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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화

김정호는 어찌 된 영문인지도 모른 채 교진산의 부하들에 의해 쫓겨났다.

전화 한 통에 교진산이 이토록 이상해지다니…… 김정호는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고 이마에 식은땀이 나기까지 했다.

그는 그 전화 한 통이 한지훈과 연관이 있다는 것을 직감적으로 알았다.

김정호는 인맥이 꽤 있는 편이라 이미 한지훈의 이름은 알고 있었지만, 그의 구체적인 정보는 아예 찾을 수가 없었다.

이것이 바로 김정호가 이곳에 온 이유다.

“가자! 빨리 데려다줘!”

심상치 않은 기운에 김정호는 지체할 시간이 없다는 것을 느꼈고 빨리 자신의 형에게 이 일을 알려야 한다는 생각으로 가득 찼다.

김씨 가문이 상대하기에도 한지훈은 절대 만만치 않았다.

그런데, 김정호가 도로에 진입했을 때 주위에 4대 녹색 지프차가 나타나 거칠게 그들을 막아섰다.

끼익!

급정거로 인한 괴성이 온 거리에 울려 퍼졌고 김정호의 자동차는 지면에 긴 검은색 타이어 자국을 남겼으며 타이어에서는 흰 연기나 뿜어져 나왔다.

“무슨 일이야?”

뒷좌석에 앉아있던 김정호는 화가 머리 꼭대기까지 났는지 소리쳤다.

앞좌석 부하가 내려서 상황을 살피려는 찰나, 차 문은 밖에서 벌컥 열렸다.

검은색 중산복을 입은 특수요원들이 직접 차량 통제에 나섰다.

몇몇은 총을 김정호의 머리통에 겨누더니 차갑게 말했다.

“김정호! 당신은 지금부터 외부와 아무런 연락도 할 수 없어! 압류되었다고!”

김정호는 너무 화가 나 미친 사람처럼 소리쳤다.

“아주 제멋대로네? 죽고 싶어 환장했어? 내가 누군지 알고 까부는 거야? 나 김정호야! S시 김씨 가문이라고, 내가! 누가 시켰는지 당장 말해! 어디 낯짝이나 보자!”

“나야!”

갑자기 사람들 속에서 차가운 목소리가 이목을 집중시켰다.

한민학이 뒷짐을 지고 입가에 미소를 머금고 자기 군복과 모자를 고쳐 쓰더니 말했다.

“김정호, 오랜만이야! 별일 없지?”

“뭐 하자는 겁니까? 나한테 감히 뭐 하는 짓이냔 말입니다!”

김정호의 얼굴빛은 잿빛이 되어버렸다. 한민학이 S시 총사령관이고 본인보다 상급자인 건 엄연한 사실이지만 그를 압류할 것까지는 없지 않은가?

그의 얼굴을 보더니 한민학은 고개를 젓더니 말했다.

“김씨 가문이 뭘 잘못했는지 아직도 모르는 눈치군? 끌고 가!”

한민학는 김정호에게 험한 말을 할 기회조차 주지 않고 끌고 갈 것을 명령했다.

욕설을 마구 퍼부어 대는 김정호를 한민학은 투명 인간 취급했다.

한민학의 부하가 물었다.

“이제 어떻게 하면 되겠습니까?”

한민학은 푸른 구름을 잠시 감상하고는 부하의 어깨를 툭 치며 웃더니 말했다.

“당연히 처리하고 해산해야지. 다들 요 며칠 쉬라고 해. 일을 했으면 휴식도 있어야지? 남은 일은 신경 쓸 필요 없어.”

“그럼…… 네!”

김씨 가문 저택.

거실에 서 있는 김정필의 얼굴에 그늘이 드리웠다.

“아직도 연락이 안 돼?”

김정필의 곁에는 김씨 가문의 핵심 일꾼들이 그의 다음 지시를 기다리고 있었다.

한 부하가 망설이다가 입을 열었다.

“아직 연락이 안 됩니다. 아마 무슨 일이 생기신 듯합니다. 사람을 보내 상황을 알아보는 게 어떨까요?”

김정필은 눈살을 찌푸리더니 침울해진 얼굴로 잠시 생각에 잠겼다.

“됐어. 원래 계획대로 진행해! 일주일 뒤에 한번 두고 보자고! 한지훈이 어떤 그릇인지 한번 봐야겠어. 감히 김씨 가문을 건드리다니!”

김씨 가문과 한지훈은 이미 둘도 없는 원수가 되어버렸다.

한지훈은 강우연을 안전하게 낭월 산장으로 데려다줬고 강우연은 방안에 틀어박혀 누구도 만나려 하지 않았다.

그런 그녀를 문 앞에서 지키고 있는 한지훈의 표정에는 웃음기라곤 찾아볼 수가 없었다.

그는 강우연에게 마음을 가라앉힐 시간이 필요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우연아, 믿어줘. 오늘처럼 무릎 꿇고 네가 돌아오길 빌 거야! 이건 내가 약속할게!’

용일이 흥분된 표정으로 달려와 말했다.

“사령관님, 모든 준비는 끝났습니다. 드래곤 궁 사람들 모두 S시에 도착했습니다! 사대용존도 사령관님의 분부에 따라 대기하고 있습니다. 명령을 기다리고 있겠습니다!”

한지훈은 머리를 끄덕이더니 살기 가득한 눈빛으로 물었다.

“김태우는 어쩌고 있어?”

용일은 시답잖은 표정으로 대답했다.

“사령관님 분부대로 매일 최고의 치료를 해주고 나서 뼈를 깎는 고통을 맛보게 하고 있습니다. 죽기 엄청나게 겁내는 놈입니다.”

용일은 목숨을 위해서라면 무슨 짓이라도 서슴지 않는 이런 인간쓰레기들을 혐오했다.

패기도 없이 대장부가 할 일이 아니라고 여겼다.

“좋아. 일주일 뒤에 내가 직접 김씨 가문 저택에 김태우를 데려갈 거야!”

한지훈의 말투에는 하늘을 뚫을 듯한 사나운 기운이 느껴졌다.

일주일이라는 시간은 빠르게 흘러갔다.

그동안 한지훈이 매일 하는 일이라곤 강우연과 고운이 곁을 지켜주는 것이었다.

그들은 5년 만에 재회한 만큼 할 말이 많았지만, 기회가 부족했고 특히 강우연이 마음을 가라앉히고 나서 한지훈과의 대화도 적었다.

5년이라는 시간 동안 강우연은 한지훈을 미워도 했지만, 한시도 그를 잊어본 적이 없었기에 그를 어떻게 대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했다.

의지할 데 하나 없고 절망감이 느껴질 때 그녀는 한지훈이 나타나기를 바랐다.

하지만 거듭되는 실망으로 강우연은 만신창이가 되고 말았다.

그러나, 그녀가 가장 무기력하고 절망에 빠진 시각에 한지훈이 나타났다.

한지훈은 강우연의 5년이라는 암흑의 시간 뒤 한 줄기 빛처럼 그녀의 전부와 미래를 밝게 비춰주었다.

그러나 그녀는 그런 한지훈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여전히 알지 못했다.

침실에서 강우연은 세심하게 고운이를 돌봤다.

세 명의 의사가 정성껏 치료해 준 덕에 고운이는 아주 빨리 회복할 수 있었다.

그러나 뼈가 부러진 고통은 치료하는 데 아직 시간이 더 필요했다.

그 순간, 고운이는 행복한 미소를 지으면서 한지훈이 사 온 토끼 인형을 품에 안고 말했다.

“와! 이건 아빠가 고운이한테 사준 첫 번째 선물이야. 헤헤……”

고운이가 좋아하는 모습을 흐뭇하게 쳐다보던 한지훈은 웃으며 말했다.

“고운이가 좋아하면 아빠가 매일매일 사줄게.”

강우연이 조금은 못마땅한 듯 말했다.

“그렇게 무작정 예뻐하면 애 버릇 나빠져요.”

한지훈은 그런 강우연을 바라보더니 눈썹을 찌푸리며 말했다.

“내 딸이야. 내 마음이지.”

고운이가 강우연에게 혀를 내밀더니 말했다.

“아빠는 고운이를 좋아해. 고운이도 아빠 좋아! 엄마 미워. 고운이 엄마 안 사랑해!”

고운이는 한지훈의 품에 쏙 안기더니 행복한 미소를 지었다.

강우연은 당연히 고운이가 하는 말이 순진한 농담이라는 걸 잘 알고 있었지만 고운이의 두 손을 자기 눈에 올려놓고는 우는 시늉을 하며 말했다.

“엄마 운다. 엄마 필요 없어? 이제 며칠이라고……”

강우연은 우는 척을 그만두고 고운이를 간지럽히며 장난을 쳤다.

깔깔깔……

고운이의 웃음소리는 참 해맑았고 세 식구는 행복한 시간을 보냈다.

밖에 있던 부하들도 이 행복한 장면을 보고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고운이의 갑작스러운 말 한마디에 침실 분위기는 순식간에 싸늘해졌다.

“엄마, 고운이 언제 아빠 얼굴 볼 수 있어? 왜 고운이 눈앞은 까매……”

네 살 난 고운이는 커다란 침대에 앉아 있었고 분홍색 공주 잠옷을 입고 있었으며 피가 묻은 거즈로 두 눈을 휘감고 있었다.

고운이는 실명했고 회복할 가능성은 아주 낮았다.

의사들이 백방으로 치료 방법을 찾았지만 가장 적합하고 성공률이 높은 방법을 찾지 못했다……

한지훈은 고운이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며 말했다.

“고운이 무서워하지 마. 아빠가 있잖아. 의사 선생님 말씀 잘 듣고 잘 치료하면 아빠 볼 수 있어.”

고운이는 해맑게 웃으며 대답했다.

“응…… 고운이 말 잘 들을게.”

고운이는 영원히 앞을 볼 수도, 아빠를 볼 수도 없다는 것을 알지 못했다……

강우연은 도저히 이토록 잔혹한 현실을 받아들일 수가 없어 창가에 가서 고운이가 들을세라 눈물을 삼켰다.

고운이는 그녀의 딸이자 전부였다……

한지훈은 강우연의 떨리는 어깨를 바라보며 말했다.

“고운이가 잃은 거 김씨 가문에 가서 다 가져올 거야!”

그러고는 차가운 얼굴로 침실을 떠났고 그의 부하들도 진작에 웃음기 가신 얼굴로 대기하고 있었다.

용일은 끓어오르는 화를 애써 참으며 말했다.

“사령관님, 출발하시죠!”

“그래!”

그 순간, 그는 마치 거대한 용과도 같았고 살벌한 기운이 하늘을 찔렀으며 모든 것이 준비돼 있었다.

밖에는 세 대 지프차가 있었는데 그중의 한 대에는 피투성이의 김태우가 타고 있었다.

요 며칠 그는 세상의 고통이란 고통은 다 맛보았고 초췌하기 그지없었으며 죽지 못하는 것이 한스러울 정도였다.

한지훈은 지프차에 앉아 차가운 말투로 입을 열었다.

“출발!”

쾅!

지프차가 굉음을 내며 김씨 가문 저택으로 향하고 있었다.

‘김씨 가문, 내가 왔다. 죽을 준비 됐나?’

이와 동시에 30만 북양군이 밤낮을 가리지 않고 행진했고 진령을 넘어 벌써 S시 5리 밖에 도달했다.

그들의 모습은 카키색 바다를 방불케 했고 기세는 그야말로 장관이었다!

이는 용국의 불패 군사였고 용국이라는 나라의 근본이었다.

그들의 살기는 하늘을 찌를 듯했고 백만대군을 방불케 하는 기세였다.

“돌격!”

갑자기 30만 북양군이 군령을 받고 출발했고 해일 같은 기세가 천지를 휩쓴다.

그들의 모습은 마치 차가운 칼자루처럼 하늘 아래 우뚝 서 있었다.

S시는 각 부문의 협조하에 봉쇄되어 거리가 텅 비어 있었다.

삼십분도 채 되지 않아 30만 북양군이 S시를 가득 메웠고 그들의 동작은 놀랍도록 정갈했다.

그곳 시민들은 연락을 받고 집에 머물렀지만, 눈앞에 펼쳐진 광경에 충격을 받았다.

군대의 자태와 기세는 8급 대지진을 방불케 했다.

그 카키색 물결은 누구도 막을 수 없었다.

거리는 텅 비었고 고속기차며 공항도 운행을 멈췄다.

그들은 비장한 각오로 김씨 가문을 향해 가고 있었다.

그 시각, 김씨 가문 저택.

장엄하고 으리으리한 저택에는 핵심 일꾼들이 모두 현관에 앉아 있었고 김정필은 차가운 눈빛으로 문 앞을 주시하고 있었다.

우르릉!

천둥, 번개가 온 도시를 삼켰고 큰비가 S시를 뒤덮었다.

김씨 가문 저택은 빗물에 잠겨 창연하고 스산해 보였고 빗소리는 따닥따닥 기분 나쁜 소리를 냈다.

오늘은 김씨 가문과 한지훈의 생사 결단의 날이었다!

김정필이 부하들한테 물었다.

“오늘 한지훈이 쳐들어올 것 같으냐?”

그러자 한 부하가 조롱하듯 말했다.

“허허. 한씨 가문 쓰레기가 무슨 자금으로 김 씨 가문한테 도전장을 내민단 말입니까?”

또 다른 이가 웃으며 말했다.

“그러니까요. 김 씨 가문한텐 껌이죠.”

“감히 김씨 가문 도련님을 데려가다니. 한지훈 그놈을 갈기갈기 찢어놔야 합니다.”

“하하하! 한지훈이 감히 여기까지 온다면 본때를 보여 줄 겁니다. S시 사람들 보는 앞에서 김 씨가문을 건드리면 어떻게 되는지 톡톡히 보여줄 거라고요!”

그런 부하들의 말을 듣고 김정필은 만족한 듯 고개를 끄덕이더니 말했다.

“좋아! 오늘 한지훈을 이용해 우리 세력과 집안을 보여줘야겠어. 누구도 건드리지 못하는 존재라는 걸 똑똑히 보여주겠어!”

탁! 탁! 탁!

김씨 가문 저택 대문에서 들려오는 빗속의 발걸음 소리가 예리하고 매섭게 들려왔다.

김씨 가문 사람들은 모두 그 소리에 숨을 죽였다.

음산한 그림자가 천천히 나타났고 살벌한 기운이 주위의 모든 것들을 삼켜버릴 듯했다.

땅을 가르는 듯한 천둥소리가 온 저택에 울려 퍼졌다.

“나, 한지훈. 약속대로 찾아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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