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준섭이 심리적으로 건강하지 못한 사람이라고 할 수 있지만 친구를 대할 때는 정이 깊고 의리가 있었다. 그의 형이 소준섭에게 자신을 감시하라고 부탁했음에도 소준섭은 한 번도 형에게 나쁜 소식을 전하지 않았다. 오히려 그의 기억을 되찾게 하기 위해 여러 방법을 시도하기도 했다.그가 죽었다고 생각했을 때도 소준섭은 술 몇 병을 들고 그의 묘 앞에 앉아 묵묵히 술잔을 기울이곤 했다. 그렇게 하루 종일 앉아 있던 적도 많았다.이후 다시 제국으로 돌아왔을 때 소준섭은 너무나 기뻐서 눈물을 흘렸고 두 다리를 잃은 그를 장애인으로 보지 않았다. 소준섭은 그를 데리고 여기저기 돌아다녔고 그의 다리를 치료하려고 온갖 방법을 동원했다. 그러나 그때의 김시후는 사랑을 얻지 못한 절망감에 서서히 일어설 의지를 잃어가고 있었기에 소준섭의 제안을 번번이 거절했다.김시후는 생각했다. 만약 그때 소준섭의 도움을 거절하지 않았다면 그의 뛰어난 의술로 인해 자신이 다시 일어설 수 있었을지도 모른다고. 하지만 소준섭과 주서희 사이에도 얽히고설킨 일이 너무 많았다. 소준섭 자신도 지독한 고통 속에 살고 있었기에 자신의 다리와 우울증을 위해 소준섭이 여기저기 뛰어다니게 할 수는 없었다.그런데도 자신조차 돌볼 여유가 없었던 그가 죽기 직전까지도 자신의 다리와 앞으로의 삶을 걱정해 주었다는 사실에 송사월은 부끄러워 고개를 숙였다. 소준섭의 창백한 얼굴을 마주하는 순간 그는 눈시울이 붉어졌다.“준섭아, 네 유언 꼭 들어줄게. 부디 편히 쉬어라...”주서희의 손가락은 김시후를 위한 유언을 넘어 마지막 줄로 향했다.[다음 생엔...]단 네 글자만 쓰여 있었다. 그 후에는 더 이상 이어지지 않았다. 피의 자국을 보면 유언을 쓰다 도중에 죽은 것이 아니라 그가 이 지점에서 이 세상에 자신을 찾을 사람이 없을 것이라 느끼고 더 이상 쓸 의미가 없다고 생각한 듯했다.소준섭에게 있어 계모와 결혼한 아버지는 이미 마음이 온통 계모에게 쏠려 있었고, 계모와의 갈등으로 인해 아버지와의 관계는 나빠져
송사월조차 모르는 사실이라면 아마 아무도 알지 못할 것이다. 아마 그 당시 소준섭은 그저 그렇게 악랄하게 굴고 싶었을 것이다. 주서희를 철저히 괴롭히기 위해 사람들을 보낸 것일 테니 말이다.어쨌든 그때 그는 주서희를 몹시도 증오했다. 비록 그녀를 조금이라도 좋아했을지라도 그동안 쌓인 증오가 훨씬 컸다. 게다가 그는 자신이 좋아한다는 사실조차 깨닫지 못했다.이제는 더 이상 답을 찾을 수 없게 된 주서희는 천천히 눈을 내리깔고 여전히 햇빛 속에 있는 소준섭을 바라보았다. 그녀의 차가운 손가락은 무의식적으로 그의 얼굴을 어루만졌다...손끝이 차갑고 굳어진 그의 뺨에 닿았을 때 주서희는 그를 한번 안아보고 싶었지만 결국 행동으로 옮기지 못했다. 그저 조용히 그를 응시할 뿐이었다.얼마나 시간이 흘렀는지 모르겠지만 주서희는 다시 송사월에게 물었다. “누가 준섭 씨를 죽였는지 묻지 않나요?”송사월은 주서희의 가녀린 등을 바라보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준섭이가 널 지키고자 했다면 누가 그를 죽였는지는 중요하지 않아...”자살로 위장된 흔적이 아무리 정교해도 송사월은 소준섭을 너무 잘 알기에 속지 않았다. 분명 소준섭은 너무도 폭력적이었고 주서희가 총을 쏘게 강요했을 것이다. 그러나 그는 주서희에게 어떤 책임도 지우지 않으려 했기 때문에 죽기 직전 자살로 위장한 것이다.송사월은 오래도록 생각했다. 만약 그가 소준섭의 입장이었다면 그 역시 같은 선택을 했을 것이다. 어떤 사람들의 사랑은 집착에 가깝지만 그 사랑은 진심이었고, 그래서 모든 것을 심지어 목숨까지도 내줄 수 있는 것이다...하지만 이 결말은 떠난 자에게는 해방일 수 있으나 남겨진 자에게는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특히 그를 직접 쏴 죽인 사람에게는 더욱 그렇다. 그러니 이 오랜 세월의 사랑과 증오 속에서 도대체 누가 승자이고 누가 패자인지 누가 알겠는가?송사월은 주서희를 비난하지 않을 것이다. 그를 지키고자 했던 친구의 유언을 존중할 것이다. 하지만 주서희 스스로는 자신을 탓하게 될 것이다.
소수빈이 그렇게 아래층으로 끌려오곤 멍하니 있던 주서희에게 다가가며 말을 걸었다.“서희야...”아연실색한 주서희를 보며 소수빈은 그녀가 무서워한다고 생각하곤 그녀의 어깨를 툭툭 쳤다.“걱정하지 마. 소준섭이 죽었으니 앞으로 너한테 집착할 사람은 아무도 없을 거야.”주서희는 눈 밑에 달아오른 붉은 빛을 감추고는 입꼬리를 올려 개운하나 조금은 쓴웃음을 지었다.“그래요, 소준섭이 죽었으니 이제 더 이상 나를 괴롭힐 사람이 없어요. 정말 다행이에요.”소수빈은 그녀의 감정을 알아채지 못하고 정말로 기뻐하는 줄 알았다. 서둘러 몸을 돌려 저 멀리를 가리켰다.“서유 씨와 가혜 씨가 저기서 기다리고 있어...”소수빈이 가리킨 방향을 따라 보니 서유와 정가혜가 배 아래에서 그녀를 기다리고 있었다.그녀가 나온 것을 눈치챘는지 서유와 정가혜는 서둘러 발걸음을 옮겼다. 그녀에게 빠르게 걸어오더니 거의 뛰다시피 달려와 그녀를 껴안았다.따뜻함을 느낀 주서희도 두 사람을 안아주었지만 왜인지 그들이 주는 힘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주서희의 마음은 여전히 덩굴에 감긴 듯 조금씩 가라앉고 있었다. 그 답답하고 숨 막히는 느낌에 주서희는 숨을 제대로 쉴 수가 없었다...하지만 그녀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그저 서유의 어깨에 턱을 기대고 있었을 뿐, 소준섭의 시신이 운구차에 실려 내려가는 것조차 돌아보지 못했다...서유는 하얀 손을 들어 주서희의 등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주서희가 병실을 뛰쳐나갔을 때부터 그녀의 마음속에 소준섭에 대한 죄책감과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감정이 있다는 것을 알았다...이 감정은 아마도 사랑했던 사람을 자신의 손으로 죽였다는 것에서 오는 것일 수도 있고, 오랫동안 얽혀있던 관계가 갑자기 끝났다는 부적응 때문일 수도 있고 또는...주서희가 아직도 소준섭을 사랑하는지 그 답은 오직 그녀 자신만이 알고 있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보는 서유조차도 정확히 알 수 없는 일이었다...그녀는 주서희를 달래고 나서 그녀를 놓아주고 배에 태우려고 했다. 하지만
현지 경찰들은 현장을 봉쇄한 뒤 총기 사건의 경위를 조사했다. 그러고는 이내 소준섭이 자살한 것으로 결론을 내리고 국내 경찰에 연락을 취하였고 사건은 그렇게 종결이 되었다. 얼마 후, 시신은 화장터로 옮겨졌고 그의 시신은 바로 화장을 마쳤다. 불 속에서 타고 있던 소준섭의 시체가 벌떡 자리에서 일어났다. 그 모습에 주서희는 이 모든 게 진실이기를 바랐다.의사인 그녀는 사람이 사망한 후 3일 동안은 인체의 근육이 완전히 죽지 않았기 때문에 근육 조직이 타는 듯한 통증을 느끼면서 신경 반사 현상이 있을 수 있다는 걸 잘 알고 있었다. 그 순간에 소준섭이 벌떡 일어나 앉은 건 다만 근육이 아파서 보인 반응일 뿐이다. 소준섭은 이미 죽었고 다시는 돌아오지 않을 것이다...그리고 그가 죽기 전, 그는 그녀가 이 일에 연루되지 않도록 그녀를 보호하였지만 자신은 오히려 성폭행범으로 몰리게 되었다. 세상을 떠난 후, 그는 좋은 명성을 얻지 못하였고 소정의에 의해 가문에서 쫓겨나게 되었으며 소씨 가문에 더 이상 소준섭이라는 사람은 없게 되었다. 다만 체면을 위해 그들은 소준섭의 유골을 받으러 해외까지 달려왔다 . 소정의를 따라오는 사람들 중에는 송문아 그리고 늦은 나이에 얻은 일곱 살짜리 아이도 있었다. 아주 어린 아이였지만 눈빛은 야무져 보였다. 한편, 주서희가 소준섭의 유골함을 소찬우에게 건네주었을 때 그는 상자를 건네받아 바로 뒤에 있는 하인에게 던져주고는 다시는 쳐다보지 않았다. 죽은 사람의 유골이 담겨져 있는 상자라고 한껏 불쾌한 표정을 지으면서 말이다. 동생으로서 꼭 들고 있어야 할 유골함이지만 소찬우는 매몰차게 들고 있는 것조차 거부했다. 옆에서 지켜보고 있던 그녀는 아무 말이 없었다. 어찌 됐든 그녀 때문에 그가 죽은 것이니까. 일곱 살짜리 아이가 소준섭한테 무슨 좋은 기억을 가지고 있겠는가? 게다가 소준섭도 이 아이한테 쌀쌀맞게 대했었다. 근데 무슨 이유였을까? 유골함을 만지던 송문아의 얼굴에 희미한 웃음이 그려졌다. 소준섭의 어머니를
어린 시절의 그녀는 이 문제에 대해 깊이 생각해 본 적이 없었다. 단지 고모가 자신을 돕고 있다는 생각에 고모의 말에 따라 용감해져야 한다고 생각했었다. 하여 그녀는 송문아의 말에 따라 늘 소준섭에게 관심을 가지고 그의 뒤를 쫓아다녔고 가끔은 성적이 안 좋다는 핑계까지 대면서 소준섭한테 공부를 가르쳐 달라고 했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아주 나빴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용감하게 그를 찾아갔다. 자신의 정성 어린 마음이 언젠가는 소준섭의 마음을 열 수 있을 거라고 생각했고 언젠가는 그가 자신을 좋아할 거라고 믿었다. 그러나 애석하게도 그런 일은 일어나지 않았다. 송문아에 대한 싫은 마음 때문에 그는 그녀까지 미웠다. 그녀가 가까이 다가올 때마다 그는 그녀에게 다짜고짜 화를 냈고 여우같이 남자한테 꼬리를 친다며 역시 송문아의 조카딸이라고 욕설을 퍼부었다. 그러면서 그녀한테 멀리 떨어지라고 했었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그는 그녀를 싫어하면서도 한밤중에 그녀의 방에 왔었다. 가끔 자다가 눈을 뜨면 그가 옆에 서서 복잡한 표정으로 그녀를 노려보다가 그녀에게 들키기라도 하면 독살스럽게 노려보고는 돌아서기도 했다. 그 후, 송문아는 그녀의 방에서 나오는 소준섭을 몇 번 마주치더니 어찌 된 일인지 갑자기 말을 바꾸며 그에 대한 마음을 접으라고 하고는 백호를 좋아하라고 했다. 백호는 그녀와 같은 반 친구였다. 어느 날, 학교에서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건달들을 만나게 되었고 그때 그녀를 구해준 사람이 바로 백호였다. 그날 그녀를 집까지 데려다준 걸 마침 송문아가 보게 된 것이다.백호의 집안 배경을 조사해 본 송문아는 백호가 괜찮은 남자라는 생각이 들었다.그러나 대놓고 주서희에게 백호랑 어찌해보라는 말을 하지 않았다. 그저 백호가 예의가 바른 사람인 것 같다면서 소준섭보다 훨씬 교양이 있어 보인다면서 친구로 잘 지내라고만 했다. 주서희는 친구가 별로 없었고 게다가 백호는 확실히 괜찮은 사람이었다. 늘 먼저 그녀를 찾아와 말을 걸었고 시간이 지나면서 두 사람은 가까워지게
이해가 되지 않았던 그녀는 송문아의 앞으로 다가가 물었다.“고모, 왜 웃으세요?”송문아는 웃음을 감추지 않고 오히려 환한 미소를 지으며 손을 뻗어 그녀의 머리를 쓰다듬었다.“우리 서희가 이 악마 같은 놈한테서 완전히 벗어나게 되어서 웃는 거야.”송문아는 그녀를 매우 불쌍히 여기는 듯 아주 가볍고 부드럽게 그녀의 볼을 어루만졌다.“그동안 소준섭 때문에 네가 고생한 거 고모는 다 알고 있다. 널 보면서 내 마음이 너무 아팠어. 얘가 죽어서 내 마음이 편치는 않지만 그러나 네가 고통에서 벗어난 것보다 더 중요한 게 어디 있겠느냐?”송문아는 그녀에게 잘해주었다. 돈도 사랑도 아낌없이 주었고 그녀가 처음 소씨 집안으로 들어왔을 때, 소정의가 준 돈을 그녀의 통장에 넣어주었고 부동산도 여러 개 주었다.어렸을 때부터 가난하게 살아온 주서희가 어린 나이에 이미 억만장자가 될 거라고 누가 생각이나 했겠는가?소준섭을 대하는 송문아의 태도는 그녀가 보기에 아주 다정했다. 늘 소준섭에게 관심을 가졌고 그를 정성껏 보살펴주었다. 아무리 소준섭이 냉담하게 대하고 독설을 퍼붓고 폭력적으로 대하더라도 송문아는 아무런 불평도 하지 않고 뒤끝도 없이 소준섭을 아껴주었다. 다만 소준섭은 주서희가 없는 곳에서 송문아가 겉과 속이 다른 사람이라고 욕설을 퍼부었고 그때면 송문아가 입을 열기도 전에 소정의가 먼저 나서서 그의 뺨을 후려쳤다. 뺨을 맞은 소준섭은 아무 말도 하지 않은 채 의자를 걷어차고 일어나 소씨 가문을 떠났다. 세 사람이 갈등을 겪고 있을 때, 주서희는 위층에 있는 편이 많았고 실수로 부딪히기라도 하면 송문아가 그녀에게 얼른 가라고 눈빛을 보냈다. 남의 집에 얹혀살고 있는 신세에 그 집안일에 끼어드는 것은 좋지 않다는 생각이 들어 얌전하게 멀리 떨어져 있었다.그 후 세 사람의 갈등은 점점 더 많아졌고 그녀는 가까이하지도 않았고 엿듣지도 않았다. 하여 매번 세 사람의 갈등이 폭발하는 이유를 그녀는 알지 못하였다. 주서희의 기억 속에 송문아는 정말 온화하고 착한
소준섭의 유골함은 소정의의 가족들이 가지고 귀국했다. 부산 쪽에서 전해온 소식에 의하면 송문아가 의붓아들에 대해 정이 매우 깊다고 했다. 반면 소정의는 소준섭이 가문 망신을 시킨 놈이라고 하면서 장례를 크게 치르는 것을 반대했다. 그 일로 송문아는 소정의와 대판 싸웠고 아무리 평판이 안 좋아도 어찌 됐든 소씨 가문의 아들이니 장례를 크게 치러야 한다고 했다. 결국 송문아의 고집을 꺾을 수 없었던 소정의는 그녀에게 장례를 맡겼고 조문 온 사람들의 말에 의하면 송문아가 소준섭의 영정 사진 앞에서 무릎을 꿇은 채 기절할 정도로 눈물을 흘렸다고 했다. 부산에서는 그녀가 최고의 계모라고 소문이 자자했고 소준섭은 은혜도 모르는 의붓아들이라고 낙인찍혔다. 그 소식을 들을 때, 주서희는 한창 주삿바늘을 들고 약을 바르고 있었다. 흠칫하지도 않고 표정도 크게 변하지 않았다. 죽은 사람에 대해 전혀 감정이 없는 사람처럼 귓등으로 흘려보냈다. 얼마 후, 파미란에서 돌아온 그녀는 윤주원을 병원에 입원시키고 곁에서 그의 일상생활을 돌보면서 정상적으로 출근하고 해야 할 일들을 조금도 빼놓지 않고 예전과 다름없이 바쁜 나날을 보냈다. 서유와 정가혜는 처음에 그녀가 소준섭 때문에 마음을 추스르지 못할까 봐 많이 걱정되었다. 근데 뜻밖에도 그녀는 돌아오자마자 바로 흰 가운을 입고 일을 시작했다. 소준섭을 언급하든 언급하지 않든 그녀는 늘 환한 얼굴이었고 마치 소준섭이 세상을 떠난 게 그녀에게는 고통에서 벗어난 일인 것 같았다.주서희는 그들에게 일부러 자신 앞에서 소준섭의 얘기를 회피할 필요가 없다고 말했다. 그가 없으니 더 이상 전전긍긍하며 살 필요가 없게 되었다. 그래서 조문도 가지 않았고 그가 어떻게 묻어있는지도 묻지 않았다. 서유와 정가혜는 그녀의 그런 모습을 보고 더 이상 뭐라 하지 않았다. 그저 무슨 일이 있으면 언제든지 연락하라는 당부만 했다.그녀는 알았다면서 고개를 끄덕이고는 각자 볼일 보라고 그들을 돌려보냈다. 서유는 설계도를 서둘러 마무리해야 했고 정
윤주원의 손은 빠른 시간 안에 응급 처리를 했기 때문에 특별히 심각한 후유증 없이 이미 많이 회복되었고 조금 더 치료하면 퇴원할 수 있는 상태였다. 그녀가 병실로 들어오자 윤주원은 옆에 있던 부모님을 내보냈고 그의 부모님들도 눈치껏 그녀를 한번 보고는 얘기를 나누라고 자리를 피했다. 그녀는 침대 옆으로 다가가 앉으며 물었다.“오늘은 어때? 손은 움직일 수 있어?”윤주원은 고개를 끄덕이며 촉촉한 눈동자를 들어 그녀를 쳐다보았다.“말끔히 다 나을 거니까 걱정하지 말아요.”그녀는 그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살펴보았고 회복이 잘 되고 있다는 것을 확인하고 나서야 대답했다.“회복은 될 수 있지만 앞으로 수술은 더 이상 힘들 거야.”“제약 회사에 한동안 다녀보니까 난 수술하는 의사보다 약품 개발에 더 관심이 있더라고요.”“훌륭한 외과의사였잖아. 이렇게 수술 기회를 놓치는 건 너무 아까워.”그가 옅은 미소를 지었다. “사실 의사든 약을 개발하는 사람이든 수술을 하든 환자의 재활에만 도움을 주든, 모든 게 다 사람을 구하는 일이잖아요. 사람을 구할 수만 있다면 아쉬울 게 없어요.”마지막 한마디에 그녀는 마치 무언가에 이끌려 과거로 돌아간 듯 멍해졌다.열여덟 살의 소준섭도 이와 똑같은 말을 했었다. 그 당시 그는 두 손을 주머니에 넣고 계단에 기댄 채 소씨 가문의 사람들이 그의 취업 방향에 대해 의논하고 있는 것을 조용히 지켜보고 있었다. 소유성은 의사 가문을 이어 나가야 한다고 천부적인 재능을 낭비해서는 안 된다면서 의술을 배워야 한다고 했다.반면 소정의는 컴퓨터를 잘 다루니 금융 업계에 필요한 인재라고 하면서 금융업에 종사해야 한다고 했다. 두 부자가 이 일로 얼굴을 붉히며 싸웠고 결국 소정의의 뜻을 굽히지 못한 소유성은 화가 나 죽을 지경이었다. 이때, 소준섭이 소유성을 다독였다.“제가 어떤 일을 하든 사람을 치료하고 구할 수만 있다면 아쉬울 게 없어요.”소준섭은 대학에서 금융학을 전공하기로 소정의와 약속했기 때문에 소정의는 그가 대학