봄에 전장의 꽃이 피어난다의 모든 챕터: 챕터 601 - 챕터 610

1282 챕터

제601화

출가 전에 머물던 방으로 돌아온 왕청여는 최 씨가 방씨 가문으로 갔다는 사실을 몰랐기에, 그저 어머니와 함께 그녀를 어떻게 도울지에 대해 의논하고 있다고 생각했다.왕청여는 어머니께서 불같이 화를 내셔도 장군부에서 계속 지내도록 하지는 않을 것이라고 믿었다. 장군부는 그야말로 지옥이었고 유월과 오월이 죽어가던 곳이기도 했으니 말이다.게다가 방시원을 금쪽같이 생각했던 어머니기에 왕청여와 다시 만난다면 분명 기뻐할 것이다.왕청여는 그곳에 잠시 머물다 어머니의 상태가 괜찮아졌다는 말에 급히 장군부로 돌아갔다. 아니면 형수에게 혼날 게 뻔했다.그녀는 엄숙한 얼굴로 설교하는 최 씨가 너무 짜증이 났다. 도대체 무슨 권위로 그런 표정을 하는지, 오라버니 작위 덕분에 백부 부인이 된 것인데 뻔뻔하게 굴었다. 게다가, 왕청여가 친정에 머무르려면 명분이 필요했었다. 부의가 그녀의 체질을 잘 알고 있기에 몸이 좋지 않다는 핑계로 친정에서 지내며 몸을 돌보겠다고 하면 장군부에서도 의심하지 않을 것이다.신중을 기하기 위해 왕청여는 홍이와 함께 약당으로 향했다. 홍이에게 진맥을 받게 하고 약을 짓고 돌아가서 몸이 안 좋다고 말할 생각이였다.그 약들은 당연히 홍이에게 먹일 것이다.약당은 진성에서 가장 큰 의원으로 진료하는 의사만 해도 스무 명이 넘었기에 약당에서 받아온 약이라면 충분히 신뢰를 줄 수 있었다. 사실 홍이는 건강했지만, 8월 초의 맹호 같은 더위로 내열이 쌓여 있었기에 의사는 진맥 후 더위를 풀고 열을 내려주는 차를 몇 첩 지어 주었다.약을 받기 위해 기다리던 중, 왕청여는 약당을 찾은 송석석과 시만자와 마주치고 말았다. 기분이 잡친 왕청여는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들도 여기서 만나게 되다니, 진성이 너무나 작다는 생각이 들었다.재빨리 고개를 돌린 왕청여는 그만 너무나 익숙한 실루엣을 보고 말았다!그 순간, 온몸의 피가 거꾸로 흐르는 듯, “윙”하는 소리와 함께 기억하고 싶지 않은 과거가 떠올렸다. 그 실루엣은 바로 노세진이었다. 하필이면 노세진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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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2화

그러자 시만자가 미소를 지어 보이며 물었다. "이렇게 많이 써도 되는 것입니까? 단신 대부께서 노하지 않겠습니까?" 육세진이 억지스런 미소를 띄며 답했다. "괜찮습니다, 왕비께서 친히 가지러 오신 것이니 무엇을 가져가셔도 대부님께서는 노하시지 않으실 겁니다. 이는 전부터 단신 대부께서 허락하셨습니다." "단신의께서 석석을 참으로 각별히 여기시는 듯하네요, 부럽군요." 육세진도 옆에서 듣고 있다가 고개를 끄덕였다."단신 대부께서는 왕비를 친딸처럼 여기시지요." "그렇겠지요. 당시 남강 전장에 나갈 적에 약을 잔뜩 짊어지고 온 석석이 그것들 모두 단신 대부께서 주신 것이라 했습니다." 시만자는 송석석에게 팔짱을 끼며 다시 물었다."참, 아까 밖에서 왕청여를 보았는데, 노 선생도 왕청여를 알고 계시지요? 사촌 동생인 방시원씨의 전 부인였지 않습니까?" 그 순간 칼이 한쪽으로 기울더니 당황한 노세진은 그만 손가락을 베이고 말았고 급기야 피가 흘러내렸다. "어찌 그리 조심성이 없으십니까? 얼른 붕대를 감으시지요!" 시만자가 걱정스레 말하자, 육세진은 서둘러 서랍에서 거즈를 꺼내 손가락에 감고는 어색하게 얼버무리며 화제를 돌렸다. "별일 아니니 괜찮습니다. 인삼이 이 정도면 충분하신지요?" "충분합니다." 송석석이 종이에 인삼편을 싸면서 말했다. 대략 일곱 여덟 편은 되어 넉넉했다.“이제 다른 약도 좀 챙겨 주시오. 난 약리학에 대해 잘 알지 못하니 노 선생께서 알아서 주시면 됩니다." 육세진은 약 두 병을 꺼내 건네주다 갑자기 한숨을 내쉬었다. "이런, 잘못 들었습니다. 실수하였군요." 그러면서 서둘러 한 병을 다시 제자리에 돌려놓고, 또 다른 작은 무광의 도자기 병을 꺼내 건넸다. "이건 '양혈환'이라 하여 기혈을 보하는 데 좋고 또 다른 약은 심장이 두근거리고 불안할 때 쓰이는 것입니다. 밤에 잠이 오지 않을 때 한 알... 혹은 두 알 정도 드시면 됩니다. 해산을 앞두고 가장 중요한 것은 기혈과 기력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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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3화

그녀는 이제 왕비였기에 승은백부 사람들 모두 나와 맞이하였다. 송석석은 이러한 의례를 몹시 번거로워해 자주 오지 않았던 것이다. 그렇게 형식적인 인사 후 그녀는 바로 란이를 만나러 갔다. 언니가 왔다는 소식에 란이는 무척 기뻐하며 배가 부른 몸을 이끌고 나와 반겼다.송석석도 자연스럽게 그녀의 팔짱을 끼면서 다른 한 손으로 그녀의 배를 가볍게 쓰다듬었다. "배가 많이 불렀는데 불편하지 않느냐?" "괜찮습니다. 다만 밤에 잠을 깊이 자지 못할 뿐입니다." 란이가 웃으며 덧붙였다. "허나 가장 힘든 시기는 이미 지나갔습니다. 태교를 위해 침대에서만 누워 지내는 것이 얼마나 힘들었는지, 거의 토할 지경이었습니다." "다 나아질 것이다." 그녀들이 방에 들어서니 그곳에는 석소 사저와 라 사저가 있었는데, 한 명은 옷을 만들고 있었고, 다른 한 명은 실을 뜨고 있었다. 그들은 송석석이 온 것을 보자 고개를 번쩍 들며 인사를 건넸다. "왔어?" "그간 무사하셨습니까?" 송석석 또한 공손히 인사를 건넸다.방 안에는 또 다른 여인이 자수를 하고 있었고 북명왕비가 왔다는 소식을 듣고 급히 일어나 인사하였다. "문연이 북명왕비마마께 인사드리옵니다." 송석석은 그녀를 알아보았다. 문연은 연유와 함께 승은백부로 들어온 상인의 여식이고 단아하며 얌전해 보였다. 송석석도 고개를 살짝 끄덕였다. "그래." "문연은 저와 자주 함께 시간을 보내주곤 합니다.”란이는 확실이 전보다 많이 밝아진 모습이였다.“저에게 많은 재미난 이야기들을 들려주곤 하지요. 예전에 부친께서 장사 때문에 먼 길을 떠나야 할 때마다 형제들이 번갈아 따라가고 해서 견문이 넓은 편입니다." 그러자 문연은 부끄러워하며 웃었다. "견문이라 하기엔 너무 보잘것없사옵니다." 두 사람이 잘 지내고 있는 것 같고 란이가 많이 밝아진 것을 본 송석석은 마음이 한결 놓였다.그녀는 인삼편과 약을 석소 사저에게 건네며 말했다. "출산할 때 필요할 것이니 잘 보관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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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4화

최 씨의 눈을 마주한 방시원은 입을 떼기 어려운 듯 잠시 머뭇거렸다. 이는 남자의 자존심과 관련된 문제라, 어디서부터 어떻게 말해야 할지 갈피를 잡지 못한 것이다."정녕.. 모든 것을 알았단 말이오?" 최 씨는 그의 얼굴을 똑바로 보며 물었다."전부 다 알고 있다고 할 수 있을지는 모르겠습니다." 방시원이 한숨을 내쉬며 다시 물었다. "그녀가 제 사촌 형을 흠모하였고, 정표도 주고받았다는 말을 들었습니다. 그것이 사실입니까?""정표를 주고받았다고?" 최 씨도 이 부분에 대해서는 아예 모르고 있었다.그때 자리에서 일어선 방시원이 책상 서랍에서 옥패 하나를 꺼내 들었다. "이것은 그녀가 예전에 살던 방 침대 밑에서 발견한 것입니다. 침대 다리와 벽 사이에 끼여 있었지요. 이 옥패는 제 사촌 형의 것입니다." 그는 씁쓸하게 웃었다."침대 밑에서 발견되었으니 아마 잠자기 전에 꺼내서 보곤 했나 봅니다. 마음속 깊이 그리워하고 있었던 거겠지요. 언제부터 그런 마음을 품었는지는 모르겠습니다만.. 저는 늘 우리가 서로를 사랑한다고 믿었는데 하지만 그녀는 다른 사람을 품고 있었던 것 같습니다. 부인께서도 이미 알고 계셨던 거지요?"그의 말에 최 씨는 가슴이 아팠다. 마음이 너무나 깨끗한 이 남자는 조금의 의심조차 품지 않았다. 침대 밑에서 발견된 옥패를 보고도 그저 그녀가 잠 못 이룰 때 꺼내 보았을 것이라 여기고 있었다.전장에서 목숨을 걸고 싸웠던 사람으로서, 세상에 대한 의심과 경계를 가지는 것이 당연할 법도 한데, 왕청여에 대해서는 그런 생각조차 하지 않았다.최 씨는 그의 슬픈 눈빛을 더 이상 마주할 수 없어 그냥 모든 것을 털어놓기로 했다. "그대가 남강에 출정한 지 반년쯤 되었을 때, 아가씨가 모친 앞에 무릎을 꿇고 한 달 동안 친정에 머물게 해달라고 청했소. 동시에, 낙태약도 구해달라고도 했소."방시원의 손에 들린 옥패가 바닥에 떨어지며 쨍그랑 소리를 냈다. 그의 얼굴은 순식간에 하얗게 질려버렸다."뭐라 하셨습니까?" 최 씨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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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5화

기계적으로 고개를 끄덕이던 방시원은 한참 뒤 떨리는 목소리로 입을 열었다. "비밀로 할 테니. 부인은 안심하시지요.." 바닥에 떨어진 옥패를 바라보는 최 씨는 순간 두려움에 휩싸였다.이 이야기를 말해야 할지 말아야 할지 그녀는 사실 오랫동안 고민해 왔고 그동안 너무나도 괴로웠다.그렇게 이 일은 묻어둔 지뢰와도 같아 언제 터질지 알 수 없어 두려웠는데 이렇게 다 털어놓고 나니 오히려 마음이 한결 가벼워졌다.그녀는 방시원이 비밀을 발설하지 않을 것임을 믿었다. 만약 발설하여도 어쩔 수 없는 일이다. 평서백부의 죄는 어디까지나 평서백부가 감당해야 할 것이기 때문이다.전장의 살육을 겪으며 피비린내 나는 전투 속에서 살아남은 방시원은 서서히 평정을 되찾았다. 그는 최 씨에게 정중히 절했다. "부인께서 가문의 명예를 걸고 진실을 알려 주신 것을 보니, 저를 진심으로 아끼고 생각하시는 것 같습니다. 저는 평서백부가 비난과 비방에 휘말리지 않도록 할 것입니다. 이 일은 저로 끝날 것이니 더 이상 아무도 알지 못할 것입니다. 저도 사촌 형이나 그녀를 찾아가 따지지 않겠습니다. 그녀가 전북망과 이혼을 하든, 계속 살든 이제는 아무런 상관이 없습니다. 어머니께서 최근 제 혼사에 대해 이야기하셨으니, 이제 그 소식을 널리 퍼뜨려 왕청여가 더 이상 미련을 가지지 않도록 할 생각입니다." 최 씨는 손수건을 꺼내 얼굴을 가리고 눈물을 흘렸다. 오랫동안 참아왔던 눈물이었고 더는 참을 수 없었다.세상에 모든 남자가 방시원과 같았다면 모든 여인들은 복 받을 정도로 좋은 사람이였다. 방시원의 눈에도 눈물이 맺혔으나, 그는 강하게 참아내고 있었다. 재혼한 왕청여를 그는 이해하려 했고, 미안한 마음도 있었다. 그러나 그가 참전한 지 반년도 채 되지 않아 사촌 형과 부적절한 관계를 맺은 것은 너무나 큰 충격이었다.그는 남강 전장에서 편지를 가장 자주 쓰는 사람이었기에 사람들은 그를 두고 '아내바보'라 농담을 던지곤 했다. 그 당시 송 원수가 그에게 이렇게 말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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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6화

아직 이 사실을 알지 못한 왕청여는 장군부로 돌아가 전에 노부인과 전북망에게 몸이 불편해서 의사에게 진찰받았더니, 암살 사건으로 인해 크게 놀라 심장이 불안정하고, 한동안 요양이 필요하다는 얘기를 전했다.그러자 전북망은 전혀 의심하지 않고, 오히려 큰 죄책감을 느꼈다. 암살 사건으로 인해 그녀가 충격을 받았고, 또한 유월과 오월의 죽음으로 인해 슬픔에 잠겨 건강이 나빠진 것이라고 생각한 전북망은 몸조리를 잘하라고만 당부하였다.왕청여는 며칠 몸을 추스르고, 곧장 친정으로 돌아가려 했다.하지만 그렇게 사흘이 흐른 뒤, 방시원이 혼사를 준비하고 있다는 소식을 부엌에서 일하는 하인이 수군대는 소리로 인해 알게 되었다. 그녀는 믿을 수 없었다. 방시원은 그녀와 이미 약속했고 결코 신의를 저버릴 자가 아니라고 생각했었다. 분명히 장군부에서의 암살 사건을 조사했을 터이니 절대 자신을 버리지 않을 것이라 굳게 믿었던 것이다.하여 그녀는 두 하녀를 불러들여 큰소리로 꾸짖었다. "평소 집 안에서 나가질 않는데, 대체 어디서 방 장군이 혼사를 준비한다는 소리를 들은 것이냐? 또다시 그런 헛소문을 퍼뜨린다면, 너희 혀를 뽑아버릴 것이니라!" 하녀들은 그저 청소나 하는 이들로, 평소 왕청여의 방에 잘 드나들지도 않았다. 그녀가 무섭게 꾸짖는 그들은 두려움에 떨었다."헛소문이 아니옵니다. 장을 보러 갔다 온 이가 말하길, 그 소식은 이미 널리 퍼진 상태고, 귀한 집 여식들이 방 장군과 혼인하려 한다고 했사옵니다." "말도 안 된다!" 왕청여는 급기야 실성하며 소리쳤다. 그 소리에 하녀들은 놀라 급히 무릎을 꿇었다. "소인이 실언하였습니다!" 왕청여는 도저히 믿을 수가 없었다. 그녀는 즉시 홍이와 함께 친정으로 향했다. 그날 화가 난 어머니께서 쓰러졌지만 뒤돌아보지도 않고 떠났다. 그렇게 떠난 그녀가 너무 아무렇지도 않게 돌아온 것을 보고 그녀는 또다시 분노가 치밀기 시작했다."네가 여기엔 또 어쩐 일이냐?" "어머니," 왕청여는 눈이 충혈되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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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7화

왕청여는 그만 절망에 빠져 버렸다. 친정에서도, 시댁에서도 그녀를 도와줄 이는 없었다. 삶이 이토록 비참하고 절망스러운데 더 살아갈 이유가 있을까 싶었다. 그러나 그녀는 포기하지 않았다. 방시원은 결코 신의를 저버릴 사람이 아니라고 굳게 믿었고, 여전히 자신에게 애정을 품고 있을 것이라고 확신하며 반드시 직접 물어보아야 겠다고 생각했다.지금 자신의 처지에 그를 찾아가는 것이 부적절하다는 것을 알고 있지만, 그녀는 더 이상 그런 것들을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그녀는 마차를 타고 곧장 방씨 가문으로 향했고, 마차에서 내리자마자 성큼성큼 앞으로 나아갔다. 문지기가 그녀를 보고는 무심결에 예전에 부르던 방식대로 불러 버렸다. "아가… 아, 전부인." 왕청여는 눈살을 찌푸리며 문지기를 차갑게 노려보았다. "어디서 그런 못난 눈썰미를 갖고 있는 것이냐? 전 부인이 웬 말이냐? 방시원이 안에 있느냐?" 당황한 문지기가 재빨리 대답했다."계십니다!" 그녀는 홍이와 함께 대문을 통과하여 당당히 안으로 들어섰다. 겁에 질린 홍이는 다리가 덜덜 떨려서 왕청여를 막을 수 없었다. 어찌 여기에 온 단 말이지?이러다가 장군부에서 알게 되면 정말 큰일인데 말이다.왕청여의 행동은 방씨 가문 사람들을 모두 혼란스럽게 만들었다. 이미 한 집안이 아닌데, 어찌 아무런 기별도 없이 쳐들어오는지 이해가 되지 않았다. 게다가 혼사를 준비 중인 방시원을 찾아오다니, 이러고서야 어찌 혼사가 성사되겠는가? 왕청여에 조금의 정은 남아 있었던 오 씨는 이제는 그마저도 완전히 사라져 버렸다. 방부인은 누구도 이 일을 밖에 알리지 말라고 명령했고, 왕청여의 마차도 사람들이 보지 못하도록 눈에 띄지 않는 곳으로 옮기게 했다.오 씨는 방시원이 왕청여를 만나는 것을 허락하지 않았다. 하지만 왕청여는 이미 결심한 듯 자리를 지키며 떠날 생각도 하지 않는듯 했다. 오 씨의 말은 들은 척도 하지 않으며 오로지 방시원만을 찾았다.이토록 고집스러운 왕청여를 본 적이 없었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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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8화

연왕은 식구들을 이끌고 진성으로 돌아와 이미 자리를 잡은 상태였다. 그리고 태후와 황제를 배알한 후 왕비인 시민주와 측비인 김도연과 함께 북명왕부를 찾았다.사여묵은 오늘 휴무라 마침 저택에 있었으나, 연왕이 불쑥 찾아온 것을 몹시 못마땅했다. 하지만 삼촌인 그가 일가를 이끌고 친히 찾아왔으니, 만나지 않을 수는 없었다. 원칙대로라면 사여묵이 송석석과 함께 연왕부로 찾아가는 것이 예의였고 황숙이 직접 왕부로 찾아오는 것은 사여묵이 권위를 세우려는 것처럼 보일 수 있었다. 사여묵은 어쩔 수 없이 어머니를 모시고 나와 연왕 일가를 맞이하였다. 이렇게 되면 연왕 일가가 혜태비를 방문하는 것이니 어색함을 조금은 덜 수 있었다. 사여묵과 연왕은 서로 말이 별로 없었고, 본디 서로 가깝지 않은 데다 각자 속마음을 감추고 있었기에 겉치레에 불과한 대화만 주고받았다. 반면 연왕비 시민주는 열정이 넘쳤다. 그녀는 시만자의 이야기를 하며 송석석과 가까워 지려 했다. 그러나 시만자는 시민주가 온다는 소식에도 얼굴을 비추지 않았다. 그녀와 마주하고 싶지 않다는 뜻이었다.송석석은 연왕에게 냉정한 표정을 지으며 겉치레마저 하지 않았다. 그녀는 고모가 처참히 죽은 일이 아직 뇌리를 떠나지 않았고, 그 책임이 연왕에게 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또한 시만자와 닮아 있는 그녀의 얼굴을 마주하기 여간 불편한 것이 아니었다. 이전에 시만자는 그녀가 연왕과 결혼하기 위해 집안의 반대를 무릅썼다는 이야기를 해줬었었다. "조카가 지금 대리 시경을 맡고 있다니, 재능을 발휘하기엔 너무 아깝구나. 황숙이 대신 마음이 아프구나. 대리 시경이라니, 결국 공문을 다루는 자리 아닌가. 너는 남강을 회복한 공신이니 황제께서 마땅히 군권을 다시 맡겨야 할 터인데." 연왕이 웃으며 말하자 사역묵이 답했다."황숙께서 그리 생각하시거든 황제께 직접 말 드리옵소서. 다만 조카는 대리 시경 자리가 천하의 형벌을 다스리는 자리이니 오히려 좋다고 생각하나이다." 그러다 미소를 지으며 한마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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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09화

사여묵과 송석석은 거의 동시에 자리에서 벌떡 일어섰다. 머리를 풀어 헤친 왕청여는 한 손에 비수를 잡고 자신의 목을 겨누고 있었다. 세게 누른 탓에 목에서는 피가 흐르고 있었다. 그녀의 뒤에는 시녀인 홍이가 하얗게 질린 얼굴로 서 있었다. 북명왕부로 향하던 중 비수를 사려는 것을 막으려 했으나 실패한 것이다. 송석석을 발견한 왕청여는 분노 서린 눈으로 외쳤다. "송석석! 우리 사이에 무슨 원한이 있기에 이토록 나를 망가뜨리는 것이냐!" 송석석은 침착한 말투로 노 집사에 명령했다. "평서백부와 장군부로 사람을 보내, 전 부인을 모셔가도록 하시오." 명을 받은 노 집사는 곧장 자리를 떠났다.송석석이 사여묵에게 말했다. "당신은 이만 돌아가세요. 내가 처리하리다." 사여묵은 왕청여를 한 번 더 보았다. 그녀는 거의 미친 듯한 모습으로 비수를 들고 있었다. "조심하오. 절대 다치면 안 돼요." 말을 마치고 사여묵이 돌아서려는데 연왕이 걸어 나오고 있었다. 사여묵은 긴 팔을 뻗어 급히 그를 막았다."황숙, 우리는 차를 마시러 돌아가시지요. 방금 어디까지 이야기했습니까?" 바로 그때, 연왕이 크게 소리쳤다. "무슨 일이냐?! 감히 누가 북명왕부에서 이리도 대담하게 소란을 피우는 것이냐? 제대로 다스려야 할 일이다. 함부로 왕부에 들어오는 자는 벌을 받아야 마땅하다!" 김도연도 연왕을 따라 밖으로 나왔다. 사여묵이 막을 새도 없이 그녀가 선수 치며 연왕의 말에 맞장구쳤다."저자는 평서백부의 셋째 아가씨 아닙니까? 전부인이 맞군요! 이게 대체 어찌 된 일입니까?" 왕청여는 원래 송석석만 찾으려 한 것뿐이었으나 연왕과 김도연도 함께 있는 것을 보고 미쳐버린 듯한 광기를 즉시 거두어들이고 송석석을 차갑게 노려볼 뿐이었다. "그건 따로 이야기하시지요. 그렇지 않으면 두 목숨이 여기서 끝나는 것입니다. 어차피 그대는 이미 나를 끝장내려 했으니, 어디에서 죽든 상관없지만 말입니다." 그때 김도연이 이해심이 많은 듯한 태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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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610화

편청에서 두 사람은 서로 마주 보고 앉았는데, 송석석은 왕청여의 목에 닿아 있는 비수를 보자 눈살을 찌푸렸다."계속해서 비수를 대고 있을 겁니까? 정말 죽으려 했다면 북명왕부 대문에 머리를 들이받아 죽는 게 나았을 겁니다. 이리 소란을 피우는 건 그대 체면만 망치는 것입니다." 손등으로 눈물을 닦아낸 왕청여가 고집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인연을 망치는 건 음덕을 해하는 일인데.. 참으로 악독하기 그지없군요." "제가 인연을 망쳤단 말인가요? 전북망과의 문제는 그대들의 일이지, 저와는 아무런 관련이 없습니다. 그대는 사리 분별도 못하는 사람이군요. 장군부에 암살자가 들이닥쳤을 때에도 제가 그대들을 구해 준 것입니다." 송석석의 말에도 왕청여는 차갑게 대꾸했다. "공과 사는 구분합니다. 게다가 장군부에서 들이닥친 암살자를 쫓아낸 것은 저를 위한 것은 아니었으니, 제가 고마워할 필요는 없지요." 송석석은 그녀의 말에 어이가 없어 그만 헛웃음이 다 나왔다. "저도 필요 없습니다. 그럼 말해 보세요. 제가 무엇을 했기에 그대 인연을 망쳤다는 것입니까?" 왕청여는 화가 치밀어 올라 이를 악물었다."순진한 척하지 마세요. 당신이 방시원에게 무슨 말을 했는지는 당신이 더 잘 알지 않겠습니까? 당신은 제가 잘되는 꼴을 못 봐서, 방시원과 다시 이어질 것 같으니 예전 일을 캐고 방시원에게 알린 것이 아닙니까? 그는 이제 혼사를 준비하고 있습니다. 이것이 정녕 당신이 원하는 결과입니까?" "방시원?" 송석석은 여직 그녀가 전북망과의 사이가 틀어져 이토록 행패를 부린다 생각했다. 하여 잠시 생각이 멈췄지만, 약당에서 그녀와 노세진이 보였던 이상한 모습을 떠올리고, 곧바로 상황을 이해했다.왕청여는 방시원을 찾아가 다시 함께하려 했으나, 왕청여와 노세진의 관계가 들통나버렸기에 그가 혼사 소문을 퍼뜨려 그녀와의 인연을 끊으려 했던 것이었다. 그리고 왕청여는 그 사실을 송석석이 방시원에게 말한 것이라고 오해해 이곳으로 찾아와 분풀이를 해 버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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