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ome / 로맨스 /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 Chapter 101 - Chapter 110

All Chapters of 너만을 향한 애틋한 사랑: Chapter 101 - Chapter 110

459 Chapters

제101화

가족 앞에서는 무슨 말이든 다 털어놓는 성격이라 나는 김예진에게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김예진은 잠시 망설이다가 대답했다.“뭐, 그런 셈이지.”“왜 싸웠는데요?”김예진은 꾸밈없는 사람이었다. 그녀는 솔직하게 사실을 털어놓았다.“민수 씨는 내가 매사에 너무 무심하고 사람들에게 별로 관심도 없다고 생각하나 봐. 네가 수술을 받은 뒤에도 난 계속 밖에서 돌아다니기만 했잖아. 결국 문제의 본질은 민수 씨는 내가 민수 씨를 별로 사랑하지 않는다고 여기는 데서 비롯됐어. 넌 그저 우리가 싸움을 터뜨린 계기가 됐을 뿐이야.”조민수는 늘 내 일에 대해 책임감 있게 신경 써 주었고 나도 거리낌 없이 그의 도움을 받았다. 그 속에서 우리는 모두 김예진의 마음을 놓치고 있었다. 나는 미안한 마음으로 말했다.“미안해요, 언니.”그리고 붉어진 눈시울을 손으로 가리며 덧붙였다.“정말 미안해요. 그런 점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어요. 사실 오빠는 정말 언니를 사랑해요. 나에게 신경 쓰는 것도 그저 의무감 때문이에요. 앞으로 오빠에게 부탁하는 일 줄일게요, 언니. 제발 오빠에게 너무 화내지 마세요.”“그런 게 아니야, 수아야.”김예진은 차분히 설명했다.“네가 걱정할 일은 없어. 우리는 단지 싸움의 이유를 찾은 것뿐이지, 본질적인 문제는 민수 씨는 내가 너무 쌀쌀맞다고 느낀다는 거야. 아마 내가 생각만큼 민수 씨를 사랑하지 않는다고 느끼나 봐.”“그럼 언니는 오빠에게 마음이...”“사실 나와 민수 씨가 다시 만나기까지 생각처럼 순조롭지 않았거든. 그 사람이 나를 많이 아프게 했었어. 그때는 정말 평생 용서할 수 없을 줄 알았는데, 결국 민수 씨의 끈질긴 구애에 마음이 돌아섰어. 다시 만난 후로 한동안은 참 행복했어. 그런데 마음 한구석에는 여전히 남아 있는 불편함이 있더라. 그 마음의 벽이 쉽게 허물어지지 않아서 내가 예전처럼 민수 씨를 사랑할 수 없게 됐나 봐.”나는 깜짝 놀랐다. 민수 오빠와 예진 언니 사이에 그런 벽이 있었다니.김예진은 이어서 말했다.“우리가
Read more

제102화

최희연이 교통사고를 당했다는 소식을 듣고 나는 부랴부랴 병원으로 달려갔다. 병실 앞 복도 한쪽에 고현성이 담배를 들고 서 있었다. 내가 다가가자 그는 서둘러 담배를 치우고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희연 씨는 응급 처치가 끝났어. 그런데... 운전한 사람이 희연 씨가 접근하고 싶어 하던 그 남자더라고.”나는 곧바로 물었다.“진유겸이라고요?”고현성은 어떻게 최희연이 진유겸에게 접근하려 했다는 걸 알았을까?고현성이 나를 바라보며 물었다.“너 진유겸을 조사한 게 혹시 희연 씨 때문이야?”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인정했다. 고현성은 날카로운 눈빛으로 곧 모든 것을 이해한 듯 말했다.“내 생각엔 희연 씨가 일부러 그런 것 같아. 스스로 위험에 뛰어들어 마지막 승부수를 던진 거지. 우리가 희연 씨의 복수심을 과소평가했나 봐. 진씨 가문에 깊숙이 들어가기 위해 진유겸을 건드리고 이런 일까지 계획하다니.”고현성의 말은 그 역시 진서준의 죽음과 관련해 의심을 품고 있음을 암시했다. 우리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하고 있었다. 그도 최희연이 쉽게 물러서지 않을 것임을 알고 있었다.나는 궁금한 마음에 물었다.“진유겸은 어디 있어요?”설마 최희연을 치고 그냥 도망쳐버린 건 아니겠지?“갔어. 대신 비서를 남겨두고 갔더군.”나는 이해가 가지 않아 다시 물었다.“이렇게 해서 희연이가 얻을 수 있는 게 뭘까요?”단지 교통사고로 진유겸이 최희연에게 책임감을 느낄 리도 없는데.고현성은 희미하게 미소를 지으며 확신에 찬 어조로 대답했다.“아마도 협상할 기회를 얻고 싶은 거겠지.”나는 그 협상의 의미가 무엇인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병실로 들어가 보니 최희연은 아직 의식을 되찾지 못한 상태였다. 얼굴을 제외한 온몸에 멍이 들어 있었다. 이런 그녀를 보니 마음이 아려왔다.최희연의 인생은 참으로 험난했다. 평생 진서준을 기다렸고 어렵사리 그가 살아 있다는 소식을 들었지만 불과 석 달 만에 그 희망은 사라지고 말았다. 이제 그녀에게는 정말 아무것도 남지 않았다.마음이
Read more

제103화

유서정은 아마 내가 홀에 들어서는 순간부터 자신의 상황이 불리하다는 걸 눈치챘을 것이다. 그래서 휴대폰을 슬며시 옆에 있던 유지영의 가방에 넣었을 터였다.“괜찮아요. 어차피 우리가 원한 건 이미 이루어졌으니까.”내가 담담하게 말하자 비서가 놀란 듯 물었다.“대표님, 처음부터 유서정이 범인인 줄 아셨던 거예요?”“추측은 했지만 확실한 증거는 없었어요.”비서의 전화를 끊은 후 나는 침대에 앉아 출생 기록을 펼쳤다.이름이 연수아인 건 맞았다. 아기였던 내 사진도 들어 있었다. 그런데 유일하게 다른 점이 하나 있었다. 출생 연도가 1995년으로 기재되어 있었다.나는 1996년생으로 올해 23세다. 그러나 이 기록에 있는 연수아는 24세였다.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불안감이 서서히 피어오르기 시작했다.임지혜가 무엇을 하려는지 단번에 이해가 되었다.나는 급히 비서에게 문자를 보내 나의 출생 기록을 삭제해 달라고 부탁했다.비서는 이유를 묻지 않고 알았다고 답했지만 내 마음은 여전히 답답하고 불안했다.순간 내가 다른 사람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그렇다. 나는 진짜 연수아가 아닐 수도 있었다. 만약 이게 사실이라면 내 부모님도 진짜 부모님이 아니란 말인가?이런 사실을 받아들이기 어려웠다. 그런데 연씨 가문에는 지금 나를 위해 이 사실을 확인해 줄 어른이 아무도 남아 있지 않았다.머릿속에 떠오른 유일한 사람은 연시혁이었다.나는 연락처를 뒤져 연시혁의 번호를 찾아냈다. 그가 번호를 바꿨는지 확신할 수 없었지만 잠시 망설이다 전화를 걸었다.한참 동안 기다리자 전화가 연결되었고 그가 짜증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연수아, 갑자기 왜 전화했는데? 우리 사이가 그렇게 좋다고 생각해?”연시혁은 어릴 때부터 나에게 늘 냉담했다. 나와 큰 원한이 있는 것도 아니었지만 그저 성격이 그런 사람이다.나는 개의치 않고 차분하게 물었다.“요즘 어떻게 지내? 돈 필요한 건 아니지?”“너랑 무슨 상관인데? 돈 필요해도 널 찾아갈 일 없어.”나는 말문이 막
Read more

제104화

나는 고정재의 이름을 직접 언급하지 않았다.윤다은이 고정재를 좋아한다는 사실을 내가 알고 있다는 걸 그녀는 모른다. 하지만 그녀는 고정재가 지금 나를 좋아한다는 걸 알고 있었다.그 점에서 나는 윤다은에게 있어 일종의 경쟁자 같은 존재였다.윤다은이 나에게 어떤 마음을 품고 있는지 알 수 없었다. 그런데 전화를 걸어 만나자고 하니 그녀의 속내를 가늠하기가 어려웠다.윤다은은 내 질문을 듣고는 솔직하게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맞아요. 앞이 보이지 않는 짝사랑이라서요.”보통 이런 경우에는 그 남자가 어떤 사람이냐고 물어야 했겠지만 그 사람이 고정재라는 걸 알기에 그 말이 차마 입 밖으로 나오지 않았다.나는 가볍게 한숨을 쉬며 말했다.“감정 문제는 말로 하기 참 어려운 것 같아. 무슨 말로 위로해야 할지 모르겠다. 뒤에 담요가 있으니까 그거라도 덮어.”윤다은은 내 말투에서 냉담함을 느꼈는지 입술을 꼭 다물고 더 이상 말하지 않았다. 담요를 가져다 덮지도 않았다.나와 고현성의 관계가 있으니 그녀는 어쨌든 나를 언니라고 부르고 있다. 그녀가 이렇게 힘들어하는 모습을 보니 마음이 아프지 않다고 할 수는 없었다. 그럼에도 내가 해줄 수 있는 건 아무것도 없었다.순간적으로 약속을 잡은 게 후회스러웠다. 나는 그녀가 안타까워 뒷좌석에서 담요를 집어 건네주었다. 윤다은은 조용히 받아 들고 담요를 덮으며 말했다.“난 수아 언니가 정말 부러워요.”오늘 윤다은이 나를 찾은 건 결국 고정재에 대해 이야기하고 싶어서일 터였다.나는 차를 출발시키며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난 건강한 몸도 없고 아이도 가질 수 없는 몸이야. 그런 내가 뭐가 부럽다는 거야? 다은아, 너는 지금 너의 행복을 찾지 못했을 뿐이야.”“그래도 언니가 너무 부러워요.”내가 그 남자의 사랑을 얻었다는 게 부러운 걸까?나는 그저 모르는 척 웃어넘겼다.“나도 네가 부러워.”창밖의 비는 점점 거세졌고 앞이 잘 보이지 않았다. 나는 조심스레 차를 길가에 세웠다.“비가 좀 잦아들 때까지 기
Read more

제105화

이런 말을 하는 건 좀 지나친 것 같았다...고정재랑 나는 정말 아무 사이도 아니었지만 그 남자는 나한테 마음이 있었다. 평생 기다리면 되냐고 물은 적도 있었다.그는 평생을 바쳐서라도 나를 기다리겠다고 했다.내 말을 들은 윤다은은 충격을 받은 듯 말이 없었다. 차 안은 갑자기 낯설 정도로 고요해졌다. 나는 기억 속의 길을 따라 그녀의 아파트로 차를 몰았다.아파트 입구에 차를 세우고 그녀에게 우산을 건넸다. 윤다은은 감사하다는 말을 하면서도 미안한 목소리로 말했다.“수아 언니, 귀찮게 해서 죄송해요. 그냥 누군가에게 이야기하고 싶었어요.”그녀는 잘못한 게 없었다. 오히려 내 태도가 문제였다.윤다은의 두려워하는 듯한 눈빛을 보며 나는 살며시 그녀의 손목을 잡고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정재 씨의 마음마저 내가 어떻게 할 순 없겠지만 정재 씨와 다시는 엮이지 않겠다고 약속할게.”윤다은은 놀란 표정으로 나를 쳐다보다가 곧 고개를 가로저었다.“저는 언니랑 오빠가... 그런 게 걱정되는 게 아니에요.”“다은아.”내가 그녀를 부르자 윤다은은 입을 다물고 눈시울이 붉어진 채 나를 바라보았다.“나도 예전에 현성 씨를 좋아했었어. 그때 정말 미치도록 질투했던 사람이 있었거든.”나에게는 임지혜가 그랬다. 미치도록 질투했던 사람.“수아 언니, 저는 언니를 질투하는 게 아니에요.”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알아. 그래도 내가 너라면 나 같은 사람이 있는 건 신경 쓰일 거야.”나도 한때 누군가를 진심으로 사랑했었기에 윤다은의 마음을 이해했다.그녀는 우산을 들고 눈물을 흘리며 나를 가만히 바라보았다.나는 차에 올라 곧 출발했다. 그러다 연시혁에게서 전화가 왔다. 비 오는 날 굳이 만나자고 했다. 사실 가지 않으려 했지만 낮에 있었던 일이 마음에 걸려 결국 수락했다.“한 시간쯤 걸릴 것 같아. 기다려.”비가 오니 운전은 느려질 수밖에 없었고 연시혁이 약속한 장소는 외딴곳이었다. 결국 한 시간이 지나서야 도착할 수 있었다.그곳은 운성시 외곽의 작은
Read more

제106화

“김대성, 당장 그 여자를 놓지 못해?”낯설지만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 내 목을 움켜쥐고 있던 사람이 갑자기 손을 놓아버렸다. 나는 비바닥에 쓰러진 채 거칠게 숨을 몰아쉬었다.김대성이라는 남자가 바닥에 침을 뱉으며 비웃듯 말했다.“비겁한 놈이 드디어 나타났네?”“웃기지 마. 전화하느라 늦었을 뿐이야.”통화 중이었던 이유가 바로 다른 사람에게 연락을 하고 있었기 때문이었다.나는 기침을 몇 번 하며 겨우 정신을 차리고 고개를 들었다. 빗속에서 당당히 서 있는 연시혁이 보였다. 여전히 그는 거침없고 천하를 두려워하지 않는 모습이었다. 마치 연씨 가문을 떠나던 그때처럼 하늘 아래 두려울 게 없는 모습이었다.나는 그를 멍하니 바라보았다. 연시혁도 나를 보며 잠깐 눈빛이 흔들렸다. 그의 눈에는 살짝 죄책감이 스쳤다.드물게 그가 미안하다는 듯 말했다.“미안해, 수아야. 이 빌어먹을 자식이 나한테 덫을 놓고 기다릴 줄은 몰랐어. 너까지 휘말리게 해서 정말 미안해.”나는 고개를 저으며 괜찮다는 뜻을 전했다. 하지만 마음 한편에는 여전히 불안함이 가득했다. 연시혁은 맨손에다 혼자였다. 괜히 윤다은처럼 그가 다치지 않을까 걱정스러웠다.옆을 돌아보니 윤다은이 거의 의식을 잃은 상태로 땅에 엎드려 있었다. 크게 다친 것 같았다. 나는 다급히 다가가 그녀를 품에 안고 되뇌었다.“괜찮아, 이제 괜찮아”이 말을 그녀에게 들려주는 건지 아니면 나 자신을 위로하는 건지 나조차도 알 수 없었다.그러던 중 연시혁이 갑자기 혼자 뛰어 들어왔다. 걱정이 밀려오는 순간 그의 뒤에서 여러 사람이 뛰어나와 함께 싸우기 시작했다.김대성은 눈이 휘둥그레진 채로 나를 잡으려 했지만 연시혁이 재빨리 그에게 발길질하고 내 옆으로 다가와 나를 지켰다.그는 싸움에 가담하지 않고 오로지 나를 지키기 위해 온몸으로 다른 사람들의 공격을 막았다. 나는 걱정스러운 목소리로 물었다.“괜찮아?”비가 너무 쏟아져 연시혁은 내 말을 듣지 못한 듯했다. 그는 입술을 핥으며 혼잣말처럼 중얼거렸다.“
Read more

제107화

그가 만남을 약속한 이상 당연히 자초지종을 알고 있겠지.연시혁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너는 수아가 아닐지도 모르지만 연씨 가문의 진짜 핏줄이라는 건 의심의 여지가 없어.”나는 웃으며 말했다.“시혁아, 너답지 않네. 너라면 뭐든 직설적으로 말했을 텐데. 나도 진실을 알고 싶어. 말해줄 수 있어?”연시혁은 뭐라고 하려다가 갑자기 내 뒤를 쳐다보며 말했다.“다음에 시간 나면 내가 연락할게.”고개를 돌리지 않아도 고현성이 뒤에 있다는 걸 알 수 있었다. 연시혁이 불편해하는 게 당연했다.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응, 다음엔 조용한 곳에서 보자.”마음 한편이 허전하게 느껴졌다.연시혁이 떠난 후 뒤를 돌아보니 고현성이 차가운 표정으로 연시혁이 사라진 방향을 응시하며 물었다.“너희 전부터 알고 지내던 사이야?”“네, 친구예요.”내 대답에 거짓은 없었다. 하지만 그에게 감추고 있는 게 있는 것도 사실이었다.고현성은 더 묻지 않았고 돌아오는 길에 내가 먼저 물었다.“정재 씨는 다은이가 다친 걸 알고 있어요?”“응, 전화했어.”“그럼 다은이를 보러 오겠다고 했어요?”내가 다시 묻자 고현성은 문득 나를 바라보았다. 그의 깊은 눈빛 속에 무언가 탐색하는 듯한 기운이 섞여 있었고 오랜 침묵 끝에 대답했다.“시간이 없대.”나는 윤다은이 조금 불쌍하게 느껴졌다.그 남자를 좋아하는 마음 때문에 불쌍하게 느껴졌다.하지만 과거의 나라고 달랐을까?문득 윤다은이 방금 했던 말이 떠올랐다. 고정재가 나를 찾아가려고 했지만 그녀가 거짓말로 막았다고 했다.사실 그 남자도 한때는 나에게 따뜻함을 주려 했던 걸까.병원으로 돌아왔을 때 윤다은은 이미 깨어나 있었다. 그녀는 상태가 많이 좋아진 듯했고 고현성을 보자 살짝 놀라며 말했다.“작은오빠가 여기 웬일이야? 새언니는 참 행복하겠네.”고현성 앞에서 그녀는 나를 수아 언니가 아니라 새언니라고 불렀다. 그 뒤에 이어진 말은 아마도 내 옆에 고현성이 있는 게 부러워해서겠지.그녀는... 고정재를 원했다.
Read more

제108화

‘다은이가 나를 좋아한다고 해서 내가 반드시 응답해야 하는 거야?’고정재의 말이 머릿속 깊이 울려 퍼졌다.나는 순간 멍해졌다. 어떻게 대답해야 할지 몰랐다.그는 한숨을 쉬며 낮고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꼬마 아가씨, 세상엔 원하는 대로 되지 않는 일이 많아. 네가 다은이를 얼마나 아끼는지 알아. 나도 다은이 오빠로서 흔들리지 않는 척하기 어려워. 하지만 어떤 일에는 내 나름의 기준이 있어. 다은이가 나를 좋아하는 건 다은이의 감정이지만 내가 다은이에게 마음을 주지 않는 건 내 선택이야. 내가 무정하게 대하지 않으면 다은이가 내게서 희망을 보게 될 테니까.”그의 말이 맞았다. 사랑이란 건 양쪽이 마음을 주고받아야 하는 것이다. 고정재가 윤다은에게 마음이 없다면 그녀에게 희망을 주지 않는 게 오히려 옳은 일일지도 모른다. 괜히 기대하게 만들면 결국 둘 다 상처를 입을 테니까.윤다은도 속으론 이 사실을 알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아는 것과 미련을 버리는 건 전혀 다른 문제다. 그녀는 쉽게 고정재를 포기하지 못할 것이다.사실 그런 그녀를 보면서 아무렇지 않다고 말할 수는 없었다. 특히 그녀가 나를 구해준 후에는 그녀에 대한 연민이 더욱 깊어졌다. 마음이 착잡해지면서도 미안한 마음에 조용히 말했다.“정재 씨의 입장을 이해해요. 제가 이런 걸로 당신을 불편하게 해드려선 안 됐네요.”고정재는 너그럽게 괜찮다고 하며 물었다.“몸은 괜찮아?”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네, 괜찮아요.”“고생했네. 나중에 운성시에 가게 되면...”그가 말을 하다가 멈추더니 낮고 웃음기 띤 목소리로 말을 이었다.“꼬마 아가씨, 드디어 현성이를 용서하고 자신을 놓아주기로 결심했구나. 축하해.”“...”고정재가 이미 내가 고현성과 다시 만나기 시작했다는 걸 알고 있었다.아마도 고현성이 금운시에 갔을 때 그에게 말했을 터였다.그 남자는 참으로 강한 소유욕을 가지고 있었다. 자신의 주도권을 선언하는 데 능숙한 사람이다.결국 나는 9년 전의 그 따뜻함을 선택하지
Read more

제109화

주황색 고양이가 한 번 야옹 소리를 냈지만 고현성은 귀찮은 듯 무시하고 나를 방으로 데려갔다.방 안의 침구는 이틀 전 그대로였다. 그는 어두운 밤하늘을 한 번 쳐다보더니 말했다. “지금 새벽 3시야. 얼른 자자.”나는 얌전히 돌아서서 욕실로 가 세수를 하고 나왔다. 그가 보이지 않아서 창밖을 내다보니 수영장 쪽에서 고양이를 쓰다듬고 있었다. 나는 침대에 누워 그의 옆모습을 바라보다가 금세 잠이 들었다.방 밖에서 들려오는 빗소리가 점점 거세져서 잠결에 신경이 쓰였다. 나는 비몽사몽인 상태로 눈을 떴다. 옆에 잠들어 있는 고현성을 보며 살짝 몸을 돌리다가 그를 깨우고 말았다. 그가 나를 팔로 끌어안으며 낮은 목소리로 물었다.“깼어?”나는 졸린 목소리로 물었다.“밖에 또 비 오는 거예요?”오늘 밤 비가 유난히 많이 내렸다. 윤다은이 수술실에서 상처를 치료받을 때는 잠시 멈췄는데 지금 다시 쏟아지기 시작했다.고현성은 내 머리를 살며시 만지며 설명해 주었다.“운성은 원래 비가 잦은 도시야. 조금 지나면 나아지겠지만 여름이 되면 본격적인 우기야.”몸이 조금 으슬으슬해지자 나는 두 팔로 고현성의 몸을 꼭 끌어안고 애교를 부렸다. “나 좀 추워요.”그는 내 이마에 손을 얹어보며 물었다.“감기 걸린 거 아니야?”“아마도... 머리가 좀 어지러워요.”그는 자리에서 일어나 체온계를 가져와 내 입에 물렸다. 미열이 조금 있었다. 고현성은 구급상자에서 비상약을 찾아서 나에게 먹이고 계란 두 개를 삶아 내 얼굴에 대주며 부기를 빼주었다.뺨을 맞은 자국이 아직도 살짝 붉게 남아 있었다. 그는 계란으로 조심스럽게 얼굴을 문지르며 부드럽게 말했다.“내일 점심쯤이면 다 가라앉을 거야.”“네.”나는 작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러자 고현성이 갑자기 내 입술에 입맞춤을 했다.“내일은 얌전히 집에 있어.”잠시 멈추더니 그는 내 이마를 만지며 낮고 진지한 목소리로 덧붙였다.“괜히 돌아다니지 마. 아니면... 내가 널 어떻게 할지 알아? 아, 너 우리 아버지 무서워
Read more

제110화

연시혁의 여자 친구가 말하기를, 경찰이 갑자기 집으로 들이닥쳐 연시혁을 잡아갔다고 했다. 무슨 일이 있었는지는 전혀 모른다고 했지만 나는 어젯밤 만난 김대성이 떠올랐다.그는 연시혁을 무척이나 증오하는 듯 보였고 어젯밤 나를 붙잡고 연시혁의 목숨을 앗아가겠다고 위협했었다. 아마도 연시혁과 김대성 사이에 심각한 일이 있었던 게 분명했다.전화를 끊고 시계를 보니 오후 1시였다. 지금 당장 차도 없고 비서에게 와 달라고 하면 여기까지 오가는 데 몇 시간이 걸리니, 마을에 도착하면 오후 5시가 될 것이다. 게다가 고현성은 저녁 7시쯤 집에 올 텐데 모든 일을 처리하고 다시 별장으로 돌아오기엔 시간이 빠듯했다. 만약 또 나간 걸 들키면 분명히 그가 화를 낼 게 뻔했다.그리고 밖에는 이렇게 비가 쏟아지고 몸도 피곤해서 당장이라도 다시 자고 싶었지만 연시혁을 그냥 두고는 차마 마음이 놓이지 않았다.결국 한숨을 내쉬며 비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침대에 누워 조금 더 미적거리다가 마지못해 일어나 옷을 챙겨 입고 화장도 끝냈지만 비서는 아직 도착하지 않았다.어제 제대로 먹은 게 없어 배가 고팠기에 나는 주방으로 가서 직접 라면을 끓였다. 두어 젓가락 먹고 나니 옆집의 주황색 고양이가 하얀 고양이를 데리고 나를 보러 왔다.문 앞에 앉아 나를 바라보며 연신 ‘야옹’거리는 것이 꼭 중년 남자의 쉰 목소리처럼 거칠게 들렸다.라면을 다 먹고 주방을 정리한 후 별장 문 앞에서 주황색 고양이를 향해 손짓하며 불렀다.“이리 와, 착하지.”이 고양이는 사람의 말을 알아듣기라도 하듯 내 손짓에 반응하며 다가왔다.나는 그들을 데리고 뒷마당의 연못으로 가서 그물로 잉어 두 마리를 잡아 주었다.두 마리 모두 입에 물고 다른 별장 쪽으로 바삐 도망가는 모습을 보며 웃음이 나왔다.다시 집 안으로 들어와 비서에게 메시지를 보냈다.[얼마나 남았어요?][5분 남았습니다.]나는 휴대폰을 집어넣고 방으로 들어가 발목까지 내려오는 긴 검은색 패딩을 꺼내 입고 거실 소파에 앉아 비서를 기
Read more
PREV
1
...
910111213
...
46
Scan code to read on App
DMCA.com Protection Status