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유와 육성재는 일곱 번째 게임이 끝난 후, 예전처럼 일주일간의 간격을 두고 다음 게임이 시작될 줄 알았다. 하지만 그들이 방으로 돌아오자마자 기계음이 바로 울렸다. “플레이어님, 내일 네 번째 층의 노년 공간에서 여덟 번째 게임이 시작됩니다. 미리 준비해 주십시오.” 서유와 육성재는 서로 눈을 마주쳤다. 혹시 칼자국남의 배후 인물이 드러났기 때문에 게임이 앞당겨진 걸까? 그럴 가능성이 컸다. 그렇지 않으면 이미 정해진 규칙대로 일주일 간격으로 게임이 진행되어야 하는데, 왜 갑자기 변경되었을까? 하지만 칼자국남의 배후 인물은 대체 누구일까? 그가 왜 두 사람을 도와주면서도 아무런 정보를 주지 않은 걸까? 그들은 혼란스러웠지만 이미 게임에 들어와 버린 이상 나갈 수 없었고, 게임의 규칙을 따를 수밖에 없었다. 그날 밤, 서유는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했다. 침대에서 이리저리 뒤척이면서도 머릿속에는 칼자국남이 뱀에게 삼켜지던 장면이 계속 떠올랐다. 이곳에 온 이후로 서유는 피비린내 나는 장면을 수없이 많이 봐왔고, 매번 공포와 두려움에 사로잡혔다. 하지만 이번만큼은 유독 다르게 느껴졌다. 아마도... 택이가 있었기 때문일 것이다. 맞은편 침대에 누워 있던 육성재는 그녀가 뒤척이는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려 말했다. “잠이 안 오면 나랑 얘기라도 할래요?” 서유는 몸을 돌려 손을 볼에 댄 채로 물었다. “택이는... 정말 뱀한테 잡아먹힌 걸까요?” 육성재는 이미 답을 알고 있었지만 모르는 척 고개를 저었다. “몸놀림이 워낙 빠르니까 아마 잘 빠져나왔을 거예요.” 정말 그럴까? 그렇게 많은 뱀들을 택이가 단 몇 초 만에 전부 물리칠 수 있었을까? 육성재는 서유가 멍하니 있는 것을 보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그녀를 달랬다. “너무 걱정하지 마요. 내일 또 게임이 있으니까 우선 푹 쉬어요.” 서유는 다시 물었다. “내일은 어떤 게임일까요?” 육성재는 고개를 저었다. “모르겠어요.” 서유는 또
서유는 깊은 잠을 자고 일어나 다음 날 아침 기분이 괜찮았다. 덕분에 게임에 임할 때도 크게 긴장하지 않았다. 이번 여덟 번째 게임은 이전 게임들과는 조금 달랐다. 벽에 새로운 화면이 생겼고 그 위에는 총 54장의 카드가 펼쳐져 있었다. “두 명의 플레이어는 지금 아무 카드나 선택하십시오.” 서유와 육성재는 어떤 게임을 하게 될지 몰라 서로 눈을 마주쳤다. “아마도 같은 숫자의 카드를 뒤집는 게임이거나 선택한 카드 수가 많은 쪽이 이기는 게임일 거예요.” 육성재의 분석은 타당해 보였고 서유도 그의 의견을 따랐다. 그들은 각자 앞으로 나가 화면에서 원하는 카드를 클릭했다. 서유는 A 카드를, 육성재는 2 카드를 선택했다. 이 두 카드는 각각 네 장씩 있어 확률이 조금 높아 보였지만, Ace는 항상 예측을 벗어난 선택을 한다. 카드를 고르고 나자 54장의 카드는 모두 뒤집혀 그들에게 뒷면을 보였다. 동시에 카드의 순서가 순식간에 뒤섞여 상하좌우로 계속해서 움직였다. “두 명의 플레이어는 방금 선택한 카드의 숫자와 문양이 정확히 일치하는 카드를 뽑으십시오.” 다행히도 서유는 카드를 고를 때 문양을 정확히 기억해 두었다. 그렇지 않았다면 지금 머릿속이 하얘졌을 것이다. 그렇지만 54장의 카드 중에서 어떻게 5분 내에 정확한 카드를 고를 수 있을까? “어차피 다 운이니까 그냥 직감대로 골라요.” 육성재의 말은 맞았다. 어떻게 골라도 결과는 크게 다르지 않을 것이다. 육성재의 침착한 태도에 영향을 받은 서유는 긴장감이 조금 가라앉았다. 육성재는 옆에서 기다리며 서유가 먼저 선택하게 했다. 그는 이미 마음을 굳혔다. 만약 그녀가 틀린 카드를 고르면 자신이 대신 책임지기로 말이다. 왜냐하면 그는 그녀에게 아홉 번째 라운드까지 꼭 데려가겠다고 약속했기 때문이다. 그녀가 아홉 번째 라운드까지 가야만 검은 옷을 입은 사람을 만날 기회가 있었다. 만약 이승하가 살아 있다면, 반드시 그녀를 만나러 올 것이
“성재 씨!!!” 서유는 필사적으로 두 주먹을 꽉 쥐고 미친 듯이 유리문을 두드렸다. 그러나 그 유리문은 어느새 사라지고 그녀의 주먹은 벽에 부딪혔다. 아픔이 밀려왔지만 감각이 마비된 것처럼 계속해서 벽을 쳤다. 작고 여린 손은 피부가 찢어져 피가 흐르고 그 피가 벽을 붉게 물들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벽은 여전히 당당하게 서 있었고, 열릴 기미조차 보이지 않았다. 서유는 온 힘을 다해 벽을 두드렸지만 결국 아무 소용이 없었다. 그녀의 손은 점차 힘없이 유리문에서 미끄러졌다. 눈물 가득한 절망은 그녀를 아무런 의식 없는 도자기 인형처럼 보이게 만들었다. “성재 씨, 난 이 벽을 부술 수가 없어요. 미안해요, 구해주지 못해서...” 서유는 바닥에 주저앉아 생과 사를 가로막는 하얀 벽을 무력하게 바라보았다. 몸속의 모든 피가 빠져나간 것처럼 손발이 차가워졌다. 육성재... 그 자존심 높고 조울증을 앓고 있었으며 조금은 괴팍했던 남자가, 자신 때문에 여기서 목숨을 잃었다. 서유의 눈에서 끝없이 눈물이 흘러내렸다. 만약 자신만 아니었다면 육성재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모두 그녀의 잘못이었다. 이승하도, 택이도 찾지 못한 그녀는 아무런 쓸모도 없었고 결국 그에게까지 피해를 입혔다. 서유는 손을 들어 얼굴을 감쌌는데 눈물이 손가락 사이로 멈출 줄 모르고 흘러내렸다. 그가 따라오겠다고 했을 때, 그녀는 그를 막아야 했지만 그러지 않았다. 그랬다면 그는 죽지 않았을 것이다. 서유는 피투성이가 된 육성재의 모습이 떠올랐고 그 순간 심장이 마구 쪼여드는 듯한 고통을 느꼈다. 서유는 벽에 기댄 채 두 무릎을 감싸 안고 고개를 팔 사이에 묻었다. 육성재의 죽음과 극도의 피로, 그리고 정신적 붕괴는 그녀를 더 이상 버틸 수 없게 만들었다. 그녀는 자신에게 사람을 죽게 만든 죄를 짊어진 채 살아갈 자격이 없다고 생각했다. 그리고 그녀는 앞으로 아무도 만날 염치가 없을 거라고 생각했다.. 특
기계음이 울릴 때까지 서유는 자신이 이제 죽음을 맞이해야 한다는 사실을 깨닫지 못했다. 만약 육성재가 조금만 더 천천히 갔더라면 아마 황천길에서 그와 마주칠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 서유는 굳어버린 입가를 억지로 올리며 육성재가 남겨준 사과를 쥐고 자리에서 일어나 방을 나섰다. 이번에는 모든 방의 문이 활짝 열려 있었다. 처음 이곳에 왔을 때 맞은편의 9호 방, 10호 방, 그리고 수많은 방들이 있었다. 사람들은 문가에 기대어 왜 자신이 이곳에 오게 되었는지 수다를 떨곤 했다. 하지만 이제 그 누구도 남아있지 않았다. 그들 모두 각자가 선택한 공간에서 죽었을 것이다. 첫 번째 라운드에서였을 수도 있고, 다섯 번째 라운드였을 수도 있다. 어느 라운드에서든 결국 살아남은 자는 없었다. 서유는 홀로 복도를 걸으며 누군가 나타나, 웃으며 ‘나도 살아남았어’라고 인사해 주기를 간절히 바랐다. 하지만 아무도 없었다. 서유는 기계음의 안내에 따라 아홉 번째 라운드의 카지노로 향했다. 이곳은 이전과 완전히 달랐다. 이제는 온통 하얀색이 아닌 황금빛과 화려함으로 가득 찬 공간이었다. 이 방은 마치 Ace의 배후자가 얼마나 대단한 사람인지 상징하는 듯했다. 그가 얼마나 부유하면 이 방에 들어온 사람들은 그만큼이나 하찮은 존재였다. 그는 이곳에서 한 사람이 어떻게 죽는 지를 내려다볼 것이다. 생명에 대한 경외심 따위는 없고 오직 장난질만 일삼는 악독한 자였다. 서유는 가슴 가득 분노를 품은 채 조작대 앞에 서서 안내에 따라 아무 버튼이나 눌렀다. 그녀는 규칙이 무엇인지조차 제대로 듣지 않았다. 두려울 것도 없이 무작위로 선택했다. 어차피 무엇을 선택하든 맹목적인 선택일 뿐이고, 아무리 고민해도 결국엔 죽음이라는 결말뿐이었다. 그녀는 만약 죽음의 문을 선택하면, 두개골을 열고 있던 검은 옷의 사람에게 이승하가 지금 어두운 곳에 있는지 물어볼 생각이었다. 생존의 문을 선택하면, 다른 게임 구역을 계속해서 도전하
이승하는 그녀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았다. 그저 붉어진 눈으로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서유의 손은 그의 얼굴에서 천천히 옮겨져 그의 옷을 만지기 시작했다. 검은색의 고급스러운 셔츠 위에 새겨진 금색 글씨. Ace-Inviter-2-9. 이것은 그가 루드웰에 속하게 되었으며, 평범한 검은 옷을 입은 자들보다 더 높은 위치에 있음을 의미했다. 그는 루드웰의 배후에 들어갔고, 서유를 이곳으로 초대한 2-7과 같은 등급에 있었다. 그는 그동안 계속해서 루드웰 있었고 그녀를 지켜보고 있었지만 이제야 나타난 것이다... 그 사실을 깨닫자, 서유는 눈물이 마치 끊어진 구슬처럼 멈추지 않고 흘러내렸다. 그녀는 조금씩 이승하의 옷을 더 꽉 잡으며, 눈물이 가득 고인 얼굴로 그를 빤히 쳐다보았다. “당신, 어디 다친 거예요? 그래서 집에 돌아올 수 없었던 거죠? 나한테 연락할 수도, 날 보러 올 수도 없었던 거죠?” 그녀의 눈물은 한 방울, 또 한 방울 이승하의 가슴에 떨어졌는데 그를 숨조차 쉴 수 없게 아프게 만들었다. 이승하는 긴 손가락으로 그녀의 눈물을 닦아주고 고개를 천천히 저었다. “아니야, 내가 약속을 어긴 거야. 미안해.” 서유는 그 말을 믿지 않았다. 발끝을 세워 그의 머리를 만지려고 했으나 이승하는 그녀의 손목을 단단히 잡아 막았다. 이승하는 아무런 설명도 하지 않고 그녀의 손을 붙잡아 생명의 문 쪽으로 이끌었다. 서유는 그의 뒤를 따르며 그의 뒷머리를 바라보았다. 여전히 짙은 머리카락이 그대로 있었는데 두개골을 연 흔적은 없었다. 그는 그녀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았다. 서유는 눈물로 가득 찬 눈을 들어 침묵하는 이승하를 바라보았다. 그녀의 어두운 마음에는 안개가 끼어 있었다. 이승하는 마치 시간이 부족한 듯, 그녀를 빠르게 생의 문 안으로 밀어 넣으며 두 글자를 말했다. “떠나.” 그 두 글자는, 서유가 들었던 종이쪽지에 적힌 ‘떠나’와 다를 바 없었다. 아주 차갑고, 감정 없이 그녀의 몸과
이승하는 그 자리에서 멈춰서서, 머릿속에서 계속 울리는 카운트다운 소리를 들었다. 두개골이 열리고 칩이 이식된 후, 그의 위치와 말은 모두 감시되고 있었다. 방금 그는 아홉 번째 라운드의 프로그램을 수정했고, 1-1이 설정한 프로그램도 해킹하여 권한을 얻었다. 그러나 그가 이곳에 나타나 말을 꺼낸 순간, 1-2는 이미 그가 게임 구역의 프로그램을 변경한 것을 알아챘다. 지금 1-2는 즉시 폭파 프로그램을 가동하지 않고 5분의 카운트다운을 보내며 그에게 기회를 주고 있었다. 그는 함부로 말할 수 없었고 5분 안에 돌아가지 않으면 그의 머리는 폭발하고, 그녀 역시 죽게 될 것이다. 이승하는 서유의 뒷머리에 겨누어진 붉은 사살 레이저를 보며 꽉 쥐었던 주먹을 서서히 풀었다. 그는 재빨리 서유를 안아 생명의 문 안으로 집어넣고, 손을 들어 그녀의 어깨를 눌러 더 이상 움직이지 못하게 했다. “나는 당분간 돌아갈 수 없어. 너는 빨리 떠나. 그리고 다시는 나를 찾지 마. 너무 위험해.” 그의 머리는 통제되고 있었으며 루드웰에서 100미터만 벗어나면 자동으로 폭발하게 되어 있었다. 이승하는 그녀가 불안해하지 않기를 바랐기에 말을 마치고는, 재빨리 돌아서 문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 하지만 서유는 그의 말을 듣지 않고 걸음을 옮겨 그를 쫓아가려 했고, 그 순간 이승하가 갑자기 뒤돌아보았다. “다시는 나를 찾지 말라고 했잖아. 내 말을 그냥 흘려듣더니 이제는 육성재까지 연루시켰어. 그걸로도 부족해?” 그 한마디에 서유의 손과 발이 순식간에 굳어버렸다. 마치 인형처럼 꼼짝도 할 수 없었고 그저 멍하니 그를 바라볼 뿐이었다.‘난 당신이 죽은 줄 알았어요. 당신이 너무 걱정돼서, 그래서 찾고 싶었을 뿐이에요. 내가 성재 씨를 데리고 온 것도 아니고 그 사람을 일부러 연루시킨 것도 아니에요...’ 이런 말들이 서유의 머릿속을 맴돌았지만 한 마디도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 이승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고 해도 듣지 않았다.
이승하는 그 목소리를 듣고 차가운 얼굴로 뒤를 돌아보았다. 연지유가 하이힐을 신은 채 천천히 걸어오고 있었고, 그녀의 뒤에는 조종기를 들고 있는 봉태규와 두 사람의 생명을 보호하는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이 따라오고 있었다. 이승하의 음침한 눈빛은 봉태규의 손에 있는 조종기를 강하게 응시했다. 그는 S 멤버들의 명단을 가지고 있었고, 1-2는 그를 높이 평가해 칩의 조종권을 그에게 맡긴 상태였다. 이승하가 연지유에게 손을 대기만 하면 봉태규는 조종기를 사용해 그를 제어할 것이고, 이승하가 봉태규에게 손을 대면 1-2가 칩의 프로그램을 가동해 그를 고통에 빠뜨리며 복종하게 만들 것이다. 이렇게 그들 사이의 관계는 이미 완벽한 고리로 얽혀 있었다. 그의 뇌에 이식된 칩의 조종이 누구 손에 있든 상관없었다. 중요한 것은 서유가 떠날 수 있는 권한을 1-2가 연지유에게 넘겼다는 것이었다. 이제 연지유의 손에는 서유의 목숨이 달려 있었다. 이승하는 차가운 눈빛을 들어 연지유를 쳐다보며 말했다. “권한을 해제할 수 있는 조작대는 어디에 있지?” 방금 그가 사용한 조작대는 소용이 없었다. 이곳을 통제하는 조작대를 찾아야만 프로그램을 해제할 수 있었다. “1-2가 가지고 있어. 하지만 너는 상구역에 갈 권한이 없어. 보스를 찾을 수 없으니 이곳을 떠나는 프로그램도 해제할 수 없겠지.” 연지유는 매번 이승하 앞에 나섰을 때 예상치 못하게 그에게 제압당하곤 했다. 이번에는 조심해서 나오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과거 죽음의 문에서 이승하를 제압했던 검은 옷을 입은 경호원들을 데리고 왔다. 비록 그가 죽음의 문에서 혼자 열 명을 상대할 수 있었지만 결국 수적으로 밀려 검은 옷을 입은 사람들에게 제압당해 두개골을 열고 강제로 칩을 이식당했다. 이승하가 머리를 강제로 절개당하고 피가 흘러내릴 때조차 신음 소리 하나 내지 않았던 모습을 떠올리자 연지유의 마음이 잠시 흔들렸지만, 이승하는 그녀의 호의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그녀는 그를 위해 검은 옷을
그녀는 천천히 고개를 들고 아무 말 없이 이혼 협의서를 건네는 남자를 바라보았다. 그를 뚫어져라 쳐다보며 입을 떼려 했지만 여러 번 울컥거려 결국 아무 말도 할 수 없었다. 눈가에 맺힌 물기가 번져나가 점차 눈물을 이뤘고, 그 뜨거운 눈물이 눈꺼풀을 타고 떨어지더니 이혼 협의서 위로 뚝뚝 떨어졌다. 그 눈물은 종이를 적셨고 동시에 이승하의 눈가도 촉촉하게 만들었다. 그는 서유를 제대로 바라볼 용기가 없었다. 서류를 그녀의 손에 쥐여준 뒤, 빠르게 몸을 돌려 등을 보인 채 한마디를 남겼다. 그의 목소리는 미세하게 떨렸지만 차가운 어조 속에 그 떨림은 거의 느껴지지 않았다. “사인해.” 서유는 미소를 살짝 지으며 눈앞에 서 있는, 자신을 보호했던 그 커다란 등을 바라보았다. 그녀는 결국 그를 더 사랑하고 있었기에 심한 말을 꺼내지 못했다. 대신, 작은 손으로 그의 소매를 잡아 그를 돌려세웠다. 그가 다시 자신을 향해 돌아서자, 서유는 어쩔 줄 몰라 하며 생의 문 위에 있는 스크린을 가리켰다. “아까 나보고 가라고 했죠. 계속 여기서 기다리고 있었던 건 아직 시간이 안 돼서 못 갔을 뿐이에요. 시간 되면 바로 떠날 거예요. 다시는 승하 씨를 찾지 않을게요. 그러니까 제발 이혼만 하지 말아줘요, 응?” 서유는 이승하가 자신을 떠나게 하려는 이유를 알고 있었다. 그가 그녀를 위험에 빠뜨리고 싶지 않아서 그런다는 것을. 그래서 마지막에는 그의 말에 순순히 따랐고 게임의 아홉 번째 생의 문 안에 남아 있었다. 문이 닫히지 않았기에 그녀는 떠나지 못했을 뿐이었다.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가 이런 식으로 그녀를 떠나게 할 필요는 없지 않은가? 서유는 눈물이 가득 고인 채로, 끝내 아무 말도 하지 않는 이승하를 바라보았다. “몇 년 전, 당신은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나를 버렸어요. 이제 나도 알아요. 당신은 또다시 어쩔 수 없는 이유로 나를 떠나게 하려는 거겠죠. 나는 당신이 원한다면 떠날게요. 그런데 왜 아무것도 설명하지 않고 이렇게 매정하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