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가 상자를 닫자 정가혜는 다급하게 한발 나서며 이를 막았지만 서유의 고집을 이기지는 못했다.정가혜는 난감한 듯 한숨을 내쉬었다.“서유야, 너 왜 이렇게 고집이 세?”서유는 상자를 잘 닫아놓고는 뒤를 돌아 정가혜의 팔을 잡고 애교를 부렸다.“어릴 때부터 네가 나 돌봐왔잖아. 근데 난 아무것도 해준 게 없네. 그냥 동생이 언니 생각해서 준비했다고 생각해.”정가혜는 그래도 받으려 하지 않았다. 서유가 평소에 어렵게 지내는 걸 알면서 어떻게 이 돈을 받을 수 있겠느냔 말이다.하지만 서유는 계속 고집을 부렸다. 정가혜도 하는 수 없이 일단 그 카드를 건네받았다.결혼식 날 은행카드를 다시 서유의 방에 갖다 둘 생각이었다.서유가 힘들게 일해서 번 돈은 다른 사람 그 누구도 가져갈 수 없다.둘은 물건을 좀 더 정리하다가 같은 방 같은 침대에 누웠다.어릴 때처럼 팩을 붙이고 누워 미래를 상상했다.정가혜는 서유의 결혼에 관한 이야기를 꺼냈다. 이승하와 잘 헤어졌다고도 했다. 그런 남자는 신분이 너무 높으니 일반 사람을 아내로 받을 리가 없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서유에게 일 잘하는 평범한 직장인을 만날 것을 건의했다. 신분도 맞고 돈도 잘 벌면 그때부터 돈 걱정을 안 해도 되니 얼마나 좋냐고 했다.그리고 이 집은 둘의 혼전 재산이니 아무리 각자 가정을 꾸렸다 해도 못 살겠으면 그 누구든 언제든 여기로 이사와도 된다고 했다.이 집은 둘의 든든한 방패막이와도 같았다. 둘이 비바람을 피할 수 있는 곳이다. 결혼 전에 구입한 부동산이니 두려워할 것도 없었다.서유는 일일이 다 대답하며 최대한 정가혜가 수상함을 눈치채지 않게 노력했다.정가혜의 팔을 안고 있는 것만으로도 서유는 너무 행복했다.이렇게 그녀를 아껴주는 언니가 있으니 하늘이 예정보다 빨리 그녀의 목숨을 앗아간다 해도 아쉬울 게 없었다.서유는 어릴 때처럼 정가혜를 안고 아무 걱정 없이 단잠에 빠졌다.며칠 이래 제일 푹 잔 밤이었다. 하지만 시간은 속절없이 빨리 흘러 어느새 정가혜의 결혼식 날이 되
출입구 쪽에서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 열댓 명이 문을 밀고 들어왔다.임태진은 양복바지 주머니에 손을 집어넣고 당당하게 들어섰다.결혼식장 안을 가득 메운 하객들은 앞에 있는 사람들의 태도를 보고 겁에 질려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정가혜와 강은우는 약간 당황한 듯 그 자리에서 얼어붙었고 서유는 임태진을 보는 순간 얼굴이 갑자기 하얗게 질렸다. 그가 오지 않을 것이라고 생각했는데 이렇게 결혼식장에 들이닥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임태진이 결혼식을 망칠까 봐 서유는 하객석에서 일어나 재빨리 그를 향해 걸어갔다.“임 대표님.”서유는 무대 방향으로 걸어가던 임태진을 급히 멈춰 세우며 말했다.“계약서에 서명했으니 오늘 밤에 보내드릴게요.”임태진은 그녀를 위아래로 훑어보다가 매혹적인 샴페인색 드레스를 입고 있는 것을 보고는 순식간에 회흑색 눈동자에 욕망의 불빛이 번뜩였다.그는 한 팔로 서유의 허리를 감싸고 그녀를 품에 끌어안으며 어루만졌다.“이미 사인을 했으면 진작에 주지 그랬어?”“임 대표님, 결혼식이 순조롭게 끝나야 드리죠. 그렇지 않으면 만약 대표님이 계약서를 가져가 놓고는 약속을 지키지 않고 제 친구의 결혼식을 망치면 어떡해요?”서유는 역겨운 기분을 애써 참으며 조심스럽게 말했다.“나 못 믿는 거야?”“네.”서유는 차분한 목소리로 말했다.“임 대표님, 계약서를 원하시면 저녁까지만 기다려 주세요.” 그녀는 비록 연한 화장을 했지만 표정은 조금 딱딱해서 아주 단호해 보였다.그 말을 들은 임태진은 웃었다.“네 말이 거짓말인지 아닌지 내가 어떻게 알아?”그러자 서유는 휴대폰을 꺼내 파일을 열고 미리 만들어둔 가짜 계약서를 꺼내 임태진에게 보여줬다.“임 대표님, 잘 보세요. 이 계약서는 JS 그룹이 작성한 계약서인 데다가 도장이 찍혀 있으니 가짜일 리가 없어요.”대표님 사무실에서 그녀의 주된 업무는 협력사를 접대하고 계약 문서를 관리하는 것이었다.JS 그룹은 동아 그룹의 가장 큰 협력사였기 때문에 자연스럽게 계약서를 가지고 있었고
그들이 떠나자마자 결혼식장을 가득 채운 하객들은 서유를 가리키며 어쩌다가 저런 사람이랑 엮이게 됐냐며 수군거렸다.하지만 서유는 신경 쓰지 않고 고개를 돌려 자신을 향해 걸어오는 정가혜와 강은우를 바라보았다.“서유야, 저 사람은 누구야?”정가혜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서유를 바라보았고, 직감적으로 저 사람들은 좋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 수 있었다.서유는 미소를 지은 채 정가혜의 손을 쓰다듬으며 말했다.“태안 그룹의 대표님인데, 중요한 계약 서류를 부탁하러 오셨어.”그녀는 일부러 목소리를 높여 말했다.정가혜의 웨딩드레스에는 작은 마이크가 달려 있었는데, 가까이 다가가면 마이크에서 목소리가 나왔다.하객들은 서유의 설명을 듣고 정가혜의 친구가 태안 그룹의 대표까지 알고 있을 정도로 대단한 사람이라고 말하며 다시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다.강은우의 본가는 서울 외곽에 있었기 때문에 강은우 측 하객들은 거물들을 잘 알지 못했지만 서울에서 가장 부유한 사람의 이름은 들어 본 적이 있었다.서유가 이렇게 설명한 이유는 사람들의 의견을 불식시키기 위해서였다.아니면 강은우의 친척들은 신부 정가혜의 친구가 볼품없는 사람이라고 생각할 게 뻔했기 때문이다.어쨌든 끼리끼리 논다는 말은 한 사람의 평판을 무너뜨리기에 충분하다.서유는 정가혜가 무시당하지 않도록 명확하게 설명해야 했다.하객들의 의구심은 풀렸지만 정작 신부 정가혜는 마음이 불안했는데, 이 일이 서유가 말한 것처럼 그렇게 간단하지 않다는 것을 느꼈다.서유의 말대로 계약서만 가지면 되는 일이라면 태안 그룹의 대표는 왜 이렇게 많은 사람을 데려왔을까?결혼식을 망치러 온 것처럼 보이는 그가 심지어 서유의 허리를 팔로 감싸고 사방을 더듬은 이유는 무엇일까?외설적으로 보이는 그의 움직임은 서유에게 구애하는 것이 아니라 강요하고 협박하는 것처럼 보였다.정가혜는 생각할수록 마음이 놓이지 않아 웨딩드레스에 고정되어 있던 마이크를 떼어내고 서유의 손을 잡아당기며 걱정스러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서유야, 너
서유는 두 페이지 분량의 종이에 자신이 하고 싶은 말을 서둘러 썼다.글을 다 쓴 후 그녀는 은행 카드를 유서와 함께 편지지에 넣고 봉투에 「가혜에게」라는 네 글자를 적었다.고민 끝에 다른 편지지를 꺼내 이승하에게 무언가를 쓰려고 펜을 들었지만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결국 서유는 그의 이름 세 글자만 적고 펜을 내려놓고 편지지를 접어서 서랍에 넣었다.서유가 떠난 후 정가혜는 반드시 그녀의 소지품을 정리하러 와서 그녀가 남긴 것을 찾을 것이다.모든 준비를 마친 후 서유는 약을 한 움큼 집어 먹었고, 오늘 밤에 중요한 임무를 완수해야 하기 때문에 몸이 잘 버텨주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실패할 가능성이 높다.약을 먹은 후 서유는 자물쇠로 잠긴 책상 서랍을 열고 열흘 정도 보관해 두었던 수면제가 들어 있는 작은 약병을 꺼냈다.미리 준비한 가짜 계약서, 작은 칼과 함께 수면제를 가방에 넣은 후, 그녀는 휴대폰을 꺼내 호텔을 예약했다.임태진에게 문자 메시지로 주소를 보내기 전에 먼저 호텔에 가서 짐을 풀었다.서유는 임태진의 카카오톡을 추가하지 않았고, 그가 이전에 문자 메시지로 연락을 한 적이 있던 것이 생각나 이번에 그녀도 똑같이 문자로 주소를 보냈다.「임 대표님, 하얏트 호텔 2008호 방에서 기다리겠습니다.」서유는 임태진이 문자 메시지를 보고 바로 올 것이라고 생각했지만, 그가 물음표로 답장할 것이라고는 예상하지 못했다.「?」서유는 물음표를 보고 눈썹에 살짝 주름을 잡았다. 오늘 밤에 계약서를 주겠다고 하지 않았나?그녀가 의아해할 때쯤 상대방이 또 다른 메시지를 보냈다.그제야 서유는 의심을 떨쳐버리고 휴대폰을 내려놓고 수면제를 꺼냈다.병에 담긴 약을 모두 와인 잔에 부은 후 칼을 들고 칼끝으로 약을 조금씩 가루 냈다.지난번부터 목숨을 걸고 임태진과 싸울 계획이었지만 그때는 준비가 부족했으니 이번에는 반드시 그를 죽여야 한다!서유는 그에게 놀아나고 싶지 않았고 정가혜를 끌어들이고 싶지도 않았다. 그렇기 때문에 임태진을 죽이는 것
심장이 떨릴 정도로 긴장한 서유는 왜 이 남자가 임태진을 사칭하며 자신에게 접근했을지 의아했다.왜 감히 자신의 본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걸까, 왜 들어올 때 불을 다 끄는 걸까, 도대체 뭘 원하는 걸까?그녀는 머릿속이 복잡해서 다음에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원래 계획에 따르면 서유는 임태진만 상대하면 됐지만, 갑자기 낯선 사람이 하나 더 생겼다. 이제 어떻게 해야 할까?그녀의 마음은 너무 불안해서 심장이 격렬하고 뛰고 있었지만 표정은 애써 침착함을 유지했다.이 사람이 누구든 이 집에 들어오는 한, 그녀는 약으로 제압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이런 생각을 하며 서유는 꽉 쥔 손을 풀고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이 말했다.“임 대표님, 역할극을 하고 싶은 거면 불은 끄지 마세요, 어두워서 아무것도 보이지 않잖아요.”이렇게 말하면서 그녀는 더듬거리며 테이블로 가 옆에 있는 빈 와인 잔을 집어 들고 수면제가 든 와인을 따라주었다.와인의 조금 들어간 와인 잔을 집어 들고 남자에게 다가가 건넸다.“임 대표님, 먼저 와인 한 잔 마시고 기운을 차리세요.”서유는 임태진이 도착한 후 그에게 계약서를 주려고 했다. 그러나 계약서를 받은 후 그는 반드시 그녀에게 수작을 부릴 것이다.그래서 이때 서유는 임태진에게 먼저 술을 마시게 해서 기분을 좋게 하고, 약효가 나타날 때까지 기다렸다가 칼로 그를 죽이려 계획을 세웠다.그런 다음 그녀는 동영상을 찍어 임태진의 범죄를 폭로하면서 그를 죽일 수밖에 없는 상황이었다는 것을 주장할 것이다.서유는 이 모든 과정을 마친 후 동영상을 인터넷에 올리고 손목을 그어 자살할 것이다.그렇게 하면 태안 그룹의 사람들은 그녀와 임태진이 감정 문제로 서로 싸우다 죽인 것이라 생각할 것이고, 정가혜를 괴롭히지 않을 것이다.하지만 계획을 완벽하게 세웠다고 생각했던 그녀는 호텔로 온 사람이 임태진이 아니라는 사실을 전혀 예상하지 못했다.이로 인해 계획은 완전히 실패로 돌아갔고, 이 사람을 바로 죽일 수도 없었다.아니면 임태진의 문제를 해
눈을 가린 후 그녀의 눈앞은 칠흑같이 어두워져 조금의 빛도 볼 수 없었다.어둠 속에서 느껴지는 공포감은 마치 끝없는 심연에 빠진 것 같았고, 아무리 발버둥 쳐도 빠져나올 수 없었다.이 순간에야 서유는 임태진보다 더 무서운 사람을 만났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 남자는 임태진보다 상대하기 더 어려운 변태였다.두려움에 그녀는 식은땀을 흘리며 저도 모르게 다리까지 후들거렸다.눈은 가려지고 손은 묶여 있어서 주도권을 완전히 잃었다.서유가 지금 할 수 있는 유일한 일은 진정하고 그와 대화를 시도하는 것이었다. “이 봐요.”그녀는 이를 악물고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도대체 뭘 원하는 거예요?”그 남자는 그녀의 말에 대답하지 않고 대신 그녀를 들어 안았다.서유는 순식간에 몸이 공중으로 떠오르는 것을 느꼈고, 이어서 푹신한 침대에 던져졌다.그 남자가 자신을 성폭행하려 한다고 생각했지만, 그는 아무것도 하지 않고 그저 그녀의 옆에 앉았다.침대 앞부분이 가라앉은 것을 느낀 서유는 자신이 침대 한가운데 누워 있다고 생각했다.그녀는 베개 아래에 칼을 숨겨 놓았기 때문에 베개가 있는 위치로 이동하기만 하면 칼을 꺼내 케이블 타이를 끊을 수 있다.그래서 즉시 다리의 힘을 이용해 몸을 위로 움직였다.머리가 베개에 닿으려는 순간, 남자가 갑자기 그녀의 몸을 눌렀다.그가 자신을 누르는 느낌과 함께 그의 쉰 목소리가 귓가에 들렸다.“임태진에게 호텔로 오라고 해놓고 와인에 약을 탔네. 이게 무슨 뜻이지?”서유는 잠시 얼어붙었다.‘지금 당장 범죄를 저지르고 있어야 하는 거 아닌가? 왜 자신과 아무 상관도 없는 이런 일을 물어보는 걸까? 혹시 임태진이 계획을 알아채고 일부러 이 남자를 보내 의도를 찔러보려는 건 아닐까? 그럴 리가!’임태진의 성격에 그녀가 자신을 죽이려 한다는 것을 알았다면 이미 누군가를 보내 그녀를 토막 냈을 것이다.“흥분하게 만드는 약일 뿐이에요.”그녀는 애써 차분한 척하며 대답했다. 이 남자가 누군지 모르기 때문에 절대 그에게 진실을 말하
“알겠어요.”서유는 차가운 목소리로 한 마디 대답했고 눈앞에 있는 남자는 바로 전화를 끊어버렸다.그녀는 남자의 표정을 볼 수 없어 그저 애타게 그에게 애원할 수밖에 없었다.“저기요, 들으신 것처럼 지금 제 친구의 목숨이 위태로워요. 임태진을 사칭해서 저에게 무슨 짓을 하든 상관없지만 시간만 바꿔주세요. 오늘 밤 그 사람을 만나서 계약서를 넘겨줘야 해요. 그렇지 않으면 내 친구를 죽일 거예요!”서유의 불안한 모습에 비해 그 남자는 여유로운 듯 담담하게 물었다.“무슨 계약서인데?”이승하와 관련된 일이라서 서유는 당연히 자세하게 말하지 않았다.“그냥 프로젝트 계약서예요.”그 남자는 휴대폰을 만지작거리며 아무렇지도 않게 말했다.“네가 명확하게 말하지 않으면 임태진에게서 듣도록 하지.”서유는 임태진이 그녀와 자고 싶어 하는 것과 자신이 그것으로부터 벗어나려 계획을 세운 것, 처음부터 끝까지 모든 것을 그에게 말해야 했다.다만 임태진을 죽이려는 계획은 말하지 않고 대신 계약서에 대한 일은 간략히 설명했다.“나는 다른 방법이 없어서 그 사람한테 서부 개발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다고 말했어요. 그렇게 그 사람을 막아야 내 친구의 결혼식을 순조롭게 진행할 수 있었으니까요. 그런데 상대하기 쉽지 않아 가짜 계약서를 만들어서 설득할 수밖에 없었죠.”그 남자는 그녀의 말을 들은 후 한참 동안 침묵했다.서유는 그가 아무 말도 하지 않는 것을 보고 불안한 마음에 눈물을 흘리며 말했다.“선생님, 제가 한 말은 전부 사실이니 제발 저를 보내주세요!”그러나 그 남자는 꿈쩍도 하지 않고 불쑥 물었다.“임태진이랑 같이 잔 적은 없어?”“당연히 없죠!”서유는 너무 화가 나서 소리쳤다.“저렇게 잔인한 남자와 어떻게 같이 잘 수 있겠어요!” 서유는 임태진이 정가혜의 신혼집에 사람을 보냈다고 생각하자 이성을 잃고 날카로운 태도로 말했다.그 남자는 서유가 기겁하는 것을 보고 그제야 작은 금색 칼을 꺼내 손목의 흰 타이를 끊었다.타이가 풀리자, 서유는 서둘러 눈을
“그래도 능력은 좀 있는 것 같군.”임태진은 서유의 허리에 팔을 감고 볼에 뽀뽀하며 말했다.“말해봐, 예쁜아, 무슨 보상을 원해?”서유는 뺨을 가리고 무표정한 채 말했다.“임 대표님, 저는 어떤 보상도 바라지 않으니 부하들더러 제 친구의 신혼집에서 나가게 해 주세요.”“알겠어.”임태진은 즉시 휴대폰을 꺼내 부하들에게 철수하라고 전화를 걸었다.그제야 서유는 안도의 한숨을 내쉬며 돌아서서 약이 든 술잔을 집어 임태진에게 건넸다.“대표님, 제가 특별히 이 와인을 가져왔으니 함께 마셔보시죠.”“와인을 마신다고?”임태진은 눈썹을 살짝 치켜들었다. 그녀가 먼저 자신에게 술을 마시자고 할 줄은 몰랐다.다소 놀란 임태진은 서유가 드디어 정신을 차렸다고 생각하고 급히 그녀의 귓가에 대고 물었다.“왜? 이제 마음먹었어? 내가 만져도 돼?”서유는 임태진이 의심할까 봐 걱정되어 여전히 이전의 태도와 차가운 목소리를 유지했다.“대표님, 무슨 생각하시는 거예요? 제가 말했듯이, 대표님이랑 자고 싶지 않습니다. 그래서 프로젝트 계약서와 거래하자고 했고요. 왜 약속을 안 지키세요?”임태진은 그 말을 듣고 기분이 언짢아졌다.“근데 왜 술을 마시자고 한 거야?”서유는 얼굴을 찌푸리며 말했다.“대표님, 제가 같이 와인을 마시자고 한 건, 저를 두 번 연속 봐주시고 건드리지 않으신 데다가 저를 믿어주시기까지 하셨으니 감사의 마음을 전하고 싶었을 뿐이에요. 저 그렇게 감사할 줄 모르는 사람 아닙니다. 적어도 당연히 술은 같이 마실 수 있죠.”서유가 그렇게까지 자신을 칭찬하자 임태진은 자신의 이미지가 갑자기 영광스럽고 위대해졌다고 느꼈다.“그렇다면 한 잔 같이 마셔주지.”임태진은 손을 뻗어 그녀가 건네는 술잔을 받아 들었다.서유는 지나치게 긴장한 탓인지 손가락이 약간 떨렸다.그러자 임태진은 한눈에 뭔가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 수 있었다.그는 티를 내지 않고 술을 받았지만 마시지 않은 채 대신 서유를 훑어보았다.서유의 얼굴은 변함이 없었지만, 빠르게 올라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