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411 - Chapter 4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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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1화

성유리는 그 자리에 가만히 서서 박한빈을 쳐다보고 있었다. 그는 그런 성유리를 한참 바라보다 잔뜩 굳은 얼굴을 하고 냉랭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그래. 집에 가자.” 박한빈은 성큼성큼 걸어와 성유리의 손을 꽉 잡았다. “어디 가세요?” 그때, 유효정의 큰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박한빈 씨, 저희가 되게 만만해 보이시나 봐요? 지금 누구 몸에 손을 댔는지 아세요? 박...” “원하시면 경찰에 신고해도 됩니다.” 박한빈은 유효정의 말을 뚝 끊어버리더니 단호하게 대답했다. “경찰에 신고하시는 김에 호텔 직원한테 CCTV도 보여 달라고 하세요. 그럼 제가 왜 저 인간을 때렸는지 아실 테니까.” 유효정은 박한빈의 당당하고 냉정한 태도에 할 말을 잃은 듯 가만히 있었고 박한빈은 그 말을 끝으로 성유리의 손을 잡은 채로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다. 평소보다 더 빠른 걸음으로 걷는 박한빈을 성유리는 종종걸음으로 겨우 그를 따라잡았다. 너무 급하게 떠난 탓에 성유리는 외투나 목도리조차 챙기지 못해 호텔 밖으로 나오자 강한 바람에 추워서 몸을 벌벌 떨었다. 늘 “다정다감”한 태도로 성유리를 대하던 박한빈은 자기 옆에서 추워서 어쩔 줄 모르는 그녀에게 시선 한번 돌리지 않았다. 이내 성유리가 박한빈의 힘에 못 이겨 차에 버려지다시피 올라타자 그는 차 문을 세게 닫아버렸다. 강한 힘에 놀란 운전기사는 두 눈이 휘둥그레 해졌지만 박한빈의 얼굴을 확인한 순간, 눈치 빠른 기사는 묵묵히 차에 시동을 걸어 출발했다. 가는 길 내내 박한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지만 성유리의 손을 놓아주지 않았고 그녀의 손뼈를 부러뜨릴 듯 아까보다 더 센 힘으로 잡고 있었다. 당연하게도 성유리는 손에서 고통이 느껴졌는데 그녀는 아무런 내색도 하지 않고 미간만 찌푸린 채 침묵했다. 도연제에 도착하자 박한빈은 성유리를 강제로 차에서 끌어 내렸고 밖은 여전히 추웠기에 성유리는 몇 번이나 재채기까지 했지만 박한빈은 신경도 쓰지 않았다. 집안으로 들어서자 그제야 박한빈은 성유리의 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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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2화

성유리의 말이 끝나자 그녀의 목을 조르고 있던 박한빈의 손에 힘이 풀렸다. 아직도 성유리를 죽일 듯 노려보고 있는 박한빈이지만 웬일인지 그는 뒤로 몇 걸음 물러나 있었다. 그러더니 실성한 사람처럼 박한빈은 깔깔 웃으며 입을 뗐다. “오, 그래?” “맞아. 난 전부터 알고 있었어.” “유리야, 사실 네 연기도 별로였어.” “내가 지금까지 아무 말도 안 한 이유는... 내가 너한테 속아주고 싶었을 뿐이고.” “처음부터 날 속이기로 했으면 왜 평생 속이려는 노력도 하지 않는 거야? 도대체 왜!” “왜냐하면 그럴 필요가 없어졌기 때문이에요.” 성유리는 혼잣말하듯 중얼거리는 박한빈의 말을 뚝 끊어버리며 대답했다. “일이 이 지경까지 됐는데 더 속이는 게 무슨 의미가 있는지 몰라서요. 우습기도 하고.” “그럼 지금 나는 우습지 않다는 거야?” 박한빈은 성유리를 노려보며 따지듯 물었다. “왜... 왜 나한테 이러는 거지?” “제가 말했잖아요. 전 박한빈 씨를 원망한다고요.” 깔끔하고 단호한 성유리의 대답에 박한빈은 문득 그런 말이 떠올랐다. ‘원망은 사랑이라는 감정 때문에 생기는 거랬어.’ 하지만 지금 성유리의 눈빛에서 박한빈은 어떠한 감정도 읽어낼 수 없었다. 그래서 박한빈은 성유리가 현재 자신을 사랑하는 것이 아니라 그저 단순히 원망하고 혐오한다는 사실을 인정하게 됐다. “아이 때문에 그래?” 그럼에도 포기할 수 없었던 박한빈이 다시 물었다. “만약 그때 내가 네 약을 몰래 바꾸지 않았다면 우리는 달랐을까?” 성유리는 침묵했고 박한빈은 그 침묵 속에서 답을 알아차렸다. 그 답은 박한빈의 가슴에 날카로운 비수를 꽂는 듯 그는 강한 고통이 느껴졌다. 그는 씁쓸한 미소를 지으며 입을 열었다. “내 말이 맞아? 정말 그런 거야?” “네.” 머릿속이 새하얘진 박한빈은 무슨 말이라도 더 하고 싶었지만 목소리가 나오지 않았다. 허리를 꼿꼿하게 편 채로 박한빈을 쳐다보고 있는 성유리는 키 차이 때문에 고개를 들어야 했다. 그렇지만 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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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3화

대화의 끝자락에서 성유리는 깊은 한숨을 내쉬며 입을 열었다. “도풍국에서 제가 마지막으로 자존심까지 다 버리면서 매달릴 때, 그때라도 저한테 기회를 주셨으면 제 마음이 이렇게까지 싸늘하게 식지는 않았을 거예요.” “근데 박한빈 씨는 어떻게 하셨죠?” “성유정을 데리고 여행을 한 것도 모자라 임신까지 시키셨잖아요.” 성유리는 생각하면 할수록 어이가 없어 헛웃음을 지었다. 어두운 안색으로 성유리의 말을 가만히 듣고만 있던 박한빈이 고개를 번쩍 들더니 물었다. “뭐라고? 성유정이 임신한 아이가 내 아이라는 말을 누가 했는데?” 성유리는 대답하지 않았다. 박한빈은 곰곰이 생각에 잠기다 답을 알아차린 듯 다시 물었다. “성유정이야? 병원에서 마주쳤던 그날에 걔가 그렇게 말했어?” “왜 나한테 물어보지 않은 거야? 내가 설명...” “설명 안 해줘도 돼요.” 성유리는 박한빈의 말을 끊어버리며 대답했다. “제가 물어보지 않은 건 딱히 신경 쓰고 싶지 않아서예요.” “박한빈 씨 아이면 어떻고 아니면 또 어떤 데요? 저랑 무슨 상관이 있나요?” 박한빈은 눈앞에 있는 성유리가 지금까지 자신이 알던 사람이랑 아예 달라 보였다. 그는 늘 성유리가 다정하고 착한 여자인 줄 알았다. 하지만 지금 보니 그녀는 누구보다 더 독하고 냉정한 사람이었다. 그렇지 않으면 이렇게 잔인하게 자기 가슴에 비수를 꽂는 말들만 하지는 않을 테니까. 박한빈은 두 눈을 지그시 감으며 입을 뗐다. “그래. 너는 관심이 없겠지. 그래도 난 너한테 말해주고 싶어. 그 아이는 내 아이가 아니야. 난 성유정이랑 아무 사이도 아니었다고!” “전에 도풍국에서 마주친 그날에도 난 업무를 처리하러 간 거야. 성유정이 억지로 나를 따라오더니 같이 밥이라도 먹자고 매달려서 어쩔 수 없이 허락한 거라고!” “네.” 비록 성유리가 방금까지 신경 쓰지 않는다는 말을 했지만 박한빈은 그래도 꼭 오해를 풀고 싶었고 누명을 벗고 싶었다. 하지만 돌아오는 대답은 짧고도 간결한 대답뿐이었고 박한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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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4화

“성유리, 결국 네가 이겼네.” 박한빈은 성유리 앞에 멈춰서더니 잔뜩 잠긴 목소리로 계속 말했다. “근데 왜 내가 너를 놓아줄 거라고 생각하지?” 그의 물음에 성유리가 씩 웃으며 대답했다. “저를 놓아달라고 한 적 없어요. 전 당신이랑 계속 함께 있을 수 있으니까. 심지어는 결혼식 날에도 전 평소대로 할 수 있고요.” “하지만 한 가지 명심하셔야 해요. 앞으로 저희의 생활은 늘 이럴 거예요.” “만약 박한빈 씨가 괜찮다고 한다면 저도 상관없어요.” “뱃속에 있는 아이에 대해서는 저도 어머니의 역할을 잘할 거예요. 그렇지만 아이랑 박한빈 씨는 아무런 상관이 없을 거고요. 아이를 사랑해 주는 이유는 바로... 이 아이는 제가 낳은 소중한 생명이기 때문이에요.” ... 박한빈은 그렇게 떠나갔다. 문이 닫히는 소리와 함께 집안엔 적막만이 흘렀고 성유리는 여전히 그 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다. 한참 뒤, 성유리는 다리에 힘이 풀린 듯 땅바닥에 주저앉아버렸다. 그녀는 박한빈에게 이런 잔인한 말들을 내뱉어도 자신은 아무렇지 않을 줄 알았다. 필경 이 모든 일은 자기가 직접 계획을 세운 것이니까. 이런 결과 또한 성유리의 예상을 벗어나지 않았지만 그녀는 지금 가슴 한편이 아려왔고 바늘로 콕콕 찌르는 듯한 고통이 느껴졌다. 빠르게 뛰는 심장을 따라 아랫배에서도 살짝 고통이 느껴져 성유리는 손으로 배를 살살 어루만졌다. 그러자 아랫배는 성유리의 손길을 느꼈는지 천천히 진정되었고 뱃속 안에 있는 아이도 위로를 받은 듯 잠잠해졌다. 성유리는 고개를 푹 숙이고 앉아 있다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엄마라는 사람이 결국 이러고 있네. 넌 엄마를 원망하지 않을까?” 뱃속 아이는 당연하게도 성유리의 말에 대답할 리가 없었다. 성유리 또한 그 아이의 대답을 바란 적 없다. 왜냐하면 상황이 어떻게 변하든 그녀는 이런 선택을 했을 테고 변하지 않았을 테니까 말이다. 성유리는 몸을 일으켜 위층으로 향했다. 침실로 돌아가 닫혀있던 커튼을 열어본 성유리는 그제야 밖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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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5화

성유리가 다시 눈을 떴을 때, 밖은 이미 해가 떠 있는 상태였다. 내리던 눈은 이미 멈췄지만 방 안에는 여전히 성유리 홀로 남아있었다. 그녀는 박한빈이 오늘 자신을 찾아와 얘기를 나눌 줄 알았다. 성유리가 아는 박한빈이라는 사람은 이런 일을 질질 끌지는 않는 사람이기 때문이다. 일을 더 끌면 끌수록 박한빈은 견딜 수 없을 테니까. 하지만 성유리의 이번 추측은 제대로 빗나갔다. 그날, 박한빈은 집에 돌아오지 않았고 저녁쯤에 김서영이 전화를 걸어 교외에 있는 별장으로 오라는 말까지 했다. 성유리는 김서영의 의도를 몰랐지만 다음 날, 결국 그곳으로 향했다. 아마 생활환경이 바뀌어서일까? 김서영의 모습은 전보다 더 생기 있고 건강해 보였다. 게다가 늘 입고 있던 우아한 원피스와 액세서리가 아닌 편안 차림으로 머리까지 낮게 묶고 있는 김서영은 보기에 전보다 훨씬 더 젊어 보였다. 아니, 젊어진 게 아니라 생동해졌다. 성유리는 늘 김서영이 그림 속에 갇혀있는 여인인 줄 알았지만 편하게 있는 김서영을 보니 그림 속에서 걸어 나온 것 같았다. 그녀가 별장에 도착했을 때, 김서영은 정원에서 나무 한 그루를 심고 있었다. 누구의 도움도 없이 홀로 끙끙거리며 땅을 파고 있는 김서영을 보던 성유리가 다가가 도움을 주려 했다. 그제야 성유리를 발견한 김서영이 고개를 들더니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왔니?” “네.” “다른 사람이 선물로 준 망고 나문데 열매가 맺히면 그렇게 맛있다더라. 내년이면 열매가 맺힐지는 모르겠지만 일단 해보려고. 아, 맞다! 유리 너도 망고 좋아하지 않니?” 성유리는 스스로도 언제부터 망고를 즐겨 먹었는지 기억이 나지 않았다. 그러나 김서영의 말을 듣는 순간, 갑자기 박한빈이 전에 사줬던 망고 케이크가 떠올랐다. ‘케이크 좀 먹었다고 내가 망고를 좋아한다고 생각한 건가?’ 성유리는 애써 웃음을 지으며 물었다. “이 시간에 나무 심으면 안 되지 않나요?” “그렇지? 근데 누가 그러더라. 정성껏 나무를 심으면 시간이 늦어도 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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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6화

성유리는 대답 대신 천천히 고개를 돌려 옆에 있는 망고나무를 쳐다봤다. 그녀는 아직 열매가 나지 않았음에도 자신의 키보다 큰 나무가 몇 년 뒤에는 얼마나 장관일지를 상상하고 있었다. ‘아마 그때가 되면 난 이 나무를 못 보겠지?’ 성유리는 김서영에게 자기 생각을 솔직하게 알려주었고 김서영은 안색이 굳어진 채로 조심스레 물었다. “정말... 다시 잘 될 확률은 없니?” “네.” “근데 난 네가 떠날 것 같지 않구나.” 김서영이 계속 말했다. “사실 전에 너한테 가라고 했을 때가 제일 좋은 기회였어.” 성유리가 그녀의 말에 미간을 찌푸린 채 무슨 대답을 하려는 찰나, 김서영이 먼저 입을 열었다. “한빈이는 내 아들이야. 나는 누구보다 더 걔를 잘 알아.” “지금 너희 둘 사이가 나쁘다 해도 한빈이는 너한테 집착할 거야. 절대 유리 너를 떠나게 하지 않을 거고.” 성유리는 미간을 찌푸리고 있을 뿐이었다. “설령 너희 둘 사이에 원한과 원망의 감정만 남아있다고 해도 말이다.” 김서영은 하려던 말들을 다 내뱉었지만 성유리는 그녀의 말을 믿으려 하지 않았다. 필경 어젯밤 박한빈의 마음에 상처를 줄 수 있는 심한 말을 다 했기 때문에. 상황이 아무리 변한다고 하더라도 절대 다시 만날 수는 없을 것 같았다. 하지만 김서영의 말은 다 사실이었고 아니나 다를까, 박한빈은 다음 날 저녁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집으로 돌아왔다. 심지어는 손에 케이크 하나를 든 채로 말이다. 성유리는 그 자리에 가만히 앉아 인상을 찌푸리고 박한빈을 쳐다만 보았다. 박한빈은 성유리의 감정을 알아차린 듯 고개를 휙 돌려 성유리를 똑바로 쳐다보며 먼저 말했다. “네가 그랬잖아. 내가 받아들일 수만 있다면 우린 평소대로 살 수 있다고.” “그럼 계속 살던 대로 살자. 우리 둘의 결혼인 이미 한번 실패로 끝을 봤는데 한 번 더 실패하면... 금성에 있는 사람들 입에 우스운 이야깃거리로 남을 테니까.” “서로 상처 주고 상처받는 관계라고 해도 같이 살아가자고.” 박한빈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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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7화

“맞아. 하지만 이게 투자라고? 이건 분명 덫이야! 진무열이 일부러 나를 함정에 빠뜨린 거라고!” “오, 그렇다면 경찰에 신고하시라고 권해드리고 싶네요.” 박한빈의 말이 끝나자 성시원의 표정에서 서서히 굳어갔다.“만약 신고를 하신다면 제가 증거 몇 가지를 제공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박한빈은 아무렇지 않게 말을 이어가며 미리 준비해 둔 서류를 성시원에게 건넸다. 성시원의 안색은 점점 어두워졌고 분노가 치밀어 오르는지 주먹을 꽉 쥐었다. “그러니까 결국 너는 다 알고 있었단 말이지? 모든 걸 알고도 내가 이 함정에 빠지는 걸 뻔히 지켜본 거야? 딱 오늘을 위해서?” 박한빈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 침묵이 모든 걸 대변하고 있었다. 성시원은 벌떡 일어나 그의 멱살을 거칠게 잡으며 물었다. “너 미쳤어? 나한테 이렇게 해서 네가 얻는 게 뭐야? 내가 너를 얼마나 믿었는데! 심지어 성유리를 너한테 시집보내기까지 했다고!” 박한빈은 자신의 멱살을 잡고 있는 성시원의 손을 내려다보며 차분히 대답했다. “지금 저한테 화내셔도 소용없습니다. 돈은 이미 날아갔고 당신이 제 사무실을 부순다고 해도 그 돈은 돌아오지 않아요.” “하지만 제 말대로만 하신다면 제가 도와드릴 방법을 고려해 볼 수 있습니다. 다시 일어설 기회를 드리는 거죠.” 성시원이 박한빈의 말에 눈살을 찌푸렸다. 박한빈은 침착하게 다시 말을 이었다.“제가 천성에 배 공장 하나를 가지고 있습니다. 관심이 있으시다면 그걸 넘겨드릴 수 있어요. 이후에 꾸준히 자원을 제공해 드릴 수도 있습니다. 비록 회장님이 원하던 상업적 높이에는 못 미칠지 몰라도 적어도 실업자는 되지 않게 해드리죠.” 성시원은 말없이 그의 말을 듣고 있었지만 끝내 붙잡고 있던 손을 서서히 놓았다. 그의 주먹은 여전히 꽉 쥐어있었지만 목소리는 점차 진정이 되는 듯 가라앉았다. “그래서 내가 뭘 하면 되는데?” 박한빈은 고개를 숙이며 말을 꺼냈다. “이번 일이 진무열이 혼자 한 짓일 리가 없죠. 성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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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8화

성유리의 웨딩드레스는 맞춤 제작된 것이었다. 들리는 바에 따르면 해외 최정상급 디자이너를 초청해 손수 바느질로 완성된 작품이었다. 그녀가 현재 임신 중이라는 점을 고려해 디자이너는 드레스 허리 부분에 조절 가능한 끈을 추가해 체형에 맞게 조정할 수 있도록 했다. 드레스의 치맛자락에는 다이아몬드가 박혀 있어 조명 아래에서 마치 밤하늘의 반짝이는 별들처럼 빛나고 있었다. 성유리는 마음이 이미 메말라 있는 상태였지만 거울 속에 비친 자신을 본 순간 잠시 멍해졌다. 사진 촬영 외에 웨딩드레스를 입는 것은 이번이 두 번째였고 성유리가 결혼하는 상대마저 같은 남자였다. 첫 번째로 박한빈에게 다가갔던 날, 성유리의 마음은 기대와 설렘으로 가득 차 있었다. 그녀의 눈에 그는 마치 하늘의 밝은 달빛 같았다. 가까이 다가가고 싶었지만 두려움에 그저 멀리서 바라보며 자신의 감정과 갈망을 숨기기만 했다. 그 감정은 어린 시절 먹고 싶지만 차마 말하지 못했던 솜사탕을 조심스레 숨기는 마음과 비슷했다. 하지만 박한빈과의 결혼 생활 속에서 그녀의 감정은 모두 소진되어 갔다. 그래서 그녀는 그와의 관계가 그때 끝났을 거라고 생각했다. 결혼 생활 동안 성유리는 그를 향해 한 걸음씩 다가가고 있었지만 박한빈은 그녀에게 거의 아무런 반응도 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래서 그녀는 자신이 멈추기만 하면 모든 게 끝날 거라고 믿었다. 하지만 지금, 상황은 전혀 다르게 흘러가고 있었다.“사모님, 신랑분이 오셨습니다.” 갑자기 옆에서 들려온 목소리에 성유리는 정신을 차렸고 아무 말 없이 몸을 돌려 침대에 앉았다. 그들 둘 다 들러리 없이 식을 올리기로 했기 때문에 오늘은 문을 두드리는 것과 같은 장난스러운 절차도 없었다. 박한빈은 방으로 들어오자마자 한쪽 무릎을 꿇고 성유리에게 신발을 신겨주었다. 성유리의 손에는 그가 건넨 부케가 들려 있었는데 연분홍빛 장미에는 투명한 이슬이 맺혀 있어 하나하나가 눈부시게 아름다웠다. 성유리는 부케를 가만히 바라보다가 눈앞에서 무릎 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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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19화

성유리는 인간이 아닌 나무로 만든 인형의 손에 이끌려 앞으로 걸어가는 듯한 느낌이 들었다. 오늘 결혼식이 두 사람의 예상대로 평화롭고 순조롭게 진행되겠다고 생각하고 있는 찰나, 그들 앞으로 누군가의 그림자가 드리워졌다. 그 실루엣은 무척이나 야위었지만 그 안에는 광기 어린 집착이 서려 있었다. 거의 본능적으로 성유리는 그 사람이 달려드는 순간 가장 먼저 자신의 배를 감싸안았고 커다란 공포가 한순간에 성유리를 집어삼켰다. 그 순간, 머릿속을 스쳐 지나간 것은 지난번 성유정과 계단에 서 있었던 장면이었다. 그때 성유정은 손을 뻗어 자신을 계단 아래로 밀어버렸고 그 순간에도 성유정의 입가에는 지금과 똑같은 광적인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이번엔 예상했던 고통이 찾아오지 않았다. 성유리는 눈을 천천히 떴고 그제야 성유정이 이미 현장의 경호원들에게 제압당해 바닥에 눌려 있는 것을 보았다. “놔! 박한빈, 내가 널 얼마나 증오하는지 알아? 그리고 너 성유리! 네가 원흉이야! 다 너 때문이야!” “왜 돌아온 거야? 이건 원래 다 내 것이었어! 다 내 거라고! 왜 죽지 않았어? 왜 거기서 사라지지 않았냐고?!” “너 같은 건 죽어야 해! 너희 모두 다 죽어야 한다고!” 성유정은 계속해서 저주를 퍼부었지만 성유리는 그녀가 무슨 말을 했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았다. 그녀는 그저 자신이 다치지 않은 것에 안도감을 느끼고 있을 뿐이었다. 그러나 곧이어 사람들의 비명이 들려왔고 인파 속에서 누군가가 의사를 불러오라고 외쳤다.‘의사를? 왜?’ 성유리는 의사를 왜 불러야 하는지 알아차리지 못했었다. 그러다 시선을 돌린 그녀는 성유정의 손에 꽉 쥐어져 있는 과일칼을 발견했다. 그 칼에는 누군가의 선명한 피가 묻어 있었다. ‘저 피는 누구 꺼지?’ 성유리는 느리게 돌아가는 사고 속에서 한참이 지나고 나서야 상황을 이해할 수 있었다. 몸을 굳은 상태로 서서히 고개를 돌리자 박한빈의 하얀 정장이 이미 빨간 피로 물들어 있는 것을 발견했다. 박한빈이 그녀를 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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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20화

박한빈이 눈을 떴을 때, 그는 병원 침대에 누워 있었다. 그는 몇 번이나 눈을 깜빡였고 의식이 서서히 돌아오자 갑자기 무언가가 떠오른 듯 몸을 벌떡 일으키려 했다. 그러나 상처 부위가 다시 찢어지는 듯한 통증이 몰려오며 그의 안색은 더욱 창백해졌다. 하지만 박한빈은 통증을 아랑곳하지 않고 몸을 돌리며 누군가를 찾으려 했다. “대표님!” 서훈이 제일 먼저 박한빈의 움직임을 발견하고는 다급히 달려와 그를 강제로 눕혔다. “지금 움직이시면 안 됩니다! 상처가 벌어질 수도 있어요!” 그러나 박한빈은 서훈의 제지에도 아랑곳하지 않고 그의 손을 꽉 잡더니 물었다. “성유리는 어디 있습니까? 다친 데는 없나요?” “걱정하지 마십시오. 사모님은 아무 이상 없으십니다.” 서훈이 서둘러 대답하자 박한빈은 긴 한숨을 내쉬며 안도했다. 그러나 곧 박한빈은 미간을 찌푸리며 창밖을 바라보았고 그의 눈빛은 명확한 의미를 담고 있었다. 서훈은 그제야 박한빈의 의도를 깨달은 듯 서둘러 말을 이어갔다. “대표님, 사실 어제 하루 종일 사모님께서는 계속 병원에 계셨습니다. 다만 제가 너무 피곤해 보이셔서 쉬시라고 설득해 보냈을 뿐입니다.” 그의 설명은 타당해 보였지만 박한빈은 미소를 살짝 지으며 짧게 물었다. “그래요?” 박한빈의 물음에는 서훈의 말을 믿지 못하겠다는 의심이 담겨 있었다. 그는 알고 있었다. 성유리가 자신을 얼마나 증오하는지를. 결혼식 날조차 성유리는 박한빈에게 미소 한 번 지어주지 않았다. 만약 성유정이 난입하지 않았더라도 그는 그날 결혼식이 무사히 끝날 수 있을지 의심하고 있었다. 혹은 만약 성유정이 아닌 다른 누군가가 난입했다면 성유리가 그를 따라가 버리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도 했다.  하지만 이제는 그런 걱정을 할 필요가 없었다. “정말입니다. 대표님.” 서훈은 박한빈의 눈 속에 서려 있는 냉랭한 감정을 알아보았고 이내 서둘러 말을 덧붙였다.“게다가 사모님께서 대표님이 깨어나시면 바로 연락 달라고 하셨습니다. 지금 바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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