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는 링거 폴대를 밀고 자기 병실로 향했다. 정가혜도 마침 죽을 사 들고 돌아오는 길이었다. 그러다 자리에서 일어난 그녀를 보고는 다급하게 걸어왔다.“열 내린 지 얼마나 됐다고 벌써 이렇게 돌아다녀? 죽고 싶어?”정가혜가 그녀를 침대에 눌러 앉히더니 엄숙한 표정으로 한 소리 했다.“심장병 있는 거 알면서 조심해야지.”서유는 마음이 따듯해져 웃었다.“나 결과 가지러 갔었어.”정가혜가 죽 그릇을 열며 말했다.“내가 가서 가져오면 되지, 뭐가 급하다고 돌아다녀.”정가혜는 이렇게 말하더니 손을 내밀었다.“결과는? 나도 좀 보자.”정가혜를 속이고 싶지 않았지만 어쩔 수 없었기에 서유는 눈을 깜빡이며 말했다.“선생님께 결과를 확인받아야 할 것 같아서 갖고 갔다가 거기 흘리고 나왔나 봐.”이 말을 들은 정가혜는 별다른 의심 없이 그저 서유의 몸 상태만 걱정했다.“뭐라셔?”서유가 느긋하게 대답했다.“그냥 채혈인데 뭐, 별거 없었어.”정가혜는 죽을 젓던 젓가락을 내려놓으며 진지한 표정으로 서유를 바라봤다.“너는 일반인과는 달라. 심장 질환이 있어서 채혈은 매우 중요한 검사라고.”서유가 웃으며 말했다.“알겠어. 의사 선생님이 별문제 없대. 심장도 정상이래. 걱정하지 마.”정가혜는 그제야 시름이 놓이는지 먹기 좋게 식은 죽을 서유에게 건네주었다.“네가 제일 좋아하는 고기죽이야. 일단 좀 먹어.”서유는 죽을 건네받아 한 숟가락씩 입에 넣었다.정가혜는 핼쑥한 서유를 보며 무언가 말하려다 다시 삼켰다.아까 잘못 들은 게 아니라면 서유가 외친 이름은 송사월이다.그 소년은 서유에게 금지어나 다름없었다. 오랜 시간이 지났는데 그녀가 꿈에서 송사월이란 이름을 부른 건 처음이었다.서유에 묻고 싶었다. 아직 마음속 깊은 곳에 송사월을 품고 있는 건 아닌지 말이다. 하지만 이는 서유의 상처를 다시 드러내는 거나 다름없었기에 정가혜는 한참을 고민하다가 그냥 가만히 있기로 했다. 송사월은 이미 죽은 사람이고 지금 얘기해봤자 그냥 고민만 늘어날 뿐이다.
하룻밤 병원에 입원해 있으니 서유의 고열도 완전히 내려갔다. 그냥 몸이 아직 허약할 뿐 더는 병원에서 지낼 필요가 없었다.서유는 정가혜에게 병원비를 환불받으라 하고는 퇴원 절차를 받고 집으로 돌아갔다.정가혜는 집에 도착하고부터 주방에서 분주하게 돌아쳤다. 서유가 도와주려고 해도 정가혜는 안 된다고 했다.“들어가서 푹 쉬어. 여기는 내가 알아서 할게.”정가혜가 손을 흔들며 서유를 주방에서 밀어냈다.서유는 열은 내리긴 했으나 심부전은 더 악화했다.가슴 쪽이 너무 아팠고 머리도 어지러웠다. 혈액 공급과 산소 공급이 원활하지 않아 온몸에 힘이 빠졌고 제대로 서 있기조차 힘들었다.이런 상태로 정가혜를 도와줄 수는 없었기에 말을 듣고 겨우 몸을 가눠 방으로 향했다.침대에 누워 깊은 잠에 들려는데 머리맡에 두었던 핸드폰에 알림이 하나 떴다. 그녀가 늘 보던 연예 뉴스 계정이었다.이승하를 만나면서 그의 일정을 파악하기 어려웠기에 가끔 뉴스에 나오는 걸 알고 연예 뉴스 계정을 몇 개 팔로우했었다.핸드폰을 열어 확인해 보니 이승하가 연지유를 안고 병원 응급실로 향하는 파파라치 컷에 둘이 다시 만난다는 내용이 곁들어져 있었다.서유는 조금씩 아래로 내렸다. 댓글은 모두 두 사람의 외모와 집안을 칭찬하면서 잘 어울리는 선남선녀라고 했다.서유도 그렇게 생각했다. 남자는 도도하면서도 귀티 나고 여자는 우아하면서도 대범하니 잘 어울리는 건 사실이었다.서유는 씁쓸하게 웃으며 뉴스 창을 끄고 핸드폰을 내려놓으려는데 미처 확인하지 못한 메시지 한 통이 보였다.메시지를 열어보니 낯선 번호였다. 내용은 이러했다.「병원은 왜 간 거야?」서유는 멈칫했다.‘이 사람이 어떻게 알고 있지?’그녀는 시간을 확인했다. 어젯밤에 보내온 메시지였다. 마침 그녀가 병원에서 눈을 뜬 시간과 맞물렸다.서유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그 메시지를 여러 번 확인했다.어제 병원에서 마주친 사람이라고는 이승하밖에 없는데, 설마 그가 보낸 건 아닐지 하는 생각이 들었다.서유는 떨리는 손으로
깊은 잠이 들어 비몽사몽인데 핸드폰이 또다시 진동해 대기 시작했다.서유는 피곤한 듯 힘겹게 눈을 뜨고는 간신히 몸을 일으켜 전화를 받았다.“자기야.”임태진의 목소리가 수화기 너머로 들렸다.“어제 고열이 났다고 들었는데 지금은 어때?”서유는 임태진의 목소리를 듣고 얼마 남지 않은 정신머리를 다시 끄집어냈다.오늘따라 임태진이 너무 이상했다. 어떻게 잠자리를 가질지만 생각하더니 사람이 왜 갑자기 그녀의 몸 상태를 걱정하는지 의문이었다.‘문자에 전화에, 시한부라는 걸 알고 놓아주려는 건가?’서유는 머릿속이 복잡했지만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덤덤하게 말했다.“다 나았어요.”“나았다니 됐어.”임태진은 성의 없게 대꾸하더니 다급하게 물었다.“근데 아까 나한테 전화한 거, 혹시 그 일 마무리한 거야?”역시나 서유의 예상에 적중했다. 임태진은 그녀의 몸 상태를 걱정한 게 아니라 이걸 물어보고 싶었던 거다.그녀는 침대에서 몸을 일으켜 한 손으로 깨질 것 같은 머리를 부여잡고 차가운 목소리로 말했다.“대표님 찾아갔는데 고민해 보겠다고 했어요.”면피를 위해 그녀가 그날 둘러댄 핑계는 불법 촬영한 동영상으로 이승하를 협박해 프로젝트를 손에 넣겠다는 것이었다.말은 그렇게 했지만 이는 임태진을 속이기 위한 거짓말이라는 걸 임태진은 몰랐다.하지만 그녀에게 동영상 따위는 없었고 그녀가 이승하를 찾아갈 일도 없었다. 그러니 이승하를 협박해 프로젝트를 따내는 건 더 불가능했다.그녀는 이 핑계로 계속 임태진을 계속 기다리게 할 심산이었다.정가혜가 결혼을 잘 마치면 그녀는 임태진을 찾아가 끝장을 낼 것이다.그녀는 이미 생각을 다 정리한 상태다. 그녀의 목숨으로 정가혜의 평안함을 바꾸겠다고 말이다.임태진은 많이 안달 난 상태였다.“입찰 다음 달 10일이면 시작이야. 언제까지 고민한다는 거야?”서유가 미간을 찌푸렸다. 정가혜의 결혼식은 다음 달 9일이었다.정가혜가 결혼을 마치면 임태진을 찾아가 끝장낼 생각이었는데 입찰이 10일이라니, 시간이 너무 촉박했다
다음 달 9일까지 아직 열흘 남짓하게 남아있다.서유는 매일 다른 병원으로 가서 약을 받았다. 그리고 수면제 성분이 있는 알약들을 모으기 시작했다.그녀는 이 약들을 잘 넣어두고 나니 테이블에 놓인 박스가 보였다.그제야 임태진이 준 드레스와 목걸이를 아직 돌려주지 않은 게 생각나 얼른 핸드폰으로 퀵 서비스를 불렀다.임태진에게 복수하려는 건 맞지만 자기 물건이 아닌 건 무조건 돌려줄 것이다.얼마 지나지 않아 퀵 서비스가 도착했고 퀵을 보내고 나서야 그녀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임태진은 돌려보낸 드레스와 목걸이를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서유는 정말 달랐다. 다른 여자라면 진작에 이 명품을 팔아서 돈으로 바꿨을 텐데 그녀는 오히려 돌려줬으니 말이다.이번에는 어려운 여자를 만난 것 같았다. 하지만 임태진은 이내 괜찮다고 생각했다. 프로젝트만 따면 언제든지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서유는 집에서 쉬고 있는데 정가혜의 전화를 받았다.맞춤 제작한 드레스가 나왔는데 같이 웨딩숍으로 가서 입어보자고 했다.서유는 얼른 피곤한 몸을 가누며 정가혜가 말한 웨딩숍으로 향했다.정가혜의 약혼남 강은우도 와 있었다. 그녀가 들어오자 강은우는 인사를 건넸다.서유도 예의 바르게 웃으며 물었다.“가혜는요?”강은우는 턱으로 피팅룸을 가리키며 말했다.“안에서 드레스 피팅하는 중이에요. 일단 좀 앉아요.”서유는 강은우와 아는 사이라 내외하지 않고 바로 소파에 앉았다.사실 그녀는 저번에 고열을 앓은 뒤부터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서 있기조차 힘들어했다.이는 심기능 장애 말기 환자가 보이는 증상이기도 했다. 혈액을 펌프해주는 기능이 감퇴하면서 대량의 혈액이 체순환과 폐순환에서 누적되면 대뇌로 공급되는 혈액량이 줄어들고 이는 반대로 뇌세포에 혈액 부족과 산소 부족을 야기한다.혈액과 산소가 부족하면 쉽게 피곤하고 잠을 탐하게 된다.그저 소파에 앉아 몇 분 기다렸을 뿐인데 그녀는 턱을 괴고 깊은 잠에 빠졌다.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정가혜가
서유는 정가혜가 걱정할까 봐 얼른 위로했다.“네 결혼식 준비하느라고 일부러 뺐지.”정가혜가 미간을 찌푸리며 한 소리 했다.“말라서 더 빠질 살도 없구먼 뭐. 내 말 들어. 앞으로 끼니마다 밥 세 공기씩 먹기다.”강은우가 풉하고 웃음을 터트렸다.“끼니마다 밥 세 공기면 서유 씨 얼마나 뚱뚱해지겠어.”정가혜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우리 서유는 살쪄도 예뻐.”강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그래. 우리 가혜 말이 다 맞아. 그럼, 이제 나와 메이크업 받으러 가도 되지?”강은우의 말에 정가혜는 서유에게 잔소리하던 것도 잊고 그녀를 끌고 분장실로 들어갔다.웨딩숍에서 결혼식에 할 메이크업을 받아보고 호텔로 향해 결혼식 절차를 점검했다.모든 일정이 끝나고 강은우는 정가혜와 서유를 데리고 식당으로 가서 식사한 뒤 집에 바래다줬다.정가혜는 집에 돌아와 조금 쉬다가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강은우가 신혼집을 장만했기에 정가혜는 결혼식이 끝나면 신혼집으로 들어가게 된다.“서유야, 내가 신혼집 들어가면 이 집은 너한테 맡길게. 우리 집 잘 지켜야 해~”정가혜는 서유가 방이 두 개인 이 집을 지키고 있으면 여기가 친정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그래.”서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정가혜의 옷을 건네받아 하나씩 잘 정리했다.정가혜는 옷장에서 자주 입는 옷들을 꺼냈다. 이 옷은 여기에 남겨둘 생각이었다.강은우와 결혼했어도 서유 보러 자주 돌아올 셈이었다.서유는 정가혜의 생각을 알아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옷을 다 개어 박스에 넣은 서유는 웃으며 정가혜에게 말했다.“신혼 선물 하나 준비했어.”정가혜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뭔데?”“잠깐만 기다려봐.”서유는 자기 방으로 가서 서랍을 열더니 은행카드 한 장을 꺼내 정가혜에게 건네주었다.“내가 널 위해 모은 혼수야. 가져가서 필요할 때 써.”서유는 지금까지 월급을 여러 등분으로 나누었다.그래서 일부는 이승하에게, 일부는 정가혜에게, 나머지는 일상적인 소비였다.매달
서유가 상자를 닫자 정가혜는 다급하게 한발 나서며 이를 막았지만 서유의 고집을 이기지는 못했다.정가혜는 난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서유야, 너 왜 이렇게 고집이 세?”서유는 상자를 잘 닫아놓고는 뒤를 돌아 정가혜의 팔을 잡고 애교를 부렸다.“어릴 때부터 네가 나 돌봐왔잖아. 근데 난 아무것도 해준 게 없네. 그냥 동생이 언니 생각해서 준비했다고 생각해.”정가혜는 그래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서유가 평소에 어렵게 지내는 걸 알면서 어떻게 이 돈을 받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하지만 서유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 정가혜도 하는 수 없이 일단 그 카드를 건네받았다.결혼식 날 은행카드를 다시 서유의 방에 갖다 둘 생각이었다.서유가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은 다른 사람 그 누구도 가져갈 수 없다.둘은 물건을 좀 더 정리하다가 같은 방 같은 침대에 누웠다.어릴 때처럼 팩을 붙이고 누워 미래를 상상했다.정가혜는 서유의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승하와 잘 헤어졌다고도 했다. 그런 남자는 신분이 너무 높으니 일반 사람을 아내로 받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유에게 일 잘하는 평범한 직장인을 만날 것을 건의했다. 신분도 맞고 돈도 잘 벌면 그때부터 돈 걱정을 안 해도 되니 얼마나 좋냐고 했다.그리고 이 집은 둘의 혼전 재산이니 아무리 각자 가정을 꾸렸다 해도 못 살겠으면 그 누구든 언제든 여기로 이사와도 된다고 했다.이 집은 둘의 든든한 방패막이와도 같았다. 둘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이다. 결혼 전에 구입한 부동산이니 두려워할 것도 없었다.서유는 일일이 다 대답하며 최대한 정가혜가 수상함을 눈치채지 않게 노력했다.정가혜의 팔을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서유는 너무 행복했다.이렇게 그녀를 아껴주는 언니가 있으니 하늘이 예정보다 빨리 그녀의 목숨을 앗아간다 해도 아쉬울 게 없었다.서유는 어릴 때처럼 정가혜를 안고 아무 걱정 없이 단잠에 빠졌다.며칠 이래 제일 푹 잔 밤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빨리 흘러 어느새 정가혜의 결혼식 날이 되
출입구 쪽에서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 열댓 명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임태진은 양복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당당하게 들어섰다.결혼식장 안을 가득 메운 하객들은 앞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고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정가혜와 강은우는 약간 당황한 듯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고 서유는 임태진을 보는 순간 얼굴이 갑자기 하얗게 질렸다. 그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결혼식장에 들이닥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임태진이 결혼식을 망칠까 봐 서유는 하객석에서 일어나 재빨리 그를 향해 걸어갔다.“임 대표님.”서유는 무대 방향으로 걸어가던 임태진을 급히 멈춰 세우며 말했다.“계약서에 서명했으니 오늘 밤에 보내드릴게요.”임태진은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매혹적인 샴페인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는 순식간에 회흑색 눈동자에 욕망의 불빛이 번뜩였다.그는 한 팔로 서유의 허리를 감싸고 그녀를 품에 끌어안으며 어루만졌다.“이미 사인을 했으면 진작에 주지 그랬어?”“임 대표님, 결혼식이 순조롭게 끝나야 드리죠. 그렇지 않으면 만약 대표님이 계약서를 가져가 놓고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제 친구의 결혼식을 망치면 어떡해요?”서유는 역겨운 기분을 애써 참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나 못 믿는 거야?”“네.”서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임 대표님, 계약서를 원하시면 저녁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그녀는 비록 연한 화장을 했지만 표정은 조금 딱딱해서 아주 단호해 보였다.그 말을 들은 임태진은 웃었다.“네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알아?”그러자 서유는 휴대폰을 꺼내 파일을 열고 미리 만들어둔 가짜 계약서를 꺼내 임태진에게 보여줬다.“임 대표님, 잘 보세요. 이 계약서는 JS 그룹이 작성한 계약서인 데다가 도장이 찍혀 있으니 가짜일 리가 없어요.”대표님 사무실에서 그녀의 주된 업무는 협력사를 접대하고 계약 문서를 관리하는 것이었다.JS 그룹은 동아 그룹의 가장 큰 협력사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계약서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이 떠나자마자 결혼식장을 가득 채운 하객들은 서유를 가리키며 어쩌다가 저런 사람이랑 엮이게 됐냐며 수군거렸다.하지만 서유는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정가혜와 강은우를 바라보았다.“서유야, 저 사람은 누구야?”정가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유를 바라보았고, 직감적으로 저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서유는 미소를 지은 채 정가혜의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태안 그룹의 대표님인데, 중요한 계약 서류를 부탁하러 오셨어.”그녀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정가혜의 웨딩드레스에는 작은 마이크가 달려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마이크에서 목소리가 나왔다.하객들은 서유의 설명을 듣고 정가혜의 친구가 태안 그룹의 대표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강은우의 본가는 서울 외곽에 있었기 때문에 강은우 측 하객들은 거물들을 잘 알지 못했지만 서울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의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었다.서유가 이렇게 설명한 이유는 사람들의 의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였다.아니면 강은우의 친척들은 신부 정가혜의 친구가 볼품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어쨌든 끼리끼리 논다는 말은 한 사람의 평판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서유는 정가혜가 무시당하지 않도록 명확하게 설명해야 했다.하객들의 의구심은 풀렸지만 정작 신부 정가혜는 마음이 불안했는데, 이 일이 서유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서유의 말대로 계약서만 가지면 되는 일이라면 태안 그룹의 대표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왔을까?결혼식을 망치러 온 것처럼 보이는 그가 심지어 서유의 허리를 팔로 감싸고 사방을 더듬은 이유는 무엇일까?외설적으로 보이는 그의 움직임은 서유에게 구애하는 것이 아니라 강요하고 협박하는 것처럼 보였다.정가혜는 생각할수록 마음이 놓이지 않아 웨딩드레스에 고정되어 있던 마이크를 떼어내고 서유의 손을 잡아당기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서유야, 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