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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2화

장지우는 내 앞에 다가와 계약서를 펼치고 손가락으로 짚어가며 보여주었다. 임도현을 믿고 있었기에 나는 이 계약서를 전혀 꼼꼼히 읽어보지 않았었다.

역시나, 지우의 안내에 따라 보니 계약금과 위약금에 관한 조항이 분명히 적혀 있었다. 지우는 여전히 여유 있는 표정으로 말했다.

“못 믿겠으면 남편한테 전화해서 물어봐요.”

이런 태도를 보니 이 일이 거짓이 아님을 알 수 있었다. 방 안에 있던 다른 사람들은 나를 지겨운 눈빛으로 바라보며 얼굴에 진짜 시간 낭비하네라고 써 놓은 듯했다.

방 안에는 여자들뿐이고 문도 단단히 잠겨 있었기에 나는 어쩔 수 없이 옷을 벗기 시작했다.

회의실 안은 에어컨이 세게 틀어져 있었고, 내 몸은 유난히 민감해져서, 속옷 없이 찬바람이 가슴을 스칠 때마다 촉촉하게 젖어드는 걸 느꼈다.

나도 모르게 땅속에라도 들어가고 싶은 심정이었다. 그런데 지우는 그런 모습을 보자마자 아까의 매서운 태도를 거두고 웃으며 내게 다가와 손으로 가슴을 살짝 들어보았다.

“도현이 괜히 그런 말을 한 게 아니네요. 정말 큰돈을 벌 재능이 있어요.”

지우는 곧 방 안을 돌아다니며 모든 여자들을 살펴본 후, 노트에 무언가를 적기 시작했다. 그러면서 아이를 몇 명 낳았는지, 제왕절개인지 자연분만인지를 물었다.

그중 두 명의 여성은 막 둘째를 낳았고, 둘 다 자연분만이었다. 이 말을 듣자 지우의 얼굴이 바로 어두워졌다. 이윽고 지우는 두 사람에게 각각 5만원의 교통비를 주며 즉시 나가라고 했다.

이런 상황 전개는 나를 당황스럽게 만들었다. 부유층이 시터의 학력이나 건강 상태를 고려하는 것은 이해가 갔지만, 지우의 가게에서는 제왕절개인지 자연분만인지가 더 중요하다는 게 이상하게 느껴졌다.

‘설마 출산 방식에 따라 모유에 영향이 있을 수 있는 걸까?’

드디어 검사가 끝나고, 지우는 우리가 옷을 입어도 된다고 하며 연락처를 기록해 두었다.

이 황당한 상황이 끝나자, 나는 서둘러 옷을 챙겨 입고 집에 돌아가 도현에게 계약금이 도대체 무슨 일인지 따져 물어보려 했다. 그런데 지우가 나를 불러 세웠다.

“지원 씨, 지원씨는 모유도 풍부하고 제왕절개로 아이를 낳은 한 명이라 A급 시터로 평가받았어요. 이건 지원 씨 상여금 100만 원이에요.”

말을 마친 지우는 나에게 두툼한 현금 뭉치를 건넸다.

“앞으로는 한 번에 약 60만 원씩 받을 거에요. 경력이 쌓이면 금액을 더 올려줄 수도 있어요.”

나는 100만 원이 든 가방을 안고 버스를 타고 가면서도, 꿈을 꾸는 듯한 기분이었다.

‘도시에는 이렇게 돈 많은 사람들이 많은 걸까? 아이에게 모유 수유를 하는 일이 비싼 비용을 받는 것도 모자라, 심지어 건당 결제라니!’

집에 돌아오자, 도현은 이미 식사를 준비해 놓고 나를 기다리고 있었다. 도현은 나보다도 더 들뜬 얼굴로 물어왔다.

“여보, 면접은 어땠어?”

그 말을 듣자마자 나는 얼굴을 굳히고 말했다.

“말하길 계약금이 1000만 원이라고 하던데?”

도현은 순간 표정이 굳어졌으나, 곧 웃으며 말했다.

“맞아, 계약금이 있긴 해. 아직 안 들어온 상태지만. 당신이 애 키우느라 고생하니까 당신을 위해 시터를 고용해 주려고 한 거야. 그래서 충동적으로 바로 계약서에 서명했어. 그리고 당신에게 미리 말하지 않은 건 깜짝 놀라게 해주고 싶었기 때문이야.”

도현은 나를 재촉하며 얼른 손을 씻고 식사하라고 했다.

도현은 내가 좋아하는 매운 닭볶음을 해 놓았다.

도현의 해명에 좋아하는 음식들이 한 상 가득 차려져 있는 것을 보니, 마음이 조금 풀렸다. 그는 나를 아끼는 마음에서 한 일이라는 생각에 그냥 콧방귀를 뀌고 더 이상 따져 묻지 않았다.

이윽고 도현이 곧 나를 끌어안으며 장난스럽게 말했다.

“여보, 아들뿐만 아니라 나도 당신이 그리웠어. 밥 먹기 전에 먼저 나부터 배불리 채워주면 안 돼?”

그 말과 함께 도현은 나를 소파에 밀어 눕혔고, 한바탕 뒤엉킨 후에야 우리 사이의 불편한 마음이 사라졌다.

그러나 여전히 조금 찜찜한 느낌이 들었다. 도현이 실직하면서 오는 스트레스 때문인지, 요즘 우리 부부 생활에서 도현은 마치 무기력한 새우처럼 몇 분 만에 대충 끝내곤 했다.

예전에는 전혀 그렇지 않았는데, 보약이라도 사다 줄까 생각하며 상여금 받은 것은 일단 도현에게 말하지 않기로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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