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는 깊은숨을 들이쉬며 답답한 마음을 가라앉히고는 택이를 향해 손짓했다. 그 모습을 본 택이는 바로 자료를 그에게 건네주었다. 그가 자료를 뒤적이는 동안 택이는 옆에서 간략하게 보고를 했다.“김초희가 다섯 살 때 Y국에서 구걸을 하다가 하마터면 맞아죽을 뻔했었습니다. 바로 그때 지현우를 만나게 되었고 지현우는 김초희를 구해주고 그녀한테 학비까지 내주었다고 합니다.”“그러다가 김초희는 지현우를 사랑하게 되었고 10년 동안 지현우를 미친 듯이 쫓아다녔다고 합니다. 처음에 지현우는 전혀 그녀한테 마음이 없었고 그녀를 안중에 두지 않았습니다. 근데 어떻게 된 일인지 결국은 그녀의 마음을 받아들이게 되었고 두 사람은 6년 동안 사귀었다고 합니다.”“두 사람의 사랑에 금이 가기 시작한 건 지현우가 누명을 쓰고 감옥에 들어간 그때부터였습니다. 그 당시 지현우는 1년 동안 감옥에 갇혀있게 되었고 그동안 계속 김초희를 기다렸지만 그녀는 나타나지 않았다고 합니다.”“마음에 걸렸던 지현우는 감옥에서 나와 김초희를 찾아갔고 뜻밖에도 그녀는 Y국 왕실에 입양된 지씨 가문 사생아 지현우의 형과 결혼해 한 살배기 딸까지 있었다고 합니다.”“처음에 지현우는 믿지 않았다고 합니다. 그러다가 김초희가 그 남자와 함께 자고 있는 모습을 목격하고는 완전히 미쳐버리게 된 거죠. 그녀한테 복수하기 위해 지현우는 가문의 세력을 이용해 그녀를 이혼하게 만들었고 그 후 그녀를 자신의 곁에 가두어두었다고 합니다.”“그동안 지현우는 루게릭병에 걸린 그녀를 잔인하게 대했습니다. 그 후, 정신적으로 신체적으로 고통받던 그녀는 지현우의 아이를 임신하게 되었다고 합니다.”“그러나 그 사실을 믿을 수 없었던 지현우는 배 속에 있던 아이를 발로 차 버렸습니다. 아마도 그 일이 있고 난 뒤부터 김초희는 그에게서 완전히 벗어나려고 했던 것 같습니다.”“그래서 지현우를 기만하고 그의 경계심을 푼 뒤 왕실의 그 남자와 다시 도망쳤다고 합니다. 지현우는 미친 듯이 그녀를 찾아 헤맸습니다. 듣기로는 그 당시 Y국
그는 결과 보고서를 만지작거리더니 종이를 살짝 튕키며 깊은 생각에 빠진 듯했다.잠시 고민하던 남자는 결과 보고서를 집어들고 입을 열었다.“이거 언제 검사한 거야?”“아주 오래전에 한 겁니다. 조지가 직접 한 검사고요.”택이가 그의 물음에 공손하게 대답했다. 이 검사 결과 보고서는 오래된 것이기 때문에 백 퍼센트 믿을 수 없다.이승하는 그 결과 보고서를 내던지고 택이에게 명했다.“이 일은 일단 서유한테 말하지 마. 지현우와 연이의 머리카락을 구해서 유전자 검사 다시 해봐. 검사 결과 나오면 그때 다시 보고해.”서유는 김초희가 지현우를 배신하지 않았다고 굳게 믿고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 알아낸 자료를 봐서는 김초희가 지현우를 배신한 것이 틀림없었다. 언니에 대한 그녀의 믿음을 위해서라도 이 일은 철저히 조사한 후에 그녀에게 알려주는 것이 좋을 것 같았다. 한편, 택이는 난감한 표정을 지으며 머리를 긁었다.“보스, 지현우는 태권도 검은 띠 9단입니다. 가까이할 수가 없을 것 같은데요.”이승하는 고개를 들고 차가운 눈빛으로 택이를 쳐다보았다.“강세은의 오빠가 지현우의 친구야. 그 사람한테 부탁해 봐.”강세은의 오빠라...얼음장같이 차가운 그의 얼굴을 떠올리니 택이는 저도 모르게 몸이 벌벌 떨렸다. 그러나 그는 이를 악물고 대답했다. 보스가 강세은의 오빠보다 더 무서운 존재니까.택이가 서재를 떠난 후, 이승하는 핸드폰을 다시 주워 문자를 확인해 보았지만 그녀는 여전히 답장이 없었다. 그는 핸드폰을 꽉 쥐고는 심호흡했다.분명 잠이 들었을 거야. 그래서 내 문자를 확인하지 못한 거고.속으로 그렇게 자신을 위로할수록 그는 마음이 더 초조해졌고 결국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다.한편, 핸드폰을 침실에 두고 서재에서 설계도를 그리고 있던 그녀는 그한테서 전화가 걸려 온 줄 전혀 모르고 있었다. 그녀가 전화를 받지 않자 그는 소파에서 벌떡 일어나 재빨리 차를 몰고 그녀가 있는 별장으로 향했다.초인종 소리에 잠이 깬 노현정은 인터폰 화면을 확인해
그가 고개를 돌리고 그녀의 아름다운 얼굴을 빤히 쳐다보면서 한참을 망설이더니 끝내 입을 열었다.“요즘 나한테 너무 소홀한 거 아니야?”그 말을 내뱉고 그는 가슴이 미친 듯이 뛰기 시작했다. 그녀가 이번 기회에 이별을 통보할까 봐 두려웠다. 그러나 이리 말하지 않으면 잡힐 듯 안 잡힐 듯한 고통 때문에 더 숨이 막힐 것 같았다 . 그녀는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눈썹을 치켜세웠다.“내가 당신한테 소홀히 했다고요?”일에 집중하느라 이 남자한테 쌀쌀맞게 굴었던 걸 알아차리지 못한 그녀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내가 언제 쌀쌀맞게 굴었다고 이러는 건지? 눈코 뜰 새 없이 바쁘면서도 짬을 내서 만났는데 그래도 부족한 건가?그녀가 이런 반응을 보일 줄은 몰랐던 그는 불안한 표정을 지으며 물었다.“당신... 아직도 나랑 결혼하고 싶은 거지?”그녀의 예쁜 눈썹은 더욱 찡그려졌다.“당신이랑 결혼하지 않으면 내가 누구랑 하겠어요?”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그녀는 그의 품에서 벗어나 뒤돌아서서 그를 바라보았다.“도대체 왜 그래요?”잔뜩 미간을 찌푸린 채 자신을 뚫어지게 쳐다보는 그녀를 보며 그는 옅은 미소를 지었다. 그녀가 요즘 그를 소홀히 대했던 건 결혼을 하고 싶지 않았던 게 아니라 너무 바빠서 저도 모르게 그랬던 것이다.그는 책상 위에 놓여있는 설계도를 쳐다보며 물었다.“그동안 이것 때문에 바빴던 거야?”그의 시선을 따라 그녀는 책상 위의 설계도를 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맞아요. 매일 이것 때문에 눈코 뜰 새 없이 바빴어요. 왜요?”그제야 그는 그녀가 너무 바빠서 자신을 소홀히 했다는 걸 깨닫게 되었다. 한동안 계속 엉뚱한 생각을 했던 남자는 그 이유를 알게 되고 나니 잔뜩 긴장했던 마음이 풀리기 시작했다. 지옥에서 다시 하늘로 올라간 기분이 들었고 입가에 환한 미소가 번졌다. 그녀는 말을 하지 않고 자신을 보며 웃고 있는 그의 모습이 수상하여 이유를 물어보려고 입을 열었다. 그런데 갑자기 그녀의 몸이 붕 뜨게 되었다. 남자의
그녀는 혼수를 위해 필사적으로 일을 했지만 아무리 서둘러도 빨리 흘러가는 시간을 따라갈 수가 없었다. 쓰러지기 일보 직전에 겨우 8장의 설계도만 마무리해서 심이준한테 건네줬다.“얼른 가지고 가서 제출해요. 돈 받아오는 거 잊지 말고요.”심이준은 책상에 앉아 사과를 먹으며 돈만 밝히는 서유를 위아래로 훑어보며 혀를 찼다. “엄청 부자인 남자랑 결혼하게 되었는데 왜 이렇게 악착같이 돈을 벌어요?”만약 그가 부잣집 여자한테 장가를 든다면 설계도는 고사하고 황금 펜에 눈길조차 주지 않았을 것이다. 여자 덕 보고 잘 먹고 잘살 수 있는데 뭐 하러 설계도를 그려?책상에 엎드려있던 서유는 다음 프로젝트의 자료를 넘겨보며 맥없이 입을 열었다.“이준 씨, 혼수는 준비해야 할 거 아니에요...”가족이 없는 그녀는 스스로 자신을 위해 이것들을 준비할 수밖에 없었다. 그가 그녀를 위해 성대한 결혼식을 준비했으니 그녀 또한 남부럽지 않게 혼수를 준비해 가고 싶었다. 멋지게 시집갈 생각에 서유는 눈빛을 반짝거리며 심이준의 호주머니를 빤히 쳐다보았다.“이준 씨, JS 그룹에서 입금한 200억 말이에요. 이준 씨가 30%의 몫을 가져갔으니 지금 주머니 사정이 넉넉할 것 같은데. 좀 빌려 줄 수 있어요?”심이준은 바로 호주머니를 감쌌다.“나한테 돈 빌릴 생각 하지 말아요. 나한테 부족한 건 돈밖에 없으니까. 게다가 나처럼 가난한 사람한테 돈을 빌려달라고 하는 건 날 너무 과대평가한 거 아닌가요?”그녀는 손을 뻗어 그의 손에서 사과를 낚아챘다.“싫어요? 그럼 우리 집 사과 먹지 말아요.”사과를 먹지 말라고 하면 귤을 먹으면 되잖아.그의 손이 탁자 위에 놓인 과일 쟁반으로 향하자 그녀는 잽싸게 과일 쟁반을 들어 한쪽에 놓아두었다.최근에 정가혜가 입양한 반려동물 퍼그는 서유한테 달라붙는 걸 좋아했다. 그녀가 과일 한 접시를 내려놓자 퍼그가 달려와 그 위의 과일들을 모조리 핥아버렸다.귤은 껍질만 벗기면 그래도 먹을 수 있을 거야.구역질이 나면서도 한편으로는 또 먹
서유는 경호원들에게 케이시를 놓아주라고 한 뒤 그를 거실로 안내했고 노현정에게커피 한 잔을 부탁했다. 소파에 앉아 있는 남자는 동작과 표정이 모두 지현우와 비슷했지만 유일하게 다른 점은 한 쌍의 눈이었다. 지현우의 눈은 어둡고 날카로웠지만 케이시의 눈은 근심 걱정이 없는 사람처럼 담담하고 여유가 있어 보였다.두 사람은 모두 쿨한 면이 있어 보였지만 말투가 완전히 달랐고 지현우보다 케이시가 더 젠틀한 것 같았다.그녀는 그를 자세히 훑어본 뒤 자리에 앉아 그에게 물었다.“무슨 일로 날 찾아온 건가요?”케이시는 대답을 서두르지 않고 고개를 들어 그녀의 뒤에 서 있는 수십 명의 여자 경호원들을 쳐다보았다.그러고는 식탁에 앉아 사과를 들고 맛있게 먹으며 자신을 훑어보고 있는 이상한 남자도 한번 쳐다보았다. 주위를 둘러보던 그의 시선이 서유에게로 향했다. 긴장한 듯한 그녀의 얼굴을 보면서 온화한 그의 얼굴에 여유로운 미소가 떠올랐다. “서유 씨, 긴장하지 말아요. 난 그저 우리 딸 연이의 행방에 대해 물어보려고 온 겁니다.”그의 딸이라니... 정말 그의 딸이란 말인가? 궁금한 게 많았지만 서유는 꾹 참고 사실대로 대답했다.“연이는 현우 씨가 데리고 있어요.”지현우가 그의 손에서 연이를 빼앗아 갔는데 그가 연이의 행방을 모른다고? 나한테 그걸 물어보려고 왔다니?케이시는 우아한 미소를 지으며 여유롭게 서유를 위아래로 훑어보고는 은색 안경을 살짝 건드리며 입을 열었다.“지현우가 딸아이를 데려가기 전에 8개월 후에 딸아이를 돌려주겠다고 나랑 약속했었어요.”“이제 그 약속 기한이 다 되었는데 난 지현우를 찾을 수 없게 되었죠. 그가 어디 있는지 알고 있나요?”그 말에 서유는 멍한 표정을 지었다. 지현우가 연이를 해칠까 봐 걱정되지도 않았던 건지? 아니면 지현우가 연이를 해치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어서 그리 기한을 정한 것인지? 그녀는 궁금증 투성이었지만 젠틀해 보이면서도 온몸에 서늘한 기운이 감도는 이 남자를 믿을 수가 없었다. “왜 나한테
서유가 보기에 지현우는 케이시의 연적이었다. 근데 그런 사람한테 자신의 딸을 8개월 동안이나 보낸다고? 이게 말이 돼?이해할 수 없었던 그녀는 고개를 숙인 채 잠시 머뭇거리다가 끝내 입을 열었다.“아이들은 오랜 시간 함께 있으면 정이 든다는 걸 알고 있었으면서 왜 8개월이라는 기한을 정한 거예요? 시간이 너무 길다는 생각 안 해봤어요?”그는 그녀가 이렇게 물을 것을 예상이라도 한 듯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이렇게 긴 기한을 정한 건 솔직히 사심이 있어서입니다. 난 연이가 지현우와 많은 시간을 보내길 바랐거든요. 초희가 이 세상에 남겨둔 딸이 있다고 그한테 알려주고 싶었습니다.”“연이를 봐서라도 초희와 관련된 모든 것을 그리고 그 자신을 놓아주기를 바랐죠. 그럼 다시는 나와 연이를 방해하지 않을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습니다.”서유는 살짝 미간을 찌푸렸다.“연이와 오랜 시간 함께 지내다가 정이라도 들어서 연이를 돌려보내지 않으면요?”그가 고개를 저었다.“아니요, 초희의 유언 때문이라도 그는 반드시 연이를 돌려줄 겁니다.”그 말을 듣고 서유는 어리둥절한 표정을 지었다. 언니가 유언을 남겼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면서 왜 지난번에 자살 시도를 했던 걸까?언니에 대한 지현우의 집착으로 봐서는 언니의 유언을 위해서라도 그는 악착같이 살려고 했을 것이다. 이승하에게 쫓기더라도 쉽게 포기하지 않았을 텐데 지난번에는 스스로 그들을 찾아왔었다. 그가 자살하기 전, 끝내 말하지 않았던 답을 생각하며 서유는 점점 더 이상한 느낌이 들었다. 그녀가 김초희인지 서유인지 구분할 수 있어서 자살을 선택한 것일까? 아니면 구분할 수 없어서 자살을 선택한 것일까?답을 찾지 못한 서유는 고개를 들어 케이시를 쳐다보았다.“언니의 유언이 뭔지 나한테 말해줄 수 있나요?”케이시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미안하지만 초희가 신신당부했거든요. 그 영상은 지현우에게만 보여줄 수 있다고.”유언이 몇 마디가 아니라 동영상이라고?동영상이라면 그건 분명 언니의 영상일 것이다. 그녀는
언니에 대한 그리움 때문이 아니라 자신을 비난하기 위해 그가 이런 옛날이야기를 할 줄은 몰랐다. 그녀는 자세히 케이시를 훑어보았다. 겉으로는 쿨하고 태연한 사람인 것 같아 보여도사실은 지현우보다 더 종잡을 수 없는 사람인 것 같았다. 케이시의 속마음을 간파하지 못한 그녀는 그의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그의 말 속에 담긴 메시지를 근거로 케이시에게 되물었다.“현우 씨밖에 모르던 언니가 왜 갑자기 당신을 선택한 건가요? 그리고 현우 씨는 왜 감옥에 갇히게 된 거죠?”서유가 이렇게 지현우의 편을 들 줄 몰랐던 케이시는 경계에 찬 눈빛으로 그녀를 쳐다보았다.“미안하지만 그건 말할 수 없습니다.”그녀는 미간을 찌푸렸다.“왜죠?”그가 커피를 내려놓고는 손을 맞대고 진지하게 대답했다.“당신은 지현우의 사람이니까요. 미안합니다.”말을 마친 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입구 쪽으로 걸어갔고 그녀는 급히 그를 불러세웠다.“잠깐만요.”그가 발걸음을 멈추고 서유를 돌아보는데 경계에 가득 찼던 그의 눈빛은 온데간데없이 사라져 버렸고 그저 담담한 모습이었다. “또 무슨 일입니까?”서유는 그에게 다가가 우뚝 솟은 케이시를 올려다보며 해명했다.“난 현우 씨의 사람이 아니에요. 언니의 일에 대해 알고 있는 게 많지 않아서 누구를 믿어야 할지 모를 뿐이에요.”지현우도 김초희가 10년 동안 그를 쫓아다녔다고 했고 케이시도 김초희한테는 지현우밖에 없었다고 했다. 그런 그녀가 케이시를 선택했다는 게 서유는 도저히 이해가 되지 않았다. 10년이라는 시간 동안 한 사람만 바라본 여자가 그렇게 쉽게 마음이 바뀔 거라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지현우가 그전에 언니한테 상처 준 것이 아니라면 쉽게 사랑했던 사람을 포기할 수 없었을 것이다.그 이유와 속사정에 대해서 서유는 정확히 알지 못했다. 그래서 누구의 말 한마디 때문에 쉽게 누구를 믿거나 믿지 않는 일은 안 하기로 했다. 그녀의 말을 듣고 케이시는 눈빛이 점차 부드러워졌다.“서유 씨, 언니가 날 선택한 건 지현우
“이모...”연이의 목소리가 전화기 너머에서 들려왔다.서유는 마음이 따뜻해지는 걸 느끼며 물었다.“연이, 이모 안 보고 싶었어?”“보고 싶었어요.”연이는 고개를 끄덕이더니 휴대폰을 위로 들어 뒤쪽을 돌았다.그러고는 얼굴을 화면 가까이에 대고 앙증맞은 손가락을 입 쪽으로 가져다 대며 낮게 속삭였다.“이모, 현우 삼촌이 나 데리고 묘원으로 왔는데요 여기서 이모 사진을 봤어요. 그런데 삼촌은 그게 이모가 아니라 엄마래요. 이모, 땅속에 있는 사람 정말 우리 엄마예요?”연이는 큰 눈을 깜빡거리며 화면 속에 있는 서유를 바라보았다.순진무구한 아이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서유는 순간 심장이 욱신거리는 느낌이 들었다.연이를 안쓰러워하는 마음에서 이런 것인지, 아니면 이 심장 주인인 언니가 딸 얼굴을 보고 이러는 건지 알 수 없었지만 가슴이 무척이나 아팠다.그녀는 손을 들어 심장 쪽을 꾹 누르며 조금 떨리는 목소리로 아이에게 말했다.“삼촌이 거짓말 하는 거야. 믿지 마.”연이는 그녀의 말을 듣고 나서야 안심한 듯 입꼬리를 위로 올렸다.“우리 아빠가 그러는데 엄마는 지금 천국에 있다고 했어요. 그리고 연이가 5살이 되는 해에 엄마가 나 보러온다고도 했고요. 물론 5살 생일 때 안 왔지만... 언젠가는 연이 보러 올 거라고 믿어요.”서유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연이에게 물었다.“연이야, 혹시 천국이 어떤 곳인지 알아?”연이는 고개를 끄덕이며 자신 있게 말했다.“그럼요. 아빠가 말해줬어요. 천국은 천사처럼 아름다운 사람들이 있는 곳이라고요. 또 예뻐야만 갈 수 있다고 했어요.”연이는 예쁜 것을 떠올리다 문득 얼마 전에 봤던 영화배우보다 더 예쁘고 잘생긴 아저씨의 얼굴이 떠올랐다.아이는 조지에게서 그 멋있는 아저씨가 이모의 남자친구라는 얘기를 들었던 터라 호기심 가득한 얼굴로 서유를 바라보았다.“이모, 이모 곧 있으면 이모 남자친구랑 결혼할 거죠? 그러면 이모도 나중에 이모 남자친구처럼 잘생긴 아이를 낳을 수 있는 거예요?”연이는 잔뜩 흥분했는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