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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80화

갑자기 얼굴에 뿌려진 와인의 차가운 기운에 정가혜는 무의식적으로 눈을 감았지만 움츠러들지 않았고 여전히 고개를 빳빳하게 들고 있었다.

그녀는 천천히 눈을 내리깔았고 낭패한 모습이었다. 지금 이 순간, 그녀는 매우 연약해 보였고 쓸쓸해 보였고 힘없는 아이 같아 보였다.

늘 당당하던 정가혜가 이렇게 혼자 힘없이 서 있는 모습을 보니 이연석은 갑자기 마음이 아팠다.

그는 안희연의 허리를 감싸고 있던 손을 재빨리 거두고는 책상 위의 휴지를 잡아당기려 했다. 바로 이때, 정가혜가 그보다 한발 먼저 손을 내밀었다.

그녀는 휴지를 몇 장 뽑아 얼굴에서 흘러내리는 와인을 닦고 난 뒤, 천천히 몸을 일으키고는 턱을 치켜올렸다.

차가운 그녀의 시선이 안희연을 넘어 이연석에게로 떨어졌다.

“이연석 씨, 이제 끝났어요.”

그녀가 말한 것은 서비스 시간이 되었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연석은 두 사람 사이가 끝났다는 것으로 받아들였다.

그는 약간 긴장한 표정을 지으며 정가혜의 손목을 잡아당기려고 했다. 그러나 손이 닿기도 전에 그녀가 맥주 한 병을 집어 들었다.

그녀는 맥주병을 몇 번 흔들더니 이빨로 깨물었고 안에 있던 맥주가 순식간에 튀어나왔다.

정가혜가 갑자기 왜 맥주를 따는 것인지에 대해 두 사람이 반응하기도 전에 갑자기 얼굴에서 차가운 기운이 전해졌다.

그녀는 건방진 자세로 입에 물고 있던 병뚜껑을 뱉고는 소파에 있는 두 사람을 향해 맥주를 퍼부었다.

“3일 동안 당신들 비위 맞추느라고 엄청 힘들었네요. 이젠 시간 다 됐으니까 역할을 바꿔야죠.”

맥주는 레드 와인보다 더 자극적이었고 얼굴을 맞으니 불편하기 짝이 없었던 터라 안희연은 견딜 수가 없었다.

그녀는 얼굴을 가리고 정가혜를 향해 소리쳤다.

“천박하기는. 당장 멈추지 못해요?”

차갑게 피식 웃던 정가혜는 그들에게 맥주를 끼얹으면서 웨이터에게 계속해서 술을 오픈하라고 지시했다.

“오늘 아주 제대로 맥주 목욕을 시켜줄 테니까 머리까지 잘 씻기는지 한버 두고 보자고요.”

지난번에 서유와 영상 통화를 할 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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