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태석이 대답을 하려는데 이석훈은 그에게 입을 열 틈조차 주지 않고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승하가 몇 번이나 말씀드렸잖아요. 자신의 목숨과도 같은 사람이라고. 그 아가씨 때문에 승하가 몇 번이나 자살 시도를 했다는 것도 잘 알고 계시면서 왜 그러셨어요? 아버지 고집대로 정말 두 사람 갈라놓을 생각이십니까? 똑똑한 우리 둘째 조카까지 정말 죽일 작정이시냐고요?”“큰형은 아버지의 잘못된 선택으로 인해 목숨을 잃었습니다. 이미 시원이를 잃은 큰형이 승하마저 잃게 하실 건가요? 큰형의 자식들을 다 죽일 겁니까?”“그리고 아버지가 아셔야 할 게 또 한 가지 있습니다. 이 집안에서 승하 말고는 집안을 이끌어갈 사람이 없어요. 결혼 문제 때문에 승하를 잃게 된다면 우리 이씨 가문은 끝장이란 말입니다.”이석훈은 이태석의 바짓가랑이를 잡아당기며 말을 이어갔다.“아버지, 이 도리를 아직도 깨닫지 못하신 겁니까?”이태석은 그의 손을 밀어내며 호통쳤다.“네놈 따위가 일깨워줄 필요 있을 것 같으냐? 내가 모를 것 같아?”“모르고 계시잖아요. 그래서 이리 고집불통이신 거 아닙니까?”그 말에 이태석은 그의 뺨을 철썩 내려쳤다. 다행히 눈치가 빠른 이석훈은 냉큼 뒤로 피했다. 그 모습에 화가 난 이태석은 하마터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나 그를 혼내줄 뻔했다. 이석훈은 의자에 등을 기대고 팔짱을 낀 채 그를 쳐다보았다. “아버지, 그 당시 우리 형제들한테 박화영의 일에 끼어들지 말라고 하셔서 저희는 아버지의 뜻에 따랐습니다. 그 일 때문에 전 늘 승하한테 미안한 마음이었어요. 아버지는 승하한테 미안하지도 않으십니까?”그 말이 이태석의 아픈 곳을 제대로 찔렀다. 베개를 들고 이석훈을 세게 때리려던 그가 천천히 손을 내려놓았다.“나도 당연히 미안한 마음이 있지. 그래서 그동안 JS 그룹을 승하 그놈한테 전적으로 맡긴 거야.” 이석훈은 이승하를 이용해 JS 그룹을 키우려는 그의 속셈을 대놓고 말하지 않았다. “승하한테 죄책감이 있으시다면 승하 뜻대로 하게 해주세요. 승
침대에 앉아 한참 생각에 잠겨 있던 이태석은 핸드폰을 꺼내 비서한테 서유의 전화를 알아보라고 한 뒤 서유에게 전화를 걸었다. 한편, 신혼집 설계도 작업에 한창 집중하고 있던 서유는 낯선 번호를 보고는 받지 않을 생각이었지만 왠지 모르게 통화버튼을 눌렀다. 전화기 맞은편에서 중후한 목소리가 들려왔다.“나일세.”이태석이 자신에게 전화를 할 줄은 꿈에도 생각지 못했던 그녀는 멍한 표정을 짓다가 이내 공손하게 대답했다. “네, 어르신. 무슨 일로 저한테...”전에 자신을 죽이려 했던 그일지라도 그녀는 여전히 예의 바르게 말을 건넸다. 그 모습이 마음에 들었던 이태석은 말투가 조금 누그러졌다.“자네한테 물어볼 것이 있네.”“네, 어르신. 말씀하세요.”서유는 손에 들고 있던 펜을 내려놓고 똑바로 앉았다. 이불을 젖히고 일어난 그는 통유리창 옆으로 다가가 정원의 등불을 바라보며 입을 열었다.“승하 그놈을 사랑하는가?”그녀는 그가 또 무슨 간사하고 이상한 질문을 해서 자신을 공격하려는 줄 알았다. 근데 이런 질문을 하니 조금 의외였다. 그녀는 바로 대답하지 않고 잠시 생각한 뒤 정중하게 대답했다.“어르신, 어르신께 그 사람을 사랑한다고 하면 왠지 너무 가벼운 대답일 것 같습니다. 다만 제가 말씀드리고 싶은 건 전 그 사람을 잃을 수 없습니다. 그 사람을 잃어보고 나니 그걸 깨닫게 되더라고요.”그 당시 지현우의 거짓말이기는 했지만 그를 잃어버린 느낌은 실제로 경험했었다. 그걸 경험했기 때문에 그 사람은 이미 뼛속 깊이 파고들었고 놓칠 수 없고 잊을 수 없는 사람이라는 것을 알게 되었다. 이런 게 아마도 사랑이겠지...이태석은 미간을 찌푸린 채 잠시 생각에 잠기다가 다시 물었다. “그놈이 예전에 자네한테 그리 못되게 굴었는데 밉지도 않나?”그녀는 그 물음에 대답하지 않고 오히려 그한테 물었다.“그 사람한테 사랑하는 법을 가르쳐준 사람 있었나요?”이태석은 멍하니 아무 말도 잇지 못하였다. 그가 침묵하자 서유는 계속해서 말을 이어갔다. “어르
서유는 그와 이런 도박을 하고 싶지 않았다. 이승하도 그녀도 아이를 낳는 도구가 아니었으니까.그러나 이태석은 말을 마치고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독단적인 성격이 이승하와 참 많이 닮은 듯했다. 그녀는 핸드폰을 쥐고 한참을 망설이다가 이승하에게 문자를 보냈다.[어르신 만난 적 있었어요?]방금 차에서 내린 이승하는 그 문자를 확인하고는 이내 답장을 보냈다.[나와, 얼굴 좀 보게.]창밖으로 고개를 돌리니 마침 흩날리는 눈 사이로 검은 코트를 걸친 남자가 고급 차 옆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그녀는 얼른 일어나 두꺼운 외투를 꺼내 몸에 두르고 별장 밖으로 나갔다.별장 문을 열고 나서자마자 남자가 앞으로 다가와 그녀를 단숨에 품으로 끌어당겼다. 비명을 지르던 그녀가 미처 반응도 하기 전에 남자는 검은 코트를 펼치고 그녀를 품에 가두었다. 그는 그녀를 어린아이처럼 감싸 안았고 그녀는 머리만 빼꼼 내밀고 우뚝 솟은 그를 올려다보았다.“많이 늦었는데 왜 왔어요?”고개를 숙인 남자는 작고 하얀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눈빛이 별처럼 반짝거렸다. “나 보고 싶었어?”그 말에 그녀는 웃음이 절로 나왔다. 자기가 보고 싶어서 찾아오고는 안 그런 척하기는?“오늘 아침에 봤잖아요. 그래서 안 보고 싶었어요.”아닌 척 시치미를 떼는 그녀의 모습이 귀여워서 그는 한없이 다정한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 “괜찮아, 난 당신이 보고 싶었으니까.”보고 싶었다는 그의 말에 그녀는 꿀을 먹은 것처럼 달콤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는 남자의 잘록한 허리를 꼭 껴안고 뻣뻣한 가슴에 얼굴을 대고는 아무 말도 없이 포옹의 따뜻함을 느끼고 있었다. 바로 이때, 그가 그녀의 턱을 잡고 눈빛을 마주치더니 부드럽고 촉촉한 그녀의 입술을 쳐다보고는 침을 삼켰다.“나랑 같이 집에 가자.”정가혜의 별장에서 이제 하룻밤 묵었는데 집으로 가자니? 결혼 전의 자유가 너무 짧은 거 아니야?욕망이 가득 찬 그의 눈빛을 쳐다보고는 그녀는 이내 고개를 가로저었다.“싫어요, 가혜랑 같이 있을
주저하지 않고 돌아서는 그녀의 모습에 이승하는 급히 앞으로 다가가 뒤에서 그녀를 덥석 안았다.그녀를 꼭 안고는 턱을 그녀의 어깨에 얹고 그녀의 귓가에 대고 옅은 한숨을 내쉬었다.“진짜 당신을 어찌하면 좋을까?”등지고 서 있던 그녀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이승하 씨, 그러니까 앞으로 나랑 밀당하지 말아요. 나한테는 그런 거 안 통하니까.”그 말을 들은 남자는 짙은 눈썹을 살짝 치켜세웠다.“이제 보니 우리 와이프는 직설적인 걸 좋아하나 봐?”말을 마친 뒤, 그는 고개를 숙이고 그녀의 귓불을 살짝 깨물며 민감한 그녀의 피부를 위아래로 쓰다듬었다.”“당신 안고 싶어서 미치겠어.”뜨거운 숨결이 귓가에 전해지자 짜릿한 느낌에 그녀는 하마터면 주저앉을 뻔했다. 발버둥 쳤지만 남자는 오히려 그녀를 반쯤 안아 올려 그녀를 벽에다 밀쳤다.“걱정하지 마. 여기서는 안 해. 키스만 할 거야.”노골적인 말을 아무렇지 않게 내뱉더니 그가 한 손으로 그녀의 손을 잡고는 머리 위에 얹었다. 그러고는 그녀의 허리를 덥석 껴안고 연약한 그녀의 몸에 연기가 날 정도로 뜨거운 자신의 몸을 밀착시켰다. 벽에 기댄 채 그의 키스를 받아내고 있던 그녀는 남자의 욕망에 빨려 들어갈 뻔했다. 이성의 끈을 놓지 않고 있었기에 다행이지 그렇지 않았다면 두 사람은 이미...힘이 빠진 몸을 억지로 지탱하며 그녀는 남자가 입술을 떼는 순간 바로 그를 밀어냈다.“승하 씨, 얼른 놔줘요.”그녀의 목덜미에 미친 듯이 키스하고 귓불을 살짝 깨물고 있던 남자가 잠시 멈추더니 이내 옅은 미소를 지었다.“여보라고 부르면 놔줄게.”가뜩이나 빨개진 그녀의 볼은 그 말을 듣고 더 빨개졌다.“안 돼요. 입이 안 떨어진단 말이에요.”욕망으로 눈시울이 붉어진 남자는 고개를 들고 그녀를 빤히 쳐다보았다.“왜? 왜 못 불러?”그녀는 조금 쑥스러운 듯 대답했다.“아직 결혼하지 않았잖아요.”“곧 할 건데 뭐. 미리 연습한단 셈 치고 불러봐.”그의 입가에 웃음이 더 깊어졌다. 그녀가 그의 탄탄한
두 사람의 결혼을 반대하는 이태석이 떠난 후, 이승하는 그녀를 데리고 세계 각지로 가서 웨딩 촬영을 했다.그는 그녀를 위해 수없이 많은 웨딩드레스를 맞춤 제작했고 사진 몇 장을 찍기 위해 반지까지 세계적인 디자이너에게 부탁해 디자인을 고치고 또 고쳤다. 메이크업부터 스타일링까지 그는 유명한 팀들을 직접 섭외하여 결혼식 당일 그녀의 메이크업을 책임지게 하였다. 그리고 결혼식 장소도 직접 섭외하고 꾸몄다. 이 모든 일을 하면서 그는 그녀를 깜짝 놀라게 해주려고 그녀한테 미리 말하지 않았다. 한편, 서유는 이에 대해 묻지 않고 신혼집 설계에만 몰두했다. 디자인이 끝나면 인테리어 회사에 맡겨 신혼집을 꾸미려고 했었다. 근데 그걸 이승하가 알고 나서는 이런 일에 신경 쓰지 말라며 그녀의 디자인을 빼앗아 갔다. 어쩔 수 없었던 서유는 정가혜 별장의 인테리어에 따라 꾸미라고 인테리어 회사에 지시했다. 그 후, 그녀는 주서희가 보내준 한약을 챙겨 먹으며 언니가 남긴 프로젝트에 모든 에너지를 쏟았다. 혼수값을 벌기 위해 그녀는 필사적으로 일을 시작했고 밤낮으로 설계도를 그렸다. 이승하가 몇 번 그녀를 찾아왔지만 그녀는 그를 상대할 여유가 없었다. 문밖에 서 있던 남자는 몇 마디하고 돌아서는 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점차 표정이 쓸쓸해졌다. 별장으로 돌아온 그는 서재로 들어가 개인 핸드폰을 꺼내 그녀에게 문자를 보냈다. [나 도착했어.]평소 같았으면 진작에 그에게 답장을 보냈을 텐데 오늘은 한참을 기다려도 그녀는 답장이 없었고 남자는 마음이 울적해졌다. 그는 핸드폰을 잡고는 소파에 앉아 한 손으로 턱을 괴고 핸드폰 화면을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마음속으로 그녀가 빨리 답장을 해주기를 바랐지만 밤이 늦도록 그녀는 답장이 없었다. 요즘 그녀는 마음이 딴 데 있는 것 같았고 이제는 그의 안부조차도 신경 쓰지 않는 것 같았다. 왜 이러는 거지?몇 번이고 그녀에게 물어보려고 했지만 그녀의 입에서 결혼을 후회한다는 말이 나올까 봐 겁이 났다. 불안한 느낌이 그
그는 깊은숨을 들이쉬며 답답한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택이를 향해 손짓했다. 그 모습을 본 택이는 바로 자료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가 자료를 뒤적이는 동안 택이는 옆에서 간략하게 보고를 했다.“김초희가 다섯 살 때 Y국에서 구걸을 하다가 하마터면 맞아죽을 뻔했었습니다. 바로 그때 지현우를 만나게 되었고 지현우는 김초희를 구해주고 그녀한테 학비까지 내주었다고 합니다.”“그러다가 김초희는 지현우를 사랑하게 되었고 10년 동안 지현우를 미친 듯이 쫓아다녔다고 합니다. 처음에 지현우는 전혀 그녀한테 마음이 없었고 그녀를 안중에 두지 않았습니다. 근데 어떻게 된 일인지 결국은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두 사람은 6년 동안 사귀었다고 합니다.”“두 사람의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지현우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그때부터였습니다. 그 당시 지현우는 1년 동안 감옥에 갇혀있게 되었고 그동안 계속 김초희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마음에 걸렸던 지현우는 감옥에서 나와 김초희를 찾아갔고 뜻밖에도 그녀는 Y국 왕실에 입양된 지씨 가문 사생아 지현우의 형과 결혼해 한 살배기 딸까지 있었다고 합니다.”“처음에 지현우는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김초희가 그 남자와 함께 자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완전히 미쳐버리게 된 거죠. 그녀한테 복수하기 위해 지현우는 가문의 세력을 이용해 그녀를 이혼하게 만들었고 그 후 그녀를 자신의 곁에 가두어두었다고 합니다.”“그동안 지현우는 루게릭병에 걸린 그녀를 잔인하게 대했습니다. 그 후,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고통받던 그녀는 지현우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그러나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지현우는 배 속에 있던 아이를 발로 차 버렸습니다. 아마도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 김초희는 그에게서 완전히 벗어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그래서 지현우를 기만하고 그의 경계심을 푼 뒤 왕실의 그 남자와 다시 도망쳤다고 합니다. 지현우는 미친 듯이 그녀를 찾아 헤맸습니다. 듣기로는 그 당시 Y국
그는 결과 보고서를 만지작거리더니 종이를 살짝 튕키며 깊은 생각에 빠진 듯했다.잠시 고민하던 남자는 결과 보고서를 집어들고 입을 열었다.“이거 언제 검사한 거야?”“아주 오래전에 한 겁니다. 조지가 직접 한 검사고요.”택이가 그의 물음에 공손하게 대답했다. 이 검사 결과 보고서는 오래된 것이기 때문에 백 퍼센트 믿을 수 없다.이승하는 그 결과 보고서를 내던지고 택이에게 명했다.“이 일은 일단 서유한테 말하지 마. 지현우와 연이의 머리카락을 구해서 유전자 검사 다시 해봐. 검사 결과 나오면 그때 다시 보고해.”서유는 김초희가 지현우를 배신하지 않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아낸 자료를 봐서는 김초희가 지현우를 배신한 것이 틀림없었다. 언니에 대한 그녀의 믿음을 위해서라도 이 일은 철저히 조사한 후에 그녀에게 알려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한편, 택이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었다.“보스, 지현우는 태권도 검은 띠 9단입니다. 가까이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요.”이승하는 고개를 들고 차가운 눈빛으로 택이를 쳐다보았다.“강세은의 오빠가 지현우의 친구야. 그 사람한테 부탁해 봐.”강세은의 오빠라...얼음장같이 차가운 그의 얼굴을 떠올리니 택이는 저도 모르게 몸이 벌벌 떨렸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보스가 강세은의 오빠보다 더 무서운 존재니까.택이가 서재를 떠난 후, 이승하는 핸드폰을 다시 주워 문자를 확인해 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답장이 없었다. 그는 핸드폰을 꽉 쥐고는 심호흡했다.분명 잠이 들었을 거야. 그래서 내 문자를 확인하지 못한 거고.속으로 그렇게 자신을 위로할수록 그는 마음이 더 초조해졌고 결국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한편, 핸드폰을 침실에 두고 서재에서 설계도를 그리고 있던 그녀는 그한테서 전화가 걸려 온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전화를 받지 않자 그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재빨리 차를 몰고 그녀가 있는 별장으로 향했다.초인종 소리에 잠이 깬 노현정은 인터폰 화면을 확인해
그가 고개를 돌리고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한참을 망설이더니 끝내 입을 열었다.“요즘 나한테 너무 소홀한 거 아니야?”그 말을 내뱉고 그는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번 기회에 이별을 통보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이리 말하지 않으면 잡힐 듯 안 잡힐 듯한 고통 때문에 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치켜세웠다.“내가 당신한테 소홀히 했다고요?”일에 집중하느라 이 남자한테 쌀쌀맞게 굴었던 걸 알아차리지 못한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언제 쌀쌀맞게 굴었다고 이러는 건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면서도 짬을 내서 만났는데 그래도 부족한 건가?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던 그는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당신... 아직도 나랑 결혼하고 싶은 거지?”그녀의 예쁜 눈썹은 더욱 찡그려졌다.“당신이랑 결혼하지 않으면 내가 누구랑 하겠어요?”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그녀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 뒤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았다.“도대체 왜 그래요?”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녀를 보며 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요즘 그를 소홀히 대했던 건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너무 바빠서 저도 모르게 그랬던 것이다.그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설계도를 쳐다보며 물었다.“그동안 이것 때문에 바빴던 거야?”그의 시선을 따라 그녀는 책상 위의 설계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매일 이것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어요. 왜요?”그제야 그는 그녀가 너무 바빠서 자신을 소홀히 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한동안 계속 엉뚱한 생각을 했던 남자는 그 이유를 알게 되고 나니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다. 지옥에서 다시 하늘로 올라간 기분이 들었고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이 수상하여 이유를 물어보려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몸이 붕 뜨게 되었다. 남자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