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유

제28화

작가: 알라리
다음 달 9일까지 아직 열흘 남짓하게 남아있다.

서유는 매일 다른 병원으로 가서 약을 받았다. 그리고 수면제 성분이 있는 알약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녀는 이 약들을 잘 넣어두고 나니 테이블에 놓인 박스가 보였다.

그제야 임태진이 준 드레스와 목걸이를 아직 돌려주지 않은 게 생각나 얼른 핸드폰으로 퀵 서비스를 불렀다.

임태진에게 복수하려는 건 맞지만 자기 물건이 아닌 건 무조건 돌려줄 것이다.

얼마 지나지 않아 퀵 서비스가 도착했고 퀵을 보내고 나서야 그녀는 마음이 한결 가벼워지는 것 같았다.

임태진은 돌려보낸 드레스와 목걸이를 보고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서유는 정말 달랐다. 다른 여자라면 진작에 이 명품을 팔아서 돈으로 바꿨을 텐데 그녀는 오히려 돌려줬으니 말이다.

이번에는 어려운 여자를 만난 것 같았다. 하지만 임태진은 이내 괜찮다고 생각했다. 프로젝트만 따면 언제든지 자기 것으로 만들 수 있다고 자신했다.

서유는 집에서 쉬고 있는데 정가혜의 전화를 받았다.

맞춤 제작한 드레스가 나왔는데 같이 웨딩숍으로 가서 입어보자고 했다.

서유는 얼른 피곤한 몸을 가누며 정가혜가 말한 웨딩숍으로 향했다.

정가혜의 약혼남 강은우도 와 있었다. 그녀가 들어오자 강은우는 인사를 건넸다.

서유도 예의 바르게 웃으며 물었다.

“가혜는요?”

강은우는 턱으로 피팅룸을 가리키며 말했다.

“안에서 드레스 피팅하는 중이에요. 일단 좀 앉아요.”

서유는 강은우와 아는 사이라 내외하지 않고 바로 소파에 앉았다.

사실 그녀는 저번에 고열을 앓은 뒤부터 몸에 힘이 들어가지 않았고 서 있기조차 힘들어했다.

이는 심기능 장애 말기 환자가 보이는 증상이기도 했다. 혈액을 펌프해주는 기능이 감퇴하면서 대량의 혈액이 체순환과 폐순환에서 누적되면 대뇌로 공급되는 혈액량이 줄어들고 이는 반대로 뇌세포에 혈액 부족과 산소 부족을 야기한다.

혈액과 산소가 부족하면 쉽게 피곤하고 잠을 탐하게 된다.

그저 소파에 앉아 몇 분 기다렸을 뿐인데 그녀는 턱을 괴고 깊은 잠에 빠졌다.

다행히 얼마 지나지 않아 정가혜가
잠긴 챕터
GoodNovel에서 계속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여 앱을 다운로드하세요

관련 챕터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29화

    서유는 정가혜가 걱정할까 봐 얼른 위로했다.“네 결혼식 준비하느라고 일부러 뺐지.”정가혜가 미간을 찌푸리며 한 소리 했다.“말라서 더 빠질 살도 없구먼 뭐. 내 말 들어. 앞으로 끼니마다 밥 세 공기씩 먹기다.”강은우가 풉하고 웃음을 터트렸다.“끼니마다 밥 세 공기면 서유 씨 얼마나 뚱뚱해지겠어.”정가혜가 콧방귀를 끼며 말했다.“우리 서유는 살쪄도 예뻐.”강은우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그래, 그래. 우리 가혜 말이 다 맞아. 그럼, 이제 나와 메이크업 받으러 가도 되지?”강은우의 말에 정가혜는 서유에게 잔소리하던 것도 잊고 그녀를 끌고 분장실로 들어갔다.웨딩숍에서 결혼식에 할 메이크업을 받아보고 호텔로 향해 결혼식 절차를 점검했다.모든 일정이 끝나고 강은우는 정가혜와 서유를 데리고 식당으로 가서 식사한 뒤 집에 바래다줬다.정가혜는 집에 돌아와 조금 쉬다가 물건을 정리하기 시작했다.강은우가 신혼집을 장만했기에 정가혜는 결혼식이 끝나면 신혼집으로 들어가게 된다.“서유야, 내가 신혼집 들어가면 이 집은 너한테 맡길게. 우리 집 잘 지켜야 해~”정가혜는 서유가 방이 두 개인 이 집을 지키고 있으면 여기가 친정이 된 것 같아 마음이 놓였다.“그래.”서유는 웃으며 고개를 끄덕이더니 정가혜의 옷을 건네받아 하나씩 잘 정리했다.정가혜는 옷장에서 자주 입는 옷들을 꺼냈다. 이 옷은 여기에 남겨둘 생각이었다.강은우와 결혼했어도 서유 보러 자주 돌아올 셈이었다.서유는 정가혜의 생각을 알아챘지만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옷을 다 개어 박스에 넣은 서유는 웃으며 정가혜에게 말했다.“신혼 선물 하나 준비했어.”정가혜가 부드럽게 웃으며 물었다.“뭔데?”“잠깐만 기다려봐.”서유는 자기 방으로 가서 서랍을 열더니 은행카드 한 장을 꺼내 정가혜에게 건네주었다.“내가 널 위해 모은 혼수야. 가져가서 필요할 때 써.”서유는 지금까지 월급을 여러 등분으로 나누었다.그래서 일부는 이승하에게, 일부는 정가혜에게, 나머지는 일상적인 소비였다.매달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30화

    서유가 상자를 닫자 정가혜는 다급하게 한발 나서며 이를 막았지만 서유의 고집을 이기지는 못했다.정가혜는 난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서유야, 너 왜 이렇게 고집이 세?”서유는 상자를 잘 닫아놓고는 뒤를 돌아 정가혜의 팔을 잡고 애교를 부렸다.“어릴 때부터 네가 나 돌봐왔잖아. 근데 난 아무것도 해준 게 없네. 그냥 동생이 언니 생각해서 준비했다고 생각해.”정가혜는 그래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서유가 평소에 어렵게 지내는 걸 알면서 어떻게 이 돈을 받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하지만 서유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 정가혜도 하는 수 없이 일단 그 카드를 건네받았다.결혼식 날 은행카드를 다시 서유의 방에 갖다 둘 생각이었다.서유가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은 다른 사람 그 누구도 가져갈 수 없다.둘은 물건을 좀 더 정리하다가 같은 방 같은 침대에 누웠다.어릴 때처럼 팩을 붙이고 누워 미래를 상상했다.정가혜는 서유의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승하와 잘 헤어졌다고도 했다. 그런 남자는 신분이 너무 높으니 일반 사람을 아내로 받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유에게 일 잘하는 평범한 직장인을 만날 것을 건의했다. 신분도 맞고 돈도 잘 벌면 그때부터 돈 걱정을 안 해도 되니 얼마나 좋냐고 했다.그리고 이 집은 둘의 혼전 재산이니 아무리 각자 가정을 꾸렸다 해도 못 살겠으면 그 누구든 언제든 여기로 이사와도 된다고 했다.이 집은 둘의 든든한 방패막이와도 같았다. 둘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이다. 결혼 전에 구입한 부동산이니 두려워할 것도 없었다.서유는 일일이 다 대답하며 최대한 정가혜가 수상함을 눈치채지 않게 노력했다.정가혜의 팔을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서유는 너무 행복했다.이렇게 그녀를 아껴주는 언니가 있으니 하늘이 예정보다 빨리 그녀의 목숨을 앗아간다 해도 아쉬울 게 없었다.서유는 어릴 때처럼 정가혜를 안고 아무 걱정 없이 단잠에 빠졌다.며칠 이래 제일 푹 잔 밤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빨리 흘러 어느새 정가혜의 결혼식 날이 되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31화

    출입구 쪽에서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 열댓 명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임태진은 양복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당당하게 들어섰다.결혼식장 안을 가득 메운 하객들은 앞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고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정가혜와 강은우는 약간 당황한 듯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고 서유는 임태진을 보는 순간 얼굴이 갑자기 하얗게 질렸다. 그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결혼식장에 들이닥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임태진이 결혼식을 망칠까 봐 서유는 하객석에서 일어나 재빨리 그를 향해 걸어갔다.“임 대표님.”서유는 무대 방향으로 걸어가던 임태진을 급히 멈춰 세우며 말했다.“계약서에 서명했으니 오늘 밤에 보내드릴게요.”임태진은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매혹적인 샴페인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는 순식간에 회흑색 눈동자에 욕망의 불빛이 번뜩였다.그는 한 팔로 서유의 허리를 감싸고 그녀를 품에 끌어안으며 어루만졌다.“이미 사인을 했으면 진작에 주지 그랬어?”“임 대표님, 결혼식이 순조롭게 끝나야 드리죠. 그렇지 않으면 만약 대표님이 계약서를 가져가 놓고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제 친구의 결혼식을 망치면 어떡해요?”서유는 역겨운 기분을 애써 참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나 못 믿는 거야?”“네.”서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임 대표님, 계약서를 원하시면 저녁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그녀는 비록 연한 화장을 했지만 표정은 조금 딱딱해서 아주 단호해 보였다.그 말을 들은 임태진은 웃었다.“네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알아?”그러자 서유는 휴대폰을 꺼내 파일을 열고 미리 만들어둔 가짜 계약서를 꺼내 임태진에게 보여줬다.“임 대표님, 잘 보세요. 이 계약서는 JS 그룹이 작성한 계약서인 데다가 도장이 찍혀 있으니 가짜일 리가 없어요.”대표님 사무실에서 그녀의 주된 업무는 협력사를 접대하고 계약 문서를 관리하는 것이었다.JS 그룹은 동아 그룹의 가장 큰 협력사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계약서를 가지고 있었고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32화

    그들이 떠나자마자 결혼식장을 가득 채운 하객들은 서유를 가리키며 어쩌다가 저런 사람이랑 엮이게 됐냐며 수군거렸다.하지만 서유는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정가혜와 강은우를 바라보았다.“서유야, 저 사람은 누구야?”정가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유를 바라보았고, 직감적으로 저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서유는 미소를 지은 채 정가혜의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태안 그룹의 대표님인데, 중요한 계약 서류를 부탁하러 오셨어.”그녀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정가혜의 웨딩드레스에는 작은 마이크가 달려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마이크에서 목소리가 나왔다.하객들은 서유의 설명을 듣고 정가혜의 친구가 태안 그룹의 대표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강은우의 본가는 서울 외곽에 있었기 때문에 강은우 측 하객들은 거물들을 잘 알지 못했지만 서울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의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었다.서유가 이렇게 설명한 이유는 사람들의 의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였다.아니면 강은우의 친척들은 신부 정가혜의 친구가 볼품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어쨌든 끼리끼리 논다는 말은 한 사람의 평판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서유는 정가혜가 무시당하지 않도록 명확하게 설명해야 했다.하객들의 의구심은 풀렸지만 정작 신부 정가혜는 마음이 불안했는데, 이 일이 서유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서유의 말대로 계약서만 가지면 되는 일이라면 태안 그룹의 대표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왔을까?결혼식을 망치러 온 것처럼 보이는 그가 심지어 서유의 허리를 팔로 감싸고 사방을 더듬은 이유는 무엇일까?외설적으로 보이는 그의 움직임은 서유에게 구애하는 것이 아니라 강요하고 협박하는 것처럼 보였다.정가혜는 생각할수록 마음이 놓이지 않아 웨딩드레스에 고정되어 있던 마이크를 떼어내고 서유의 손을 잡아당기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서유야, 너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33화

    서유는 두 페이지 분량의 종이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서둘러 썼다.글을 다 쓴 후 그녀는 은행 카드를 유서와 함께 편지지에 넣고 봉투에 「가혜에게」라는 네 글자를 적었다.고민 끝에 다른 편지지를 꺼내 이승하에게 무언가를 쓰려고 펜을 들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결국 서유는 그의 이름 세 글자만 적고 펜을 내려놓고 편지지를 접어서 서랍에 넣었다.서유가 떠난 후 정가혜는 반드시 그녀의 소지품을 정리하러 와서 그녀가 남긴 것을 찾을 것이다.모든 준비를 마친 후 서유는 약을 한 움큼 집어 먹었고, 오늘 밤에 중요한 임무를 완수해야 하기 때문에 몸이 잘 버텨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약을 먹은 후 서유는 자물쇠로 잠긴 책상 서랍을 열고 열흘 정도 보관해 두었던 수면제가 들어 있는 작은 약병을 꺼냈다.미리 준비한 가짜 계약서, 작은 칼과 함께 수면제를 가방에 넣은 후,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호텔을 예약했다.임태진에게 문자 메시지로 주소를 보내기 전에 먼저 호텔에 가서 짐을 풀었다.서유는 임태진의 카카오톡을 추가하지 않았고, 그가 이전에 문자 메시지로 연락을 한 적이 있던 것이 생각나 이번에 그녀도 똑같이 문자로 주소를 보냈다.「임 대표님, 하얏트 호텔 2008호 방에서 기다리겠습니다.」서유는 임태진이 문자 메시지를 보고 바로 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물음표로 답장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서유는 물음표를 보고 눈썹에 살짝 주름을 잡았다. 오늘 밤에 계약서를 주겠다고 하지 않았나?그녀가 의아해할 때쯤 상대방이 또 다른 메시지를 보냈다.그제야 서유는 의심을 떨쳐버리고 휴대폰을 내려놓고 수면제를 꺼냈다.병에 담긴 약을 모두 와인 잔에 부은 후 칼을 들고 칼끝으로 약을 조금씩 가루 냈다.지난번부터 목숨을 걸고 임태진과 싸울 계획이었지만 그때는 준비가 부족했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그를 죽여야 한다!서유는 그에게 놀아나고 싶지 않았고 정가혜를 끌어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임태진을 죽이는 것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34화

    심장이 떨릴 정도로 긴장한 서유는 왜 이 남자가 임태진을 사칭하며 자신에게 접근했을지 의아했다.왜 감히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걸까, 왜 들어올 때 불을 다 끄는 걸까, 도대체 뭘 원하는 걸까?그녀는 머릿속이 복잡해서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원래 계획에 따르면 서유는 임태진만 상대하면 됐지만, 갑자기 낯선 사람이 하나 더 생겼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그녀의 마음은 너무 불안해서 심장이 격렬하고 뛰고 있었지만 표정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이 사람이 누구든 이 집에 들어오는 한, 그녀는 약으로 제압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이런 생각을 하며 서유는 꽉 쥔 손을 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했다.“임 대표님, 역할극을 하고 싶은 거면 불은 끄지 마세요,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요.”이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더듬거리며 테이블로 가 옆에 있는 빈 와인 잔을 집어 들고 수면제가 든 와인을 따라주었다.와인의 조금 들어간 와인 잔을 집어 들고 남자에게 다가가 건넸다.“임 대표님, 먼저 와인 한 잔 마시고 기운을 차리세요.”서유는 임태진이 도착한 후 그에게 계약서를 주려고 했다. 그러나 계약서를 받은 후 그는 반드시 그녀에게 수작을 부릴 것이다.그래서 이때 서유는 임태진에게 먼저 술을 마시게 해서 기분을 좋게 하고, 약효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칼로 그를 죽이려 계획을 세웠다.그런 다음 그녀는 동영상을 찍어 임태진의 범죄를 폭로하면서 그를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주장할 것이다.서유는 이 모든 과정을 마친 후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고 손목을 그어 자살할 것이다.그렇게 하면 태안 그룹의 사람들은 그녀와 임태진이 감정 문제로 서로 싸우다 죽인 것이라 생각할 것이고, 정가혜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계획을 완벽하게 세웠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호텔로 온 사람이 임태진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이로 인해 계획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고, 이 사람을 바로 죽일 수도 없었다.아니면 임태진의 문제를 해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35화

    눈을 가린 후 그녀의 눈앞은 칠흑같이 어두워져 조금의 빛도 볼 수 없었다.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공포감은 마치 끝없는 심연에 빠진 것 같았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이 순간에야 서유는 임태진보다 더 무서운 사람을 만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남자는 임태진보다 상대하기 더 어려운 변태였다.두려움에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저도 모르게 다리까지 후들거렸다.눈은 가려지고 손은 묶여 있어서 주도권을 완전히 잃었다.서유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진정하고 그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이 봐요.”그녀는 이를 악물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도대체 뭘 원하는 거예요?”그 남자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대신 그녀를 들어 안았다.서유는 순식간에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고, 이어서 푹신한 침대에 던져졌다.그 남자가 자신을 성폭행하려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그녀의 옆에 앉았다.침대 앞부분이 가라앉은 것을 느낀 서유는 자신이 침대 한가운데 누워 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베개 아래에 칼을 숨겨 놓았기 때문에 베개가 있는 위치로 이동하기만 하면 칼을 꺼내 케이블 타이를 끊을 수 있다.그래서 즉시 다리의 힘을 이용해 몸을 위로 움직였다.머리가 베개에 닿으려는 순간, 남자가 갑자기 그녀의 몸을 눌렀다.그가 자신을 누르는 느낌과 함께 그의 쉰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임태진에게 호텔로 오라고 해놓고 와인에 약을 탔네. 이게 무슨 뜻이지?”서유는 잠시 얼어붙었다.‘지금 당장 범죄를 저지르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이런 일을 물어보는 걸까? 혹시 임태진이 계획을 알아채고 일부러 이 남자를 보내 의도를 찔러보려는 건 아닐까? 그럴 리가!’임태진의 성격에 그녀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미 누군가를 보내 그녀를 토막 냈을 것이다.“흥분하게 만드는 약일 뿐이에요.”그녀는 애써 차분한 척하며 대답했다. 이 남자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절대 그에게 진실을 말하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36화

    “알겠어요.”서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 마디 대답했고 눈앞에 있는 남자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녀는 남자의 표정을 볼 수 없어 그저 애타게 그에게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저기요, 들으신 것처럼 지금 제 친구의 목숨이 위태로워요. 임태진을 사칭해서 저에게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지만 시간만 바꿔주세요. 오늘 밤 그 사람을 만나서 계약서를 넘겨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내 친구를 죽일 거예요!”서유의 불안한 모습에 비해 그 남자는 여유로운 듯 담담하게 물었다.“무슨 계약서인데?”이승하와 관련된 일이라서 서유는 당연히 자세하게 말하지 않았다.“그냥 프로젝트 계약서예요.”그 남자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네가 명확하게 말하지 않으면 임태진에게서 듣도록 하지.”서유는 임태진이 그녀와 자고 싶어 하는 것과 자신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 계획을 세운 것,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그에게 말해야 했다.다만 임태진을 죽이려는 계획은 말하지 않고 대신 계약서에 대한 일은 간략히 설명했다.“나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 그 사람한테 서부 개발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다고 말했어요. 그렇게 그 사람을 막아야 내 친구의 결혼식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상대하기 쉽지 않아 가짜 계약서를 만들어서 설득할 수밖에 없었죠.”그 남자는 그녀의 말을 들은 후 한참 동안 침묵했다.서유는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불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선생님, 제가 한 말은 전부 사실이니 제발 저를 보내주세요!”그러나 그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고 불쑥 물었다.“임태진이랑 같이 잔 적은 없어?”“당연히 없죠!”서유는 너무 화가 나서 소리쳤다.“저렇게 잔인한 남자와 어떻게 같이 잘 수 있겠어요!” 서유는 임태진이 정가혜의 신혼집에 사람을 보냈다고 생각하자 이성을 잃고 날카로운 태도로 말했다.그 남자는 서유가 기겁하는 것을 보고 그제야 작은 금색 칼을 꺼내 손목의 흰 타이를 끊었다.타이가 풀리자, 서유는 서둘러 눈을

최신 챕터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52화

    서유의 사망 소식을 들은 육성재는 한동안 멍하니 그 자리에 서 있었다. 결국 그는 그녀의 마지막 길을 배웅하기 위해 서둘러 달려갔고, 모든 이들이 묘지를 떠난 후에도 그녀의 묘비 앞에 남아 머물렀다.“서유 씨...”그는 묘비를 붙잡고 천천히 몸을 낮추어 무릎을 꿇고, 더 이상 젊지 않은 눈으로 그녀의 영정 속 얼굴을 오랫동안 응시했다.“내가 올 줄 몰랐죠?”육성재는 미소를 지으며 혼잣말을 시작했다.“내가 한 사람을 이렇게 오래도록 사랑하게 될 줄은 나도 몰랐어요. 스스로도 놀라울 정도로, 나도 참 정이 깊은 놈이었네요.”영정 사진을 보며 그는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너무 깊이 사랑해서 세상 어떤 여자도 내 눈에 들어오지 않게 됐어요. 그러니 서유 씨, 나도 이승하 못지않게 당신을 사랑했던 거예요, 안 그래요?”그러나 그의 질문에 대답하는 건 묘지의 나뭇가지 사이를 스치는 새들의 울음소리뿐이었다. 새와 짐승들이 떠나고 나니 주변은 그저 고요할 뿐이었다. 마치 지난 수년간 그의 마음속에 묻어둔 사랑처럼, 결코 입 밖으로 꺼내지 못한 채 어둠 속에 갇힌 채였다.그토록 짙은 사랑은 세상에 드러낼 수 없었다. 그녀가 떠난 지금에서야 그는 그녀의 묘 앞에 와서 고백했다.그 역시, 깊이 사랑했노라고.모든 사람에게는 후회가 있다. 육성재의 유감은 그녀가 죽기 전까지 자신을 이렇게 바보처럼 사랑하는 이가 있다는 사실을 알지 못했다는 것이었다.하지만 알게 된들 무슨 소용이 있을까?‘서유는 이미 떠났는데, 육성재 난 왜 여전히 집착하고 있는 거냐? ’육성재는 그녀의 묘비 앞에 오래도록 앉아 있었다. 그러다 결국 답을 찾지 못한 채 천천히 일어나 발걸음을 돌렸다.그의 삶은 사랑이 아니라 일에 무게를 둔 인생이었다. 그는 생을 바쳐 육씨 집안을 세계 최고의 가문으로 일궈냈다.그는 상업계의 전설 같은 인물로 남았고, 수십 년이 지나도 사람들은 결혼하지 않았던 육성재가 어떤 사람이었는지 이야기하곤 했다.수도에 있는 송사월은 그녀의 죽음 소식을 제일 마지막으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51화

    생이 마감하는 순간, 머릿속을 스쳐 간 것은 그 5년 동안 이승하가 숨겼던 사랑이었다.몇 번이나 뒤척이며 잠에서 깼을 때, 자신의 몸이 단단하고 강인한 두 팔에 꽉 안겨 있는 것을 발견했다. 그렇게 강하게 끌어안는 것이 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또한 주말에 식사할 때, 식탁 건너편에 앉은 이승하가 가끔 그녀를 몰래 훔쳐보는 시선을 느낄 수 있었다. 그것이 오랜 짝사랑이 아니면 무엇이겠는가.그리고 그가 모든 일을 마친 후 그녀를 안아 자신의 가슴에 엎드리게 하고,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등을 쓰다듬으며 아이를 달래듯 잠들게 했던 모습 또한 마찬가지였다.이승하의 사랑은 작은 순간순간에 담겨 있었다. 그것이 어떤 모습인지 타인에겐 잘 보이지 않았으나, 이승하 본인만은 아주 알고 있었다. 당시 그녀에 대한 사랑을 얼마나 힘들게 숨겨왔는지...서유의 눈은 이미 뜰 수 없었고, 몸은 영혼이 빠져나간 듯 더 이상 힘이 남아 있지 않았다. 마지막으로 이 세상을 다시 한 번 볼 힘조차 없었다.그녀는 주머니 속 휴대폰을 더듬어 무작정 전화를 걸었고, 다행히 그것을 받은 사람은 정가혜였다.세월이 흐르면서 정가혜도 나이가 들었다. 젊었을 때의 맑은 목소리는 사라지고 약간 쉰 소리가 섞여 있었다.“서유야, 조금만 기다려. 우리 며느리가 출산하면 바로 널 보러 갈게...”삶의 마지막 순간에 친구의 목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것은 행운이라고 느껴졌다. 하지만 왜인지 이미 메마르고 고갈된 그녀의 눈에서 눈물이 흘러내렸고, 이내 오열로 변해 멈출 수 없었다.“가혜야, 난 승하 씨가 너무 보고 싶어. 그 이를 만나러 가야 할 것 같아. 부탁할게. 하준이에게 미안하다고 전해줘. 엄마가 하준이 결혼식을 볼 수 없게 됐다고...”전화기 너머의 정가혜는 이 말을 듣고 함께 눈물을 쏟아냈다. 그녀도 알고 있었다. 서유가 그동안 버틸 수 있었던 이유는 오직 어머니로서 아들을 놓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그것마저 없었다면 그녀는 이미 이승하를 따라갔을 것이다.얼마 전부터 서유의 몸이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50화

    서유의 손가락이 이하준의 머리 뒤로 부드럽게 닿았다. 마치 이미 모든 사실을 받아들인 듯 그녀의 표정은 놀랍도록 평온했다. “언제쯤 결혼할 거니?”이하준의 몸이 경직되었다. 안개처럼 흐릿한 눈으로 천천히 고개를 들어 서유를 천천히 놓아주며 말했다. “어머니... 아직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지 못했어요.”아들의 눈동자에 비친 자신의 모습을 보며, 서유는 손을 얼굴에 가져다 대며 말했다. “봐봐. 네 엄마는 지금 살아있는 것이 죽는 것보다 더 고통스럽단다. 제발 네 아빠를 만나러 가게 해줘. “어릴 적엔 부모님이 그를 속박했지만, 커서는 그가 부모님을 속박했다. 오직 그 속박만이 그를 고아로 만들지 않을 수 있었다. 그래서 그는 한 번만 더 이기적일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그는 서유의 팔을 붙잡으며 간절히 말했다. “어머니, 조금만 더 기다려주세요. 곧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날 거예요. 그러면 결혼하겠습니다, 네?”결국 아들의 마음을 아프게 하고 싶지 않아, 서유는 평소와 같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내일 교회에 가서 너를 위해 기도하고, 네가 곧 마음에 드는 여자를 만나길 빌어주마...”서유의 소원을 결코 들어주지 말아달라고 하늘의 신들에게 기도하며, 이하준은 알겠다고 대답했다. 그는 평생 어머니의 사랑을 얻기 위해 결코 결혼하지 않기로 했다.그는 이승하가 남겨둔 로봇을 다시 가져와 서유에게 아버지가 남긴 유언이 모두 로봇 프로그램에 담겨 있다고 말했다. 매일 정해진 시간에 유언의 일부를 들려줄 것이며, 만약 그녀가 아버지가 말하고 싶었던 모든 이야기를 듣고 싶다면 살아야 한다고 전했다.처음에 서유는 이승하와 똑같이 생긴 로봇을 보고 싶어 하지 않았다. 하지만 로봇이 말을 시작하는 순간, 그녀는 갑자기 멈춰 섰다. 그리고는 서재에 앉아 하루하루 이승하가 녹음했던 로맨틱한 말을 돌려서 들었다.마치 예전에 그가 그녀를 찾지 못했을 때 다른 이의 번호로 하루에 십여 통의 문자를 보내 그녀의 부재를 애도했던 것처럼.이제는 그가 먼저 떠났지만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9화

    아들을 위해, 결국 서유는 이승하를 따라 죽는 길을 택하지 않았다. 하지만 단 하룻밤 사이 머리가 백발이 되어, 마치 열 살은 더 늙어버린 듯한 모습이 되었다. 예전에는 세월의 흔적조차 보이지 않던 얼굴이 순식간에 주름투성이가 되었고, 사람들을 매료시켰던 그녀의 눈동자도 생기를 잃고 텅 빈 채로 아무 빛깔도 담고 있지 않았다.엄마가 되었으니 이제는 예전처럼 자신의 마음대로 할 수가 없었다. 그러니 그녀는 이승하의 무덤 앞에서 약속했다. 자신을 기다려 달라고.아들이 결혼하면 그때 찾아가겠다고. 만약 자신을 기다리지 않는다면, 다음 생의 약속도 취소할 거라고. 그리고 영원히, 다시는 만나지 않을 거라고 말이다.이승하의 장례식에 서유는 참석하지 않았다. 그녀가 정신을 차리고 기운을 내어 비틀거리며 그의 무덤 앞에 섰을 때, 무덤가에서 그녀가 중얼거리던 말들은 아무도 기억하지 못했다. 오직 그녀를 부축하며 아버지의 무덤을 찾은 이하준만이 그 말을 기억했다.눈 덮인 땅에 쓰러져 의식을 잃었던 그날 밤, 서유는 병원으로 옮겨져 일주일 동안 깨어나지 못했다. 그녀가 없는 동안 이승하의 시신은 얼음관에 안치된 채 장례를 치르지 못하고 일주일을 버텼다. 그녀가 깨어난 후, 그녀는 하얗게 센 머리와 멍한 눈빛으로 그를 단 한 번 보고는 곧바로 돌아섰다.그들이 이승하를 어떻게 묻었는지, 묘지는 어떻게 정했는지, 영정 사진으로 어떤 사진을 선택했는지 서유는 알지 못했다. 그녀는 침대 머리맡에 기대어 차가운 베개를 매만지며 그가 아직 살아 있는 모습을 상상하는 데만 몰두했다.‘만약 당신이 여기 있었다면, 내 하얀 머리를 보고 눈시울이 뜨거워졌겠죠.’그녀는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당신은 그랬을 거예요.”이승하는 질투심이 많은 사람이었다. 서유가 그 때문에 긴장하는 모습을 보일 때마다 그는 한참 동안 기뻐하며, 그녀 마음에 자신이 있다는 확신을 얻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는 그녀가 그로 인해 속을 끓이고 밤낮으로 잠 못 이루는 모습을 더 이상 볼 수 없게 되었다. 그것이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8화

    서유는 떨리는 속눈썹을 들어, 삶의 의미를 잃은 듯한 눈으로 멀리 바라보며 말했다.“아니, 난 어디에도 가지 않을 거야. 나와 그 사람, 그냥 여기 있을 거야. 내가 얼어 죽을 때까지, 누구도 우리를 떼어 놓을 수 없어.”그녀가 여기서 얼어 죽겠다는 말을 들은 순간, 주변 사람들의 가슴이 순간적으로 먹먹해졌다. 모두가 그녀를 말리며 무모한 짓을 하지 말라고 설득했지만, 서유는 그 어떤 말도 듣지 않았다. 단호하고도 완강하게, 이승하를 품에 안고 눈 덮인 땅 위에 앉아 그저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다.그때 이하준이 서유의 손을 붙잡고, 그녀의 손바닥을 힘껏 눌러 그녀의 시선을 자신에게 돌렸다.“어머니, 아버지를 얼마나 사랑하셨는지 알아요. 그래서 지금 아버지의 죽음을 받아들이기 힘드신 것도 이해해요. 하지만 전 이미 아버지를 잃었습니다. 어머니까지 잃을 순 없어요. 제발 부탁이에요, 어리석은 짓은 하지 말아 주세요...”아들이 귀 옆에서 애절하게 부르는 목소리를 들은 서유는 천천히 시선을 그에게 돌렸다. 아버지와 똑같은 모습으로 빚어진 얼굴이 눈에 들어오자, 그녀의 입술 끝에 옅은 미소가 떠올랐다. 마치 꽃이 피어난 듯한 미소였다.“난 이미 네 아버지가 떠날 준비를 오래전에 마쳤단다. 이제 그이가 정말 떠났으니, 당연히 나도 함께 가야지. 너도 알잖니. 그이가 살면 나도 살고, 그이가 죽으면 나도 죽는 거야. 아무도 이걸 막을 순 없어.”예전에 이하준은 아버지가 어머니를 더 사랑한다고 생각했다. 하지만 이 순간, 그는 어머니의 사랑이 아버지의 사랑만큼이나 깊었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러나 그는 성인식을 맞이한 바로 오늘, 부모님 두 분을 동시에 잃을 수 없었다.눈 덮인 땅 위에서 무릎을 꿇은 채, 그는 천천히 어머니 앞으로 다가갔다. 그리고 두 팔을 벌려 서유를 힘껏 끌어안았다.“어머니, 아버지는 제가 결혼하는 것과 자식을 낳는 것을 보고 싶다고 말씀하셨어요. 지금 아버지는 그걸 보지 못하고 떠나셨지만, 어머니가 대신 그 순간을 기다려 주시면 안 되나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7화

    눈물이 눈가에서 갑작스럽게 흘러내렸다. 그러나 그것은 가슴을 찢는 통곡이 아니었다. 아무 소리 없이 흘러내릴 뿐, 그녀는 벌어진 입술로 무언가를 말하려 했지만, 이생에서 이승하에게 해야 할 말은 이미 다 끝냈다는 생각이 들었다. 결국 그녀는 눈을 내리깐 채, 생기가 전혀 느껴지지 않는 창백한 얼굴을 가만히 내려다보았다.“바보, 당신이 아무리 피를 흘린다 해도 당신은 내 남편이에요. 내가 무섭겠어요? 하나도 안 무서우니까, 왜 굳이 혼자 이런 곳에 온 거예요?”마지막 이별의 말조차 건네지 못했다는 사실이 얼마나 안타까운 일인가. 그러나 그녀의 이승하는 이런 안타까움 따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에게 모든 걸 숨겼다.만약... 그녀가 그 가짜 이승하를 알아보지 못했다면 어땠을까? 그러면 평생 그의 몸조차 찾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눈과 함께 얼어붙어 영원히 설산 아래에 묻혔을 것이다.이승하는 이미 스스로 세상에서 사라질 각오를 했던 것이다. 그녀가 자신을 따라오지 않게 하려고, 그녀를 속이기 위해 가짜 로봇을 만든 것이다.‘하지만 승하 씨...’‘당신이 아무리 똑같이 생긴 로봇을 만든다 해도, 그건 당신이 아니에요. 당신이 평생 날 속일 수 있다면 난 받아들였을지도 몰라요. 그런데 지금 그 거짓말은 단 한 순간도 버티지 못했잖아요.’‘당신은 내가 당신을 찾으러 올 것을 허락하지 않았겠죠. 그렇지 않았다면 가짜 로봇을 만들어 내게 거짓말을 하지도 않았을 거고, 피를 흘리는 고통을 혼자 감당하며 이런 깊은 산속에서 눈과 마른나무를 친구 삼아 떠나지도 않았겠죠.’그녀의 이승하는 세상에서 가장 어리석은 사람이었고, 동시에 그녀를 세상에서 가장 사랑하는 사람이었다. 비록 마지막 순간에 그의 곁에 있어 주지 못했다는 사실이 매우 안타깝지만, 그의 사랑 덕분에 서유는 죽음이 조금도 두렵지 않았다.오히려 그녀는 이렇게 생각했다. 그와 함께 죽는다면 그것은 한평생의 약속을 완성하는 것이라고. 이제 먼저 떠난 이승하가 황천길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을까?서유는 알 수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6화

    마치 무언가 예감이라도 한 듯, 이하준이 떨리는 손으로 이승하의 손을 움켜쥐던 순간, 서유는 고개를 번쩍 들었다. 그리고 마치 미친 사람처럼 머리를 풀어 헤친 채 네발로 기어 이하준에게 달려갔다.그녀는 여전히 눈물 한 방울 흘리지 않았다. 다만 그 단호한 시선은 이승하의 얼어붙고 하얗게 질린 손에 닿자마자 떨리는 속눈썹을 내리깐 채, 피투성이가 된 손으로 이승하를 덮은 눈을 미친 듯이 파헤쳤다.깊은 산속의 눈은 산 아래보다 훨씬 더 두꺼웠다. 끝없이 쌓인 층층의 눈 속에서 서유는 온 힘을 다해 이승하를 파내던 순간, 그의 이목구비가 눈에 들어왔다. 그리고 그의 얼굴에 흐르는 피가 일곱 군데에서 새어 나와 얼음처럼 굳어 있었다. 그 아름다운 얼굴은 더 이상 어떠한 온기도 남아 있지 않았다.눈앞의 현실을 받아들일 수 없었던 이하준은 아버지의 침묵하는 모습을 목격하자 그 자리에서 무너져 내렸다. 두 무릎을 꿇고 바닥에 주저앉은 그는 마음속 어딘가가 찢어지듯 끊어지는 고통을 느꼈다. 마치 거대한 나무가 쓰러지는 것을 목격한 듯, 그의 세계는 단숨에 끝없는 어둠 속으로 빠져들었다.“하준아.”서유의 고요한 목소리가 귀를 스쳤다.“도와줘.”이하준은 어머니의 충혈된 눈을 바라보며 그녀의 부탁에 정신을 차렸다. 서유의 눈빛에는 슬픔도, 고통도 없었다. 오직 이승하의 죽음을 믿지 못하겠다는 단호함만이 담겨 있었다.그녀는 얼어붙은 이승하의 손과 얼굴을 붙들고 자신의 체온으로 그를 녹이려는 듯 필사적으로 문지르고 있었다. 이하준도 어머니를 따라 아버지의 발을 감싸 쥐었다. 그는 얼어붙은 신발을 벗기고 자신의 배 위로 올린 뒤, 손바닥으로 아버지의 다리를 위아래로 문지르기 시작했다.서유는 이승하의 얼굴에 덮인 얼음을 녹이며, 그가 살아날 수 있을 거라는 희망을 품고 있었다. 그녀는 지친 손으로 그의 얼굴을 계속 문지르며 이렇게 말했다.“여보, 당신이 나더러 기다리라고 했잖아요. 나 정말 잘 기다렸는데, 왜 약속을 안 지키고 돌아오지 않은 거예요?”“지금이라도 눈을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5화

    눈밭을 헤매며 이승하를 찾고 있던 서유는 갑자기 발길을 멈췄다. 마치 영혼이 그녀를 부르는 소리를 들은 것처럼 멍하니 뒤를 돌아보았다. 하지만 눈앞에는 오직 그녀 자신뿐, 영혼의 흔적은 어디에도 없었다.그녀는 그 자리에 굳어 서서 한참을 있다가 손을 들어 가슴에 얹었다. 심장이 세 번 뛰고 난 뒤, 가슴 깊은 곳에서 찢어질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마치 무엇인가를 잃어버릴 것만 같은 아픔이었다. 몸을 굽히며 고통을 참고자 했지만 좀처럼 진정되지 않았다.직감적으로 그녀는 이승하에게 무슨 일이 생겼음을 느꼈다. 이를 악물고 계속 그를 찾으려던 그 순간, 눈 위로 아름다운 자태를 가진 한 사람이 붉은 리치 한 송이를 손에 들고 걸어왔다.“여보, 내가 기다리라고 했잖아. 왜 여기까지 와 있는 거야?”눈앞에 멀쩡한 모습으로 나타난 이승하를 보자, 긴장으로 심장이 터질 것 같았던 서유는 한순간 안도감을 느꼈다. 역시 그가 곁에 있으면 모든 것이 괜찮아질 것 같았다.서유는 들고 있던 우산을 내던지고 마치 숲속의 토끼처럼 기쁨에 차 달려가 이승하의 품에 안겼다.그의 몸에서 느껴지는 온기와 익숙한 향기에, 서유는 깊게 숨을 내쉬며 안심했다.“당신, 내가 얼마나 놀랐는지 알아요? 정말 당신한테 무슨 일이라도 생긴 줄 알고 얼마나 무서웠는데요!”이승하는 긴 손가락을 뻗어 그녀의 머리카락을 부드럽게 쓰다듬었다. 언제나 그랬듯 다정하고 사랑스러운 손길이었다.“내가 말했잖아. 항상 네 곁에 있을 거라고. 아무 데도 가지 않을 거라고. 나한테 쉽게 무슨 일이 일어날 것 같아?”그의 품 안에 꼭 안긴 서유는 살짝 고개를 끄덕이며 그를 더욱 꽉 껴안았다. 하지만 갑자기 무언가가 손에 닿자, 서유의 몸이 뻣뻣하게 굳었다. 그리고는 이승하를 밀쳐내며 소리쳤다.“당신... 당신은 내 승하 씨가 아니야!”이승하는 요즘 들어 많이 수척해졌고, 허리를 감쌀 때 손가락이 다른 손가락에 닿을 정도로 야위어 있었다. 그러나 눈앞의 이승하는 예전처럼 건장한 체격을 유지하고 있었다.“당신

  • 계약 해지: 놔줘요 대표님   제1544화

    시린 눈보라 속에 홀로 서 있는 형의 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겨우 남은 힘으로 긴 손가락을 들어 흔드는 그를 보며, 이연석은 애써 마음을 다잡고 이를 악물며 재빨리 눈 덮인 산 아래로 달려 내려갔다.“형! 내가 먼저 의사를 부르고, 로봇을 산으로 올려보낼게. 그러고 나서 바로 돌아올 테니까 그 자리에서 꼭 기다려. 금방 올게!”밤길은 험난했지만, 사방으로 쏟아지는 눈은 길을 환히 비춰주어 이연석은 마치 대낮처럼 보이는 길 위를 달렸다. 하지만 급한 걸음은 때때로 방향을 잃고, 몇 차례나 눈밭에 무릎을 꿇으며 휘청거렸다.멀어져가는 이연석의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승하는 느려지는 심장 박동을 가슴으로 느끼며 제자리에 서 있었다. 그리고 생명의 문이 서서히 닫혀가는 고통을 묵묵히 받아들였다.얼마나 시간이 지났는지 모른다. 서유가 그의 흔적을 찾으며 이름을 부르자, 이승하는 무성한 나무 사이에서 고개를 돌려 눈 덮인 길 위에서 우산을 쓰고 걷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았다.단 한 번의 시선, 그로 인해 시간이 멈추고 만 년의 세월이 스쳐 지나가는 듯했다. 처음 그녀를 만났던 그 순간으로 돌아간 것 같았지만, 이제는 햇빛도 사라지고 눈보라만이 세상을 덮고 있었다.“승하 씨!”서유는 잠시 기다리다 이상함을 느끼고 별장 맞은편에 있는 집의 문을 열어보았다. 예상대로 이승하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그녀는 불안한 마음으로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그를 찾아 헤맸다.이승하는 대답하고 싶었다. ‘나 여기 있어.’ 그러나 온몸의 피가 쏟아지는 그는 예전처럼 힘찬 목소리로 외칠 수 없었다.그는 겨우 뜨고 있는 흐려진 눈으로 고개를 돌려 한 걸음씩 깊은 산 속으로 걸어갔다.그곳은 숲이 빽빽하게 우거져 있고 하얀 눈이 밤하늘을 밝혔어도 사람의 움직임을 알아볼 수 없는 곳이었다. 그가 누울 만한 최적의 장소였다.이승하는 생각했다. 얼음과 눈이 몸을 얼려버리면 야수가 지나가더라도 그의 썩은 살을 물어뜯지 못할 것이다. 이렇게 설산 아래에 묻히면 그의 외모도 변하지 않을 것이다

앱에서 읽으려면 QR 코드를 스캔하세요.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