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는 프런트에 물어본 뒤 대표실로 향했다.김시후가 마침 지친 표정으로 이마를 문지르고 있었다.서유가 노크했다.“김 대표님.”김시후는 고개를 들어 그녀를 바라보았다.“왔어요.”서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그에게 다가가서 물었다.“제가 준비해야 할 것이 있나요?”전에는 동아 그룹의 파트너 회사에서 출장을 오면 스케줄을 짜 그들을 편하고 즐겁게 해주면 되었다.하지만 김시후는 그녀에게 개인 비서 업무를 맡겼기에 먼저 그녀에게 시킬 일은 없는지 물어봐야 했다.김시후는 관자놀이를 문지르던 손을 내려놓은 뒤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준비할 건 없어요. 조금 있다 나 회의 갈 때 커피 좀 내려줄래요?”“알겠습니다.”서유는 말을 마친 뒤 사무실을 나갔다. 김시후는 멍하니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뒷모습은 마치 예전에 여러 번 본 것처럼 익숙하게 느껴졌다.‘기억나는 게 없어. 또 머리 아프네...’그는 고개를 흔들며 핸드폰을 들어 소준섭에게 문자를 보냈다.소준섭은 마침 학회에 참가하고 있었다. 그는 문자가 온 것을 보고 다급하게 핸드폰을 들어 문자를 보냈다.「또 머리가 아프다고? 뭐 생각난 거 없어?」「없어. 근데 한 사람을 보고 있으면 익숙한 느낌이 들어. 그리고 머리도 엄청 아파.」「그 사람이 누군데?」김시후는 이 질문을 보고 갑자기 답장을 보내지 않았다.만약 소준섭이 그의 두통이 서유 때문이라는 것을 알면 서유가 위험에 처할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이런 생각이 들었지만 김시후는 깊이 생각하지 않았다. 그저 대충 ‘모르는 사람’이라고 둘러댄 뒤 회의가 있어 핸드폰을 내려놓았다.화진 그룹의 계열사는 서울시에서 규모가 부산시만큼 크지는 않지만 여전히 강동거리 대부분 건물을 차지하고 있었다.김시후가 소집한 임원 회의에 참석하기 위해 수십 명의 정장을 입은 사람들이 노트북을 들고 위층으로 올라왔다.순식간에 넓은 회의실은 사람들로 가득 찼다.서유는 회의실 밖의 리셉션 공간에 앉아서 유리창을 통해 엘리트 임원들을 조금 부러운
김시후는 모든 사람의 표정을 무시하고 PPT를 설명하던 그 임원을 향해 턱을 치켜세웠다.“계속하세요.”그의 말에 임원은 계속할 수밖에 없었다. 다만 그는 수입 상황을 보고할 때, 서유가 정보를 훔칠까 봐 숨기는 것이 있었다.서유도 상황을 살펴보고 더 이상 소리 내어 말을 끊을 수도 없었는지라 그저 얌전히 김시후의 옆에 앉아있었다.회의가 끝나자 서유는 그제야 쫓아 나가 김시후에게 물을 수 있었다.“왜 제가 방청하기를 원하십니까?”그러자 김시후는 자신보다 머리 하나는 작은 서유를 내려다보더니 따뜻하게 대답했다.“서유 씨가 매우 동경하는 것 같아서요.”서유는 금세 어리둥절해졌다. 이런 이유 때문일 줄은 몰랐으니 말이다.“제가 화진 그룹 정보를 알고 동아 그룹에 보고할까 봐 두렵지 않아요?”“별로 중요하지 않은 숫자입니다. 그리고...”김시후는 잠자코 있다가 갑자기 입꼬리를 씩 올리며 웃었다.“나는 서유 씨의 사람 됨됨이를 믿어요.”그의 미소는 이전과 다르지 않았다. 깨끗하고 맑았으며 아주 환했다.서유는 마치 그가 자신의 인공 심장을 두 발로 부러뜨린 김시후가 아니라 여전히 송사월인 것 같았다.“서유 씨, 준비해요. 저랑 저녁에 연회에 가요.”서유는 잠시 어리둥절해지더니 이내 정신을 차렸다.“연회요?”김시후은 고개를 끄덕였다.“온씨 가문에서 주최하는 저녁 만찬에 갈 건데, 제가 파트너가 없어서요. 서유 씨가 잠시 대신해 주시면 안 되겠습니까?”‘개인 비서가 파트너를 대신하는 역할도 하나?’온씨 가문은 특별히 혁혁한 가문이라고는 할 수 없고, 단지 재벌가라고 할 수 있다.그러니 이승하와 같은 신분의 후계자는 참석하지 않을 것이다.서유는 뒤늦게 생각하고는 곧 대답했다.어차피 입찰회가 끝나자마자 김시후는 부산으로 돌아갈 것이다.‘며칠밖에 시간이 안 남았으니까 조금만 참으면 금방 지나갈 거야. 그리고 화진 그룹 대표를 모시고 만찬에 참석한다면 반드시 그에 걸맞는 옷차림을 하고 가야지!’아니나 다를까 김시후는 곧장 그녀를 데리고
“대표님, 이제 가셔야 합니다.”김시후은 서유를 보고 넋을 잃었는데, 김태진이 옆에서 가볍게 기침을 하고서야 정신을 차렸다.그렇게 그는 고개를 끄덕이고 서유를 데리고 밖으로 나갔다. 그들이 가게에서 나올 때, 마침 친구와 쇼핑하고 있던 안희연에게 목격되었다.그녀는 화장을 바꾼 서유를 믿을 수 없다는 눈빛으로 쳐다보았다.서유를 처음 만났을 때도 안희연은 그녀가 기질이 있고 비교적 예쁘다고 느꼈다.그러나 이번에 서유를 보니 그녀가 뜻밖에도 여느 재벌 집 여식들보다도 더 고귀하다고 생각되었다.곧이어 안희연은 고개를 돌려 VIP 카드가 있어야 들어갈 수 있는 브랜드 매장을 바라보고는 그제야 깨달았다. 이번에 서유가 찾은 남자가 임태진보다 더 돈이 많은 사람이라는 것을.‘머리부터 발끝까지 이렇게 치장해주려면 적어도 20억은 들었을 텐데, 연석 오빠도 나한테 이 정도의 돈을 쓰지는 않았어!’이렇게 생각하니 그녀는 화가 치밀어올랐다. 똑같이 몸 팔러 나왔는데 왜 서유는 자신보다 좋은 사람을 가질 수 있냐면서 말이다.그녀는 씩씩거리며 핸드폰을 들어 이연석에게 보내는 동영상을 녹화했다.“연석 오빠, 이것 좀 봐. 서유 씨가 또 새 사람 찾았어. 다만 이번에 찾은 사람은 정말 돈이 많은 것 같아. 눈 깜짝하지 않고 20억을 써준다니까?”그녀는 서울의 모든 부유한 사람들을 연구해 본 적이 있지만, 김시후를 연구해 본 적이 없어서 그를 알지 못했다.그저 이제 막 떠오른 새내기인 줄 알았다. 아무래도 많이 젊어 보이니 말이다.한편, 이연석은 다른 사람들과 골프를 치고 있었는데 라운드를 마치고 앉아서 핸드폰을 보니 벌써 한 시간이 지나 있었다.그는 안희연이 보내온 영상을 보고는 화가 나서 이를 갈았다.‘김시후가 서유 씨한테 이런 대접을 해준다고?!’뒤이어 그는 골프채를 집어 던지고 영상을 이승하에게 전송했다.“형, 서유 씨 좀 봐요. 분명히 믿는 구석이 생긴 것 같아요.”회의를 하고 있던 이승하는 핸드폰이 울리는 소리를 듣고 집중이 흐트러졌다.예전의
서유는 한눈에 온재빈의 생각을 알아차렸다.특별히 저녁 만찬 연회를 열고 김시후를 초청하여 참석하게 하였는데, 아마도 자신의 여동생과 맺어주기 위함으로 추측되었다.하지만 온재빈은 그가 여자를 데리고 올 줄 몰랐었는지라 마음속으로 서유에 대한 의견이 마구 생겨나기 시작했다.그래도 가정교육을 잘 받은 탓인지, 온재빈은 그녀의 체면을 잘 봐주었고 이렇게 되면 서유 역시 자연히 그에게 잘 협조해야 한다고 생각했다.그녀는 악수를 건네는 온재빈의 손을 잡고 웃었다.“안녕하세요.”이내 온재빈은 손을 놓고는 시선을 김시후에게 돌렸다.“우리 오랜만에 만났는데 술 한잔 마시고 옛이야기 나누러 가자.”그러나 김시후는 조금 마음이 편치 않아 서유에게 말했다.“저랑 함께 들어가요.”서유는 시큰둥한 반응을 보이는 온재빈을 힐끗 보고는 눈치 있게 거절했다.“배가 좀 고파서, 뭐 좀 먹으러 갈게요.”이윽고 김시후가 서유를 살피기도 전에 온재빈은 하인을 불러왔다.“이 아가씨 데리고 가서 음식 좀 대접하세요. 절대 홀대하지 마시고요.”그러자 하인은 서유에게 황급히 말했다.“자, 저를 따라오세요.”이렇게 한번 말해놓으면 사정을 다 알아도 친구를 거절하기 어려워 김시후는 서유에게 신신당부하였다.“함부로 어디 가지 말고 내가 돌아올 때까지 기다려요.”서유는 아무런 표정도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하인의 인솔하에 회식장으로 왔다.한식, 양식 등 모든 음식이 줄지어 늘어선 긴 탁자 위에 놓여 있다.서유는 소화가 잘되지 않아 아무것도 먹을 수 없었지만, 하인의 접대에 이를 악물고 버섯 수프를 마셨다.그녀가 조용히 회식장 구역에 서서 수프를 먹고 있을 때, 갑자기 정원 밖에서 고급 차 몇 대가 들어오는 것이 보였다.뒤이어 소수빈은 먼저 차에서 내려서 코니섹의 차 문을 열고 뒷좌석에 앉아 있는 존귀한 남자를 불러 내렸다.따스한 노란색 조명 아래 두 손을 주머니에 꽂고 차 문 앞에 서 있는 검은색 양복 차림의 남자.신에 의해 조각된 듯한 정교하고 입체적이며 흠잡을 데 없
이연석은 그와 서유의 일을 직접적으로 질문하지 않았는데, 주로는 서유가 이승하가 “기르던” 여자였기 때문에 체면을 주기 위해서였다.하지만 또 약속을 지키지 않는 김시후를 가만둘 수는 없었으므로 결국 온희수의 일로 트집을 잡을 수밖에 없었다.김시후은 이연석에게 곤욕을 치르면서도 화내지 않았다. 다만 그의 눈 밑에는 한기가 돌았다.“혼인은 제 허락을 받지 않고 아버지가 마음대로 한 결정입니다. 저는 이연석 씨 여동생분한테 장가들 생각 없어요. 그러니 진실로 받아들이지 마세요.”말문이 막힌 이연석의 얼굴은 하얗게 질렸고, 곱던 얼굴은 순식간에 어두워졌다.“그 말은 파혼하겠다는 겁니까?”“약혼한 적이 없는 어떻게 파혼이라는 단어를 쓸 수 있겠습니까?”김시후는 담담하게 웃었다.확실히 그저 혼담이 오갔을 뿐이지, 실현되지는 않았으니 말이다.그리고 두 당사자의 동의도 없이 어떻게 직접 혼인을 할 수 있겠는가?이렇게 많은 사람 앞에서 김시후가 이 말을 한 것은 이씨 가문의 체면을 봐주지 않은 점이 없지 않아 있었다.이연석은 평소 노는 데에만 습관이 되어 김시후와 같이 뭐든 노련하게 대하는 성질 따위를 배우지 않았다.곧이어 이연석은 김시후에게 “따뜻한” 교훈을 주려고 소매를 걷으려고 했다. 하지만 그때, 이승하가 그를 저지했다.“연석아.”상석에 앉은 남자는 담담했지만 천하를 손안에 둔 듯한 시큰둥한 모습으로 현장에 있던 사람들을 어리둥절하게 했다.역시 이씨 가문의 유일한 후계자가 아니랄까 봐, 그 카리스마가 너무 강했다.이승하는 아무런 감정 없는 말투로 김시후를 담담하게 바라보았다.“애초에 김시후 씨 아버님께서 저희 집에 와서 혼인을 청한 것이니 그 약속을 무르셔도 상관없습니다. 그때 어떻게 청하셨으면 아버님께 어떻게 무르라고 하세요.”“청했다.”라는 말에 모든 사람이 고개를 돌려 보았다.‘원래는 김씨 집안이 이씨 집안 덕을 보려고 한 거였구나. 김씨 집안도 우리라 마찬가지네, 자식들을 팔아 입지를 굳히려는 걸 보면 말이야.’모두들 김시후를
온희수는 풀이 죽어 물었다.“여기서 뭐 하는 거야?”서유는 그녀가 온재빈의 여동생일지도 모른다 추측했고, 그녀가 거들먹거리는 것에 대해 이상하게 생각하지 않았다.곧이어 서유는 담담하게 대답했다.“여기는 화장실이잖아요. 당연히 볼일 보러 온 거죠.”그녀의 말투 역시 좋다고 할 수는 없다. 서유는 자신을 존중하지 않는 사람에 대해 더 이상 참고 싶지 않았으니 말이다.그렇지 않고 최민지처럼 계속 참는다면 상대방은 양심의 가책을 느끼기는커녕 오히려 더 득의양양해질 것이다.서유의 말투에 온희수는 자연히 더욱 기분이 나빠졌다.“흥, 밀당하는 거야 뭐야? 일부러 숨어서 시후 오빠가 너 걱정하게 만들려고 그러는 거지? 똑똑히 말해줄게. 시후 오빠의 파트너가 됐다 해서 네가 나뭇가지 위로 날아올라 봉황이 될 수 있다고 생각하지 마! 시후 오빠는 내 사람밖에 될 수 없다고!”온희수의 경고에 서유는 미간을 약간 찌푸렸다.‘내가 여기에 숨은 건 그저 이승하를 피하기 위해서인데 무슨 밀당을 한다 그러는 거지?! 생각이 많아도 너무 많은 거 아니야?’서유는 온희수에게 설명할 핑계도 대지 않고, 그저 무덤덤하게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아가씨, 전체적인 신분을 생각하면 아가씨도 김 대표님을 넘볼 수 없을 것 같은데요. 그러니 제 앞에서 굳이 존재감 찾을 필요 없습니다.”김시후는 이지민과 혼인을 할 예정이었고 온희수의 신분은 이지민에게 비하면 훨씬 못했기에 헛된 생각을 하지 않는 것이 좋았다.하지만 온희수는 절대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 곧이어 그녀는 손을 들어 서유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네가 뭔데? 네가 뭔데 온씨 가문의 아가씨인 내가 네 앞에서 존재감을 찾아? 그럴 필요가 전혀 없는데?”그 뺨은 미처 예상하지 못한 것이었다.서유은 부드럽고 연약해 보이는 온씨 가문 아가씨가 뜻밖에도 사람을 때릴 줄은 몰랐다.이로 인해 그녀는 갑작스럽게 뺨을 한 대 맞았다.서유는 그 자리에서 반격하려고 했지만, 그녀의 몸이 발목을 잡았다.뺨을 한 대 맞았을 뿐인데 현
이승하는 손을 닦은 후 안색이 좋지 않은 서유를 바라보았다.“내가 너한테 경고했잖아. 김시후를 멀리하라고.”방금 이승하가 온씨 가문 대저택에 나타났을 때까지만 해도 그저 연회에 참석하러 온 줄 알았는데 그녀에게 따지러 왔을 줄이야.그가 수완이 뛰어난 건 알았지만 하루 만에 그녀와 김시후가 무언가를 하고 있다는 것을 알아낼 줄은 몰랐다.하지만 이 일은 그녀를 탓할 수 없었다. 만약 연지유가 아니었다면 그녀는 일찌감치 집에서 죽기를 기다리고 있었을 것이다. 언제 김시후와 함께 이런 곳으로 올 수나 있었을까.서유도 감출 생각이 없었고 사실대로 말했다.“저도 멀리하려고 했어요. 하지만 당신의 연지유 씨께서 기어코 저더러 김시후 씨를 접대하라고 하던데요. 제가 동의하지 않으면 돈을 배상하라고 하는데 저도 어쩔 수 없이 당신의 경고를 무시하고 와서 그를 접대할 수밖에 없었는걸요.”그녀의 말속에는 다른 뜻이 담겨 있었다. 그녀 앞에서 괴상야릇한 행동을 하지 말고 탓을 하려거든 연지유를 탓하라는 말이었다. 이승하는 입꼬리를 말아 올리고 피식 웃었다.“네가 김시후의 침대에 기어들지 않았다면 연지유가 너더러 그를 접대하라고 했을까?”이 말은 서유가 자진한 거란 말인가?역시나 연지유는 이승후의 여신님이었다. 그녀가 무슨 짓을 하든 그는 절대 그녀를 질책하지 않을 거니까.서유는 문득 자신의 처지를 깨닫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이승하는 서유에게 한 걸음 다가가 그녀를 벽에 밀어 붙이고 한 손으로 벽을 짚고 그녀를 내려다봤다.“김시후가 방금 공개적으로 이씨 가문과의 결혼을 파기한 게 너의 베갯밑송사 때문은 아니고?”김시후가 이씨 가문과의 결혼을 파기했다니?서유는 잠시 멈칫하더니 망치로 머리를 세게 얻어맞은 것 같았다.그녀 자신은 왜 김시후가 혼인을 파기하게 할 만큼 대단한 능력이 있다는 사실을 몰랐을까. 그녀는 빨간 입술을 앙다물고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어차피 이승하의 앞에서 해명해봤자 아무런 이득이 없었다.이승하는 그녀에게 더욱 밀착해 왔다. 청
이승하는 문을 나서기 전에 고개를 돌려 서유를 싸늘하게 바라보았다.“김시후가 결혼을 파기했다고 해서 김씨 가문에서도 동의한 게 아니야. 김시후는 언제든지 이씨 가문 사위로 들어와야 할 거야. 너 침대에서 김시후에게 헛바람을 불어넣을 생각은 하지 않는 게 좋을걸. 김시후가 널 위해서 온씨 가문과 대적하게 할 게 아니라면 말이야.”이승하는 이 말을 남기고 돌아서서 맞은편의 남자 화장실로 걸어갔다.그의 거만하고 낯선 뒷모습을 응시하며 서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매번 이승하를 대면할 때마다 그녀는 마음에 형언할 수 없는 긴장이 감돌았다.그가 두려운 것인지 아니면 자신의 마음을 주체하지 못하고 그에게 드러낼까 봐 두려운 것인지 알 수 없었다.조금 전 그녀는 다행히도 일시적인 통쾌감을 채우려고 의지와는 반대로 그에게 마음이 흔들린 적이 없다고 말했다. 그러지 않았다면 자신의 작은 속셈이 이승하에게 들키기라도 하는 날에는 그가 어떻게 자신을 조롱하고 오해할지 알 수 없었다.서유는 복잡한 마음을 정리하고 돌아서서 세면대 앞으로 가서 손을 씻는 척하며 밖으로 나갔다.서유를 찾으러 가는 내내 김시후는 온희수에게 시달려 짜증이 나 미간이 찌푸려졌다. 이때 물이 잔뜩 묻어 있는 손을 털며 화장실에서 나오는 서유를 보자 그는 온희수를 옆으로 밀어내고 서유에게로 다가갔다.“서유 씨, 우리 먼저 돌아가요.”서유는 고개를 끄덕이며 차가운 시선으로 생각에 잠긴 듯 온희수를 힐끗 쳐다보았다.온희수는 자신이 방금 충동적으로 서유의 뺨을 때린 게 생각나 그녀가 김시후에게 일러바치기라도 할까 봐 경고의 눈빛을 번뜩였다.서유는 온희수가 그녀의 뺨을 때리고는 그녀가 말할까 봐 두려워 절절매는 꼴이 조금 우스웠다. 그리고 온희수가 사람을 얼마나 얕잡아 보는지 알았다.서유는 온희수에게 따귀를 돌려주고 싶었지만 여기는 온씨 가문 영역이었고 만약 그녀가 모든 사람 앞에서 손찌검을 한다면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은 분명 그녀가 온희수를 괴롭힌다고 생각할 것이다.그녀는 이슈가 되어 구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