 소리가 들렸다.그녀는 깜짝 놀란 사슴처럼 어쩔 줄 몰라 연정훈의 품에 꼭 기대어 그의 넓은 등판으로 자신의 몸을 가렸다.연정훈의 눈동자에 활활 타오르던 욕정은 찬물을 끼얹은 듯 순식간에 사라졌고 그는 언짢은 듯 눈살을 찌푸렸다.진수빈은 일을 나름 차분하게 처리하는 성격이라 절대 함부로 하지 않았다.그는 정장 외투를 가져와 안시연의 몸 위에 덮어주었다.“괜찮아, 걱정 마.” 안시연은 얼굴을 붉히며 다른 건 신경 쓸 겨를도 없이 몸을 돌려 재빨리 옷을 챙겨입었다.그녀가 거의 다 정리된 후에야 연정훈은 창문을 열었다.진수빈은 감히 안을 들여다 못 보고 몸을 약간 굽힌 채 말했다.“연 대표님, 양민아 씨가 오셨습니다.”안시연은 연정훈을 등진 상태로 동작을 잠시 멈추었다.그녀의 머릿속엔 한 사람의 모습이 떠 올랐고 한창
양민아는 태도가 온화하고 예의 바르게 물었지만, 그녀가 먼저 물었을 때 안시연은 말 못 할 불편함을 느꼈다.안시연은 입꼬리를 당기며 단호하게 거절했다.“아뇨, 좀 피곤해서 쉬고 싶어요.”이승우 한 명도 상대하기 어려운데 다른 몇 명은 더 말할 것도 없었다.그녀와 이 사람들은 원래 한세상 사람이 아니어서 서로 어울리기 힘들었다.양민아는 웃으며 말했다.“그러면 시간 날 때 같이 전시회 보러 가자.”“그래요.”양민아가 몸을 일으키자, 안시연은 차에서 내릴 준비를 하고 있었다.그런데 연정훈이 다가와 그녀가 문을 여는 동작을 막았다.“교수님?”양민아는 아직 멀리 가지 않았고 이 호칭을 듣고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려 뒤쪽을 바라보았다.안시연은 차창으로 고개를 갸웃거리며 시선을 위로 한 채 연정훈에게 물었다.“전 택시 타고 갈 테니 진 비서님께 교수님을 데려다 달라고 할까요?”“괜찮아.”연정훈은 차 문에 팔을 걸치고 그녀의 손바닥만 한 얼굴을 주시하며 진지하게 말했다.“난 차가 있으니 진 비서더러 널 데려다 달라고 해.”안시연은 자기도 모르게 양민아 쪽을 바라보았다.양민아는 그녀를 향해 빙긋 웃었다.‘하긴, 양민아 씨는 차가 없을 리가 없지.’안시연은 눈을 절반 감아 시무룩한 시선을 감춘 채 걸쳐있던 외투를 연정훈에게 건넸다.연정훈은 몸을 약간 숙였고 바로 그 순간 안시연이 갑자기 그의 소매를 잡아당겼다.그녀는 차창 밖으로 몸을 내밀어 남자의 입가에 입을 맞추었다.멀지 않은 곳에서 양민아는 이 달콤한 광경을 한눈에 볼 수 있었다.그녀는 한순간 몸이 굳더니, 바로 진정하고 무표정한 채 시선을 돌려 호텔 안으로 들어갔다.차창 옆 안시연은 주춤주춤 물러서며 부끄러움을 감췄다.연정훈은 그녀가 두 손을 차 문에 놓고 머리를 숙이고 있는 앙증맞은 모습에 참지 못하고 손을 뻗어 그녀의 보드라운 머리카락을 어루만졌다.“아직 시간이 일러. 심심하면 병원에 가서 외할머니를 찾아뵈는 것도 좋아.”“네...”“하지만 저녁에는 꼭 일찍 집에 가
안시연은 그를 집 안으로 들인 뒤 먼저 물을 따랐다. 연정훈은 식탁 가장자리에 기대어 미간을 짚고 쉬고 있었다. 안시연이 물을 그의 손 옆에 놓자 그는 눈을 가늘게 뜨고 천장 조명을 거슬러 그녀의 얼굴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말없이 일을 하며 안색은 평온했고 입술은 살짝 오므리고 있었다. 그는 손을 뻗어 그녀를 끌어안으려 했으나 그녀는 이미 몸을 돌리고 말했다.“과일 좀 씻어올게요”연정훈의 손은 허공을 잡았지만 그는 전혀 화내지 않고 입가에 살짝 미소를 띠었다. 안시연은 주방에서 일부러 시간을 끌었고 다시 나왔을 때는 방울토마토 한 묶음을 들고 있었다. 그녀는 연정훈의 맞은편에 앉았다. 연정훈은 천천히 그녀를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 “이리 와.”안시연이 그를 한 번 쳐다보았다. 그는 손으로 옆 자리를 가볍게 두드렸다.안시연은 결국 그의 말과 반대로 행동할 수 없었다. 그렇지 않으면 마치 자신이 그와 싸우자는 것처럼 보일 것이다. 그녀는 그의 옆에 앉았으나 그의 품에 안기지는 않았다.연정훈은 다리를 꼬고 편안한 자세로 소파 등받이에 얼굴을 기댔다.그는 손을 뻗어 그녀의 흐트러진 긴 머리카락을 살짝 쓸어올리며 농담조로 말했다. “낮에는 그렇게 네 얼굴에 자존심을 세워줬는데 밤에는 나한테 좋은 태도도 안 보여주는 거야?”안시연은 잠시 말이 없었다. 그녀도 자신의 태도가 지나쳤다는 것을 깨닫고 있었고 입을 열려고 했지만 그는 이미 몸을 바로 세우며 그녀에게 다가와 그녀를 안았다.“기분이 안 좋아?”그의 뜨거운 눈빛에 안시연은 얼굴이 화끈거렸다. 그녀는 입술을 깨물며 그를 쳐다보았다. “... 당신 몸에서 술 냄새 나요.”연정훈은 눈썹을 살짝 치켜올렸다.그는 술에 대해서는 언급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더 품 안으로 끌어안았다.안시연은 말없이 그의 어깨에 기대었다.남자는 얼굴을 옆으로 돌렸고 따뜻한 숨결이 그녀의 얼굴에 닿았고 그녀에게 말했다.“앞으로는 일찍 올게, 기다리게 하지 않을게”그 순간, 그녀의 마음이 살짝 흔들렸다
연정훈은 오늘 밤 일이 있어서 샤워를 하러 갔고 안시연은 옆방 서재를 정리했다.그가 서재로 들어왔을 때 안시연은 나가려고 했다.“나가지 마.” 연정훈이 그녀를 불러 세우며 말했다. “금방 끝낼게.”침실은 바로 옆 벽 하나를 두고 있는 곳이었다.안시연은 거절하지 않았고 그가 책상 뒤에서 일할 때 그녀는 소파에 앉았다.그가 일을 마쳤을 때 그녀는 그가 전화를 하는 소리를 들었다.“학생증 하나 만들어줘, 권한은 조금 높게 설정해.”“안시연, 편안의 안, 시간의 시, 인연의 연이야”그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는 것을 들은 안시연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보았다.연정훈은 한 손으로 전화를 받으며 다른 손으로 그녀를 불렀다.그가 전화를 끊자 그녀는 그의 품에 안겼다.안시연은 연정훈의 무릎에 앉아 궁금하게 물었다. “나한테 학생증 만들어줬어요?”“응, 성진대학교.”연정훈은 몸을 세워 그녀를 품에 안았다.“학생증이 나한테 왜 필요해요?” 안시연이 물었다.“시간 있을 때 학교에 가서 강의를 들어. 너한테 나쁠 게 없으니까.”이 말에 안시연은 기뻤다. 성진대학교의 강의는 아무나 들을 수 있는 게 아니었다.그녀는 연정훈이 술자리에서 일부러 장 교수에게 구혜은이 그녀를 전시회에 데리고 가게 하려 했던 일을 떠올렸다.“강의를 듣는 건 좋은데 전시회를 보는 건 가끔씩 보고 싶어요. 전시회 쪽은 내가 잘 몰라요.”“모르면 배우면 돼.”안시연은 잠시 머뭇거렸다.남자의 가슴이 그녀의 등 뒤에 닿아 온기가 그대로 전해졌다.그는 팔로 그녀를 더 안아주며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의 귀에 속삭였다. “네가 천문학을 좋아하는 거 알아. 젊을 때 많이 배워두는 게 좋아.”안시연은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시험 삼아 말했다. “나는 당신이 내가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고 집에만 있는 걸 더 좋아할 줄 알았어요.”“내가 그렇게 속 좁아 보였어?”안시연은 입가에 미소를 지었다.“배우고 싶은 게 있으면 언제든지 배워.” 연정훈이 말했다.다른 애정 표현이나 금전
부승희는 창밖을 바라보다가 또 부승원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바라보는 시선에는 안타까움이 담겼다.부승원은 한 치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돌렸다. 그리고 낮은 목소리에는 찬 바람이 불었다.“집으로 운전해요.”기사가 고개를 돌려 물었다.“우희 씨 가방은...”“성인이 되어서 제 물건도 제대로 관리하지 못하는 건 본인이 알아서 책임져야죠. 내일 서류 제출하지 못하면 숙제는 두 배로 늘어날 테지만 본인이 알아서 해야 할 일이에요.”“...”‘부승원이 그렇다면 그런 거지 뭐.’‘이곳으로 돌아오라고 한 것도 부승원인데. 쯧, 기름 아깝게.”기사가 유턴하려고 하자 부승희는 그 틈을 타 반우희를 부르려 했다.부승원이 바로 손을 내밀어 부승희를 잡아당기는 동시에 차창을 올렸다.“...”부승희는 굳은 얼굴로 부승원을 바라봤다.“오빠 점점 이상하게 변하는 거 알지?”부승원은 못 들은 척 제 자리에 앉았고 얼굴을 굳힌 채로 말을 잇지 않았다.기사는 천천히 유턴했다.다른 한편, 아래층의 반우희와 장서진은 한참 서로를 끌어안다가 겨우 서로를 마주 보았다.“날 찾아온 걸 보면 무슨 일이 생긴 게 분명한데 그동안 대체 왜 말을 하지 않았던 거야!”장서진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며 말했다.“너한테는 세 동생도 있고 나보다 더 힘들게 뻔한데 어떻게 내 짐까지 나누겠어.”“아무리 힘들어도 예서가 아픈 것보다 큰일인 건 없어.”반우희도 코를 훌쩍이며 말했다.“우린 어릴 때부터 같이 크면서 빵 한 조각도 나눠 먹었잖아. 그런 네가 힘들다는데 내가 모른 척할 리가 없잖아.”그 말에 장서진이 눈물을 펑펑 쏟았다.눈물을 흘리는 장서진에 반우희도 눈물 꼭지가 틀어졌다.같은 보육원 출신인 두 사람은 남들보다 고달픈 삶을 살았다. 하지만 하느님은 항상 힘든 사람에게 더 많은 시련을 주는 것 같았다. 장서진이 동생을 만나 같이 지낸 건 겨우 몇 년뿐인데 그 동생이 큰 병에 걸렸다고 한다. 보험 회사에서 절반 비용을 부담한다고 해도 남은 비용은 장서진에게 큰 부담이었다.
“승희 씨!”바깥까지 걸어온 부승희가 몰래 긴 한숨을 내쉬었다. 고개를 드니 벤츠 좌수석에 앉아 손을 흔드는 반우희가 보였다.‘오호라...’반우희가 제 오빠 부승원의 차에 앉아 있는 것이 아닌가?쯧쯧.복잡한 감정은 잠시 접어두고 부승희가 차량까지 빠른 걸음으로 걸었다. 뒤쪽 차 문을 여니 평소에 여자 보기를 돌 보듯 하는 부승원이 눈을 감고 있는 게 보였다.그래서 일부러 마른기침하며 차에 올랐다.부승원이 눈을 살짝 찌푸리며 부승희를 바라봤다.부승희는 오바 액션으로 고개를 앞으로 내밀며 말했다.“우희 씨도 있었네요?”반우희가 고개를 돌려 헤헤 웃으며 말했다.“기사님이 두 분의 집이 제 집이랑 같은 방향이라며 태워준다고 했어요.”“그래요?”부승희는 제 집 기사를 보며 말했다.“정말 이런 우연이 다 있네요.”기사는 말없이 미소만 지었다.반우희는 무슨 의미인지 알지 못했고 품에 꼭 안고 있던 작은 배 하나를 건넸다.“승희 씨, 배가 엄청 달아요. 먹어보세요.”“좋아요.”부승희가 배를 건네받고 반우희와 대화를 이어갔다.부승원은 한참 눈을 감고 있다가 낮은 소리로 말했다.“운전하세요.”그러자 부승희와 반우희는 서로를 바라보다가 김이 빠진 표정을 지었고 말없이 제 자리에 조용히 앉았다.차는 한참 달려 먼저 반우희의 집 아래에 멈춰 섰다. 위층을 올려다보니 전등이 아직 켜져 있었다. 세 꼬마가 먼저 집으로 돌아가 따로 파티하는 중인 것 같았다.반우희는 안전벨트를 풀고 기사에게 인사를 건네려 했다. 그러나 기사는 몰래 손가락으로 뒷자리를 가리켰고 고개를 끄덕인 반우희가 부승원에게 말했다.“변호사님, 오늘 챙겨주셔서 감사해요.”부승원은 눈을 작게 뜨고 몰래 살폈다.“그래.”“그럼, 이만 돌아가 볼 게요.”반우희는 손을 저어 인사를 건넸고 또 부승희를 향해 손을 휘휘 저었다.부승희는 미소를 지은 채로 말했다.“그럼 또 봐요.”“네. 다음에 또 만나요.”반우희는 몸을 돌려 몇 걸음 걸다가 뭔가 떠오른 건지 빠르게 다시 차가
“에어컨 틀어놨어요. 빨리 씻고 일찍 자요.”부승희의 말에 모연준이 자리에서 일어나 담배에 불을 붙였다. 그리고 눈을 가늘게 뜨며 말했다.“왜 갑자기 이렇게 챙겨주는 거예요? 나한테 보상하려는 건가?”부승희는 모연준을 슬쩍 노려보며 말했다.“그럴 리가요. 다음엔 인사불성이 되어 경찰서에 잡혀가라고 저주 중인걸요.”모연준이 웃음을 터뜨렸다.그런데 핸드폰 잠금 화면 위로 떠오른 메시지를 확인하고 살짝 표정을 구겼다.그러나 전혀 내색하지 않고 부승희에게 말했다.“시간이 많이 늦었고 형님도 밖에서 기다리고 있으니 승희 씨도 빨리 돌아가서 쉬어요. 이젠 나 혼자 알아서 할게요.”“그래요.”부승희는 가방을 챙겨 밖으로 걸어가며 말했다.“샤워할 때 조심해요.”“알겠어요.”부승희는 손을 휘휘 저어 인사를 건네고 방 밖으로 나갔다.문이 닫히고 모연준이 시야에서 보이지 않자 부승희는 길게 한숨을 내쉬었다.모연준이 싫은 건 아니었다. 하지만 그 순간만 오면 왠지 조심스러워졌다.오늘 모연준이 한 발 뒤로 물러서 줘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생각해 보면 모연준은 여러모로 참 좋은 사람이었다. 부승희도 모연준이 참 좋았다.그러니 만족할 법도 한데 자꾸 왠지 부족한 기분이 들었다.뜨거운 사랑?부승희는 양시연에게 가장 부질없다고 말한 게 바로 뜨거운 사랑이었다. 그러나 마침 두 사람 사이에 부족한 게 바로 그것이었다.모연준의 옆에 있으면 부승희는 숙녀가 되어갔다.부승희는 제 머리를 부여잡고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아래층으로 내려가 부승원을 찾으려는데 엘리베이터 문이 열리고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에이 무슨 말씀이세요. 이번에는 모두 대표님 덕분에 무사히 고비를 넘겼는걸요. 안 그러면 골치 아파질 뻔했어요.”“네네. 다음번에 경인시에 오시면 제가 직접 대표님을 모시겠습니다.”부승희는 그 자리에 멈춰서 그곳을 살폈다.이승우였다.아직도 연회장 예복을 입은 모습이었는데 얼굴이 창백한 것이 과음한 것 같았다. 이승우는 술을 많이 마시면 마실수록
기다려.나도 네가 날 사랑하게 될 때까지 기다릴게.연정훈의 말 속에 담긴 의미는 이러했고 양시연도 이를 모르지는 않았다.양시연이 입꼬리를 올렸다.“좋아요. 어디 한 번 기다려 볼게요.”그리고 연정훈의 뺨을 톡톡 건드리며 말했다.“이젠 내려줘요.”명령에 가까운 어투였다.연정훈은 피식 웃음을 터뜨리며 내려주기는커녕 안은 채로 계속 걸어 침대에 양시연을 내려주었다.양시연이 고개를 돌자 자신을 빤히 바라보는 연정훈이 보였다. 연정훈은 천천히 제 와인색의 파자마 단추를 풀고 있었다.양시연이 침을 꿀꺽 넘기며 말했다.“뭐 하는 거예요...”연정훈은 아무 말도 없이 단추를 풀고 상의를 벗어 던졌다.‘뭐, 뭐 하자는 거야!’양시연은 두 눈을 깜빡이고 있었고 연정훈은 살짝 고개를 쳐들고 말했다.“이젠 자야지.”“네?”“넌 저기 붙어서 자. 이 선을 넘으면 반칙이니까 넘어오는 즉시 가만히 내버려두지 않을 거야.”쳇.양시연은 입을 삐죽거렸으나 곧 미소가 입가에 걸렸다.그리고 빠르게 두 다리를 모으고 미적미적 제 이불 안으로 기어갔다.옆자리의 연정훈도 이불 아래 얌전히 자리에 누웠다.두 사람이 잠자리에 눕고 전등이 꺼졌다.고른 호흡 소리가 겹쳐 들려왔다.양시연이 고개를 돌려 농담을 건넸다.“굿나잇.”“빨리 자. 한 번만 더 입 열면 날 꼬시는 거로 알 거야.”“...”‘흥. 하지 말라고? 그럼 더 하고 싶은걸?’양시연이 이불 끝을 살짝 올리며 말했다.“굿나잇!”“...”어둠 속 연정훈은 입꼬리를 씨익 올렸다.그러나 또 겨우겨우 자신의 충동을 참아냈다.‘멍청이.’연정훈은 일찍 자리를 비웠지만 결혼식에 참가한 사람들은 새벽까지 파티를 즐겼다. 다행히 호텔 방을 미리 잡아둔 터라 대부분 사람은 호텔에서 묵었다.처음 경인시를 찾은 모연준은 인맥을 쌓기 위해 조금 과음을 했다.부승희가 모연준을 찾고 볼멘소리를 했다.“왜 이렇게 많이 마신 거예요?”모연준은 부승희의 어깨에 손을 올리고 자연스레 방의 전등을 켰다.“사업하는
양시연이 마른기침을 했다.그러자 나비에게 간식을 먹이던 연정훈의 손이 뚝 멈춰 섰다. 그러나 마치 들리지 않는 것처럼 또 이어 간식을 먹였다.‘쳇.’양시연이 입을 삐죽이고 계단 손잡이에 몸을 기댔다.“큼큼. 셋 셀 동안 계속 모르는 척하면 오늘 밤엔 그냥 소파에서 자요.”“...”‘양시연 정말...’‘내가 손아귀에 들어왔다고 생각하는 거지?’연정훈이 고개를 들어 양시연을 바라봤다.양시연은 고개를 갸웃거리고 미소를 지었다.“셋, 둘...”연정훈이 몸을 일으켰다.“...”‘흥.’양시연은 저도 모르게 입꼬리가 올라갔다. 의기양양해진 양시연은 턱을 살짝 쳐들고 말했다.“이젠 빨리 자요. 술도 많이 마신 사람이 왜 애꿎은 알파카를 잡고 그래요? 다른 사람이 들으면 놀릴 거예요.”연정훈은 빠르게 계단으로 올라가 양시연의 앞에 섰다.그렇게 점점 거리가 좁혀지고 양시연은 눈만 깜빡였다. 바로 코 앞까지 다가오자 양시연은 빠르게 뒤로 물러섰고 연정훈이 멈추지 않자 계속 뒷걸음질을 했다.한참 뒷걸음치던 양시연은 마음이 급해 양손으로 연정훈을 막아섰다.“뭐 하는 거예요?”연정훈이 살짝 고개를 숙여 낮은 소리로 말했다.“결혼 첫날 밤을 같이 보내지 못하게 하는 것도 꾹 참고 있는데 내가 알파카랑 대화하는 걸 창피해할 것 같아?”“...”양시연은 목을 가다듬고 다시 고개를 빳빳이 쳐들었다. 그리고 연정훈의 표정을 살피며 물었다.“그래서 나랑 결혼한 걸 후회해요?”연정훈은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그렇게 큰 노력을 들여 겨우 한 결혼인데 소감이 어때요?”양시연이 인터뷰하듯 물었다.“...”그러자 연정훈이 몰래 이를 악무는 게 보였다. 차마 화를 내지는 못하고 꾹 참고 있는 게 보여 왠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그러나 미안한 것도 잠시, 약점을 잡았다는 생각에 또 기쁜 마음이 스멀스멀 찾아왔다. 과거의 연정훈은 나이가 많고 가진 게 많다는 걸 빌미로 양시연을 압도했었다. 그러니 이제 과거에 저지른 자기 잘못을 고스란히 돌려받는 것 같았
양시연은 욕실에서 들려오는 물소리를 들으며 이불을 목 끝까지 올렸다. 그리고 눈알만 데굴데굴 굴리고 있었다...딸깍.욕실 문이 열리고 양시연은 빠르게 두 눈을 꼭 감았다.연정훈은 수건으로 목에 흐르는 물방울을 닦아냈다. 그리고 침대에 누워 잠이 든 척하는 양시연을 향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연기 참 못해.”연정훈이 톡 쏘는 말 한마디에 양시연은 할 말을 잃었다.‘내 체면이 뭐가 돼.’눈꺼풀에 경련이 올 것 같았지만 양시연은 절대 눈을 뜨지 않았다. 그리고 잠결에 뒤척이는 것처럼 자연스럽게 등을 돌렸다.이에 연정훈은 몰래 웃음을 터뜨렸고 수건을 내려 두고 바로 침대로 향하지는 않았다.술기운이 올라오고 머리도 살짝 어지러웠던 연정훈은 잠기운은 이미 모두 사라진 터였다. 그리고 왠지 목이 바짝바짝 마르는 것 같았다.양시연의 뒷모습을 슬쩍 바라보던 연정훈은 시선을 거두고 컵을 챙겨 아래층으로 내려갔다.위층에는 도우미 하나 없었다.오직 검은색과 흰색의 알파카가 걱정 하나 없는 얼굴로 간식을 먹고 있었는데 최근 들어 두 알파카는 평소보다 더 풍요로운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인기척이 느껴졌지만 영준은 꼼짝도 하지 않고 음식을 입에 밀어 넣었고 나비는 빠르게 자리에서 일어나 연정훈의 옆으로 다가가더니 입속의 음식을 씹으며 빤히 바라봤다.연정훈은 왠지 나비가 대견하다는 생각이 들어 머리를 쓰다듬었다.물을 따르러 가는 내내 나비는 연정훈의 뒤를 따랐다. 그러다가 연정훈이 소파에 앉아 물을 마시자, 나비는 말린 바나나 간식을 머리로 밀어 연정훈의 곁에 내려놓았다.‘먹여줘.’마침 한가한 연정훈은 소파에 자리를 잡고 한 입 한 입 먹이기 시작했다.나비는 쉬지도 않고 삼켰다.이런 나비를 보고 있자니 절로 양시연의 생각이 나고 또 저도 모르게 이런 말이 나갔다.“바나나가 그렇게 맛있어? 이번 달에 살이 얼마나 쪘는지 알기나 해?”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나비는 입안의 바나나를 꿀꺽 삼키고 또 간식을 빤히 바라봤다.연정훈은 간식을 내려놓고 피식 웃음을
쪽!양시연은 가볍게 키스를 마친 후 바로 자리에 누웠다.“이 정도면 된 거죠?”연정훈은 내려다보며 말했다.“아까 내가 너한테 한 키스랑 똑같아? 그렇게 대충 넘어가려고?"양시연은 웃음이 터질 뻔했다.“내가 그렇게 해달라고 부탁한 적 있어요? 규칙도 어기고 기준까지 올리겠다고요?”“난 몰라. 그냥 네가 그렇게 해줬으면 좋겠어.”“...!”양시연은 혀를 차며 그와 말싸움을 벌일 준비를 했다.연정훈은 말싸움하기 싫었다. 어차피 논리적으로 밀릴 걸 알았기에 아예 싸움을 시작하지 않았다.그는 그냥 다시 다가가 입술을 가까이 댔다.양시연은 재빨리 고개를 돌렸고 연정훈은 그녀의 볼에 입을 맞췄다.“알았어요! 내가 다시 제대로 키스해 줄게요. 됐죠?”연정훈은 침묵했다.“...”연정훈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몸을 조금 일으켰다.“그럼 해봐.”양시연은 이를 악물고 가볍게 기침을 내었다.그녀는 다시 그의 목을 감싸 안았다. 이번에는 눈빛이 조금 더 진지해졌고 살짝 몸을 일으키며 눈을 깜빡이며 그의 입술을 바라보았다.쪽.마치 식전의 애피타이저를 먹는 것처럼 가볍게 했다.그러고는 입술이 서로 맞닿았다.양시연은 연정훈의 목을 더 세게 감아 붙잡았다. 입술이 서로 스치며 한 번 더 그 사이를 깊게 탐색했다.연정훈은 그녀가 발휘하는 모습을 지켜보려 했으나 도저히 가만히 있을 수 없었다. 양시연이 지치지 않도록 손을 뻗어 그녀의 뒤통수를 받쳤다.양시연을 자신의 팔 안에 부드럽게 안았다.처음엔 약속된 조건에 따라 금방 끝내야 했지만, 연정훈의 부드러운 태도와 그녀의 적극적인 반응이 더해져 키스는 점점 깊어졌다.둘의 시선이 어둠 속에서 교차하더니 본능적으로 눈을 감고 더욱 깊은 밀착으로 이어졌다.“음...”양시연의 몸이 완전히 풀렸다.어느새 그녀는 그의 손바닥을 베개 삼아 누워 있었다.목을 감싸고 있던 손은 점점 힘을 잃고 느슨해졌다.연정훈은 몸을 낮춰 양시연을 거의 완전히 눌렀다.잠시 숨을 고르는 틈에 그는 양시연의 입술을 한 번 더
연정훈의 뜨거운 숨결이 양시연의 피부를 달구는 듯했다양시연은 눈앞이 아찔해지며 순간 별이 떠오르는 듯했다. 정신을 차리기도 전에 턱이 다시 잡히고 그는 또다시 입술을 차지했다.그녀는 어깨를 움츠리며 억지로 이번 깊은 키스를 받아들일 수밖에 없었다.연정훈의 입술이 잠시 떨어지자 양시연은 힘없이 베개에 머리를 기댔다. 그가 멈출 생각이 없다는 걸 알기에 그녀는 그의 입술을 손으로 급히 막았다.그녀의 손바닥이 연정훈의 따뜻하고 촉촉한 입술에 닿았다.양시연은 얼굴이 붉어지고 심장이 요동쳤다. 그를 통제할 수 없을까 봐 다른 손까지 내밀어 양손으로 그의 입을 막았다.연정훈은 양시연의 손목을 다시 붙잡았다. 힘을 주어 떼려던 순간 그녀의 화가 섞인 숨 가쁜 목소리가 들려왔다. “연정훈.”연정훈은 잠시 움직임을 멈췄다.어둠 속에서 마주한 두 사람의 눈빛은 서로 빛났다.양시연은 헐떡이며 짜증과 원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뭐 하는 거예요?”‘이 밤중에!’연정훈은 태연하게 양시연의 손을 뿌리쳤다.“신혼 첫날 밤인데 내가 뭘 하는 것 같아?”양시연은 순간 말문이 막혔다.그녀는 입안에서 침을 꿀꺽 삼키며 빠르게 생각했다. 그러고는 억울한 표정을 지으며 따졌다.“약속 어겼잖아요! 저와 한 약속 기억 안 나요? 사기꾼!”양시연은 연정훈의 잘못을 지적하며 그에게 죄책감을 느끼게 하려 했다.연정훈은 천천히 물었다.“네가 기분 좋으면 하겠다고 하지 않았어?”“기억하는데도 왜 이러는데요!”“오늘 네 기분이 꽤 좋아 보이던데.”연정훈은 너무도 당당하게 말했다.양시연은 어이없었다.“...”그녀는 눈을 감고 이를 악물었다.“누가 그래요!”연정훈은 대답했다.“결혼식 같은 날도 안 좋다면 대체 언제 좋겠어?”“저...”연정훈은 이어서 말했다.“오늘도 안 된다면 이번 생엔 절대 못 하겠네.”양시연은 여전히 어이없었다.“...”‘이 여우 같은 남자. 말만 번지르르하게 잘해.’양시연은 그를 째려보며 온화한 가면을 벗어던지며 이불 아래서 연
방 안이 갑자기 어둠에 잠겼다.연정훈은 몸을 일으키다 말고 멈춰 섰다.그 순간 양시연이 말했다."저도 너무 피곤해요. 정말 졸려요."마지막 말은 하품하며 입을 벌리는 바람에 한층 더 나약하고 안쓰럽게 들리게 했다.연정훈은 침묵했다.“...”조금 전까지만 해도 화가 머리끝까지 치밀었던 연정훈은 어금니를 꽉 물며 순간적으로 기세가 꺾였다.어둠 속에서 양시연의 숨소리가 은은히 들려왔다. 처음엔 조심스럽던 호흡이 점차 고르게 변하며 금세 깊은 잠에 빠질 듯 보였다.연정훈은 같은 자세로 오랫동안 앉아 있었다. 화가 나 몸을 침대에 세게 던지고 싶었지만, 이상하게도 그의 몸은 조심스럽게 움직였다.양시연은 귀를 기울이다 몰래 한쪽 눈을 떠 근처에 있던 그림자가 사라진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안심하며 잠들었다.양시연은 곧 깊이 잠들었지만, 연정훈은 끝내 잠을 이룰 수 없었다.연정훈은 옆으로 돌아누워 낮에 남산 저택에서 그녀가 민희수와 나눴던 대화와 USB에 담긴 수많은 영상을 떠올렸다.그리고 웨딩드레스를 입고 여기저기 뛰어다니던 그녀의 모습이 머릿속을 스쳤다. 마치 이 인생에서 겪은 모든 억울함이 한꺼번에 몰려온 것처럼 느껴졌다.‘다른 건 그렇다 치고 신혼 첫날 밤에 이렇게 적반하장이라니.’게다가 조금 전 욕실에서 곁에 있어 주겠다던 그녀는 중간에 사라졌고 연정훈은 욕실에서 넘어져 자칫 큰일 날 뻔했다.생각할수록 화가 났고 화가 날수록 그 일이 계속 떠올랐다.결국 연정훈은 다시 돌아누워 양시연을 마주했다.어둠에 익숙해진 연정훈의 눈에는 양시연의 얼굴 윤곽이 또렷이 보였다.양시연은 깊이 잠들어 있었고 그 표정은 한없이 평온해 보였다.연정훈은 손을 뻗어 양시연의 얼굴을 한번 꼬집고 싶었다!그런데 그 생각이 들자마자 마음이 바뀌었다.‘꼬집어서 뭐 하겠어? 무슨 의미가 있다고?’결국 연정훈은 몸을 양시연 쪽으로 기울여 양손을 그녀의 옆에 두고 조용히 그녀를 내려다보았다.너무 가까워져 서로의 숨결이 섞이기 시작했다.연정훈의 숨소리는 점점 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