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의 모든 챕터: 챕터 711 - 챕터 720

735 챕터

제711화

“이렇게 오래 앉아계셨는데 배고프시죠?”여자는 억지로 준비한 음식을 박한빈의 손에 쥐여주며 계속 말했다.“얼른 이거라도 드세요!”박한빈은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다가 손을 뻗어 여자가 준비한 음식을 던져버렸다.“내 몸에 손대지 마.”냉랭한 그의 목소리에 여자는 그 자리에 얼어붙었고 바닥이 떨어지는 소리에 밖에 있던 남자가 급히 들어오며 물었다.“형수님, 무슨 일이십니까?”남자는 여자의 손을 잡으며 물었는데 어찌나 다정한지 모르고 보면 남편 같았다.하지만 여자는 당황해하며 자기 손을 빼내더니 낮은 소리로 대답했다.“괜찮아요. 실수로 면을 쏟아버려서...”여자의 말에 남자는 밑으로 시선을 돌렸고 이내 엉망진창이 된 바닥을 발견하곤 얼굴이 새빨개졌다.그리더니 박한빈을 보며 경고하듯 말했다.“이러시지 않는 게 좋을 겁니다.”박한빈은 남자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없이 무표정한 얼굴로 그를 쳐다만 봤다.분명 남자가 서 있었고 밖에 그의 형제들도 어마무시한 도구들을 들고 있었지만 그들은 박한빈의 기세에 놀란 듯 움츠러들었다.분위기는 순식간에 살얼음판이 되었고 그 순간, 밖에서 누군가가 외쳤다.“큰일 났습니다! 저 사람들이 경찰에 신고한 것 같아요.”그 목소리를 들은 남자의 표정이 삽시간에 변했고 바로 고개를 돌려 박한빈을 쳐다봤다.“경찰에 신고하라고 시켰습니까?”이 소식은 박한빈에게도 의외였기에 그도 지금 안색이 어두워졌다.이미 몇 년 동안 자신을 따르던 비서 서훈이 이런 경거망동한 짓을 벌일 줄은 몰랐기 때문이다.게다가 박한빈이 지금 사람들에 의해 감금돼 있는 상황인데 경찰에 출동하면 더 위험해지지 않겠는가?그러니 경찰에 신고한 사람은... 서훈이 아닌 다른 사람일 것이다.박한빈의 앞에 있는 사람들을 더욱 화나게 해 그를 죽이려는 셈이었을까?“시*! 어쩐지 일이 쉽게 풀린다 했어.”제일 앞에 서 있던 남자가 박한빈을 죽일 듯 다가오는 그때, 박한빈은 기회를 놓치지 않고 그의 무릎을 강하게 찼다.꽤 센 힘에 남자가 바로 주저앉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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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2화

그 목소리에 박한빈의 미간이 잔뜩 찌푸려졌다.그가 고개를 들 때, 사람들 틈에 있던 남자 한 명이 쓰고 있던 모자를 벗기 시작했다.남자의 얼굴을 확인한 사람들은 입이 떡 벌어졌다.왜냐하면 모자 뒤에 숨겨져 있던 남자의 얼굴이... 박한빈과 똑같았기 때문이다.당연하게도 몇 년 동안 강한 햇볕 아래에서 생활한 터라 그의 피부는 눈에 띠게 건조해졌고 목소리도 예전과는 달리 듣기 싫을 정도로 잠겨있었다.사람들이 박세빈의 얼굴을 뚫어지게 쳐다보고 있을 때, 박한빈의 시선은 그의 다리로 향했다.하지만 그는 박한빈의 생각을 읽기라도 한 듯, 피식 웃더니 자신의 바지를 위로 올렸다.그러자 드러난 건, 장애인들이 쓰는 가짜 다리 즉 의족이었다.“아, 안 죽었었구나.”박한빈은 그제야 모든 상황을 이해한 듯 낮은 소리로 중얼거렸다.“맞아요. 전 아직 안 죽고 살아있었습니다. 실망이 크십니까?”박세빈은 여전히 선량해 보이는 미소를 지으며 대꾸했다.그러나 박한빈은 아무 말 없이 자신에 의해 제압당한 남자를 보며 물었다.“쟤가 바로 당신에게 이런 일을 하라고 지시한 사람입니까?”“아마 아닐걸? 당신은 쟤랑 너무 어색해 보이는데.”“게다가 이때쯤이면 해외에 있어야 하지 않나?”뒤의 말들은 박한빈이 박세빈한테 하는 말이었다.“수술을 무사히 마치고 여기에 나타날 수 있다는 건 누가 너를 돕고 있다는 증거겠지. 내가 한번 맞춰볼까? 그 사람 혹시... 연정우 씨야?”박한빈의 말이 끝났음에도 박세빈은 그저 웃기만 했다.“역시 그 사람이 맞나보군. 근데 이제야 기사회생을 한 사람이 이런 멍청한 짓을 꾸며낼 리가 없을 거야. 그러니 너라는 패를 이용해 죄를 짓는 거겠지. 필경... 넌 정말 내가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하고 있을 테니까. 그렇지?”박한빈의 말이 끝나자 박세빈은 여유롭게 박수를 치며 대답했다.“못 본 몇 년 사이에 형님은 더 똑똑해지셨습니다? 역시 이래서 박한빈 박한빈 하나 봅니다.”“사실 전 원래 모든 걸 포기하려고 했습니다. 이미 다리는 부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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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3화

“진병오 씨, 이제는 어쩔 수 없습니다.”걸음을 멈춘 박세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현장에는 많은 사람들이 있습니다. 게다가 다 당신과 피와 살을 나눈 형제들이죠. 그들이 여기서 죽기를 바라지 않지 않습니까?”“그리고 다시 말해 당신 형이 당신 때문에 죽었는데 정말 해피엔딩을 맞을 수 있다고 생각하십니까?”“진병오 씨가 죽으면 당신 형수의 삶은... 더 좋아지겠죠.”박세빈은 말하며 옆에 있는 여자에게 시선을 휙 돌렸다.후자는 공포에 질려 사색이 된 얼굴로 있었는데 마치 그가 무슨 짓을 할지 안다는 듯 고개만 절레절레 젓고 있었다.진병오는 이를 꽉 깨물고 있다 천천히 입을 뗐다.“나는 상관하지 말고 박한빈 이 인간부터 죽여!”그의 한 마디에 망설이던 사람들이 일제히 박한빈에게 달려들었다.결국, 박한빈은 앞에 있던 남자를 툭 차버린 뒤 의자 하나를 끌어당겼다.그리곤 주머니에 있던 라이터를 꺼내 들었다. 사실 그는 오래전 담배를 끊은 상태였다.하지만 성유리가 선물로 준 라이터는 항상 몸에 지니고 있었으니 라이터는 온전했다.박한빈이 라이터를 살짝 누르자 이내 파란 불이 나왔고 그의 행동에 현장에 있던 사람들은 얼어붙었다.특히 박세빈.박한빈이 무슨 짓을 하려는지 눈치챈 그는 몇 초간 굳어있더니 고래고래 고함을 질렀다.“얼른 저 사람 막아!”다리가 불편한 박세빈은 빨리 다가가 박한빈을 막기에 부족했다.그러나 다른 사람들 또한 마찬가지였다.박세빈의 말이 떨어지기 무섭게 박한빈은 눈앞에 있던 커튼에 불을 붙였고 문도 잠가버렸다.방안 구조를 틈틈이 관찰한 박한빈은 비록 장식이 다 새롭기는 했지만 나무판자들은 그대로 있다는 것을 발견했다.그렇기에 이런 집은..,불이 한번 붙으면 통제하기가 어려웠다.박한빈이 굳이 다른 짓을 더 하지 않아도 불길은 마구 솟아 집을 통째로 삼켜버렸다....“불이야!”성유리가 촌 어구에 갓 도착했을 때, 이 목소리를 마침 들었다.순간 불길한 예감이 든 그녀는 고개를 휙 돌려 촌을 쳐다봤고 날은 어둑어둑해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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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4화

불길은 멈출 기미가 없이 점점 활활 타올랐다.이곳의 건물들은 거의 다 붙어있는 형식이기에 어느 한 집에 화재가 발생하면 꼬리에 꼬리를 물어 온 촌이 다 불타기도 했다.주위에 거주하던 촌민들은 이미 다 대피를 한 상태지만 불길이 제일 센 그 집에서는 아무도 도망 나오지 않았다.성유리는 박한빈이 집 안에 있다고 확신했다.웬일인지 순간 성유리는 이 며칠 동안 박한빈과 발생했던 일들이 떠올랐다.마지막으로 본 건 승마장에 갈 때였다.박한빈이 애써 대화를 이어 나가려고 시도했지만 성유리는 계속 그의 말을 끊어버렸었다. 그때 그녀는 화가 나 있는 상태였기에.그래서 박한빈의 목소리를 듣고 싶지도 않았지만 사실 그 또한 말하기 좋아하는 사람은 아니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박한빈이 말을 꺼낼 때마다 성유리는 조용히 하라고 심술을 썼다.승마장 이후로 박한빈과 대화를 나눈 건, 영상통화로 자신이 있는 곳에 오라고 할 때였다.성유리는 그의 말 속에 숨은 의도를 알고 있었고 박한빈이 은근슬쩍 기대하고 있다는 것도 알았다.하지만 성유리는 듣기 좋은 말 한마디도 없이 박한빈을 거절해 버렸다.지금은?성유리가 말해주고 싶어도... 박한빈이 못 들을지도 모른다.‘지금 이런 걸 생각하고 있을 때가 아니야.’머리론 당장 이곳을 떠나야 한다는 걸 알고 있다. 화재가 발생하면 경찰들은 시민을 보호하기 위해 현장을 통제한다는 것도.그러나 성유리는 본인을 통제할 수가 없었다. 머릿속엔 온통 박한빈과의 일상들이 떠올랐고 다리는 저도 모르게 앞으로 걸어가고 있었다.이건 몸의 본능이다.마치 몇 번이고 포기하려고 애를 써도, 수백 번 박한빈에 대한 마음을 접으려고 노력해도 결국 박한빈의 옆에 돌아가 그를 사랑하는 것처럼.이런 감정은 성유리의 뼛속 깊은 곳까지 파고들어 본능적인 마음이 되었다.화재로 인한 연기가 피어오르면서 성유리는 호흡마저 가빠졌지만 계속 앞으로 나아가며 박한빈의 이름을 외쳤다.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당연하게도 없었다.이미 마음이 무너질 대로 무너진 성유리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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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5화

성유리는 말하며 몸을 덜덜 떨고 있었다.그러자 앞에 있던 소방원은 조용히 자신이 쓰고 있던 방독면을 벗어서 건넸다.그녀는 소방원의 의도를 단번에 알아차렸지만 방독면을 건네받지 않았고 고개만 절레절레 저었다.“싫어요.”“만약 박한빈 씨가 안에 있다가 정말 무슨 일이라도 당한 거라면... 그냥 같이 갈래요.”성유리의 말에 소방원은 미간을 찌푸렸다.그가 무슨 말이라도 해주려는 찰나, 뒤에서 익숙한 목소리가 들렸다.“유리야.”남자의 목소리에 성유리는 행여나 자신이 환청일까 봐 두려워 고개를 돌릴 용기도 나지 않았다.“성유리.”그가 성유리의 이름을 다시 한번 외치기 전까지는.그녀가 천천히 뒤돌아보자 그토록 찾았던 박한빈이 그곳에 서 있었다.그는 셔츠 한 장만 걸치고 있었는데 하얀 옷 위에 까만 자국 같은 것이 얼핏 보였다. 아니, 다시 말하면 까만 자국이 아닌 핏자국이었다.평소 정갈한 모습과는 달리 한껏 헝클어져 있는 머리카락은 급박했던 현장 상황을 알려주는 것 같았다.성유리는 멍하니 박한빈을 바라보다 환각이 아님을 깨닫고는 꿈에서 깨어난 듯 정신없이 달려가 그를 꽉 끌어안았다.당시 박한빈은 이미 다쳐있는 상태였다. 그래서 성유리가 달려와 끌어안을 때, 그 힘에 배 위에 나 있던 상처 부위가 찢어져 버렸다.꽤 강한 고통이 느껴짐에도 박한빈은 미간 한번 찌푸리지 않고 성유리를 안아줬다.이미 그녀의 눈물은 박한빈의 셔츠를 다 적셨고 여전히 덜덜 떨고 있었다.‘많이 무섭고 놀랐나 보네.’두 사람의 몸이 가까이 닿는 순간, 그들은 서서히 안정을 되찾았다.“걱정 많이 했어?”시간이 얼마나 흘렀을까, 박한빈이 먼저 입을 열었다.“걱정하지 마. 난 그렇게 쉽게 안 죽어.”“난 방금 내가 잘못 본 줄 알았어. 네가 어떻게 여기 있지?”박한빈의 물음에도 성유리는 대답이 없었다. 뭔가 이상함을 느낀 그가 고개를 숙여보자 그녀는 이미 두 눈을 질끈 감고 있었다.‘뭐지?’그가 손에 힘을 살짝 푸는 순간 성유리는 픽 쓰러져버렸다.깜짝 놀란 박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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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6화

성유리는 가만히 앉아 있다 한참 뒤, 정신을 다잡고 박한빈을 밀어내며 입을 뗐다.“여긴 왜 오시는 거예요? 빨리 돌아가서 누워요. 손에 있던 링거는요? 미쳤어요? 지금 다친 사람이 뭐 하는 거예요!”차분하던 평소완 달리 다급한 말투로 외치는 성유리를 박한빈은 옅은 미소만 띤 채로 바라보고 있었다.그리고는 손을 뻗어 성유리의 눈물을 부드럽게 닦아줬지만 그녀는 입술을 오므리다 그를 다시 밀어냈다.“빨리 돌아가요! 간호사는요?”성유리가 호출 벨을 누르려던 순간, 박한빈이 먼저 움직였다.그렇게 그녀는 눈 깜빡할 사이에 박한빈의 품에 안겨버렸다.“급한 일 아니야.”그가 낮은 소리로 말을 꺼냈다.“고작 몇 분도 안 되는 시간인데 죽기야 하겠어?”“그리고 그때 네가 나보다 더 심하게 다쳤다는 거 몰랐어? 그때 다른 사람들은 다 대피하고 소방원마저 방독면을 낀 채로 현장에 진입했어. 근데 넌? 물불 가리지도 않고 막 달려갔다며? 진짜 죽으려고 그랬어?”미간을 살짝 찌푸린 채 성유리를 ‘혼’내고 있는 박한빈이었지만 그녀는 고개만 푹 숙인 채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마치 잘못을 저지른 것을 깨달은 어린아이가 자기 잘못을 인정하기 싫어 고집을 피우듯이.박한빈은 성유리의 기분을 알아차리고는 더 이상 ‘혼’ 내진 않았다.“서훈 씨가 그러던데... 그때 진병오 쪽에서 너한테 연락했었어? 넌 또 그 사람이 요구하는 돈을 다 준비했고? 정말 혼자 들어오려고 한 거야?”“네.”“안 무서웠어?”“왜 무서워해야 되는 건데요?”성유리가 되물었다.“만약 정말 원하는 게 돈이라면 주면 되잖아요. 그러면 일도 끝이 날 거고.”박한빈은 단호한 성유리의 태도에 순간 할 말을 잃었다.“사실 그때 박한빈 씨는 다 알고 계셨죠?”한참을 박한빈과 눈을 맞추던 성유리가 갑자기 물었다.“뭐를?”“그 사람들이 원하는 게 돈 뿐만이 아니라는 사실을요.”성유리가 계속 말했다.“필경 정말 위약금을 원한다면 처음부터 높은 금액을 제시했을 테니까.”“이번 일에 영향도 꽤 크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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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7화

박한빈은 별일 아니라는 듯 무척 가볍게 말을 마쳤다.단 몇 마디만으로 이번 일을 성유리에게 제대로 ‘설명’해 줬지만 사실 숨겨둔 사실이 있었다.불에 타고 있는 집으로 돌아갔을 때, 마주한 건 박세빈 한 명뿐이 아니라 현장에 있던 많은 사람들이었다.그들 또한 박한빈이 살아서 나가기를 바라지 않았고 만약 박한빈이 그 여자를 잡지 않았다면, 또 화재가 더 크게 발생하지 않았다면 진병오는 절대 그를 놓아주지 않았을 것이다.하지만 박한빈은 성유리가 자세한 상황까진 알 필요가 없다고 생각해 숨기려는 결정을 내렸다.비록 지금 박한빈은 살아있지만 그런 일이 다시 한번 일어난다면 살아남을지는... 확신할 수 없었다.성유리는 박한빈이 ‘생략’한 말을 듣고 나서도 여전히 표정이 좋지 않았다.그의 손을 꽉 쥐고 있던 손에도 힘을 서서히 풀더니 화가 난 듯 이를 악물고 박한빈에게 물었다.“제가 진짜 죽으려고 그랬는지 물으셨죠? 그러는 당신은요?”“난 방법이 없었잖아.”박한빈이 대답했다.“박세빈을 구해 나오지 않으면 일은 더 복잡해질 거야. 근데...”“그럼 자기가 진짜 죽을 수도 있다는 생각은 안 하셨어요? 박한빈 씨가 정말 거기서 죽었다면 저는 어떡하라고요!”성유리는 박한빈의 말을 뚝 끊어버렸고 지금 그가 어떤 말을 하던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그녀는 오직 한 가지 사실만 알고 있었다. 사실 이 모든 일은 일어나지 않았어도 된다는 것.원래 박한빈은 바로 금성에 돌아올 수 있었다. 그리고 화재 현장에서 유유히 빠져나올 수도 있었고 성유리와 딱 마주칠 수도 있었다.만약 그때 성유리가 조금만 더 빨랐고 박한빈이 조금만 더 늦었다면?가장 직관적으로 말해 만약 소방원이 나타나지 않았고 그녀를 잡는 사람이 없었다면?성유리는 아마 미친 듯이 타고 있는 집안으로 망설임 없이 들어섰을 것이다.정말 그랬다면 그 결과 또한 박한빈이 예상했던 것이었을까?성유리는 생각하면 할수록 속상했다. 화가 나기도 했지만 그 감정보다는 슬픈 감정이 더 강했다.또다시 눈시울이 붉어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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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8화

의사는 빠르게 병실로 와 성유리를 위해 검사를 재개했다.다행히 그날 현장 깊은 곳으로 가지 않았기에 짙은 연기 또한 기도에 많이 들어가지 않아 상황은 최악이 아니었다.의사의 말을 듣고 나서야 박한빈은 안도의 한숨을 푹 내쉬고는 자기 침대로 돌아갔다.하지만 서훈은 박한빈에게 새로운 소식을 알렸다.[박세빈 씨가 사망하셨습니다.]박한빈이 그를 집에서 구조할 때도 그는 이미 숨이 끊어지고 있었다. 하지만 그런 상황에서도 그는 박한빈의 복부를 있는 힘껏 찔렀다.박세빈이 형인 박한빈을 얼마나 증오하고 혐오하는지 선명하게 드러나는 순간이었다.그러나 지금, 증오한다고 해서 무슨 의미가 있는가?바보처럼 자신의 목숨을 다른 사람이 딛고 나아갈 수 있는 지름길로 만들어줬다.게다가 박세빈의 죽음은 그와 연정우 사이에서 벌어진 거래들을 아무도 모른다는 것을 의미한다.박한빈이 아무리 악을 쓰고 구하려고 해도 쓸데가 없었다.진병오 측 사람들이 박한빈을 감금하고 납치한 건 분명한 사실이다. 그렇지만 그들은 박세빈이 시키는 대로 했을 뿐이라고 했다.그러니 이번 일은 이렇게 깔끔한 끝을 맺는 것이다.연정우를 조사한다고 해도 그는 깨끗한 사람이라고 표시될 것이 뻔하다.이건 박한빈이 원하는 결과가 아닌데 말이다.하지만 그 전에 박한빈은 문득 다른 일이 먼저 떠올랐다.‘진병오 그 사람들이 유리한테 어떻게 연락했지?’당시 박한빈은 진병오에 의해 핸드폰을 몰수당한 상황이었다. 그러나 그의 핸드폰엔 비밀번호가 있었으니 그들은 박한빈의 핸드폰을 풀지 못했을 것이다.연정우가 성유리의 연락처를 보내주지 않았으면 절대 그녀한테 연락을 못 한다는 말이다.도대체 왜 그들은 성유리에게 연락해 돈을 요구한 걸까? 만약 박세빈이 정체를 계속 숨겼고 박한빈이 불을 저지르지 않았다면 일은 어떻게 됐을까?박한빈은 더 이상 자세한 건 생각하기도 싫었다.성유리와 박한빈이 다친 사실을 둘 다 금성 쪽엔 알리고 싶지 않아 했지만 너무 큰 화재이기도 하고 그로 인해 박세빈이 죽었으니 김서영이 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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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19화

박한빈은 원래 그녀가 푹 잘 수 있도록 내버려두려고 했다.하지만 갑자기 마음 한구석에서 억울함이 치밀어 올라 결국 그는 침대에서 일어나 성유리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불쑥 손을 뻗어 그녀의 코를 잡았다.잘 자다가 숨이 막히자 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리며 눈을 천천히 떴다.그러자 눈앞에는 몸을 숙인 채 자신을 내려다보는 박한빈이 있었다.“뭐 하는 거예요?”몽롱한 상태에서도 성유리는 그의 손을 단숨에 쳐냈다.“성유리.”잠시 그녀를 바라보던 박한빈이 다시 입을 열었다.“혹시 이런 생각은 해본 적 있나?”“이번에... 내가 정말 죽었다면 너는 어떻게 할 생각이었어?”성유리는 가만히 누워 박한빈을 쳐다만 봤고 방금까지도 꿈을 꾸는 것 같았던 머릿속이 단번에 맑아졌다.그를 가만히 바라보던 그녀가 대뜸 입을 열었다.“당장 다른 사람과 재혼하겠죠.”그 말이 끝나자 박한빈의 동공이 급격히 떨렸고 믿기지 않는다는 듯 성유리를 바라보았다.박한빈은 방금 제대로 들은 게 맞나 싶어 다시 확인하고 싶은 심정이었다.그러나 성유리는 더 이상 그를 보지 않은 채 몸을 돌려 다시 자려 했다.그 순간, 박한빈이 그녀의 손을 움켜잡았다.“누구랑 재혼할 건데?”“누구든 상관없어요. 박한빈 씨가 말했잖아요? 저라도 잘 살아야 한다고.”“난 네가 살아야 한다고 했지 재혼하라고 한 적 없어!”“저 혼자 애 키우기 너무 힘들잖아요. 좋은 사람 만나서 결혼하면 부담이 좀 줄겠죠. 당신도 제가 너무 고생하는 건 싫을 거 아니에요?”성유리의 말에 박한빈은 순간 말문이 턱 막혔다.‘잠깐... 나 지금 설득당한 건가?’하지만 곧 정신을 차린 그는 성유리의 손을 다시 꽉 붙잡았다.“안 돼! 네가 살아 있는 건 좋아. 하지만 다른 남자랑 결혼하는 건 절대 안 돼!”“내가 남겨준 돈이 그렇게도 부족해? 보모를 열 명, 스무 명이라도 고용하면 될 거 아냐! 애 키우는 게 문제면 그렇게 해결하면 되잖아!”이를 악물고 말하는 그의 표정에는 점점 분노가 서렸다.애초에 이런 가정법적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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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720화

성유리와 박한빈이 퇴원 후 도한시를 떠날 준비를 하고 있을 때, 경찰이 박한빈에게 한 가지 질문을 했다.“박세빈 씨의 유골을 가져가시겠습니까?”이번 사건에서 박세빈은 ‘주범’이었고 박한빈은 명백한 피해자였다.그런데도 이런 질문을 하는 것은 부적절해 보였다.하지만 동시에 박한빈은 박세빈의 형이었고 이 세상에서 그의 유일한 가족이었다.그렇기에 경찰이 한 번쯤은 물어볼 법도 했다.그 질문을 들었을 때, 박한빈의 얼굴에는 어떤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그리고는 망설임도 없이 단호하게 대답했다.“필요 없습니다. 처리할 방법을 모르겠으면 바다에 뿌리든가, 아니면 하수구에 버려도 됩니다.”말을 끝낸 그는 바로 전화를 끊었다.비록 통화 중이었지만 성유리는 그의 바로 옆에 앉아 있었기에 모든 대화를 들을 수 있었다.수화기 너머 상대가 어떤 표정을 짓고 있을지는 보이지 않았지만 분명 당황했을 것이다.그도 그럴 것이, 다른 사람들의 눈에는 박한빈이 끝까지 목숨을 걸고 화재 현장에서 박세빈을 데리고 나왔던 모습이 깊은 형제애처럼 보였을 테니까.그런데 정작 본인은 박세빈의 유골을 하수구에 버려도 된다고 말하다니... 참 아이러니한 상황이다.그때, 박한빈의 목소리가 들려왔다.“무슨 생각해?”성유리는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그를 바라보았다.“박한빈 씨생각엔... 박세빈 씨 뒤에 누가 있었을 거라고 생각하세요?”이번이 그녀가 처음으로 박한빈에게 던진 질문이었다.그리고 그 목소리에는 확신보다는 망설임이 서려 있었다.박한빈은 의외라는 듯 살짝 눈썹을 들었다가 되물었다.“너는 어떻게 생각하는데?”이렇게 물어보는 걸 보면 어쩌면 성유리도 이미 마음속으로 답을 정해두었는지도 몰랐다.그래서 굳이 서두를 필요도 없었다.더군다나 지금 박한빈에게도 결정적인 증거가 없었다.박세빈은 이미 죽었고 죽기 전까지도 연정우에 대한 그 어떤 단서도 남기지 않았다.결국 지금으로선 단순한 의심일 뿐, 연정우와 직접적으로 연결되는 것은 아무것도 없었다.박한빈의 말이 끝나자 성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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