헬기는 어느 한 별장 앞에 세워졌다. 케이시는 경호원에게 지현우를 지하실에 가둬 놓으라고 명했다.지하실은 빛 하나 들어오지 않아 무척이나 어두웠고 곰팡이가 필 듯한 습한 환경에 신호도 잡히지 않았다.이곳으로 오기 전 도망칠 기회는 여러 번이나 있었지만 지현우는 마치 삶을 포기라도 한 듯 그저 입을 꾹 닫고 가만히 있었다.경호원들의 손에 거칠게 지하실로 들어간 조지는 몸을 웅크린 채 바닥에 쓰러져 있는 지현우를 보고 눈가를 붉혔다.“현우 씨...”조지의 목소리에 이제껏 아무런 미동도 없던 지현우가 천천히 고개를 들었다.“왜 그랬어요?”왜 검사 결과를 조작했지?그렇게나 믿었는데 왜 속인 거지?정확한 검사 결과를 이제야 알게 된 조지는 실망한 눈빛의 지현우를 보며 다급하게 고개를 저었다.“나 아니에요. 나는 조작한 적 없고 속인 적도 없어요.”“채혈도 직접하고 검사도 직접 했으면서 속인 적이 없다고?!”김초희는 여러 번이나 연이는 그의 딸이라고 해명했다.그 말을 듣고 검사한 결과 친자가 아니라는 결론이 나왔다.지현우는 한 번도 그 검사 결과를 의심해 본 적이 없다. 조지가 준 결과였으니까. 그와 김초희가 유일하게 믿었던 사람이었으니까!그 조지가 결과를 조작해 그를 속였을 줄 그 누가 상상이나 했을까.“난 정말 아니에요!”조지는 억울함 가득한 얼굴로 연신 고개를 흔들었다.“당시 검사했을 때 어떤 의사가 나 찾아온 적이 있어요. 아마 그때 그 의사가 손을 쓴 걸 거예요.”조지는 볼품없는 모습의 남자를 간절한 눈빛으로 바라보며 말했다.“내 말 믿어줘요. 나는 단 한 번도 배신한 적이 없어요.”“지금에 와서 믿는 건 아무런 소용도 없어요.”김초희는 이제 이 세상에 없으니까...“미안해요...”지현우의 빛이 바랜 검은 눈동자는 더 이상 이 세상에 미련이 없어 보였다.조지는 삶의 의욕을 잃은 듯한 지현우의 얼굴을 보더니 몸을 움직여 그의 옆으로 다가갔다.“당신한테는 아직 딸이 있어요. 그러니까 정신 차려요. 케이시한테서 연이를 찾
“연이는 저 삼촌이 좋아?”“네!”연이는 일 초의 망설임도 없이 고개를 끄덕였다.케이시는 손을 들어 연이의 코를 톡 하고 건드렸다.“연이가 좋아해서 참 다행이야.”그는 연이를 내려놓고 말했다.“연이야, 저기 저 경호원 아저씨랑 같이 가서 의사 선생님 모시고 와.”연이는 삼촌이 치료를 받을 수 있다는 생각에 서둘러 밖으로 달려나갔다.지현우는 멀어져가는 아이의 뒷모습을 보고서 조금 안심했다.케이시는 그런 그의 앞으로 다가와 피식 웃으며 말했다.“너 혹시 내가 연이 생각해서 일부러 밖에 내보냈다고 생각해?”그는 구두로 지현우의 상처를 꾹 눌렀다.“너한테 영상을 보여준 뒤에 나는 너랑 연이랑 생존게임을 진행할 생각이야.”케이시가 얼마나 잔인한 사람인지, 얼마나 지독한 수법을 쓰는지 지현우는 잘 알고 있다. 그러기에 더더욱 둘 싸움에 연이가 끼어드는 것을 원치 않았다.6년이라는 시간 동안 케이시는 연이에게 아빠였다. 누가 뭐라고 해도 곁을 지켜준 아빠였다.만약 케이시의 원한 때문에 연이가 아빠에 대한 신뢰를 잃어버리게 된다면 그 작은 아이의 마음은 견디지 못하고 부러질 것이다.연이의 마음이 다칠 바에는 차라리 아무것도 모른 채 이대로 살아가도록 하는 게 더 나았다.지현우는 생각 정리를 마치더니 한 손으로 케이시의 발목을 붙잡고 있는 힘껏 잡아당겼다. 이에 케이시는 바닥에 쓰러졌고 지현우는 바닥에서 힘겹게 일어나 두 주먹을 꽉 움켜쥐었다. 그 모습이 마치 지옥에서 온 악귀 같기도 했다.조지는 드디어 생기를 되찾은 지현우를 보면서 안도의 미소를 지었다.본래 케이시는 지현우의 상대조차 되지 못한다. 지금 손에 총을 쥐고 있다고 해도 지현우가 뺏으면 그만이었다.하지만... 아쉽게도 지현우는 현재 상처를 입은 몸이고 케이시를 제압하려던 지현우는 금세 다른 한쪽 다리에도 총을 맞아버렸다.“현우 씨!”조지가 서둘러 그에게로 다가가려 했지만 케이시가 발로 등을 밟고 있는 바람에 움직일 수가 없었다.“조지, 쓸데없는 저항은 그만 해요. 오늘은
그리고 영상 속에서 김초희가 모습을 드러냈다. 그녀는 빨간색 원피스를 입고 테라스에 있는 흔들의자에 앉아 있었다.부드러운 바람이 불어와 그녀의 짧은 머리를 스치고 지나가고 따사로운 햇볕은 나뭇가지를 뚫고 그녀의 얼굴에 쏟아졌다. 그 모습이 무척이나 평화롭고 아름다워 보였다.영상 시작 부분에서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그저 카메라를 바라보고만 있었다.마치 카메라 너머에 사랑하는 연인의 모습을 상상하기라도 한 듯 조금 긴장한 기색도 비쳤다.그녀는 카메라를 꽤 오랫동안 바라보다가 갑자기 입꼬리를 위로 올리고 활짝 웃었다.“현우야.”그의 이름을 부르는 그 목소리는 어딘가 모르게 떨려있었다.지현우는 자신의 이름을 부르는 그녀를 보며 꾹 참았던 눈물을 결국 떨어트리고야 말았다.지금 그의 눈앞에는 김초희가 있었다. 이 세상에서 사라져 영원히 돌아올 수 없는 그녀가 지금 그의 눈앞에 있다.김초희의 눈가는 단지 그의 이름을 부르는 것만으로도 어느새 빨갛게 변해버렸다. 하지만 여전히 웃음은 잃지 않았다.“이 영상을 네가 볼 수 있을지는 모르겠지만 떠나기 전에 그래도 한 번 더 얘기하는 게 좋을 것 같아서 이렇게 남겨.”“현우야, 내가 케이시와 결혼하기로 한 건 절대 케이시를 사랑해서가 아니야. 결혼하지 않고서는 너를 구할 방법이 없었기 때문이야...”“네가 차로 치어 죽인 사람은 케이시의 형이었어.”“상대가 왕실 사람이라 이대로 네가 교도소에 들어가게 되면 영원히 나오지 못할 것 같았어.”“네가 케이시를 싫어하는 건 알지만 케이시한테 도움을 구하는 방법 말고는 도저히 다른 방법이 없었어. 미안해...”그녀는 여기까지 말하고 갑자기 흔들의자에 얼굴을 파묻더니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진정된 듯 다시 카메라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얼굴에는 그를 향한 미안함이 잔뜩 묻어 있었다.“계속 면회 가고 싶었는데 왕실 사람들이 너 만나지 못하게 막았어. 나 참 쓸모없다, 그치?”흔들의자에 몸을 웅크리고 앉아 자신의 무력함에 실망한 듯한 그녀의 모습을 보며 지현
그때도 그는 지금처럼 의자에 몸이 묶인 채 눈앞에서 펼쳐지는 장면을 그저 바라만 보며 아무것도 할 수가 없었다.지현우는 지금 머릿속이 혼란스럽고 제정신이 아니었다. 그는 미친 듯이 발버둥 치면서 어떻게 해서든 의자에서 벗어나려고 애썼다. 하지만 아무리 애를 써봐도 의자에서 꼼짝도 할 수가 없었다.그는 결국 절망스러운 얼굴로 의자 등받이에 기댄 채 자신처럼 똑같이 눈물을 흘리는 그녀를 뚫어지게 바라보았다.“현우야, 내가 너 얼마나 좋아했는지 알지?”“14살이던 해에 널 좋아하기 시작한 그 순간부터 지치지도 않고 너를 계속 따라다녔잖아. 지금 돌이켜보면 너도 꽤 곤란했었겠다 하는 생각이 들어.”“나 이제 병 때문에 살날이 얼마 안 남았으니까 나 떠나고 나면 이제는 나처럼 진절머리가 날 만큼 널 쫓아다니는 사람은 없을 거야...”“현우야, 만약에 말이야. 가끔 내 생각이 나면 내 무덤에 와줄래?”김초희는 고개를 숙이고 루게릭병 때문에 근육이 딱딱해진 자신의 두 팔을 보며 초연하게 웃었다.“참, 우리가 처음으로 손잡았을 때도 내가 먼저 잡았던 거 기억해? 그때 나는 네가 손을 뿌리칠 줄 알았어. 그런데 너는 가만히 있었고 너의 그 행동 때문에 더 자신감이 붙었던 것 같아.”“외국 언니들이 좋아하는 남자한테 마음을 표현하는 모습이 그때는 너무 멋있어 보였어. 그 마음이 누군가에게는 달갑지 않을 수도 있다는 생각도 못 한 채 말이야...”그녀는 고개를 들고 다시 카메라를 보며 웃었다.“어릴 때는 너무 철이 없었던 것 같아. 네가 나 싫어하는 거 알면서도 계속 따라다녔잖아.”“하지만 너를 좋아했던 그 순간들이 후회되지는 않아. 언제 어떻게 이 세상을 떠날지도 모르는데 그래도 하고 싶은 일은 해야 하지 않겠어?”그녀는 말을 멈추고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진주알 같은 눈물이 그녀의 볼을 타고 아래로 흘러내렸다.“뭐가 제일 아쉬울까 생각해봤어. 그러다 보니까 나 여태 한 번도 너한테서 사랑한다는 말을 못 들어 봤더라?”“사실 이따금 생각은 했었어. 너
김초희가 남긴 동영상은 시종일관 그를 탓하는 말 한마디 없이 계속 사과만 하고 있었다.두 사람 관계는 늘 지현우가 우위를 점했고 김초희는 항상 그에게 자그마한 사랑이라도 베풀어 달라고 간청했다.지현우가 처음 그녀를 만났을 때, 지현우는 차 안에 앉아 창문을 반쯤 내리고 눈을 늘어뜨리고는 덤덤하게 한 무리의 불량배들에게 둘러싸인 김초희와 케이시를 바라보고 있었다.그때 차에서 신호등을 기다리며 무료해하던 그는 그저 힐끗 쳐다보았을 뿐이지만 어지러운 사람들 속에서 머리를 끌어안고 땅바닥에 웅크리고 있는 김초희가 한눈에 들어왔다.김초희가 고개를 들어 그를 바라볼 때, 눈에서는 맑고 밝은 빛이 뿜어져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 청초한 눈빛은 이런 지저분한 환경에 속하지 않았다. 지현우는 저도 모르게 그만하라고 소리쳤다.그때 지현우는 김초희 곁을 지키고 있던 케이시가 바로 지씨 가문의 사생아이자, 그의 이복형이라는 것을 몰랐다. 만약 알았다면 케이시와 함께 있는 김초희를 절대 후원하지 않았을 것이다.김초희의 말에 의하면, 바로 그 후원을 받고 나서부터 그녀는 항상 방과 후에 묵묵히 지씨 저택 앞을 지키면서 지현우에게 감사 인사를 할 기회를 기다렸다고 한다. 하지만 지현우는 매일 차를 타고 드나들면서 한 번도 차창을 내리고 그녀를 본 적이 없었다.나중에 김초희가 감사 인사를 전하기 위해 필사적으로 노력해 그와 같은 대학에 입학했고 동창이 되었다. 그렇게 천천히 다가갔지만 지현우는 여전히 김초희를 거들떠보지 않았다. 왜냐하면 당시의 지현우는 사랑을 알지 못했다.단지 한 여학생이 매일 아침 그의 책상에 아침 식사를 놓고, 매일 학교를 마치고 자전거를 타면서 그의 차를 따라 반쯤 쫓아가다가 따라잡을 수 없으면 멈춰 선다는 것을 알고 있었다.지현우가 화실에서 그림에 몰두할 때도 그녀는 창문 입구에 몰래 서서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유리창을 통해 화필을 들고 있는 그를 바라보곤 했다.나중에 지현우는 그녀도 화실에 앉아 몇 가지 물감을 반복해서 사용하여 기괴한 모양의
그가 유일하게 적극적이었던 건, 케이시가 왕실의 자제들을 데리고 김초희에게 미친 듯이 구애하고 심지어 그녀를 끌고 운동장을 뛰쳐나오는 것을 봤던 때였다.해 질 녘의 노을을 맞으며 운동장을 달리는 두 사람의 모습에 옆에서 보고 있던 사람들은 모두 환호성을 질렀고 그 장면은 마치 세기의 멜로 영화를 방불케 했다.지현우는 한 손을 주머니에 넣고 경멸하듯 코웃음을 쳤다. 그는 김초희가 케이시의 마음을 받아주지 않을 것으로 생각하여 조금도 마음에 두지 않았다.김초희가 줄곧 집에 돌아가지 않았다고 조지가 말해줄 때까지...당시 김초희는 편하게 그림을 그리기 위해 학교 밖에 세 들어 살았는데, 그게 바로 조지의 집이었다.지현우는 김초희가 혼자 사는 것이 안전하지 않을까 봐 옆집에 사는 조지에게 자주 그녀에게 가보라고 했다.조지가 집에 돌아왔을 때 김초희의 방에 불이 켜지지 않은 것을 보고 지현우에게 전화를 걸었다.지현우는 그녀가 집에 가지 않았다는 말을 듣고 화필을 들고 있던 손을 잠시 멈추었다.머릿속에서는 김초희가 까치발을 들고 케이시의 볼에 뽀뽀하는 장면이 떠올랐다.그는 자신이 미쳤다고 생각되었다. 김초희는 자신만 좋아하는데 어떻게 케이시에게 뽀뽀할 수 있겠는가?그는 그럴 리 없다고 자신을 위로했다.하지만 생각하면 할수록 짜증이 난 그는 화가 나서 화필을 내던지고는 외투를 챙겨 차를 몰고 김초희를 찾으러 나갔다.밤새 찾아 헤맨 지현우는 그녀가 케이시의 집에서 나오는 것을 보고 온몸의 피가 거꾸로 솟는 것 같았다.그는 차 문을 열고 달려들어 김초희의 손을 덥석 잡고는 왜 그의 집에서 나오냐고 따져 물었다.김초희는 지현우를 보고 약간 의아해했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고 그의 손을 밀어냈다.지현우는 처음으로 당황했다. 김초희가 그의 손을 밀쳐내다니.다급해진 그는 자신을 지나쳐 가려 하는 김초희를 잡아당기며 이를 악물고 소리쳤다.“대체 뭘 피하는 거야?”그녀는 고개를 떨구고 말없이 있다가 갑자기 마음을 굳힌 듯 그를 무시해버렸다.화가 난 지현우
지현우는 그녀가 말하지 않는 모습이 방금보다 더 매력적으로 느껴졌고, 저도 모르게 더 깊은 맛을 맛보고 싶었다.당시 김초희의 모습은 지현우의 머릿속에 깊이 새겨져 있어 매번 생각이 날 때마다 회심의 미소를 짓곤 했다.김초희는 눈을 휘둥그렇게 뜨고 믿을 수 없다는 듯이 그를 바라보는 맑은 눈에는 놀라움에서 경악, 그리고 기쁨에 이르기까지 족히 1분이 걸렸다.지현우가 그녀를 놓아주었을 때 턱을 치켜들고 그의 목을 감고는 수줍게 웃으며 물었다.“현우야, 비니보다 나 더 좋아하는 거지. 맞지?”지현우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은 채 그녀의 턱을 만지작거리며 눈썹을 치켜올렸다.“계속 떠들면 또 키스할 거야.”김초희는 부끄러워하지 않고 발끝을 세우고 그의 귀에 대고 말했다.“난 네가 키스하는 거 좋아.”뜨거운 호흡이 지현우의 귓가에 닿고 그의 머릿속을 어지럽혔다.눈과 입가에 그녀의 말 한마디에 웃음기가 물들었다.그날 밤, 누가 먼저 밀쳤는지 모르지만 두 사람은 자연스럽게 함께하게 되었다.김초희는 금기를 맛보기 전 그의 옷깃을 잡고 그날 케이시의 집에서 나온 일을 설명해야 했다.“설명할 필요 없어. 곧 알게 될 테니까.”그 결과는...이튿날 지현우는 한 손으로 김초희의 허리를 감싸고 그녀를 눌러 얼굴이 불그스름하게 달아오른 그녀를 향해 강하게 말했다.“잘 들어. 네 처음을 내가 가졌으니 난 무조건 널 책임질 거야. 넌 내 것이야.”“앞으로 감히 날 배신한다면 지옥에 떨어질 줄 알아.”지현우는 다른 남자들과는 달리 늘 고고하고 세상에 관심도 없고 자기만의 세상에 사는 사람이었다.하지만 한번 마음에 드는 사람이 있으면 평생 사랑하고 누구라도 배신하면 인과를 막론하고 절대 용서하지 않는 사람이었다.그는 김초희와 사귀는 6년 동안 확실히 그녀에게 책임을 다했다.하지만 그는 늘 오만했다. 김초희의 사랑을 받기만 할 뿐 그녀에게 한 번도 고개를 숙인 적이 없었다.그래서 김초희는 한 번도 그의 사랑을 느끼지 못했다.그러나 김초희의 사업에서는
케이시가 영화관 문을 걷어차자 순식간에 조명이 켜졌다.그는 군화를 신고 계단을 올라 한 걸음씩 지현우 앞으로 다가갔다.가죽 장갑을 낀 손으로 앞 좌석의 버튼을 눌렀다.그 의자가 천천히 돌아선 후 케이시는 의자에 앉아 지현우를 올려다보았다.“짐작했겠지만 당신이 감옥에 간 건 내 작품이야.”지현우는 생각을 접고 어둡고 빛을 잃은 눈을 천천히 들어 올려 케이시를 차갑게 쏘아보았다.“앨런은 어릴 때부터 너한테 잘해줬어. 형 노릇을 잘했는데 왜 죽였어?”“내 길을 막는 자는 모두 죽어야지. 그게 내 형이 됐든 누구든. 더구나 친형도 아닌데 뭐가 아쉽겠어?”케이시는 개의치 않는 듯 입꼬리를 치켜올리고 옅은 미소를 지었다. 마치 그의 눈에 생명이란 모두 장난감 같았다.“네가 앨런을 죽이면 왕실이 너한테 상속권을 넘겨줄 거라고 생각했어?”혈연관계가 없는 양자에게 왕실이 어떻게 상속권을 넘겨줄 수 있겠는가? 그야말로 헛된 망상이었다.“당연히 나에게 상속권을 주지 않지. 내가 그렇게 한 건 사실 모두 너 때문이야.”지현우 때문에 그는 일찍이 덫을 놓아 그가 안으로 뛰어들기를 기다리고 있었다.당시 지현우가 앨런을 치어 넘어뜨리고 떠난 뒤, 케이시는 다시 차를 몰고 앨런을 치어 죽였다.만약 지현우가 자기 목숨으로 죄를 갚았다면 케이시는 그 정도에서 멈췄을 것이다.하지만 지씨 가문은 왕실과 맞서서라도 지현우를 지키려 했고 결국 법정에서 1년 형만 선고받았다.그 이유는 뜻밖에도 지현우가 떠난 후 또 다른 아시아인이 차를 몰고 앨런을 치었다는 것을 본 목격자가 나타났기 때문이다.케이시가 치밀하게 계획했지만 그런 사각지대에 목격자가 있을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그리고 지씨 가문이 지현우를 지키기 위해 끊임없지 증거를 수집할 줄도 몰랐다.다행히 그 영국인은 두 번째로 앨런을 친 아시아인이 케이시라는 것을 알아채지 못했다.“그거 알아? 네가 1년 형만 선고받았을 때 난 법정에서 당장 널 총으로 쏴 죽이고 싶었어.”“하지만 어렵게 손에 넣은 물건을 충동적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