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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23화

그의 차가운 시선을 마주한 이태석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그래, 날 어떻게 처리할 생각이냐?”

남자는 차갑게 웃으며 대답했다.

“T국에 할아버지를 위해 별장을 준비해 두었습니다. 내일 아침 비행기로 떠나시지요. 그곳에서 여생을 편히 보내시길 바랍니다.”

손자에게 쫓겨날 줄은 상상도 못 했던 이태석은 믿을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이승하를 쳐다보았다.

“네가 이 자리까지 올라온 게 누구 덕인데?”

이승하는 한 손으로 턱을 괴고 아무 감정 없이 대꾸했다.

“할아버지 덕분입니다.”

용머리 지팡이를 짚고 있던 이태석은 차갑게 콧방귀를 뀌었다.

“은혜를 잊어버리지는 않았구나.”

그가 고개를 약간 기울인 채 이태석을 담담하게 쳐다보았다.

“은혜를 잊지도 않았지만 그 당시 할아버지께서 방관하시던 모습도 똑똑히 기억하고 있습니다.”

그 말에 이태석은 그와 눈을 마주치지 못하겠다는 듯이 시선을 아래로 옮겼다.

“그 일은 내가 너한테 잘못했다. 그러나 여자 하나 때문에 할아버지한테 이러는 건 아니지 않느냐?”

이승하는 시선을 거두고 창밖을 내다보며 담담하게 입을 열었다.

“청혼식에 참석해달라고 했을 때 이미 말씀드렸던 것 같은데요. 그 여자는 저한테 목숨 같은 사람입니다. 그 여자가 없다면 저도 없을 것이라고 분명히 말씀드렸습니다. 근데 할아버지는 기어코 제 목숨을 건드리셨죠.”

그가 잠깐 망설이더니 다시 이태석을 쳐다보며 말을 이어갔다.

“할아버지께서 제 목숨 따위에는 전혀 신경 쓰지 않으시니 저도 할아버지한테 신경 쓸 필요가 있겠습니까?”

그 말에 이태석은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이승하한테서 지난날 무릎을 꿇고 사정하던 큰아들의 모습이 보였기 때문이다.

“아버지, 그 여자는 저한테 목숨 같은 사람입니다. 그 여자 건드리시면 절 죽이는 것과 다름없습니다. 제발 부탁입니다. 그 여자한테 손대지 마세요.”

그 당시 그는 큰아들을 강요해 박화영과 결혼하게 하였고 그 후 20여 년 동안 비극이 지속되게 되었다.

과거에 젖어 빠져나오지 못하기라도 한 듯 이태석은 천천히 시선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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