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유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밖은 이미 해가 떠 있는 상태였다. 내리던 눈은 이미 멈췄지만 방 안에는 여전히 성유리 홀로 남아있었다. 그녀는 박한빈이 오늘 자신을 찾아와 얘기를 나눌 줄 알았다. 성유리가 아는 박한빈이라는 사람은 이런 일을 질질 끌지는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을 더 끌면 끌수록 박한빈은 견딜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성유리의 이번 추측은 제대로 빗나갔다. 그날, 박한빈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저녁쯤에 김서영이 전화를 걸어 교외에 있는 별장으로 오라는 말까지 했다. 성유리는 김서영의 의도를 몰랐지만 다음 날, 결국 그곳으로 향했다. 아마 생활환경이 바뀌어서일까? 김서영의 모습은 전보다 더 생기 있고 건강해 보였다. 게다가 늘 입고 있던 우아한 원피스와 액세서리가 아닌 편안 차림으로 머리까지 낮게 묶고 있는 김서영은 보기에 전보다 훨씬 더 젊어 보였다. 아니, 젊어진 게 아니라 생동해졌다. 성유리는 늘 김서영이 그림 속에 갇혀있는 여인인 줄 알았지만 편하게 있는 김서영을 보니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온 것 같았다. 그녀가 별장에 도착했을 때, 김서영은 정원에서 나무 한 그루를 심고 있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끙끙거리며 땅을 파고 있는 김서영을 보던 성유리가 다가가 도움을 주려 했다. 그제야 성유리를 발견한 김서영이 고개를 들더니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왔니?” “네.” “다른 사람이 선물로 준 망고 나문데 열매가 맺히면 그렇게 맛있다더라. 내년이면 열매가 맺힐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려고. 아, 맞다! 유리 너도 망고 좋아하지 않니?” 성유리는 스스로도 언제부터 망고를 즐겨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김서영의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박한빈이 전에 사줬던 망고 케이크가 떠올랐다. ‘케이크 좀 먹었다고 내가 망고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건가?’ 성유리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이 시간에 나무 심으면 안 되지 않나요?” “그렇지? 근데 누가 그러더라. 정성껏 나무를 심으면 시간이 늦어도 상
Read mor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