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Chapter 701 - Chapter 710

801 Chapters

제701화

따지자면 나는 원래도 그다지 몸이 건강하지 못했기에 최근 2년간은 살아있는 게 다행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닌 수준이었다.맨션에 도착하자 석지훈이 조심스레 나의 볼을 어루만지며 깨웠고 나는 그제야 눈을 뜨고 물었다.“도착한 거예요?”나는 아직 잠에서 완전히 깨지 못해 몽롱한 상태였다.“응, 근데 최욱현은 맨션에 없어.”나는 석지훈의 어깨에 기댄 채 물었다.“최욱현은 어디 있대요?”“윤 비서가 방금 말해줬는데 아일랜드로 떠났대.”최욱현은 지금 우리를 따돌리고 있는 게 분명했다.그런 최욱현의 수상한 행동에 아이들이 그의 손에 있다는 것은 이미 확정된 사실이었다.최욱현은 아마 이정희가 어머니를 죽였다는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그렇지 않고서야 석나은과 아이를 납치하는 것으로 거래를 할 리가 없었다.하지만 그걸 알고 있음에도 최욱현이 대체 최종적으로 무엇을 계획하고 있는지는 알 수 없었다.나는 핸드폰을 들어 최욱현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최욱현은 전화를 받지 않았다. 석지훈은 나에게 물었다.“잠깐 쉴래?”나는 고개를 내저었다.“일단 최욱현부터 찾아요!”석지훈은 내 말에 긍정을 표했다.“아이들은 무조건 그 사람 손에 있어. 그 사람은 지금 우릴 피하는 게 분명하니까 당장은 찾을 수 없을 테니까 넌 일단 맨션에 들어가서 잠이라도 좀 자. 내일 나랑 같이 아일랜드 가야지. 그리고 나도 당장 할 일이 있어.”나는 의아해서 물었다.“무슨 일이요?”“사람을 보내서 아일랜드를 포위할 거야.”석지훈은 최욱현을 독 안에 든 쥐로 만들 작정이었다.“알겠어요. 그럼 전 먼저 맨션에 돌아갈게요.”아이들이 최욱현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알게 되었고 또한 최욱현은 기껏해야 아이들을 잡아둘 뿐이지 해치진 않을 거란 생각에 아이들의 안전에 대한 걱정은 하지 않아도 될 것 같았다. 그리고 지금의 컨디션으로는 뭘 해도 무리였기에 이곳에서 하룻밤 쉬어가는 것도 나쁘지 않은 선택인 것 같았다.나는 석지훈의 동반 없이 혼자 맨션에 들어섰고 곁에 있는 사람은 현정우뿐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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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2화

현정우의 표정은 어딘가 허무하고 슬퍼 보였다.현정우는 자신이 좋아하는 그녀에게 어울리는 사람은 한낱 경호원에 불과한 자신이 아니라 석지훈과 같은 신분의 남자여야 한다고 말했었다.나는 그제야 현정우가 좋아하는 사람이 바로 한민영이라는 것을 알았다.다만 한민영은 확실히 콕 집어 말하기 어려운 구석이 있었다.일단 한민영이 눈이 너무 높은 것은 둘째치고 한씨 가문의 어르신인 한성범이 현정우를 한씨 가문의 사위로 맞는 것을 달가워하지 않을 것이다. 현정우는 이 사랑이 처음부터 끝이 정해진 사랑이라는 것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그렇지 않고서야 처음부터 그렇게 서글픈 말을 할 리가 없었다.게다가 나는 함승윤에게 만약 한성범이 운성시를 떠난다면 납치를 해서라도 다시 데려오라고 부탁한 적이 있었다. 하지만 나는 후에 그 일을 잊어버렸고 함승윤도 나에게 특별히 보고하지 않은 거로 보아 한성범은 아직 운성시에 있는 모양이었다.나는 현정우를 위로했다.“정우 씨가 가고 싶으면 가요. 가지도 않고 후회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잖아요. 다시 한번 말하지만 제 곁에는 지훈 씨도 있는걸요.”그 시각, 석지훈은 맨션 아래에서 전략을 세우고 있었다.방의 불이 어두워 나머지 불들도 모두 켜자 방안이 순식간에 환해졌고 나는 그제야 망설임으로 안절부절못하는 현정우를 발견했다.현정우는 당장 한민영에게 가고 싶은 것이 분명해 보였다.다만 나를 경호해야 하니 쉽사리 그런 결정을 내릴 수 없는 것이었다.나는 잠깐 생각을 하고 다시 현정우에게 말했다.“이건 제가 정우 씨에게 내리는 명령이에요.”현정우는 예상치 못한 말에 깜짝 놀란 듯했다.“가주님.”나는 그런 현정우를 보며 작게 웃고는 말을 이어갔다.“저라고 사랑을 경험해보지 못했겠어요?”그렇게 현정우는 나의 재촉에 못 이겨 방에서 나갔고 나는 조심스레 그의 뒤를 따라 테라스로 나가서 어떤 결의에 찬 것 같기도 한 현정우의 뒷모습을 한참 동안 바라보았다.그러다가 멈춰서서 윤 비서와 무슨 얘기를 나누는 거로 보아 누군가가 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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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3화

“응, 최욱현이 아일랜드에 도착하면 바로 잡을 거야.”“우린 내일 가도 너무 늦진 않을 거예요.”“넌 아직도 졸려 보여, 좀 더 자.”석지훈은 다정한 목소리로 나를 달랬고 나는 순순히 눈을 감았다. 그리고 나는 또 꿈을 꾼 것 같았지만 꿈속은 백지처럼 온통 하얗기만 했다.그리고 그 몽롱한 꿈속에서 나는 단호하고 낮게 가라앉은 목소리를 들었다.“윤아는 너무 피곤하면 안 돼. 그러면 윤아의 몸 회복에도 좋지 않을 거야. 앞으로 석씨 가문에서 생긴 일은 바로 나한테 알려주면 내가 윤아를 대신해서 처리할 테니까 윤아는 최대한 신경 쓰지 않게 하라고 함승윤 씨한테 전해.”그러자 의아함이 가득 섞인 또 다른 목소리가 들려왔다.“석 대표님께서는 왜 석씨 가문은 인수하지 않는 겁니까? 석 대표님께서 석씨 가문을 인수하시면 연 대표님도 더는 석씨 가문 때문에 노심초사하지 않아도 되고 연 대표님과 아이들도 편안하게 석 대표님 곁에 머물 수 있지 않습니까?”“승민아, 윤아는 지금 누구한테 맘 편히 기댈 여유가 없어.”그러고는 잠시 침묵이 이어지는가 싶더니 말을 이어가기 시작했다.“한때의 윤아는 사랑 때문에 연씨 가문을 남에게 팔았지만 그 사람은 후에 윤아의 연씨 가문을 그대로 낚아채고 보란 듯이 뒤통수를 쳤어. 그때 윤아는 깨달은 거지, 사랑도 중요하지만 본인의 손안에 권력도 중요하단 걸 말이야! 윤아는 더는 그때처럼 순진하게 본인에게는 한 푼도 남기지 않고 모든 권력을 다 내놓을 수 없을 거야. 지금의 윤아는 말이야, 자신을 보호하는 법을 깨우쳤고 본인을 위해 생각할 줄 알게 됐어. 그리고 그게 곧 내가 보고 싶은 윤아의 모습이야.”“석 대표님의 뜻을 알 것 같습니다.”그 말을 끝으로 끝없는 침묵이 이어졌다.나는 잠에서 깼을 때 꿈을 꿨다는 것은 인지했지만 정확히 무슨 꿈을 꿨는지는 기억이 잘 나지 않았다.잠귀가 밝은 석지훈이 갑자기 눈을 떴다.나는 석지훈의 몸에 엎드려 기대며 물었다.“지금 아이들을 찾으러 갈까요?”나는 고개를 살짝 돌려 창밖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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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4화

나는 갑자기 담현아를 거론하는 석지훈이 퍽 의아했다.설마 결혼한 담현아를 부러워하기라도 하는 건가 하는 생각마저 들었다.하지만 부러운 건 그럴 수 있다고 쳐도 이정희의 장례가 아직 완전히 끝나지도 않은 이 시점에서 우리가 결혼에 관해 얘기하는 건 금기를 범하는 것만 같은 느낌이 들었다.나는 비록 미신을 믿지는 않았지만 그래도 이정희가 땅속에서 잠들기 전까지는 우리가 결혼을 급히 결정하는 건 옳지 않은 것 같았다.법을 위반하는 것은 아니었지만 어쨌거나 적절한 시기가 아닌 것만은 확실했다.“맞아요. 현아는 일 처리 속도가 항상 빨랐어요.”석지훈은 별다른 말 없이 옷을 다 갈아입고는 욕실로 들어갔다.이곳은 최욱현이 나에게 안배해준 방이었고 내 옷들도 모두 준비되어있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흰색 원피스로 갈아입었다.나는 석지훈과 사적인 만남을 가질 때 화장을 별로 하지 않는 타입이었기에 그에게 보여준 모습은 늘 자연스러운 모습이었다. 이번에도 나는 별다른 화장을 하지 않고 연한 색의 립스틱만 발랐다.나는 허리까지 오는 긴 머리를 반 묶음으로 묶었다. 또래보다 앳돼 보이는 얼굴에 그런 차림을 하니 꽤 청순해 보였다.나는 화장을 하지 않았을 때는 안색이 창백했고 화장을 하면 단숨에 화려해졌기에 화장 전후의 얼굴은 그야말로 천지 차이였다.나는 그런 나의 모습이 웃겨 작게 웃던 와중에 욕실에서 나온 석지훈이 바보같이 웃는 나를 보고 웃음을 참으며 물었다.“윤아야 뭐가 그렇게 즐거워?”나는 뻔뻔하게 자화자찬을 했다.“나 스스로가 너무 예뻐서요.”나는 석지훈이 내 말에 반박이라도 할까 봐 내심 걱정했는데 예상과 달리 석지훈은 내 말에 맞장구를 쳐줬다.“맞아. 윤아 넌 항상 예뻤어.”“오빠도 참, 입에 꿀 발랐어요?”석지훈은 내 말을 더는 받아주지 않았고 그저 빨리 씻으라고 재촉이나 했다.다 씻고 욕실에서 나왔을 땐 석지훈은 보이지 않았고 다만 윤 비서가 입구를 지키고 있을 뿐이었다. 나는 윤 비서를 발견하고 조심스레 물었다.“오빠 손목에 까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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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5화

나는 어떻게 된 영문인지 알 수 없었지만 석지훈의 말을 듣는 것이 옳았다는 것을 금방 알게 되었다.나는 담현아의 일을 고정재에게 문자로 보냈고 1분도 채 지나지 않아 그에게서 답장이 왔다.“알겠어. 고마워, 꼬마 아가씨.”담현아는 고정재의 아내였고 고정재가 구하는 것이 당연한 일이었기에 나는 더는 걱정하지 않았다. 그리고 나는 최욱현에게 다시 문자를 보냈다.[담현아는 내 친구니까 다치게 하지 마.]최욱현이 답장했다.[그 여자는 입이 가벼워서 귀에 거슬리는 말만 늘어놓던데 내가 멋대로 하든 말든 그 여자랑 무슨 상관이야?]최욱현은 심기가 매우 불편해 보였다.[부탁이야, 현아를 다치게 하지 말아줘.]최욱현이 또 답장했다.[응, 그냥 겁만 살짝 줄 거야.]최욱현의 답장을 받은 나는 그제야 시름이 놓였다. 그때 석지훈이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아직도 헬기 앞에 서 있는 나를 돌아보며 말했다.“윤아야, 더 지체하다간 늦어.”나는 핸드폰을 넣고 석지훈을 따라가며 물었다.“뭐가 늦어진다는 거예요?”석지훈은 내 손을 잡고 그대로 차에 올라탔다. 석지훈은 차에서 내내 석씨 가문의 그 두 반지를 만지작거렸다.마치 반지에 애착이라도 가는 것 같은 모양이었다.오늘의 석지훈은 평소와 달리 어딘가 이상했다.나는 결국 참지 못하고 물었다.“뭘 만지는 거예요?”“여기 반지 하나가 부족해서 말이야.”그 순간 나는 석지훈은 은근히 약혼반지를 암시하고 있었음을 깨달았다.나는 머쓱해서 일부러 모르는 척하며 석지훈의 말을 받아주었다.“난 두 개나 꼈는걸요.”석지훈은 작게 미소를 짓더니 내게 물었다.“내 팔찌 예뻐?”아까까지 반지를 말하다가 또 갑자기 팔찌를 말하는 석지훈에 나는 조금 어리둥절했지만 그가 원하는 대답을 해주었다.“예뻐요.”“이건 내가 15년 전에 산 거야. 그때 난 첫 월급을 받았는데 목숨 걸고 번 돈치고는 그다지 많지 않았어, 20만도 채 안 됐으니까 말이야. 난 그 돈으로 팔찌 한 쌍을 샀어. 네가 좋다면 너에게 남은 하나를 줄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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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6화

석지훈의 입에서 석씨 부인이라는 소리를 들으며 그의 깊은 눈동자를 마주하고 있자니 마치 끝없는 유혹의 소용돌이에 빠져들어 가는 것만 같았다.그러다가도 문득 지금이 적절한 시기가 아니라는 생각이 들어 주저하며 물었다.“어떻게 석씨 부인이 되는데요?”석지훈은 내 손목의 팔찌를 살살 어루만지며 낮게 깔린 목소리로 대답했다.“나랑 같이 아일랜드로 가서 결혼증을 발급받자.”석지훈과 결혼하는 것은 내가 오랫동안 꿈꿔온 것이었다.나는 석씨 부인이 되어 석지훈의 명실상부한 아내가 되고 싶었고 그렇게 되면 유진도 더는 그 말로 나를 막지 않을 것이며 심지어는 당당하게 석지훈의 세상에 발을 들일 수 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어떻게 보아도 적절한 시기는 아니었다.나는 석지훈에게 다시 한번 알려주었다.“하지만 오빠의 어머니는...”석지훈은 나를 바라보더니 자기 마음대로 해석해버렸다.“그럼 네가 동의한 거로 알고 있을게.”“...”나는 그의 의견을 물어봤을 뿐 동의한 게 아니었다.나는 뭐라도 말을 하고 싶었지만 석지훈의 자상한 얼굴을 보니 아무 말도 나오지 않았다. 무엇보다도 나는 그의 기분을 망치고 싶지 않았기 때문이다.석지훈이 기분이 좋아 보이는 건 아침에 맨션에 있을 때부터 눈치챈 사실이었다. 석지훈은 다정하게 나에게 왜 웃냐고 물었고 자상하게 내가 예쁘다고 해줬으며 평소에는 잘 입지도 않는 비즈니스 가죽 재킷을 갈아입었다.게다가 별로 값이 가지도 않는 롤렉스 서브마리너 그린을 찼다.나는 석지훈의 손을 잡아다 물었다.“왜 이걸 찬 거예요?”석지훈은 나와 깍지를 낀 손을 바라보며 말했다.“8년 전에 너희 아버지한테서 석씨 가문을 물려받을 때 너희 아버지께서 나한테 주신 선물이야. 그리고 이건 자신이 아버지한테서 석씨 가문을 물려받을 때 받았던 시계라고 말해주셨어. 일종의 계승 같은 거지.”내가 롤렉스 서브마리너 그린을 천천히 어루만지며 무언가 말하려던 참에 석지훈이 또 먼저 입을 열었다.“너희 아버지는... 적어도 내가 살아온 27년 동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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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7화

나는 석지훈과 함께 혼인신고를 하는 곳에 도착하자마자 함승윤을 발견하고는 깜짝 놀라서 물었다.“함 집사님께서 왜 여기 계세요?”함승윤은 웃으며 설명해주었다.“석 대표님께 필요한 서류들을 전달해주러 왔습니다.”함승윤은 석지훈에게 서류를 전달하고는 얼른 윤 비서 옆에 가서 섰다. 그리고 나는 함승윤이 가져온 서류가 무엇인지 대충 짐작할 수 있었다.석지훈은 앞장서서 혼인신고를 하러 갔고 나는 선 자리에 서서 그런 석지훈의 뒷모습을 가리키며 윤 비서에게 물었다.“오빠가 왜 말을 안 하는 거죠?”석지훈은 차에서 내려 서부터 지금까지 한마디도 하지 않고 있었다.윤 비서는 속닥거리며 나에게 알려주었다.“석 대표님은 긴장하셔서 그런 겁니다.”석지훈은 갑자기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윤승민.”석지훈은 그저 윤 비서의 이름을 작게 부른 것뿐인데 윤 비서는 깜짝 놀라 얼굴이 새하얗게 질려버렸다. 나는 재빨리 석지훈을 따라가 그의 팔짱을 꼈다.석지훈은 나를 다정하게 바라보며 물었다.“너 생각 잘해야 한다?”처음부터 끝까지 모두 석지훈이 준비한 것이고 프러포즈도 하지 않았을뿐더러 내 의견은 묻지도 않고 덜컥 혼인신고부터 하러 왔으니 이제 와서 마음을 바꾼다고 해도 소용이 없었다.석지훈은 내가 싫다고 해도 기세로 밀어붙일 사람이었다.그리고 다시 한번 말하지만 이 결혼은 내가 꿈꿔온 것이기에 조금의 거부감도 들지 않았다.나는 굳은 얼굴로 석지훈에게 물었다.“나한테 석씨 부인이 되어달라고 한 걸 후회하는 거예요?”나는 일부러 딱딱한 말투로 말했고 내 말을 들은 석지훈은 슬며시 웃고는 나를 데리고 진짜 혼인신고를 하러 들어갔다. 그리고 혼인신고를 마치고 나왔을 때는 머리가 멍해져서 살짝 믿어지지 않기도 했다.들어가서부터 나오기까지 20분도 채 걸리지 않았으니 얼떨떨한 게 어쩌면 정상이기도 했다.게다가 손에 들린 분홍색 쪽지를 보니 더욱 기분이 이상했다.그 쪽지에는 우리가 정식으로 부부가 됐음을 축복하는 글이 적혀있었다.「존경하는 신사, 부인에게: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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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8화

나는 원래 울고 있지 않았고 단지 눈이 시려서 울고 싶은 것뿐이었다. 하지만 석지훈의 말에 눈물을 멈출 수가 없었고 넋이 나간 채로 석지훈을 바라볼 수밖에 없었다. 게다가 윤 비서와 함승윤도 있는 자리에서 이렇게 눈물을 흘린다는 게 점점 머쓱해져 애꿎은 석지훈만 탓했다.“오빠랑 무슨 상관인데요, 난 그냥 이렇게 오빠한테 팔려가는 것 같아서 속상해서 그래요!”마음이 아픈 것도 아니었고 행복해서였다.나는 지금이 너무 행복해서 당장이라도 엉엉 울고 싶었다.하지만 우는 건 둘째치고 윤 비서와 함승윤 앞에서 나를 이런 식으로 놀리는 석지훈이 살짝은 괘씸해졌다.그 사람들이 사적으로 얼마나 많은 가십을 주고받는지 나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다.내가 무엇을 하든 간에 놀린 적이라곤 없던 석지훈이었는데 그런 그가 갑자기 나를 이렇게 놀린 것이다.석지훈은 목소리를 살짝 높이며 되물었다.“팔려가?”나는 아무렇지 않게 대꾸했다.“그럼 아니에요? 난 아직도 믿기지 않아요. 오빠, 우리가 정말 부부가 된 거예요?”석지훈은 아까보다는 차가워진 말투로 대답했다.“아직은 아니야.”나는 충격에 말을 더듬었다.“설마 전 아직 석씨 부인이 아닌 거예요?”어리둥절한 내 모습을 본 석지훈은 무의식적으로 내 머리를 쓰다듬으며 다정하게 설명해주었다.“국내의 법은 우리가 직접 결혼하는 것을 인정하지 않아서 대사관에서 등기해야 해. 하지만 아일랜드의 법은 또 대사관을 인정하지 않아서 우린 귀국해서 또 등기해야 해. 귀국해서 등기를 마치면 넌 진짜 석씨 부인이 되는 거야.”나는 석지훈의 말이 다소 복잡해서 이해를 잘하진 못했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았다. 나는 곧장 석지훈을 따라 비행기를 타고 운성시로 돌아가기로 했다.하지만 정작 아이들은 데리고 가지 않을 것 같아 석지훈에게 아이들을 데려가자고 제안하니 석지훈이 내게 본인의 계획을 말해주었다.“윤민이네는 여기로 오려면 서너 시간은 걸려. 오는데 지칠 것 같아서 너희 비서한테 부탁해서 두 아이는 본가로 데려가라고 했어. 그리고 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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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09화

언제 잃을지 모를 불안 속에서 살았다니?!나는 순간 내 마음속 깊은 곳에 늘 자리 잡고 있던 불안을 마주했다. 항상 무언가를 잃을지도 모른다는 나의 두려움을 석지훈이 제대로 보아낸 것이다. 결혼했음에도 불구하고 그 두려움과 불안은 완전히 사라지지 않았고 무의식적으로 자꾸 튀어나왔다.나는 아차 싶어 석지훈에게 사과를 했다.“미안해요, 그냥 한번 해본 말이었어요.”“괜찮아. 앞으로는 내가 너와 함께할 거야.”결혼 후의 석지훈은 점점 더 입에 꿀 발린 소리를 하는데 도가 터 가는 것 같았다.전에 알던 차갑던 석지훈의 모습은 찾아볼 수 없을 정도였다.피곤한 기색이 역력한 석지훈에게 요즘에 제대로 쉬지 못한 거 아니냐고 묻자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응, 살짝 피곤하네.”그 말에 나는 또 마음이 아파져서 얼른 휴식을 권했다.“그럼 좀 자요.”석지훈은 쥐고 있던 목걸이를 옆에 내려놓았다. 손목에는 얼마 전까지만 해도 차고 있던 롤렉스 서브마리너 그린은 없고 까르띠에 팔찌만 있었다.석지훈은 정장을 벗어 침대 옆에 두고 옷장에서 짙은 보라색 실크 가운을 들고 욕실로 들어가 샤워를 했다.씻고 나온 석지훈은 아까보다 훨씬 더 개운해 보였다.석지훈은 내 옆에 서서 말했다.“졸려?”나는 솔직하게 대답했다.“전 방금 깼어요.”나는 졸리지 않았지만 석지훈은 기어코 나를 침대로 끌어당겼다.석지훈이 나를 품 안에 가둔 탓에 꼼짝없이 그의 가슴팍에 얼굴을 기대게 되었고 일정한 그의 심장박동 소리를 듣다 보니 다시 졸음이 몰려오는 것 같았다. 수술하고 난 뒤로 전보다 훨씬 쉽게 피곤해지는 것 같았다.몸이 아주 조금만 힘들어도 피곤해지기 일쑤였다.그렇게 다시 눈 떴을 때 본 광경은 나보다 먼저 깬 석지훈이 침대 헤드에 기대앉아 책을 보고 있는 모습이었다. 책은 예전에 보던 「F국 중위 여인」이었다. 나는 몸을 일으켜 석지훈의 팔을 잡으며 물었다.“지금 몇 시예요?”내 말에 핸드폰 화면을 확인한 석지훈이 대답했다.“다섯 시야.”“저녁 식사 시간이 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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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0화

나는 석지훈을 보며 해사하게 웃으며 일부러 얇은 목소리로 소녀처럼 애교를 잔뜩 부리며 말했다.“여보가 나 좀 안아줘요.”석지훈은 그늘이 진 얼굴로 중얼거렸다.“네가 먼저 건드린 거야.”나는 이해가 되지 않아 석지훈을 빤히 바라보았다.“네?”“아가야.”낮게 깔린 석지훈의 목소리는 상상 이상으로 매력적이었다.초면인 목소리에 나는 순간 사고회로가 정지되어 버벅거렸다.“뭐라고요?”이어서 들려오는 석지훈의 목소리는 어딘가 살짝 급해 보였다.“여보라고 불러볼래?”여전히 어리둥절한 나를 두고 석지훈은 다시 나를 재촉하는 듯 말끝을 올렸다.“응?”어딘가 묘한 느낌에 나는 다급히 두 글자를 뱉었다.“여보.”...우리가 다시 침대에서 일어났을 땐 이미 저녁 일곱 시였다.나는 다급히 어머니에게 전화를 걸었다.우리가 집에 가서 밥을 먹을 거라는 말을 들은 어머니는 웃으며 말했다.“우리도 방금 밥을 먹으려던 참이었는데, 다행히 마침 네가 전화를 해줬구나! 그럼 내가 음식을 몇 개 더 해놓을게. 너희들이 거의 다 도착할 때쯤이면 비슷하게 다 완성될 것 같아.”여보...속으로 계속 여보라는 말을 되뇌다 보니 확실히 석지훈이 눈이 돌아갈 만한 호칭이 맞는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하지만 석지훈은 한 번도 나를 여보라고 불러준 적이 없었고 계속 석씨 부인으로만 불러왔다.나는 별장으로 가는 길 내내 아까의 장면을 떠올렸다. 정말이지 생각하면 할수록 얼굴이 뜨거워졌고 심장은 계속 쿵쾅댔다.별장 입구에 도착하자 윤 비서가 기다리고 있었다. 윤 비서는 우리를 발견하고 발 옆에 놔두었던 선물들을 들고 우리에게로 다가와 석지훈에게 보고했다.“석 대표님, 제가 사모님 어머님께서 어떤 취향인지 몰라 선물로 보건품과 비취 팔찌를 샀습니다. 그리고 아버님의 선물로는 담배와 술을 샀습니다.”윤 비서는 자연스럽게 나를 사모님이라고 부르고 있었다.윤 비서는 눈치가 빨랐다. 이번 일은 윤 비서와 따로 만나서 격려를 해주고 석지훈에게 윤 비서의 월급 인상에 대해 논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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