칠흑처럼 어두운 밤.적막 속에서 정민규의 뜨거운 입술이 목덜미를 스쳐 지나갔고, 나는 그를 꼭 끌어안았다. 비록 주체할 수 없는 기쁨이 차올랐지만, 마음 한구석이 씁쓸하기도 했다.술기운에 정신이 몽롱했고, 호흡마저 흐트러졌으며 그의 움직임은 점점 다급해졌다.결국 본능에 몸을 맡긴 채 그의 이름을 중얼거렸다.“민규야...”띠링-귀에 거슬리는 벨소리가 후끈 달아올랐던 방 안의 열기를 단숨에 식혔다.우리는 동시에 고개를 돌려 화면에 뜬 발신인을 확인했다.[세라.]숨이 턱 막혔고, 나도 모르게 패닉에 빠졌다.어둠 속에서 비록 정민규의 표정은 보이지 않았지만 그가 흔들리고 있다는 걸 여실히 느꼈다.나는 용기를 내어 절박한 심정으로 고개를 들어 키스하려고 했다.그러나 정민규는 일말의 망설임도 없이 피하고는 몸을 일으켜 전화를 받았다.휴대폰 너머로 나긋한 여자 목소리가 들려왔다.“민규야.”곧이어 그는 불도 켜지 않은 채 창가로 성큼성큼 걸어갔다.달빛 아래에서 어렴풋이 보이는 남자의 표정은 그동안 한 번도 보여준 적이 없는 다정함이 담겨 있었다.가슴 속을 가득 채운 행복감이 썰물처럼 밀려났고, 어느새 싸늘하게 식어 분노와 좌절, 절망만 남았다.마침내 정민규는 전화를 끊었다.딸깍!눈부신 조명이 켜지고 정민규의 굵은 눈썹이 꿈틀거리더니 잘생긴 얼굴에 냉기가 감돌았다.“오후에 네가 세라의 전화를 받았어?”비록 의문조였지만 말투만큼은 단호했고, 죄라도 묻는 듯한 뉘앙스를 풍겼다.나는 침묵으로 일관했고 입가에 쓴웃음이 떠올랐다.“그래. 전화를 받았을뿐더러 통화 기록도 삭제했지. 심지어 오늘 귀국 사실을 숨기려고 일부러 너한테 술까지 먹였어.”순순히 인정하자, 정민규의 눈에서 분노가 언뜻 스쳐 지나갔다.그는 무표정한 얼굴은 더는 상종하기 싫은 듯싶었고, 바닥에 떨어진 옷을 집어 들더니 밖으로 나가려고 했다.“정민규!”나는 이불을 움켜쥐고 눈물을 애써 참았다.“우리 결혼기념일에 꼭 전 여친 보러 가야 해?”정민규의 발걸음이 멈칫하더니
Last Updated : 2024-12-11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