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셔츠 풀어줘.”이승하의 뜻은 그저 셔츠 제일 윗단추를 풀어달라는 뜻이었다.하지만 서유는 그와 닿으면 큰일 날 것 같아 고개를 돌리며 거절했다.“알아서 해요.”그때 이승하의 하반신이 조금 움직였다. 그리고 그 작은 움직임에 서유는 귀까지 빨개졌다.“휴, 풀어주면 나 바로 내려줘야 해요.”이승하는 잔뜩 가라앉은 목소리로 알겠다고 대답했다.서유는 그 말을 듣고 나서야 손을 들어 그의 셔츠를 매만졌다. 그렇게 세 개 단추까지 풀어주고 나니 풀어헤쳐 진 셔츠 사이로 그의 가슴이 조금 드러났다. 흰 피부에 쇄골까지 드러난 그의 모습은 지독하게 섹시했다.그리고 시선을 위로 올리면 숨 막힐 정도로 잘생긴 이승하의 얼굴이 보였다.서유는 눈앞에 있는 남자가 지금 자신을 유혹하고 있는 듯한 느낌을 받았다.“보고 싶었어, 서유야.”이승하는 자신의 다리 위에 앉은 여자를 보며 이대로 그녀를 가지고 싶다는 생각이 들었다.서유 역시 그의 말과 눈빛에서 그 의미를 알아채고는 애써 못 들은 척 화제를 돌렸다.“이제 내려줘요.”이승하는 놓아주지 않았을뿐더러 그녀의 허리를 감싸던 손을 천천히 위로 가져가더니 그녀가 방심한 틈을 타 자기 쪽으로 확 끌어안았다.그 탓에 서유는 그를 덮치는 듯한 모양새가 되어버렸다.이대로 이승하가 가까워진 그녀의 입술을 탐하려는데 갑자기 관자놀이가 아파 왔다.고통은 계속 이어졌고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창백해져 입술까지 하얗게 되어버렸다.이승하는 서유를 풀어주고 그녀를 서둘러 소파 옆에 내려놓더니 이곳에서 나가려 자리에서 일어났다.하지만 한걸음 떼려는 찰나 머리가 더 격하게 아파져 자신도 모르게 소파 쪽으로 다시 넘어지고 말았다.“승하 씨!”이승하는 마침 서유의 쪽으로 쓰러졌다.서유는 당황한 얼굴로 그를 꼭 끌어안더니 고개를 숙이고 물었다.“왜 그래요? 어디 아파요?”지난번 나이트 레일에서도 그는 이렇게 갑자기 쓰러졌었다.이승하는 사랑하는 그녀가 괜히 걱정이라도 할까 봐 창백한 얼굴로 애써 웃음을 지어 보였다.“난 괜찮
심이준은 원래 금은방 사장님이 보내온 물건을 들고 서유에게 고마움도 전할 겸 한껏 자랑하려고 했었다.그런데 갑자기 이승하가 이곳에 나타날 줄이야. 이렇게 되면 이따 제대로 축하 파티를 즐길 수 없게 된다.심이준 뒤에 있던 디자이너들도 안으로 들어와 이승하의 얼굴을 보더니 얼굴에 걸렸던 웃음을 다 지워버렸다.그러고는 더 이상 안으로 들어오지도 못하고 서로서로 눈치를 봤다.“선배님, 먼저 들어가시죠.”선배라는 사람은 손사래를 치며 한사코 거절했다.“아니 아니, 후배님들 먼저 들어가시죠.”서유는 잔뜩 겁먹어 들어오지 못하는 디자이너들을 한번 보다가 다시 무서운 얼굴을 한 이승하를 보며 작은 목소리로 말했다.“먼저 나가 있을래요? 인사만 하고 바로 나올게요. 그리고 같이 병원 가요.”이승하는 고통을 참으려고 꽉 쥐던 손을 풀고 그녀의 머리카락을 매만져주며 답했다.“병원은 내일 가도 돼. 오늘은 네 옆에 있을 거야.”그는 말을 마치더니 냉랭한 얼굴로 사람들을 바라보았다.“들어오시죠.”고작 다섯 글자일 뿐인데 디자이너들은 육식 동물을 마주한 초식 동물처럼 움찔거리며 이승하와 최대한 멀리 떨어진 소파에 앉았다.반면 심이준은 무슨 배짱인지 바로 이승하의 맞은편에 앉아 먼저 인사를 건넸다.“이 대표님께서 저희 축하 파티에 얼굴을 다 비추시고, 이거 너무 영광인데요?”그는 억지로 웃음을 지어 보이며 애써 괜찮은 척했다. 물론 속으로는 지금 당장 이곳에서 떠나라고 외치고 있었다.이승하는 그가 무슨 생각을 하는지 훤히 보이는 듯 갑자기 손을 들어 자기 옆자리를 톡톡 두드리기 시작했다.“심이준 디자이너, 이쪽으로 와서 얘기 좀 하시죠?”심이준은 자신을 한입에 삼켜버릴 듯한 그의 눈빛에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제가 어떻게 감히... 얘기는 저희 사장님과 계속 얘기하시는 게 더 좋을 것 같네요. 참, 매니저한테 맡긴 물건이 있는데 지금 가서 가지고 오라고 해야겠네요. 그럼 이만!”심이준은 자리에서 일어나 후다닥 문 쪽으로 달려갔다. 하지만 마침 이곳
취향에 맞는 거라니?심이준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유를 바라보자 서유 역시 모르겠다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두 사람이 눈만 껌뻑이고 있을 때 소수빈은 화장을 예쁘게 한 남성 한 명을 안으로 들여보냈다.남자의 등장에 심이준이 눈살을 찌푸리며 이게 무슨 상황인지 이해하려고 할 때 소수빈이 손을 들어 정확히 그를 가리키며 말했다.“저 남자분 옆으로 가.”그러자 남자는 엉덩이를 요염하게 흔들며 심이준에게로 다가갔다.심이준은 털이 쭈뼛 서는 느낌에 속으로 욕을 내뱉으며 얼른 소파에서 일어나 도망가려고 했다. 하지만 소파에서 일어서기도 전에 남자의 괴력에 의해 다시 소파에 앉혀지고 말았다.남자가 가까이 다가오자 순간적으로 역한 향수 냄새가 코를 찔러왔다. 심이준은 눈살을 찌푸리며 자신을 꾹 누르고 있는 남자의 손을 보며 경고했다.“손 안 치워?”하지만 남자는 손을 치우기는커녕 다른 한 손으로 심이준의 얼굴을 부드럽게 쓸어내리기 시작했다.“오빠, 난 오늘 오빠 거야. 우리 한번 재밌게 놀아볼까?”“재밌게 놀기는 무슨...!”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남자가 이번에는 심이준의 볼에 뽀뽀를 해버렸다.이에 심이준의 몸은 뻣뻣하게 굳어버렸고 천천히 눈을 크게 뜨더니 소리를 질렀다.“X발! 지금 어디에다가 입술을 들이밀어?!”한편 먼 곳에 앉아있던 디자이너들은 그 모습을 목격하더니 속닥거리며 웃어 댔다.“심이준 디자이너에게 이런 취향이 있었을 줄은 몰랐네.”심이준은 그 속닥거림을 들었는지 더욱더 거세게 소리를 지르며 남자의 손에서 벗어나려고 발버둥 쳤다.‘이딴 게 어딜 봐서 내 취향이라는 거야! 차라리 여자를 데려오라고!’서유는 이런 광경을 처음 목격했던 터라 눈을 반짝이며 서로 엎치락뒤치락하는 두 사람을 흥미진진한 표정으로 바라보았다.한창 재밌게 구경하는데 갑자기 커다란 남자의 손이 그녀의 눈을 가리고 낮게 속삭여왔다.“이제 가자.”서유는 잠깐 움찔하더니 이내 이승하와 눈을 마주치며 고개를 저었다.“축하 파티 시작도 안 했는데 이렇게 가
이승하가 서유를 안고 엘리베이터에서 나가려는데 정가혜가 빠른 걸음으로 다가왔다.“잠깐만!”정가혜는 아까 트러블에 휘말린 서유를 걱정하느라 육성재가 이곳으로 온 목적에 관해 얘기하는 것을 깜빡해버렸다.“서유야. 육성재는 김초희 행방에 대해 알려고 온 거야.”서유는 서둘러 이승하에게 내려달라고 한 다음 정가혜에게 물었다.“육성재가 왜 언니 행방을 알려고 하는 건데?”‘혹시 육성재와 언니가 아는 사이였나?’“말투가 험악한 걸 봐서 좋은 목적은 아닌 것 같아.”“언니한테 원한이 있다는 거야?”정가혜가 고개를 절레절레 저었다.“그건 모르겠어. 네가 영국에서 돌아온 뒤 가장 먼저 만난 사람이 나여서 이곳으로 찾아온 것 같아. 그런데 말하는 걸 들어보니까 김초희가 죽은 건 모르는 것 같더라고, 그래서 김초희는 워싱턴으로 갔다고 했어. 속을지는 모르겠지만.”지현우는 김초희가 죽었다는 사실을 철저하게 숨겼기에 김초희와 친했던 사람들을 제외하고는 그녀의 죽음에 대해 아는 사람이 없다.그런데 육성재가 그 소식을 몰랐다는 건 친한 사람이 아니라는 뜻이다.‘정말 복수하려고 찾는 것일 수 있겠네...’정가혜는 이승하 쪽으로 시선을 돌렸다.“서유는 지금 김초희 신분으로 살고 있어서 위험해요.”이승하는 그 말뜻을 알아듣고 고개를 끄덕였다.“그럴 일 없게 하죠.”“그래요. 그럼 저도 안심하고 있을게요.”정가혜는 다시 시선을 돌려 서유의 어깨를 토닥였다.“난 그럼 일 봐야 해서 이만 가볼게. 조심히 들어가.”서유는 멀어져가는 정가혜에게 손을 흔들어 인사한 다음 이승하의 손에 이끌려 엘리베이터 안으로 들어갔다.이승하는 뒤에 따라온 소수빈을 향해 말했다.“육성재가 알아내지 못하게 깔끔하게 처리해.”소수빈은 고개를 끄덕였다.“네, 알겠습니다.”이승하는 지시를 내린 후 다시 서유를 바라보았다.“서유야, 네 신분은 내가 복구해뒀으니까 앞으로 김초희 말고 네 이름을 써도 돼.”이에 서유는 잠깐 멍하니 있다가 고개를 들어 그에게 말했다.“하지만 언니 프
소수빈은 운전석에 앉은 후 가장 먼저 차량 내부 가림막을 내리더니 천천히 시동을 걸었다.뒷좌석에 앉은 서유는 고개를 돌려 아직 얼굴이 창백한 이승하를 바라보며 물었다.“정말 괜찮은 거 맞아요?”“괜찮아.”“하지만...”이승하는 서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단번에 제 쪽으로 끌어당겨 무릎에 앉히더니 기다렸다는 듯이 가볍게 입을 맞췄다.서유는 두 팔로 그의 목을 감싸고는 고개를 숙인 채 그의 입맞춤을 가만히 받아주고만 있었다.이승하는 이대로는 부족한지 그녀의 입술을 두드리며 그다음 단계로 가려고 했지만 서유는 입술을 꾹 다문 채 그저 입을 맞대기만 했다.이에 그는 그녀의 등을 오가던 손을 허리 쪽으로 내리더니 자기 쪽으로 힘껏 끌어안았다.“키스할래 아니면 더 한 거 할래?”서유의 입술을 간지럽히던 그의 입술은 어느새 그녀의 귓불 쪽으로 와 잘근잘근 깨물었다.서유는 이에 몸을 움찔거리며 고개를 옆으로 돌렸다. 이승하는 그녀의 얼굴을 잡아 도망가지 못하게 만들고 난 뒤 낮게 속삭였다.“아무 말도 하지 않는다는 건 내 마음대로 해도 된다는 거지?”서유가 다급하게 둘 다 싫다 하려고 입을 벌리려는데 그의 뜨거운 입술이 또다시 귓불을 간지럽혔다.마치 전류에 감전이라도 된 듯한 짜릿한 느낌이 귓불을 타고 몸 전체에 흘렀다.서유는 이승하의 움직임에 정신을 못 차리며 고개를 돌리려고 애썼다. 하지만 이승하는 그 틈을 놓치지 않고 이번에는 그녀의 목에 입을 맞추더니 천천히 쇄골 쪽으로 내려가기 시작했다.그는 마치 자기 것에 표식이라도 하듯 천천히 쇄골을 깨물기 시작했다. 서유의 가녀린 몸은 그의 움직임에 서서히 녹아내렸고 몸도 점점 달뜨기 시작했다.이승하도 그런 그녀의 변화를 눈치채고 단번에 그녀를 시트 위에 눕혀버렸다.그러고는 고개를 숙여 입술을 집어삼키면서 그녀와 몸을 더 밀착시켰다.서유가 반쯤 풀린 눈으로 키스에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있을 때 그의 손이 그녀의 손을 잡더니 자신의 벨트 위로 가져갔다.그리고 조금 거친 숨소리를 내뱉으며 그
차량은 어느새 정가혜의 별장 앞에 도착했고 서유는 그의 관자놀이를 마사지해주던 손을 거두어들이며 말했다.“내일 나랑 같이 병원으로 가요.”이승하는 고개를 끄덕인 후 그녀의 허리를 잡고 몇 번이나 더 입을 맞춘 뒤에야 천천히 놓아주었다.“잘 자.”“조심해서 가요.”서유는 차에서 내려 집으로 들어가려다가 갑자기 고개를 돌렸다.반쯤 내려온 차창 안으로 완벽에 가깝다 해도 될 만한 남자의 얼굴이 드러났다.서유는 그 얼굴에 한 번 웃어주고 다시 집으로 들어갔다. 그리고 차 안에 있는 남자는 그녀의 모습이 눈앞에서 사라지고서야 시트에 털썩 누웠다.“진통제.”소수빈은 가림막을 올리고 이승하에게 진통제를 건네주었다. 이승하는 약을 건네받고는 바로 입안에 털어 넣었다.이승하는 이제 창백한 것을 떠나 툭 건드리면 그대로 부서져 버릴 것 같았다.“대표님, 대체 언제부터 두통에 시달렸던 겁니까?”이승하의 형도 죽기 전 두통으로 고생했던 것이 떠오른 소수빈이 걱정 어린 말투로 물었다.이승하는 한 손으로 머리를 마사지하더니 차가운 눈으로 그를 바라보았다.“내가 두통이 있다는 사실은 누구한테도 알리지 마.”소수빈은 전처럼 고분고분 알겠다 하지 않고 불안한 표정으로 되물었다.“혹시 3년 전에 수면제를 너무 많이 복용하고 또 요즘은 제대로 주무시지 못해서 이런 거 아닙니까?”18세라는 나이에 이씨 가문의 실권자 자리에 올랐던 이승하의 형은 과로로 죽기 전 지금의 이승하와 마찬가지로 두통 증상을 보였다.이승하는 어릴 때부터 심한 매질을 당해 그때부터 몸에 상처를 달고 살았다. 그런 몸으로 서유가 죽었다고 들었을 때는 자해시도를 했으며 송사월을 구하겠다고 대신 총상도 입어 하마터면 병상에서 생을 마감할 뻔했다.어찌어찌 목숨을 부지하고 나서는 술과 담배에 의지했고 수면제 없이는 생활을 제대로 하지 못했으며 잠을 자지 않고 일만 하는 날도 많았다.그리고 서유가 돌아온 뒤에는 이제 모든 게 끝나버렸다고 생각해 몇 번이나 위에 출혈이 있기도 했었다.또한, 워싱턴에
서유는 간밤에 잠을 조금 설쳤다. 그 탓인지 다음 날 아침에 깨어나서도 컨디션이 좋지 않았다.그녀는 스트레칭하며 정신을 차리더니 침대에서 내려온 후 씻고 빠르게 나갈 준비를 마쳤다. 이승하를 데리고 병원에 가려고 문을 나서보니 이승하가 벌써 도착해 있었다.그는 핏이 딱 떨어지는 양복에 선글라스를 쓰고 있었다. 그리고 손에는 장미꽃을 들고 차 문 옆에 서 있었다.문이 열리는 소리에 고개를 돌린 이승하의 얼굴에는 단번에 예쁜 미소가 걸렸다.“서유야.”서유 역시 그를 보고 예쁘게 미소를 지었다.두 사람은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처럼 서로를 향해 발걸음을 옮겼다. 이승하는 그녀에게 손에 든 꽃다발을 건넸다.“너 주려고 제일 예쁜 거로 골랐어.”서유는 꽃을 받아 들고 남자를 보더니 자기도 모르게 손을 내밀어 그의 선글라스를 벗겼다.예쁘다고 할 정도로 반짝이던 그의 눈이 지금은 잔뜩 충혈된 채 빛이 바랜 것처럼 보였다.“눈이...”이승하는 손으로 서유의 두 눈을 살포시 가리더니 답했다.“요즘 잠을 제대로 못 자서 그래.”그러고는 그녀의 손에 들린 선글라스를 도로 쓰며 아무 일도 없다는 듯이 그녀의 손을 잡았다.서유는 맞잡아 오는 그의 손을 꽉 잡았다.“지금 당장 병원으로 가요.”이승하는 고개를 끄덕이고 그녀를 차에 태웠다. 그리고 늘 그랬듯 안전벨트를 해주고 간단한 조식도 먹인 뒤에야 시동을 걸었다.주서희는 해외 세미나로 자리를 비운 상태라 진찰은 부원장이 진행했다.부원장은 가장 먼저 눈을 검사하더니 수면 부족으로 충혈된 것이니 수면만 잘 취하게 되면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했다.그다음으로 머리 MRI를 찍게 하고는 약 반 시간 정도 시간이 흐르고 나서야 밖으로 나왔다.서유는 부원장이 나오는 걸 보더니 다급하게 물었다.“무슨 문제 있는 건 아니죠?”부원장은 이승하의 눈치를 한번 살피더니 대답했다.“편두통일 뿐이네요. 큰 문제는 없습니다.”서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다가 뭔가 생각난 듯 다시 한번 그를 향해 물었다.“보고서는요?”“
이승하가 전화를 끊은 뒤 멀끔하게 차려입은 택이가 차에 올랐다.“대표님, 이시원 씨의 사인이 뭐였는지 조사해왔습니다.”이승하는 휴대폰을 집어넣더니 조금 피곤한 얼굴로 택이에게 계속 얘기하라는 눈빛을 보냈다.“확실히 과로가 맞더라고요. 이시원 씨를 보살피던 의사와 간병인, 접촉했던 모든 사람 그리고 사용된 약까지 전부 조사한 결과 의심되는 정황은 아무것도 없었습니다.”이승하는 미간을 찌푸리더니 그를 향해 물었다.“연지유가 거짓말 한 거다?”“네, 지금으로 봐서는 아마 목숨을 부지하려고 그런 것 같습니다.”이승하는 과거 이야기를 잠깐 떠올리다가 머리가 아픈지 택이에게 이만 내리라는 듯 손을 휘적거렸다.택이는 분부대로 차에서 내리려다가 뭔가 떠오른 듯 물었다.“대표님, 당시 이시원 씨의 부검은 진행하지 않으신 거죠?”이승하는 관자놀이를 주무르며 가볍게 고개를 끄덕였다. 이시원의 시체를 있는 그대로 보존하고 싶다는 생각 때문에 이씨 집안은 물론이고 박씨 집안도 부검은 반대했었다.택이는 차 문을 잡던 손에 힘을 더했다.‘부검을 안 했으니 역시 비슷한 사례로 사인을 확정 지을 수밖에 없겠네.’솔직히 택이는 이시원의 죽음에 말 못 할 비밀이 있는 건 아닌가 하는 생각도 잠깐 들었다. 하지만 이승하가 피곤해하는 모습을 보고 아무 근거도 없는 소리를 하게 되면 괜히 신경 쓰이게 할 것 같아 입을 닫았다.제대로 조사를 마치고 실질적인 증거라도 가져오고 나서 얘기해도 늦지 않다.택이가 내리고 나니 옆에서 대기하던 소수빈이 빠르게 올라탔다.“대표님, 병원에서는 뭐라고 합니까?”이승하는 방금 병원에서 받은 보고서를 소수빈에게 던졌다.“직접 봐.”소수빈은 보고서를 하나부터 열까지 몇 번이나 보고 나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다행입니다.”이승하가 힐끗 앞을 바라보니 평소 잘 웃지 않던 소수빈의 얼굴에 감출 수 없는 미소가 걸려있었다.“육성재 쪽은 어떻게 됐어?”“잘 처리했습니다. 아마 지금쯤 막막해할 겁니다.”워싱턴.육성재는 현재 창문 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