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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화

Author: 재인
자리에 앉자마자 구승훈이 그녀의 허리를 확 감싸 안고 그녀의 어깨에 턱을 고인 채 술 냄새를 풍기며 물었다.

“왜 왔어?”

강하리는 허리가 경직됐다.

“대표님이 취하신 줄 알고요.”

구승훈이 가볍게 웃었다.

“언제 내가 취하는 거 봤어?”

강하리는 문득 침묵했다.

그랬다. 이 남자는 단 한 번도 취한 적이 없다!

그토록 자율적이고 경계심 많은 구승훈이 술에 취해 인사불성이 될 리가 있을까?

전에 그 많은 술자리에 참석하면서도 구승훈은 취한 적이 없다.

“미안해요.”

강하리는 사과하는 수밖에 없었다.

구승훈의 나긋나긋한 목소리가 귀를 간지럽혔다.

“사과할 거 없어. 난 그냥 궁금했거든. 오늘 밤에 누구 전화든 다 달려 나왔을지 말이야.”

강하리는 침묵하다가 대답했다.

“대표님과 연관된 일이라면 전부 달려왔을 겁니다.”

구승훈이 천천히 말했다.

“바보.”

그리곤 한쪽 옆으로 기댔다.

강하리는 ‘바보’라는 두 글자를 꼼꼼히 되새겨보았는데 아무래도 비난의 뜻에 더 치우치는 듯싶었다.

나머지는 뭐... 그녀가 정말 바보 같다고 생각됐나 보지.

“강 부장, 함께해요.”

강하리가 거절했지만 이 인간들은 그녀를 놓아줄 기세가 아니었다.

“강 부장, 괜찮아요! 게임은 게임일 뿐이잖아요.”

“그래요. 다들 알고 지낸 지 오래됐는데 함께 게임한 적도 없네요. 강 부장 설마 이렇게까지 우릴 체면 안 주는 건 아니겠죠?”

뭇사람들이 한마디씩 주고받았다.

강하리는 구승훈을 힐긋 쳐다봤다.

구승훈의 눈빛이 한없이 싸늘해졌다.

“강 부장, 우리 형 왜 봐요? 얼른 와서 놀아요!”

구승훈은 여전히 아무 말도 없었다.

강하리는 마지못해 눈 딱 감고 그들 앞으로 다가갔다.

이번엔 왕게임이었다.

첫판은 운 좋게 안 걸렸지만 이제 막 한숨 돌리려 할 때 사태는 벌어지고 말았다.

이번 판에 왕은 구승재였고 그는 음침한 눈빛으로 지령을 내렸다.

“3번이랑 4번 30초 동안 키스해.”

3번은 강하리였고 4번은 구승훈의 몇몇 친구 중 한 명인 노민우였다.

패를 보인 순간 룸 안이 발칵 뒤집혔다.

놀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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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강하리는 오후에 사무실 대신 심씨 가문으로 갔다.그녀가 전화를 걸었던 탓인지 심씨 가문 사람들은 웬일로 모두 집에 와 있었다.연말이라 발붙일 틈도 없이 바쁜 진태형도 보이자 안으로 들어서던 강하리가 멈칫했다.“지금 이게 무슨 상황이죠?”심문석은 찡그린 얼굴로 불쾌함을 내비쳤고 백아영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그녀를 바라보고 있었다.심금천과 진태형도 표정이 그리 좋지 않았다.심준호만 유일하게 웃으며 말했다.“다 끝났어?”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애써 얼굴에 미소를 띠었다.“다들 걱정하게 해서 죄송해요.”“그런 말 하지 마!”심문석이 갑자기 소리를 질렀다.“바보 같은 것, 우리는 그동안 구승훈이 찾아와서 제대로 설명하길 기다렸는데 너 그놈한테 얘기를 전달하긴 했어?”강하리는 입술을 달싹이며 속상한 듯 말했다.“증조할아버지, 죄송해요.”심문석은 기가 막혔다.“내가 네 사과 듣자고 이러는 것 같더냐? 왜 이 지경이 됐는데도 구승훈 그 망할 놈을 싸고도냐는 말이다! 하리야, 넌 내 귀한 자식인데 왜 그런 서러움을 당하고만 살아.”꾹 참고 있던 강하리는 심문석의 말에 마침내 무너져 내렸고, 심준호는 한숨을 내쉬며 다가와 그녀를 품에 끌어안았다.그에게 안기는 순간 강하리는 목 놓아 울었다.“내가 구승훈 그 자식을 가만히 두나 봐라. 대체 뭐 하자는 거야, 우리 하리가 뭐가 부족해서!”화가 난 심금천이 소매를 걷어붙이며 밖으로 나가려 하자 강하리가 황급히 그를 불렀다.“할아버지, 가지 마세요.”심금천은 여전히 분노가 가시지 않았다.강하리가 다가가서 심금천의 팔을 끌어당겼다.“이제 다 끝났어요. 그럴 필요 없어요.”심문석은 화가 난 얼굴로 강하리를 노려보았다.“그래, 끝났으면 올라가서 쉬어. 얼굴이 무슨 종잇장처럼 허옇게 질려선.”강하리는 웃으며 백아영 곁으로 달려갔다.“할머니, 저 배고파요.”백아영은 뭐라고 하려다가 차마 입이 떨어지지 않았다.“그래, 조금만 기다려. 할머니가 밥해줄게.”강하리는 오후 내내 잠을 자다가 저녁때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21화

    말하면서도 강하리는 자신이 웃고 있다고 생각했다.하지만 그 미소는 몇 초도 유지하지 못한 채 굳어버렸고 그녀는 도망치듯 고개를 돌렸다.그런데 구승훈이 갑자기 그녀의 턱을 잡았다.“더 이상 날 쳐다보기도 싫은 거야?”남자의 손가락에 얇게 박힌 굳은살이 강하리의 턱 피부를 찌르는 듯했다.문득 모든 게 갑자기 우스꽝스러워졌다.‘울며불며 이혼하지 않겠다고 소란을 피워야 하나. 그렇게 애원해야만 이 이혼이 없었던 일이 될까.’그녀의 입꼬리가 파르르 떨렸다. 그녀가 애원하지 않았던가.몇 번이고 이 남자를 위해선 아무것도 상관없다고 생각했는데 결국 힘든 건 그녀의 마음뿐이었다.“구승훈, 좋게 끝내자. 지금 와서 이런 말 하는 게 무슨 의미가 있어?”구승훈의 눈동자가 검게 가라앉고 입꼬리가 움찔하다가 한참이 지난 후에야 그가 말했다.“같이 밥이라도 먹을까? 이혼도 했는데 저녁 한 끼 어때?”강하리는 그의 손가락을 떼어냈다.“됐어, 두 사람 데이트 방해하지 않을게.”강하리의 말이 끝나고 나서야 구승훈은 어느새 법원 앞에 나타난 임희주를 발견했다.하지만 구승훈은 상대를 끌어당기며 놓아주지 않았다.“놔!”강하리의 얼굴이 다소 창백했다.어젯밤 임희주와 그런 통화를 나눈 후로 다시는 그런 괴로운 일을 겪고 싶지 않았다.그러자 구승훈은 고개를 돌려 임희주를 바라봤다.“임 선생은 부르지도 않았는데 제 발로 잘만 찾아오네.”임희주는 주먹을 꽉 쥐어 손톱이 살을 파고들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승훈 씨, 오늘 드레스 사러 가자면서요?”구승훈은 그녀를 힐끗 보고는 강하리를 옆으로 끌어당겼다.두 사람이 나란히 서 있고 강하리도, 구승훈도 한참 동안 아무 말이 없었다.알 수 없는 시간이 흐른 뒤 갑자기 강하리의 휴대폰이 울렸다.시선을 내려 휴대폰을 확인하니 화면 위에 ‘선배’ 두 글자가 나타났다.“할 말 없으면 이만 가볼게.”하지만 구승훈이 단숨에 그녀를 붙잡았다. 이대로 놓치면 그녀가 자기 삶에서 영영 사라질까 봐 두려운 듯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20화

    구승훈을 도와줄 수 없기에 기꺼이 손을 놓았다.다음 날 12월 25일.강하리가 비행기에서 내려 법원 입구에 도착했을 때는 이미 10시 30분이었다.날씨가 좋아 햇살이 몸을 비췄을 때 왠지 모르게 따뜻하게 녹아내리는 느낌을 받았다.구승훈은 검은색 코트를 입고 법원 앞에 서 있었다.엉망진창인 어제와 다르게 안색도 훨씬 좋아 보였다.“미안, 늦었네.”구승훈은 그녀를 슬쩍 보고는 별다른 말 없이 고개만 끄덕이며 이미 서명한 이혼 합의서를 건넸다.“내가 다시 작성했는데 한번 봐.”전에 작성한 합의서는 두 사람 모두에게 공평한 내용이었지만 이번 합의서에는 구승훈이 공동 재산을 모두 그녀에게 준다는 내용이 추가되었다.그녀는 고개를 끄덕이며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가방에서 펜을 꺼내 사인만 했다.구승훈은 고개를 숙이고 서명하는 그녀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다소 창백해진 그녀의 얼굴에 시선이 향했다.“어젯밤에 제대로 못 잤어?” 구승훈이 갑자기 잠긴 목소리로 물었다.“아니.” 강하리는 아무 일 없었다는 듯이 답했다.“잘 잤어. 가자.”말을 마치고 안으로 들어가려는 순간 구승훈이 갑자기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그의 눈에는 여전히 미소가 가득했다.“누가 봐도 제대로 못 잤는데 왜 거짓말해?”강하리는 가슴이 꽉 막히며 숨을 쉴 수가 없었다.‘그러게. 부부 사이에 속일 게 뭐가 있다고 당신은 나한테 거짓말하는데?’하지만 결국 입 밖에 꺼내진 않았다.“거짓말이 아니라 굳이 사실대로 말할 필요가 없으니까.”말을 마친 그녀는 구승훈의 손을 뿌리치고 안으로 들어갔다.그녀의 뒷모습을 바라보는 구승훈의 눈가가 붉게 물들었지만 로비에 들어섰을 때는 이미 말끔히 사라진 뒤였다.이혼하려는 사람이 많아 그들의 차례가 됐을 땐 점심시간이 가까워졌다.직원은 두 사람의 서류를 살펴본 후 다시 두 사람을 바라보았다.“결혼한 지 얼마 되지 않았네요?”강하리가 입술을 달싹이며 웃었다.“마음이 안 맞아서요.”직원이 중얼거렸다.“요즘 젊은 사람들은 결혼이 장난인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19화

    복도 끝에서 강하리의 모습이 빠르게 사라졌다.희미한 조명이 켜진 복도 입구에서 안현우의 눈동자가 살벌하게 번뜩이다가 의식을 잃었다.‘망할 년이 감히 날 때려?’파티장은 여전히 사람들로 붐볐고 강하리의 표정은 조금의 이상한 낌새도 보이지 않았다.최하영은 그녀와 함께 사람들과 얘기를 주고받으면서 나지막이 말했다.“죽이지는 않았죠?”강하리는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상대와 잔을 부딪쳤다.“안현우를 때린 사람들은 내가 괴롭힘을 당하는 걸 지켜볼 수 없어 정의롭게 나선 거예요.”최하영은 문득 기분이 좋아 보였다.“구 대표와 정말 이혼하면 제가 대시해도 될까요?”강하리는 차분하게 와인을 한 모금 마시고는 대꾸하지 않았다.최하영이 피식 웃었다.“아직도 포기하지 못했나 봐요?”강하리는 최하영과 함께 창가로 걸어가 바깥의 불빛을 바라보았다.“내려놓기가 쉽지 않지만 못할 건 없죠. 최 대표님도 오랫동안 재혼하지 않다가 저한테 대시한다고 말하셨잖아요.”최하영은 크게 웃더니 낮은 목소리로 안현우를 위해 파놓은 함정에 관해 이야기했다.“안현우가 정말 그 땅에 속을까요?”강하리는 눈을 내리깔고 손에 든 와인 잔을 바라보았다.“예전 같으면 망설였을 텐데 오늘 밤이 지나면 이성을 잃고 미쳐 날뛸 거예요. 내가 뭘 하든 막으려 들 테니까 걱정하지 마세요. 반드시 넘어와요.”최하영이 입꼬리를 비스듬히 올리며 강하리와 가볍게 잔을 부딪쳤다.“우리가 적이 되는 일은 영원히 없었으면 좋겠네요.”...파티가 끝났을 때는 이미 열시가 넘었고 강하리가 경찰서에 가서 진술하고 나왔을 때는 열한 시가 다 되어갔다.연성의 깊은 밤은 B시처럼 화려하고 북적거리진 않아도 강하리는 거리를 거닐면서 무척 좋은 곳이라는 생각이 들었다.결국엔 그녀가 오래도록 살아온 곳이라 어디를 가도 익숙한 풍경이 보였다.하지만 동시에 모든 곳이 낯설게 느껴지기도 했다.결국 그녀는 작은 선술집으로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한잔씩 술을 넘기면서 강하리는 문득 구승훈의 총각 파티에 갔던 사람들로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18화

    강하리가 시선을 바닥으로 보냈다.“제가 직접 하고 싶어요.”이를 본 최하영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고 그녀에게 당부했다.“그럼 이따가 조심해요. 조금이라도 이상하면 날 부르고요.”강하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최하영과 함께 파티장으로 들어섰다.두 사람은 입장하자마자 사람들의 시선을 한 몸에 받았다.강하리와 최하영이 함께 등장한 것이 이번이 처음은 아니었지만 그런데도 두 사람의 모습에 사람들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애초에 강하리와 구승훈의 열애설이 연성에서 큰 이슈가 됐던 데다, 두 사람 사이가 좋지 않다는 소문이 돌면서 강하리와 최하영이 함께 있는 모습을 본 사람들은 자연히 다른 생각을 할 수밖에 없었다.안현우는 사람들 틈에 서서 두 사람이 들어오는 모습을 보고 코웃음을 쳤다.“역시 천박하다니까. 구승훈과 헤어지자마자 최하영에게 들러붙네.”그는 조용히 중얼거리며 강하리를 바라보는 눈빛이 살벌하게 번뜩였다.강하리도 당연히 안현우의 시선을 느꼈지만 그저 조용히 최하영을 따라다니며 사교를 이어갔다.한바탕 대화를 나눈 후 강하리는 다소 술기운이 오른 듯 관자놀이를 문지르며 바깥 복도로 나갔다.안현우는 강하리가 혼자 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다가 와인 잔을 비우고 강하리를 따라 나갔다.그런데 그가 막 밖으로 나왔을 때 강하리의 목소리가 들렸다.“기명 사건은 이제 포기해요. 애초에 우리의 목적은 기명 제약이 아니었고 그건 단지 눈속임이라는 걸 잊지 마요. 성동 지역 땅만이 우리의 진짜 목적이에요.”상대가 무슨 말을 하자 강하리가 피식 웃었다.“삼촌이 곧 그쪽 땅을 개발한다고 알려줬어요. 걱정하지 마세요. 투자 규모가 크진 않아도 손에 넣으면 반드시 배로 뛸 테니까. 게다가 이미 최 대표님과 얘기 끝났어요. 최씨 가문과 협력하면 손에 넣는 건 시간 문제죠.”안현우의 눈에서 어두운 빛이 번쩍이며 가슴 속에 울화가 치밀었다.‘기명 제약이 사실은 강하리의 연막작전이라니, 젠장!’기명 제약을 손에 넣기 위해 수백억을 들이부었던 안현우는 강하리의 뒷모습을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17화

    강하리의 입꼬리가 파들 떨렸다.이유는 모르겠지만 순간적으로 웃음이 났다.조금 전 당황했던 자신이 퍽 우스웠다.“이미 결정했다면 그렇게 해.”어차피 그녀는 남자의 결정을 바꿀 수 없으니까.“그러면 오늘 오후 2시에 법원 앞에서 기다릴게.” 구승훈의 목소리는 여전히 여유로웠고 강하리는 시선을 바닥으로 보내며 대꾸했다.“오후에 바빠. 내일 오전 10시로 해.”그렇게 말한 뒤 그녀는 전화를 먼저 끊었다.아직 출근 시간 전이라 회사는 소름 끼칠 정도로 조용했고 강하리는 한참을 자리에 앉아 있다가 겨우 정신을 차렸다.휴대폰을 잡은 손이 살짝 떨리더니 이내 웃음이 터져 나왔다.나중에 병원 측에서 다시 연락이 왔지만 그쪽에서 무슨 말을 하는지 제대로 듣지 못했다.그러다 안예서가 그녀에게 다가와 말을 전했다.“대표님, 혹시 인수 때문에 연성으로 가시는 거예요? 제가 어떤 서류를 준비해야 할까요?”그제야 강하리는 갑자기 정신이 번쩍 드는 듯했다.그녀는 시계를 보고 벌써 열한 시라는 사실에 깜짝 놀라고는 애써 마음을 다잡으며 안예서를 향해 입꼬리를 올렸다.“아니야. 이번엔 개인적인 일로 가는 거야.”그렇게 말한 후 그녀는 짐을 챙겨 몇몇 전문가들이 묵고 있는 호텔로 가서 그들과 함께 식사한 후 함께 연성으로 향했다.노민준의 연구실에 온 건 그때가 처음이었다.전문가들은 지체하지 않고 도착하자마자 노민준과 토론을 진행했고, 강하리는 소파에 앉아 무심코 잡지를 넘기며 저쪽에서 오가는 이야기를 경청했다.휴대폰에 여러 개의 메시지가 연달아 도착했지만 강하리는 슬쩍 보고는 이내 휴대폰을 치워버렸다.굳이 들여다볼 필요가 없다.임희주가 보낸 것이니 보지 않아도 내용은 뻔했다.기껏해야 그녀를 조롱하면서 과시하는 말들이겠지.강하리는 조용히 번호를 차단했다.“수고했어요.”문득 노민준의 목소리가 귓가에 들리자 강하리가 고개를 들고 웃었다.“그건 제가 할 말이죠. 그동안 그 사람을 위해 노력하고 있는데 저는 부담만 줬네요.”노민준은 얼굴을 찡그렸다.“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16화

    서둘러 문제를 해결하고 강하리에게 돌아가고 싶은 마음이 간절했다.가볍게 미간을 누르던 그가 잠시 후 나지막이 말했다.“백화점에 가서 아무 장신구나 하나 사서 임희주에게 보내. 크리스마스에 나랑 같이 비즈니스 파티에 참석하라고 해.”준봉은 얼굴을 찌푸렸다.“하지만 대표님, B시 비즈니스 파티에는 사모님도 무조건 참석할 텐데요.”구승훈의 다리에 얹은 손이 움찔하더니 이내 웃으며 말했다.“신경 안 쓸 거야.”지금 그와 임희주가 함께 들락날락해도 전혀 신경 쓰지 않는 것처럼.준봉은 문득 무슨 말을 해야 할지 몰랐다.강하리는 밤새 서재에서 자료를 보다가 날이 밝을 무렵 가정부에게 연정이를 심씨 가문으로 보내라고 말하고는 서둘러 회사로 달려갔다.연말이 다가오면서 회사에도 일이 많아졌다.그런데 회사 입구에 막 도착했을 때 길 건너편 정안 건물에서 서둘러 걸어 나오는 사람들이 몇 명 보였다.경호원으로 보이는 사람들이 두 사람을 각자 엎거나 들고 있었는데 심각한 다친 것처럼 보였다.보이는 얼굴마저 푸른 멍으로 뒤덮여 있었는데 멍하니 상황을 지켜보던 강하리는 무슨 일이 있었는지 물어보고 싶었다.그녀가 다가가기도 전에 구승재가 안에서 황급히 걸어 나오는 것을 보았다.그는 재빨리 문 앞에 주차된 마이바흐 차량으로 걸어가 뒷좌석 문을 열었다.구승훈은 천천히 걸었지만 엉망진창인 모습을 감추지는 못했다.그의 몸에 걸친 옷은 어젯밤과 똑같았고 창백한 얼굴에는 핏기 하나 없었으며 항상 꼼꼼하게 손질하던 머리도 엉망으로 흐트러져 있었다.강하리의 숨이 턱 막혔다.분명 새벽까지만 해도 구승훈이 멀쩡했는데 헤어진 지 몇 시간밖에 되지 않은 사이에 왜 이렇게 된 걸까.강하리의 입술이 움찔하며 무슨 말이라도 하려는 찰나 구승훈이 갑자기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환한 아침 햇살 속에서 남자는 창백한 얼굴에 미소를 머금었다.추운 겨울인데 강하리는 그의 얼굴에 뒤덮인 땀방울이 보였다.마치 견딜 수 없는 고통을 참는 것 같았다.그녀가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지만 구승훈

  • 강 부장의 은밀한 임신   제1015화

    강하리는 손목을 잡은 손을 바라보다가 다시 침착하게 시선을 들어 구승훈의 두 눈을 마주했다.눈앞의 남자는 여전히 미소를 짓고 있어서 기쁜 건지 화난 건지, 슬픈 건지 속상한 건지 알 수 없었다.강하리는 눈썹을 치켜올리며 가볍게 웃었다.“그게 구 대표님과 무슨 상관이죠?”구승훈은 마음이 답답했다. 그는 언제나 여자의 말 한마디에도 말문이 턱 막혔다.본인이 먼저 손을 놓아버렸으니 물어볼 자격이 없다는 걸 잘 알지만 여전히 강하리의 손을 붙잡고 놓지 않으려 했다.단호하게 결심을 내렸던 만큼 미련이 그득했다.하지만 이제 돌이킬 수 없다는 것도 잘 알고 있었다.그는 코트 주머니에서 벨벳 상자를 꺼내더니 이렇게 말했다.“생일 선물로 주려고 얼마 전에 낙찰받은 거야.”강하리의 시선이 상자로 향하며 이렇게 대꾸했다.“필요 없어.”구승훈이 손아귀에 힘을 주자 강하리는 손목에 전해지는 날카로운 통증을 느꼈다.그녀는 다쳐도 상관없다는 듯 그의 족쇄에서 벗어나기 위해 조금 더 세게 몸부림쳤다.“하리야...”“구승훈!”강하리의 눈에는 너무 많은 감정이 담겨 있었다.“애초에 그런 결정을 내렸으면 다신 날 찾아오지 마. 힘들게 마음먹고 놓아줬는데 왜 계속 날 찾아오는 거야. 나는 뭐 힘들지 않은 줄 알아? 아니면 난 이런 고통을 겪어도 싸다고 생각하는 거야? 구승훈, 제발 나 좀 그냥 내버려둬!”강하리의 말이 떨어지자 구승훈의 얼굴이 창백해졌다.그는 알 수 없는 표정으로 웃더니 강하리의 손목을 천천히 놓아주었다.“미안, 일찍 자.”말을 마친 그가 뒤돌아 가버렸고 엘리베이터가 마침 도착했다.문이 열리고 구승훈이 안으로 들어서기까지 불과 몇십 초밖에 걸리지 않았다.엘리베이터 문이 천천히 닫힌 뒤에야 강하리는 힘이 풀린 듯 벽에 기대었다.그런 말을 뱉고도 마음이 괴롭지 않다면 거짓말이다.하지만 그것 말고는 뭘 할 수 있겠나.차라리 구승훈이 예전처럼 냉정하고 무관심한 태도를 보였으면 좋겠다.그러면 무의미한 갈등에 얽매이지 않아도 되니까.아무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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