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가혜는 선물 때문에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는 그들을 보더니 한숨을 한번 내쉬고 김태진의 손에 있던 서류를 덥석 집어 들었다.“이건 일단 내가 맡아둘게요. 받을지 안 받을지는 결혼식 끝나고 다시 얘기해요.”그 말에 다들 고개를 끄덕였다.이씨 가문 사람들은 송사월이 아닌 이승하를 택하는 서유의 모습에 그제야 표정을 풀었다.이승하는 시선을 돌려 휠체어에 앉아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송사월은 그의 시선을 느끼고도 여전히 서유에게서 시선을 떼지 않았다.그 모습이 언짢기도 하면서 또 그가 안쓰럽기도 한 아주 복잡한 감정이 밀려왔다.이승하는 서유의 손을 꽉 잡더니 아무 말 없이 뒷마당 쪽으로 걸어갔다.서로서로 눈에 보이지 않는 편이 훨씬 나을 것이다.서유는 그에게 손이 잡힌 채로 따라가면서 나지막이 물었다.“혹시 질투했어요?”그러자 이승하가 콧방귀를 뀌며 말했다.“내가 왜 질투를 해?”아까 서유가 그를 지나쳐 송사월에게로 달려갔을 때 차라리 죽고 싶은 마음이었다는 건 절대 그녀에게 알려주지 않을 것이다.서유는 자신의 손을 꽉 잡은 그의 손을 보더니 입꼬리를 올리고 미소를 지었다.그녀가 혹시 도망이라도 갈까 봐 이렇게 손을 꽉 잡고 있으면서 아니라고 잡아떼는 것이 꼭 어린애 같았다.서유는 고개를 들어 그의 얼굴을 바라보며 물었다.“이봐요, 어린이, 우리 이제 어디로 가요?”그 말에 이승하가 그녀를 향해 미간을 찌푸렸다.“어린이라니?”서유는 드레스 자락을 쥐던 손을 놓고 그의 팔을 감싸며 웃었다.“승하 씨한테 딱 맞는 별명인데 마음에 안 들어요?”이승하는 손을 들어 그녀의 볼을 꼬집었다.“이따 저녁에 가만 안 둘 테니까 각오해.”서유는 상관없다는 듯 이승하에게 잡힌 얼굴을 그를 향해 더 가까이 가져갔다.“어린이가 마음에 안 들면 질투 대마왕은 어때요?”“...”서유는 그의 팔을 이리저리 흔들며 눈을 깜빡거리며 물었다.“그래서 우리 결혼식 장소는 대체 어디에요? 이제 얘기해 줘요.”이승하는 애교부리는 그녀의 모습에 화가 조금
늦게 도착한 이지민은 별장 안으로 들어가려다가 일전 그녀와 결혼을 할 뻔했던 김시후를 발견했다.그녀는 그에게로 다가가 먼저 인사를 건넸다.“안녕하세요. 김 대표님.”송사월의 시선이 하늘에서 천천히 그녀 쪽으로 내려왔다.눈앞에 있는 여자는 어깨가 훤히 드러나는 베이지색 드레스를 입고 있었는데 그 모습이 우아하기도 하고 또 무척이나 아름다웠다.송사월은 예의 있게 고개를 살짝 숙이고는 다시 시선을 거두어들였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그는 한마디 말도 건네지 않았다.이지민은 똑같이 고개를 살짝 숙이더니 별다른 말 없이 바로 뒷마당 쪽으로 걸어갔다. 그러자 거기에는 그녀를 기다린 듯한 헬기 한 대가 세워져 있었다.2월 14일 밸런타인데이, 몇백대의 헬기가 서울시 상공을 가르고 천천히 공항에 착륙했다. 그리고 반 시간 뒤 I 국으로 향하는 50여 대의 흰색 전용기가 천천히 공항에서 이륙했다.[뉴스 속보]“JS 그룹 이승하 대표의 전용기가 서울에서 이륙해 곧 I 국에 도착한다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이승하 대표는 결혼식에 2천억이 넘는 비용을 들인 것으로 알려졌고 일각에서는 세기의 결혼식이라고도 불리고 있습니다.”기자들은 두 주인공이 도착하면 결혼식장 안으로는 들어가지 못하기에 어쩔 수 없이 정해진 시간 동안 식장 내부 사진만 열심히 찍어댔다.매스컴은 아직 이승하 대표가 10년이나 구애한 끝에 드디어 쟁취한 여인이 누구인지 모르고 있다.기자들은 두 사람의 모습을, 정확히는 신부의 얼굴을 보기 위해 그럴듯하게 위장하고 나무 뒤에 숨었다.얼마 안 가 수백 대의 고급 차량이 하나둘 결혼식장 입구 바로 앞에 도착했다.제일 선두에 선 핑크 장미로 도배된 차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고 내렸다.흰색 양복에 우아한 분위기를 풍기는 남자는 차에서 내린 뒤 곧바로 차 안에 있는 또 다른 이에게 손을 내밀었다.기자들은 서둘러 카메라를 들고 최대한 줌을 당긴 뒤 이승하의 모습을 잡았다.그의 큰 손 위에 가녀리고 하얀 손이 살포시 올려졌다.남자는 그 여린 여자의 손을
중세시대 풍으로 된 성안으로 들어가 보니 마치 그 시절로 타임슬립 한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성 주위는 녹색 잔디로 뒤덮어져 있었고 규모가 커 마차라도 타고 구경해야 할 듯싶었다. 게다가 성 겉면에는 핑크 장미가 가득했다.상 안은 햇볕이 창문을 뚫고 들어와 내부를 비춰주었고 햇볕이 들지 않는 곳에는 인공 오로라가 일렁거렸으며 바닥에는 샴페인 색 카펫이 깔려있었다.이 모든 것이 절묘하게 어우러져 마치 식장보다는 하나의 예술작품 같기도 했다.식장 안에는 사회자가 왕실 전용 연주팀이 벌써 도착해 있었다.눈앞에서 펼쳐진 꿈같은 광경에 반짝이던 서유의 눈이 천천히 젖어 들었다.이곳으로 오기 전 전용기 안에서 이승연은 그녀에게 이런 말을 해주었다.“승하가 결혼식장을 꾸미는 것에 그렇게 진심일 줄은 몰랐어요. 서유 씨도 아마 가보면 무슨 뜻인지 이해할 거예요.”확실히 그녀의 말대로 식장 곳곳에 이 남자가 얼마나 신경을 썼는지 여실히 보였다.서유는 조금 빨개진 눈으로 옆에 있는 남자를 바라보았다.살아있어서 참 다행이다. 이 남자가 주는 사랑을 두 눈으로 확인할 수 있어서 참으로 다행이다.이승하는 그녀의 눈빛을 읽은 듯 맞잡은 손을 풀고 그녀가 자신의 팔짱을 끼도록 했다.“이대로 카펫을 걸어가면 나와 평생을 약속해야 해, 준비됐어?”서유는 그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준비됐어요.”이승하는 그녀에게 예쁘게 웃어준 후 뒤를 돌아 두 명의 화동에게 손짓했다.뒤에는 씩씩거리며 서로의 얼굴에 꽃을 뿌리는 두 명의 아이들이 있었다.“심우주, 난 네가 싫어!”“지연초, 나도 네가 싫어! 앞으로 다시는 너 보고 싶지 않아!”연이는 그 말에 꽃바구니를 아래에 내려놓고 당장이라도 싸울 듯 달려들었다.하지만 다행히 주서희가 빠르게 아이를 막아서 심우주의 머리카락이 뜯기는 일은 없었다.“연이야, 이모 결혼식인데 싸우면 안 되지.”“하지만 심우주가 아까 내 리본을 망가트렸단 말이에요. 사과도 안 했어요!”어른들은 두 아이가 친해졌으면 하는 바람에 일부러 전
정가혜는 아이를 엄격하게 교육하는 이승연의 모습을 보고는 서유가 이런 집안으로 시집간 것이 참 다행이라는 생각이 들었다.상대 쪽에서 아이를 따끔하게 혼을 냈으니 연이의 이모로서 그녀 또한 한마디 할 필요가 있었다.정가혜는 아이들 앞으로 다가가 연이의 볼을 살짝 꼬집었다.“연이도 아까 우주 욕했지? 이따 우주가 벌을 받고 나면 연이도 우주한테 사과해. 그래야 맞는 거야. 알겠지?”심우주가 연이의 리본을 망가트리기는 했지만 욕을 한 건 연이가 먼저였다.연이는 그녀의 말에 고개를 숙이고는 천천히 머리를 끄덕였다.“알겠어요, 이모, 사과할게요.”이렇게 두 아이의 싸움이 일단락되었다.이승연은 몸을 일으키더니 조금 의외라는 얼굴로 정가혜를 바라보았다. 그러고는 곧바로 그녀를 넘어 이연석 옆에 있는 여자에게로 시선을 주었다.그녀는 이연석의 첫사랑이라는 여자보다 정가혜가 더 마음에 들었지만 아쉽게도 현재 이연석의 옆에 있는 여자는 정가혜가 아니었다.이연석의 부모님은 현재 이연석의 교제 상대를 반대하고 있다. 하지만 그걸 알면서도 이연석은 결혼식장에 버젓이 첫사랑을 옆에 세워두었다.‘철이 없는 건지. 쯧쯧.’이연석의 시선은 줄곧 정가혜에게 가 있었고 정가혜는 그런 그에게 한 번도 시선을 주지 않았다.정가혜는 연이와 심우주에게 안으로 걸어가라고 손짓했다.두 아이는 그녀의 말에 따라 꽃바구니를 든 채 앞으로 걸어가 서유와 이승하의 앞에 섰다.“늦어서 죄송합니다.”서유는 예쁜 아이들을 보더니 부드럽게 미소를 지었다.“괜찮아, 아직 시작한 것도 아닌데 뭐.”그때 식장 스태프가 큰 의자 위에 올라서더니 종을 세 번 울렸다.종소리가 울렸다는 건 지금부터 결혼식이 시작된다는 뜻이었다.“네, 그럼 지금부터 결혼식을 시작하겠습니다. 반갑습니다. 저는 오늘 결혼식에 사회를 맡게 된...”사회자는 듣기 좋은 편한 음성으로 매끄러운 개회사를 마치고는 바로 첫 번째 순서로 들어갔다.“화동 심우주 군과 지연초 양, 입장해 주세요.”두 명의 아이는 다행히 더 이
사인이 끝난 후 반지 교환이 진행되었다.목사님과 이씨 가문 사람들 그리고 서유의 친구들이 지켜보는 가운데 이승하는 스태프가 건네준 반지를 건네받고 한쪽 무릎을 꿇더니 서유의 손에 천천히 반지를 끼웠다.왕방울만 한 다이아몬드가 박힌 반지가 약지에 끼워진 순간 서유는 눈가가 빨갛게 변해서는 목이 메어왔다.이승하는 고개를 숙여 그녀의 손등에 맹세의 키스를 했다. 그러고는 천천히 다시 고개를 들어 질식할 정도로 아름다운 자신만의 여인을 바라보았다.“서유야, 사랑해.”“나도 사랑해요.”서유는 촉촉하게 젖은 눈으로 그를 바라보며 마찬가지로 그의 손가락에 반지를 끼워주었다.반지 교환이 끝난 후 샴페인샤워까지 마치며 결혼식도 천천히 막바지를 향해 달려가고 있었다.그때 이승하가 갑자기 그녀를 두고 옆으로 걸어가더니 장식인 줄로만 알았던 오래된 피아노 앞에 앉았다. 그러고는 앞쪽 피아노에 앉은 이연석을 바라보았다.두 사람에게 흰색 조명이 쏟아졌다.“형수님, 이건 형이 오직 형수님을 생각하며 작곡한 곡입니다. 잘 들어주세요. 그리고 제 동생이 형수님에게 춤을 바칠 거예요.”그 말에 두 사람 곁으로 이지민이 말없이 다가와 서유를 보며 부드러운 미소를 지었다.이연석이 스태프 쪽으로 손짓하자 은은한 조명이 서유를 비췄다.그녀는 손에 꽃을 꼭 쥐고 피아노 앞에 앉은 남자를 바라보았다.이승하는 어느새 겉옷을 벗은 채 셔츠 하나만 걸치고 있었다. 그는 셔츠 단추를 하나 풀더니 익숙하게 소매를 걷어 올렸다.그러고는 준비가 다 된 듯 이연석과 사인을 주고받더니 곧바로 건반 위에 손을 올리고 연주를 시작했다.잔뜩 집중한 얼굴로 건반 위를 유영하듯 부드럽게 휘젓는 모습이 무척이나 아름답고 또 멋있어 보였다.서유는 더 이상 이승하에게 놀랄 일이 없을 거라고 생각했는데 뜻깊은 날 그의 또 다른 모습을 보게 되었다.평소 차갑고 도도한 남자가 건반 앞에서는 그 순간보다 더 부드러워 그녀의 가슴을 간지럽혔다.이연석은 이승하가 연주를 시작하고 나서 5초 뒤에 손을 움직이기
주서희와 정가혜는 동시에 뒤를 돌아 그들에게 질문한 여자를 바라보았다.그녀는 하얀 피부에 남자들의 보호 본능을 자극하는 외모를 가지고 있었다.주서희는 그녀가 누군지 몰랐지만 정가헤는 한눈에 그녀를 알아보았다.눈앞에 있는 여자는 바로 이연석과 함께 사진을 찍은 그의 첫사랑이다.정가혜는 이연석이 첫사랑을 이곳까지 데리고 올 줄은 몰랐다. 중요한 사람들만 모인 자리에 굳이 데려왔다는 건 아마 결혼까지 생각하고 있는 게 분명했다.그녀의 시선이 피아노를 연주하고 있는 남자에게로 향했다.정가혜는 그 남자를 보며 입꼬리를 살짝 올리더니 모든 걸 다 내려놓은 듯한 미소를 지었다.‘이제 드디어 한 사람한테 정착하려나 보네. 잘 된 일이지 뭐.’그 정착하려는 여자가 그녀는 아니지만 뭐가 됐든 잘된 일이다.주서희는 아무 말 없는 정가혜를 대신해 답을 해주었다.“저희는 신부 쪽 친구들이에요. 연석 씨와는 오다가다 알게 된 것뿐이고요.”그 말에 뒤에 앉은 여자는 대놓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그러고는 그제야 활짝 웃으며 자기소개를 했다.“안녕하세요. 저는 연석이 여자친구, 배하린이라고 해요.”주서희는 여자친구라는 소리에 정가혜를 힐끔 보고는 다시 시선을 돌려 그녀와 인사했다.“네, 안녕하세요.”짧은 인사를 마친 뒤 그녀는 또다시 정가혜를 힐끔힐끔 바라보았다.다행히 큰 감정변화는 없는 듯해 주서희는 그제야 안심이 되었다.이연석과 정가혜는 이미 과거형이고 결혼식이 끝난 후 정가혜는 남자친구를 고르러 가야 한다.연주가 끝이 난 후 드디어 부케 던지기가 시작되었다.젊은 남녀들이 모두 앞으로 나왔고 서유는 뒤로 돌아 힘껏 부케를 던졌다.사실 그녀는 던지기 전에 정가혜와 주서희가 있는 곳을 확인하고 정확하게 그들을 향해 던졌다.포물선이 예쁘게 그려지고 정가혜의 손에 부케가 떨어졌다. 하지만 그때 배하린이 갑자기 손을 위로 치켜들었고 이에 부케가 다시 공중으로 향하더니 정확히 이지민 쪽으로 떨어지려 하고 있었다.이지민은 그걸 보고는 손을 높게 들어 부케를
정가혜가 어리둥절한 얼굴로 아무 말도 하지 않자 어느새 옆으로 다가온 배하린이 이연석의 팔짱을 끼며 말했다.“연석아, 됐어. 그냥 이분한테 주자.”정가혜는 그제야 어떤 상황인지 깨달았다. 배하린은 이지민 때문에 언짢아진 것을 제일 만만한 그녀에게 푸는 것이다.모두 그녀 탓으로 돌리면서 말이다.만약 이지민이 다시 부케의 방향을 돌렸을 때 옆으로 피했더라면 배하린은 이런 짓을 하지도 않았을 것이다.다만 정가혜가 제일 어이가 없는 건 고작 부케를 받지 못했다고 칭얼거리는 여자친구 때문에 이연석이 이곳에 끼어들었다는 것이다.애초에 서유가 던진 꽃은 예정대로라면 정가혜에게 도착하게 되는데 그걸 중간에서 이상하게 훼방 놓은 사람은 그의 여자친구였다.정가혜는 아까 피아노 치던 그의 모습이 잠깐이라도 멋있다고 생각한 자신이 우습게 느껴졌다.그녀는 피식 웃더니 아무 말 없이 부케를 그에게 건넸다.하지만 이연석은 그저 시선을 내려 부케를 보고 있을 뿐 받지 않았다.이대로 덥석 받으면 너무 없어 보일까 봐 일부러 시간을 끄는 것일까?“달라면서요? 왜 안 받아요?”정가혜의 질문에 이연석은 아무런 답도 하지 않았고 부케를 받지도 않았다.‘뭐 하자는 거지?’정가혜는 다시 한번 그의 손에 부케를 건넸다.“이런 거 나한테는 큰 의미 없으니까 빨리 받아요.”말 그대로 꽃 따위 큰 의미가 없었다. 마찬가지로 지나간 사람 또한 큰 의미가 없었다. 이혼 경력이 있는 사람은 원래 그런 것인지 크게 바라는 것이 없다.이연석은 정가혜의 덤덤한 얼굴을 보고는 미간을 찌푸렸다. 그의 눈에는 얼핏 분노도 어려있었다.“역시 누나는 누나인가 봐요? 나보다 나이가 많아 그런지 쉽게 양보를 하고 말이에요.”정가혜는 머리를 한번 쓸어내려 귀 뒤로 넘기고는 흥미진진한 얼굴로 구경하는 배하란을 보며 말했다.“내가 이대로 양보하지 않으면 연석 씨 여자친구가 화내지 않겠어요? 나는 불필요한 것에 에너지 낭비하기는 싫어서요. 그러니 사람이 양보할 때 빨리 받죠?”그녀의 말에는 가시가 있
정가혜의 얼굴이 급속도로 어두워졌다.그녀의 전남편도 그녀에게 목석같다느니 돌 같다느니 하는 소리를 한 적이 있다.그런데 그 소리를 이연석도 똑같이 해버렸다.3년 동안의 잠자리가 마음에 들지 않았던 걸까?아니면 그녀는 남자들에게 이런 얘기를 들어야만 하는 팔자인 걸까?“연석아, 그렇게 말하지 마. 언니가 나이가 조금 많아 보이기는 해도 그래도 여잔데, 그러는 거 실례야.”배하린은 이연석의 팔짱을 끼며 선심 쓰듯 얘기했다.주서희는 그런 그녀의 모습과 말투에 기가 막혀 웃음이 절로 났다.“배하린 씨라고 했죠? 얼굴을 보면 그리 어린 나이도 아닌 것 같은데 생각하는 대로 말을 막 내뱉을 시기는 지나지 않았나?”배하린은 주서희가 갑자기 끼어들어 인신공격해대자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그녀는 입술을 꽉 깨물더니 다시 무해한 얼굴로 돌아와 이연석의 품속으로 쓰러졌다. 그러고는 뭐라고 일러바치려는데 그대로 당해줄 주서희가 아니었다.그녀는 가방에서 명함을 꺼내더니 웃으면서 배하린에게 건네주었다.“마침 우리 병원에 실력 좋은 성형외과 선생님들이 있거든요. 시간 나면 관리받으러 와요. 리프팅도 좀 하고 이리저리 손 좀 보면 아마 금방 젊어 보일 수 있을 거예요. 원장 권한으로 특별히 할인을 많이 해줄게요.”그 말에 배하린의 얼굴이 보기 좋게 일그러졌다.‘딱 봐도 내가 더 어려 보이는데 리프팅? 그리고 뭐 손을 보면 젊어 보일 수 있다고? 이 여자가 진짜!’배하린은 이를 꽉 깨물고 그녀가 건네는 명함을 힐긋 바라보았다.그러다 병원 이름을 보고는 표정이 굳어버렸다.그녀가 내민 명함에는 서울에서 제일 유명한 병원 이름이 적혀 있었다.일반 사람들은 병을 보고 싶어도 쉽게 볼 수 없다는 VIP들이 많이 찾는 병원이었다.배하린은 자신에게 이딴 망발을 내뱉은 여자가 그런 병원의 원장이라고 하자 주먹이 부들부들 떨렸다.하지만 애써 진정하고 최대한 아무렇지 않은 얼굴로 그 명함을 받아들었다.“고마워요, 서희 언니.”배하린은 주서희의 이름을 보고 바로 언니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