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컨드는 이제 그만! 새 사랑 시작의 모든 챕터: 챕터 311 - 챕터 320

565 챕터

제311화

진정우와 나는 차에서 내리자마자 진소영이 마당의 흔들의자에 앉아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을 봤다. 바람에 치맛자락이 살짝 날리며 그 장면이 마치 꿈처럼 비현실적이었다.진소영은 책에 몰입해 있었고 우리가 내린 것도 몰랐다. 이때 도성운이 크게 외쳤다.“소영아, 누가 왔는지 봐봐!”“성운 오빠, 엔진 소리가 어찌 크던지 단번에 오빠인 줄 알았어요.”진소영이 웃으며 말했고 그 말에 나는 웃음을 터뜨렸다. 도성운은 조금 어색해하며 머리를 긁었다.“나만 온 거 아닌데. 다른 사람도 있어.”진소영은 책을 계속 읽으며 아예 신경을 쓰지 않았다. 도성운이 다시 입을 열려고 하자 나는 가볍게 그를 막으며 사뿐사뿐 진소영에게 다가갔다.“이 책 저번에 같이 읽었잖아?”지난번에 봤던 오래된 연애 소설 책이었다. 진소영은 놀란 듯 고개를 돌렸고 나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언니!”나는 환하게 웃었고 진소영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그녀는 내 뒤에 있는 진정우를 보고 급히 책을 던져두고 그에게 달려갔다.“오빠!”나는 그들의 모습을 보며 진정우가 진소영을 얼마나 아끼는지 알게 되었다.그는 평소에도 진소영을 많이 챙겼다. 나는 그들 대화를 방해하지 않고 진소영이 읽던 책을 집어 들었다. 「링」이라는 제목의 책이었다. 책이 많이 갈라지고 색이 바래 있었기에 분명 여러 번 읽은 책일 거다.내용이 궁금해져서 책을 넘기다 진소영이 다가와서 책을 빼앗으려 했다.“안 돼요. 보지 마세요.”그녀는 책을 빼앗으며 말했다.“왜? 이 책에 비밀이라도 있어?”진소영은 얼굴이 빨개져서 말했다.“그럴 리가요. 언니는 오빠랑 연애 중인데 이런 소설을 보면 안 되죠.”그녀의 얼굴이 빨개지자, 나는 웃으며 말했다.“아, 그럼 연애 초보인 너에게 딱 맞는 교과서겠네.”“언니!”진소영은 얼굴을 붉히며 나를 쏘아봤다.나는 더 이상 괴롭히지 않고 책을 그녀에게 돌려줬다. 그때 진정우가 내 손을 잡았다.“들어와 물 좀 마셔.”나는 그를 따라 집 안으로 들어갔다. 진정우가 물을 꺼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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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2화

“뭐라고?”나는 웃음이 나왔다.그러자 진소영이 입술을 오므리며 말했다.“언니, 이 수술에 돈이 많이 들지 않나요?”그 말을 들은 순간 나는 가슴이 철컥 내려앉았다. 돈 문제로 마음이 바뀌지는 않을까 걱정되었기 때문이다.“아니. 많이 들지 않아. 그리고 돈 걱정하지 마. 너희 오빠는 이제 새 직장에서 일하는 기술 엔지니어야. 월급도 많고.”진소영은 말없이 고개를 끄덕였다. 나는 그녀에게 조금 더 가까이 다가갔다. 심리학에 따르면 사람 사이의 신뢰는 언어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한 발짝 가까이 다가가는 것만으로도 이루어진다고 한다.나는 손을 들어 진소영의 검고 부드러운 긴 머리를 가볍게 쓰다듬었다.“너를 맡을 의사는 내 친구의 선배야. 아주 유능한 사람이야. 걱정하지 말고 네 몸만 잘 챙기면 돼. 수술이 끝나면 넌 바로 다시 건강을 되찾을 거야.”“언니. 정말 고마워요.”진소영의 눈동자가 반짝였다.나는 웃으며 말했다.“그래. 내가 좋은 사람이 아니었으면 네 오빠도 이렇게 오랫동안 나를 좋아할 리가 없겠지.”진소영은 그 말을 듣고 웃음을 터뜨리며 말했다.“언니와 오빠의 사랑은 정말 달콤해요. 마치 소설에서 나온 것처럼요.”그녀가 읽는 연애 소설을 떠올리며 내가 말했다.“너도 건강을 되찾으면 달콤한 사랑을 할 수 있을 거야.”진소영의 얼굴이 빨개졌다. 그녀가 어떤 생각을 하고 있는지 쉽게 알 수 있었다.모든 소녀는 봄날을 꿈꾸기 마련이다. 만약 그렇지 않다면 반복해서 읽는 연애 소설도 없을 것이다.진소영이 계속 짐을 싸는 동안 나는 진정우를 찾으러 갔다. 하지만 그는 방에도 없었고 마당을 나가 봐도 없었다.‘도대체 어디에 간 걸까?’궁금해하며 나는 마당을 나와 달빛 아래서 그를 찾았다. 그리고 멀리 강가에서 그의 모습을 발견했다.비록 밤이었지만 나는 그의 모습을 쉽게 알아볼 수 있었다.예전에 나는 강유형의 차 소리와 발소리를 구별할 수 있었고 이제는 진정우의 모습도 멀리서 알아볼 수 있었다.한 사람을 좋아할 정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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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3화

진정우와 나는 호숫가에 나란히 서서 불어오는 바람과 물소리를 가만히 듣고 있었다.하지만 잠시 서 있다 보니 다리가 아파서 견딜 수가 없었다.“왜 그래?”진정우가 나를 보고 물었다.“앉을 데가 필요해. 서 있자니 다리가 아파.”나는 솔직히 말했다.진정우는 주위를 둘러보더니 갑자기 내 허리를 감싸안아 올렸다. 몸이 가벼워진 느낌과 함께 그는 나를 안고 근처에 있는 큰 돌로 걸어갔다.진정우가 자주 나를 안거나 들어 올리곤 해서 이제는 익숙해졌지만 그래도 나는 일부러 부끄러운 척하며 말했다.“난 스스로 걸을 수 있는데.”“다리가 아프다며... 어떻게 걸어?”그의 말에 나는 혀를 살짝 내밀며 입을 다물었다.그는 돌에 나를 내려놓고 자신도 옆에 앉았다. 내가 옆으로 바짝 붙으려 하자 그는 긴 팔로 나를 끌어당겨 그의 무릎 위에 앉혔다.‘이건 또 뭐지?’의문이 스치자마자 그는 내 귀에 낮게 속삭였다.“돌이 차가워.”이보다 더 세심한 남자 친구가 있을까?아마 남에게는 있을지도 모르지만 나에겐 진정우가 최고다.“고마워. 정우 씨.”나는 고개를 들어 그에게 키스했다.하지만 내 입술이 그의 입술에 닿자 뭔가 이상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은은한 담배 향이 내 숨결에 섞여 들어왔고 그 순간 키스하던 나의 몸도 멈췄다.진정우가 담배를 피운 거였다.그가 혼자 강가에 온 건 아마 담배를 피우기 위해서였나 보다.내가 키스를 멈추자 그도 무언가를 느낀 듯 낮은 목소리로 말했다.“앞으론 안 필게. 오늘이 마지막이야.”나는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그럴 필요 없어.”그가 나를 바라보는 눈빛은 밤보다도 더 깊고 어두웠다.나는 그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말했다.“난 담배 피우는 거 신경 안 써. 다만 너무 많이는 피우지 마. 몸에 안 좋으니까.”그렇게 말하는데도 갑자기 코끝이 시큰해졌다. 부모님의 사고가 떠올랐다.“정우 씨는 지금 내가 가장 소중히 여기는 사람이야. 그러니까 건강하게 오래오래 나와 함께해줘.”평생은 길다고 하지만 그와 함께라면 기대하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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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4화

진정우의 눈빛이 순간 흔들렸다. 나도 모르게 그의 손을 꽉 잡았다.“정말 그런 거야?”“왜 아니라고 생각하지?”그가 내게 되물었다.예전에 아줌마가 했던 말이 떠올라 말하려던 순간 멀리서 진소영의 목소리가 들려왔다.“언니! 전화가 계속 와요!”진소영이 뛰어오는 걸 보고 나는 깜짝 놀랐다. 그녀는 심장이 약해서 뛰면 안 되었다.“알았어. 내가 갈게!”나는 진정우의 무릎에서 일어나 진소영 쪽으로 서둘러 갔다.전화를 확인하니 아줌마가 여러 번 걸어왔다. 분명히 급한 일이 있는 것 같았다.“아줌마?”내가 전화를 받자 그녀의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지원아, 왜 이렇게 전화를 안 받아? 무슨 일 생긴 거 아니야?”“아니에요. 휴대전화를 안 들고 있었어요.”그녀는 한숨을 내쉬며 안도의 소리를 냈다.“전화를 안 받으니까 별별 상상을 다 했잖니.”“다음부턴 꼭 챙길게요. 근데 무슨 일이세요?”“정말 미치겠어!”아줌마의 목소리에는 분노가 가득했다.“누가 또 그렇게 화나게 했어요? 삼촌이요?”내가 일부러 농담처럼 묻자 그녀는 단호하게 말했다.“네 삼촌이면 내가 직접 손봤을 거야. 이번엔 강유형이야!”강유형의 이름이 나오자마자 나는 속으로 한숨을 내쉬었다. 그는 이제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사람이 되었지만, 아줌마와의 관계가 이어지는 한 그의 이름이 내 삶에서 완전히 사라질 수 없다는 걸 알고 있었다.“이번엔 또 무슨 일인데요?”“유형이가 조나연 때문에 우리랑 인연을 끊겠다고 하더니 이제는 아예 떠나버렸어!”아줌마는 목소리가 떨릴 정도로 화가 나 있었다.나는 전에 강진혁이 말했던 게 떠올랐다. 그는 삼촌이 먼저 강유형과 연을 끊자고 말했다고 했다.굳이 이유를 물을 필요는 없을 것 같아 나는 그녀를 달래며 말했다.“아줌마, 아마 잠깐 화가 나서 그런 거일 거예요. 바람 쐬러 나간 것뿐일지도 몰라요.”“아니야! 유형이가 진혁한테 다 말했대. 돌아오지 않을 거라고 우리랑은 완전히 끝내겠다고 말이야.”그녀의 말에 나도 모르게 미간을 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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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5화

“진정우는 참 복이 많네. 너 같은 사람을 아내로 맞이하다니 말이야.”아줌마의 말에 나는 살짝 미소를 지었다.사실 나도 행운이었다. 강유형이 나를 배신했을 때 진정우가 나를 구해줬다.“언제쯤 돌아올 거니?”“정확히는 모르겠어요.”아줌마는 한숨을 쉬며 말했다.“지원아, 돌아오면 아줌마랑 얘기 좀 해줘. 마음속에 쌓인 게 너무 많아서 견디기 힘들어.”그녀가 강유형과 그렇게 틀어진 것도 결국 나를 위해 그녀가 조나연을 몰아냈기 때문이었다.“네. 돌아가면 꼭 들를게요. 삼촌이랑 같이 뵈러 갈게요.”“그래. 그리고 밖에서는 항상 조심하고 낯선 곳에서는 특히 신경 써야 해.”“알겠어요. 아줌마도 너무 화내지 마세요.”“휴...”아줌마는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전화를 끊고 나서야 나도 크게 숨을 내쉬었다.강유형과 관계가 틀어진 이후 아줌마와 삼촌과의 대화는 점점 무거워지고 있었다.나는 휴대전화를 내려놓고 진정우와 진소영이 대화하는 모습을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뭔가를 이야기하며 웃고 있었고 진소영은 가끔 진정우의 옷을 잡아당기며 어린아이처럼 행동하고 있었다.나는 그들을 방해하지 않으려 카카오톡으로 안리영에게 메시지를 보내려다 조나연에게서 온 몇 개의 메시지를 발견했다.[강유형이 어디 있는지 알아요?][그에게 무슨 일 있는 거 아니에요? 연락이 안 돼요.][지금 너무 불안해요.]메시지를 보고 나서야 강유형이 집을 떠날 때 조나연에게 말하지 않았다는 걸 알았다.물론 나는 대답하지 않을 생각이었다. 이제는 나와 상관없는 일이었으니까.대화창을 닫고 진소영과 진정우가 있는 풍경을 찍어 안리영에게 보냈다.안리영의 답장은 없었다. 그래서 나는 메시지를 추가로 작성했다.[소영이를 데리러 왔어요.]하지만 아직 보내기도 전에 조나연에게서 음성 통화가 걸려 왔다.메시지로는 답이 없으니 바로 전화를 걸어오다니.지금 혹시 강유형이 나랑 도망쳤다고 생각하는 건가?그 생각에 나는 쓴웃음을 지으며 전화를 받았다.“여보세요.”“지원 씨, 늦은 시간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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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6화

나는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아줌마가 강유형이 유언을 남기듯 떠났다고 했던 것이 떠올랐다. 그리고 이제 조나연까지 그의 행동이 마치 후사를 정리하는 것 같다고 하니 분명히 강유형의 행동이 평소와 다르다는 것을 암시하고 있었다.난 문득 전에 꿨던 꿈과 함께 강유형이 내게 했던 말이 떠올랐다.“내가 죽으면...”비록 강유형을 더 이상 사랑하지도 미워하지도 않지만 생사가 걸린 문제라면 그는 내게 단순한 과거의 존재일지라도 무시할 수 없었다.조나연은 슬픈 목소리로 울먹였지만 그녀의 슬픔은 나와 아무 상관 없는 일이었다. 나는 위로는커녕 동정조차 할 마음이 들지 않았다.그럼에도 강유형을 아는 사람으로서 나는 솔직히 말했다.“강유형 씨는 그런 사람이 아니에요.”어떤 일이 닥쳤다고 해서 생을 포기할 사람이라면 그는 스스로에 대한 책임도 없을 거고 다른 사람에게도 책임질 수 없을 것이다.“저도 유형 씨가 그런 극단적인 생각을 하는 사람은 아니라고 생각해요.”조나연이 내 말을 따라 맞장구를 치며 말했다.“하지만 지금 연락이 안 되고 유형 씨가 했던 행동들 때문에 너무 불안해요.”“그가 모든 걸 다 준비해 줬다면서요. 그럼 뭐가 불안해요?”나는 냉소적인 어조로 대꾸했다.나는 관대할 수 있지만 내 선의에도 한계는 있다.조나연은 내 약혼자를 빼앗아 간 사람이고 그런 그녀와 친밀해지는 건 나의 자존심을 허락하지 않았다.“유형 씨가 무슨 일이 생길까 봐요. 사실 유형 씨가 준비해 둔 모든 것보다 진짜로 저를 안심시키는 건 유형 씨일 뿐이죠.”조나연의 말은 의도치 않게 나의 마음을 찔렀다.“그래요? 그렇다면 저한테 전화할 게 아니라 나연 씨를 안심시킬 곳을 찾아보세요. 저한테는 그런 거 없으니까.”나는 단호히 말하고 전화를 끊으려 했다.“지원 씨!”그녀가 나를 붙잡았다.“만약 유형 씨가 지원 씨에게 연락하거나 어떤 소식을 전한다면 저한테 말해줄 수 있을까요?”“당신이 한 말을 강유형에게 전해줄게요. 나연 씨한테 직접 연락하라고요.”나는 전화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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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7화

그의 말이 이어지면서 나는 학창 시절 아무 걱정 없이 자유로웠던 강유형의 모습이 떠올랐다.그 당시의 그는 정말로 무슨 걱정도 없는 사람이었다.나는 그가 언제까지나 그런 모습일 거라고 믿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는 변했고 결국 우리가 이렇게까지 오게 되었다.앞날을 예측할 수 없다는 말은 정말 맞는 말이다.“강유형이 아버지와 어머니를 잘 돌봐달라고 했어. 그리고 너도 말이야.”강진혁의 목소리가 점점 낮아졌다.“마지막으로 네가 결혼하면 자신에게 꼭 알려달래. 직접 찾아와 축하해주고 싶다고.”그 말에 나는 가슴이 답답해졌고 동시에 짜증이 치밀었다.이렇게 온 집안을 시끄럽게 만들어놓고선 사람들로 하여금 극단적인 생각을 하게 만든 줄 알았더니 결국 그는 그냥 어디로 숨어버리려는 것이었다.“이건 자기 후사를 정리한 건 아닌 것 같네요.”내 말은 다소 독살스럽게 나갔다.강진혁은 낮게 한숨을 내쉬며 말했다.“유형이도 나름대로 이유가 있을 거야.”나는 비웃음을 터뜨렸다.“아내도, 아이도, 잘나가는 사업도 있는데... 도대체 무슨 이유와 고충이 있다는 거예요? 그냥 징징대고 싶은 거 아닌가요?”“지원아, 아직도 유형에게 화가 나 있는 거지?”그는 내 비난이 여전히 강유형에 대한 감정에서 비롯된 것이라 생각했다.“아니요. 제가 유형 씨와 완전히 선을 그었을 때 사랑도 미움도 모두 끝났어요.”나는 단호하게 말하자 강진혁은 잠시 침묵했다.“사랑과 미움을 그렇게 쉽게 놓을 수 있을까?”그의 말투는 조용했지만 묘하게 진정우가 해준 분석과 강진혁이 나를 향해 품고 있는 억눌린 감정이 떠오르게 했다.순간 그에게 물어보고 싶었다.‘유형 씨는 나를 잊었나요?’그러나 그런 질문을 던질 수는 없었다.“오빠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나는 대화를 다른 방향으로 돌렸다.“뭐?”그는 내 의도를 이해하지 못한 듯 물었다.“유형 씨가 다 떠넘기고 갔잖아요. 회사를 포함해서 모든 걸 말이에요. 오빠는 앞으로 어떻게 하실 생각이에요?”내 말을 듣고 그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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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8화

나는 몸이 굳어졌고 멍하니 진정우를 바라보았다.진정우의 아버지가 사고 당시 운전사였다. 브레이크 문제가 있었다면 책임은 그의 아버지에게 있었다는 뜻이었다.한동안 우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서로를 바라봤다.잠시 후 진정우가 내 어깨를 잡은 손을 살짝 움직이며 말했다.“아버지가 운전사였고 브레이크에 문제가 있었다면... 그게 사람의 실수든 차량의 결함이든 책임은 아버지에게 있는 거야.”나는 온몸이 더 차가워졌다. 하지만 그 차가움은 날씨 때문이 아니라 감정 때문이었다.만약 내가 진정우와 이런 관계가 아니었다면 진정우 아버지의 책임을 추궁하고 그에 따라 조사를 하면 되었을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그가 내 가장 가까운 사람이 되어버렸다.만약 그의 아버지가 이 사고의 책임이라면 나는 무엇을 해야 할지 몰랐다.“지원아, 내가 항상 아버지의 죽음을 조사해 왔다고 알잖아. 이 사건도 어쩌면 내 아버지와 연관이 있을 수 있어. 조사가 끝나면 너에게 결과를 말해줄게.”진정우의 말은 단호하고 진지했다. 그는 자신의 아버지가 연관된 문제임에도 불구하고 모호하게 넘어가려 하지 않았다.나는 그의 성실함을 알고 있었기에 그의 말을 믿을 수밖에 없었다.하지만 만약 그의 아버지가 정말로 관련이 있다면 그는 나에게 어떤 결과를 가져다줄지 상상이 되지 않았다.여기까지 일이 흘러온 것도 예상하지 못한 상황이었다.그러나 부모님의 사고 진실을 앞에 두고 나의 사적인 감정 때문에 조사를 멈출 수는 없었다.진정우도 이 사건을 계속 조사하고 있었다. 그는 용의자인 용진표를 조사하겠다고 했지만 이미 용진표는 나에게 모든 사실을 말한 상태였다.나는 머릿속이 복잡하게 얽히기 시작했다.진정우는 내 혼란스러운 감정을 느낀 듯 내 뒤쪽 목덜미에 손을 얹고 가볍게 눌렀다.“지원아, 너무 나쁜 쪽으로 생각하지 마. 상황이 우리가 생각한 것처럼 그렇게 최악은 아닐 수도 있어.”그도 만약 그 결과가 사실이라면 그것이 우리에게 얼마나 큰 충격과 파멸을 가져올지 알고 있었다.나는 더욱 심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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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19화

그래서 나는 무슨 일이 있어도 감정을 내려놓는 게 먼저였다.진소영은 순수하고 맑은 마치 순진한 아이 같았다. 하지만 그녀는 민감한 마음을 가지고 있었기에 내 감정으로 그녀를 흔들리게 해서는 안 됐다.진정우와 진소영이 대화를 마치고 돌아왔을 때 나는 이미 죽을 다 마시고도 진정우의 그릇에서 한 숟갈 떠먹고 있었다.마치 몰래 먹다가 딱 걸린 것 같은 상황이었고 누구라도 이 모습을 보면 기분이 나빠 보이는 사람의 행동이라고는 생각하지 않을 것이다.내가 진정우의 죽을 먹어버리자 진소영은 당연히 우리가 싸운 게 아니라고 생각했을 것이다.진정우와 진소영 둘 다 내가 한 행동에 놀란 듯 나를 바라보았다.나는 떠먹은 죽을 천천히 입에 넣으며 약간 부끄러운 척 말했다.“나 한 그릇 더 먹고 싶어.”“아! 그럼 제가 다시 끓여줄게요!”진소영은 놀란 표정을 지으며 약간 아쉬운 듯 말했다.“괜찮아. 내 거 먹으면 돼.”진정우는 자신의 그릇을 내밀었다.사실 나는 이미 배불렀지만 진정우에게 윙크하며 숟가락을 들어 한 입 떠먹었다.“아냐. 그냥 두어 숟가락만 더 먹을게.”“그럼 같이 먹자.”진정우는 내가 든 숟가락을 가져가 입에 넣었다.나는 순간 멈췄고 옆에서 진소영은 웃음을 터뜨렸다.“오빠, 언니! 제 앞에서 왜 이러는 거예요!”나는 그제야 깨달았다.진정우도 내 의도를 완벽히 파악하고 일부러 내 연기에 맞춰준 것이었다.우리의 이런 다정한 모습을 본 진소영은 완전히 속아 넘어갔고 기분이 좋아 보였다.그렇게 우리는 한 그릇의 죽을 다정하게 나눠 먹으며 연기를 마무리했다.진정우가 그릇을 정리하러 간 사이 진소영이 내 손을 잡았다.“언니, 제가 침대 시트도 새로 깔았고 세면도구도 준비해 뒀어요. 필요한 거 있으면 언제든 말해주세요.”“고마워. 우리 귀여운 소영이.”진소영의 따뜻한 배려에 나는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그녀가 나를 좋아한다는 게 느껴졌기에 나도 역시 그녀에게 확신을 주고 싶었다.진소영은 곧 진정우를 바라보며 말했다.“오빠, 빨리 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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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320화

그 후 며칠 동안 나는 계속 진소영과 함께 잤다.진정우는 나를 껴안고도 아무렇지 않게 평정을 유지할 수 있는 사람이다. 하지만 집으로 돌아가면 그가 과연 이런 상황을 또 어떻게 견딜지 궁금해졌다.우리는 쭈욱 진소영과 함께 살게 될 테니 말이다.우리는 진소영의 집에서 나흘을 보냈다.나는 처음엔 그녀의 건강 상태 때문에 최대한 빨리 수술을 받게 하려고 진정우가 서둘러 그녀를 데리고 갈 줄 알았다.하지만 그는 그러지 않았다. 대신 낮에는 낚시하고 밤에는 우리를 위해 맛있는 음식을 만들었다.나는 진소영과 마치 공주가 된 것처럼 그저 먹고 즐기기만 했다.그곳은 정말 신선이 사는 듯한 세상 같았다.며칠 더 지내면 이곳을 떠나는 게 아쉬울 것 같았다.“정우 씨, 우리 나중에 나이 들면 여기 와서 살자. 여기서 살면 나 150살까지 살 수 있을 것 같아.”내가 감탄하며 말하자 진정우는 웃으며 대답했다.“그래.”“저도요! 저도 150살까지 살래요!”진소영도 활짝 웃으며 새롭게 다가올 삶에 대한 기대를 드러냈다.안리영이 나에게 말하기를 우리가 도착하면 바로 입원 절차를 밟을 수 있다고 했다.하지만 진소영은 입원 전에 우리가 사는 집을 먼저 보고 싶어 했다.진정우는 그녀에게 집이 셋집이라고 말하려 했지만 나는 말리지 않았다.진소영이 오빠가 집조차 마련하지 못했다고 생각하며 자신이 짐이 된다고 느낄까 봐 걱정됐기 때문이다.“이 집은 내 부모님이 남겨주신 거야. 좀 낡긴 했지만 살기에 아주 좋아.”나는 먼저 집을 좋게 포장하며 말했다.진소영이 고개를 돌려 진정우를 바라보았다.“오빠, 그럼 계속 언니 집에 살았던 거야? 두 분은 벌써 같이 살고 있었네?”진소영이 장난스러운 목소리로 말했다.진정우가 무언가 말하려다 나를 보며 말문을 닫자 나는 속으로 웃음이 났다.“언니, 이 집 정말 좋아요. 저도 여기서 한동안 살면 안 될까요?”진소영이 거리낌 없이 물었다.“언제까지든 괜찮아.”내가 대답하고 나서야 이 집이 곧 재개발될 예정이라는 게 떠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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