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헤어나올 수 없는 너라는 늪: Chapter 21 - Chapter 30

40 Chapters

제21화

그녀의 허리가 아주 잘록했고 몸매도 늘씬했다. 검은 티셔츠를 입어 피부가 더욱 하얗고 부드러워 보였다. 슬쩍 보았을 뿐인데도 눈을 뗄 수가 없었다.연이진의 시선이 그녀의 잘록한 허리에 머물렀다가 골반, 종아리, 발목으로 향했다. 어느 부위든 조금만 바꾸면 다양한 자세가 가능했다.그는 문득 침대에서 아직 해보지 못한 자세가 많다는 생각이 들었다. 전에는 별로 관심이 없었지만 이젠 해보고 싶었다.몸을 아래로 짓눌러서 그렁그렁한 두 눈을 보고 있으면 남자의 가장 원초적인 야수 본능이 깨어난다.연이진이 집어삼킬 듯한 시선으로 쳐다보고 있다는 걸 임가연은 전혀 알지 못했다.사이즈를 재고 노트에 기록한 다음 공구를 정리하려는데 미끄러진 바람에 앞으로 넘어지려 했다. 임가연의 두 눈이 휘둥그레지면서 본능적으로 소리를 질렀다.거의 넘어지려던 그때 커다란 손 하나가 불쑥 나타나더니 그녀의 허리를 가볍게 끌어안았다.연이진의 잘생긴 얼굴이 코앞으로 다가왔다. 의사 가운의 옅은 알코올 냄새가 코끝을 스쳤다.“고... 고마워요.”임가연은 똑바로 서서 빨갛게 달아오른 얼굴로 감사의 인사를 전했다. 하지만 연이진은 그녀를 놓아줄 생각이 없는 듯했다. 여전히 허리를 감싸 안은 채 그녀에게 물었다.“요즘은 돈이 부족하지 않아?”그녀는 잠깐 흠칫하다가 이내 무슨 뜻인지 알아듣고는 눈살을 찌푸렸다. 연이진을 힘껏 밀어내며 일정한 거리를 둔 다음 확고하게 말했다.“부족하지 않고 앞으로도 부족하지 않을 겁니다. 내가 힘들 때 도와준 건 감사하지만 그건 거래일 뿐입니다. 우리 관계는 여기까지 하죠.”연이진은 임가연이 이렇게 얘기할 거라고 진작 예상했는지라 차가운 얼굴에 전혀 흔들림이 없었다.그때 임가연의 휴대전화가 울렸다. 발신자를 확인해보니 어머니의 전화였다.그녀는 더는 이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아 공구 상자를 챙기고 휴대전화를 꽉 쥔 채 도망치듯 진료실을 부랴부랴 나왔다.텅 빈 진료실에 홀로 남은 연이진은 허공에 떠 있는 손바닥을 내려다보며 한숨을 푹 내쉬면서 끓어오른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7
Read more

제22화

임가연은 연이진이 아직 그녀를 발견하기 전에 재빨리 방향을 틀어서 다른 엘리베이터에 탔다.“가연 씨, 어디 갔었어? 내가 얼마나 찾았는데. 전화기는 왜 꺼놨어? 대표님이 가연 씨한테 제때 밥을 사 먹이라고 당부까지 하셨어.”엘리베이터에 타자마자 오늘 그녀를 데리고 온 설계사 정수빈을 만났다. 임가연이 미안해하며 웃었다.“미안해요, 수빈 언니. 휴대폰 배터리가 없어서 꺼졌어요. 식당에 찾으러 가려 했었는데.”“마침 잘됐다. 나랑 같이 식당 가자. 대표님께서 가연 씨 위가 안 좋다고 밥 먹는 거 지켜보라고 했어.”정수빈은 임가연의 팔짱을 끼고 함께 엘리베이터에서 내렸다.근무자 신분이라 병원에서 식당 카드를 주었다. 식사 시간이 되면 식당 카드를 긁어 식사하면 되었다.임가연은 식판을 들고 자리를 찾아 앉은 다음 정수빈과 함께 식사했다.그때 주변에 갑자기 소란이 일었다. 누군가의 얘기를 하는 것 같아 소리를 따라 고개를 돌렸다. 그러다가 인파 속에서 도도한 그의 모습을 발견했다.‘저 사람도 식당에 와서 밥을 먹는다고? 분위기를 보면 이런 데 올 것 같지 않은데?’멀지 않은 곳에 연이진이 식판에 음식을 담고 있었다. 간단히 몇 가지 음식만 담은 채 한 손으로 식판을 들고 자리를 찾아 앉았다. 임가연과 그리 멀지 않은 곳이었다.자리에 앉을 때 연이진이 갑자기 고개를 들고 임가연을 힐끗 쳐다보았다. 그의 의미심장한 눈빛을 느낀 임가연은 재빨리 고개를 숙여 피하고는 식사에 집중했다.옆에 있던 정수빈이 말을 걸었다.“가연 씨 왼쪽 10시 방향에 앉은 잘생긴 남자가 가연 씨를 힐끗 쳐다봤어. 혹시 아는 사이야?”굳이 고개를 들지 않아도 누구를 얘기하는지 알고 있었기에 다급하게 부정했다.“모르는 사람이에요.”“저 남자 모두가 인정한 범접할 수 없는 금욕남이야. 가연 씨가 오늘 3층에 사이즈를 재러 갔을 때 얼마나 좋은 기회인데 만나지 못했다니, 너무 아쉽네.”정수빈이 한탄하듯 말했다.‘금욕남?’임가연은 음식을 씹으면서 속으로 투덜거렸다.‘침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7
Read more

제23화

어제 받은 전화 한 통 때문에 임가연은 종일 기분이 좋지 않았다.일에 지장이 될까 봐 휴대전화를 켰다. 그런데 켜자마자 최지애가 미친 듯이 전화를 걸어와 결국 하는 수 없이 다시 꺼버렸다.어제 3층을 다 쟀으니 오늘은 온 하루 6층에 있었다. 다행히 연이진과 만날 일이 없었다.저녁 퇴근 시간, 진하온이 임가연을 데리러 병원으로 찾아왔다.“교수님, 여긴 어쩐 일로 오셨어요?”임가연이 꽤 놀란 듯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일 다 끝내고 널 데리러 왔어. 네가 끼니를 제때 챙겨 먹지 않아서 감시하려고.”진하온이 농담 반 진담 반 섞으며 말했다.임가연은 미안한 마음이 들었다. 고작 출근한 지 이틀밖에 되지 않았는데 진하온에게 여러 번이나 밥을 얻어먹었다. 게다가 매번 비싼 식당에 갔다. 예전에 학교에 다닐 때는 1년에 한 번도 이렇게 사치를 부린 적이 없었다.“교수님, 사실 제 위가 그렇게 나쁘진 않아요. 병원에서 식당 카드를 줘서 요 이틀 식당 밥을 먹었는데 맛있더라고요. 계속 이렇게 얻어먹는 게 너무 미안해요.”“비싼 것도 아닌데, 뭐. 별거 아니야.”진하온은 손을 내저으면서 전혀 개의치 않아 했다.“여기까지 왔는데 내 체면 봐서 같이 먹어주면 안 돼?”이렇게까지 얘기했는데 당연히 거절할 수가 없어 고개를 끄덕였다.“알겠어요. 다음에 월급 받으면 교수님께 제대로 대접할게요.”“기억하고 있을게. 아직 나한테 밥 한 끼 빚지고 있어.”진하온이 통쾌하게 웃더니 임가연의 공구 상자를 들고 밖으로 걸어 나갔다.“교수님, 공구 상자는 제가 들게요.”임가연은 당황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회사 대표가 공구 상자를 들어준다는 게 말이 되는가?“꽤 무겁잖아. 남자가 옆에 있는데 여자가 들게 해선 안 되지.”진하온이 웃으면서 말했다.“넌 그냥 나 따라오면 돼. 너무 부담 갖지 말고 하루빨리 적응하도록 해.”임가연은 놀라움을 감추지 못했다.‘교수님은 참 좋은 분이셔. 내가 지금까지 본 교수님들 중에서 가장 살갑고 착한 분이야.’그녀는 속으로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7
Read more

제24화

흰 셔츠에 검은 정장 차림의 남자가 무표정한 얼굴로 자리에 앉았다. 도도하면서도 잘생긴 얼굴은 주변에 있는 이성들의 시선을 한눈에 사로잡았다.무뚝뚝하고 차가운 옆모습을 슬쩍 보았을 뿐인데도 잊히지 않았다.그의 맞은편에 예쁜 여자가 앉아 있었다. 정교한 메이크업에 몸매도 늘씬했고 섹시한 블랙 원피스를 입고 있었다. 두 사람의 관계가 아주 친밀해 보였다.연이진이 메뉴판을 건네자 그녀는 달달하게 웃으면서 음식을 주문했다.임가연은 무의식적으로 시선을 피했다.“어머, 이진아. 왜 우리랑 같이 안 오나 했더니 이렇게 아름다운 분이랑 선약이 있었던 거구나.”진하온도 그들을 보고는 다가가서 장난쳤다.연이진은 부정하지 않고 입꼬리를 씩 올렸다.“이 식당이 괜찮다고 해서 한번 와봤어.”진하온이 가볍게 웃었다.“이 집 간이 세지 않아서 위에 부담이 없거든. 그래서 일부러 가연이 데리고 왔어.”“그래? 제자를 엄청 걱정하네? 밥 한 끼 먹이겠다고 이렇게 먼 데까지 찾아오고.”연이진은 의미심장한 눈빛으로 임가연을 힐끗거렸다. 임가연은 그의 말속에 다른 뜻이 숨어있다는 걸 알았지만 신경 쓰고 싶지 않았다.“내 제자인데 당연히 신경 많이 써야지. 내가 키운 유일한 인재란 말이야.”진하온이 눈썹을 치켜세웠다.“됐어. 데이트 방해하지 않을게. 각자 알아서 먹자.”연이진은 웃으면서 시선을 거두었다.진하온이 자리로 돌아왔을 때 마침 주문한 요리도 나왔다. 두 사람은 젓가락을 들기 시작했다.이 한 끼가 임가연에게는 가시방석이 따로 없었다. 그녀가 앉은 자리에서 옆 테이블의 연이진이 그녀를 힐끗거리기만 해도 정확히 다 보였다. 아무리 생각해도 연이진이 일부러 그러는 듯싶었다.두 사람의 시선이 무심코 마주칠 때마다 임가연은 당황해하면서 피했다. 그녀가 피할수록 왠지 더 달라붙는 것 같았고 떼어내기 어려웠다.“임가연?”맞은편의 진하온이 부르고 나서야 그녀는 재빨리 정신을 차렸다.“단 거 좋아해? 이 디저트 다 먹었네? 다른 요리도 맛있으니까 먹어봐봐.”진하온이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7
Read more

제25화

연이진의 태도가 갑자기 180도 바뀔 줄은 생각지도 못했다.하지만 그는 감히 건드릴 수도, 매달릴 수도 없는 사람이었다. 그의 수단이 얼마나 무서운지 이 바닥에서 익히 들어 알고 있었고 게다가 엄청난 권력을 지닌 북성의 연씨 가문 출신이다.이런 남자는 멀리하는 한이 있더라도 절대 건드려선 안 되었다. 잘못 건드렸다간 쥐도 새도 모르게 죽는 수가 있다.여자는 하는 수 없이 실망한 얼굴로 차에서 내렸다.연이진은 차를 돌려 버스 정류장 옆에 멈춰 섰다. 임가연이 아직 홀로 서서 버스를 기다리고 있었다.“타.”그는 유리창을 내려 용건만 말했다. 임가연은 흠칫 놀랐다가 차 안을 들여다보았다. 조수석이 텅 비었고 아무도 없었다.‘아까 그 여자는 갔나? 무슨 뜻이지? 그 여자를 데려다주자마자 또 날 만나러 온 거야?’임가연은 그의 차에 타고 싶지 않아 고개를 내저으며 거절했다.“버스 타고 갈게요.”연이진이 계속하여 말했다.“타. 물어볼 게 있어.”‘우리 사이에 무슨 할 얘기가 있다고.’그녀는 그의 말을 믿지 않고 뒷걸음질 치면서 거절 의사를 명확하게 밝혔다. 연이진의 인내심이 바닥을 드러내기 시작했다.“임가연, 말귀 못 알아들어?”임가연은 정류장에 등을 기댄 채 꿈쩍도 하지 않았고 말도 하지 않았다. 계속 입술만 씹으면서 고집을 꺾지 않았다.그녀가 타지 않으니 연이진도 갈 생각이 없어 보였다. 두 사람이 한참 동안 대치하던 그때 뒤에 차가 클랙슨을 울리면서 재촉했다.하지만 연이진은 듣지 못한 것처럼 꿈쩍도 하지 않고 임가연을 빤히 노려보았다.“이봐요. 얼른 타요. 부부 싸움을 차에서 하면 안 돼요? 이렇게 길을 막아선 안 되죠.”“그러게 말이에요. 교양도 없이.”뒤에 있던 한 운전자가 소리를 지르자 다른 운전자들도 재촉하기 시작했다.결국 낯가죽이 두껍지 못했던 임가연은 더는 버티지 못하고 차에 올라탔다. 뒷좌석에 타려 했지만 한참을 당겨도 열리지 않아 어쩔 수 없이 조수석에 탔다.“안전벨트.”연이진이 귀띔했다. 임가연이 안전벨트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7
Read more

제26화

연이진은 임가연이 대들 줄은 꿈에도 몰랐다. 그의 표정이 눈에 띄게 어두워졌다.“임가연, 이젠 대들기까지 한다, 이거야?”임가연은 계속 용기 내어 말했다.“사실이잖아요. 그리고 교수님은 이진 씨한테 얼마나 다정하게 대하는데 이진 씨는 뒤에서 나쁜 말만 하고 또 이간질이나 하잖아요. 내가 멀리해야 하는 사람은 오히려 이진 씨 같은데요?”연이진이 핸들을 어찌나 꽉 잡았는지 팔의 핏줄이 다 튀어나왔다.‘그래. 이렇게 나오겠다는 거지? 얌전하던 고양이가 이젠 따박따박 대들기나 하고. 그것도 아무런 조짐도 없이. 침대 위에서 고분고분하던 모습은 다 가식이었어.’“차 문 열어주시죠, 연이진 씨.”임가연이 차갑게 한마디를 던지자 연이진이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차 안에서 그의 눈빛이 어찌나 날카로운지 그녀의 겉과 속을 다 꿰뚫어 볼 기세였다.하지만 그녀는 전혀 겁먹지 않고 허리를 곧게 편 채 똑바로 쳐다보았다. 이틀이나 피해 다녀서 이젠 지칠 대로 지쳤다.“임가연, 대단해, 아주.”연이진이 갑자기 싸늘하게 웃으면서 겨우 한마디 했다.딸깍하는 소리와 함께 차 문이 열렸다. 임가연은 그 한마디에 담긴 뜻을 생각할 새도 없이 바로 차 문을 열고 내렸다. 혹시 그가 쫓아오기라도 할까 봐 눈 깜짝할 사이에 아파트 단지로 사라졌다.연이진은 짜증이 밀려와 담배를 꺼내 불을 붙였다. 몇 모금 피우니 더욱 짜증이 나서 그냥 꺼버렸다.조금 전 그녀가 한 얘기를 생각하며 두 눈을 감고는 낮은 목소리로 욕했다.“X발.”따박따박 대들던 모습만 생각하면 마음 같아서는 꼼짝도 못 하게 괴롭히고 싶었다. 아무래도 지난번에 너무 살살한 모양이다.임가연은 거의 집으로 뛰어오다시피 했다. 문 앞에 기댄 채 가슴을 내려치면서 숨을 길게 내쉬었다.조금 전 그 얘기는 홧김에 한 것이었다. 지금 생각해보면 자신이 너무한 것 같았다.‘엄청 화났겠지? 에라, 모르겠다. 어차피 새 여자 친구도 생겼는데 완전히 등 돌린 거라고 생각하지, 뭐. 앞으로 피하면 돼.’임가연은 욕실로 들어가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7
Read more

제27화

“X발, 이년이 또 나 몰래 다른 놈 만나러 나갔어...”술에 취한 남자의 욕설이 들리더니 물건을 집어 던지는 소리가 이어졌다. 소리가 하도 세서 임가연네 방 문이 다 흔들릴 정도였다.옆방의 이웃이 집으로 돌아온 것이었다.임가연은 방 한 칸을 맡았고 다른 이웃과 거실 하나를 함께 사용했다. 옆방에 중년 부부가 살고 있었는데 남자는 항상 술에 취해 한밤중에 들어와 욕설을 퍼부었고 가끔 물건을 집어 던지기도 했다.방음 효과가 별로 좋지 않아 매번 잠에서 깨곤 했다.전에 몇 번이나 술병을 그녀의 방 문에 던진 바람에 한밤중에 놀라서 벌벌 떤 게 한두 번이 아니었다. 하지만 이런 곳이 복잡하긴 해도 집세가 싸서 지금까지 버텼다.임가연은 옆방의 욕설을 들으면서 한숨을 내쉬었다.‘더 좋은 집을 구할 돈도 없는데 여기서 버텨야지, 뭐.’옆방의 남자는 한참 동안 물건을 부수고 나서야 점차 조용해졌다.임가연도 그제야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는 자려고 불을 끄려 했다. 그런데 누군가가 그녀의 방 문을 두드렸다.화들짝 놀란 임가연이 침대에서 벌떡 일어났다.쾅쾅쾅.노크 소리가 계속 이어졌다.“누구세요?”임가연이 경계하며 물었다. 밖에서 술에 취한 남자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나 옆방 아저씨야. 문 열어.”“무슨 일이시죠?”“당연히 일이 있어서 그러지. 문 열어. 들어가서 얘기할게.”“그냥 거기서 얘기하세요.”임가연은 경계하며 문을 열어주지 않았다. 그러자 남자의 인내심이 슬슬 바닥을 드러내더니 또 문을 쾅쾅 두드리면서 목소리를 높였다.“같이 사는 이웃끼리 서로 알고 지내면 좋잖아. 일단 문 열어. 대학생이라고 했지? 나 아직 대학생 못 만나봤는데.”그 소리에 임가연은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 그녀는 이불을 움켜잡고 큰소리로 말했다.“난 알고 지낼 생각 없으니까 당장 가요. 안 그러면 신고할 겁니다.”문밖의 남자는 잠깐 머뭇거리더니 발로 문을 힘을 걷어차고는 욕설을 퍼부었다.“X발, 내가 경찰서에 다녀온 게 몇 번인데 신고한다고 겁낼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7
Read more

제28화

키가 훤칠한 남자가 갑자기 들어오더니 술에 취한 남자의 목덜미를 잡아당겼다. 그러고는 탄탄한 주먹으로 그의 얼굴을 냅다 내리쳤다. 주먹마다 아주 엄청난 힘을 가했다.“으악...”얻어맞은 남자는 반항 한번 하지 못하고 바닥에 누운 채 고통스러운 비명을 질렀다. 얼마 지나지 않아 얼굴에 피가 흥건했고 산송장이 따로 없었다.남자의 비명이 점점 잦아들자 연이진은 또 몇 번 발로 걷어찼다. 더는 일어나지 못한다는 걸 확인하고 나서야 임가연의 상태를 살폈다.“괜찮아? 어디 다쳤어?”임가연은 거친 숨을 몰아쉬면서 이불로 몸을 감쌌다. 눈물이 주체할 수 없을 정도로 계속 쏟아졌다.얼굴 절반이 퉁퉁 부어있었고 손바닥 자국도 선명했으며 긴 머리가 잔뜩 헝클어졌다. 게다가 눈빛이 넋이 나가 있었고 온몸을 부들부들 떨었다.연이진은 이불을 당기고 침대 시트로 그녀를 감싼 다음 들어 안고 밖으로 나가려 했다. 그러다가 문 앞에서 바닥에 떨어진 휴대전화를 발견하고는 주워서 그녀의 품에 내려놓았다....연이진은 임가연을 차에 태웠다. 한참 동안 정신을 차리지 못하다가 연이진이 침대 시트를 벗기려 하자 몸을 부들부들 떨더니 본능적으로 그의 손을 피했다.“다친 데 있나 좀 보려고.”연이진이 말했다.임가연은 천천히 마음을 진정하고 연이진을 빤히 보면서 갈라진 목소리로 말했다.“신고해요, 신고.”연이진이 대답했다.“이미 신고했어. 경찰이 곧 도착할 거야. 어디 다친 데 없는지 확인해야 하니까 일단 시트부터 내리면 안 될까?”임가연이 고개를 내저었다.“다친 데 없어요. 괜찮아요.”“얼굴에 커다란 손바닥 자국이 생겼는데도 괜찮다고?”연이진이 싸늘하게 되물었다. 임가연은 입을 꾹 다물고 자신을 꽁꽁 감싼 채로 조수석에 몸을 웅크렸다. 연이진이 건드리지 못하게 고개를 푹 숙였다.연이진은 숨을 깊게 들이쉬었다. 달리 방법이 없어 일단 히터를 틀어주었다.그의 손에 아직 피가 묻어있어 옅은 피비린내가 풍겼다. 그는 알코올 티슈를 꺼내 손을 꼼꼼하게 닦았다.몇 분 후 사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7
Read more

제29화

임가연은 그대로 넋이 나갔다. 연이진이 이런 말을 할 거라고는 꿈에도 예상하지 못했고 머리가 다 윙 했다.어릴 적부터 남에게 민폐를 끼치는 걸 싫어했던 임가연은 상대가 먼저 말하기 전에는 절대 부탁하는 법이라곤 없었다. 아무리 무서워도 혼자 버텼다. 게다가 상대가 연이진이라서 부탁할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몇 시간 전에 그에게 따박따박 대들면서 싸운 상황이라 그녀를 싫어하지 않은 것만 해도 다행이라 생각했다.임가연은 뒤늦게 알아차리고 붉어진 눈시울로 그를 쳐다보았다. 입술을 달싹이다가 주눅이 든 채로 말했다.“그럼 하룻밤만 신세 져도 될까요?”그녀는 잠깐 생각하다가 또 예의 바르게 한마디 했다.“불편하다면 못 들은 거로 해요.”연이진은 할 말을 잃었다.‘일부러 집 앞까지 데려왔는데도 눈치 못 챘어? 대놓고 말한 거나 다름없는데 불편할 리가 있나.’그가 어두운 얼굴로 말했다.“따라와.”임가연은 침대 시트로 몸을 감싼 채 묵묵히 차에서 내려 따라갔다. 연이진은 엘리베이터에서 내린 다음 지문을 찍어 문을 열었다. 그러고는 슬리퍼를 갈아신고 혼자 거실로 들어갔다. 그녀는 신발장 안에서 일회용 슬리퍼를 꺼내 갈아신은 후에야 조심스럽게 집 안으로 들어갔다.집에 먼지 한 톨 없을 정도로 깨끗했고 조명이 고급스러우면서도 밝았다. 위에서 환하게 내리쬐는 조명은 그녀의 내면까지 밝게 비출 것만 같았다.임가연은 몸을 두르고 있는 시트와 허름한 잠옷은 물론이고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쓰레기처럼 저렴하게 느껴졌다. 갑자기 그와 함께 따라온 게 조금 후회되었다.공포와 열등감 앞에서 후자가 그녀를 더욱 난감하게 했다.“그 더러운 침대 시트 버리고 들어가서 씻어.”연이진이 샤워 가운을 가져와 그녀에게 툭 던졌다. 그녀는 샤워 가운을 받고 게스트룸의 욕실로 걸어갔다.샤워하다가 거울을 보았는데 그제야 얼굴 절반이 부었다는 걸 발견했다. 얼굴에 손가락 자국도 남아있었고 귓불까지 벌건 상태였다.게다가 눈시울이 벌겋고 머리도 잔뜩 헝클어져 초라하기 그지없었다.‘이러니까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7
Read more

제30화

임가연은 순간 머리가 윙 했다. 그의 잘생긴 얼굴을 보고 있자니 귀까지 다 빨개졌다. 이렇게 덤덤한 말투로 가장 놀랄만한 말을 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할래?”연이진의 눈빛이 창밖의 밤하늘처럼 어두웠고 욕망이 끓어오르는 것 같았다.임가연은 신경을 곤두세웠고 등에 소름이 쫙 돋았다.“난... 하고 싶지 않아요.”“근데 난 하고 싶어.”가뜩이나 어두운 목소리가 더욱 어두워졌고 갈라지기까지 했다.임가연이 주먹을 불끈 쥐고 거절하려던 찰나 이미 늦어버렸다. 연이진이 그녀의 팔을 잡아당기더니 다른 한 손으로 머리를 잡고 입술에 키스했다.툭.얼음찜질팩이 바닥에 떨어졌다.그의 뜨거운 숨결이 그녀에게 고스란히 전해졌다. 하도 뜨거워서 피부가 다 데일 것만 같았다.숨을 쉴 수 없었던 임가연이 피하려고 고개를 돌리려는데 연이진이 꽉 잡고 있어 움직일 수가 없었다.“가만히 있어.”허스키하면서도 감히 거역할 수 없는 목소리였다. 임가연은 심장이 튀어나올 것처럼 쿵쾅거렸다.오늘 저녁에 술에 취한 남자에게 성폭행을 당할 뻔하여 트라우마가 매우 심했다. 눈앞의 남자가 아무리 훌륭하고 잘생겼다고 해도 몸이 떨리는 건 주체할 수가 없었다.“눈 뜨고 날 봐.”연이진의 갈라진 목소리가 귓가에 들려왔다. 임가연은 억지로 눈을 뜨고 설렐 정도로 잘생긴 그의 얼굴을 쳐다보았다.“공포를 없애는 가장 좋은 방법이 뭔지 알아?”연이진이 그녀의 이마에 얼굴을 맞대고 또박또박 말했다.“다른 자극으로 그 공포를 덮어버리는 거야.”연이진은 임가연의 허리를 감싸 안고 들어 올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그녀는 푹신한 침대에 누워있었다.이번에는 전처럼 다양하게 괴롭힌 게 아니라 나름 부드럽게 대했다. 착각인지는 모르겠지만 저도 모르게 그를 받아들이고 있다는 느낌이 들었다. 전과는 그야말로 천지 차이였다.“집중해.”연이진이 귓불을 깨물자 임가연이 소리를 질렀다. 그런데 곧바로 그 입을 막아버렸다.그녀는 두 눈을 꼭 감고 그에게 몸을 맡겼다....임가연은 밤새 푹 잤다.
last updateLast Updated : 2024-12-17
Read more
PREV
1234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