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ll Chapters of 사라진 10년과 흔들리는 인연: Chapter 431 - Chapter 44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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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1화

“너무 걱정하진 마세요. 평생 당신과 함께할 거니까.” 연정우가 낮은 목소리로 말하자 유효정은 그의 말 속에 숨은 의도가 궁금해졌다. ‘이건 약속인가? 약속이겠지?’ 유효정은 연정우의 맞은편에 서 있었지만 그녀는 그의 말이 믿기지 않아 입이 살짝 벌어진 채로 멍하니 연정우를 바라봤다. “어쨌든 저희는 결혼할 겁니다. 그리고... 함께 늙어가겠죠. 이건 제가 당신 아버지에게 한 약속이기도 하니 반드시 지킬 거예요.” “저는 정말 급한 일이 있어서 먼저 가봐야 됩니다. 유효정 씨는 더 있고 싶으면 계속 돌아다녀도 되니 저희는 저녁에 봅시다.” 말을 마친 연정우는 곧바로 앞으로 뚜벅뚜벅 걸어갔는데 유효정은 더 이상 그를 막지 않았다. 그녀는 마치 얼어붙은 것처럼 그 자리에 굳어버려 한 발짝도 움직일 수 없었다. ‘그렇구나. 역시 나랑 하는 약속이었어.’  그렇지만 유효정은 그 약속이 자신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녀의 아버지를 위한 거였을 뿐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니, 약속이라기보다는 조건이었다. 그녀의 아버지와 교환한 조건 말이다. 연정우는 평생 그녀와 함께할 거라고 말했지만 그다음은 어떻게 될지 유효정은 확신이 서지 않았다. 그저 평생 함께하기만 하겠다는 말이었지 자신을 사랑할 수는 없다는 뜻인지 아니면 다른 의도가 있는 것인지 모르는 유효정은 할 말을 잃었고 가슴 깊은 곳에서부터 칼로 찌르는 듯한 고통이 밀려왔다. 그러나 이내 유효정의 머릿속에 누군가의 이름이 떠올랐다. 그 이름은 바로 성유리였다. 연정우가 왜 그런 반응을 보였을지에 대한 이유가 전부 다 성유리 때문이라는 확신이 든 유효정이 화가 나 주먹을 꽉 쥐었다. ‘그래. 맞아. 전부 다 저 여자 때문이야!’ ... 성유리는 곧 도연제로 돌아갔다. 비록 백화점에서 잔뜩 물건을 사긴 했지만 전부 일상용품이었고 생일 선물로 주기엔 너무 성의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래서 집에 돌아온 뒤, 성유리는 인터넷에서 박한빈을 위한 다른 선물을 찾아보기 시작했다. 너무 몰두한 탓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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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2화

“뭔데?” 박한빈은 궁금한 듯 물었지만 성유리는 그가 유효정이 한 말에 호기심을 가진 게 아니라 연정우라는 사람이 자리에 있었기에 그것을 신경 쓰고 있다는 것을 알았다. 그의 기분이 좋든 나쁘든 성유리는 아랑곳하지 않으며 말을 이어갔다. “다른 여자랑 호텔 들어가는 걸 봤다고 알려주던데요?” “뭐라고 했다고?” 박한빈은 자신이 방금 들은 말을 의심하는 듯한 표정으로 물었고 하던 행동마저 멈췄다. 하지만 성유리는 또박또박 정확한 발음으로 방금 했던 말을 다시 한 번 반복했다. “걔 정말 미친 거 아닌가?” 박한빈은 무표정한 얼굴로 성유리에게 대답했고 예상치 못한 그의 반응에 성유리가 잠시 멈칫하더니 이내 피식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박한빈의 표정은 여전히 심각했고 미간마저 살짝 찌푸려져 있었다. “그럼 그냥 헛소리하셨다고 생각하세요.” 성유리가 박한빈을 똑바로 쳐다보며 말했다. “그 말을 한 게 유효정이야 아니면 연정우야?” 박한빈의 물음에 성유리는 다소 불쾌해졌고 불만이 가득한지 인상도 일그러졌다. “아까 분명히 유효정 씨라고 했잖아요.” “하하.” 박한빈은 성유리의 대답에 씁쓸한 미소를 지었지만 그의 반응은 분명 그녀의 말을 진지하게 듣고 있지 않는 듯했다. 이미 박한빈은 머릿속에서 이 모든 책임을 다 연정우에게 돌린 것 같았다. 그래서 성유리 또한 더 이상 말을 이어가지 않았다. 어차피 말을 하면 할수록 그는 더 많은 것을 상상할 테니 차라리 침묵하기로 했다. 박한빈이 계속 옷을 갈아입으려는 것을 본 성유리는 그대로 몸을 돌려 방을 나가려 했는데 갑자기 박한빈이 그녀의 손목을 붙잡으며 물었다. “그래서? 넌 진짜 그걸 믿은 거야?” 그는 미간을 찌푸린 채 성유리를 똑바로 바라보고 있었고 그녀는 그의 눈을 잠시 마주 보더니 오히려 당당하게 되물었다. “당신 생각은 어떤 데요?” 박한빈은 입술을 꼭 다물고는 아무 대답도 하지 않았다. 그는 성유리가 자신을 믿는다고 말해주길 바랐지만 그녀가 무심하게 상관이 없다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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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3화

그 순간, 울리는 박한빈의 휴대폰 벨 소리가 방 안의 평화가 깨버렸다. 그는 애초에 전화를 받을 생각이 없었지만 오늘 중요한 식사 자리가 있다는 사실이 떠올랐다.  박한빈은 깊게 숨을 들이쉰 후, 결국 몸을 일으켜 울리는 전화를 받았다. 전화기 너머에서 그 사람이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그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고 마지막엔 낮은 목소리로 알겠다는 말을 남긴 뒤에 바로 전화를 끊었다. 통화를 끝낸 박한빈은 성유리를 지그시 바라보며 말했다. “나 이제 그만 가봐야겠어.” “네.” 성유리는 무척 담담한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는데 마치 방금 전의 따뜻한 순간은 전혀 없었던 것처럼 행동했다. 하지만 박한빈은 그냥 지나칠 생각이 없었다. 그는 성유리의 허리를 감싸안더니 그녀의 입술에 키스를 했고 이번 키스는 평소와는 달리 부드럽지만 깊고 따뜻했다. 온몸을 따뜻하게 감싸는 느낌이 든 성유리는 몸에 힘이 풀려 손으로 그의 셔츠를 꽉 잡았다. 두 사람 다 호흡이 가빠지고 얼굴이 붉게 달아오르기 시작했을 때가 돼서야 박한빈은 천천히 그녀를 놓아주었다. 하지만 여전히 박한빈은 성유리의 얼굴을 감싸 쥔 채로 손끝으로 그녀의 입술을 스치며 남은 흔적을 지웠다. “이제 갈게.” 박한빈은 말을 하며 고개를 숙여 성유리의 손을 쳐다봤다. 성유리는 그제야 자신이 여전히 그의 셔츠를 꼭 잡고 있다는 걸 깨달았고 순간 귀 끝까지 빨개져 손을 급히 뗐다. 박한빈은 더욱 환하게 웃으며 손을 뻗어 성유리의 머리를 한 번 쓰다듬어주며 말했다. “저녁에 나 기다리지 말고 푹 쉬어.” “알았어요.” 성유리는 대답하며 박한빈의 시선은 피하며 다른 곳으로 고개를 돌렸다. 그는 그녀의 행동에 개의치 않아 하며 성유리를 한 번 더 가볍게 안아준 뒤 외투를 걸치고 집을 나섰다. 실외는 실내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추운 날씨였다. 평소 추위를 잘 타지 않는 박한빈도 밖에 나서자마자 너무 추워 몇 번이고 헛기침을 했다. 순간 실내의 온기가 그리워진 박한빈은 무의식적으로 뒤돌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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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4화

자리에 참석한 사람들은 거의 다 지화 그룹의 대주주들이었다. 박세빈은 이미 사직한 상태지만 그래도 손에 주식을 들고 있으니 당연하게도 자리에 앉아 있었다. 박한빈을 발견한 박세빈은 환하게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형! 오셨어요?” “자. 다들 오셨으니 제가 소개해 드릴게요. 여긴 제 여자 친구인 최정민이라고 합니다.” 박한빈은 자리에 앉아 있는 최정민을 잠시 쳐다보더니 아무런 감정도 없는 얼굴로 알겠다는 말을 했다. 그리고는 그들을 지나쳐 다른 사람들과 대화를 나누기 시작했다. 박세빈은 별로 신경 쓰지 않는 듯 스스로 술을 한 잔 따라 최정민 옆에 앉았다. “난 형이 형수님을 데리고 올 줄 알았는데,” 박세빈이 고개를 돌려 최정민에게 물었다. “아직 형수님 못 보셨죠?” 최정민은 입술을 살짝 깨물고 조용히 대답했다.“봤어요.” “그래요?” 박세빈은 조금 의아해하다가 이내 뭔가 생각난 듯 말했다. “아, 생각났다. 예전에 병원에서 일했었잖아요. 아마 거기서 본 거겠죠?” “형수님 임신하셨잖아요. 형은 거의 매번 산부인과 검진 때 따라간다던데요?” “솔직히 우리 형 정도의 위치에서 이 정도까지 하는 건 정말 대단한 거죠. 우리 주변 사람들 봤으면 알 거예요. 외모도 별로고 돈도 얼마 없으면서 바깥에서 엉망진창으로 노는 사람들이 얼마나 많은데.” 최정민은 왜 박세빈이 이런 말을 자신에게 하는지 알 수 없었다. 그래서 도대체 무슨 대답을 해야 할지도 몰라 고개만 숙인 채 무기력하게 고개만 끄덕였다. 박세빈은 처음엔 흥분해서 말하던 중이었고 입가엔 미소가 가득했다. 하지만 최정민의 무덤덤한 반응에 그의 표정 또한 이내 사라져 버렸다. “지금 무슨 뜻입니까? 제가 하는 얘기 듣기 싫다는 건가요?” “그게 아니라...” 최정민이 대답을 끝내기도 전에 박세빈은 그녀의 허리를 거칠게 감싸안았다. “그런 표정 짓고 있는 건 누구 보라고 그러는 겁니까? 당신 혹시 제가 가진 게 뭔지 잊은 건가요?” 그 말에 최정민의 눈동자가 살짝 흔들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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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5화

최정민이 용기를 내 다가가 박한빈을 한번 불렀지만 그는 그녀의 목소리를 전혀 듣지 못한 듯했다. 최정민은 입술을 살짝 깨물며 다시 한번 박한빈을 불렀다. “박 대표님!” 이번에는 자신을 부르는 소리를 들었는지 박한빈이 곧바로 고개를 돌렸고 그녀를 본 순간 그는 미간을 잔뜩 찌푸렸다. 전화기 너머에서는 누군가 박한빈에게 장난스레 물었다. “여자 목소리를 들은 것 같은데? 결국 너도 네 허리춤을 못 지킨 거야?” 박한빈은 대답하지 않고 전화를 끊은 뒤 최정민을 쳐다봤다. “무슨 일이야?” 최정민의 목소리는 쉰 듯했고 눈은 이미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부탁드릴게요. 저 좀 도와주실 수 없나요?” “저는... 저는 제 의지로 박세빈 씨와 만나는 게 아니에요. 지난번에 그가 저를 취하게 만든 뒤 호텔로 데려가서 입에 못 담을 그런 사진들을 찍었어요.” “정말 무서워요. 박 대표님, 제발 도와주세요. 부탁드릴게요.” 최정민은 말하며 속이 많이 상했는지 눈물을 흘렸고 그 눈물들은 얼굴을 타고 목으로까지 흘러내렸다. 하지만 박한빈은 움직이지 않은 채 그저 가만히 그녀를 바라볼 뿐이었다. “부모님께는 말할 용기도 없어요. 박 대표님 말고는 이 일을 털어놓을 사람이 없어요. 제발... 부탁드릴게요.” 그녀는 말을 마치며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섰지만 박한빈은 빠르게 두 걸음 뒤로 물러나며 그녀와의 거리를 벌렸고 동시에 그의 표정은 더욱 굳어졌다. 최정민은 그의 반응을 알아채고는 곧바로 다가가려던 발걸음을 멈췄다. “저는 그런 의도가 아니에요. 정말 어쩔 수가 없어서 그래요.” “내가 박세빈이랑 얘기해 볼게.” 박한빈의 말에 최정민의 눈빛이 즉시 반짝였다. “정말?” “응.”“고마워! 아니, 정말 감사합니다!” 최정민은 잔뜩 기뻐하며 환하게 웃었다. 그녀는 순간 그의 손을 잡으려다 다시 생각난 듯 멈췄고 결국 허공에 붕 뜬 손을 가만히 내렸다. 최정민은 다시 한번 박한빈을 향해 미소를 지었지만 박한빈은 아무 말 없이 그녀를 지나쳐 걸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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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6화

“이게 바로 남편을 위해 준비한 선물인가요?” 갑작스레 들려온 목소리에 성유리는 깜짝 놀라 만들던 도자기 반죽을 망칠 뻔했고 하마터면 소리까지 지를 뻔했다. “쯧, 명색이 지화 그룹 총대푠데 고작 이런 선물로 만족하시겠어요?” 사하나는 성유리의 반응을 본 체도 안 하며 그녀 옆에 자리를 잡고 앉았다. “그냥 만들면서 놀아보는 거야.” 성유리는 또다시 하던 일에 집중하며 대답했다. 입을 삐죽거리고 있는 사하나를 발견한 성유리가 그녀에게 먼저 말을 걸었다. “요즘 많이 바쁘다고 하지 않았어? 오늘 시간이 있었나 보네?” “제가 하는 일이 다 거기서 거기죠. 매일같이 각종 식사 자리나 파티에 참석해야 해서 바빴어요. 아빠가 가라고 저를 몰아붙이지 않았으면 전 가지도 않았을 거고요.” 사하나는 의자 등받이에 편하게 몸을 기대앉으며 대답했고 성유리는 그저 옅은 미소만 지었다. 성유리는 원래부터 말을 많이 하는 성격이 아닌지라 별로 말을 하지 않아도 이상하지는 않았지만 오늘따라 사하나는 유달리 말이 적었다. 뭔가 이상한 낌새를 눈치챈 성유리가 고개를 돌렸을 때, 사하나는 이미 멍한 눈빛으로 성유리를 보고 있었다.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 거지?’ “나한테 할 말 있는 거 아니야?” 성유리가 물었다. 그녀의 목소리에 사하나는 흠칫하더니 고개를 절레절레 저으며 대답했다. “아니요. 제가 무슨 할 말이 있겠어요.” 성유리는 사하나의 대답에 미간을 찌푸렸다. “그... 요즘 박 대표님을 너무 오래 못 본 것 같은데요?” 사하나는 빠르게 화제를 돌리며 성유리에게 박한빈에 대해 물었다. “요새 박 대표님 많이 바쁘신가요?” “응. 바쁘지.” 성유리는 만들던 반죽에 심혈을 기울이고 있었고 사하나는 그런 그녀에게 계속 질문을 퍼부었다. “요즘 뭐 하시는지 물어도 안 보셨어요?” 성유리는 사하나의 의미심장한 물음에 살짝 미간을 찌푸리며 되물었다. “왜? 요즘 그 사람한테 무슨 일 생겼어?” 사하나는 아무런 대답이 없었다. 성유리가 사하나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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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7화

사실 성유리는 오늘 다른 컵을 더 만들고 싶어 색깔까지 다 조합했지만 사하나의 말에 집중을 못 해 다 포기해 버렸다. 하지만 딱히 상관은 없다. 왜냐하면 박한빈의 생일날 줄 선물은 이미 손에 넣었으니 말이다. 사하나는 요 며칠 지루한 일상에 질렸는지 밥을 다 먹고 나서는 성유리를 끌고 술집으로 가려고 했다. 그러나 결국 성유리가 임산부라는 사실을 고려하고는 주변 백화점 안에 있는 오락실로 향했다. 성유리는 임정우와 마지막으로 오락실에 온 게 기억이 났지만 너무 오랫동안 그를 보지 않은 것 같아 마음이 이상했다. 마치 바람과 같이 사라진 사람처럼 임정우는 성유리의 세상 속에서 사라져 버렸다. 그제야 성유리는 사실 자신이 살고 있는 이 도시가 많이 크다는 사실을 깨달은 것 같았다. 어찌나 큰지 마주치고 싶지 않은 사람을 영원히 보지 않아도 될 정도였다. 그날 밤, 박한빈은 또 늦은 시간에 집에 돌아왔다. 성유리는 애초에 잠에 들지 않았던 상태라 박한빈 차의 엔진소리를 듣고는 바로 침대에서 몸을 일으켰다. 평소대로라면 박한빈은 성유리가 있는 방을 꼭 들어왔었다. 성유리가 잠에 들었든 안 들었든 박한빈은 그녀를 깨우고 몇 마디 나누고는 자기 방으로 돌아갔다. 성유리는 이미 습관이 됐는지 항상 저녁마다 박한빈이 오기를 기다렸다. 하지만 오늘, 웬일인지 시간이 아무리 지나도 박한빈은 문을 열고 들어오지를 않았다. 잠깐 고민하던 성유리는 침대에서 내려와 그가 있는 방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그 시각 박한빈은 이미 욕실에서 씻고 있었고 흘러내리는 물줄기 소리에 성유리는 멈칫했다. 그러나 이내 그녀의 시선은 박한빈이 벗어놓은 외투로 향했고 그 외투에는 평소 못 보던 여자의 긴 머리카락이 있었다. 진한 갈색빛에 노란 기가 섞어져 있는 머리카락이었는데 성유리는 한 번도 염색을 한 적이 없었다. 게다가 박한빈의 옆을 따라다니는 비서마저도 이젠 남자이기에 이 머리카락의 주인이 누구인지 성유리는 몰랐다. 성유리의 머릿속에는 문득 오늘 사하나가 했던 말들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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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8화

“모레? 왜 그래?” “괜찮아요. 바쁘시면 됐어요.” 말을 마친 성유리는 몸을 돌려 떠나려 했지만 박한빈은 재빨리 그녀의 손을 잡더니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그래도 그날 무슨 일이 있는지 말해줘야 내가 시간을 조정하지.” “아무 일도 아니에요. 시간이 없으시면 그냥 지나가죠 뭐.” 성유리는 목소리까지 한층 냉랭해진 채로 대답했고 그녀가 돌아서자마자 박한빈은 뒤에서 팔을 뻗어 그녀를 꽉 안았다. “난 네가 잊은 줄 알았네.” 그는 환하게 웃으며 말을 이어갔다. “걱정 마. 네가 기억하지 않아도 나는 기억하고 있으니까.” “그래서 이번엔 무슨 생일 선물을 준비했는데?” “시간도 없다면서 생일은 무슨 생일이에요?” 성유리는 무표정하게 대답했다. 박한빈의 입가에는 더 짙은 미소가 번졌고 그는 손으로 성유리의 뺨을 가볍게 쓰다듬었다. “그건 장난친 거야. 요즘 정신없이 바쁜 것도 다 이날 시간을 비우려고 그런 거라니까.” “그럼 그날 바다 한번 가볼까?” “이런 날씨에 바다요?” 성유리는 박한빈의 말에 인상을 찌푸렸다. “그럼 온천은? 내가 호텔 예약하라고 할게.” 성유리는 여전히 말이 없었고 별다른 흥미를 보이지도 않았다. “별로 가고 싶지 않다면 네가 하고 싶은 게 뭔지 말해줘.” 박한빈은 인내심 있게 물었다. 성유리가 대답하려는 찰나, 그의 휴대전화가 울리기 시작했고 그는 즉시 고개를 돌렸다. 그녀는 일부러 박한빈의 핸드폰을 보려던 것은 아니었지만 고개를 돌리는 순간, 휴대전화 화면에 떠 있는 이름을 보게 됐다. 최정민. 예전에 박한빈의 휴대전화에서 이 번호를 본 기억이 있다. 그때는 이름 없이 저장된 번호였는데 지금은 분명한 이름으로 바뀌어 있었다. 성유리는 발신자로 표시된 최정민의 이름을 보고는 하려던 말을 꾹 삼켰다. 수화기 너머에서 무슨 말을 했는지 모르겠지만 박한빈의 미간은 더욱더 세게 찌푸려졌다. “알았어.” 그는 단 한마디만 남기고 전화를 끊었다. 그 후 성유리 쪽으로 돌아선 그의 표정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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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39화

성유리의 눈을 마주 보게 된 순간, 최정민은 말을 잇기가 어려워졌다. “최정민 씨?” 성유리가 다시 물었다. 그제야 최정민은 정신을 차린 듯 고개를 들고 성유리를 바라봤다. 잠시 시선을 떼지 못하던 최정민이 조심스럽게 입을 열었다. “저... 박 대표님과 관련된 일로 왔습니다.” 성유리는 아무 말도 하지 않았고 최정민은 깊게 숨을 들이마시고 계속 말했다. “당신들이 이미 결혼했다는 것도 알고 있습니다. 그리고 제가 이런 행동을 하는 게 옳지 않다는 것도 알아요. 하지만 저도 정말 방법이 없어요. 어떻게 해야 할지 모르겠어서... 그래서 이렇게 찾아왔어요.” “죄송합니다. 사모님. 혹시 박 대표님을 저에게 양보해 주실 수 있나요?” 그 말을 마친 최정민은 죄책감 탓인지 고개를 푹 떨궜다. 그녀의 몸은 미세하게 떨리고 있었고 동공조차 흔들리고 있었다. 고개를 숙이고 있는 그녀의 눈에서는 이미 눈물이 줄줄 흘러내리고 있었다. 성유리는 그런 그녀를 잠시 쳐다보다 물었다. “임신했나요?” “아니에요!” 그 질문에 최정민은 당황한 듯 멈칫하더니 고개를 연신 절레절레 저었다. “저... 저희가 만난 지 사실 고작 2주밖에 안 됐어요. 임신일 리가 없잖아요?” 성유리는 다시 침묵했다. “하지만 저희 정말로 사귀고 있어요. 믿기 힘드시면 제가 사진도 보여드릴게요.” 말을 하며 그녀는 휴대전화를 꺼내 들었고 곧바로 화면에 두 사람이 찍은 사진이 보였다. 단 한 번 쳐다보았을 뿐인데도 성유리는 온몸이 얼어붙는 듯한 한기를 느꼈다. 천천히 고개를 들어 최정민을 쳐다보던 성유리가 말했다. “우리가 결혼한 것도 알고 제가 임신 중이라는 것도 알면서 어떻게 저에게 그런 걸 요구할 수 있나요?” 최정민은 나지막한 소리로 그녀의 말에 대답했다.“왜냐하면 당신은 진실되지 않는 남편을 곁에 두지 않을 분이니까요.” 그녀는 담담하게 계속 말했다. “전에 당신이 초음파 검사를 받을 때도 제가 직접 봤거든요.” “그때 당신과 박 대표님은 아직 화해하지 않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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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440화

비록 어젯밤 성유리가 박한빔의 제안을 받아들이지 않았지만 박한빈은 이미 온천 호텔을 예약해 두었다. 내일 시간을 여유롭게 쓰기 위해 오늘 일찍 도연제로 돌아온 그는 그날 밤 먼저 성유리와 함께 가려고 했다. 하지만 별장에 도착했을 때, 평소와 달리 집안은 어두컴컴했다. 얼마 전 성유리가 집에 다른 사람이 있는 걸 좋아하지 않는다고 해서 박한빈은 집안일을 담당하는 사람들에게 정해진 시간에만 청소하러 오라고 했다. 그래서 대부분의 시간 이 집에는 성유리 혼자뿐이었다. 지금 그녀가 없으니 집 안은 더욱 어두워 보였고 차가운 정적만이 맴돌았다. 그 분위기에 박한빈의 미간이 깊게 찌푸려졌고 이 늦은 시간에 그녀는 어디로 간 건지 궁금했다. 그래서 박한빈은 곧바로 그녀에게 전화를 걸었지만 전원이 꺼져 있다는 차가운 음성 안내만 들려왔다. 그는 한층 더 굳어진 얼굴로 바로 가사도우미에게 전화를 걸었다. “오늘 성유리가 어디 갔는지 알고 있습니까?” “아니요. 오늘 저희가 왔을 때는 이미 집에 안 계셨어요. 요즘 도자기 수업을 계속 듣고 계셨는데 혹시 거기에 계신 거 아닐까요?” ‘도자기 수업?’ 박한빈은 싸늘하게 식은 얼굴을 하고 말했다.  “그 수업 어디에서 하죠? 주소 좀 주십시오.” 가사도우미에게서 주소를 받은 박한빈은 곧바로 도자기 학원으로 향했고 그곳의 불은 켜져 있었지만 안을 둘러봐도 성유리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박한빈은 잔뜩 불안해하며 안색이 더 어두워졌다. “무엇을 도와드릴까요?” 곧 학원 직원이 다가오며 그에게 조심스럽게 물었다. “성유리 씨 여기 있습니까?” “성유리 씨요?” 직원이 잠시 당황하더니 대답했다.“오늘 수업 예약은 하셨는데 갑자기 일이 생겼다며 못 오신다고 하셨어요. 혹시 남편분이신가요?” 박한빈은 직원의 말에 아무런 대답도 하지 않고 학원을 나섰다. 그녀가 이곳에 없다는 사실만으로도 그의 발걸음은 한층 더 무거워졌다. 밖으로 나왔지만 그는 어디로 가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그녀가 어디에 있을지 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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