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동하의 말에 자식들까지 물에 빠뜨린 이들은 후회막심이었다.JS 그룹에 계속 있게 되면 나중에 공을 세워 다시 주식을 취득할 수 있었다. 스스로 제 발등을 찍고 자식들의 앞길까지 망친 꼴이 되고 말았다. 한편, 자식들에게 피해가 가지 않은 사람들은 다행히 자손들에게까지 화가 미치지 않아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그들이 먼저 나서서 제안을 받아들인다면 원치 않은 사람들도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게 될 것이다. 인내심이 바닥난 이승하는 손목시계를 확인하고는 차갑게 입을 열었다.“1분 다 됐습니다.” 그 싸늘한 목소리가 나오자마자 경호원들은 앞으로 한 발짝 다가섰고 놀란 사람들은 바로 자리에서 일어나 입장을 표명했다. “난 돈 받을게.”“나도.”“그리고 나도.”잠시 후, 결정을 내린 사람들이 자리를 뜨려 하는데 가운데 앉아 있던 남자가 그냥 넘어가려 하지 않은 듯 그들을 불러세웠다.“잠깐만요.”회사에서 쫓겨난 마당에 또 무슨 일인데? 남아서 저녁이라도 먹으라는 거야?이승하는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 차갑게 입을 열었다.“사과하셔야죠.”그중 선두에 선 한 남자가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사과라니?”그가 고개를 들고 그 남자를 싸늘하게 쳐다보았다.“제 와이프한테 사과하셔야죠.”그 말에 남자는 흠칫했다. 사석에서 몇 마디 한 것 가지고 이렇게까지 할 일인가?한 가문의 권력자로서 여자를 위해 이러는 건 크나큰 약점이라고 생각한다. 가운데 앉아 있던 이승하는 그의 속마음을 알아차리기라도 한 듯 다시 한번 차가운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제 와이프에 대해 뭔가 꿍꿍이가 있다면 절대 가만두지 않을 겁니다.”그 말에 그 남자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눈앞의 이 사람은 자신의 어머니까지도 직접 감옥에 보낼 정도로 가차 없고 냉혈한 사람이다. 이런 사람은 약점이 있더라도 그걸 날카로운 검으로 만들어 자신의 것을 함부로 건드리는 자들을 찌를 것이다. 그를 멀리하고 그를 건드리지 않고 그가 신경 쓰는 사람을 쉽게 건드리지 않는 것이 가장 좋
가뜩이나 화가 나 있던 이태석은 이승하의 말을 듣고 평소에 자신이 지켜주었던 동생들이 자신에게 불만이 이만저만이 아니라는 걸 알게 되었다. 그는 고개를 들고 자신이 돌봤던 동생들을 하나하나 훑어보았고 문득 낯선 느낌이 들었다. 다들 각자 가정을 꾸리고 나서는 점점 사이가 소홀해졌다. 평소에는 코빼기도 안 보이던 이들은 일이 생기거나 프로젝트를 따낼 때만이 그를 찾아오곤 했었다. 아무리 그들에게 잘해줘도 그들한테 이태석은 그저 이용 가치가 있는 큰 형님, 큰 오빠일 뿐이었다. 깊이 반성하던 이태석은 아무 말이 없었고 모든 상황을 이승하에게 맡기기로 했다. 남자가 긴 손가락을 들어 명을 내리려고 할 때, 사람들 중 누군가가 이지민의 앞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미안하다. 아까는 내가 말이 너무 과격했어. 마음에 두지 말거라.”항상 거만하고 오만하던 어른이 자신에게 고개를 숙여 사과하는 것을 보고 이지민은 깜짝 놀랐다.다행히 어릴 때부터 자신의 기분을 쉽게 들어내지 말라는 교육을 받아왔던 터라 그녀는 차분하고도 태연하게 그의 사과를 받아들일 수 있었다. “사과 받아들이겠어요. 하지만 제가 낙태를 했다고 함부로 소문 퍼뜨리지 마세요. 몸이 아파서 산부인과에 검사를 받으러 간 것뿐이니까요.”그녀는 여세를 몰아 낙태 사건에 대해 해명했지만 단이수와 사귀었던 일에 대해서는 반박하지 않았다.어찌 됐든 지난날 사람을 잘못 사귄 건 사실이니 마땅히 질책받아야 할 일이라고 생각했다. 누군가 앞장서서 먼저 사과를 하니 다른 사람들도 잇따라 사과를 했다. 가문에서 쫓겨나는 거에 비하면 사과 따위는 별문제 아니었다. 아무리 이 집안의 권력자가 이승하라고 해도 친척들을 다 쫓아낼 권리는 없었다. 그러나 이태석한테는 그럴 권리가 있었다. 이태석이 침묵하는 것을 보고 그들은 어쩔 수 없이 사과를 한 것이었다. 누구의 미움을 사더라도 뒤에서 그들을 지켜주었던 형님에게 미움을 사서는 안 되는 일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그들은 앞으로 정말 JS 그룹에서 이 집안에서 사라지
그의 차가운 시선을 마주한 이태석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그래, 날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냐?”남자는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 “T국에 할아버지를 위해 별장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내일 아침 비행기로 떠나시지요. 그곳에서 여생을 편히 보내시길 바랍니다.”손자에게 쫓겨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이태석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이승하를 쳐다보았다.“네가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게 누구 덕인데?”이승하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아무 감정 없이 대꾸했다.“할아버지 덕분입니다.”용머리 지팡이를 짚고 있던 이태석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은혜를 잊어버리지는 않았구나.”그가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 이태석을 담담하게 쳐다보았다.“은혜를 잊지도 않았지만 그 당시 할아버지께서 방관하시던 모습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그 말에 이태석은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겠다는 듯이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그 일은 내가 너한테 잘못했다. 그러나 여자 하나 때문에 할아버지한테 이러는 건 아니지 않느냐?”이승하는 시선을 거두고 창밖을 내다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청혼식에 참석해달라고 했을 때 이미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요. 그 여자는 저한테 목숨 같은 사람입니다. 그 여자가 없다면 저도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근데 할아버지는 기어코 제 목숨을 건드리셨죠.”그가 잠깐 망설이더니 다시 이태석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할아버지께서 제 목숨 따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으시니 저도 할아버지한테 신경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그 말에 이태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승하한테서 지난날 무릎을 꿇고 사정하던 큰아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아버지, 그 여자는 저한테 목숨 같은 사람입니다. 그 여자 건드리시면 절 죽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그 여자한테 손대지 마세요.”그 당시 그는 큰아들을 강요해 박화영과 결혼하게 하였고 그 후 20여 년 동안 비극이 지속되게 되었다. 과거에 젖어 빠져나오지 못하기라도 한 듯 이태석은 천천히 시선을
말을 마친 이승하는 자리를 떴다.화가 잔뜩 난 이태석은 온몸을 떨고 있었고 지팡이를 짚은 채 이를 갈았다.“이승하, 내 말 듣지 않으면 언젠가는 후회하게 될 거다.”남자는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약간 옆으로 돌리며 차가운 눈빛으로 이태석을 힐끗 쳐다보았다.“진작부터 후회하고 있었습니다. 그 여자랑 일찍 결혼하지 않은 걸 후회하고 있는 중입니다.”한편, 옆에 있던 이지민은 카리스마 넘치는 그의 말에 감격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주먹을 불끈 쥐고는 응원의 손짓을 보냈다.“오빠, 난 오빠 응원해요.”그러나 그녀한테 돌아온 건 이승하의 눈빛이 아니라 이태석의 싸늘한 눈빛이었다.“다섯째야, 딸아이 관리 좀 잘하거라.”다섯째 아들은 침을 꿀꺽 삼키고는 딸아이의 손을 잡더니 큰 소리로 말했다.“아버지, 애들 일에 더 이상 상관하지 마세요.”나이가 들어도 왜 이리 이것저것 다 참견하는 건지? 예전에 자식들의 결혼에 대해 그리 간섭하더니만 이젠 하다 하다 손자의 결혼까지 간섭하려고 하다니...정을 주지 말라고 그리도 입에 달고 사시더니 그동안 정 하나 없는 노친네가 손주보다 더 잘한 게 뭐가 있다고? 어쩌면 손주보다도 뒤떨어졌을지도 모른다. 다섯째 아들이 자신의 말을 듣지 않는 것을 보고 이태석은 그 충격에 기절할 뻔했다. 보자 보자 하니까 이것들이 나한테 반항을 해? 이태석은 가슴을 움켜쥐고는 숨을 가쁘게 몰아쉬었고 얼굴이 하얗게 질리더니 오래 버티지 못하고 그 자리에서 쓰러지고 말았다. 그가 다시 깨어났을 때는 이승연의 아버지만이 그 옆에서 시중을 들고 있었다. 그 모습에 이태석은 그래도 둘째 아들이 효자라는 생각이 들었고 다른 것들은 모두 불효자라고 생각했다.이승연의 아버지, 그의 이름은 이석훈이다. 그가 병상 앞에 앉아 눈살을 찌푸린 채 이태석을 쳐다보았다.“아버지, 제가 이리 남은 건 아버지한테 진심으로 드릴 말씀이 있어서입니다.”침대 머리맡에 기대 앉아 물 한 모금 마시던 이태석은 눈썹을 잔뜩 찌푸렸다. “날 설득할 생각이라면 하지
이태석이 대답을 하려는데 이석훈은 그에게 입을 열 틈조차 주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승하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사람이라고. 그 아가씨 때문에 승하가 몇 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다는 것도 잘 알고 계시면서 왜 그러셨어요? 아버지 고집대로 정말 두 사람 갈라놓을 생각이십니까? 똑똑한 우리 둘째 조카까지 정말 죽일 작정이시냐고요?”“큰형은 아버지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미 시원이를 잃은 큰형이 승하마저 잃게 하실 건가요? 큰형의 자식들을 다 죽일 겁니까?”“그리고 아버지가 아셔야 할 게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이 집안에서 승하 말고는 집안을 이끌어갈 사람이 없어요. 결혼 문제 때문에 승하를 잃게 된다면 우리 이씨 가문은 끝장이란 말입니다.”이석훈은 이태석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며 말을 이어갔다.“아버지, 이 도리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신 겁니까?”이태석은 그의 손을 밀어내며 호통쳤다.“네놈 따위가 일깨워줄 필요 있을 것 같으냐? 내가 모를 것 같아?”“모르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이리 고집불통이신 거 아닙니까?”그 말에 이태석은 그의 뺨을 철썩 내려쳤다. 다행히 눈치가 빠른 이석훈은 냉큼 뒤로 피했다. 그 모습에 화가 난 이태석은 하마터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그를 혼내줄 뻔했다. 이석훈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낀 채 그를 쳐다보았다. “아버지, 그 당시 우리 형제들한테 박화영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하셔서 저희는 아버지의 뜻에 따랐습니다. 그 일 때문에 전 늘 승하한테 미안한 마음이었어요. 아버지는 승하한테 미안하지도 않으십니까?”그 말이 이태석의 아픈 곳을 제대로 찔렀다. 베개를 들고 이석훈을 세게 때리려던 그가 천천히 손을 내려놓았다.“나도 당연히 미안한 마음이 있지. 그래서 그동안 JS 그룹을 승하 그놈한테 전적으로 맡긴 거야.” 이석훈은 이승하를 이용해 JS 그룹을 키우려는 그의 속셈을 대놓고 말하지 않았다. “승하한테 죄책감이 있으시다면 승하 뜻대로 하게 해주세요. 승
침대에 앉아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이태석은 핸드폰을 꺼내 비서한테 서유의 전화를 알아보라고 한 뒤 서유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편, 신혼집 설계도 작업에 한창 집중하고 있던 서유는 낯선 번호를 보고는 받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전화기 맞은편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나일세.”이태석이 자신에게 전화를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그녀는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어르신. 무슨 일로 저한테...”전에 자신을 죽이려 했던 그일지라도 그녀는 여전히 예의 바르게 말을 건넸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이태석은 말투가 조금 누그러졌다.“자네한테 물어볼 것이 있네.”“네, 어르신. 말씀하세요.”서유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똑바로 앉았다. 이불을 젖히고 일어난 그는 통유리창 옆으로 다가가 정원의 등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승하 그놈을 사랑하는가?”그녀는 그가 또 무슨 간사하고 이상한 질문을 해서 자신을 공격하려는 줄 알았다. 근데 이런 질문을 하니 조금 의외였다.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생각한 뒤 정중하게 대답했다.“어르신, 어르신께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 왠지 너무 가벼운 대답일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전 그 사람을 잃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을 잃어보고 나니 그걸 깨닫게 되더라고요.”그 당시 지현우의 거짓말이기는 했지만 그를 잃어버린 느낌은 실제로 경험했었다. 그걸 경험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이미 뼛속 깊이 파고들었고 놓칠 수 없고 잊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게 아마도 사랑이겠지...이태석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다시 물었다. “그놈이 예전에 자네한테 그리 못되게 굴었는데 밉지도 않나?”그녀는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그한테 물었다.“그 사람한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 있었나요?”이태석은 멍하니 아무 말도 잇지 못하였다. 그가 침묵하자 서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어르
서유는 그와 이런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승하도 그녀도 아이를 낳는 도구가 아니었으니까.그러나 이태석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독단적인 성격이 이승하와 참 많이 닮은 듯했다. 그녀는 핸드폰을 쥐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승하에게 문자를 보냈다.[어르신 만난 적 있었어요?]방금 차에서 내린 이승하는 그 문자를 확인하고는 이내 답장을 보냈다.[나와, 얼굴 좀 보게.]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니 마침 흩날리는 눈 사이로 검은 코트를 걸친 남자가 고급 차 옆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그녀는 얼른 일어나 두꺼운 외투를 꺼내 몸에 두르고 별장 밖으로 나갔다.별장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남자가 앞으로 다가와 그녀를 단숨에 품으로 끌어당겼다. 비명을 지르던 그녀가 미처 반응도 하기 전에 남자는 검은 코트를 펼치고 그녀를 품에 가두었다. 그는 그녀를 어린아이처럼 감싸 안았고 그녀는 머리만 빼꼼 내밀고 우뚝 솟은 그를 올려다보았다.“많이 늦었는데 왜 왔어요?”고개를 숙인 남자는 작고 하얀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눈빛이 별처럼 반짝거렸다. “나 보고 싶었어?”그 말에 그녀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자기가 보고 싶어서 찾아오고는 안 그런 척하기는?“오늘 아침에 봤잖아요. 그래서 안 보고 싶었어요.”아닌 척 시치미를 떼는 그녀의 모습이 귀여워서 그는 한없이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괜찮아, 난 당신이 보고 싶었으니까.”보고 싶었다는 그의 말에 그녀는 꿀을 먹은 것처럼 달콤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남자의 잘록한 허리를 꼭 껴안고 뻣뻣한 가슴에 얼굴을 대고는 아무 말도 없이 포옹의 따뜻함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이때, 그가 그녀의 턱을 잡고 눈빛을 마주치더니 부드럽고 촉촉한 그녀의 입술을 쳐다보고는 침을 삼켰다.“나랑 같이 집에 가자.”정가혜의 별장에서 이제 하룻밤 묵었는데 집으로 가자니? 결혼 전의 자유가 너무 짧은 거 아니야?욕망이 가득 찬 그의 눈빛을 쳐다보고는 그녀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싫어요, 가혜랑 같이 있을
주저하지 않고 돌아서는 그녀의 모습에 이승하는 급히 앞으로 다가가 뒤에서 그녀를 덥석 안았다.그녀를 꼭 안고는 턱을 그녀의 어깨에 얹고 그녀의 귓가에 대고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진짜 당신을 어찌하면 좋을까?”등지고 서 있던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이승하 씨, 그러니까 앞으로 나랑 밀당하지 말아요. 나한테는 그런 거 안 통하니까.”그 말을 들은 남자는 짙은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이제 보니 우리 와이프는 직설적인 걸 좋아하나 봐?”말을 마친 뒤,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며 민감한 그녀의 피부를 위아래로 쓰다듬었다.”“당신 안고 싶어서 미치겠어.”뜨거운 숨결이 귓가에 전해지자 짜릿한 느낌에 그녀는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발버둥 쳤지만 남자는 오히려 그녀를 반쯤 안아 올려 그녀를 벽에다 밀쳤다.“걱정하지 마. 여기서는 안 해. 키스만 할 거야.”노골적인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더니 그가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는 머리 위에 얹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허리를 덥석 껴안고 연약한 그녀의 몸에 연기가 날 정도로 뜨거운 자신의 몸을 밀착시켰다. 벽에 기댄 채 그의 키스를 받아내고 있던 그녀는 남자의 욕망에 빨려 들어갈 뻔했다.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기에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이미...힘이 빠진 몸을 억지로 지탱하며 그녀는 남자가 입술을 떼는 순간 바로 그를 밀어냈다.“승하 씨, 얼른 놔줘요.”그녀의 목덜미에 미친 듯이 키스하고 귓불을 살짝 깨물고 있던 남자가 잠시 멈추더니 이내 옅은 미소를 지었다.“여보라고 부르면 놔줄게.”가뜩이나 빨개진 그녀의 볼은 그 말을 듣고 더 빨개졌다.“안 돼요. 입이 안 떨어진단 말이에요.”욕망으로 눈시울이 붉어진 남자는 고개를 들고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왜? 왜 못 불러?”그녀는 조금 쑥스러운 듯 대답했다.“아직 결혼하지 않았잖아요.”“곧 할 건데 뭐. 미리 연습한단 셈 치고 불러봐.”그의 입가에 웃음이 더 깊어졌다. 그녀가 그의 탄탄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