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편지는 매우 짧았다.「올해는 너를 사랑한 지 12년째 되는 날이자 너와 결혼한 지 3년째야. 네가 내 아내라서 행운이고 내가 너의 남편이 될 수 있어서 다행이야. 하지만 나는 널 평생 사랑해줄 수 없을 것 같아!유이야, 내 기억력은 점점 더 나빠지고 있어. 의사가 말하길 얼마 지나지 않아 나는 내 주변의 사람들을 잊어버릴 거래. 그게 당장 오늘 밤이 될 수도, 내일이 될 수도, 어쩌면 내가 이 밀실에서 나가는 순간일 수도 있어.난 내가 너를 잊을까 봐 너무 무서워.난 내가 피할 수 있을 거로 생각했는데... 안타깝게도 운명을 피해가긴 무리였나 봐.유이야, 내가 너를 잊은 후에도 다시는 너를 생각하지 않을 수도 있고 가족들까지 잊어버리는 날이 오더라도 너를 포함한 그 누구에게도 내가 기억을 잃었다는 사실을 밝히지 않을 거야! 내 나약함 때문에 석씨 가문의 가주로서의 사명과 책임에 금이 가게 할 수는 없거든.정말 미안해, 유이야.언제가 됐든 기억을 잃는 날이 온다면 그땐 내가 먼저 너를 알아볼게.믿어줘, 이번 생에 절대 널 실망하게 하는 일은 없어.」나는 또 다른 편지 봉투를 열어 보았고 역시나 모두 이정희에 관한 것이었다. 제일 처음 보았던 편지가 시간상으로 제일 마지막 편지였는데 마침 이정희와 결혼한 지 3년째 되던 해였다. 그 말인즉슨, 아버지는 30여 년 동안 이 밀실을 드나들지 않았다는 뜻이었다. 절대 석만호가 말한 27년이 다가 아니었다.현정우는 문득 무언가를 깨달은 듯 말했다.“원래 가주님을 대신해서 유품을 정리할 때 가주님의 베개 옆에 두꺼운 일기장이 있는 걸 봤습니다. 일기장에 적힌 이름은 안혜인이었는데 아마도 원래 가주님과 안혜인 씨, 그러니까 가주님 어머니 사이의 사소한 일들을 적은 것 같았습니다. 하지만 그 일기장은 후에 석 대표님께서 핀란드로 가져갔습니다.”이 편지들은 온통 아버지가 이정희와 보낸 나날들에 대한 것이었다.오늘 무엇을 했는지와 같은 아주 사소한 것들까지도 빠짐없이 적어두었다. 나는 시간을 들여 모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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