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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7화

임태진은 서유가 그가 원하는 프로젝트를 따낼 수 있도록 도움을 주겠다는 말을 듣고 갑자기 흥미가 생겼다.

서부 개발은 다음 달이면 입찰을 시작할 예정이었다. 아버지는 이번에 그가 프로젝트를 따내기만 한다면 상속자를 그로 정하겠다고 말씀하셨다.

하지만 이번 경쟁 상대는 부산에서 온 화진 그룹이었다. 국내 굴지의 기업 중 손꼽히는 기업이었다. 화진 그룹의 전문 분야에서 화진을 이기기는 어려울 것이다. 그래서 이승하를 통해 그 프로젝트를 따내려고 했다.

하지만 이승하는 상대하기에 너무 어려운 사람이다.

이번에도 이연석이 도와주지 않았다면 이승하를 만날 수조차 없었을 것이다.

그래서 이승하의 비위를 맞춰 프로젝트를 따내는 것은 거의 불가능했다.

서유가 그를 도와 프로젝트를 성사시켜 준다면야 당연히 좋겠지만...

그는 조금 의심스럽게 서유에게 물었다.

“넌 손에 이승하의 약점까지 잡고 있으면서 왜 이승하를 협박해서 한몫 단단히 챙기지 않은 거야?”

서유는 다급하게 둘러댔다.

“누가 요구하지 않았대요? 나도 협박했었어요. 여자 친구를 시켜 달라고 했더니 거절하더라고요.”

임태진은 눈을 가늘게 뜨며 그녀를 바라보았다.

“이승하가 거절했다면 네가 다시 가서 협박해도 소용없는 거잖아?”

서유는 다짐하며 말했다.

“만약 이승하가 이번에도 거절한다면 난 그 동영상을 연유진에게 보낼 거예요.”

임태진은 눈썹을 추켜세웠다.

“너 내가 널 건드리는 게 싫어서 이런 제안을 하는 거지.”

“맞아요.”

서유는 태연하게 말했다.

“내가 말했었죠. 난 사랑하지 않는 사람과 스킨쉽을 할 수 없다고. 사랑하는 사람과는 자연스럽게 할 수 있어요. 이 대표님처럼요. 하지만 임 대표님은 아직 아니에요. 임 대표님이 나한테 손대는 게 싫으니 어쩔 수 없이 프로젝트라도 도와드려야죠.”

임태진은 자기가 그녀의 속셈을 말하면 그녀가 변명을 늘어놓을 줄 알았다. 그런데 그녀는 인정해 버리자 오히려 임태진은 그녀가 다르게 보였다.

며칠 전 자기를 영리하게 설득하던 그녀를 똑똑하다고 생각했지만 오늘은 그녀를 대단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그는 원래 서유가 돈과 권력에 별로 관심이 없다고 생각했지만 그녀가 관심을 갖고 있는 상대가 이씨 집안 후계자일 줄은 몰랐다.

이 여자는 그보다 더 높은 자리에 있는 사람을 마음에 두고 있었기에 그에게는 관심조차 없는 것이었다.

지능, 야심, 수단 그리고 승부사 기질과 중재 능력까지 아주 대단한 여자였다.

그녀에게 서부 개발 프로젝트를 맡긴다면 큰 도움이 될 수도 있을 것 같았지만...

임태진은 서유의 턱을 잡으며 자기를 바라보게 했다.

“만약 네가 실패하면 내 부하들한테 네 친구를 망가트리라고 할 거야.”

그는 정가혜가 서유의 약점이라는 걸 알고 있었다. 정가혜가 있는 한 서유는 영원히 그에게 복종할 것이다.

서유는 너무 화가 나서 심장이 떨렸지만 이를 악물며 말했다.

“걱정하지 마세요.”

임태진은 그제야 그녀를 풀어주며 아쉽다는 듯이 말했다.

“네가 이렇게 싫다면 오늘은 그만할게. 네가 프로젝트를 따낸 다음에 우리는 천천히 알아가 보자.”

여자와 노는 것보다 태안 그룹의 후계자가 되는 것이 그에게는 더 중요했다.

서유가 서부 개발 프로젝트만 가져와 준다면 그녀가 자기를 사랑하게 될 때까지 기다려 줄 것이다.

조만간 서유를 자기 여자로 만들 생각에 임태진은 그다지 아쉽지 않았다.

그녀를 껴안으며 진한 키스를 남긴 뒤 자리에서 일어나 떠났다.

그가 떠나는 것을 보고 서유는 바닥에 주저앉은 채 깊은 한숨을 쉬었다.

그녀는 소파를 짚으며 천천히 일어섰다. 온몸에 소름이 돋으며 떨렸다.

임태진 때문에 놀란 것인지 아니면 이승하에게 화가 난 것 때문인지 모르겠지만 그녀의 심장은 곧 멈출 지경이었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가방에서 약을 꺼냈다. 심장을 안정시키는 약을 몇 알 먹은 뒤 겨우 몸을 일으켜 룸을 떠났다.

추운 겨울 날씨에 너무 얇은 옷을 입고 있어서 그런지 찬 바람이 온몸에 스며들어 그녀는 추위에 떨었다.

하지만 그녀는 추위를 느끼지 못하는 조각상처럼 집을 향해 한 걸음 한 걸음 걸어갔다.

멀지 않은 곳에 세워져 있던 코닉세그가 갑자기 그녀 앞으로 달려와 길을 막았다.

소수빈이 차에서 내려 서유의 앞으로 다가와 정중하게 말했다.

“서유 씨, 이 대표님께서 찾으십니다.”

서유는 아무것도 못 들은 것처럼 차가운 얼굴로 계속해서 앞으로 걸어갔다.

소수빈은 그녀를 막아설 수밖에 없었다.

“서유 씨, 이 대표님 성격 아시잖아요. 화나게 해서 좋을 것이 없습니다.”

그렇다. 그녀는 아무것도 없는 고아였기에 막강한 권력을 손에 쥔 이승하를 화나게 할 수 없었다.

그녀는 이승하의 말을 듣지 않으면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 잘 알고 있었다. 임태진보다 더 상대하기 어려울 것이다.

서유는 발악하는 것을 포기하고 얌전히 차에 올랐다...

뒷좌석에 앉은 뒤 그녀는 옆자리에 앉아 있는 남자를 곁눈질했다.

값비싼 슈트에 수십억에 달하는 시계를 차고서는 한정판 슈퍼카에 타고 있는 그의 모습은 누구보다도 고귀해 보였다.

그에 비해 그녀는 온몸에 와인을 뒤집어쓴 채 끈적한 술 냄새를 풍기며 그의 앞에 있으니 꼭 광대처럼 보였다.

이러한 신분 차이에 그녀는 더 이상 1초라도 머물고 싶지 않았다.

그녀는 차가운 목소리로 물었다.

“이 대표님, 하실 말씀 있으시면 빨리 말해줘요. 빨리 집에 돌아가야 해요.”

그녀는 그의 앞에서 항상 얌전했었고 이런 말투로 그에게 말한 적이 거의 없었다.

이승하는 고개를 옆으로 기울여 깊고 어두운 눈빛으로 그녀를 바라보았다. 그 눈빛에 그녀는 심장이 멎는 것 같아 놀랐다.

서유는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피했지만 그가 갑자기 가까이 다가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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