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681 - Chapter 690

735 Chapters

제681화

성유리는 박한빈의 말투와 표정을 보고 문득 이런 느낌이 들었다.마치 지금 자신이 그에게 사람을 죽이라고 시켜도 그는 망설임 없이 실행할 것만 같았다. 물론, 어디까지나 그런 생각이 스쳐 지나갔을 뿐이다.“저 홍지은 씨 싫어해요.”성유리가 낮은 소리로 말하자 박한빈이 바로 그녀의 의도를 알아차렸다.“좋아, 그럼...”“하지만 박한빈 씨가 손대는 건 원하지 않아요.”성유리가 이런 말을 덧붙이자 박한빈은 의아해졌지만 그녀가 이내 말을 이어갔다.“제가 직접 하고 싶어요.”그 말에 박한빈은 미처 반응하지 못하고 멍해졌다. 그러자 성유리가 물었다.“안 돼요?”“아니. 그게 아니라... 너 화 안 난 거야?”솔직히 말해, 홍지은이 어떻게 되든 박한빈은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지금 그의 관심사는 오직 성유리의 감정뿐이었다.방금 전까지는 이 일을 잊고 있던 듯한 성유리였는데 다시 언급되자 그녀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그제야 뭔가를 눈치챈 박한빈은 방금 했던 말을 얼른 넘기려고 했지만 성유리가 먼저 입을 열었다.“아까 이미 홍지은 씨한테 대답했어요. 그리고... 어차피 전 이미 알고 있었어요. 처음부터.”“그리고 다른 일들은 박한빈 씨가 방금 다 설명했잖아요. 게다가 물기까지 했고.”성유리의 말이 끝났지만 박한빈은 여전히 믿기지 않는다는 듯 그녀를 바라보았다.“그래서?”“그러니까... 과거의 일들은 사라지지 않겠지만 적어도 지금 당장 떠날 생각은 없다는 거죠.”성유리의 명확한 대답이 떨어지자 박한빈은 비로소 한숨을 푹 내쉬었다.꽉 조여 있던 감정이 풀리면서도 성유리를 감싸고 있던 팔에는 오히려 더 힘을 줬다.“숨 막혀요. 좀 놔줘요.”성유리가 숨이 막힌 듯 박한빈을 손으로 밀어냈지만 그는 대답 없이 살짝 힘을 뺄 뿐 여전히 그녀를 품에서 놓지 않았다.한참을 더 버둥거리다가 결국 포기한 성유리가 화제를 돌리며 박한빈에게 물었다.“아까 제 말에 아직 대답 안 했잖아요.”“무슨 말?”“홍지은 씨에 관한 일이요. 제가 직접 해결하고 싶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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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2화

“사모님!”누군가의 열정 넘치는 목소리가 들려오자 홍지은은 순간 믿기지 않는 듯한 표정을 지었다.상대가 점점 가까이 자신에게 다가오자 그녀는 무의식적으로 한발 물러섰지만 상대는 이미 홍지은의 손을 잡으며 환한 미소를 지었다.“드디어 오셨네요! 다들 기다리고 있었어요!”“저를... 왜?”홍지은의 목소리에는 약간의 경직됨이 묻어 있었다.솔직히, 이런 상황이 낯설지는 않았다.예전 학창 시절에도 이런 일을 수없이 봐왔다.부드러운 미소를 띤 채로 ‘친절하게’ 누군가를 특정한 장소로 데려간 뒤, 마음껏 ‘즐기는’ 광경.단지 그때는 자신이 기다리는 입장이었을 뿐 지금처럼 직접 끌려가는 입장은 아니었다.막상 위치가 바뀌니 마음속에 스며드는 건 불안감뿐이었다.사실, 오늘 초대를 받았을 때부터 이미 뭔가 이상하다는 걸 느끼고 있었다.경매장에서 자신과 성유리에 대한 거짓말이 탄로 난 이후, 며칠 새 단체 채팅방에서도 강제로 쫓겨난 상태였다.그런데 오늘 갑자기 그들이 먼저 전화를 걸어왔다.이건 명백히 수상한 일이었다.하지만 결국 홍지은은 오기로 결정했다.어쨌든 상대는 사회적 지위가 있는 사람들이고 자신은 임산부였다. 아무리 그래도 신체적인 위해를 가할 리는 없지 않을까?그렇게 생각하며 발걸음을 옮기는 사이 홍지은은 이미 룸 안으로 이끌려 들어가 있었다.그곳에 있는 사람들을 보자 홍지은의 동공이 미세하게 흔들렸다.“홍지은 씨 오셨어요?”성유리는 이미 소파에 앉아 있었다.몸에는 맞춤 제작된 드레스를 걸치고 있었고 옅은 미소를 짓고 있었다.“다들 당신을 기다리고 있었어요.”성유리는 말하는 내내 온화한 표정을 짓고 있었지만 홍지은은 한동안 반응하지 못했다.“왜 가만히 서 계세요?”그 모습을 본 성유리는 더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이리 와서 앉으세요.”그 말을 듣고서야 홍지은은 마침내 정신을 차린 듯 천천히 다가갔다.이미 누군가 그녀가 앉을 자리를 마련해 두었는데 그 자리는 바로 성유리의 옆자리였다.“지난번 경매장에서는 죄송했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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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3화

성유리는 사람들의 예상보다 도도하지 않았다. 적어도 대화에 있어선 상대가 무슨 말을 하던 하나하나 다 성의 있게 대답했다.누군가 다음번에 함께 전시회를 보러 가자거나 음악회를 들으러 가자고 제안하면 그녀는 옅은 미소를 띠며 흔쾌히 응했다.그러나 그런 분위기 속에서 유일하게 불편해하고 침묵을 하고 있는 사람은 오히려 홍지은이었다.결국 더 이상 견딜 수 없어진 그녀는 간단히 양해를 구한 뒤, 바로 화장실로 향했다.세면대 앞에 선 홍지은은 거울 속 자신의 모습을 바라보다가 손에 들고 있던 상자 안의 물건을 다시 한번 확인했다.그제야 비로소, 이 모든 것이 현실임을 깨닫고 천천히 미소를 지었다.성유리가 왜 자신을 도와 거짓을 꾸며줬는지 아직도 알 수 없었지만 어쨌든 원하는 걸 손에 넣었다.얼마 전까지 신영지와 가까운 사이를 유지하고 있었으나 상대는 여전히 그녀와 성유리의 관계를 완전히 믿지 못하고 있었다.그래서 남편 측과의 협력도 이뤄지지 않았던 것이다.하지만 지금은 다르다.성유리가 어떤 의도로 이 일을 했든 간에 자신이 이득을 볼 수 있다면 좋은 일 아닌가?이제 남은 건, 성유리를 얼마만큼 이용할 수 있는가 뿐이었다.홍지은이 이런 생각에 잠겨있을 무렵, 갑자기 문이 벌컥 열렸다.문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다름이 아닌 성유리였다.둘의 시선이 마주쳤을 때, 성유리는 약간 놀란 듯했지만 이내 부드럽게 미소 지었다.그녀의 웃음은 여전히 온화하고 따뜻했다.그러나 홍지은은 순간적으로 자리에 얼어붙었다.그리고는 곧바로 물었다.“뭐 하려는 거야?”그 질문에 성유리는 살짝 의아한 표정을 지으며 되물었다.“뭐 하려는 거냐고요?”“왜 나를 도와서 저 사람들에게 잘 보이게 해준 거냐고.”“전 도와준 적 없어요.”성유리는 담담하게 말을 이어갔다.“그저 지난번 경매장에서... 너무 죄송해서 그랬던 것뿐이에요.”“네가 나한테 미안하다고?”홍지은은 성유리를 비웃듯 입꼬리를 올려 웃으며 계속 물었다.“네가 뭐가 미안한데? 지금 박한빈 씨가 온 신경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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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4화

성유리는 기사한테 자신을 데리러 오라는 부탁을 마친 상태였다.그런데 뒷좌석에 올라탄 후에야 운전석에 앉아 있는 사람이 박한빈이라는 걸 알게 되었다.이미 차에 탄 상황이었고 주변 사람들도 눈치채지 못했기에 그녀는 굳이 다시 내리지 않고 조용히 문을 닫았다.박한빈은 별다른 말을 하지 않았고 그렇게 두 사람이 탄 차는 적막 속에서 도로 위를 질주했다.그러다 한참을 가던 중, 갑자기 차가 길가에 멈춰 섰다.“이리 와.”“거의 다 왔잖아요.”입으로는 투덜거렸지만 성유리는 결국 차에서 내렸다.원래는 조수석으로 이동하려 했으나 순간 그녀의 발걸음이 뚝 멈췄다.그 모습을 보고 이상하게 여긴 박한빈이 성유리를 바라보며 물었다.“왜 그래?”이내 박한빈은 그녀의 시선이 앞쪽을 향해 단단히 고정되어 있다는 걸 알아차렸다.본능적으로 고개를 돌린 그는 곧장 상황을 파악했다.바로 앞에 서 있는 사람은 바로 연정우였다.연정우 역시 예상치 못한 만남에 순간적으로 당황한 것 같았지만 곧 그녀를 향해 다가오려는 것 같았다.그래서 박한빈은 망설임 없이 차에서 내렸다.그뿐만 아니라 두 사람의 시선을 확실히 끌기 위해 차 문을 일부러 세게 닫았다.쾅!커다란 소리가 울려 퍼지자 성유리는 그제야 정신을 차렸고 연정우도 뒤늦게 그를 보았다.연정우는 미간을 잔뜩 찌푸리고 있었지만 박한빈은 신경 쓰지 않고 성큼성큼 다가가 성유리를 그대로 품에 안아버렸다.한편, 성유리한테 다가가려고 걸음을 옮기던 연정우는 그대로 자리에 굳어버렸고 그때부터 침묵이 흘렀다.한동안 서로를 지켜보던 끝에, 박한빈이 먼저 말을 꺼냈다.“연 대표님, 이런 곳에서 만날 줄은 몰랐습니다.”연정우는 그의 말을 받아줄 생각이 없는 듯 침묵하다가 이내 시선을 천천히 성유리에게 돌렸다.그리고 잠시 후, 옅은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그러게 말입니다. 정말 우연한 만남이군요.”그러나 성유리는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다.옆에 있던 박한빈 역시 더 이상 불필요한 대화를 할 생각이 없어 단호하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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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5화

“혹시 제가 연정우랑 무슨 일이라도 생길 거라고 생각하는 거예요?”성유리는 단도직입적으로 박한빈의 생각을 간파하며 물었다.순간, 박한빈의 표정이 살짝 굳어졌고 평온하게 달리던 차가 갑자기 급회전을 하더니 이어서 급브레이크를 밟았다.갑작스러운 움직임에 성유리는 깜짝 놀랐고 그 탓에 머리를 옆 창문에 부딪쳤다.쿵!둔탁한 소리와 함께 순간적으로 눈앞이 아찔해졌다.정신을 차린 성유리는 가장 먼저 박한빈의 팔을 세게 내리쳤다.“대체 뭐 하는 거예요! 엄청 아프잖아요.”박한빈은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고 그녀가 주먹으로 툭툭 치는 것도 그대로 받아들이며 가만히 있었다.그러더니 몸을 기울여 성유리의 이마를 유심히 살폈다. 다친 곳은 없는 걸 확인한 후에야 박한빈이 천천히 입을 열었다.“네가 쓸데없는 말을 하니까 그렇지.”“뭐라고요?”“네가 직접 생각해 봐. 방금 네가 무슨 말을 했는지. 너... 연정우 씨랑 무슨 일이라도 있을 생각이야?”그 말에 성유리는 어처구니가 없어서 헛웃음을 터뜨렸다.“제가 언제 그런 말을 했다고 그러세요? 뭘 멋대로 지어내고 있냐고요?”성유리는 말하며 박한빈의 손을 확 밀쳐냈다.“방금 네 말투가 딱 그런 뉘앙스였잖아.”“제가 말한 건 박한빈 씨가 지금 걱정하고 있다는 거였잖아요. 제가 무슨 일을 벌이겠다는 뜻이 아니라고요.”“그래서 두 사람 예전에는... 그런 일이 있었고?”결국, 박한빈은 더 이상 참지 못하고 그 질문을 내뱉고 말았다.사실 요즘 그는 꽤 괜찮은 시간을 보내고 있었다. 하늘이와의 관계도 점점 좋아지고 있었고 이번 주 금요일에는 하늘이의 유치원 공개 수업에도 함께 가기로 했으니까.과거의 일들은 자연스럽게 입 밖에 꺼내지 않게 됐고 이렇게 계속 평온한 날들이 이어질 거라 생각했다.더 이상 그 이름을 떠올릴 일도 거의 없었다.그런데 오늘, 예상치 못하게 마주치고 나니 순간적으로 떠오른 기억들이 박한빈을 불안하게 만들었다.그 사람과 성유리는 한때 함께였던 사이다.심지어 결혼까지 생각했었고 같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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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6화

박한빈이 말했던 대로 연정우는 지금 금성에 있었다. 게다가 같은 업계에서 몸을 담그고 있으니 마주치는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이었다.하지만 머리론 이런 사실을 알고 있어도 막상 눈앞에서 연정우를 본 순간, 박한빈의 안색이 어두워졌다.그런데도 연정우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와인잔을 들고 박한빈 쪽으로 다가왔다.“박 대표님.”박한빈은 어디서든 늘 주목받는 사람이었으니 이곳에서도 마찬가지였다. 그가 있는 자리에는 사람들로 둘러싸여 있었고 방금까지도 다른 이들과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그런데 연정우가 갑자기 불러 세우면서 그들의 대화가 중단되었고 주변의 시선이 모두 그에게로 쏠렸다.박한빈은 말을 거는 연정우를 흘깃 본 뒤, 금세 다른 곳으로 시선을 돌렸다.시간이 흘렀지만 박한빈은 여전히 연정우의 인사에 대해선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았다.그러나 연정우는 신경 쓰지 않는 듯 여전히 밝은 표정으로 말했다.“며칠 전 길에서 사모님을 뵀었습니다. 잘 지내시는지 궁금하네요.”사모님.그 세 글자에 몇몇 사람들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예전에 박한빈의 할머니가 세상을 떠났을 때, 연정우가 어떤 여자를 데리고 조문을 왔던 기억이 났다.그때 함께 온 여자가...“당연히 잘 지내고 있습니다.”마침내 침묵하던 박한빈이 대답했지만 얼굴에 어떠한 감정도 드러나지 않았다.“제 아내니까 제가 직접 챙기고 있습니다. 굳이 연 대표님께서 걱정할 필요는 없고요.”“그럼 다행이네요. 사실 전부터 걱정했거든요. 예전에 사건이 있었잖아요? 혹시나 사모님께 영향을 미쳤을까 해서요. 지금 보니 다 회복하신 것 같아 마음이 놓이네요.”연정우의 말에 박한빈의 미간이 순간적으로 잔뜩 찌푸려졌다.“그 사건은... 정말 안타까운 일이었죠.”연정우는 낮은 목소리로 말을 이어갔다.“참 좋은 사람이었는데...”“도대체 무슨 말을 하고 싶은 겁니까?”박한빈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네?”연정우는 살짝 놀란 듯한 표정을 지었지만 곧 미소를 지었다.“아닙니다. 그냥 지나가는 말이었어요. 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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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7화

그래서 그 남자가 다가오는 순간, 연정우는 무슨 일이 벌어질지 이미 알고 있었다.그렇다고 해서 특별히 놀라지도 않았다. 그저 미소를 지으며 잔을 내려놓고 먼저 자리를 떠났다.“죄송합니다. 갑자기 급한 일이 생겨서 먼저 가봐야겠네요. 다음에 식사 대접하겠습니다.”그 말을 남긴 채, 그는 곧장 자리를 떴다.그리고 남겨진 건 어리둥절한 표정으로 서 있는 행사 주최자뿐이었다.박한빈은 술을 마셨기에 운전기사에게 차를 맡겨 집으로 돌아왔다.현관문을 열자마자 그는 성유리가 외투를 걸치는 모습을 발견했다.그 시각 성유리는 마침 외출 준비를 하려던 참이었다.“어디 가려고?”“박한빈 씨? 어떻게 벌써 돌아왔어요?”두 사람이 거의 동시에 물었다.순간, 박한빈의 미간이 살짝 찌푸려졌다.그리고 곧바로 성유리를 훑어보았다.연한 색감의 원피스 위에 걸친 깨끗한 흰색 외투.최근 들어 성유리의 안색도 한층 좋아졌다. 덕분에 간단히 립스틱만 발랐을 뿐인데도 더없이 매혹적으로 보였다.하지만 박한빈의 표정은 점점 더 어두워졌다.“어디 가려는 거야?”하지만 성유리는 오히려 의아하다는 듯 물었다.“박한빈 씨가 저보고 데리러 오라고 했잖아요.”그 말을 듣고 나서야 박한빈도 떠올렸다.‘아, 맞다.’애초에 그는 이번 술자리에 가고 싶지 않았다.하지만 상대가 몇 번이나 초대했고 또 그 사람이 나이도 있는 편이라 마지못해 참석한 것이었다.애당초 오래 머물 생각이 없었기에 미리 성유리에게 시간을 맞춰 데리러 오라고 했던 거다.즉, 성유리가 어디 가려던 게 아니라 자신을 데리러 오려던 것뿐이었다.그제야 박한빈은 긴장을 풀고 나지막이 말했다.“재미없어서 그냥 먼저 왔어.”그러면서 성유리의 손을 잡고는 집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성유리는 별다른 저항 없이 그를 따라가다가 문득 고개를 돌려 물었다.“술자리에서 무슨 일 있었어요?”“별거 아냐.”“연정우 만났죠?”정곡을 찌르는 한마디.그 한마디에 박한빈의 걸음이 즉시 멈췄다.그리고 천천히 고개를 돌려 그녀를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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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8화

성유리는 손에 물컵을 들고 있었는데 갑작스러운 박한빈의 행동에 그만 컵을 떨어뜨릴 뻔했다.순간 멈칫하던 그녀는 고개를 돌려 박한빈을 바라보며 말했다.“뭐 하는 거예요?”박한빈은 아무 말도 없이 고개를 숙여 성유리의 어깨에 입을 맞췄다.힘을 준 것도 아닌데 그 미묘한 감촉에 성유리의 몸이 순간적으로 움찔거렸다.그녀는 본능적으로 컵을 꼭 쥐었고 박한빈의 손을 떼어내려 했다.“일단 좀 놔보세요.”하지만 그는 듣지 않았다.“계속 이러면 물 다 엎을 거예요.”점점 짜증이 묻어나는 성유리의 목소리였지만 박한빈은 아랑곳하지 않고 그녀의 손에서 컵을 빼앗아 그대로 들이켰다.그리고 텅 빈 컵을 조리대 위에 내려놓았다.그렇게 컵과 대리석이 부딪치는 소리가 조용한 공간에 또렷하게 울려 퍼졌다.성유리의 치맛자락은 허리까지 올라갔고 손가락은 조리대 가장자리를 단단히 움켜쥔 상태였다.너무 힘을 주는 바람에 손가락 마디가 하얗게 질릴 정도였다.집 안이 워낙 고요했기에 작디작은 소리 하나하나가 더욱 크게 울렸다.그래서인지, 성유리는 필사적으로 입술을 꼭 깨물었다.혹시라도 가정부나 누군가에게 들킬까 봐.그렇게 되면 차라리 죽어버리고 싶을 정도로 창피할 테니까 말이다.하지만 그 전에 아마 박한빈부터 물어뜯고 싶을 것이다.입술을 너무 세게 깨무는 바람에 상처가 나고 혀끝으로 피 맛이 스며들었다.그럼에도 불구하고 결국 참지 못하고 성유리의 입에서 짧은 신음이 새어 나왔다.그 소리를 삼키려 했지만 그 순간, 박한빈이 그녀의 턱을 단단히 잡았다.그리고 고개를 돌리는 순간, 그대로 입을 맞췄다.박한빈의 입안에서는 아직도 꿀물의 달콤한 향이 남아 있었다.그리고 성유리의 입안에 퍼져있던 은은한 피 맛.두 개의 맛이 섞이며 묘한 감각을 만들어냈다.미간을 잔뜩 찌푸린 성유리가 당장 박한빈을 밀어내려던 찰나, 희미한 목소리가 들려왔다.“아빠, 뭐 해? 엄마는?”목소리를 듣는 순간 성유리의 몸이 얼어붙었다.박한빈의 손이 허리를 단단히 움켜쥐었고 이마에 힘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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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89화

말하는 한편 성유리는 주먹을 꽉 쥐고 그대로 세게 박한빈의 가슴을 내리쳤다.“다 당신 때문이야! 전부 박한빈 씨 때문이라고!”창피함과 분노가 뒤섞인 그녀의 주먹에는 힘이 잔뜩 실려 있었다.하지만 꾸준히 운동해 온 박한빈에게 그런 건 아무렇지도 않았다.그저 성유리의 화가 충분히 풀릴 때까지 가만히 두었다가 순식간에 그녀의 손목을 잡았다.“괜찮아.  하늘이는 못 봤을 거야.”“그걸 어떻게 확신해요?”“봤으면 가만히 안 있었겠지. 그리고 아까 봤잖아? 완전히 졸린 상태로 서 있는 거. 내일 아침이면 싹 다 잊어버릴 거야.”그는 태연한 말투로 성유리를 달래고 있었지만 그녀는 여전히 속이 풀리지 않았다.그래서 박한빈을 날카롭게 노려보았지만 그는 그런 시선에도 전혀 개의치 않는 듯 오히려 장난스럽게 웃으며 말했다.“같이 씻을래?”퍽!성유리는 가차 없이 그를 밀어냈지만 박한빈은 화내기는커녕 싱긋 웃으며 욕실로 향했다.그가 씻고 나왔을 때, 성유리는 이미 잠옷으로 갈아입고 침대에 앉아 있었다.“이거 좀 보세요.”박한빈이 나오자마자 그녀는 군말 없이 손에 들고 있던 서류를 내밀었다.하지만 그는 빠르게 건네받지 않았고 느긋하게 되물었다.“그게 뭔데?”“홍지은 씨가 말했던 그 프로젝트 계약서예요. 그 사람 남편이랑 협업한다면서요? 계약서 가져왔어요.”“아, 맞다.”박한빈은 짧은 대답과 함께 서류를 받아 들고는 그대로 사인하기 시작했다.단 한 번도 내용을 확인하지 않은 채.그 모습에 성유리는 순간 멍해졌고 그러다 미간을 찌푸렸다.“보지도 않으세요?”“뭘 보라는 거야?”“계약서요. 제가 혹시 박한빈 씨를 팔아넘길 수도 있잖아요.”성유리의 말에 박한빈은 오히려 웃음을 터뜨리며 물었다.“너한테 그럴 능력이 있긴 해?”그 말에 성유리의 표정이 굳어졌고 즉시 발을 들어 그를 걷어차려 했다.그러나 박한빈은 예상이라도 했다는 듯 손을 뻗어 그녀의 발목을 붙잡았다.“놔요. 지금 당장 놓으라고요!”얼굴이 새빨개진 성유리는 버둥거렸지만 박한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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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90화

레스토랑에서 맹정태는 한껏 공손한 표정으로 성유리에게 차를 따라주고 있었다.“사모님, 이번 일 정말 감사드립니다. 설마 박 대표님께서 저에게 이런 기회를 주실 줄은 몰랐어요. 근데 안심하십시오. 공장 쪽은 제가 직접 관리할 겁니다. 박 대표님께서 만족하실 수 있도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옆에는 홍지은도 함께 앉아 있었다.맹정태가 다른 사람에게 아부하는 모습을 한두 번 본 게 아니었지만 이번에는 그 대상이 성유리라는 점이 이상하게 거슬렸다.그래서 곧장 맹정태의 말에 끼어들며 입을 열었다.“오빠, 됐어. 그런 거창한 감사 인사는 필요 없잖아. 어차피 이런 일쯤이야 손가락 까딱하면 되겠는데.”“아니. 그래도 인사는 해야지!”맹정태는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말을 이었다.“사모님께서는 모르시겠지만 이번에 정말 큰 도움을 주셨습니다. 원래라면...”“괜찮아요. 맹 사장님.”성유리는 살짝 웃으며 그의 말을 끊었다.“저랑 지은 씨는 원래 친한 사이잖아요. 지은 씨가 말한 것처럼 별거 아닌 작은 도움일 뿐이에요. 오히려 제가 도와드릴 수 있어서 기쁩니다.”“그야말로 큰 도움이 됐죠!”맹정태는 성유리의 말에 즉시 맞장구쳤다.“어제까지만 해도 아버지가 제 말을 전혀 믿지 않으셨거든요. 그런데 오늘 이렇게 계약까지 따냈으니 이제 무슨 말을 하실지 궁금합니다.”그는 신이 난 듯 다시 웃어 보였다.그러나 그 모습을 지켜보던 홍지은은 짜증이 밀려왔는지 성유리 앞에서 맹정태를 쏘아보았다.그리고는 쌀쌀맞은 태도로 남편인 맹정태에게 말했다.“됐고 계약도 확정됐으니까 이제 그만 가서 회사 일 봐. 나는 유리랑 할 얘기가 있으니까.”“무슨 얘기?”맹정태가 의아한 얼굴로 묻자 홍지은은 어이가 없다는 듯 웃음을 터뜨렸다.“우리 여자끼리 할 얘기가 있겠지. 나가라면 그냥 나가.”그녀의 딱딱한 말투에 맹정태는 순간 불쾌한 기색을 보였다.그러나 이번 건이 홍지은 덕분에 성사된 걸 생각하고는 꾹 참고 억지 미소를 지으며 성유리를 향해 고개를 끄덕였다.그리고는 천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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