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의 모든 챕터: 챕터 341 - 챕터 350

570 챕터

제341화

“다행이네.”이 순간만큼은 구안석 교수에게 감사를 느꼈다.이 정도 레벨의 교수가 직접 수술을 맡아주는 것도 큰 행운인데 심장 기증자 문제까지 이렇게 신경 써주다니.물론 이 모든 게 안리영 덕분이라는 것도 알고 있었다.“새로운 심장 기증자는 언제쯤 가능할 것 같아?” 나는 다시 물었다. 그러자 진정우는 잠시 눈을 내리깔며 대답했다.“아직 확실하지 않아.”나는 깨끗하면서도 왠지 싸늘한 병동 복도를 한번 둘러보고 나서 말했다.“그럼 구 교수님은 계속 입원해서 기다리라는 거야? 아니면 일단 집으로 돌아가 쉬라는 거야?”진정우는 차분히 말했다.“일단 집으로 가서 쉬는 게 좋을 것 같아. 소영이는 몸이 안 좋아서 마을 밖으로도 거의 나가본 적이 없거든. 이번 기회에 해동시를 좀 보여주고 싶어.”나는 그의 생각에 고개를 끄덕였다.진소영이 커피와 밀크티도 처음 접해본 걸 보면 이 화려한 세상이 그녀에게 얼마나 낯설었을지 알 수 있었다.책으로는 많은 것을 봤겠지만 실제로 경험해 본 적은 없었으니까.“좋아. 그게 좋을 것 같아.”나는 그의 계획에 찬성했다.하지만 아까 계단에서 들었던 대화가 떠올라 슬쩍 떠보려는 마음에 말했다.“근데 너 이렇게 소영이랑 다니면 회사는 어쩌려고? 일이 밀릴 텐데.”진정우는 아무 대답이 없었다. 나는 한숨을 쉬며 덧붙였다.“그래서 사람들이 다들 회사 대표가 되고 싶어 하는 거야. 일 안 하고도 돈 벌면 가족이랑도 마음껏 시간을 보낼 수 있으니까.”진정우는 여전히 말이 없었다. 내가 보기엔 속으로 뭔가 들킨 것 같아 긴장하는 눈치였다.진정우는 절대 날 속이지 않겠다고 했지만 이번만큼은 분명히 숨기고 있었다.그가 왜 이렇게 가난한 척하며 진실을 말하지 않는 걸까? 혹시 어떤 이유로 나를 믿지 못하는 건 아닐까?나는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왜 어떤 사람들은 가난한 척 연기를 할까?”그는 잠시 눈빛이 흔들렸지만 대답은 하지 않았고 나는 웃으며 말했다.“소설이나 드라마 보면 그런 사람들 나오잖아. 남자가 일부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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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2화

’용진표는 참 대단하네. 이렇게 대놓고 다니면서도 누가 신고할까 걱정도 안 하나 봐.’용진표가 병문안을 왔다니 병실에는 갈 수 없었다. 그렇다고 진소영의 병실로 돌아가기엔 마음이 가라앉지 않아 병원 옆 작은 정원으로 향했다.벤치에 앉아 잠시 쉬고 있는데 어디선가 어린 목소리가 들려왔다.“언니, 저랑 공놀이해 줄래요?”서너 살쯤 되어 보이는 귀여운 여자아이였다. 그녀는 나를 올려다보며 반짝이는 눈으로 기대를 품고 있었다.사실 귀찮았지만 그런 눈빛을 거절할 수 없었다.“그래, 같이 놀자.”처음엔 그냥 대충 맞춰주려 했지만 아이와 공을 주고받다 보니 어릴 적 부모님과 놀던 기억이 떠올랐다.“언니, 공을 너무 못 던지는 거 아니에요?”“언니, 또 공에 맞았어!”“언니...”내가 같이 놀아주고도 이런 잔소리를 듣다니. 그래도 이상하게 기분이 좋았다.“은서야!”어디선가 날카로운 목소리가 들려왔다. 아이가 멈추며 돌아보자, 스타일리시한 옷차림의 여자가 다가오고 있었다.“엄마, 저 언니랑 놀고 있었어요!”용은서는 달리며 헝클어진 머리카락을 손으로 매만지며 대답했다.“은서야, 아빠가 일 다 봤으니까 이제 가야 해.” 여인은 높은 하이힐을 신은 채로 휘청이지 않고 안정된 걸음으로 다가왔다.그녀의 걷는 모습에 내가 다 조마조마했다. 잔디밭은 부드러워 중심을 잡기 어려웠을 텐데도 여유롭게 걸어오는 걸 보니 자신감이 대단해 보였다.그녀는 나를 힐끗 보지도 않고 바로 아이를 붙잡고 말했다. “어서 가자. 점점 말을 안 듣는구나.”용은서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하게 말했다. “싫어요! 조금만 더 놀게요. 금방 끝날 거예요!”“안 돼. 늦으면 아빠가 기다리지 않을 거야.” 그녀의 목소리에 짜증이 섞여 있었다. 이때 아이를 달래기 위해 내가 나섰다. “은서야, 다음에 또 만나면 언니가 꼭 같이 놀아줄게. 지금은 엄마랑 가야지.”하지만 용은서는 고개를 저으며 대답했다. “다음엔 언니 못 보잖아요. 언니랑은 오늘만 만날 수 있단 말이에요.”아이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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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3화

나는 뭐라도 대답해야겠다는 생각에 입을 열었지만 오히려 안 하는 게 나았을 말을 하고 말았다.“지금은 아니지만 나중엔 모르죠.”그러자 용진표가 크게 웃었다. 그의 품에 안겨 있던 용은서도 그를 따라 해맑게 웃었다.“아빠, 언니는 좋은 사람이에요! 언니가 은서랑 놀아줬어요!”이 아이는 사람 마음을 녹이는 데에 정말 재주가 있었다. 하지만 옆에 서 있던 용은서의 엄마는 얼굴이 점점 굳어가며 나를 경계하는 눈빛으로 바라봤다. 그녀는 아마 내가 용진표의 새로운 관심사라도 되는 줄 오해한 모양이었다.“좋아. 은서가 놀고 싶으면 이 언니랑 같이 놀아.”용진표는 마치 내가 이미 그의 사람이라도 되는 듯 당연하게 말했다.나는 속으로 한숨을 쉬었다. 아이 앞이라 그의 말을 대놓고 부정할 수도 없어서 그냥 흘려듣기로 했다.그는 용은서를 품에 안고 내 앞으로 걸어왔다.“시간 있을 때 우리 딸이랑 놀아줄 수 있겠어? 네가 원하는 대로 돈은 얼마든지 줄게.”정말 진지하게 나를 아이의 놀이 친구로 고용하려는 건가? 모든 사람이 자기처럼 한가하고 돈이 많다고 생각하나 싶었다.하지만 아이 앞에서 그의 제안을 단칼에 거절하면 그의 체면도 상하고 용은서도 상처를 받을 테니 적당히 둘러대기로 했다.“농담이죠, 대표님. 은서랑 노는 건 기쁜 일이지만 돈은 필요 없어요.”용진표는 고개를 끄덕이며 용은서의 엄마를 돌아봤다.“연락처 받아둬. 은서가 놀고 싶으면 데리고 갈 수 있게.”그녀는 억지로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네. 당신이 이렇게 아름다운 분을 아시다니, 정말 놀랍네요.”그녀의 목소리는 질투가 가득했다. 용진표는 그녀를 무시하며 은서를 바라보며 말했다.“자, 오늘 아빠랑 약속했던 대로 호주산 대하 먹으러 가자.”그는 딸을 한 번 더 품에 안고 입을 맞췄다. 그의 딸에 대한 애정은 누구나 알 수 있을 정도로 넘쳐났다.그 모습을 보며 나는 문득 용준호가 떠올랐다. 자기보다 훨씬 어린 여동생이 있다는 건 어떤 기분일까? 게다가 새엄마가 자기 또래라면... 정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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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4화

삼촌은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순간 불안감에 휩싸인 나는 그의 팔을 붙잡으며 소리쳤다.“삼촌, 삼촌!”그제야 삼촌이 무겁게 숨을 들이쉬며 천천히 눈을 떴다. 그의 눈빛은 몽롱했고 숨을 고르며 힘겹게 말했다.“지원아, 방금 정말 다시 못 깨어날 뻔했어.”나는 심장이 철렁 내려앉았다.“제가 의사 선생님을 불러올게요!”그러나 삼촌은 내 손목을 잡으며 힘없이 고개를 저었다.“괜찮아. 너무 호들갑 떨지 마. 이런 거 처음도 아니야. 그냥 가위눌린 거야.”'가위눌림?' 전에 농담처럼 들었던 말이었지만 지금처럼 아프신 상태에서 이런 일이 생겼다면 단순히 가위눌림만은 아닐 거라는 생각이 들었다. 혹시 새로운 병의 징조가 아닐까 하는 불안이 엄습했다.“삼촌, 그래도 의사를 한번 불러야 해요. 너무 걱정돼요.”나는 끝까지 고집을 부렸고 결국 삼촌도 마지못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 의사가 와서 기초적인 검사를 한 뒤 말했다.“특별한 문제는 보이지 않습니다. 방금은 깊은 수면 상태에서 깨어나기 어려웠던 상황 같습니다.”삼촌은 내가 과장한다고 하며 웃음을 지었다.“거봐라, 별일 아니랬잖아.”그의 얼굴은 여전히 창백했다. 차마 그에게 걱정을 드러낼 수 없어 태연한 척하면서 말했다.“그래도 조심하셔야죠. 그렇게 괜찮다고만 하시다가 이렇게 병원에 계신 거잖아요.”삼촌은 담담하게 말했다.“나이가 들면 몸의 ‘부속품’들이 고장이 나는 거야. 수리받아야 하는 게 당연하지.”그의 여유로운 태도에 미안함과 안쓰러움이 동시에 밀려왔다. 삼촌은 언제나 여유롭고 듬직한 모습이었지만 아픈 몸을 누르며 버티고 있을 그의 속내가 느껴졌다.“삼촌, 이제는 좀 내려놓으셔야 해요. 자식들 일도, 세상일도. 그냥 신경 끊으시고 편히 쉬세요.”그리고 나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조심스럽게 덧붙였다.“저랑 강유형 문제도요. 유형이가 누굴 선택하든 삼촌과 아줌마는 신경 쓰지 마세요.”삼촌은 여전히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침묵 속에서 마음 한구석에 담아둔 고집이 느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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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5화

삼촌은 다정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봤다. 마치 아버지가 딸을 볼 때처럼 따뜻한 시선이었다.“지원아, 삼촌 눈엔 넌 언제나 어린아이 같아. 하지만 하나만 말하자면, 네 고집과 진지함이 일이 아니라 일상에서는 꼭 좋은 것만은 아닐 수도 있어.”삼촌의 말이 왜 그런지 알 것 같았다. 하지만 사람마다 지키고 싶은 고집과 성격이 있는 법. 쉽게 바뀔 수 없는 본성을 나도 어떻게 할 수가 없었다.“지원아, 살다가 말이야. 조금은 모른 척하는 게 더 행복할 때가 있어. 모든 걸 다 밝혀내려고 애쓰지 말고 그냥 넘어갈 줄도 알아야 해.”그의 목소리엔 진심 어린 걱정이 담겨 있었다.삼촌이 아프단 사실이 떠올라 고집을 부리지 못하고 나는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네, 삼촌.”“지원아.”삼촌이 내 이름을 불렀다.“네?”그는 잠시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아니다. 아무것도 아니야.”“뭔데요? 분명히 하실 말씀이 있으신 거죠?”삼촌이 말하려다 망설이고 있다는 걸 느낄 수 있었다.그는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넌 정말 사람 속을 꿰뚫어 보는구나.”“그럼요! 삼촌, 혹시 비밀이 있으시면 저한테 말씀하세요. 아줌마나 진혁 오빠한테도 말 못 할 일이면 저한테 털어놓으셔도 돼요. 비밀은 꼭 지킬게요!”내가 손을 들며 장난스럽게 약속하자, 삼촌은 피식 웃으며 말했다.“내가 무슨 비밀이 있겠니?”나는 장난스럽게 농담을 던졌다.“예를 들어 삼촌이 밖에 다른 여자를 두고 아이까지 낳으셨다든가?”“헛!”삼촌은 깜짝 놀라 헛기침을 했다.“지원아, 그런 소리 하지 마! 삼촌은 절대 그런 사람 아니야.”“정말 없으세요?”나는 일부러 고개를 갸웃거리며 진지한 표정을 지었다.“정말 없다니까!”그는 고개를 저으며 단호히 말했다.“그렇지만 삼촌 친구 중엔 그런 분 있잖아요. 그래서 좀 걱정돼서요. 혹시라도...”내 말에 삼촌은 잠시 멈칫했다.나는 더는 숨기지 않고 말했다.“아까 정원에서 용진표 씨 딸이랑 잠깐 놀았어요. 그 아이 정말 귀엽더라고요.”삼촌은 한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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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6화

“청수원 아파트 재개발 사무소입니다. 이전에 재개발 공고가 붙었었죠? 아직 서류가 마무리되지 않았어요. 지금 와서 처리해 주셔야 합니다. 지원 씨만 남았어요.”이 말에 내 기분은 더더욱 가라앉았다. 재개발 서류를 처리해야 한다는 건 알고 있었다. 하지만 그동안 일부러 미뤄왔다.나에게 있어 서류에 서명하지 않으면 그곳은 여전히 남아 있을 것 같았다. 그곳이 사라지지 않는다면 부모님과의 추억이 담긴 우리 집도 사라지지 않을 것만 같았다.하지만 언제까지나 미룰 수는 없는 일이었고 서명해야 했다.내가 고집을 부리는 마지막 사람이 된다면 재개발 전체가 지연되고 다른 사람들이 새집에 들어갈 수 없게 될 테니까.그곳은 오래되고 낡은 동네였다. 모두가 새 아파트로 가고 싶어 했으니 말이다.“네, 지금 바로 갈게요.”나는 담담하게 대답하고 전화를 끊었다. 그리고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차를 몰고 재개발 사무소로 향했다.사무소에서 요구하는 대로 서류에 서명을 했지만 문제는 내 집의 등기 명의가 부모님 이름으로 되어 있다는 것이었다. 이를 처리하려면 부모님의 사망 증명서와 화장 증명서를 제출해야 했다.이 절차가 정당한 것이라는 건 알고 있었지만 나에게는 너무도 잔인한 일이었다.부모님이 돌아가신 지 10년이 넘었지만 나는 여전히 주민등록등본을 취소하지 않고 있었다.세 사람의 이름이 같은 종이에 적혀 있으면 마치 부모님이 여전히 내 곁에 있는 것처럼 느껴졌으니까.그런데 이제 그들의 이름을 세상에서 완전히 지워야 한다니. 그건 나에게 있어서 너무나도 고통스럽고 잔인한 일이었다.그러나 아무리 괴롭더라도 하지 않을 수 없는 일이었다. 나는 관할 주민센터를 찾아가 부모님 주민등록등본 취소를 요청했다. 하지만 담당자는 사망 증명서와 함께 해당 센터에서 발급한 사고사 보고서가 필요하다고 말했다.하는 수 없이, 다시 교통사고 자료를 조회했던 부서로 발길을 돌렸다. 이번엔 지난번처럼 까다로운 절차 없이 비교적 수월하게 진행되었다.그런데 담당 직원이 내게 물었다.“사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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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7화

부모님의 교통사고가 벌써 10년도 더 지났다는 사실이 떠오르자 나는 씁쓸하게 웃으며 말했다."지금 와서 그런 게 무슨 의미가 있겠어요?"그러자 담당자가 대답했다."혹시라도 무슨 일이 생기면 연락드릴 수 있게요."이렇게 오랜 세월이 지난 사고인데 무슨 일이 생길 수 있을까 싶었다. 하지만 그의 요청대로 연락처를 남기고 자리를 떠났다.사망 확인서를 들고나왔지만 아직 화장 증명서가 필요했다. 이것은 삼촌의 도움을 받아야만 했다. 하지만 지금 삼촌은 몸이 아프니, 대신 아줌마를 찾아가야겠다고 생각했다.“지원아, 어떻게 온 거니?” 아줌마는 내가 방문한 것을 보고 놀란 얼굴로 물었다.“아줌마, 부탁드릴 일이 있어서요. 우리 안으로 들어가 얘기할까요?” 나는 최근 계속된 바쁜 일정 때문인지 몸이 무겁고 어지러운 느낌까지 들었다.“그래, 그런데 방 안은 좀 답답하니까 정자로 가서 얘기하자.” 아줌마는 내 팔을 살짝 붙잡고 정자로 안내하고 장 집사를 불러 말했다.“장 집사, 과일과 내가 끓인 호박죽을 정자로 가져다주세요.”장 집사가 고개를 끄덕이며 나간 뒤, 아줌마는 내 얼굴을 살피며 말했다.“지원아, 얼굴이 안 좋아 보여. 어디 아파?”“생리 중이라 조금 힘들어서요.” 나는 간단히 대답했다.“생리통 있어? 마침 호박죽이 몸을 데워 줄 거야. 설탕 조금 넣어서 줄게.” 아줌마는 자리에서 일어섰다.“지원아, 잠깐만 기다려.”나는 조급한 마음에 아줌마를 붙잡았다.“아줌마, 오늘 꼭 처리해야 할 일이 있어서 빨리 말씀드리고 가려고요.”아줌마는 잠시 멈칫하더니, 내가 가방에서 꺼낸 사망 확인서를 보며 말했다.“이게 뭐야?”“아줌마, 부모님 주민등록을 말소해야 해서요. 화장 증명서가 필요해요.”“말소?” 아줌마는 놀란 얼굴을 했지만 곧 표정이 바뀌었다. 나는 시선을 떨구며 손에 든 사망 확인서를 바라보며 조용히 대답했다.“우리 부모님 집이 재개발 대상이 됐어요. 이 서류들을 다 처리해야 제가 서명할 수 있거든요.”그녀는 내 손을 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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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8화

나는 숨을 죽였다.곧이어 익숙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줌마, 여기 계속 있고 싶어서 그런 게 아니에요. 그저 유형이를 만나고 싶을 뿐이에요. 만나게 해주시면 바로 떠날게요. 귀찮게 할 생각 없어요.”조나연이었다. 그녀가 직접 여기까지 찾아오다니, 강유형을 만나기 위해 집안까지 온 모양이었다.이전엔 강유형과 통화했을 때, 이미 조나연과 연락했을 거라고 생각했지만 지금 상황을 보니 내가 완전히 착각했던 것 같다.이 여자의 뻔뻔함에는 정말 혀를 내두를 지경이다. 대체 어떤 배짱으로 이 집까지 찾아왔을까?“네 말은 내가 유형이를 숨겼다는 거야?” 아줌마의 목소리가 차갑게 가라앉았다.“아니에요, 그런 의도는 없어요. 그저 유형이를 보고 싶을 뿐이에요.”조나연의 목소리는 여전히 부드러웠다. 사람을 외모로만 판단할 수 없다는 말이 딱 들어맞았다.처음 그녀를 봤을 땐 정말 순수하고 청초한 느낌이라, 세상이 더 깨끗해진 것 같은 착각마저 들었다.하지만 시간이 지나면서 그녀의 진짜 모습을 알게 되었고 그 첫인상은 완전히 뒤집혀 버렸다.“유형이는 여기 없어. 이미 여러 번 얘기했잖아.” 아줌마는 점점 짜증이 섞인 목소리로 말했다.“알아요, 여기 없다는 건.”조나연은 여전히 태연했다. 하지만 아줌마는 그녀의 태도에 더 화가 난 듯 목소리를 높였다.“그럼 내가 유형이를 숨겼다는 말이 하고 싶은 거야?”조나연이 아무 말도 하지 않자 그 태도가 아줌마의 화를 더 부추겼다.“하, 뭐 이런 여자가 다 있어? 지원이가 너한테 당할 수밖에 없었던 이유를 이제야 알겠다. 우리 아들이 지원이 같은 착한 애를 놔두고 너 같은 여자를 택한 이유도 말이야.”아줌마의 말은 독설에 가까웠다. 조나연을 깎아내리면서도 나를 간접적으로 언급하며, 강유형과 나의 실패한 관계를 꼬집는 말이었다.“아줌마, 오늘 저를 욕하시든 때리시든 다 받아들일게요. 대신 유형이만 만나게 해주세요.”조나연은 눈물까지 보이며 말했다. 그녀의 이런 모습을 보며, 나는 이 여자가 얼마나 교활한 사람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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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49화

나는 그녀가 절대 약을 마시지 않을 거라는 걸 알고 있었다. 지금까지 그녀가 한 행동은 모두 명예와 부를 얻기 위한 것이었으니까. 병원에서 그렇게 큰 망신을 당하고도 자존심 하나로 버틴 그녀가 지금 와서 이런 극단적인 선택을 할 리 없었다.이건 단지 강유형이 어디 있는지 알아내기 위해 강 아줌마를 협박하는 수단일 뿐이었다. 그녀는 강유형이 삼촌과 아줌마에게 숨겨져 있다고 착각한 것이다.“나연 씨, 이런 수단으로 아줌마를 협박하다니.” 나는 차갑게 웃으며 방 안으로 걸어 들어갔다.내 목소리에 아줌마가 급히 고개를 돌리며 나를 보았다. 얼굴에는 분명한 당황의 기색이 역력했다. 그녀는 내가 조나연을 오해할까 봐 걱정하는 것 같았다.반면 조나연은 그다지 놀란 표정은 아니었다. 아마 내가 들어오는 것을 미리 본 모양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손이 떨리는 걸 보니 내 존재가 그녀를 긴장하게 만들고 있음은 확실했다.조나연은 이내 울먹이는 표정을 지으며 말했다.“저도 어쩔 수 없었어요. 연락도 안 되고 어디 있는지 알 수도 없잖아요. 지금 저는 막다른 길에 몰렸어요. 지원 씨.”그녀는 또다시 피해자 코스프레를 시작했다. 그러나 그런 연기는 나에게 통하지 않았다.나는 그녀가 든 초록색 약병을 가리키며 말했다.“길이 없긴요. 나연 씨 손에 들린 게 바로 그 길 아닌가요?”그녀의 얼굴이 조금 더 창백해졌다. 그녀가 약병을 정말로 마실 의도가 없음을 증명이라도 하듯 손이 더 떨렸다. 예상대로였고 이건 단지 협박이었다.“지원 씨, 당신은 내가 죽길 바라는 거겠죠? 하지만 내가 죽으려면 적어도 유형이가 나와서 한마디라도 해줘야 해요.”조나연은 끝까지 강유형을 보겠다는 목적을 숨기지 않았다.“보고 싶으면 직접 찾아가야죠. 여기 와서 이러는 게 아니라.”나는 그녀 앞에 서서 그녀를 내려다봤다.내가 서 있고 그녀가 앉아 있으니 자연스럽게 그녀는 나를 올려다볼 수밖에 없었다. 그 눈빛엔 겁과 억지가 섞여 있었다.“찾을 수 있었다면 여기까지 오지도 않았겠죠.”조나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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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50화

내 몸이 잠시 비틀거렸고 아줌마가 황급히 나를 붙잡아 주었다. 감정이 북받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조나연을 보며 가슴이 두근거렸다. 혹시 내가 방금 한 말이 정말 맞았던 걸까?사실 방금 했던 말은 단지 추측이었다. 하지만 그녀의 반응을 보니 임석진의 죽음이 단순한 사고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 만약 그녀가 계획적으로 그 일을 벌인 것이라면, 이 여자는 정말 끔찍하고 무서운 사람이었다.생각해 보니 임석진 부모님이 그녀를 그렇게 심하게 욕했던 이유가 있었던 것 같다.“당신은 지금 굉장히 불안해하고 있어요.”나는 그녀를 더 몰아붙이며 말했다. 지금이 그녀의 실체를 완전히 드러낼 기회였다.조나연은 고개를 세차게 저으며 부정하려 했지만 나는 멈추지 않았다.“임석진이 당신이 원하는 부와 명예를 이루는 데 장애물이라고 생각했겠죠. 그래서 그를 없애야만 당신이 원하는 걸 가질 수 있다고 판단한 거죠.”“아니야! 그런 거 아니야!”조나연은 고함을 질렀다.나는 차갑게 그녀를 쳐다보며 말을 이었다.“그렇지만 당신이 바로 나서면 모든 게 들통날 테니, 교묘하게 일을 꾸몄겠죠. 임석진이 당신의 행동을 목격하도록 의도적으로 상황을 만들었고 그렇게 하면 그의 죽음이 강유형의 죄책감을 불러일으킬 거라 믿었겠네요. 당신 계획대로라면 강유형은 당신을 끝까지 책임지려고 했을 테니까.”“아니라고 했잖아!”조나연은 다시 고래고래 소리를 질렀지만 그녀 손에 쥐고 있던 약병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그녀는 손을 부들부들 떨며 두 손으로 머리를 감싸 쥐었다.“임석진이 죽을 거라고는 상상도 못 했겠죠. 하지만 죽었네요.”나는 그녀를 바라보며 말했다. 그녀의 반응은 그녀가 임석진의 죽음을 의도하지는 않았더라도, 그 사고가 단순한 우연이 아니었음을 암시하고 있었다.나는 그녀의 불룩한 배를 쳐다보며 덧붙였다.“그리고 임석진의 아이를 가질 줄은 더더욱 몰랐겠죠?”조나연은 몸을 웅크리고 있었고 그녀의 얼굴에는 완전히 무너진 모습이 역력했다. 더 이상 말이 필요 없었다. 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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