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 Chapter 361 - Chapter 3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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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1화

안리영이 차갑게 말했다.“이미 경고했죠. 다시는 나를 찾아오지 마세요. 또 오면 경찰에 신고할 거예요.”그러나 남자는 물러서지 않고 이어갔다.“리영 씨, 저는 괴롭히려는 게 아니에요. 그저 좋아서 정말로 진심으로 당신에게 다가가고 싶었을 뿐이에요...”그 말을 듣자 며칠 전 꽃을 보낸 남자가 떠올랐다.“리영 씨, 맹세할게요. 당신을 처음 본 순간 사랑에 빠졌어요. 진심입니다!” 남자가 손을 들며 말했다.“리영이는 당신을 처음 본 순간부터 싫어했을 텐데요.”내가 말을 받아치며 안리영 옆에 섰다. 진정우도 자리에서 일어나 상황을 지켜봤다. 그는 언제든 이 남자를 제압할 준비가 되어 있었다.이때 그 남자가 나를 쳐다보며 불쾌한 목소리로 말했다.“당신 누구세요? 내가 리영 씨랑 얘기 중인데 왜 끼어드는 거죠?”그 말에 정말 어이없어서 웃음이 나올 지경이었다.“그럼 당신은 뭐길래 좋아한다고 하면 우리 리영이가 대답해야 하나요?” 나는 전혀 굽히지 않고 맞받아쳤다.“나는 리영 씨를 정말 순수하게 좋아해요. 그런 사랑을 당신이 알 리가 없죠.” 남자는 점점 이상한 말을 늘어놓으며 나를 위아래로 훑어봤다. 마치 내가 그의 감정을 이해하지 못할 거라는 듯한 태도였다.나는 남자를 한참 동안 훑어보았다. 상의는 아디다스, 바지는 나이키, 신발은 퓨마. 전부 메이커 같지만 고급 짝퉁인 게 뻔히 보였다.“사람이 돈이 없어도 괜찮아요. 하지만 적어도 솔직해야죠.” 나는 비꼬며 말했다.처음 진정우를 만났을 때, 그는 평범한 티셔츠와 작업복 바지를 입고 있었다. 비록 소박했지만 믿음이 갔다.하지만 이 남자는 겉만 번지르르한 가짜였다.그가 찬 시계가 그 유명한 녹색 롤렉스 짝퉁이라는 걸 알아보고 웃음이 나왔다. 나는 가차 없이 물었다.“당신은 뭘 믿고 리영 씨를 좋아한다고 말하죠? 돈이 있나요? 엄청 많아요?”남자는 당황한 듯 머뭇거렸다. 나는 기다리지 않고 바로 이어 말했다.“당신 같은 사람은 전기세 100원만 올라가도 투덜댈 것 같은데 그런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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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2화

안리영은 창밖에서 서 있는 진정우를 바라보며 물었다.“언제쯤 끝날까?”밖에 서 있는 남자는 진정우에게 무릎이라도 꿇을 듯 애원하고 있었다. 진정우는 한 손을 바지 주머니에 넣은 채 서 있었고 아침 햇살이 그의 몸을 감싸며 빛나고 있었다.나는 그의 모습을 보며 눈을 뗄 수 없었다. 그리고 마음 깊은 곳에서 알 수 없는 자부심과 행복감이 차올랐다.‘그래, 저 사람은 내 남자야.’진정우와의 시작은 단순히 우연이었다. 가볍게 흘려보낼 생각으로 시작했던 관계였고 강유형과 헤어진 후의 공허함을 채우려는 의도도 있었다.하지만 지금 보니, 진정우는 내가 생각했던 것보다 훨씬 더 소중한 사람이었다. 그의 진가를 매일 새롭게 발견하며, 내가 얼마나 행운인지 깨닫고 있었다.“대답 좀 해 봐. 물어봤잖아.”안리영이 어깨로 나를 살짝 찌르며 말했다.나는 눈을 깜빡이며 대답했다.“아마 곧 끝날 거야.”내 예상이 맞다면, 밖에 있는 남자는 진정우에게 어깨를 고쳐 달라고 애원하고 있을 것이다. 전에 진소영이 말하기를, 진정우가 접골을 할 줄 아는 이유는 어릴 적 마을 어르신에게 배운 기술 덕분이라고 했다. 진소영이 자주 팔이 탈구되어 어르신을 찾았고 진정우는 자연스럽게 그 과정을 지켜보며 기술을 익혔다고 했다.결국 그는 탈구된 팔을 고치는 방법을 배웠고 반대로 탈구를 유도하는 방법도 알게 되었다. 지금도 그 남자는 끊임없이 진정우에게 애원하고 있을 것이다. 하지만 진정우는 그를 완전히 골탕 먹이려는 게 아니라, 결국 어깨를 고쳐줄 것이다. 게다가 진정우는 나와 함께 혈액 검사 결과를 확인하러 가야 하니, 그 남자와 시간을 허비할 여유가 없을 것이다.“아마 우리가 나가면 바로 끝날 거야.”나는 덧붙여 말했다.안리영도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그럼 나가면서 얘기하자.”안리영은 의자에 걸쳐 둔 외투를 내 어깨에 걸쳐 주며 천천히 말했다.“어제 조나연 말인데 네가 통화 끝나고 바로 예약 잡고 수술 준비했거든. 근데 돈만 내고 또 도망갔더라니까.”나는 고개를 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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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3화

안리영이 갑자기 이상한 말을 꺼냈다.“네가 예전부터 이렇게 했다면 강유형이 도망가진 않았을 거야.”현 남자 친구 앞에서 전 남자 친구 이야기를 꺼내는 건 최악이다.그녀가 나를 해치려는 게 아닌 건 알지만 무슨 의도로 이런 말을 했는지 궁금했다. 고개를 돌려 안리영이 나에게 살짝 윙크를 했다.그녀는 진정우의 반응을 보고 싶었던 거다. 아무리 대범한 남자라도 여자 친구의 과거 연애에 대해 신경 쓰지 않는 사람은 없으니 말이다.하지만 왜 굳이...괜히 진정우를 자극해서 도망가게 만들 수도 있는데 말이다.나는 몰래 진정우의 얼굴을 살폈다. 예상과 달리 그는 표정 하나 변하지 않았다.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그런데 안리영은 멈추지 않고 말을 이었다.“정우 씨, 그렇지 않나요?”나는 속으로 한숨이 나왔다. 그 순간, 진정우가 짧게 대답했다.“지원이는 저한테만 애교 부려요.”그 한마디에 공기마저 달콤해졌다. 이 사람, 대답 하나로 상황을 완벽히 마무리했다.안리영은 감탄하듯 혀를 차며 말했다.“진짜 의외네요. 정우 씨, 이성적이고 무뚝뚝한 분인 줄 알았는데 로맨틱한 면이 이렇게 많다니.”진정우는 살짝 미소를 띠며 말했다.“화학에서도 양자 반응이라는 게 있어요. 각 반응은 결합한 양자 상태에 따라 매번 달라지죠. 지원이랑 있으면 제가 달라지는 것처럼.”그의 말에 나는 속으로 웃었다. 사랑을 이렇게 과학적으로 풀어낸다니, 역시 진정우답다.그러자 안리영이 손가락을 치켜세우며 칭찬했다.“정우 씨는 정말 대단한 사람인 것 같아. 너 진짜 복 받았네.”내 마음속에 자부심이 가득 찼다. 이 사람과 만난 건 정말 큰 행운이었다.그때 안리영이 장난스럽게 물었다.“지원아, 그러면 조나연에게 고마워해야 하는 거 아니야?”그녀의 의도를 이해한 나는 웃으며 대답했다.“맞아. 조나연이 아니었으면 내가 정우를 어떻게 만났겠어?”그 말을 하며 나는 자연스럽게 진정우의 어깨에 머리를 기대었다.안리영은 웃으며 장난을 쳤다.“그만해. 다행히 배부르게 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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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4화

허진호가 나를 식사 자리에 초대하겠다고 하자 조금 놀랐다. 사실 아까 병원에서 채혈할 때 진정우가 귓속말로 그런 얘기를 했었다. 그때는 단순히 내 주의를 돌리려는 말인 줄 알았는데 이게 진짜가 될 줄은 몰랐다.“대표님이 초대한 거야?”진정우가 확인하듯 물었다.“응.” 나는 진정우를 바라보며 말했다.“혹시 네 대표님한테 부탁한 거 아니야?”진정우가 허진호의 상사라면 한마디로 다 해결할 수 있는 사람이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살짝 저으며 대답했다.“아니야.”나는 그의 말을 믿지 않고 그저 자신의 정체를 숨기려는 거라 생각하며 비웃었다.“미리 나한테 얘기했어.” 진정우가 다시 입을 열며 말했다..그 말이 과연 진짜일까? 아니면 그냥 둘러대는 걸까?나는 더 이상 캐묻고 싶지 않았다. 어쨌든 초대받은 자리라면 거절할 이유도 없어 나는 씩 웃으며 물었다.“나 간다고 했어. 너도 같이 갈 거지?”“응.” 역시 짧은 대답이었다. 만약 그의 말투를 분석할 수 있다면 이 단어가 가장 많이 쓰였을 것이다.“나는 내 여자 친구가 다른 남자랑 단둘이 밥 먹는 걸 허락 못 해.”진정우다운 단호한 대답이었다.한편, 진소영은 우리 둘을 번갈아 보며 감탄했다.“오빠, 정말 스윗하다! 언니한테 너무 잘해주는 거 아니에요?”진정우는 자연스럽게 대답했다.“당연하지.”“언니.” 진소영이 나를 불렀다.“오빠가 소설 속 남자 주인공보다 더 로맨틱하네요. 이런 모습은 상상도 못 했는데.”그녀는 아마 진정우 같은 무뚝뚝한 사람이 달콤한 말을 할 줄 몰랐던 모양이다.그러자 나는 웃으며 말했다.“조용하고 과묵한 사람이야말로 숨겨진 매력이 있는 법이야. 너희 오빠 같은 사람은 전쟁 시절에 특급 첩보원이었을지도 몰라.”진소영은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언니, 그건 또 어디서 나온 얘기예요?”아직 그녀는 내가 말하려던 깊은 뜻을 알아채지 못한 것 같았다.진정우는 그녀의 머리를 가볍게 두드리며 말했다.“오늘 저녁은 너 혼자 먹어야 할 텐데 뭐 먹고 싶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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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5화

나와 진정우 사이에 큰 문제는 없었지만 진정우가 자기 정체를 숨겼다는 사실이 마음 한구석에 남아 있었다. 그렇다고 진소영에게 이 일을 말할 수는 없었다. 그녀는 심장이 약한 데다 예민해서 쓸데없는 걱정을 할 것이다.“아니야.” 나는 부드럽게 웃으며 말했다. “나랑 네 오빠 사이가 어떤지 너도 잘 알잖아.”진소영은 맑은 눈으로 나를 뚫어지게 쳐다보았다. 그 눈빛이 너무 투명해서, 내가 괜히 거짓말을 하면 더럽혀질 것 같은 느낌마저 들었다. 나는 손으로 그녀의 시선을 가리며 말했다.“정말이야. 믿기 어렵다면 나중에 네 오빠한테 직접 물어봐.”“언니!” 진소영이 내 팔을 꼭 끌어안고는 머리를 내 어깨에 기댔다. “오빠가 무슨 잘못을 해도 언니가 혼내기만 하고 절대 떠나지 않았으면 좋겠어요.”그녀의 말투는 마치 부탁하는 것 같았다. 나는 미소를 지으며 그녀의 머리를 살짝 기댔다.“알았어. 네가 그럼 대신 혼내 줘.”진소영은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언니, 나는 항상 언니 편이에요.”그녀의 말에 순간 마음이 따뜻해졌다. 누군가가 나를 이렇게 소중히 여긴다는 사실을 새삼 깨달았다.“언니, 만약 내가 사라지고 언니까지 떠나면 오빠는 정말 불쌍해질 거예요.”갑자기 진소영이 엉뚱한 말을 꺼냈다.“무슨 소리야. 넌 아무 일 없을 거야.” 나는 그녀를 다독였다.진소영은 대답하지 않았지만 그녀의 표정은 불안과 두려움으로 가득했다. 아무도 죽음을 원하지 않지만 그녀나 강유형의 아버지 같은 사람들에게는 삶이 그리 호의적이지 않았다.나는 화제를 돌려 그녀와 공연 이야기를 꺼냈다. 우리의 대화가 한창 무르익을 때쯤, 안리영에게서 전화가 왔다.“지금 소영이랑 같이 있어?”안리영의 목소리가 들렸다.“응. 왜, 무슨 일이야?”“누가 나한테 감귤을 한 박스나 보내왔는데 소영이한테 좀 가져다줘. 그 애가 좋아할 것 같아서.”안리영은 평소에도 환자 가족들에게 받은 선물을 동료들에게 나누곤 했다.“바로 갈게.”나는 진소영과의 대화도 잠시 멈추고 과일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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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6화

소지훈이 걸음을 멈추고 나를 놀란 듯 바라보았다.나도 내가 지나치게 갑작스러웠다는 것을 깨닫고는 급히 말했다.“제가 다른 뜻이 있어서 그런 건 아니에요. 그냥... 궁금해서요.”소지훈은 고개를 살짝 끄덕이며 대답했다.“괜찮아요. 누나가 와 주시면 기뻐할 거예요.”그가 이렇게 말할 때 나를 보지 않고 혼잣말하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그의 태도에 마음 한구석이 짠해졌다.“그럼 따라오세요.”소지훈은 다시 길을 걸어가기 시작했다.나는 그의 넓은 등을 바라보았다. 그가 짊어지고 있는 무게가 얼마나 클지 가늠할 수는 없었지만 그의 뒷모습은 그 무게를 고스란히 짊어진 듯 무겁게 느껴졌다.소지훈은 나를 요양 병동으로 안내했다. 이곳은 VIP 병실처럼 시설이 잘 갖춰져 있었고 비용도 꽤 비쌀 것 같았다. 이런 곳에 입원할 수 있다면 그녀의 가정 형편이 나쁘지는 않을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병실 문 앞에서 소지훈이 멈추더니 나를 보았다. 그의 표정에는 뭔가 말하고 싶은 듯한 기색이 있었다.“혹시 불편하시면 그냥 넘어가도 돼요.”내가 먼저 말을 꺼냈다. 소지훈은 잠시 망설이다 말했다.“누나랑 교수님은 정말 많이 닮았어요. 다만... 지금은 교수님이 많이 말라서...”그의 말을 듣고 나서야, 세상 어딘가에 나와 닮은 사람이 있다는 사실을 떠올렸다. 나는 조용히 웃으며 말했다.“외모는 중요하지 않아요. 아름다움은 마음에서 나오는 법이죠.”소지훈도 미소를 짓더니 병실 문을 열었다.안으로 들어서자 파란 작업복을 입은 간병인이 환자에게 마사지를 하고 있었다. 우리를 보자 그녀는 잠시 손을 멈추고 일어섰다.“잠시 쉬세요. 제가 다시 부를게요.”소지훈은 공손하게 말했다. 간병인은 자리를 뜨며 나를 힐끔 쳐다보았다. 그녀도 나와 환자가 닮았다는 것을 느낀 모양이었다.“평소에는 간병인이 주로 돌보나요?”나는 침묵을 깨고 물었다. 소지훈은 고개를 끄덕였다.“제가 일 때문에 늘 여기 있을 수는 없어서요.”그는 가져온 과일을 탁자에 올려놓고 침대 곁에 앉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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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7화

소지훈이 자리에서 일어나 창가로 걸어갔다. 그는 무언가를 하려는 듯 보였고 나는 조심스럽게 침대에 누워 있는 사람에게 조금 더 다가갔다.가까이서 보니, 그녀는 단순히 아름다움을 넘어서 정말 나와 닮아 있었다.순간, 부모님께서 혹시 나 말고 또 다른 딸을 낳은 적이 있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스쳤다.침대 옆 환자 명패에 적힌 이름을 보았다.유희연, 나이 28세.속으로 그녀에게 조용히 인사를 건넸다.“유희연 씨, 안녕하세요. 저는 윤지원이에요.”그때 소지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이제 돌아오세요.”그는 간병인에게 전화를 걸고 있었다.곧 간병인이 돌아왔고 우리는 병실을 나섰다.소지훈은 아무 말 없이 묵묵히 걸었다. 나 역시 침묵을 유지했다. 그러다 그가 낮은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의사 말로는 회복 가능성이 없대요. 그녀의 가족들도 이제 포기했어요.”“하지만 지훈 씨는 포기하지 못하겠죠?”나는 그의 마음을 떠보듯 물었다.그의 걸음은 점점 느려졌다. 그는 고개를 살짝 숙이며 말했다.“기적이라는 게 있다고 하잖아요.”기적은 분명 존재하지만 현실에서 그것은 거의 불가능한 일이다. 나는 조심스럽게 물었다.“이렇게 된 지 얼마나 됐어요?”“거의 2년이 다 돼 가요.”그의 목소리는 점점 작아졌다.2년 동안 기적이 일어나지 않았다면, 앞으로도 가능성은 희박할 것이다. 그녀의 가족들이 포기했다는 사실이 그 증거였다.“가족들을 설득해 볼 수는 없을까요?”나는 그의 마음을 북돋우려 했다. 하지만 그는 고개를 떨구며 말했다.“이미 설득해 봤어요. 가족들은 지난주에 모든 걸 포기하려 했고 제가 일주일만 더 기다려 달라고 했어요. 지금은 그 시간이 거의 다 됐어요. 이제 3일밖에 안 남았어요.”그는 시간이 다가올수록 점점 더 불안해하고 있었다.“포기하지 못하는 이유가 그녀를 놓기 싫어서인가요? 아니면 평생 죄책감을 안고 살고 싶지 않아서인가요?”나는 그의 진심을 알고 싶었다. 그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그녀가 깨어난다고 해도 내가 진 마음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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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8화

“버블티 사 왔어. 들어가자.”진정우가 과일 봉투를 받아 들고 말했다.그는 아무것도 묻지 않았지만 아마 내가 무슨 일을 겪었는지 다 눈치챘을 것이다. 하지만 내 마음이 무겁고 답답해서 따로 설명할 힘도 없었다. 나는 그를 따라 병실로 들어갔다.“언니! 버블티! 저 마시지도 않고 기다렸어요!”진소영이 환하게 웃으며 나를 불렀다.진정우는 과일을 들고 주방으로 갔다. 나는 그를 힐끔 보고는 진소영 쪽으로 다가갔다.“준비 다 했어요. 우리 같이 버블티 나눠 마셔요.”진소영은 작은 테이블 위에 컵들을 정성스럽게 놓아두고 있었다.하지만 나는 지금 버블티를 마실 기분이 아니었다.“소영아, 그냥 네가 다 마셔.”“진짜요?”진소영의 눈이 반짝이더니 이내 웃으며 말했다.“근데 저는 그렇게 많이 못 마시는데요.”그녀는 장난스럽게 웃으며 버블티를 나누기 시작했다.“언니, 근데 왜 이렇게 늦게 왔어요? 오빠가 걱정돼서 음식 재료만 두고 언니 찾으러 나갔잖아요.”“오는 길에 친구를 좀 만났어.”나는 대수롭지 않게 대답했다.“언니는 친구도 많아서 부러워요. 저도 나중에 친구 많이 사귀고 싶어요.”진소영은 나눈 버블티를 내 앞에 밀며 말했다.“소영이는 성격이 좋아서 분명 많은 친구를 사귈 거야.”나는 그녀를 격려하며 버블티를 한 모금 마셨다. 그러자 진소영도 한 모금 마시며 감탄했다.“이 맛 진짜 맛있어요! 나중에 버블티 종류 다 마셔볼래요! 언니, 다음에는 또 어떤 맛을 먹어볼까요?”“언니?”그녀가 내 눈앞에서 손을 흔들었다.“왜 그렇게 멍하니 있어요? 어디 아파요?”내가 대답하기도 전에 진소영은 주방 쪽을 향해 큰 소리로 외쳤다.“오빠, 빨리 와보세요. 언니가 이상해요.”그녀의 말이 끝나자마자 진정우가 손질된 과일을 들고나왔다.“무슨 일이야?”그는 걱정스러운 눈빛으로 나를 바라보며 과일을 내려놓고 내 이마에 손을 얹었다.방금 물을 만졌던 손이라 시원하고 기분이 좋았다.“괜찮아. 아무 문제 없어.”나는 그의 손을 잡아 내리고는 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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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69화

“언니!”진소영이 내 머리를 다시 진정우의 어깨로 눌렀다.“언니, 그냥 이렇게 오빠한테 기대 있어요. 언니랑 오빠가 다정하게 있는 모습이 정말 좋아요.”이 아이가 정말...“오빠, 언니.”진소영은 맑은 눈빛으로 우리를 번갈아 보며 말했다.“원래는 며칠 후에 말하려고 했는데 오늘 이 얘기가 나온 김에 미리 말하려고요.”“괜한 걱정하지 말고 괜히 이상한 말도 하지 마.”나는 그녀가 무슨 말을 하려는지 대충 짐작이 갔다.하지만 진정우는 차분히 말했다.“말해보게 놔둬.”진소영은 오빠를 향해 환하게 웃었다.“역시 우리 오빠. 내 마음을 제일 잘 알아주는 사람.”그리고 나를 바라보며 말을 이어갔다.“언니, 우선 끝까지 제 얘기 들어주세요.”그녀는 천진난만하게 웃고는 일부러 두 번 기침을 하며 긴장감 있는 분위기를 만들더니 내 손과 진정우의 손을 단단히 잡았다.“이제 말할게요.”우리 둘은 잠자코 있었지만 숨소리가 조금 더 깊어지는 게 느껴졌다.“오빠, 언니... 저는 장기 기증을 하고 싶어요.”그녀의 한마디는 우리를 깜짝 놀라게 했다.“뭐라고?”진정우가 낮은 목소리로 진지하게 되물었다.“제 말은요, 수술이 실패하거나 나중에 무슨 일이 생기면 제 장기를 기증하고 싶다는 거예요.”진소영은 한 마디 한 마디 매우 진지하게 말했다. 하지만 나는 숨이 막히는 것 같았다.“왜 그런 생각을 하게 됐어?”“제가 곧 다른 사람의 심장을 이식받을 거잖아요. 나중에 제가 안 좋은 일이 생기더라도 심장은 못 쓰겠지만 간이나 신장, 그리고 각막 같은 건 누군가에게 도움을 줄 수 있을 테니까요. 제가 받은 생명을 또 다른 사람에게 나눠주고 싶어요.”그녀는 어린아이처럼 해맑은 표정을 지었지만 그녀의 말은 너무 무겁고 충격적이었다.나는 진정우를 바라봤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그녀를 바라보는 눈빛이 미세하게 흔들렸다.“오빠, 왜 아무 말도 안 해요?”진소영은 불안한 듯 오빠를 바라보며 말했다.“오빠가 반대해도 저는 할 거예요. 저 이제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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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70화

진정우가 진소영의 이런 부탁을 받아들인 것은 놀라운 일이었다. 그는 분명 마음속으로는 동의하지 않았을 것이다. 하지만 진소영의 뜻을 존중해 주는 그의 모습이 더 아프게 다가왔다.진소영은 혹시나 진정우가 나중에 마음을 바꿀까 봐, 바로 휴대폰을 꺼내 장기 기증 등록을 시작했다. 그녀가 꼼꼼히 정보를 입력하는 모습을 보며 나는 이 작은 아이에게 얼마나 강렬하고 긍정적인 에너지가 있는지 새삼 깨달았다.“우리도 같이 신청하자.”나도 모르게 그렇게 말하고 있었다.진정우는 나를 바라보았고 심지어 진소영도 손을 멈췄다.“언니...”“좋아.”진정우는 고개를 끄덕이며 휴대폰을 꺼냈다.“오빠, 언니, 정말이에요?”진소영은 놀란 표정으로 물었다. 자신은 쉽게 결정했지만 다른 누군가가 같은 결정을 하는 것은 왠지 받아들이기 힘든 모양이었다.그러나 그녀는 이내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오빠, 언니, 우리 모두 신청해요. 그리고 앞으로 몇십 년 동안 모두 건강하게 살아서 이 신청이 필요 없기를 바라면 되죠.”그녀의 말에 나와 진정우는 웃음을 터뜨렸고 나는 농담처럼 말했다.“그러면 네가 말한 기증은 결국 그냥 형식적인 거네?”진소영도 장난스럽게 대답했다.“언니, 들켰지만 모른 척해주세요. 알겠죠? 오빠도.”무거웠던 분위기는 금세 가벼워졌고 오히려 기분 좋게 웃으며 이야기를 나눌 수 있었다.“오빠, 언니, 우리 건배해요. 우리 모두 따뜻한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 됐으니까. 그리고 앞으로도 계속 건강하고 행복하길!”진소영은 버블티를 들며 말했다. 나와 진정우도 버블티를 들어 그녀와 가볍게 부딪혔다.“정말 맛있다. 너무 달콤해요.”진소영은 한 모금 마시고 감탄했다.그녀의 순수하고 만족스러운 모습을 보며 나는 속으로 간절히 기도했다. 이번 수술이 꼭 성공해서 그녀가 건강하게 오래오래 살 수 있기를.그날 저녁, 진정우는 진소영을 위해 특별히 맛있는 음식을 준비했다. 그녀가 혼자 먹는 것이 외로울까 봐 우리도 함께 먹으려고 했지만 진소영이 먼저 말했다.“안 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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